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공원은 뭐고 태권도원은 뭐야?

 

태권도원? 태권도공원을 짓는단 이야기는 어디선가 얼핏 들었던 기억이 있지만, 이번엔 또 태권도원이라고?

 

지자체마다 난립하는 온갖 '생색내기용' 토목공사의 하나인 건 아닐까, 의심부터 하게 된 건 내 잘못만은 아니다.

 

 

 

 

뭐, 일단 의심 하나는 불식된 셈이다. '태권도공원'이라는 이름으로 2004년부터 시작되었던 사업이 2012년 2월에

 

'태권도원'으로 명칭을 바꾸었다니, 적어도 한국의 국기라는 '태권도'를 두고 지자체들이 질세라 숟가락얹기 경쟁을

 

하는 흉한 모습은 아니니까. 그래도 여전히 궁금증, 혹은 의심은 남는다. 2013년 9월에 개관 예정이라는 태권도원

 

공사현장을 둘러보며 배종신 태권도진흥재단 이사장과 현장소장과의 질의 응답 시간을 가졌다.

 

 

 

태권도원을 왜 지어야 하나요?

 

가장 큰 궁금증은 아무래도, 왜 굳이 태권도원을 짓느냐는 거다. 최근 '태권도人'의 스포츠정신에 누를 끼친 복사기인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굳이 커다란 기념사업이니 거창한 시설물을 지어야 태권도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다곤 하지만, 전세계에 널리 퍼져 201개국 7천만명의 수련 인구가 있고 올림픽 정식종목으로도 수년째 자리잡고 있는

 

태권도의 본산이자 종주국으로서 한국에 상징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건 사실이다. 일본엔 무도관이 있고, 중국엔 소림사가

 

있다고 치면, 한국엔, 글쎄, 국기원이 있다고 해야 하나. 그치만 국기원은 강남의 높고 거대한 건물들 사이에 숨은지 오래다.

 

(이제 버스 정류장 이름으로나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하면 너무 심한 말일까. 국기원 앞 사거리 운운.)

 

 

무주에 뭘 어떻게 지을 셈인가요?

 

아무래도 아직 공정율은 38%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니 현장에는 뼈대밖에 없을 거다. 우선 건설 현장에 도착해서

 

진흥재단 이사장과 홍보팀장의 설명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태권도의 상징과도 같은 공간이 필요하다는 건 알겠다,

 

이제 그럼 왜 무주인지, 그보다 중요한 질문은 뭘 어떻게 지을 건지가 관건이겠다. "우리 세대에 우리가 만드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에 걸맞는 내용물이 있는지 궁금했다.

 

 

무주는, 어렸을 적 무주구천동 계곡에 텐트를 치고 놀았던 기억에 따르자면 완전 심산유곡, 멀고도 험한 오지라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내려갈 때 고속버스로 세시간 정도 걸렸으니 그렇게 먼 곳은 아닌 셈이다. 게다가 반딧불이

 

축제라거나 무주구천동, 나제통문같은 유명한 관광자원을 갖춘, 신라와 백제가 경합하던 내륙중앙부이니 남한 땅에선

 

대충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는 의미도 있겠다.

 

그리고 뭘 지을 거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꽤나 그럴듯하고 매혹적인 답안을 갖고 있었다. BODY, MIND, SPIRIT을

 

테마로 했다는 세가지 구역으로 나누어 전시체험, 수련연구, 고단자전용의 용도로 구획한다는 것 정도는 기본이고.

 

무주의 백운산 자락에 기대어 조성되는 9곡 8경, 9개의 골짜기와 8개의 풍경에 태권도의 경지에 따라 밑에서부터

 

차츰 성장하고 깊어지는 모습을 형상화해낸다는 것도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애초부터 굉장히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가득 담고 공간을 조성한다는 거니까 야심만만하면서도 흥미가 바싹 당기는 거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웠던 건, 태권도의 띠 색깔을 그대로 차용해서 다리 여섯개를 만들겠다는 계획.

 

밑에서부터 백원교-흰띠, 황원교-노란띠, 청원교-파란띠, 적원교-빨간띠, 품원교-품띠, 그리고 흑원교-검정띠,

 

이렇게 여섯개의 다리를 만들어서 각자의 색깔을 살려내고 각기 단계별 수련과정을 형상화한다는 건, 무슨

 

태권도를 소재로 한 만화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살짝 황당무계하면서도 굉장히 참신한 아이디어 아닌가.

 

 

그리고 또 하나, 태권도 고수들에게만 허락되는 특별한 공간, 태권전과 명인관을 짓는다는 것도 포인트다.

