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상징과도 같은 브란덴부르크 개선문,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라는 게 아쉬웠지만 그래도 그 장대한 모습은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다.


그보다 더 흥미를 끌었던 건 바로 그 남쪽에 인접해 있던 '메모리얼 투 더 머더드 쥬스 오브 유럽', 그러니까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 정도로 번역될 법한 기념공원이었다. 저렇게 네모 반듯한 시멘트 덩어리를 마치 관짝처럼 제작해서는 오와 열을 맞추어 빼곡하게 설치해 두었다.

마침 내가 갔을 때, 왠지 굉장히 고독하거나 심난한 분위기를 풍기며 앉아있는 젊은 친구가 있길래 뒷모습을 살짝. 이럴 때 온갖 상상을 해보게 되는 거다. 유대인일까, 친지 중에 희생자가 있는 걸까, 2차 대전의 상처가 어떤 식으로 남아있는 걸까. 등등.


어떻게 보면 정말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공간 같지만, 또 어떻게 보면 그 단순한 네모반듯한 오브제들로 인해 하늘이 보이지 않는 골목이 생기고, 그렇게 서로 예기치 않게 만나는 순간들이 반복되는 경험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유대인들이 겪었던 역사적인 희생과 마녀사냥, 그로 인해 흘린 피가 얼마나 될지 가늠할 수도 없지만, 최소한 이런 기념공원에서 한번 되짚어 생각해 볼 수 있단 점에선 절대 헛되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에 대한 추모 열풍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그의 철학이나 인생을 기리는 게 아니라, 그가 만든 애플 제품들을 기념한다는 느낌이랄까.

그가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전혀 새로운 아이템을 끄집어 냈다지만, 그게 이런 애도물결의

근거로 충분할지 모르겠다. 그가 남긴 레토릭들과 아포리즘을 되씹으며 경탄하고 있는 사람들은

뭔가 그의 실체가 아닌 그의 이미지나 그림자에 열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다.


이번 추모이벤트의 셀링포인트는, 내가 보기엔, 유저들에 대해선 (매니아틱하고 일종의 상징으로

소비되기에 이른) 애플 제품에 대한 충성도를 과시할 기회란 것, 그리고 언론들에 대해선 그의

드라마틱한 성공담을 현대사회 샐러리맨들의 신화로 승격시키는 기회란 것 정도 아닐까.


한국의 찌라시들이 질리도록 미국발 보도를 받아쓰는 이유도, 그런 신화를 다시 한국에 불러내려는

거 아닐지. 그렇지만 이미 메이드인코리아 버전의 샐러리맨들 신화 혹은 환타지는 차고 넘치는 게 사실.

MB, 정주영, 이건희, 이병철, 안철수에 이르기까지. MB가 언론사 대담중에 안철수를 두고 '학계인사'라

지칭했던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어쨌거나 애플로서는 대목을 맞은 셈인 거 같다. 원했던 원치 않았던 스티브 잡스의 '시체장사'를 통해

애플의 브랜드 이미지와 스타일이 격하게 강화되고 말았으니, 그의 죽음 앞에 주판을 튕기며 쾌재를 부르던

한국의 덜떨어진 매체들과 기업들은 역풍 앞에 당황하고 있지 않을까 모르겠다. 잡스의 마지막 선물이라

생각하면 되려나, 애플 주주들에 대한.



남양주 마석에 있는 모란공원묘지, 추석이 채 일주일도 남지 않은 때 찾았던 묘지분위기는 그렇지만

정말 썰렁했다. 공기에 짓눌린 채 바싹 말라버린 꽃가지 하나가 화석처럼 대리석 제단 위에 고여있었다.

이전 포스팅 ( 
이소선 여사 마지막 가시는 길. )에서 올렸던 사진들은 이소선 여사의 안식처가 될 공간

중심이어서 그나마 사람들이 북적북적, 공기를 흩어놓고 있었지만 다른 수많은 묘소들은 무겁게 공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더욱 기분이 울적했던 건, 묘소 곳곳에 붙어있던 이런 관리비 독촉 스티커.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그들이 가고 나서 재산이나 가족이 제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도 대개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데,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이들 역시 묫자리 하나 맘편하게 쓰지도 못하고

죽고 나서도 편히 쉬지 못하는 건 아닌지. 없는 사람들, 재산도 없고 가족도 없는 사람들이 그래도

민주묘역에 묻힐 수 있었던 게 다행인 걸까. 추석때 찾아와 무성한 잡초라도 끊어줄 사람은 있을까.

