기치조지역에서 지브리 스튜디오, 산책로를 지나 미타카역으로. 미타카역 근처에 '에도도쿄건축공원'이 있으리라

생각했던 건 가이드북에서 '기치조지/나카노' 지역으로 묶인 곳에 지브리 스튜디오랑 같이 묶여있어서 지레

그렇게 오해했던 거지만, 사실은 꽤나 멀다. JR 추오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움직여야 하는데 대략 삼십분.

미타카역에서 JR 추오선을 타고 '무사시고가네이(武藏小金井)'역에 내려 버스를 잡아타야 한다.

가이드북('클로즈업 도쿄')의 설명을 그대로 따오자면,

"JR 추오선 무사시고가네이武藏小金井 역 하차. 북쪽 출구 北口의 개찰구를 나와 오른쪽으로 10m쯤 가면 육교가 있다. 육교를 건너면 바로 밑에 버스 정류장이 있는데, 2/3번 정류장에서 세이부西武 버스를 타고 5번째 정거장인 고가네이코엔니시구치小金井公園西口에서 내린다(170엔, 5분). 버스 진행 방향 뒤쪽의 횡단보도를 건너 고가네이공원 안으로 들어가면 에도도쿄건축공원의 표지판이 보인다. 도보 7분"

무슨 보물찾기 하는 기분으로 지령을 따랐다.

무사시고가네이武藏小金井 역에서 버스정류장은 쉽게 찾았다. 버스정류장에서 하야오가 그려 공원에 선사했다는

그 애벌레 캐릭터가 굼실대고 있었다. 그리고 다섯번째, 고가네이코엔니시구치小金井公園西口 역도 보였다.

글자로 써진 걸 읽으면 머릿속이 온통 굼실굼실해지는 느낌이었는데, 일단 믿고 따라나서니 생각보다 쉽다.

그렇지만 역시 멋도 모르고 그냥 찾아나서긴 쉽지 않겠다, 생각보다 여기까지 찾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후쿠오카에서도 그랬지만, 일본의 교통 체계는 참 정확하다. 몇시 몇분에 정류장에 도착할지를 저렇게

명기해 두다니. 손님과의 약속이기도 하고, 본인과의 약속이기도 하렸다. 일상 생활을 하면서 뭔가 예측가능한

스케줄을 원한다면 저런 명확한 시간표가 있음 정말 좋을 듯. 정말 일분의 오차도 없이 도착한 버스.

다섯 정거장이라 그냥 서 있었다. 하차벨에 적힌 꼬불꼬불한 히라가나를 눈을 붙잡았다. 올해 초에 그래도

일본어 공부 좀 해본다며 아침에 일찍 일어나 수업도 듣고 그랬는데, 히라가나 외우려다 포기해버렸댔다.

쓰는 건 참 이쁘긴 한데, 글자에 무슨 규칙도 없고 무조건 외우고 봐야 하다니 원. 그 법칙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외운 후에 일본어 문법을 따르면 될 텐데, 그 법칙 자체를 수용하질 못하겠다. 넘 자의적이란 느낌.

하기야 한국어도 마찬가지지만, 어려서 생각없을 때 일단 틀을 받아들이고 말았으니. 외국어 못 해먹겠다. 쳇.

굳이 가이드북의 설명을 한단어 한단어 유심히 살필 필요도 없었다. 다섯 번째 정류장에서 내리니 사방에서

화살표가 그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애벌레녀석도 사방에서 슬금슬금.

가는 길에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만들 때 여기로 자주

산책을 왔다더만, 여기까지 걸어온 걸까 싶다. 한적하고 조용한 게 산책하기 좋긴 하겠지만, 이건 아무래도

지브리 스튜디오에서부터는 넘 멀다.

고가네이코엔小金井公園은 에도시대부터 벚꽃으로 유명하던 곳이라 한다. 울창한 나무들이 뜨거운 도쿄의

햇살을 온몸으로 가려주며 시원한 바람의 냉기를 보존하고 있었다. 에도도쿄전축공원은 이 고가네이코엔의

안에 있는 또다른 공원. 공원 속의 공원인 셈이다.

에도도쿄건축공원의 입구. 입장료가 없는 고가네이코엔小金井公園 내의 테마공원인 셈이니 빈틈없이 둘러쳐진

울타리 윤곽선이 두드러졌다.

공원의 내부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그 배경이 모여있는 에도도쿄건축공원.

건축공원을 돌아보고 나와서 기념품 샵에서 발견한 사진들. 왼쪽의 저 사람은 하야오, 맞는 거 같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얼굴없는 요괴, 가오나시'다. 이거 그림이나 합성이 아니라 실제로 찍은 거 같은데, 대단하다.

