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평소같지 않은 포스팅은 일본에서, 더 정확히는 티비에서 소녀시대, 카라, 동방신기와 2PM을 봤다고

자랑같지 않은 자랑질을 하는 포스팅.


사실 한국의 아이돌 그룹들에 딱히 관심은 없었다. 소녀시대니 카라니, 아 그리고 아이유니 티비에서

나오면 잠깐 그녀들의 다리나 몸매를 응시하긴 하지만, 딱히 가요 프로그램을 찾아본다거나 그녀들의

이름을 번거롭게 외우려드는 따위 추가적인 노력을 들일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랬는데, 일본 여행중에 문득 티비를 켜니까 아침저녁으로 한국의 아이돌들, 연예인들이 나타나는

거다. 아침에 눈떠서 티비를 켜니깐 장근석이 나오고 저녁에 온천 마치고 티비를 켜니까 소녀시대니

카라니, 그리고 2PM이니 동방신기가 연이어 노래도 부르고 농담따먹기도 하는 식이다.

역시 '소녀시대는 다리'랄까나. 근데 이 아이들이 언제 이렇게 섹시해졌다지 싶도록 까맣고 반질거리는

의상도 멋졌거니와 무대위를 자유로이 종횡하며 그녀들 혹은 그녀들의 다리를 담아내는 역동적인 카메라

워크도 멋졌다. 태연은 좀 사진이 안 나오긴 했지만..저 머리스타일 맘에 든다.

한국 사람들이 일본어를 쓸 때면 평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든다. 뭔가 말투도 바뀌고, 콧소리도 앵앵

들어가는 느낌이고, 게다가 약간 하이톤으로 올라간 목소리가 더욱 색감적이랄까. 그녀들, 참 열심히

일본어 공부했구나. 하긴 '외화벌이'라는 동기부여가 뚜렷하니.

동방신기가 나왔는데, 왜 두명이지 싶었다. 원래 다섯명인데 세명이 JYJ로 나갔더랬지. 뭐 그러거나

말거나 이 아이들도 참 일본어 잘 하더라는. 이번 3박4일동안 꾸역꾸역 히라가나 외우면서 심각한

두통을 겪었던 나로서는 그들의 유창한 일본어가 새삼 놀라웠다.


일본 현지 가이드분이 JYJ를 좀 비난하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나. 그랬더니 바로 한국에 있는 딸에게

누군가 그 사실을 알렸고, 따님께서는 팬까페와 기타 등등을 동원, 가이드 소속 여행사를 순식간에

초토화시켰다는 '미담'을 전해들었다. 굉장한 IT강국이고, 굉장한 '대중문화강국'이다.


그래도 정말, 다른 일본 가수들에 비해 춤도 파워풀하고 박력있었다. EXILE이니 뭐니 일본의 남성

그룹들보다 노래나 춤 면에서 좀더 멋졌지 싶다. 그러니 이번에 프랑스에서 있었던 콘서트가 그리도

대성황을 이루었달 정도로 세계적인 한국 대중문화, 혹은 아이돌계가 발전했다고들 하는 거겠지만.

그리고 2PM. 이 아이들은 또 언제 일본어를 이렇게 공부했는지. 서로 뒷통수를 퍽퍽 쳐대며 완전히

프리스타일의 진행을 하던 두 명의 진행자가 농담을 걸어도 잘 받아치고, 다른 일본인 가수의 빈약한(!)

근육에 대한 품평을 해달래도 팔근육을 꿈틀거리며 위트있게 넘어가고. 이제 니들은 한국과 일본, 그리고

다른 한류 열풍에 감긴 나라에서 떼돈을 벌겠구나.