 

전적으로 기부금에 의탁하여 지을 계획이라는 이 두 건물은 고단자들의 커뮤니티 및 네트워크 공간으로, 말하자면

 

전세계에 퍼져나간 태권도의 정수를 품고 있는 곳이랄 수 있지 않을까. 안에 들어가려면 마치 끝판왕을 깨러가듯

 

즐비한 고수들의 숲을 넘고 온갖 비밀장치들을 해소해야 겨우 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아우라가.

 

 

그렇다곤 하지만 아직 기부금이 그렇게 원만하게 쌓이고 있는 상황은 아닌 듯 하다. 아직은 좀 휑해보이는 기부금

 

명단, 그리고 '공' 자가 떨어져나간 '태권도원'의 이름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아무래도 기부금을 걷는다는 건 법적인

 

문제도 있고, 아직까지 '태권도원'의 건립 프로젝트 자체가 거의 홍보가 되지 않은 이유도 있을 거다.

 

그렇다면 과연 현장은 지금 어떤 상황인가요?

 

백문이 불여일견, 아직 공정율이 그리 높은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태권도 경기장이니 기타 시설의 뼈대가 섰고

 

제법 윤곽은 드러나는 상황이라고 한다. 준비해준 SUV에 차례로 타고 현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저게 나중에 태권도 띠 색깔에 맞춰서 색이 입혀진다는 여섯 개의 다리 중 하나. 아마도 흰띠를 형상화한 백원교인 듯.

 

 

여전히 현장 곳곳은 높은 크레인이 자재들을 옮기거나 조립된 부분을 얹어 올리느라 분주한 모습이었고,

 

태권도 경기장의 경우는 이제 차근차근 지붕을 이어나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천지인을 형상화한 삼태극을

 

모티브로 했다는 태권도 경기장은 다 지어지고 나면 꽤나 멋진 건물이 될 거 같다.

 

그리고 태권전과 명인전이 들어서야 할 공간. 아직 기부금이 원만히 걷히지 않아 다른 곳보다 공사 진척상황이

 

늦어지는 편이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태권도원의 핵심이자 정수인 곳이니만치 차근차근, 날림이나 부실없이

 

단단하게 지어졌으면 좋겠다.

 

길게 백운산 자락을 타고 달리는 태권도원을 따라 흐르는 개울, 이 곳은 예로부터 백제와 신라가 영토분쟁을

 

벌이며 숱하게 전투를 벌여왔던 곳인지라 태권도원을 조성하기에 풍수적으로랄까 적당한 곳이란 이야기도 있다고

 

했다. 믿거나 말거나, 저 붉은 돌 두개는 이 곳의 개울을 정비할 때 발견된 시뻘건 색의 돌로 공사중의 액도 막고

 

앞으로 태권도원의 기상을 지켜줄 상서로운 돌로 여겨지고 있다고 한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태권도원의 전경. 둘러보기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는 공사가 꽤나 진척이 되었다는 느낌이었다.

 

태권도진흥재단 측에서도 이제 어느정도 눈에 보이는 윤곽이 잡히기에 이렇게 블로거들을 초청해서 소개도 하고

 

본격적으로 홍보에 나설 참이라 했다.

 

나중에 공사가 완료되면 저 산꼭대기 가파른 곳에 위치한 전망대까지 모노레일도 놓일 예정이라 한다. 이왕이면

 

태권도라는 무예의 공간이니만치 일부러라도 더 가파르고 힘든 코스를 만들어 체력단련 코스로 활용하는 게 낫지

 

괜히 모노레일 만들어서 유지비만 많이 들지 않겠냐고 나름의 고언을 했다.

 

태권도원에서 멀리 내다보이는 첩첩한 산봉우리들, 왠지 이런 곳이라면 태권도의 칼날같은 기세와 무예로서의

 

품위에 걸맞는 공간이겠다 싶다. 알고 보니 충청, 전라, 경상 삼도를 가르는 삼도봉이 있는 명산이라 하니 더욱

 

옷깃이 여며진다. 이런 곳에서 우렁우렁 기합소리를 내며 태권도를 연마하는 건 꽤나 멋질 듯.

 

 

2013년 9월, 그때쯤에 이곳은 얼마나 어떻게 단장되어 있을까. 색색의 띠 색깔에 맞춰 지어지는 다리는 어떨까,

 

그리고 태권도의 수양 단계를 비유한 9곡 8경의 풍경은 또 어떨까. 궁금한 것투성이인 채로 일단은 기다릴 뿐.

 

 

 

+ 주변 볼거리

 

나제통문, 신라와 백제의 통로였다는 조그마하고 매우 짧은 동굴이 하나 있다. 두 나라의 자연적 경계였다기엔

 

너무 약소하다 싶지만, 이쪽과 저쪽의 언어와 풍습이 여전히 차이가 뚜렷하다고 하니 신기한 일이다.