모란공원묘지에 들어가기 전 입구에서 만난 꽃가게. 한지에 붓으로 엉성하게 써둔 문구가 굉장히

담백하면서도 왠지 호소력 짙어보였다. "아름다운 생화 사시오 여기로 오시오"

모란공원 입구는 야트막한 돌기둥 두개, 그리고 기둥 사이로 녹슬고 성긴 초록색 철문으로 열리고

닫히고 있었다. 철문에 페인트칠은 벗겨지고, 개방시간을 알리는 철판은 글씨가 낡고 삭아 군데군데

떨어져 있었고. 그 와중에 눈에 띄던 건, 아마도 남양주에서도 트레킹코스를 개발한듯 어딘가로부터의

코스가 끝났음을 알리는 '종점 시점' 표지판. 인생이 끝나는 묘역에서 맞는 트레킹 코스의 종점이라.

입구를 들어서니 바로 묘소들이다. 뭔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준비하기도 전에, 촘촘하게 모셔진 무덤들이

눈앞으로 확 달려들었다. 나름 겉에서 보기엔 색색의 꽃들도 꼽혀있어 색깔도 다양하고, 검고 하얀 대리석

조형물들도 묘소 옆을 지키고 있어 그럴듯해 보이기도 하지만, 꽃들은 전부 빛바랜 조화.

민족민주열사 묘역도가 묘소로 들어가는 길 앞섶에 세워져있었다. 많다. 그리 넓은 않은 부지에 꽉꽉

채워진 느낌이다 했더니, 묘역도를 봐도 그 느낌 그대로다. 그리고 중간중간에는 미처 그림에 반영되지

못한 새로 모셔진 분들의 위치가 사인펜으로, 볼펜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 중에 눈에 띄던 표시,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이명박정부는 이미 만원이 되어버린 모란공원묘지의

밀도를 더욱 높이는데 일조하고 있다. 하긴, 이명박정부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노무현 때라고, 김대중

때라고 태평성대도 아니었거니와, 사람들의 피와 땀을 쉼없이 요구하는 괴물이 어딘가에 버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더 크고 넓은 묘역이 필요한 거다.

민주열사 묘역으로 올라가는 길, 문득 머릿속을 맴돌던 노래 하나가 계속 무한도돌이표를 그려냈다.

꽃다지가 불렀던 '열사가 전사에게'라는 민중가요.

꽃무더기 뿌려놓은 동지의 길을
피비린 전사의 못다한 길을
내 다시 살아온대도 그 길 가리라
그 길가다 피눈물 고여 바다된대도
싸우는 전사의 오늘있는 한
피눈물 갈라 흐르는 내 길을 가리라

동지여 그대가 보낸 오늘 하루가
어제 내가 그토록 살고 싶었던 내일
동지여 그대가 보낸 오늘 하루가
내가 그토록 투쟁하고 싶었던 내일
복수의 빛나는 총탄으로 이제 고인 눈물을 닦아다오
마침내 올려질 승리의 깃발 힘차게 펄럭여다오

민주열사 추모비. 신영복 선생의 글씨로 새겨진 글이 뜨겁다.

"의로운 것이야말로 진실임을, 싸우는 것이야말로 양심임을 이 비앞에 서면 새삼 알리라."

"지나는 이 있어 스스로 빛을 발한 이 불멸의 영혼들에게서 삼가 불씨를 구할지어니."


허세욱 열사. 2007년 한미 FTA를 반대하며 분신하신 택시운전 노동자였다. 운전을 하며 틈틈이 얻은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각종 집회와 진보정당 모임에 빠지지않고 나가기까지, 그렇게 스스로

세상을 공부하고 의견을 말하시던 분. 한미FTA가 지고의 가치인양 치장하는 건 2007년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지만..스스로 빛을 밝힌 그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안타깝던 건, 묘비나 이런 안내문 위에 언제 떨어졌는지도 모를 새똥이 하얗게 말라붙어 있던 모습.

조금만 신경써서 관리해줘도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을 텐데, 햇빛에 하얗게 바래어가는 종이만큼

녹슬고 더러워진 시설물들이 너무 아쉽다.

그래도, 묘비 머리마다 둘린 머리띠가 팽팽하다. 열사정신 계승, 단결투쟁, 이명박정권 퇴진까지. 생전에

그렇게도 자주 둘렸을 머리띠가 이제 묘비에 둘린 채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어느 노동자의 무덤 앞에는 백기완 선생님의 헌시가 새겨진 돌도 서 있었다. 정말 비장하고 무거운,

새들마저 부리를 여미는 그런 분위기가 꽉 들이찼던 곳.

그리고 전태일. 수없이 고문당하고 고통받고 죽어간 노동자들, 민주투사들의 대명사이자 상징처럼

되어버린 그의 묘소는 제법 색색의 꽃들이 화려하게 놓여있었다. 그 이외에는 다른 묘소들과 크게

다를 바 없던. 그런데 그는 '기독청년'이란 앞머리를 달고 누워있었구나, 갈수록 대형화, 상업화되며

심지어 정치까지 넘보는 교회세력이 들끓는 시대의 눈으로 보니 좀 낯설다.