이렇게 무슨 코스프레하듯 가오나시 복장을 입고 돌아다니면, 지브리 스튜디오나 여기 에도도교건축공원이나

모두 무료통과는 물론이고 꽤나 환대받지 않았을까. 일본 사람들의 따뜻한 환대를 온몸에 받았을지도. 나도 담엔.

하야오가 선사한 에도도쿄건축공원의 마스코트인 애벌레 녀석도 기념품 인형으로 이렇게 팔고 있었고,

그 밖에, 이런 귀여운 고양이 인형들도 왜인지 팔고 있었다. 건축공원하고는 그다지 상관없는 듯 한데.

캐릭터를 이렇게 치밀하게 이용하는 그 아이디어가 넘 좋은 거다. 모처럼 하야오가 만들어준 캐릭터를 그냥

썩히는 게 아니라, 기념품샵 봉투에도 넣고, 그 봉투를 봉하는 테이프에도 넣고. 감탄해 버렸다.

에도도쿄건축공원을 나서는데, 눈앞의 잔디밭이 온통 꺼뭇꺼뭇하다. 뭔가 했더니 모두 까마귀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왔던 마녀도 아침이 되면 까마귀로 변신해 성을 떠나고는 했다.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길, 한번 왔던 길을 다시 가는 건 참 쉽다. 대충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어디서 길을

건너거나 방향을 꺽어야 할지도 대략의 감이 오는 거다. 그러면 주변이 보인다. 눈앞을 새하얗게 만드는 햇살에

뽀송뽀송 말라가는 사이좋은 빨래들 같은 것도.

버스 정류장. 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비록 오는 길이 제법 솔찮이 시간도 걸리고, 교통비도 적잖이 들어가는

건 사실이지만, 도쿄까지 왔는데 교통비 몇 푼 아낀다고 여길 스킵하는 건 좀 아닌 듯. 게다가 여기저기 인증샷만

남기고 떠나는 여행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세상을 동경한다면.

에도도쿄건축공원의 맵. 서쪽존까지도 돌아볼 걸, 하는 생각이 없진 않지만 동쪽 존만으로도 넘 많은 것들을

보고 말았다. 하야오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느낌을 가득 받아 올 수 있었던 공원.

가이드북 말고 공원 팜플렛에서 발견한 또다른 루트. 참고하면 좋을 거 같다.







지브리 미술관에서 나오는 길, 미타카 역을 가리키는 화살표 하나, 미술관을 에워싼 공원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또 하나. 미타카 역에서 지브리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길이 꽤나 매력적인 산책로라는 이야기에 그쪽으로 바로

빠지기로 결심은 했지만, 지브리 스튜디오의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져 있는 공원에서 좀더 여운을 즐기고 싶은

마음도 움찔움찔.

아까 뛰어들어오느라 보지 못했던 지브리 박물관/미술관/스튜디오의 간판.

끝내 문을 나서서 돌아나오는 길, 샛노란 칠이 산뜻한 지브리 스튜디오 건물 안의 커다란 토토로가 배웅해주는

듯하다. 이제 막 스튜디오에 들어선 꼬마아이 하나가 토토로와 눈싸움을 시작했다.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나와 미타카 역쪽으로 방향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태풍 '곤파스'가 가로수를 뽑고 휘두른다던

서울과는 달리 이곳 도쿄는 사람이 몇 명이나 죽어나간다는 전례없는 폭염이 계속되던 중. 비행기 타고 고작

두시간도 안 날아가는 거리인데 이토록 판이한 날씨라니. 이런 점에서도 가깝고도 먼 나라, 맞다.

이국적인 느낌의 신호등, 빨간 신호등의 불빛이 유난히 붉다.

사실 미타카역에서부터 지브리 미술관으로 걸어오면서 점점 줄어들어야 하는 숫자, 미술관까지 300미터

남았음을 알리는 표지판. 푯말을 들고 있는 토토로도, 푯말 위에서 휘영청 몸을 꺽어내는 도마뱀도 귀엽다.

한참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닐 시간 아닌가, 오후 두세시경. 옆에 개천을 끼고 이어지는 골목길에는 그렇지만

사람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고즈넉하고, 조용하면서 깨끗한 거리.

나무도 많고, 집들도 아기자기하고, 그런 산책로를 따라 가다보니 금세 지브리 미술관에서 멀어진다. 어느새

500미터나 떨어졌다. 거꾸로, 미타카역에서 이 길을 따라 지브리 미술관을 향하는 길도 생각보다 금방 가닿을듯.