 

무주구천동 계곡을 따라 달리는 벚꽃길. 벚꽃비가 내리길 기다리기를 한참, 아무래도 바람이 멎었다 싶어 자리를


뜨려는 참에 한줄기 바람이 불었댔다.

 

머루와인 동굴, 수차발전을 위해 만들어졌던 동굴을 와인 숙성창고로 활용하고 있는 것도 독특하지만, 시원한

 

동굴 내로 300여미터 들어가서 맛보는 달콤한 머루와인도 독특하다.

 

적상산 사고, 조선시대 실록과 그 사초를 보관하던 사고 중의 하나인 이 곳에서는 통풍과 제습을 위해 다리를 껑충

 

걷어올린 신기한 한옥들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요새 무주의 대표 볼거리는 반딧불이 축제. 인공으로 길러낸 반딧불이를 풀어놓는 게 아니라

 

진짜 자연 속으로 들어가 야생의 반딧불이를 관찰하는 거니까, 그만큼 무주란 곳이 깨끗하고 축복받은 자연환경을

 

갖고 있다는 반증이렸다.

 

먹거리를 굳이 더하자면

 

'김대중 선생님'도 다녀가셨다는 이 곳의 산채정식은, 테이블 가득 빈틈없이 메워진 반찬 접시들이 하나하나

 

맛있기도 했지만 산에서 갓 캐왔을 것만 같은 온갖 버섯 반찬들이 참 맛나더라는.

 

 

 

 

 

* 이 포스팅은 '태권도진흥재단'의 초청을 받아 '태권도원 팸투어'에 참여하고 취재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향수'의 시인,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시작하는 첫머리만 알았지 가사도 다 모르던 그 시를 지은 사람이

살던 곳이다. 충북 옥천의 정지용 생가. 사실 여행을 가도 엔간함 피하게 되는 곳이 누구누구 생가, 이런 곳인데

이 곳 역시 그냥, 새로 지은 듯한 깔끔한-사람 온기없는-집 하나 덜렁 있고 옆에 박물관이 있었다.

깔끔하고 이쁘니까 좋긴 하지만, 여기서 정지용이 살았단 걸 그려낼 수 없는 건 내 비루한 상상력 때문일까.

조금은 더 리얼한 모습을 남겨주면 좋지 않았을지 생각해 봤다.

그의 '생가' 옆에 있던 지용문학관, 시인이 조탁해낸 언어들과 시세계를 비쥬얼로 보여주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무엇보다 그곳에서 일하던 문화해설사(맞나..)분의 질문이 계속 와닿았던 인연이었다. '향수'라는 (노래)제목은

다들 알지만, 정작 그 제목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향수란, 어떤 뉘앙스와 정조를 품고 있는 단어일까요.

"멋진 신세계"는 향수의 시인이자 최초의 모더니스트, 고도의 감각적 시어를 구사했던 정지용의 고장 옥천의

'시문학아트벨트'를 지칭한다고 했다. 정지용의 생가와 지용문학관에서, 옥천의 '향수30리길'을 따라 이어지는

그 공간에서 시인의 정취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게 해보자는 공감각적 프로젝트라고.

생가 주변에서 만났던 풍경들은 놀라웠다. 이런 간판들이 있다니. 이런 아이디어를 실제로 실현하다니.

물결은 유리판처럼 부서지며 끓어오른다.

모초롬만에 날려온 소식에 반가운 마음이 울렁거리여
가여운 글자마다 먼 황해가 님설거리나니....

나의 가슴은 조그만 갈릴레아 바다.
때없이 설레는 파도.

헐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항상 머언 이,
나는 사랑을 모르노라.

곡식알이 거꾸로 떨어져도 싹은 반듯이 우로! (이곳은 탈곡기가 쉼없이 돌아가는 실제, 그런 곳이었다..!)

얼골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감을 밖에.

감탄할 밖에. 간판들에 눈을 못 떼고 정신없이 싯구절들을 탐하다가, 문득 삐딱한 맘이 고개를 들었다.

이 비용은 누가 다 감당했을까. 강제적으로 시행된 건 아닐까.

가까운 가게에 들어가 물을 사며 슬쩍 물었더니, 군청에서 비용을 전부 부담했다고 한다. 원하는 사람만 간판을

바꾸도록 한 거였고, 내키지 않는 사람은 안 바꿨다고. 하나 더 물었다. 간판 제목과 싯구절은 누가 정했는지.

뭐, 본인이 딱히 원하는 게 있으면 그걸 요청했다 하지만, 대개 '간판 만드는 전문쟁이'들이 알아서 만들어

왔다고 했다. 대체로, 다행한 대답이고 따뜻한 사업이지 싶다.