전태일 추모비. 납작하고 그리 크지 않은 검정 대리석 네면에 빼곡한 글씨로 전태일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의 신념을 적어두었다. 네 면을 순서대로 찍어두었으니 한번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돌아나오는 길, 곳곳에서 눈에 띄는 관리비 납부 독촉장이 석상 위에 차례 음식이나 꽃 한송이 대신

모질게도 찰싹 붙어있는게 맘에 걸렸다. 이번 추석에는 무성한 잡초도 좀 정리하고 먼지와 독촉장만

내려앉은 대리석 차례상 위에 그래도 조금은 풍성해도 좋을 음식들이 올라앉아 있으면 좋겠는데.







1970년 11월 평화시장 앞 길거리에서, 한 젊은이가 스스로 횃불이 되었다. 그의 이름은 전태일.

그리고 2011년 8월, 이제서야 '전태일의 어머니'라는 딱지를 떼고 그녀 스스로의 이름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 그녀가 있다. 이소선. 어쩌면, 그녀는 그녀의 아들 이상으로 위대한 삶을 살았다.


프레시안의 만평을 책임진 손문상 화백은 가끔 울컥, 할 만큼 강렬한 그림으로 수백마디 말을 함축한다.

모란공원묘지에 오랜만에 다시 한번 찾아가봐야겠다. 전태일, 그리고 이소선을 뵙고 싶다.

번다한 세상일은 산 자들의 몫으로, 이제나마 당신들은 모쪼록 평안하게 쉬시기를.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 10점
오도엽 지음/후마니타스


전태일 평전 - 10점
조영래 지음/아름다운전태일(전태일기념사업회)

故김대중대통령 추모 공식홈페이지(http://211.233.13.92/?brch=1)에 고인의 마지막 일기 중 일부가 PDF형태로

공개되었다. 생각보다 현 정권에 대해 '세게' 발언한 부분도 공개되어서 왠지 안심했다. 고인이 생전에

침묵하지 않으셨다는 게 안심이 되었고, 서거 후에도 타의에 의해 침묵당하지 않으셨다는 것 역시 안심이

되었달까.



■ 건강에 대한 언급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이고..건강도 괜찮은 편인 것이 행복이다. 불행을 세자면 한이 없고 행복을 세어도 한이 없다."(2009. 5. 2)

이렇게 건강도 괜찮으셨다는 분이 갑작스레...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충격이 크셨던 게다.


■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언급

"노 대통령도 사법처리 될 모양. 큰 불행이다. 노 대통령 개인을 위해서도, 야당을 위해서도, 같은 진보진영 대통령이었던 나를 위해서도, 불행이다. 노 대통령이 잘 대응하기를 바란다."(2009.4.18)

고인은 스스로를 노 전대통령과 함께 "진보진영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진보'라는
것에 주어지는 운신의 폭이란 그 두 분의 서거를 돌이켜도 빤히 보이는 것 같아 답답하다.


"자고 나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보도. 슬프고 충격적이다. 그간 검찰이 너무도 가혹하게 수사를 했다. 노 대통령, 부인, 아들, 딸, 형, 조카사위 등 마치 소탕작전을 하듯 공격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수사기밀 발표가 금지된 법을 어기며 언론플레이를 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의 신병을 구속하느니 마느니 등 심리적 압박을 계속했다. 결국 노대통령의 자살은 강요된 거나 마찬가지다."(2009.5.23)

결국 노대통령의 자살은 강요된 거나 마찬가지다....마치 소탕작전을 하듯 공격했던 사람들, 침묵을 지키고 있는 그들.

"고 노 대통령 영결식에 아내와 같이 참석했다. 이번처럼 거국적인 애도는 일찍이 그 예가 없을 것이다. 국민의 현실에 대한 실망, 분노, 슬픔이 노 대통령의 그것과 겹친 것 같다. 앞으로도 정부가 강압일변도로 나갔다가는 큰 변을 면치 못할 것이다."(2009.5.29)


전례는 없었겠지만, 생각보다 금방 또다른 사례가 생겨나고 있습니다...그런데 전현직 대통령 중 당신의 추도사는
누가 해줄지, 누가 이렇게 진심을 담아 울어줄지...먹먹해지네요.


■ 정치적 시사점을 던지는 언급

"끝까지 건강 유지하여 지금의 3대 위기-민주주의 위기, 중소서민 경제위기, 남북문제 위기-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언과 노력을 하겠다. '찬미예수 백세건강'"

야당 정치인들이 뭐라뭐라 떠들기는 하지만, 김대중 전대통령만큼 명징하게 현재의 위기상황을 정리한 사람은 없었다.
대정부 비판을 위해서 제대로 된 프레임을 마련해 주었고, 실제로 이후 야당은 이 세가지를 잘 활용하고 있다.


