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역 트레이드 타워와 그랜드 인터콘티넨탈호텔, 아마도 80년대 후반 올림픽을 앞두고

지어지던 즈음에 찍힌 사진인 듯 싶다. 지금은 반짝반짝거리는 외벽 때문에 그 내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는지 상상도 해보지 않았지만 이 사진을

보니까 감이 대략 잡히는 거 같다.


채 껍데기가 다 씌워지지 않은 채 내부가 슬쩍 들여다보이는 트레이드타워 꼭대기층이라거나

골격만 앙상하게 서 있는 그랜드인터콘의 뼈대라거나. 게다가 아마도 비슷한 시기에 코엑스몰

공사도 있었을 텐데 사진에 보이지 않는 지하에는 또 얼마나 대대적인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을까.


이때만 해도 참, 나직나직한 건물들 사이에서 불쑥 돌출한 두 건물이 눈에 딱 띈다.

그때에 비하면 고작 20년여가 지난 지금은 뭐가 너무 많단 느낌이다. 뭐 54층짜리 건물이니

아직은 낮은 건물이라 말하기는 그렇지만, 그렇다고 딱히 높은 건물이라기도 그런 높이.





따카타르 도하에는 VIllaggio라는 쇼핑몰이 유명하다고 한다. 저녁 시간을 이용해 잠시 호텔을 벗어나 택시를 탔다.

짙게 내려앉은 어둠 사이로도 드문드문 조명이 몇 개 건물을 둥실하게 떠올렸다. 모스크의 단정한 흰색 미나렛이

택시 차창에 바싹 달라붙은 내 눈에 포착.

난...빌라지오, Villaggio는 도하의 시내 중심가에 있는 커다란 쇼핑몰이란 것만 알고 왔을 뿐이고, 심지어는

그 철자조차 제대로 몰랐어서 간판부터 한 장 찍어놓을랬더니 또다시 경비원이 막아섰을 뿐이고..

거대한 단층짜리 쇼핑몰이었다. 출구도 사방팔방으로 나 있어서 애초 들어왔던 출구를 찾기도 쉽지 않다는 이곳은,

천장이 워낙 높아서 실내의 매장들이 2층짜리 건물처럼 외양을 꾸며놓았다. 그리고 높은 천장에 그려진 하늘빛의

말간 하늘. 스타벅스 매장도 보이고, 한국에서 쉽게 보지 못한 유럽 브랜드가 많이 보인다. 파리 샹들리제 거리에서

들러 향수를 폭폭 뿌리고 다시 나섰던 SEPHORA 간판도 뒤에 보이고, PAUL같은 베이커리점도 너무 반가웠다.

한국의 코엑스 쇼핑몰과 비슷하지만, 지하에 위치해 있고 천장이 낮아 다소 답답한 느낌이 드는 그곳과는 달리

하늘이 그려진 높은 천장, 그리고 유럽의 거리 한 블럭을 고대로 떼어온 듯한 매장들의 외장이 훨씬 우아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리고 이런 휴식공간도 뭔가 좀더 아늑한 느낌이다. 무엇보다 사람이 코엑스몰보다 훨씬 적어서 유유히

돌아볼 수 있었던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 중 하나. 이제 흰옷을 펄럭이며 머릿수건을 흩날리는 아랍 남성과

검은 옷으로 둘둘 감은 채 보석같은 두눈만 반짝이는 아랍 여성을 보는 데에는 살짝 익숙해지고 있었으니 그건

빼고라도.

아랍 브랜드도 꽤나 많이 입점해 있었지만, 그 와중에 한국 브랜드가 하나 보였다. 다른 곳들에 비해 너무 심심한

외양에 살짝 실망하고 바로 스킵. 한국 브랜드건 외국 브랜드건 뭔가 발걸음을 끌어야 들어가서 구경을 하지, 이

먼 만리타향까지 나와서 눈에 딱 띄이지도 않고 국내와도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이는 국내 브랜드점을 구경하는 데

쓸 시간은 없다.