그리고 카라! 그녀들은 직접 티비 프로그램에 출연한 건 아니었고, '명곡 특집'이라는 꼭지에서 마이클

잭슨이니 하는 다른 유명한 가수들과 나란히 소개되었더랬다. 좀처럼 대중 문화나 아이돌가수들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나로서도 그녀들의 미스터, 뮤직비디오만 보고 이아이들이 생계형의 딱지를 드디어

떼겠구나 싶어서 뮤비까지 포스팅했었는데, 왠지 모르게 정감가는 그녀들. 하라짜응~♡


여하간, 한국에서는 본체만체 소 닭보듯 하던 그녀들, 특히 그들. 남자놈들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도 없고

오히려 약간의 적대감마저 품고 있었다지만 일본에서 티비를 틀자마자 나타난 그녀들과 그들 앞에서

왠지 모를 반가움이 불끈 하더라는. 근데 왜 아이유짜응~♡은 안 나올까나.







기대를 많이 했었다. 그리고 기대 이상이었다.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순식간에 매진되었다는 것 같은 단편적인 '카더라' 기사들도

계속 꾹꾹 자극을 해댔지만 무엇보다 스스로 가게를 차리고 맛집방송에 출연해서 그 거짓을

벗겨내겠다는 기획의도가 대단해보였던 거다. 통틀어 한주에 177개나 소개된다는 '왼갖 짭새가

날아들듯' 하는 맛집들이 진짜일 리는 없다는 생각은 이전부터 모두가 해왔을 터, 이걸 어떻게

요리해서 보기 좋게, 먹기 좋게, 그리고 재미있게, 결국은 맛있게 보여줄까. 그런 기대였다.


그 천편일률적인 손님들, 단골을 자처하는 손님들의 리액션이나 광고문구같은 몇마디 대사는

대본에 가까운 뭔가가 있을 줄 알았다. 이미 모든 프로그램이 시청률 경쟁에 매몰된 지금

맛집프로그램 역시 시청률이 높도록 더욱 충격적이고 신선하고 흥미로운 것들을 찾아서 눈이

빠지도록 돌아다니고 있을 줄도 알았다. 그러다보니 홍보를 원하는 음식점과 방송국(혹은

외주제작사)과의 금전 거래가 없진 않으리라, 그것도 짐작했었다. 짐작대로였고, 기대대로였다.


그런데 그 이상이다. 사실은 브로커를 통해 돈이 오가며 '방송'시간을 광고시간으로 팔고 사는

자체로도 이미 충격적인 범죄인데, 이미 자극적인 것들에 잔뜩 둔해져버린 미각으로는 '고작'

그 정도의 폭로로는 성에 안 찰 우리임을 알았던 걸까. 브로커는 친절하게도 가게의 방송용

컨셉을 정해주고, 전지전능한 상상력을 동원해 음식들을 마구 퓨전해주기에 이른다. 캐비어

삼겹살, 특제 대판요리, 청양고추범벅의 돈까스, 해물과 호박찜..방송을 위한 일회용 메뉴들.



실망하고 있었다. 그리고 절망하기에 이르렀다.


몰랐던 것들도 아니고, 그렇게 '보기좋은 떡'을 만들어 방송국에, 실은 시청자에 팔기에 열중인

브로커의 넉살좋은 얼굴과 느끼한 목소리에 문득문득 실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장난같았다.

그렇게 '매워서 죽던지말던지 돈까스'가 그들의 세트장이자 음식점인 곳에서 뚝딱 만들어져

촬영이 되는 장면이 그야말로 블랙코미디의 정점이었다면, 그렇게 장난처럼 만들어진 것이

수분동안 공중파를 타는 장면에선 울컥, 분노랄까 절망이 치솟았다.


방송이 장난인가. 맛집이라 주장하는 가게 주인들은, 환호하며 엄지손가락을 내미는 알바들은,

온갖 말장난으로 코너 하나를 해치우는 연예인과 방송인들은, 그리고 뚝딱 컨셉을 만들어내고

그 모든 컨텐츠를 조율하는 제작진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이건 단순히 '먹기 좋도록' 떡을

포장하는 수준이 아니라 떡인 양 비닐봉지를 씹어먹는 CG를 촬영하는 수준 아닌가 말이다.