"용산구의 건물 철거 과정에서 단속경찰의 난폭진압으로 5인이 죽고 10여 인이 부상 입원했다. 참으로 야만적인 처사다. 이 추운 겨울에 쫓겨나는 빈민들의 처지가 너무 눈물겹다."(2009.1.20)

동계 철거는 실시하지 않는 게 상례였다는 점에서, 용산 참사는 사정을 아는 모두에게 매우 예기치 않았던 비극이었다.
빈민들의 처지가 눈물겹다고 일기에 적는 당신의 모습에서, 20대 체게바라의 감수성을 본다면 과장일까.


"역사상 모든 독재자들은 자기만은 잘 대비해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전철을 밟거나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2009.1.16)

지금이 독재인지 아닌지, 그걸 이론적으로 따지고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적인 구속감, 자유의 박탈감'이
더욱 중요한 거 아닐까. 마치 빈부차에 있어 '상대적인 박탈감'이 '절대적인 박탈감'보다 중요한 요소듯이.


"여러 네티즌들의 '다시 한 번 대통령 해달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다시 보고 싶다, 답답하다, 슬프다'는 댓글을 볼 때 국민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몸은 늙고 병들었지만 힘닿는 데까지 헌신, 노력하겠다."

국민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는 노 정객의 다짐. '삼김'이라 도매금으로 묶였지만 줄곧 피해자의 위치에 서있었고,
YS 대 DJ의 라이벌구도라 하지만 사실 YS만큼의 막말을 던진 적이 없는 고인. YS와 JP의 일기장엔 뭐가 적혀있을까.
그리고 우리의 MB 일기장엔 대체 뭐가 들어있을까.


■ 촛불집회 관련 언급

"(인류의 역사는 지식인이 헤게모니를 쥔 역사 같다며...)21세기 들어 전 국민이 지식을 갖게 되자 직접적으로 국정에 참가하기 시작하고 있다. 2008년의 촛불시위가 그 조짐을 말해주고 있다."

촛불시위에 대한 이런 심정적 지지, 온건한 입장을 갖기란 '노땅'의 마음가짐으론 쉽지가 않을 터다. 평생의 살아온 길이
고인의 열린 마음, 합리적인 판단을 가능케 한 것일까. 정말 대단한 정치인이었다.



■ 아내와의 사랑

"요즘 아내와의 사이는 우리 결혼 이래 최상이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이희호 여사와의 관계가 참 돈독하셨나 보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라는 표현에 담긴 애정이 잔잔하게 와닿는다.


■ 기타

"꽃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 마당의 진달래와 연대 뒷동산의 진달래가 이미 졌다.지금 우리 마당에는 영산홍과 철쭉꽃이 보기 좋게 피어 있다."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나에 대해서 허위사실을 공표한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서(100억 CD) 대검에서 조사한 결과 나는 아무런 관계 없다고 발표. 너무도 긴 세월동안 '용공'이니 '비자금 은닉'이니 한 것, 이번은 법적 심판 받을 것."

"가난한 사람들, 임금을 못 받은 사람들, 주지 못한 사람들, 그들에게는 설날이 큰 고통이다."



p.s. 김대중 전 대통령님, 허락을 안 받고 감히 '마지막일기' 파일을 제가 첨부하려 합니다. 널리 읽혔으면

하는 마음으로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올리오니 부디 넓은 마음으로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곳은, 평안하신지요.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전세난이 가중되면서 무주택 서민들의 주거환경이 날로 악화되고 있다.

강남권 등 지역에서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의 60% 수준까지 치솟자 전세입주자들이 아파트에서 연립이나 다세대주택, 단독주택 등으로 밀려나는 현상이 가시화되고 있고 같은 서울 지역에서도 값싼 다른 지역이나 수도권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 서민들의 주거 수준이 하향이동하는 현상이 잇따르고 일부 있는 것.

아울러 아파트의 경우 전세난이 매매가격을 밀어 올리는 현상도 본격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서민들의 내집장만 여건도 더욱 험난해지고 있다.

■전세난 속 서민 주거환경 악화


3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주택 전세난이 서울 강남권에서 강북지역 등으로 확산되면서 서민들의 주거환경이 날로 열악해지고 있다.