다른 가게들을 구경하면서 훨씬 맘이 후련해졌다. 멋지다, 고 맘껏 감탄할 수 있어서였을 거다.

↓ 맘놓고 감상하기.



향수의 2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난 여지껏 지랄..뭐라고? 이렇게 듣곤 했었다는, 쓰잘데기없는 사족.




진짜인지는 모르지만 중학교 다닐때던가, 왕님이 사시는 궁궐만 백칸짜리 건물로 지을 수 있었기 때문에

양반댁들은 그보다 한 칸 모자란 구십구칸짜리 건물로 집을 짓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거 같다. 백 칸이면

방이 백 개, 구십구칸이면 방이 구십구개니까 고작 방 하나 차이일 뿐, 커다랗기는 매한가지다. 


충북 보은에 그런 구십구칸짜리 한옥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는 길, '선병국 가옥'이란 곳이다. 더구나

1904년부터 1921년에 걸쳐 건축된 건물인지라 시멘트나 벽돌도 활용되었다는둥 나름 전통과 현대가 버무려진

곳이라 하여 더욱 호기심이 동했다.

선병국 가옥에 들어서는 초입, 보기만 해도 여유로운 정자 하나. 누렇게 익은 솔잎들을 처마 위에 소담하게

쌓아올린 모습이 맘에 팍 꽂혔다.

비록 구십구칸이 고스란히 보전되어 있지는 않다지만 여전히 상당부분 그대로 남아서, 그 후손들과 객들의

일상생활을 떠받치는 제대로 된 집 구실을 한다고 한다. 사람 손을 계속 타야 온기도 느껴지고 보존도 되고,

그렇단 걸 알고 있는 분들이다. 장담그기 체험프로그램도 있다던가, 그래선지 와글와글 모여있는 장독들. 

(그리고 반대편께로 와글와글 모여있는 '파워블로거'분들..굉장한 장비와 굉장굉장한 글빨/말빨을 가지신.)

뒤로 산을 이고 있었다. 풍수란 거, 모르지만,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다른 차원의 이야기들은

차치하고라도 미감의 측면에서, 자연의 어디메쯤 놓이면 이쁜 그림이 나올지에 대한 경험적 미감이 축적된

심미안으로부터 비롯한 걸지 모르겠다고. 구름이 솔찮이 낀 하늘, 덩굴이 솔찮이 휘감은 담장, 이뻤다.

조금 징그럽다 싶을 정도로 빽빽한 덩굴들, 북쪽의 응달진 곳이라 저렇게 더욱 비비적대며 살겠다고 아우성인

건가보다. 본채와 따로 떨어져서 배치된 '효열각' 기왓장 위로 삐쭉삐쭉 자란 풀떼기들이 보인다.

효열각 안으로 들어서니, 모처럼 보는 듯한 자연스레 퇴락한 단청이 멋스럽다. 너무 선명하고 작위적이다 싶은

모습, 혹은 아예 미미한 맛조차 남지 않은 모습들은 쉽게 보이지만 이렇게 살짝 바래고 씻겨나가기란 쉽지

않을 거 같다. 적당히 인간의 것이기도, 또 적당히 자연의 것이기도 한 그 기교랄까, 신비랄까.

어흥. 호랑이는 아니고 무슨 괴물딱지같긴 하지만 어쨌든, 백호의 해 기념삼아 어흥.

벽에 찰싹 붙은 채 사방으로 종횡하는 덩굴 줄기를 보노라면, 파직파직 사방으로 균열이 번져나가며 깨어지는

유리창을 초고속카메라로 돌려보는 느낌이다.

효열각을 마지막으로 올려봐주고, 안에 있는 비석을 촬영하려 몇 번 시도하다 전부 실패. 살풋 말려올라간 처마

끝으로 올라가는 완만한 곡선이 편안하다.

만리장성만큼은 아니지만 구불구불 꽤나 긴 담장으로 둘러쳐진 선병국 가옥채에 들어서는 입구.

옆으로 계속 이어지는 담장따라 시선을 넘겨보면 운치있고 담백한 느낌의 건물들이 차곡차곡 들어서 있다.

그리고 마당엔 제법 수령이 되어보이는 잘 생긴 나무 하나, 뒤로는 구름을 뒤집어쓴 아늑한 산 하나.

"이리오너라"를 여기서 아무리 외쳐봐야 건물 안에까지 안 들렸을 거 같은데. 예전에는 과객실, 방앗간채까지

있었다고 하니 아마 이옆에도 뭔가 발레파킹할 때 쓰이는 간이천막같은 거라도 있지 않았을까.

사랑채. 건물 기둥이 모두 둥글둥글한 원기둥인 게 눈에 띈다. 안채는 네모기둥과 원기둥이 모두 쓰였다던데

뭐가 전통적인 스타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쩜 둘다 전통적으로 쓰이던 스타일인지도. 
 