어느 집 앞마당에 얼기설기 세워진 대나무 울타리에 붙여진 안내판.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개와 고양이 그림이

귀엽다. 뭐, 이런 개나 고양이가 마당에 침범하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는 그런 걸까.

좀더 걷다 보니 다른 그림들도 눈에 띈다. 아이들이 손으로 직접 그린 듯한 포스터들, 그리고 검정귀를 가진

하얀 강아지가 푯말로 붙어있는, 그런 류의 귀여운 안내판들.

그리고 칠백미터. 토토로 말고 다른 캐릭터들도 푯말을 들고 있게 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긴 하지만, 아무리

뭐니뭐니 해도 지브리의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는 역시 토토로. 붉은돼지 아저씨가 푯말을 들고 있기엔 왠지

어울리지 않는 거 같고.

이번엔 파란 불, 이건 또 아까 신호등과는 모양생김이 다르다. 햇살은 워낙 내리쬐이고 그늘은 또 그만큼

짙고, 도무지 광량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았던 도쿄.

신호등 앞에는 이렇게 멈춰서서 기다리라며 발자국 모양까지 그려넣는 세심함..이랄까 유머러스함이랄까.

장난스럽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지브리 스튜디오-미타카 역을 잇는 이 산책로의 이름은, '바람의 산책로'. 아닌 게 아니라 개천을 따라 쓸듯이

불어내리는 바람이 머리빗처럼 순순한 방향으로 행인들을 빗어넘기고 있었다.

문득 툭 튀어나온, 그렇지만 너무 과하게 튀거나 부조화스럽지는 않은 일본 스타일 강렬한 집도 한 채 지나고.

그러다보니 벌써 지브리 스튜디오에서부터 천백미터. 그리고 거의 코앞까지 당겨져버린 미타카역.

지브리에서의 여운을 곱씹으며 마음을 탁 놓은 채 걷기에 딱 좋던, 딱 알맞은 거리와 분위기의 산책로.





지브리미술관 구조를 소개하는 브로슈어, 그치만 이것만 봐서는 통..뭐가 뭔지 한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게다가

무려 한국어를 포함한 다섯개 언어, 일본어까지 합치면 여섯개 언어로 소개가 되어있음에도 그다지 쓸데있는

정보는 안 담겨 있는 거 같다. 명색이 미술관인데, 더구나 지브리의 특성을 살려 만화로 표현해놓은 지도인데.

지도는 보고 나면 여기가 어디고 어디로 가야할지는 최소한 알아야 할 텐데. 어떻게 이럴 수가.

브로슈어 뒷면에 적혀 있는 문구 하나, 이 모든 의혹을 해소하는 강력한 단서가 되어 주었다. '미아가 됩시다,

다 함께!!'라는 문구다. 영어로는 'Let's lose our way, toghether'라나. 이들은 지브리 미술관에 들어온 사람들을

모두 길잃고 홀리게 만들어 기념품점을 싹싹 긁어가게 만들고, 지브리홀릭으로 만들 생각인 거다.


더구나 미술관 내 사진촬영, 비디오촬영은 모두 금지라니. 이러니 지브리에 두고 온 내 금쪽같은 추억들이

더더욱 소중하고 아름답게 풍화되는 거다.

지브리의 입장권 두 장. 이걸 갖고 미술관 지하 1층으로 가면 오로지 이 곳에서만 볼 수 있는 지브리의

단편 만화영화를 볼 수 있다. 약 15분에서 20분 가까이 되는 작품을 매시간 세 타임씩 틀고 있었다.


위의 입장권은 '붉은돼지'의 한 장면, 밑의 입장권은 '포뇨'의 한 장면, 필름을 이렇게 몇 컷씩 잘라내어 다시

입장권으로 재생한다는 발상도 참 감탄스럽다. 이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기념품.

지브리 스튜디오 입장권을 사전 예매하고 현지에서 받기로 했는데, 한국에서 미리 예약할 수 있는 곳은 대한여행사

뿐이라고 많은 블로거분들이 그렇게 알려주셨기로 나 역시.





비록 굉장히 낡고 더러워졌지만, 저 낡음이 어느 가방의 어느 모서리에 쓸렸는지, 그리고 저 얼룩이 어느 식당의

점원이 실수로 엎지른 간장 종지에서 번져나왔는지를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가이드북에 절대적으로 빈곤하던 교통지도 중 JR선에 대한 갈급한 욕구를 이 지도 하나로

전부 해갈할 수 있었단 점. 기치조지역의 '지브리 미술관'을 찾아갈 때, 그리고 도쿄 도심을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도는 JR선의 대략적인 그림과 윤곽이 궁금할 때 매우매우 도움이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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