서울 반포동의 부동산명가공인 관계자는 “최근 아파트의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자금이 부족한 신혼부부나 무주택 서민들이 인근 단독주택가로 몰리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서초구 방배동이나 동작구 사당동 일대 단독주택의 전세가격도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개발로 주거환경이 개선되는 것은 좋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주택 서민들의 주거환경이 더욱 악화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더욱이 저가 수요가 몰린 빌라, 단독주택 가격도 크게 오르면서 이제는 저소득층이 서울 내에 사는 것 자체가 힘들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2000년대 초에는 더 좋은 생활환경이나 투자처를 찾아 서울 거주자들이 외곽으로 나갔다면 지금은 전세자금이 부족한 무주택 서민들이 김포나 광명 등 경기 외곽지역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 용산구 시티부동산의 한 관계자는 “용산구 일대에 새로 분양한 재개발 아파트 전세값이 2억∼3억원을 호가하다 보니 인근 단독주택이나 빌라 전세가도 모두 억대로 급등했다”며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 가운데 전세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경기도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용산구 용문시장 일대에서는 불과 2∼3년 전만 해도 3000만∼5000만원이면 투룸짜리 전세 정도는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이 돈으로 원룸 빌라도 구하기 힘들다.

ⓒ 파이낸셜뉴스 (2009-08-03 17:44:21)


저녁 7시에는 어김없이 용산 참사 현장 바로 옆 골목에서 추모미사가 열린다. 6시가 조금 넘어서부터 제단을 설치하고

미사 준비가 조금씩 시작되고 있었다. 대체 이런 골목에서, 더구나 차들이 씽씽 달리는 8차선도로를 바라보며..미사가

가능할까 싶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거나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쳐다보는 걸까, 생각이야 약간씩 다르고 해법 또한 다를지언정 가슴속 답답함이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사람들이 다 어디서 와서 이 자리를 채웠는지 모르겠다. 바닥에다가 길다란 깔개를 십여줄 깔아놓는 걸 방금전에

보았는데, 잠시 한눈판 사이에 사람들이 사이좋게 자리를 메웠다. 어린 아들과 함께 온 아버지도 보이고, 혼자

오신 듯한 할머님도 보이고, 친구들끼리 온 듯한 젊은 처자들도 보인다.

7시. 미사가 시작됐다. 난 문정현 신부님이나 다른 빈민활동 담당하시는 신부님이 늘 미사 집전을 하시는 줄 알았는데,

이미 190여일째 진행되는 추모미사라 그런지, 전국에서 신부님들이 오셔서 돌아가며 집전을 맡는다고 하셨다.

이날은 인천에서 오신 신부님이 미사를 주관하셨다.

고 이상림, 고 양회성, 고 한대성, 고 이성수, 고 윤용현님을 위한 생명평화미사.

미사라고는 하지만 종교, 혹은 가톨릭의 신을 위한 제의가 아니다. 시작성가는 노찾사의 그루터기 1절. 민중가요가

골목 안을 꽉 채웠고, 골목을 삐져나간 가요소리는 지나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당겼다. 신앙을 전파하려는 전도의

목적이 아니라, 세속의 일을 세속의 방식으로 해결하자는 설득의 목적으로 열린 미사다.

제단을 향해 미사 참석자들의 머리가 숙여진다. 부디 이런 참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세요, 라고 해야 할까. 사실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하겠습니다.'라고 의지를 벼르는 자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늘에 계신 분은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을 주관하시라 하고, 땅에 있는 우리들은

땅에서 벌어지는 우리의 일들을 알아서 챙겨야 하지 않을까 싶은 거다.

한쪽에는 '질서유지선' 뒤에 정복 차림 의경 넷이 뭔가 열심히 전화도 받고 무전도 받고, 보고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 의경 네 명이 질서유지선을 설치하고 현장의 질서를 지키는 게 아니라, 이들이 질서 '밖으로'

밀려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차분하고 가라앉은 분위기의 미사가 골목을 메우고 집전되고 있는데 정작

경찰들은 그렇게 질서정연하고 성숙한 분위기 바깥에 쫓겨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질서유지선이 왜 저기에 쳐져 있는지도 궁금하고, 이 경찰아저씨들은 대체 무슨 목적으로 저기에 나란히 넷이서

서있는지도 궁금하다. 사람들이 경찰에 질서를 부여해준 것만 같다. 경찰을 위한 질서유지선인 거다.

그러는 와중에도 흔들림없이 진행되는 미사. 혹은 미사의 형태를 빌어 죽은 자들을 위로하고 산 자도 더불어 위로하는

신부님의 부드럽지만 힘있는 나직한 말소리. 지나가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쳐다본다.

앞에 길게 깔린 깔개들 말고 뒤에는 색색의 간이의자가 놓였더랬다. 엄격하게 열이 맞춰서 놓이지는 않은, 편할 대로

의자를 땡겨서 앉아 미사를 볼 수 있는 그런 분위기인 데다가, 나처럼 여기저기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도 적잖았지만

미사 분위기만은 그 어느 미사보다 팽팽하고, 살아있었던 느낌이다.

7시 반..조금씩 해가 기울고 있었다. 다시 한번 올려다본 참사 현장. 네모반듯한 아가리들을 시꺼멓게 벌리고 선

건물이 참...흉흉해 보인다. 건물 탓은 아니다. 그렇게 만든 사람들 탓이다.

