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현의 희망프레임, 운좋게 그 1기 회원에 합류하게 되어 토요일 새벽같은 아침에 약수역 출사를 나갔다.

 

굉장히 소탈하고 편안한 스타일의 조세현 선생님은 재개발을 앞둔 이 지역의 분위기를 쿠바 하바나의 그것에 비겨보아도

 

전혀 모자람이 없다며 곳곳에 숨어있는 풍경들을 잘 찾아보라 말씀해주셨고,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부지런히 찍었다.

 

w/ Pentax K-5, 43mm limited

 

 

 

약수동도, 작년 드로잉 수업 들으며 쏘다녔던 여느 서울의 뒷골목처럼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무너지고 헤집어진 폐허에서 인간적인 풍경들을 찾을 수 있다는 건 사실 아이러니라 부르기도 뭐하다.

 

대책없이 까발겨진 내밀한 일상, 고유명사 '집' 안에서의 안식과 평온함을 담당하던 가재도구들이 길거리에 전시된 풍경은

 

외려 인간적이기도 하니까.

 


더이상 사람이 앉을 수 없는 쇼파. 더이상 24시간 담배를 팔 수 없는 편의점. 더이상 ...외부로부터 내부를 지킬 수 없는 현관문 따위.

 

그렇게 보면 다소 안쓰럽고 흉물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반대로는 어떨까. 반대로 한때는 그런 역할을 맡고 온기를 전했다며

 

무너져내리는 형체를 애써 가다듬고 있는, 그 의연함 같은데서 공감하고 마는 거다.

 

재개발을 앞둔 동네에서 스산함을 느끼는 건 어쩜 그런 건지도 모른다.

 

억지로 길가 위에 끄집어내진 원주민들의 삶과 추억들이 발하는 온기가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한 채 소모되고 있다는 사실.

 

그것들을 이해하고 소중히 다뤄주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그래서, 그 스산함은 결국 사람으로부터 비롯한다.

 

내가 끄집어낸 감정, 기억, 일상을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의 그 상처.


 

 

 

 

 용산의 망루, 왠지 남일당 건물의 그 사건을 떠올리게 만들던..약수역의 주인없는 옥탑방.

 

제법 경사가 급한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고서야 기사분들도 한숨 돌리는 이 곳, 421 버스의 종점.

 

 

 온통 깨지고 뜯겨진 건물 내부. 슬몃 안으로 들어가 보기라도 할라치면 어디선가 득달같이 달라붙던 철거현장 작업반들.

 

눈부시게 새하얀 햇살도 가려버리는 우중충한 가림막 안쪽의 숨겨진 폐허.

 

 

누가 무슨 이유로 현관문을 저렇게 살풍경하도록 부숴놓았을까. 

 

 두 개의 그래프, 혹은 두 개의 덩어리. 그리고 흑과 백.

 

 

 빨랫줄에 꽂힌 빨래집게까지 일일이 챙겨줄 여유 따위는 없이 다들 떠난 건 아닐지.

 

잠시 반짝 빛났을 이 곳의 부동산 경기. 이제는 숱한 부동산 간판들만 가림막 안쪽의 세상에 묻어두고 말았다. 

 

 

 아마도 자전거가 묶여있진 않았으려나, 장바구니 무거운 아주머니가 스쿠터를 세워놨던 건지도 모른다.

 

 

 재개발 지역 앞의 높다란 아파트들로부터 수혈이라도 받는 듯, 굵은 전선동앗줄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아마도 연세 지긋하실 아버지와 아들, 손목을 꼭 잡고 나란히 머리를 빛내시며.

 

 새로 지어진 아파트촌, 그리고 이제 사라질 재개발촌. 교회 첨탑으로 겨우 자존심의 높이를 맞췄다.

 

 

 

길고 지루하던 겨울이 갔지만 여전히 스쿠터엔 두껍고 낡은 레자가죽의 장갑이 꽁꽁 싸매어져있다.

 

재개발, 그건 이렇게 훌쩍 뒤집어져버린 화분 같은 걸지도 모른다. 한줌만 대접받으며 옮겨지고 나머지는 고꾸라지는.

