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8. 8. 11(월) 18:30-21:00
장소 : 웨스틴조선호텔(서울 소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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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및 리셉션이 시작되기 전, 막 금속탐지기의 설치가 끝났다.
행사장에 빠지지 않는 엑스배너와 뒷켠의 등록데스크. 몇가지 버전의 문구와 도안을 거쳐 가다듬어진 녀석.


행사장에 일찍 도착해 저런 배너를 설치하고 등록데스크를 꾸려놓고 명패와 명찰을 준비해 놓는 것.
아무리 에어콘이 출중한 호텔이라지만 넥타이졸라맨 정장차림으로 배너들과 낑낑대며 땀흘리는 것,

그리고 불과 몇시간 후 청와대 경호팀의 경호를 받는 '거물'들이 그 장소를 채우는 것.

다시 행사 후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호텔측 사람들이 테이블을 치우는 가운데 지배인과 영수증을 검토하는 것.

마치 "연극이 시작하기 전", "연극이 끝나고 난 뒤"의 느낌과 사람바글한 행사장의 느낌간의 간격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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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의 은은한 황금빛 조명 아래선, 사실 별 거 없는 종이쪽지 나부랭이도 왠만하면 다 쌔끈해보이고
그럴듯해 보인다. 테이블 위에서 반짝이는 식기들도 마찬가지. 그야말로 조명빨의 극치라고 사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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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측 참석인사들의 명찰. 등록데스크에 정렬시켜 놓고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명찰 왼쪽 상단엔 비표 번호를, 오른쪽 상단엔 청와대 경호팀의 검수 완료 도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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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룸으로 쓰인 로즈룸.
참석자 접수중에 한덕수 전 국무총리는 내게 직접 전화를 해서 참석의사를 밝혀왔고,
등록데스크에서 이구택 포스코회장은 내 요청에 따라 명함을 꺼내 신분을 밝혔다.

meaning,
퇴임 후 무슨무슨 재단이니 어쩌니 직함 하나 마련해 두는 건 비서업무를 직접하기 싫어서인 듯 하고,
난 어쩐지 다소 꼬장꼬장한 원칙주의자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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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 전면에 걸린 현수막. 경제4단체의 로고를 비등한 사이즈로 넣어야 한다는 주문사항이 훌륭히 적용된 사례.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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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가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아이스 카빙.
정장을 차려입은 높으신 분들이 버글대며 칵테일 리셉션을 즐길 때야 아무도 건드리지 않지만,
행사 후엔 손바닥으로 비벼대며 녹이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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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룸을 점거한 사람들.
전체 참석자 명단과 헤드테이블 배치도는 내가 쥐고 있었지만, 누가 누군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쌤쌤..이랄까.

나도 그들을 모른다 할 것이요, 그들도 나를 모른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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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 맨 뒤쪽 끄트머리쯤서 찍힌 사진. 150여명의 사람들의 참석의사를 확인받고, 신원조회를 하고,
이름과 직위와 소속이 적힌 명찰과 명패를 불만없도록 만들어, 뒷말안나오게 잘 '숟가락 놓는 건' 생각보다 큰일.

두꺼운 비프를 꺼리고 흰살생선을 싫어하며, 너무 크리미한 드레싱은 싫어한다는 따위의 까탈스런 호주총리입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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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에 미디어는 꽤나 왔었지만, 사실 이런 식의 의전행사들은 기자의 눈으로 보건대 그닥 영양가가 없다.
어쩌면 행사장에 출입하는 기자 자체가 하나의 의전일 수 있는 거다.

이번 행사 역시, 외려 만찬 후 이구택 포스코 회장이 대우조선 인수건에 대해 한 말이 더 기사감이 되었다.
"이 회장은 이날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케빈 러드 호주 총리 초청 경제 4단체장 만찬에 참석한 후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라는 식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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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중인 Kevin Rudd 호주총리. 그는 무려 20분동안 답사 겸 연설을 했는데 사람들이 모두 지겨워했다.