여전히 질서유지선이 경찰들로부터 미사 참석자들을 보호해주고 있었고..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그치만 조금씩 속도를 내어 용산 참사현장을 벗어났다. 공기가 너무나도 무거웠다 거긴.

진상 규명은 사실상 그들이 원하던 원치않던 어느정도 된 상황아닌가. 누가 잘못한 건지, 안전수칙을 누가 어겼는지,

그리고 누가 지시했는지는 대충 언론보도로 (중구난방식일지언정) 노출된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선.

과잉진압 사과하고, 재발방지 약속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서 근본적으로는,

생존권대책 마련없는 난개발정책 중단하라.

단순히 약자에 대한 도덕적 공감이나 정서적 동정심으로 그쳐서 될 문제가 아니다. 한번으로 끝날 일도 아닐 뿐더러,

분명히 옳고 그름을 가리고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 그런 종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영결식에서 가장 인상에 남았던 장면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아이처럼
 
울던 모습이었다. 그가 영결식 때 추도사를 하려다가 현 정부가 제지하여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최근 그가

'독재'라는 단어를 동원하며 현 정부와 각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개인적으로는 노무현보다 김대중을 더 좋아한다. 그의 노회한 정치력, 그리고 어쨌든 그는 한국 정치판에서
말그대로
 
죽지 않고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신 나름의 민주주의와 남북관계에 대한 신념을 견지하면서 말이다.

'김대중'이라는 정치인, 사람을 구성하는 코어, 핵심가치를 고수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는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견의 차이를 떠나.


아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홈페이지인 "사람사는 세상"(http://www.knowhow.or.kr/)에 오늘 오른 김대중 전

대통령의 뒤늦은 추도사.


"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억울한 일을 당해 몸부림치다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억울해하고 있습니다.

나도 억울합니다. 목숨 바쳐온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으니 억울하고 분한 것입니다."


"나는 이것이 꿈같습니다, 정말 꿈같습니다."


 이토록 담백하고 꾸밈없는 표현이라니. 영결식 때
보였던 그의 울음이 자꾸 오버랩된다.


"우리가 아무리 500만이 나와서 조문했다고 하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의 그 한과 억울함을 푸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분의 죽음은 허망한 것으로 그치게 될 것입니다."



*                       *                       *

하지 못한 추도사를 대신하여


“김대중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 당일 끝내 못한 추도사. 김 대통령님께서 그 추도사를 대신한 추모의 말씀을 3일 보내오셨습니다. 동교동에서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의 신간 추천사 형식을 통해 보내주신 추모의 메시지를 공개합니다.” <관리자 주>





우리가 깨어 있으면
노무현은 죽어서도 죽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동교동에서 독일 〈슈피겔〉 지와 인터뷰를 하다가 비서관으로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왜 그때 내가 그런 표현을 했는지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살아온 과거를 돌아볼 때 그렇다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노 전 대통령 생전에 민주주의가 다시 위기에 처해지는 상황을 보고 아무래도 우리 둘이 나서야 할 때가 머지않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던 차에 돌아가셨으니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나는 상주 측으로부터 영결식 추도사 부탁을 받고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지 못했습니다. 정부 측에서 반대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어이없기도 하고 그런 일을 하는 정부에 연민의 정을 느꼈습니다. 마음속에 간직한 추도사는 하지 못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영결식장에서 하지 못한 마음속의 그 추도사를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의 추천사로 대신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신, 죽어서도 죽지 마십시오. 우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노무현 당신이 우리 마음속에 살아서 민주주의 위기, 경제 위기, 남북관계 위기, 이 3대 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힘이 되어주십시오.

당신은 저승에서, 나는 이승에서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민주주의를 지켜냅시다. 그래야 우리가 인생을 살았던 보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당신같이 유쾌하고 용감하고, 그리고 탁월한 식견을 가진 그런 지도자와 한 시대를 같이했던 것을 나는 아주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저승이 있는지 모르지만 저승이 있다면 거기서도 기어이 만나서 지금까지 하려다 못한 이야기를 나눕시다. 그동안 부디 저승에서라도 끝까지 국민을 지켜주십시오. 위기에 처해 있는 이 나라와 민족을 지켜주십시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우리 국민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조문객이 500만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그것이 한과 한의 결합이라고 봅니다. 노무현의 한과 국민의 한이 결합한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억울한 일을 당해 몸부림치다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억울해하고 있습니다. 나도 억울합니다. 목숨 바쳐온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으니 억울하고 분한 것입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만든 민주주의입니까. 1980년 광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1987년 6월항쟁을 전후해서 박종철 학생, 이한열 학생을 포함해 민주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까.