 

 

 

이른 아침부터 시작됐던 출사가 끝날 즈음 올려다본 하늘. 철거 현장의 분진을 막기 위해 둘러쳐진 가림막은 햇빛마저 막았다.

 

 

 


#0.

처음 '코르다 사진전'의 사전광고가 코엑스몰 인근에 쫙 깔렸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건

체게바라의 사진이었다. 무슨 사진전인지 몰랐지만 체게바라의 얼굴을 앞세워 그 이미지를

팔아먹으려는 또 하나의 시도인가 싶으면서, 대학 내내 가방에 달고 다니던 체게바라의 배지를

두고 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요새 애들 그저 다들 멋져보이니까 하나씩 달고 다니지.

맞네 아니네 다투기보다 그냥 묵묵히 있기로 했었다. 체를 좋아하고 체로 대변되는 혁명정신이

좋은 거고, 난 호치민과 로자와 레닌의 생애와 지향이 좋은 거라고 말하고 싶었었다.


사실 내가 대학에 들어간 99년, 그리고 이삼년후 갑자기 '체게바라 평전'이 출간되고 영화배우

문소리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며 방송에서 이 책을 소개했던 이후쯤 한국 사회에 나타난 체의

얼굴은 마치 68혁명 이후 미국에서 체를 '자본주의적으로' 소모하는 것과 딱히 다를 것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잘 생겼고, 획득했던 학력자본과 문화자본을 과감히 포기했으며,

쿠바를 끝내 혁명하는데 성공하고는 다시 제3세계로 달려가 그야말로 '세계혁명'의 야망을

품었던 사람이니, 그런 팬덤을 불러일으켰단 건 사실 지극히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다.


#1.

코르다사진전, 아마도 '코르다'라는 사진작가의 작품전인가 본데, 아무래도 그가 '체게바라와

쿠바'의 사진으로 이름을 알렸나보다, 그걸로 어필하려는가보다 하고 좋게 넘어가주기로 했다.

사진전 첫테마는 그의 스튜디오. 쿠바에서 광고사진으로 잘 나가던 그의 작업공간을 보여주고

있어 체게바라는 역시나 미끼였나 싶었지만, 이후 보여준 두번째 세번째 테마를 거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리더들', '민중'이라는 이름의 두세번째 테마에서 보였던 건 쿠바 혁명을 지도하던 카스트로와

체를 비롯한 다른 전사들의 긴박하고 웅장한 혁명 활동과 나른하고 깨알같은 일상의 모습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눈높이를 맞춘 채 광장을 가득 채워 혁명을 지지하고 환호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특히 피델 카스트로, 털이 북실북실한 그는 여전히 '미국의 골칫덩이' 쿠바를

지켜내며 농업중심의 산업사회, 복지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데, 젊은 날의 그 역시 왕성한

열정과 패기로 새로운 쿠바를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


#2.

그 중에서도 가장 맘에 남았던 것은, 쿠바 어딘가를 여행하던 피델이 사탕수수밭에 그야말로

'철푸덕' 소리나게 주저앉아 쉬던 풍경. 그 격의없는 인간적인 모습이 참 매력적이었다. 사진

곳곳에서 드러나는 피델의 인간적인 면모는 소탈하면서도 적극적이고, 뜨거우면서도 차가운

눈빛을 지닌 그런 사람. 이렇게 허름한 입성으로 아무렇게나 몸을 던지며 남들 보기에는

무모하기만 했던 쿠바 혁명을 이루어낸 사람이니,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아니,

그런 대중의 사랑을 등에 업을 만큼의 그릇이었던 덕분에 혁명도 성공시킨 거일려나.


그러고 보면 사실 코르다의 이번 사진전에서 '체게바라'를 전면에 내세운 건 역시 일종의

낚시, '피델 카스트로와 쿠바' 코르다 사진전이라고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도록 그는

피델과 가까웠고 그만큼 많은 사진을 남겼던 거다. 피델이 소련에 방문했을 때도 함께 했고,

그가 기지개를 켜거나 잠을 잘 때도 늘 사진을 남길 수 있을 만큼 가까웠던 사이였다니

사진작가로서 그의 이력엔 커다란 축복이었을 터.


