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거의 7-8일에 달하는 히말라야 트레킹, 정확하게는 안나푸르나 푼힐전망대 코스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코스를

 

합한 일정의 대단원에 도달하는 즈음. 시욜리 바자르까지 가서 하룻밤 묵고 나면, 내일아침에 두어시간 더 걸어서

 

나야풀까지 가면 트레킹 코스의 끝에 닿는 거다. 한층 더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제 2,000미터 아래로 내려온지라 경사도 훨씬 완만해졌고 길도 편한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나무 가지를 줄넘기삼아 깡총거리는 꼬맹이의 표정도 위에서 만났던 소년소녀들보다 훨씬 밝아보이는 것 같고.

 

 

한쪽으로 산비탈이 상당한 이런 좁고 오르내리막하는 길조차 이제는 굉장히 편하고 다정다감한 길로 느껴지는 수준에 이르렀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부터 흘러내려오는 강물도 훨씬 유속이 느려졌고, 트레킹 코스와의 낙차도 그리 크지 않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이 걷기도 재미있고, 중간에 고삐풀린 염소떼들이 온통 길을 점령하고는 시끄럽게 훈계질하는 것도 듣고.

 

 

중간에서 만난 또다른 염소떼들은, 사람을 겁내면서도 잰 걸음으로 자기들 헛간으로 들어가느라 바쁘다.

 

 

안전한 집으로 일단 피신하고는, 커다란 카메라를 들이대는 낯선 사람이 궁금했는지 고개를 갸웃하며 삐죽삐죽 고개들만 빼밀었다.

 

차가 다니길래, 시욜리바자르에 다 왔는가 했다. 그게 아니라, 사륜구동 지프차는 여기서부터 다닌다고 한다. 비정기적으로 다니는

 

지프인데, 시욜리바자르나 나야풀까지 간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걷는 길은 좀 비포장된 시골길이랄까, 차가 다닐만한 널찍한 길.

 

 

그래봐야 다랭이논을 이쁘게 정돈해서 빡빡한 생업에 힘쓰는 건 산 아래나 위나 똑같고, 자유롭게 풀린 닭들이 천지사방으로 기웃대며

 

닭털을 풀풀 날리고 다니는 것도 똑같고. 차가 다닌다고 해서 딱히 더 발전된 모습이 보이는 건 아니었다.

 

그 비포장된 시골길을 한참 걷고 있는데, 이제야 손님을 다 채운 지프차가 따라잡았다. 온통 물이 범람하고 바윗돌들이 들썩거리는

 

데다가 심지어 저만큼 한쪽으로 기울어진 길을 거침없이 달리는 지프에는 사람이 그득그득, 뒤에까지 저렇게 매달린 채 달린다.

 

지프를 먼저 보내고 걷고 있다가 만난 네팔의 젊은 아가씨. 등짐을 가득 지고는 맨발로 저런 길을 걸어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버스. 이제 저 굉음과 악취를 동반하는 쇳덩어리가 지배하는 영역으로 들어왔구나, 확실히 실감하고 있었다.

 

맑은 공기 마시며 히말라야 산길을 거침없이 내달리던 지난 며칠이 벌써부터 그리워지던 순간.

 

 

그렇게 찻길을 따라 좀 걷다가, 저 강 옆에 모여있는 집들, 시욜리 바자르로 내려가는 샛길로. 그러고 보면 '바자르'란 단어는

 

아랍쪽에서도 시장이라는 의미로 쓰는 단어인데, 뜻도 같고 발음도 같다. 그렇다고 저 동네가 무슨 시장통은 아니고 이전에

 

그런 물물교환의 거점 역할을 한 모양인데, 대체 네팔과 아랍, 멀리 떨어진 두 지역에서 어떻게 같은 단어를 쓰는 건지는 신기할 따름.

 

 

 

시욜리 바자르에 도착,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저녁을 간단하게 먹고 그동안 잘 인도해주고 챙겨줬던

 

가이드 커멀과 맥주를 한잔 나눴다. 그동안 고마웠다는 이야기며, 덕분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는 치하,

 

그리고 나중에 히말라야 트레킹에 관심있어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추천해주겠다는 약속까지.