바람소리를 기다리는 풍경.
 
나무 자체의 발색이 그대로 살아있는 문틀이 고상해 보인다. 화려하지 않고 깔끔하다 싶으면서.

바싹 마른 해바라기는 그런, 갓 베어낸 나무색이다.

따뜻한 발바닥을 기다리는 추운 털신.

삐뚤게 박힌 석등, 살풋 열린 정지간 문짝. 발랄한 노란빛 토담을 지그시 눌러주는 기왓장.

안채, 사실은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푯말이 서있었지만 살짝 돌고 나왔다. 시멘트로 마감된 기와지붕, 벽돌로

정돈된 한옥집의 아랫도리. 끝에서 끝까지 이어진 빨랫줄에 쭉 늘어선 옷가지와 이불들이 다정하다.

두툼한 패딩점퍼를 벗어던지듯 쭉 찢어진 목련꽃방울, 그 곳에서 봄기운이 쏟아져내린다.

부엌에서 이어진 연통이 ㄴ자 형태로 하늘을 향했다. 문짝 하나하나가 세심하게 공들여 만들어졌다는 느낌은

여기서도 계속됐다.

잘 손질된 생선, 조기인지 뭔지, 안채의 어느 나무기둥에 열매처럼 매달려 있었다. 연목구어, 가끔은 통한다.

바닥에 철퍽 떨어지는 생생한 소리와 이미지를 느낄 수 있는 걸 보면 분명 재래식 화장실인데, 이런 식으로

'현대화된' 재래식 화장실은 첨이다. 차마 찍을 순 없었지만 나름 발로 조종가능한 뚜껑도 있고, 찍지는 못해도

체험은 해볼 수 있었다. 다만 그 주황빛 함석지붕이 주변 경치를 흐트려놓아 아쉬웠달까.

돌아나서는 길, 작년 가을에 나리워졌을 낙엽들이 여전히 소복하다. 왠지 테이프를 거꾸로 감듯 저 낙엽들이

다시 물기를 쭉쭉 빨아선 초록빛 가득 채워 포르르 날아오르는 걸 상상하니 즐겁다. 착착, 자신들이 의탁했던

가지로 다시 돌아가 단단히 붙는 초록잎새들의 향연이라면.

살짝 삐뚤게 매달린 우편함이 외려 편안해 보인다.

둘러보고 나오는 길, 놓쳤던 풍경이 하나 시선을 끌었다. 저긴 뭔데 한쪽 면이 전부 저렇게 나무로 짜여져 있는

걸까. 굉장히 독특해 보이는 나무빗살무늬가 가득하다.

토담길 옆 나무 한그루가 땅거죽을 뚫고 허리케인처럼 솟아올랐다.

잘 가라고 배웅하는 풍선춤 나무 두 그루. 온 몸이 오글오글하다.



청남대, [충북팸투어-청남대] 김대중과 노무현의 '아바타'가 그곳에 있다.에 이어 나머지 대통령들의 이미지도

가득 담아 올 수 있는 곳이다. 아무래도 전두환 대통령 때 지어진 곳이라 그런지 그 이전 대통령들의 체취랄까

흔적은 남아있지 않지만, 그 이후로도 워낙 (여러 의미로) '씨알굵은' 대통령들이 있으니 아쉽진 않다.

참 씨알 굵은 양반. 산책로에서 제일 먼저 만났던 분인데, 이후 제각기의 특징을 잡고 있는 동상의 모습을

되짚어 보니까 저 자세는 어쩌면 구보와 각잡힌 걸음새에 익숙한 퇴역군인의 특성을 잘 포착한 게 아닐까

싶었다. 찰져보이는 몸뚱이에 완강하고 의지력있어 뵈는 얼굴까지. 딱 그사람이다.

그의 뒷모습. 맨들맨들한 동상 뒷머리에 흔히 떨어져 있을 법한 새똥 하나 없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다음 타자는 골프채를 시원하게 휘두르는 노태우 전 대통령. 그가 대통령을 하던 시절 나는 삐라를 모았었다.

그 천연색깔 알록달록한 그림과 낯선 글씨체가 신기하고 자극적이었다. 똥오줌 못 가리던 어린 나이인지라

아마 사람들이 회피하고 어쩌면 무서워하던 삐라를 한장 두장 모아가며 묘한 쾌감을 느꼈던 거 같다. 어느날

부모님은 우표수집책 속에 우표처럼 꼽혀있던 색색의 삐라를 보고는 다 태워버리고 말았다.