그치만 기후변화, 비핵화, 자유무역 등의 아젠다를 제시하며 환태평양안보경제공동체라는 비전을 설파하는 그를
보며 난 국기 거꾸로 들고도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누군가를 생각했다.
미들파워로서 호주와 한국이 갖는 유사한 위상에도 불구, 이렇게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국가지도자의 비전과
마인드. 그리고 자국의 입장에서 이니셔티브를 쥐고 나갈 수 있는 의제를 선점하겠다는 의욕까지.

아무리 지 머리 속에서 나온 게 아니라 보좌진들이 써주는 거라고 해도, 뭔가를 알고 말하는 사람과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지껄이는 사람과는 차이가 나는 게다.

더구나 행사마치고 일일이 테이블을 돌며 호주측 경제인들과 악수하고 흔쾌히 사진을 찍는 마음씀씀이, 퇴장하며
줄곧 온화하고 따뜻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그의 부드러운 카리스마. 저런 류의 정치인은 아직 한국에서 못 봤다.

시절이 하 수상하여 호주총리의 공식실무방문에 대한 경호문제가 상당히 빡빡하다.

느닷없는 부시의 방문으로 가뜩이나 정신없어진 청와대 경호팀이지만, 어찌됐건 난 예정대로 금욜쯤에는

청와대로 진격해서 이명박을 해치우고...라기보다는 신원조회절차를 마친 사람들의 비표를 가져와야 한다.


오늘까지는 만찬 참석예정자들의 명단을 완료하고, 호주대사관과 예상참가인원을 검토, 웨스틴조선호텔측과

행사장 세팅에 대해 논의를 마쳐야 했다. 참석희망자들의 주민번호와 주소, 영문이름과 직함까지 포함된

인적사항을 받아야 했는데 호주대사관은 마냥 '높은 사람들'을 초청하고 싶은 게다. 헤드테이블에 앉혀서 지네

총리 체면을 세우고 싶었겠지. 외교부장관, 지경부장관, 국토해양부 장관, 통상교섭본부장, 이회창, 박근혜,

정세균 민주당 대표,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박진 국회의원 등에 이르기까지..온갖 곳을 다 찔러놓더니

기어이 오늘 터진 거다.


시작은 한나라당 국회의원 1인. 비서라는 사람이 전화가 와서는, 내가 발송한 공문에는 8월 1일이 신청 마감이라

명시되어 있었음에도, 지가 모시는 사람한테 그런게 어딨느냐, 신원조회 절차도 필요없다, 라고 생떼를 쓰는

거다. 그것도 확실히 참석하겠다는 게 아니라 갈지 안갈지 모르지만 단지 한 자리를 마련해 놓으라는 강짜.

거만하고 느릿한 비서의 말투에 짜증이 버럭 나서 꺼져...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안되겠다고 단호히

끊어버렸다. 다소 어이없어 하는 반응이었지만, 나몰라라 하고 뚝 끊었다. 뭐랄까, 한나라당에 잘 보일 일 따위

없다..란 생각과 동시에, 비서가 내 이름 알아봐야 대체 뭘 어쩌겠어..란 얄팍한 산술이 뒤엉켰달까.


뒤이은 또다른 한나라당 국회의원 1인. 신나겠지 한나라당. 맹박이가 그리 망쳐놔도 공정택 너끈히 당선되는

이 지랄맞은 상황이니 더욱. 아까 그사람보다는 최소한의 상식과 예의는 갖춘 비서였다. 하기야 그는 한-아랍

소사이어티 창립총회를 비롯, 우리쪽 행사에 자주 출몰했던 사람이기도 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조금 봐줘서,

지금 당장 참석 여부를 확인해오면 넣어보겠다고 한 발 빼줬다.