#3.

사실 그는 모나리자 다음으로 전세계에서 많이 복제된 체게바라의 얼굴사진을 찍은 작가니까

그의 이력에 미친 공험으로 따지자면 피델이나 체나 오십보백보. 코르다는 그들과 같이

혁명쿠바의 세례를 받은 아이들이라 하는 것이 공정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코르다가 전하는

체에 관한 짧막한 일화 하나가 소개되어 있었고, 다시금 체를 사랑하게 되고 말았다.

체, 당신이 쿠바에서 최초로 만든 사탕수수 수확기를 운전하는 모습을 찍으러 이 먼 시골까지

왔어요. 코르다 당신은 사탕수수를 수확해본 적 있나요? 아뇨, 솔직히 농사일은 한번도. 그럼

일주일동안 칼을 들고 직접 수확을 해 본 후에 내가 수확기를 운전하는 사진을 찍도록 하죠.


그렇게 일주일 후에야 찍었다는 이 사진. 체는 드디어 쿠바의 농업에 과학을 접목해내었다는,

사람들의 고된 노동을 기계로 대체하게 되었다는 감격을 사진에 온전히 담고 싶었던 것이리라.

책상물림하는 도시 인텔리와 일반 노동자, 농민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모두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추구하던 그에게는 코르다에 대한 그런 요청이 자연스럽고도 꼭 필요한 것이었다.


#4.

그가 광고사진으로부터 사회에 대한 관심이 묻어나는 사진을 찍게 된 건 나무토막을 인형처럼

소중하게 품에 보듬고 있는 꼬마여자아이를 만나고 나서라고 한다. 아바나 교외의 어느 시골로

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 카메라를 총처럼 들이대는 낯선 이의 방문에 놀란 아이는 저 나무토막을

쓰다듬으며 괜찮아, 괜찮아 다독거렸다고 했다. 코르다는 저 사진을 찍으면서, 혹은 찍고 나서

무슨 생각을 한 걸까. 그 아이의 세상은 광고 속 화려한 환타지와는 달리 윤택하지도 풍요하지도,

최소한 공정하거나 안전하지도 않은 사회였다고, 문득 미안해진 걸까.


체게바라를, 피델 카스트로를, 쿠바를, 새삼 2010년의 한국에서 여러 장의 사진으로 늘어놓는

이유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굳이 이 시점에 이 공간에서 이런 전시를 하는 목적이자

문제의식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큐레이터가 어떤 식으로 기획했던 간에, 백이면 백 모두들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진전을 읽어내고 감동을 남겨가겠지만, 나의 버전은 그렇다. 체의 그럴듯한

껍데기, 피델의 (알고보면) 역시 그럴듯한 껍데기를 볼 게 아니다. 화보사진같이 멋지지는 않지만

그들이 함께 나섰던 행동의 순간, 역사의 먼지를 털고 다시 한번 그들의 이미지 뒤에 숨은

가치와 자유 정신을 봐야 하지 않을까.


#5.

체게바라가 남미의 정글에서 정부군에 살해당하기 직전에 했던 말이라고 한다. "I know you have

come to kill me. Shoot, coward! You are only going to kill a man." 마찬가지로 그는 코르다와

피델 사이에 서서 이렇게 경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You are only going to see a celebrity!"


사실 체를 좋아한다 해서 모두가 총을 들고 제3세계 정글로 달려가 괴뢰정부를 전복해야

한다거나 당장 사회에 기생하는 기득권세력을 척살해야 하는 것도 아닌 거다. 체의 시대와

지금의 시대는 이미 달라졌고, 권력은 일부 키맨에 쥐어진 게 아니라 전체 시스템에 뿌리내려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짙은 쌍꺼풀의 털많은 젊은 백인남성 '체'을 알고 좋아하고 이해하는 만큼

그보다 훨씬 오랜 삶으로 신념을 증거하고 생활을 변혁시킨 외꺼풀의 쪼글쪼글한 동남아남성

'호치민'도 알고 좋아하고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랄 뿐. 그리고 그들과 같은 열정으로 지금 세상을

바꿔내려 '계란으로 바위치기'하는 사람들을 알고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생각보다 사람의 상상력이란 빈곤하다. 미국의 의료보험 제도를, 한국의 의료보험 제도를 전부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른 철학 위에서 세워진 시스템을 상상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더구나

주류 언론, 거물급 정치인들이 뻔뻔하게 거짓말을 되풀이하며 선전선동을 일삼는 상황에선.