중간중간 카타르의 민속공예품, 기념품들을 파는 샵이 있었다. 이곳도 한국과 그다지 다를 것이 없다 싶은 거는,

그런 류의 특산 기념품들이 어딜 가나 비슷비슷하다는 느낌을 피할 수가 없었단 점. 물 담배와 파이프, 단검모양

장식품과 보석류, 그리고 약간의 인형류와 냉장고 자석..그리고 이미 이집트나 사우디의 기념품점들을 구경해 본

나로서는 그 나라들에서 팔던 기념품들 간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 내 보는 눈이 미욱해서인지, 아님 내가 그런 곳만

갔던 건지는 모르겠으되, 아랍권의 토산품들은 보이지만 개별 국가들의 특산품은 안 보인달까. 조금만 생각을

펼쳐보면 애초 아랍 문화권으로 엉성하게 묶이던 지역을 이리저리 개별 '영토'로 구획하고 절개한 '근대국가'로서

정체성 찾기와 역사 재구성의 과정이 일천해서일지도...그렇담 우리 나라는 '한국'이라는 국가브랜드 아래 개별

지역의 정체성을 아직 못 찾고 있어서 그런건가. '한국인'의 외피 아래 숨어있는 탐라인들, 경주인들, 부여인들의

정체성과 지역사를 살려내는 게 지갑을 열고 싶게 만드는 기념품들을 만드는 첩경일지도 모르겠다.

빌라지오가 유명한 이유 중의 하나는, 가운데에 자그마한 십자 형태, 거의 일자 형태의 수로가 있고 거기에 마치

베네치아 쯤에서나 볼 법한 곤돌라가 떠 다니고 있어서라고 한다. 그 수로 한쪽 끝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버렸다.

작은 광장같은 느낌으로 둥그렇게 트인 공간에, 저렇게 선착장이 있고 가족들이 배를 기다렸다가 타고, 내리고

하는 거다. 이쯤 되니 점점 이곳이 아랍 지역인지, 아님 유럽의 어느 쇼핑몰인건지 조금씩 헷갈리기 시작한다.

가까이 가서 살펴본 곤돌라는 다소..짝퉁의 느낌이 강하다. 롯데월드 어드벤처에서 봤던 거 같은 조악한 플라스틱

껍데기가 씌워진 배하며, 저 쌩 알루미늄 삘로 충만한 노하며. 그나마 붉은 가죽을 쓴 듯한 의자가 좀 쌈빡하지만

왠지 '레쟈'같다. 좀 통나무를 깍아만든 클래식한 느낌의 배였다면, 그리고 좀 손때가 묻어나는 노하였다면 훨씬

좋았을 거 같은데 아쉽다. 그리고 이곳이 카타르를 비롯한 아랍지역 갑부들이 와서 돈쓰며 놀다간다는 그런 유명한

쇼핑몰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치만 그렇게 너무 가까이 들이대서 꼬투리 잡으려 눈에 불을 켜지만 않는다면, 이 곳은 정말 꽤나 괜찮다. 이

운치있는 가로등하며, 수로 주위를 둘러친 울타리도 그렇고..바닥의 포석도 무신경한 듯 시크한 비닐장판 따위가

아니라 벽돌을 직접 깔아놓은 것 같다.

물이 새파란 거야 바닥에 파란 색을 칠해 놨으니 그렇다고 쳐도, 저 이층에 있는 커피숍에서 아래를 떠다니는

곤돌라과 주변의 운치있는 건물모양 매장들을 보며 차 한잔 정도는 하는 것도 꽤 괜찮지 싶다.

이런 자그마한 다리도 있었다. 귀여워귀여워..ㅜ 모든 작은 것들이 귀여운 것처럼, 이 다리도 수로도, 자그맣게

축소된 것들이라 더 이뿐 거 같기도 하다. 그치만 또 어떻게 보면 장난스럽다 싶기도 하고.

한 곳에는 저런 공연장도 있고, 지금은 뭔가 공사중인 듯 하다. 구역마다 약간씩 분위기가 다르고, 컨셉도 살짝

다른 게, 건물들의 외관이나 천장의 그림이 달라졌다.

연붉은 색으로 노을진 하늘 아래 반짝이는 곤돌라. 여기가 수로의 다른 쪽 끝이다. 걸어온 거리를 보니 꽤나

길었던 거 같다. 막 곤돌라에 탑승하는 아랍인 부녀..인 듯 하다.

옷에 붙어있는 택을 가만히 보니까, 아랍에미레이트,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 카타르 등 다섯 국가의 화폐 단위로

금액이 붙어있다. 이 나라들에서 온 사람들이 주된 고객이란 뜻이겠지. 유럽에서 온 관광객들이 여기를 굳이 올

리는 없으니, 역시 내 생각대로 아랍 지역의 부유층이 유럽 분위기를 느끼며 쇼핑을 하고 싶을 때 여기에 오는 거

같다. 자그마한 형태로 축소된 유럽식 테마파크.