이른바 갑-을의 관계, 거기에서 파생하는 기분더러움과 망나니틱한 막무가내식의 행태들은, 어쩌면 그 물고

물리는 위계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폭력성과 '노동하는 인간'의 고됨이 표출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먹고 살기 위해, 죽지 못해 일을 하며 쌓여가는 스트레스와 짜증스러운 순간들, 응어리들은 언제든지

약한 곳을 타격하며 터져나가기 십상이다. 예컨대 나보다 약자의 입장에서 전화를 걸어오거나 아쉬운 소리를 할

법한 상대는 언제고 쉽게, 스트레스 해소나 짜증을 분출을 위한 샌드백이 되버리는...


그 스트레스들을 갑-을 놀이의 부산물이라고 하면서 슈퍼갑이 되고 싶어, 라거나 을의 위치에 처한 본인의 상황을

씁쓸해하지만 사실 그 사슬엔 어디에도 정점이 없는데다가, 누군가의 갑은 항상 누군가의 을인 게다. 결국

문제는, 이렇게 덥고 이렇게 짱나는 세상에 닥치고 일만 꾸역꾸역 해야 한다는 거 아닐까 싶다. 회사원이 된다는

것, 낯설게 보면 한없이 낯설어지고 다소 어이없어지기까지 하는 시츄에이션. 개인적인 견지에서야 도닦는셈

치고 '노동하는 인간'의 고됨, 그리고 그로 인한 날카로움과 짜증을 약자에게 전가하며 해소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삶을 추구할 수 있다지만, 애초 그러한 열악한 상황에 빠뜨린 사회와 근대적 시스템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어야

하고 어떤 식으로던 제고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름 아직까지는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하려고 애쓰고 있다. 호주대사관의 참사관 하나가 어이없이

짜증내며 전화하길래 같이 버럭해주고 나서는, 목소리를 가다듬을 새도 없이 받은 지방중소업체의 전화에

나긋하게 응대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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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관 속에 들어있는 것 같이, 47층 창밖에는 온통 뿌연 공기만 가득.

창문 왼쪽끄트머리서부터 생선대가리가 설설설 헤엄쳐온다고 해도, 혹은 오른쪽끄트머리서부터 상어나 고래가

입벌리고 덜컥 튀어나와도 별로 안 놀랠 수 있겠다.

이 정도 높이에선 아마도 안개가 아니라 구름이지 싶다. 쉭쉭 달려가는 구름을 찢어놓는 고층빌딩. 은근히

남성적이다..랄까.


갑자기 호주총리가 방한하고, 호주대사관서 만찬행사를 해달라고 졸라대는 데다가 전경련에서 갑자기 자기들이

행사를 맡겠다고 떼쓰는 통에 큰 일이 생겨버렸다. 청와대까지 가서 신분확인을 위한 비표를 제작하게 생겼으니.

MB의 위세를 업고 전경련이 아주..요새 기세등등이라는 평이다. 효성회장 조석래가 이러저러한 비리문제에도

휘말려 있고 그런 것 같은데...사돈이라 은근슬쩍 뭉개고 있는 거 같다.

어쨌든. 이번행사는 내가 첨부터 끝까지 쥐고 하게 되는 최초의 행사라서 8월 11일까지는 정신없게 생겼다. 머,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글줄 써가며 한탄할 여지야 찾으면 나오기 마련이지만.ㅋㅋ


하나더, 8.15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고 대대적으로 60주년 행사를 펼치기로 했단다. 경제4단체가 뭔가 하나씩

맡아서, 전경련은 무슨 마라톤대회던가를 하고, 어디는 음악회를 하고, 협회쪽은 재독 간호사, 광부들을 초청해서

뭔가...행사를 해야 한다는 상황. (의견수렴이나 사전 협의없이) 다짜고짜 건국절로 바꾸겠다고 설레발치는 거나,

2주 남겨놓고 그런행사를 벌인답시고 난리를 치는 거나, 여러모로 짜증스러운 색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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