'This is not America!'라는 외침에 미국에 대한 부정적인, 시니컬한 의미가 담겨 있으리라 예측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인종차별, 보이지 않는 계급 WASP(white-anglosaxon-protestantist), 총기, 마약, 시장주의,

패권주의, 제국주의적 속성까지. 미국에 대한 빈정거림과 비난은 하늘을 찌르지만, 그만큼 스스로를 노출하고

자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솔직히 까놓고, 미국의 인종차별이 심하다곤 하지만 한국은 어떤가. 미국의

정치판과 대통령이 대놓고 전세계의 놀림감이 되지만 한국의 그것들은 어떤가. 그게 미국의 저력이다.


마이클 무어는 경쾌하고 유머러스하다. 아무런 배경지식도 관심도 없던 사람들에게 딱딱한 사회 시스템을

이야기하면서도 전혀 현학적이거나, 반대로 감정적이지도 않다. 눈높이를 바닥에서부터 서서히 올려가는,

능란한 요리사가 부식재료를 다루듯, 그는 냉소적이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멘트들로 포커스를 한 점에 모은다.

미국 의료보험업계 로비스트와 결탁한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시스템.


시스템이 포인트다. 그는 응급실에서 돈 얘기부터 하는 의사의 야박함을 탓하지도, 티비에 나와 캐나다의

의료보장제도를 욕하는 정치인들의 뻔뻔함을 비난하지도, '의료 손실'이라는 손익의 개념으로 접근해 최소한의

보험을 제공하려는 보험업계의 비인간성을 타박하지도 않는다. 물론 야유와 조소는 아낌없이 던져지지만,

문제는 사람들을 그렇게 상상하고 움직이도록 틀지워주는 시스템이란 걸 그가 결코 잊지 않고 있다는 거다.


시스템이 사람들을 어떻게 움직이게 하는지, 그는 캐나다, 영국, 프랑스, 그리고 심지어 쿠바의 사례까지

풍부하게 제시한다. 그 모든 장면에서, 의사와 마주해선 'How much..?'부터 조바심치며 묻는 미국인들은

그들을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시선 앞에서 완전히 당황하고 만다. 미국에서 120불짜리 약이 그들의 적국

쿠바에서는 겨우 5센트라니, 미국의 시스템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다른 것'이 아니라 완전히 '틀렸다'는

사실 앞에서는 완전한 배신감에 망연해지고 말았던 그들.


나라마다 시스템의 각론은 약간씩 다르지만, 'This is not America. System pays it'. 대답은 한결같고

그 대답이 깔고 있는 마인드도 한결같다. 돈이 아니라 환자가 우선이라는 거다. 누군가 자신의 지갑이 아닌

건강에 신경을 써주고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봐준다는 것. 적절한 치유를 받을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은 국가의

기본이며, 더욱 부강해지자는 주문을 쉼없이 외우는 정치인들의 목적은 더욱 국민들을 잘 돌보기 위함이어야

한다. 그게 상식이다.


상식과 의지가 모여 시스템을 만든다. 상식의 힘은 시스템을 만들어낸다는 데에 있다.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부는, 상식을 조작하고 의지를 분쇄한다. 미국은 최소한 의료보장제도에 있어서는 그렇게 되어버렸다. 최근

오바마가 다시 전국민을 수혜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험 개혁안을 통과시켰지만 두고 볼 일이고..


미국의 그들이 '시스템'과 '상식'의 가면을 빌어 하는 이야기는 뻔하다. 사회화의 비효율성, 비용 문제,

세금폭탄..사회화(socialization)와 몰락한 현실 사회주의/전체주의 국가 사이에 은근슬쩍 이퀄(=) 표시를

꼽아두고는 사회화나 국가적 차원의 복지 시스템을 절대악으로 몰아간다. 한국과 같다.