심증이 굳어지니 여기저기서 보이는 것들이 모두 그 심증을 굳히는 단서들로 보인다. 쇼핑몰 한 귀퉁이에서 마치

BGM처럼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는 저들은, 파리 지하철역에서 그토록 쉽게 보이던 악사들을 따라한 거 같고,

유럽 분위기를 내려고 '알바'를 고용해서 쓰고 있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우르르 나타난 한 무리의 '있어보이는 사람들'. 유한계층의 표징처럼 느껴지는 저 하이얀 옷을

나빌레며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포스와 기품이...왕과 가까운 사람들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또 보이는 검은 옷의 여인들. 여기는 사우디랑 달리 여성들끼리도 자유롭게 거리를 나서고, 옷차림도

그렇게 까탈스럽지는 않은 것 같다. 쇼핑몰이어서 그런걸까 아니면 카타르 자체가 훨씬 개방적인 분위기여서일까.

가만히 저 검정색 장옷도 보다보니까 여기저기 멋을 낼만한 구석이 있었다. 소매 끝에 자수를 화려하게 넣는다거나

천의 재질 자체를 고급스런 광택이나 텍스타일이 느껴지도록 한다거나.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한국산 천이 가장

고급 소재라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그 천 자체에서 미감을 예민하게 느끼기 때문에, 딱 보기만

해도 어디 천인지, 고급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한다.

시간이 훌쩍 지나고, 갑작스런 호출 때문에 부랴부랴 호텔로 돌아나서는 길. 빌라지오 앞에 주차장에 즐비하게

늘어선 고급차들을 지나쳐 택시를 잡아탔다.
삼성동 트레이드타워 후문밖에는 자그마한 유리 피라밋이 있다. 이 유리 피라밋은 코엑스몰의 중심부 푸드코트의

채광창 역할을 하기도 하고, 도심공항터미널-그랜드인터콘티넨탈호텔-현대백화점-트레이드타워-코엑스 건물로

둘러싸인 자그마한 휴식공간의 볼거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말갛게 하늘과 구름이 비치는 날이 있는가 하면,

사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이 마치 예술작품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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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걸 본 누구라도 다음순간 떠올리게 되는 건, 루브르 박물관의 유명한 유리 피라밋일 게다. 파리땅을

밟아본 적이 있는지 없는지를 불문하고 영화속에서든, 티비 속에서든, 하다못해 다른 블로그 속에서든 이미

눈에 익을 대로 익어버린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밋.

규모면에서 따져도 루브르의 그것이 서울의 그것보다 훨씬 크다. 솔직히 코엑스몰의 유리 피라밋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도 않은 귀여운 소품에 불과한 거다. 그리고 구조물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조명시설 같은 백업 면에서

루브르의 유리 피라밋은 그야말로 서울의 남대문 같은-어쩌면 그 이상의-랜드 마크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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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은, 이 역시도 오리지널은 아니었다.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를 따서 워싱턴 모뉴먼트가 만들어졌듯,

이집트의 피라밋을 따서 프랑스의 유리 피라밋이 만들어진 거다. 2004년 이집트에 갔을 때..

"쿠푸왕의 대피라미드에 들어가서 좁은 통로를 기어올라가 맞았던 그 사각형의 반듯한 무덤실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 한가운데 있던 크다란 석관에 들어가 누워보는 특혜를 얻은 것도 정말 색다른 체험이었고. 수십만개의

돌덩이로 짜낸 속이 꽉 차있으면서 정교한 터널과 네모반듯한 방이 있는 그 기묘함. 그 한가운데에 놓인 석실에

누워 잠들만한 사람은, 어떠한 세계를 머리속에 품고 있었을까. 피라미드를 '등산'하는 것도 꽤나 인기있는

익스트림스포츠였다고 해서 나도 꼭 해볼라 그랬는데, 더이상 가능할 법하지가 않다. 낙타타고 있는 경찰이

50미터마다 배치되어 있어서...누군가 떨어져죽은 이후로 그랬다더군. 난 안 죽고 올라갈 수 있는데.ㅋㅋ"

내게 피라미드 내 석관에 눕도록 종용하곤 박시쉬를 요구했던 안내인 아저씨에겐 두고두고 감사할 일이다.

물경 오천년전쯤 지어졌단 그 피라미드, 내 생각엔 스핑크스는 덤이다. 첨에는 맨들맨들 크리스탈같이 이뻤던

연분홍빛 '건축물'이었던 피라미드였다지만, 이젠 그 맨 모습이 거칠거칠 보이면서..뭐랄까, 오천년쯤 지나면

인공의 것도 어떤 경지에 이르는 거 같다. 자연..이랄 경지.ㅋ 피라밋이 눈에 잔뜩 찼다 싶을 때까지 보면서,

지치도록 걸어돌아다녔지만 암만봐도 이건 진짜다.

이래서, 피라밋을 보기전엔 이집트를 말하지 말라 했던 게다.


어쨌든, 파리 여행을 앞두고 여행준비에 여러모로 들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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