그의 입꼬리는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원래 그렇게 생긴 걸까 아님 이 동상의 작가가 잘못 만든 걸까. 본인이나

유족으로부터 초상권에 대한 합의를 받고 최대한 실제와 똑같이 만들어낸 작품들이라 했었다. 사실 그가

재임중이던 시절, 난 최루탄 냄새 맡으며 어린이회관에 '우뢰매' 따위 보러다니던 꼬맹이였다. 그의 얼굴을

티비에서 본 기억이 없다. 입꼬리는 더더욱 기억에 있을 리 없다. 별명이...물태우였다던가.

김영삼 전 대통령. 요새도 참 말 많이 하던데, 다행인지 우리 나라 대통령 중엔 아직까지 퇴임 후에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전례가 없었다. 끝까지 무사하게 피 안 묻히고 구정물 안 튀긴 대통령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조깅을 워낙 좋아했던 대통령답게 흥건히 브론즈색 물들이고도 또 뛴다. 무슨 포레스트 검프도 아니고.

그의 봉긋한 엉덩이를 함께 보며 친구가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한미 정상회담 기간 중 클린턴이 조깅을

제안해왔댄다. 나란히 달리며 한미관계를 논해야 할 그 찬스에서, 그는 죽어라고 달려선 클린턴을 멀찍이

따돌리고 이겼다며 좋아했단다. 그러고 보니 포레스트 검프랑 비슷한 면이 적잖다.

"클린턴도 조깅으론 날 못 이겨~!" 좋댄다.

그리고 책 읽는 김대중과 자전거 타는 노무현을 만나고, 초봄 기운이 드리워진 청평호에 시선을 박았다.

청남대엔 군사시설도 함께 있었다고 하더니, 설마 그때부터 화장실 옆에 저렇게 배치되었던 건 아닐 거다.

여자는 왼쪽으로, 남자는 오른쪽으로, 그리고 볼일급한 꼬맹이는 가운데쪽으로.

대통령 광장에 들어서는 입구. 뒷 벽면에는 각국의 행정수반이 집무를 보는 관청이 있다. 한국의 청와대,

프랑스의 엘리제궁, 미국의 백악관, 뭐 그런 것들.

총 9명의 대통령. (현 대통령을 제하면) 16대 대통령까지 16번의 임기가 지났는데 인물은 9명이다. 뭐 재임,

중임이 항상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지만, 좀더 옵션이 많았으면 조금은 더 맘에 드는 대통령이 많았을지도

모르겠어서 아쉬울 따름.

옆구리에 '대한민국 헌법'을 끼고 있는 대통령,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다. 그의 치하에서 만들어진 헌법이긴

해도 그때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의미는 지금과는 또 달랐을 거다. 당장 국토의 공공성이라거나

수도로서의 서울이 갖는 지위 따위가 해석을 통해 바뀌어 나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장면 내각은 내각제여서 대통령 광장에 끼지 못했나 보다. 바로 윤보선 대통령으로 스킵. 무슨 일을 했는지,

그가 어떤 대통령감인지 알아보고 평가하기엔 그의 재임 기간이 너무 짧았다.

그 사람. 근데, 그 사람하고 진짜 닮았다. 그 사람이 그 사람 흉내낸다고 선그라스 끼고 돌아다니고 그런

모습을 봤을 때도 느꼈지만, 그 사람은 정말 그 사람 닮으려고 꽤나 노력하는 중인 거 같다. 어쩌면 요새는

그 사람보다 더욱 세련되고 고도화된 수준에 올라선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 엄연한 질적 차이가 있으니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엔딩은 얼마나 닮고 또 얼마나 다르게 될까.

최규하 전 대통령. 이 분이 아마 최근의 '서거 러시' 이전 가장 가깝게 돌아가신 분이었던가. 조용하게

돌아가셨던 거 같다. 무색무취한 대통령이었던 걸까, 역시 짧았던 재임 기간 때문인지도.

아까, 군대에서 구보하는 걸음새로 각잡혀서 걷던 아자씨. 그는 여전히 살아있고, 광주의 전남도청은 다른

지역으로 이전한 채 파시드랑 뼈대만 남겨두었으며, 가끔 그는 현실 정치에 훈수도 둔다.

노태우 전 대통령. 그런 생각도 든다. 대통령도, 국민도, 시간이 지난다고 점점 나아지라는 법은 없다.

그건 조금은 무임승차하려거나 언발에 오줌누기식 위로를 구해보려는 얕은 꾀.