한국의 그들은 미국의 의료제도를 따라 영리 의료법인 설립을 독려하고, 의료서비스를 팔아 돈을 벌겠다는 거다.

그들이 우러러보는 '선진시스템', 미국의 시스템을 따라 국가가 운영하던 인천공항도, 한전이니 철도니 도로니

따위의 것들처럼 민영화한다는 이야기가 스물스물 나오는 판이지만, 한박자씩 뒤늦게 따르는 그들의 지독한

박자감각은 어쩔꺼나. 이미 시행됐고 문제가 잔뜩 불거져서 고칠려는 판에, 우리는 그 '정통 오리지널' 버전을

수입하겠다니.


아무리 그래도, '상식과 시스템'을 둘러싼 전투에서 한국의 그들은 줄곧 승리해 왔다.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부는, 상식을 조작하고 의지를 분쇄한다. IMF 이후 급격히 무너진 공공 영역, 공공 부문에 들이대진 효율과

수익성의 잣대로 민영화는 곧 지고선이 되었고. 하나하나 무너져내려 이젠 정말 돈 있는 자들의 생명과 재산을

유료로 지키는 경찰과 소방관들이 나온대도 딱히 이상해지진 않을 만큼 '상식'과 '시스템'이란 게 후퇴하고

있는 거 같다.


식코에 등장한 9/11 자원봉사자들, 한때 미국의 영웅으로 떠받들리다가 건축 폐자재 따위로 인한 신체적

손상이나 심리적 스트레스로 정신적 손상을 입은 채 내버려진 그들을 보고 중첩되는 이미지가 하나 있었다.

가해 선박의 이름으로 보통 기억되곤 하는 해상 기름유출 사고지만, 마치 누군가 본능 깊숙이 인셉션한 것처럼

'서해기름유출사태'로만 기억날 뿐인, 2007년의 "삼성 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건".


아이들의 고사리손까지 끌고 가서 국민들은 돌덩이의 기름띠를 닦아냈지만, 사실 그 원유는 치명적인 독성을

갖고 있던 데다가 변변한 안전장비조차 갖추지 않은 채였던 거다. 거기서 국가나 언론이 해야 할 일은

그 '자원봉사'를 영웅화하고 애국마케팅으로 소모해버릴 게 아니라, 무엇보다 국민의 건강과 안위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상식'을 지켜야 했던 건 아닐까. 이놈의 나라 국민들은 너무 순해빠진 건 아닐까.






사실 별로 내키지는 않는다. 사방에서 (남들보다) 좀더 빨리, 좀더 높이 뛰라고 재우치는 상황에서 굳이 새해

다짐까지 좀더 앞당겨서 해보자니, 왠지 뒤숭숭하고 어영부영 지나야 제맛인 연말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

그냥 이건 전적으로 최근 무지하게 뒤엉킨 스텝을 밟으며 온통 헝클어져버린 일상을 살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약간의 반성, 그리고 미처 스텝을 추스를 짬도 없이 다가와버린 연말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균형을 잡아보려

쥐어짜보는 안간힘같은 거다.


..뭐, 약간은 그런 효과도 노린다는 걸 부정하진 않겠다. 어차피 새해 소망따위 작심삼일, 새해들어서 삼일만에

쓰디쓴 자기모멸과 시니컬한 배째라 멘트 수렁에 빠지기 보다, 새해 들어서기 전에 조금은 워밍업도 해보고,

과연 이게 될만한 다짐인지 아닌지, 간도 볼 수 있는 훌륭한 유예기간인 거다. 게다가 굳이 새해소망으로

다짐씩이나 할 만한 것들이라면 굳이 새해되면서부터 시작할 이유도 없는 거고.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1. 걷거나, 자전거타고 출퇴근하기.

가을에 산 삼각형 자전거, 출장 한번 다녀오니 쎄~하니 추워진 날씨 덕에 얼마 타지도 못하고 겨울이 됐다.

이년차에서 삼년차로 변신하는 시기, 그간 억눌러온 허릿살이 조금씩 반역의 붉은 깃발을 드높이는 바 운동이

절실해지고 있는 시점인 거다. 날씨가 춥거나 비오거나 눈오거나 하면 걷기로, 기타의 경우에는 자전거로.