 

진짜로, 영어와 한국어와 네팔어와 인도어를 굉장히 잘 구사하는 가이드, 게다가 친절하고 자상한 가이드,

 

아무리 네팔 사람들이 순하고 밝고 착하다고는 해도, 이런 가이드는 흔치 않다.

 

우리가 함꼐 나눈 맥주. 독일 맥주던가, 투벅의 공장이 네팔에 있다고 한다. 제법 맛도 좋고 값도 무지 싸고.

 

그가 내 무릎에 압박붕대 대신 감아줬던 그의 손수건. 마치 깃발처럼 그의 방앞 빨랫줄에 얌전히 내걸렸다.

 

그렇게 깊어가는 안나푸르나의 마지막 밤. 이제 다음날 아침 두시간 정도만 걸으면 트레킹도 끝이다.

 

 

네팔어로 '파니'는 물, water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고레파니나 타다파니, 혹은 여기 히말파니까지의 지명에 '파니'가 들어가

 

있는 거라고. 특히나 이곳 히말파니는 히말라야의 물, 이란 의미로 온천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이곳 히말파니까지 오는 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한 데다가 욱신거리는 무릎을 뜨거운 물에서 좀 쉬게 하고 싶어, 점심도 먹을 겸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롯지는 이제 우기가 끝나고 몰아닥칠 트레커들을 위해 단장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점심으로 볶음면과 맥주를 주문하고는

 

내리막길로 걸어서 15분정도 걸린다는 온천에 다녀오기로 했다.

 

15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도 나올 생각은 없고, 앞서 가던 가이드가 물소들이 몸을 담근 저 늪을 두고 온천이라는 소리에 잠시

 

시껍했으나, 다행히도 저렇게 정비되지 않은 물구덩이를 두고 온천이라고 하진 않는 듯 했다. 궁금증은 커져만 가고.

 

사정없는 내리막길이라 무릎이 더욱 아파올 무렵, 근 40분 가까이 걸었다 싶던 참에 비로소 강물 옆으로 나타난 온천 건물.

 

건물이라기보다는 그냥 기둥 박아놓고 슬레이트 지붕 얹어놓은 정도지만 저 정도만 되어도 기대 이상이다.

 

너도나도 재빨리 옷을 벗고 최소한의 복장만 갖춘 채-함께 내려가던 일행 중에 여성도 있었기 때문에-콸콸 쏟아지는 온천수로.

 

강물이 이렇게 거칠게 흐르는 산골짜기 아래까지 내려와야 했으니 롯지에서 여기 온천까지 오는 길이 그리도 험했던 거다.

 

 

그 와중에 먼저 와서 실컷 즐기다가 다시 위로 올라가려는, 예수처럼 생긴 서양 아이 하나. 그러고 보니 그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벌렁 누워 가방에 꽂힌 우쿨렐레를 연습하던 그 녀석이다. 여성 앞에서도 거침없이 덜렁덜렁 지나가는,

 

그리고 여성 역시도 그다지 당황하지 않는, 서양인들의 그 쿨함과 자연스러움에 잠시 이질감을 느꼈던 순간이기도.

 

옆에서는 두번째 탕을 한창 공사중이었다. 이곳에서 상주하는 것 같은 대머리 할아버지랑 그의 아들인 것 같은 두 명이서

 

언제 다 지어질까 싶은 네모난 탕을 만들려는 듯. 물은 뜨겁진 않고 따뜻한 정도, 그치만 몸을 푹 담그니 피로가 확 풀린다.

 

굳이 하나 더 짓지 않고 하나 갖고 복작복작하는 게 왠지 더 이곳의 분위기에는 어울릴 거 같은데.

 

점심으로 나온 볶음면. 다시 올라오는데 걸린 시간은 역시 30분이 넘었던 듯 하고, 올라오느라 어느새 온몸은 땀범벅이 되고

 

조금 나아진 듯 했던 무릎도 다시 아팠지만, 그래도 한번 꼭 들러보길 강력히 추천하고픈 히말파니의 온천.