오대수, '오늘만 대충 수습해서 살자'라는 마음가짐으로 방송 한번하고 모르쇠하는 마음가짐,

그 어디에도 시청자는 없었다. 시청자는 그저 시청률의 숫자, 혹은 우스운 호구였을 뿐.


그렇지만 사실 더하고픈 질문은, 사람들이 맛집프로를 보며 얻으려는 게 맛집 정보가 아니라

가학적이고 선정적인 비쥬얼쇼와 박스로 돈을 쓸어담는 대박의 판타지는 아닐까 하는 거다.

만약 그렇다면 맛집 프로를 공장처럼 찍어내는 그들은 사실은 사람들의 욕망과 니즈를 아주

적확하게 꿰뚫고 그에 부응하는 것 뿐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굉장히 날카롭고 위험한 영화의

칼끝은 사실 방송국 혹은 외주제작사가 아니라 천박한 입맛과 취향을 가진 우리들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는 건 아닐까.



문제는, 놀림감으로 전락 중인 우리 자신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그들'의 거짓과 사기행각에 분노하는 건, 직면하기 낯뜨겁고 수치스러운

질문 앞에서 굉장히 단순무식하고 손쉽게 문제를 푼 척 하거나 아예 부숴버리려는 시도인지 모른다.

영화는 분명 그 부분을 불편하게도, 굳이 까칠하게 짚고 있다. 시청자들의 취향과 입맛이 고작

그정도라 이런 프로와 이런 되먹잖은 맛집들이 횡행하는 건 아닌가, 어느 맛집 컬럼니스트가

영화에서 분명히 지적했듯이. '그들'을 욕하는 건 쉽지만 결국 그들을 키워낸 건 '우리'다.


꼭 맛집프로그램에 관련된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자존심강하고 자기잘난 줄 아는 대중이 사실은

이리저리 휘둘리고 희롱당하는 모험담은 주위에서 넘쳐난다. 조선일보가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열독률 1위의 신문', 자신들을 무시하면 자신들을 그토록 열독하는 대중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논리라거나, 한나라당과 박정희에 대해 다수결이나 지지율을 근거로 정당화하고

복권시키는 논리라거나, 언론이 던져주는 떡밥을 덥썩덥썩 물며 남의 사생활이나 캐대고

연예인이나 마녀사냥해대는 웃지 못할 이야기들이라거나. 잘난 척하지만 놀림감으로 전락중인.



내가 원하는 건 뭔가. 무엇을 보고자 하는가.


영화 마지막의 장면은 자못 심각하게 방송이 맛갔음을 선포하지만, 사실 감독은 지금

우리 모두가 맛이 갔음을 먼저 인정하라고 솔직히 말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채널선택을

하기에 앞서 우리가 맛집프로그램에서 무엇을 보고 싶었는지, 저널리즘에 대한 기대치가

얼마나 있었는지, 있기는 했는지부터 따져보았어야 한다는 거다. 단순히 일부 방송의

문제, 시청률 경쟁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방송을 굳이 챙겨보는 우리의 문제란 거다.


결국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스스로의 머리로 생각해서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욕망과

결핍을 알아내야 하는 거다. 내가 원하는 건 뭔가. 무엇을 보고자 하는가. 만약 당신이

맛집프로그램에서 맛집 정보를 찾고자 한다면, 그 사람의 삶 자체이자 즐거움인 음식을

조롱하고 더럽힌 제작진에게 불의 철퇴를. 만약 당신이 맛집프로그램에서 대박의 판타지와

시트콤을 보고 싶다면, 지금까지처럼 하면 된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무의미해질 때까지.


낯뜨거움과 수치스러움을 무릅쓰고 던진 질문의 최종적인 답은 이런 식으로 나오지 않을까

두렵다. 지금 우리의 입맛, 취향과 사고수준은 너무나도 저렴하고 천박해서, 이런 맛집프로는

바로 지금의 우리 수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을 뿐이라고. 거울처럼. 나는 맛집 정보를

손쉽게 뽑아보고 싶었고, 나는 뜨겁고 맵고 신기한 음식 앞에서 연예인들의 리액션이 즐거웠고,

나는 맛집들의 성공담에서 자영업 성공신화를 보았고, 따위들.