IMF라는 재앙이 터진 건 김영삼 전 대통령 재임시기였지만, 그게 터지지 않고 안으로만 내연해서 약자들을

사회 밖으로 튕겨내는 시스템을 만든 건 그 이후였다. 거대한 후폭풍을 불러오고 뭔가 구태의연하던 과거를

지워버려야 할 타이밍에 오히려 한발 더 나아가 고도화된 모순을 만들어내버린 면도 있는 거다. 비정규직을

비롯한 불안정한 고용 시장, 오히려 위축되는 듯한 사회복지망, 수월성 위주의 입시 교육, 민주/반민주 따위

선언적이고 허구적인 경계선에만 자족하는 지난 시대의 비주류들..그래서 김영삼 때문에 IMF가 났다고 쳐도

-사실은 다른 원인들이 많다고 생각하지만-그 뒷수습을 그렇게 한 건 엄연히 다른 문제다.
 
어쨌거나, 대통령 광장 한 가운데에는 커다란 태극무늬가 있다.

대통령 동상들이 바라보는 쪽엔 뭐가 있을까, 싶어서 고개를 돌려봤다. 고개도 돌리고 카메라도 돌렸다.



충청북도 청원군에 위치한 청남대는 대통령 전용 별장이다. 대통령이 국무를 보다가 내려와 쉴 수 있는 공간,

그 정도 되려면 주위 경관이니 입지 조건도 특별해야 할 테고 옛날옛적 어느 스님의 예언 같은 것들도 구비구비

서려 있어야 하는 거다. 청남대 역시, "왕이 머물 곳"이라는 예언이 일찍이 있었다고 한다.

사실 이 곳은 더이상 대통령을 위한 곳은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충청북도에 소유권을 이양한 후

'일반인'에게 개방되었으니, 누구든 입장권을 사면 들어올 수 있는 문턱낮은 곳이 되었다.

최외곽으로 돌면 반나절은 산책할 법한 규모의 청남대 내부에 올 초 새로 '대통령 광장'이 생겼다고 했다.

그곳으로 가는 길, 왼쪽에 과거 골프장으로 쓰이던 풀밭을 끼고선 전직 대통령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전두환과

노태우, 김영삼을 못 본 척 지나고 나니,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마주쳤다.

이 분, 작년에 그렇게 가신 것도 모자라 요샌 묘소에 도깨비불이 횡행한다고 했다. 그런 번다한 세사 따위

모르겠다는 듯 초연히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단단해 보였다. 그는 민주화 투쟁 시절 감옥에서 공부를

많이 할 수 있어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어서 좋다고 했었다. 만델라도 그랬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골프장 잔디밭을 일부 밟은 채 국산 자전거에 올라앉아 손을 흔들어 주는 노무현 전 대통령.

그의 환한 웃음을 마주했다. 자전거를 타고, 밀짚모자를 쓰고, 그런 모습들이 워낙 친숙했던 그인지라 이런

동상이 서 있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뭐랄까, 일종의 아바타-화신-인 거다. '노무현'에 대해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이미지들을 똘똘 뭉쳐 놓으면 저런 게 나올 게다. '김대중' 역시 마찬가지.

작년 5월쯤, 그의 갑작스런 서거가 몰고 온 파급력은 정말 대단했다. 마치 온나라 국민들이 이제야 그의 진가를

알았다는 듯, 지켜주겠다고, 지키겠다고 울음지었었다. 아직도 모르겠다. 인간 노무현이 아닌 대통령 노무현에

발견할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 좀더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그의 정책과 비전에 대한 쿨한 평가가 진행되야

하겠지만, 당장은 그렇다. 인간 노무현의 저런 소탈한 웃음은 굉장히 좋았었다.

실개천같던 산책로를 따르다가 어느 순간 대통령 광장으로 탁 트여나왔다. 미래의 대통령 동상이 놓일 자리를

마련해 두었고, 그 뒤로는 역대 대통령 동상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저 '미래의 대통령' 자리에서 어떤 꼬맹이는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집을 넓히고 싶다 했고, 어떤 아주머니는 부정부패를 저지른 사람은 설사 남편이라

할지라도 엄벌에 처하겠노라 공약했다고 했다. 유치할 수도, 혹은 순박할 수도 있는 공약들이지만, 단상 뒤로

쭉 섰는 대통령들을 보자니 그런 '단순함' 혹은 '순박함'이 더 크게 다가온다.

우리나라는 그다지 자랑스러운 대통령을 갖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을 때는 조금 뿌듯했다. 그런 대통령의 단상 위에는 꼬맹이들이 그와 눈높이를 맞춰

기념사진을 찍고 싶었던 듯, 흙발자국이 어지럽다. 다른 대통령들의 단상은 상대적으로 말끔한 편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역시, 여기서도 웃고 있다. 증명사진 찍듯 경직된 자세와 표정을 고수하던 이전 대통령들과

달리 생생한 표정, 생생한 제스쳐다. 그런 모습은 그의 전임 대통령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상대적으로 갖지

못했던 '젊은 모습'이었고, '비권위주의적인 모습'이었던 거다. 그게 연출되거나 의도된 이미지 메이킹이었다고

해도, 이제 그는 '권위주의와 거리가 멀었던 대통령-인간'의 대명사로 남게 된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청남대의 풍수지리적 예언-"왕이 머물 곳"이라던-을 들먹거리는 건 사실 굉장히 시대착오적인

코미디다.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근엄함과 신성성, '가오'를 일용할 양식으로 삼는 '하늘의 아들'이 아니란

이야기다. 청남대는 왕이 머문 곳이 아니라, 인간들이 스스로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인간 하나를 대표로 내세워

국가대표 공무원을 시켰던, 그 '사람'이 일하다가 와서 쉬던 곳일 뿐이다.