그런데 독재정권, 보수정권 50여 년 끝에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10년 동안 이제 좀 민주주의를 해보려고 했는데 어느새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되돌아가고 경제가 양극화로 되돌아가고, 남북관계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나는 이것이 꿈같습니다, 정말 꿈같습니다.

이 책에서 노 전 대통령은 “각성하는 시민이어야 산다.”, “시민이 각성해서 시민이 지도자가 될 정도로 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말해온 ‘행동하는 양심’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 행동하는 양심, 각성하는 시민이 됩시다. 그래야 이깁니다. 그래야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살려낼 수 있습니다.

그 길은 꼭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행동하면 됩니다. 무엇보다 바르게 투표하면 됩니다. 인터넷 같은데 글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여론조사에서 민주주의 안 하는 정부는 지지 못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위기일 때, 그것조차 못한다면 좋은 나라와 민주국가 이런 말을 우리가 할 수 있겠습니까.

국민 여러분,

노무현 대통령은 타고난, 탁월한 정치적 식견과 감각을 가진 우리 헌정사에 보기 드문 지도자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느 대통령보다도 국민을 사랑했고, 가까이했고, 벗이 되고자 했던 대통령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항상 서민 대중의 삶을 걱정하고 그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유일하게 자신의 소망으로 삼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당한 조사 과정에서 갖은 치욕과 억울함과 거짓과 명예훼손을 당해 결국 국민 앞에 목숨을 던지는 것 외에는 자기의 결백을 밝힐 길이 없다고 해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다 알고 500만이 통곡했습니다.

그분은 보기 드문 쾌남아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에 인간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훌륭한 지도자를 가졌던 것을 영원히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바라던 사람답게 사는 세상, 남북이 화해하고 평화적으로 사는 세상, 이런 세상을 위해서 우리가 뜻을 계속 이어가서 끝내 성취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노력하면 노무현 대통령은 서거했다고 해도 서거한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우리가 아무리 500만이 나와서 조문했다고 하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의 그 한과 억울함을 푸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분의 죽음은 허망한 것으로 그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노무현 대통령을 역사에 영원히 살리도록 노력합시다.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비록 몸은 건강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날까지, 민주화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이 허무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일을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연부역강(年富力强)하니 하루도 쉬지 말고 뒷일을 잘해주시길 바랍니다.

나와 노무현 대통령이 자랑할 것이 있다면 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 서민경제, 남북평화를 위해 일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후배 여러분들이 이어서 잘해주길 부탁합니다.

나는 이 책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가 그런 후배 여러분의 정진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무현 전 대통령이 인터뷰하고 오연호 대표 기자가 쓴 이 책을 보니 정치인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기 전후에 국민의 정부와 김대중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책으로 참여정부와 노무현을 공부하십시오.

그래서 민주정부 10년의 가치를 재발견해 계승하고, 극복할 것이 있다면 그 대안을 만들어내서, 결국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하고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가길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깨어 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죽어서도 죽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눈물을 흘리는 행위는 감정을 정화하고 정돈시켜, 새로운 상황에 적응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헤어진 연인이 실제로 헤어지는 순간은, 그 사실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는 순간이라던가.

노무현의 죽음에 대해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작년 촛불시위 때의 방향성없는 폭발력과 지금의 전염성강한 눈물바다가 갖는 동일한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비루하고 피곤한 삶. 대통령 노무현조차 감당치 못한 강고한 시스템과 주류 세력에 대한 패배감. 울고 싶은 삶.

그 모든 것들을 공유하는 대다수 보통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부글대던 울화, 불만, 그런 것들이 해소되는 거 아닐까.


노무현의 급서 후 눈물을 글썽이고, 애틋한 마음을 표현하고, 불쌍하고 안쓰러워 어쩔 줄을 모르는 사람들도

이성적인 판단이라기보다는 감정적인 차원의 '자기 위로용'이라는 심증이 갈수록 짙어진다. 노무현에게 미안하단다.
 
사랑했고, 앞으로도 사랑한단다. 존경했고, 훌륭한 정치인이었으며, 서민의 편이었고, '바보'같이 우직한 우리들의

대통령이었단다. 심지어는 그가 그립댄다. 


이런 묻지마식 감정의 물결이 사회를 온통 휩쓸고 사고를 마비시키는 건 경계할 일이다.


언제, 누구에게 그가 이렇게 높이 평가받았던가. 아마 그가 검찰, 그리고 그 뒤에 선 권력자의 '피살자'로써 죽음을

맞이하고 나서 시작된 일이다. 그렇기에 노사모에선 '국민이 죽여놓은' 노무현이 국민장이라니, 당치않다고 펄쩍

뛰었던 거 아닌가.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를 비난하고, 모든 게 노무현 때문이야, 라는 말을 초딩들까지 입에 물고
 
있던 게 불과 이삼년 전이다.