애초 자전거 살 때 버스값 들어갈 거 모아서 자전거를 사겠노라고 큰소리쳤던 터에. 비록 빡세게 걸어서 30분이

꽉 차고, 사무실에 오르는 엘레베이터 안에선 몸에서 김이 펄펄 날 지경이긴 하지만 우선은 걷고 자전거타보기.


2. 영어 & 제2외국어 말하기 공부하기.

어설피 '영어공부', '중국어공부', 요래봐야 아무것도 공부 못하는 거다. 그냥 실용적인 차원에서, '영어 말하기

& 제2외국어 말하기'에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 워낙 영어 잘하는 사람이야 깔렸으니 치이지 않을 정도로는

해야 할 텐데...제길. 게다가 제2외국어로 대체 뭘 배울지는 아직 맘이 세워지지 않아서 문제다. 조금이나마

하던 걸 계속 하자면 중국어 정도일 텐데, 사실은 일본어나 스페인어를 새로 배우고 싶은 맘도 동하고 있고.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우선 영어부터 어떻게 좀. 2001년 맨하탄에서 알바할 때 '나쁜 영어'를 배우지 못해

한마디 대거리도 못했던 수모는 아직도 생생하단 말이다. 사진은 쌍둥이빌딩 무너지기 며칠전.


3. 색소폰 레퍼토리 12곡 만들기, 여차하면 색소폰 사기.

작년 10월께부터 배우던 알토색소폰. 따지자면 배운지 일 년이 넘었다지만 일주일에 고작 한번 점심시간때

45분 수업, 거기다 역시 일주일에 한번 될까말까한 개인연습시간인지라 우스운 실력이다. 색소폰을 빌려주며

연습시켜주는 곳이라 아직 색소폰도 안 샀으니 말 다한 거다 실은. 그래도 선생님 왈 다른 아저씨들은 색소폰

기본 조금 배우고 바로 '성인가요'로 넘어가지만 형님은 마침 '초견(악보를 보고 바로 읽어내리며 연주할 수

있는 능력)'도 좋고 재지한 감도 있고 하니 제대로 재즈를 해보자고, 나름 탄탄하게 기본기를 닦고 있는 중.

이제 대략 연말께부터 레퍼토리 만들기에 집중하려 했으나 워낙 이런저런 점심약속이 많아 한달 쉬기로 하고

내년 1월부터 다시. 한달에 한곡, 그렇게 연습하다가 집 가까운 곳의 색소폰 동호회 같은데 찾아봐서 색소폰

사서 독립할 예정이다.


4. 수영 배우기(바다 수영이 가능할 정도로)

극심한 운동신경 부족증에 시달리는지라, 수영은 늘 죽지 않을 정도로만 하고 있었다. 그나마도 파란 페인트칠

깔끔히 칠해진 실내 수영장에서나 하지, 시퍼런 바닷물이나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 이끼 짙푸른 오아시스같은

곳에선 목숨을 내걸고 한두번 뛰어들었다간 지쳐 널부러지는 거다. 다이빙 하는 포즈만 잡고 사진찍고 돌아설

때의 그 씁쓸함이라니. 마침 지구 온난화의 기세가 날로 흉흉해지는 이때, 수영은 생존기술이다. 바다 수영이

가능할 정도, 최소한 배영이 가능할 정도로는 수영을 배워야겠다. 겸사겸사 유선형 몸매도 만들어보고.


5. 네팔/쿠바/페루 중 하나 여행가기.

네팔의 주요 수출자원 하나가 '자아'라던가, 네팔을 혼자 배낭여행 다녀온 남자와는 연애도 하지 말란 이야기가

있다지만 몇년전부터 네팔은 로망이 되어버렸다. 카스트로가 죽기 전에는 꼭 가봐야 한다는 쿠바 역시, 생각만

하면 조바심이 나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나라가 된지 오래고. 쿠바. 큐바. 쿠우바. 그러던 중 국립중앙박물관에

잉카보물전을 시작했다는 이야기에 잊고 있던 나라 이름이 하나 떠올랐다. 페루. 이름만 들어도 정말 뭔가

클래식하면서도 신비한 느낌이 그득한 나라다.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중의 하나에선, 마방진을 풀어서 마법을

부리던 팬더에게 맛난 마멀레이드 잼을 원없이 먹여줬던 할머니가 페루에 살았댔다.