그가 들어올린 손이 앞선 대통령들을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밀쳐내는 듯 하다. 그의 모습이 다른 전임 대통령에

비해 훨씬 커보이는 듯 하다. 가까운 건 커보이고 먼 건 작아보이는 원근법의 효과다. 그뿐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돌아나오는 길, 이번엔 그의 뒷모습을 만났다. 느낌이 달랐다. 아까는 산책로에 들어서는 사람들을 환대하고

맞이하러 나오는 느낌이었다면, 이번엔 뭔가 뒤도 안 돌아본 채 휑하니 사라지려는 듯한 분위기랄까. 그의

등짝을 바라보는데 살짝 울컥했다. 생전의 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나였음에도.

다행히도, 그의 그런 쓸쓸하고 비감한 뒷모습 옆에는 거의 쉴틈없이 사람들이 함께 서 주었다. 전두환과

노태우와 김영삼, 그리고 김대중을 구경하고 지나친 사람들은 저 사진찍기 좋은 동상 옆에서 줄을 서서

사진을 찍으려 기다리고 있었다. 생전에 그리도 만만한 대통령이었던 그는 지금도 청남대에서 딱 그만큼

만만한 전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는 듯 했다.

청남대, 이 곳은 일반에 개방된 이후부터 적자 행렬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한다. 관리해야 할 시설물과 규모를

생각하면 꽤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야 겨우 적자를 면하지 않을까 싶다. 그곳에는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자전거를 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있다. (그리고 거슬러 올라가건대 김영삼, 노태우, 전두환,

박정희, 최규하, 윤보선, 이승만 대통령이 있다. 입맛대로 골라갈 일이다.)




#1.

지난 토, 일요일은 충북으로 1박2일 여행을 다녀왔다. 말도 안 되지만 무슨 '파워블로거'와 함께 한다는

충북도청 주최 팸투어에 낄 수 있었고, 여행이란 소재로 다들 한 가닥씩 하신다는 쟁쟁한 블로거들과 함께

충북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는 기회였던 게다. 재미도 있었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고, 블로그에

있어서도 뭔가 시야를 넓힐 계기도 되었고. 무엇보다 갓 봄이 다가오는 시골길을 쏘다닐 수 있었다는 사실에

마냥 좋았던 1박2일이었다.


#2.

마음이 아무리 사방으로 쏘다녀도 몸은 솔직하다. 당장 몸이 나른하게 처져 있거나, 전혀 자극에 반응하지

않는 경우라면 머릿속에 아무리 오만 상상과 욕심이 꿈틀거려도 전부 부질없는 거다. 예전엔 사실 인간은

동물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었다. 혹은 몸은 단순히 마음이 타고 다니는 일종의 탈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런 게 아녔다. 몸이 내키지 않으면 마음이 아무리 재우쳐 봐야

꼼짝도 않는 거다. 몸은, 마음보다 순결하다. 멍충이.


#4.

종로 바닥에서 술을 잔뜩 마시고 돌아왔다. 얼마전 '반폭'이라며 소주반/맥주반의 술잔을 돌리며 쉼없이

들이키던 술자리, 혹은 밉상 고참이 낀 회사에서의 술자리같은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유쾌한 자리였다.

대학에 들어간지 어느새 십년이 넘어버린 채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며 서로 엉덩이도 툭툭 쳐주고

육두문자도 남발하는 그런 자리였어서 더욱 즐거웠는지도. 하갸 언제는 안 그랬냐만서두.


#5.

커다란 T/F에 포함되어 일할 뻔 했다. 지난 1월의 출장 이후 연이은 행사 쓰나미가 지날 만 하니 거푸 바닷속

깊이 잠수를 빙자해 꼴깍꼴깍 사경을 헤맬 뻔 했던 거다. 다행인지 무사히 지나쳐갔고, 이제 다시금 예측가능한

세상에서 예측가능한 시간표를 살아갈 수 있게 된 거 같다. 무언가 굉장굉장히 정신없이 지나버린 1, 2월.

다시 정신 좀 차리고 살아야겠다고 새삼스런 다짐 한 번. 당장 내일부터 출근은 자전거로 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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