트루맛쇼. 의도했는지 모르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MBC, KBS, SBS의 맛집프로그램에 대한

대대적인 선전포고 따위를 넘어서고 말았다. 가처분신청을 내고 어쩌고, 약간의 소란이 있긴

했지만 이미 맛집프로그램들은 택시기사의 추천을 받는다거나, '티비 안나와도 손님이 너무

많아 걱정'이라는 따위 변형을 거쳐 또다시 우리들의 욕망에 발빠르게 응답하고 있는 거다.

결국, 우리가 바뀌지 않는 한 맛집프로그램 따위 지엽말단의 이슈는 바뀌지 않는다.


거악(巨惡)은 우리다. 현재로선 그렇다.


퀴즈 프로그램에 나가게 되어버렸다.

자원해서 나선 거긴 하지만, 아무래도 '퀴즈'라는 형태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하다.

대체 '양천리'가 어디에 붙은 동네인지 알아서 뭐하며,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는 짝퉁 상품이 뭔지는

알아서 뭐한단 말인가. 게다가 셜록홈즈 사무실이 있던 곳의 정확한 주소는 또 알아서 뭐하려고.


내가 처음 퀴즈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졌던 건 고등학교 때. 옆 학교 친구들이 장학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문제도 맞추고 상도 받는 게 좋아 보였다. 우리 학교야 90여년의 전통에 누가 된다며 그런

티비 프로그램에는 나가지 않는 게 방침이라고 어느 선생님에겐가 듣고 조금 실망했었다. 나가면

남들 못잖게 잘 할 수 있을 거 같았고, 상금도 받으면 딱히 하고 싶은 건 없었지만 대학교 등록금을

보태든 어쩌든 부모님도 좋아하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던 거 같다.


그리고 들어온 대학교 3학년, '골든벨'인가 그걸 울렸다는 친구가 우리 과 새내기 후배로 들어왔다.

그때쯤 난 그런 단답형의 퀴즈를 맞추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한국의 주입식, 암기식 교육에 딱

걸맞는 천박한 수준의 테스트 혹은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별반 감흥은 없었지만. 말하자면

고등학교 때까지 그런 주입식, 암기식 교육 체제에 잘 길들여졌음을 보여주는 지표 중의 하나가

퀴즈에 대한 단답식 대답에 '재능'을 보이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대학교에 들어왔으니 그런

퀴즈풀기에 적합한 접근방식의 지식쌓기는 그만둬야 한다고,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군대에 있을 때, 돈을 모아 여행을 떠나기로 맘을 먹고 나니 너무 막막했다. 상금을 노리고

무작정 '퀴즈가 좋다'던가, 무슨 프로그램에 예선신청을 했었는데, 날짜 맞추어 휴가를 나가 휘적대며

방송국 대기실에 갔더니 전부들 손에손에 책과 노트, 프린트물들이었다. 질문, 답, 질문, 답, 누가

언제 만든 책의 제목은? 뭐시기뭐시기, 이걸 가리키는 순우리말은? 뭐시기뭐시기. 그런 걸로 빼곡한

글자들을 눈이 빠져라 노려보는 사람들을 보니 겁을 먹었다. 아..이 사람들은 저걸 다 외웠나. 재미도

없고 그 퀴즈 문제로 아무런 생각거리나 의미도 던지지 못하는 뚝뚝 끊어진 것들을.


말하자면 그것들은 아무런 내용이 없는 텅 빈 마침표들의 연속. 세종대왕이 누구의 몇째 아들인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 몇 미터인지, 최근 한국의 아르바이트 법정시급은 얼마인지, 그거 하나하나를

외우는 게 대체 나의 무슨 능력을 측정할 수 있을까. 암기력. 인내력. 그리고 아마도..상금에 대한 열정.