문제는 어느 나라를 가건 짧은 일정으론 녹록치 않다는. 대체 내년엔 휴가를 얼마나 쓸 수 있을지가 관건인 셈.


6. 휴대폰에 저장된 사람들 얼굴 사진 모으기.

새로 바꾼 휴대폰에 오늘에야 전화번호부를 옮겼다. 필요한 번호부터 조금씩 옮기자는 생각이었지만, 그러다간

평생 전화번호부를 못 옮기겠다 싶어서 그냥, 대리점에 가서 삼천원 주고 오분만에 옮겨버렸다. 연락을 자주

하거나 얼굴을 자주 보지는 못하더라도 그냥 내게 전화번호가 쥐어져 있다는 것 자체로, 언제든 전화할 수 있단

가능성으로 남아있는 사람들이 고맙단 생각이 들었다. 한번쯤은 다 만나서 얼굴맞대고 이야기를 섞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마다 꼭 상대의 얼굴을 담지는 못하더라도, 2010년엔 주위를 좀더 챙겨야겠단 다짐.


7. 시민단체/정당 활동 좀더 열심히 하기.

대학 때의 고담준론은 차치하고라도, 당장 최소한 내가 먹고 살겠다고 버둥대는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내지르고

있는 '해악'들에 상응하는 만큼의 뭔가는 해야겠다. 그저 단순히 당비 내고 후원금 내던 차원에서 벗어나,

조금은 더 책임있는 역할, 조금은 더 부담되는 역할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오마이뉴스에 드문드문 

싣던 기사들도 좀더 정기적으로 가다듬어진 글을 올리는 게 필요할 거 같기도 하고, 여러모로 여태까지보다는

무게중심을 좀더 공적인 활동 쪽으로 옮겨보고 싶긴 한데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야겠다.


8. 대학원 준비..? 기타 자격증..?

대학원을 가던 해외연수를 가던, 사실 지금은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황. 변수가 많긴 하지만 어쨌든 당장 할 수

있는 걸 하자면 조금씩 대학원을 염두에 둔 그림을 그려야 될 때가 된 거 같다. 이년정도 다녔으니 회사는 이미

적응할 대로 해버렸고, 자칫 이대로 무겁게 가라앉아 버리진 않을까 걱정인 거다. 혹은, 가방끈 늘여봐야 사실

별 도움이 안 된다면 차라리 다른 자격증을 알아보는 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음......일단 2010년은 뭔가 다른

가능성을 구체화한다는 정도에서 만족해야 하려나.


9. 하루하루 기억에 남을 만큼 재미있게 살기.

회사-집-회사-집을 쳇바퀴도는 아저씨가 되기는 싫은 거다. 틈틈이, 없는 짬을 내어서라도 미술관도 가고

여행도 가고, 그렇게 즐길 수 있는 감각을 계속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거 같다. 그냥 하루하루 지나는 게 기억에

남지 않을 만큼 밋밋하고 진부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그 밥에 그 나물처럼 뻔한 궤적을 되밟아 나가는 건

편하기는 하지만 가끔은 살짝 벗어나 주는 것도, 혹은 확 예정없이 질러버리는 것도 매력적이니깐.


물론 연말의 어수선한 분위기, 쉼없는 송년회 러시들 때문에라도 얼마나 갈지 회의적이긴 하다. 그치만 뭐,

언제는 삶이 평온평탄했던가. 그런 핑계로 고작 며칠도 안 되어 때려친다거나, 아예 시작조차 못해서는 곤란한

것들이다. 사실 이런 아홉 가지 다짐들은 단지 새해를 맞아 새삼 챙겨먹은 맘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나아가기

위한 필요조건들인 게다. 그저 어제같은 오늘, 오늘같은 내일을 반복하며 살지는 않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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