막말로, 이명박은 왜 당선되었는가. 우리가 노무현을 싫어해서였다.


처음에 방송이 났을 때, 그가 죽었다는 이야기에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지만,

울 일은 아니었다. 노무현은 아무것도 대표하지 못했고, 그는 더이상 현실세계에 작용하지 않았으며, 그가 마지막까지

쥐고 있던 유일한 가치 도덕성마저 땅에 떨어진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느순간 티비 속 사람들의 눈가가 빨갛게

축축해지더니, 울고 쓰러지고 그러다가 세네시간씩 줄을 서서 헌화하기 시작했다. 꼬맹이들을 안고 업고, 그렇게.

그러고 보면 그새 티비들은 감동적인 음향이 깔린 다큐멘터리와 코멘트들을 쉼없이 돌렸다.


물론 그를 향한 눈물바다가 죽은 자에 대한 어느 정도의 너그러움이 가미된 애도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가 가졌던

대통령 중에 가장 '진보'적이었고, 가장 호감이 갔고, 또 가장 청렴했고 도덕적으로도 우월했던 대통령인 사실도 맞다. 

그렇지만, 노무현의 정체가 없다. 5공 청문회 스타였다고? 입지전적인 궤적을 거쳐 대통령이 되었다고? 대통령된 후에
 
검사들과 한판 뜨려 했다고? 대통령 된 후의 업적에 대한 다큐는 과문한 탓인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들은 노무현을 바라보고 울지만, 그 눈물은 살아남은 자들, 살고 있는 자신들을 위해 바치는 눈물이다.

죽은 노무현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정표시와 열렬한 지지는, 살아있는 이명박에 대한 극렬한 반대와 증오와

한 짝을 이룬다. 그리고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조차 이명박 정권에게 당하고 말았다는 묘한 '동류의식'도 한몫 한다.

그들은 자신이 불쌍한 거고, 자신의 처지가 애틋한 거고, 답답한 현실에 또다시 꽉 막혀 버린 가슴에 목메어버린 거다.


울고 싶던 차에 뺨 제대로 맞았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개별적 차원의 스트레스 해소와 감정 배출이 문제 해결의 의지를 오히려 꺽어버리거나 역량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거다. 이미 촛불시위에 대한 상찬 후 조심스레 등장하기 시작한 비판들이 보여주듯, 한판 난장으로

-축제였고 혹은 '새로운 시위문화의 전형'이었다고 평해지는-들썩들썩했던 그 거대한 에너지는 문제 자체에 대한

해결 의지보다는 스스로의 스트레스 해소에 몰입했던 면도 없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정제된 감정과 쿨해진 머리를 갖춘
 
'순치되고 이빨빠진' 양민들이 남을까봐 두렵다.


촛불시위가 정돈되는데 한몫했던 건, 종교계 인사들이 개입하면서 이성적인 문제를 감성적인 문제로 바꿔 버렸던 탓도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스템은 바뀌지 않고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감정은 분출했고 어느 정도 치밀었던 울화통도
 
해소하고 잔뜩 축적됐던 스트레스도 날려버렸다. (물론 이 정부 하에서는 더욱 빠른 속도로 스트레스가 누적되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심리적인 위로와 종교적인(혹은 도덕적인) 우월감도 만끽했다. 그리고 다시 예전과 같이 전혀 변함없이

굴러가는 시스템 내부로 걸어들어간다. 추모 신드롬, 울음바다도 한순간의 반짝, 으로 끝나지 않을까 두렵다.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순치'에 다름아니었다고 말한다면, 너무 과한가.


노무현에 대한 이 중독성강한 추모 물결은, 온국민에 전염되어 버린 듯한 (혼란스러운) 분노와 비통함은, 아직은

우리를 아무데로도 인도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신기루처럼 사그러들었던 노무현에 대한 열광이 순식간에 되살아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용은 그저 "지금보다 나았던 것 같은 과거에 대한 향수", 그것 밖에 안 보인다. 노무현에 대해

사람들이 부여하는 가치나 이미지라는 게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추모 열기가 일종의

신드롬화되어 버린 것은, 그가 오로지 '이명박의 반대이미지'로서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초점이 흐려진다. 한미FTA, 이라크파병, 비정규직법, 사학법, 부동산세제, 스크린쿼터제, 양심적

병역거부, 국가보안법, 투자은행, 금산분리, 언론법...이런 문제들에 대한 입장은 "노무현이냐 이명박이냐"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는 것들이다.


이명박의 반대이미지는 노무현인지 몰라도, 이명박의 반대정책, 반대세력은 노무현이 아니다.


노무현에 대해 너무 박한 평가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노무현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왜 울고 있는지 그 진정한 이유를 스스로에게 재우쳐 물어보아야 하는 거 아닐까.


지금 왜 그를 보며 울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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