혹은 명예에 대한 열정도 조금. 그 열정 자체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건 개인적 차원에선 취미활동,

자신감 획득을 위한 수단, 자부심의 원천, 심지어는 생계활동일 수 있으니. 다만, 퀴즈에 한 단어로

답하기 위한 준비행위, 그 '공부'가 갖는 무미건조함과 무의미함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당연히 예선에서 떨어졌고, 그 이후로는 퀴즈 프로그램에 나갈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저런 따분하고

지리한 공부 같지도 않은 공부를 해야 예선이라도 통과할 텐데, 그런 암기식 공부는 고등학교 때까지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미 천만원, 이천만원을 훌쩍 넘어가던 퀴즈프로그램이 내건 상금에 대한

욕심은 여전했지만 그걸 받자고 그런 고시공부보다 재미없는 공부를 하고 싶진 않았던 거다. 작년인가

내가 속한 어느 모임에서 퀴즈 프로그램에 나갈 사람을 모집했지만 전혀 내키지 않아 신청도 안했었고

그런 상금을 사냥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공부할 사람들 몫이라고 지레 포기하고 있었다.


퀴즈는 그 질문의 답에 대한 앞뒤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지, 전체적인 그림이나 상황에 대한 깊이있는

사고를 하고 있는지 따위는 전혀 관심이 없다. 너무나도 심플해서 단순무식하다. 그저 그 한 단어를

알고 있으면 통과, 모르면 탈락이다. 흔히 퀴즈대회에서 우승하는 사람들을 두고 '상식이 많은 사람'이라

말하는 거 같지만, 그런 게 상식일지 모르겠다. 시사상식 퀴즈를 잘 맞추는 것과 시사문제를 잘 이해하는

것도 분명히 다른 일이다. 퀴즈를 잘 맞춘다고 똑똑하다고 이야기하기도 쉽지 않다. 공부를 잘한다고 꼭

똑똑하란 법이 없듯, 퀴즈를 잘 맞춘다고 똑똑한 것도 아닌 거다. 정답 아니면 오답, 맥락은 필요없고

한 단어로 끝, 이란 심플한 세상은 되려 똑똑한 사람들에겐 유치해 보이지 않을까.


물론 똑똑한 사람들이 퀴즈도 잘 맞추고 공부도 잘 할 가능성이 높을지 모른다. 그리고 사실 지금은

조금 내 생각도 바뀐 게, 약간 타협한 상태랄 수도 있겠다. 퀴즈 문제에 대한 건조한 질문과 짧은 대답은

정말 그의 지력이나 능력에 대한 지극히 일부의 부분, 암기력만을 잴 뿐이지만, 다만 그걸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사, 경제, 정치, 문화 등 사회 전반에 대해 두루 접하고 폭넓게 정보를 수집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는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여전히 그런 식으로 퀴즈에 답하기 위한 '공부'가 단순히

새로운 어휘나 숫자들에만 집착할 뿐 전체의 맥락이나 사건들에 대한 의견을 형성하고 사고를 깊게

하는데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될 거라는 '지레짐작'은 여전하지만.


결국 내 생각은 그런 거다. 퀴즈 공부를 하고 신청하는 이유는 결국 물질적, 정서적 보상을 노리고.

그렇지만 퀴즈 자체가 공부가 되는 순간, 고등학생 이전의 주입식/암기식 교육 시스템에 다시 들어가

버린다는 거다. 그건 아무런 실익도 긍정적 효과도 의미도 없는, 그야말로 시험(퀴즈)만을 위한 공부.

한발 더 나아간다면, 이런 식으로 퀴즈를 맞추는 승자에게 상금을 주는 건 좀 이해할 수 없기조차 하다.

그들이 암기를 잘하는 것에 대한 상을 주는 건가. 사람들의 기계적, 무비판적 암기와 맥락없는 지식

과시를 독려하려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굉장히 이상한 일이다. 차라리 100분 토론 같은 데 나와서

말 잘하는 사람에게 주던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