 

 

한결 개운해진 몸과 가벼워진 무릎으로 한참을 걸어 가던 참에, 이날따라 유난히 햇살이 뜨거워 쉬엄쉬엄. 나오는 마을이나

 

롯지마다 한번씩은 앉아서 땀도 식히고 선크림도 다시 바르고 했던 것 같다. 챙겨간 볼펜을 줘도 좀체 웃지 않던 요 꼬맹이.

 

색색의 빨래들이 얹힌 은빛 슬레이트 지붕, 그리고 마당에 편히 자리잡고 앉아 옥수수를 말리는 아주머니의 다부진 머릿수건.

 

 

와중에 굉장히 이쁘게 꾸며졌다 싶던 어느 마을, 간드룩 지방에 있는 어느 조그마한 마을이었는데 지천에 사루비아가 넘실넘실.

 

길은 거의 헷갈리거나 잘못 들 염려가 없는 한길이었지만 그래도 중간중간 샛길도 나있고, 그럴 때마다 이렇게 친절한 표지판 등장.

 

게다가, 어느 마을에서부터 졸졸 쫓아오더니 아예 앞장서서 인도해주는 길앞잡이 개까지 친절하다.

 

비록 중간에 물소가 길을 막고 있으면 겁먹고선 꼼짝도 못하는 순둥이에다가, 가파른 내리막 앞에선 주춤거리다가 절룩거리는

 

내 다리 사이로 진로방해를 하는 녀석이긴 헀지만, 그래도 잠시 쉬어가려 배낭을 내려놓으면 다시 돌아와서 같이 쉬어주는 센스쟁이.

 

그렇게 도착한 큐미. 간드룩 지방의 여러 마을 중에 하나라고 하는데, 이 다음 마을인 시욜리 바자르Syauli Bazar에서부터는

 

포카라로 가는 교통편을 탈 수가 있다고 한다. 트레킹을 처음 시작한 나야풀까지 가는 마을버스를 타고, 거기에서 다시 택시를 타는

 

코스라고 하는데, 그러고 보니 7일동안 바퀴달린 거나 엔진같은 동력기관을 본 적이 없다. 왠지 그 세계로 다시 들어가는 걸 최대한

 

미루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큐미에서 하룻밤 자고 내일 들어갈까 아니면 시욜리 바자르까지 예정했던 대로 갈까 고민 시작.

 

꽃나무도 많고, 롯지 한쪽에서는 이렇게 재봉틀이 발랄하게 돌아가는 소리를 내고 있는 말끔한 마을이어서 꽤나 맘이 동했지만

 

그래도 온천빨이 아직 남아있으니 좀더 걸어두기로 했다. 시욜리 바자르까지 가서 저녁 먹고 자는 걸로 결정.

 

 

큐미에서 잠시 앉아서 쉬었다 가려는데 난데없이 들이닥친, 끝도 없이 이어지는 당나귀떼들. 마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들에서

 

출현했던 듯한 수많은 당나귀들이 ctrl+c, ctrl+v로 찍어낸 느낌으로 불어나있었다.

 

그 와중에 앞엣놈 엉덩이 냄새를 맡는 놈도 있고, 괜히 대열을 벗어나 사람들에 흥미를 보이는 녀석도 있고.

 

그러고 보면 무릎이 아프기 시작한 게 하산길 초입이니 이틀째 아픔이 지속되고 있는데, 걷고 있는 시간은 좀체 줄지 않았다.

 

아침 일곱시반쯤부터 오후 대여섯시까지, 점심먹는 시간이나 쉬는 시간들을 빼더라도 대략 열시간 내외 걷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매일 비슷한 일정이다. 아침 7시반쯤 출발, 오후 4시에서 4시반쯤 대충 도착. 가끔 오후 6시까지 걷기도 하고, 혹은 아침의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4시부터 움직인 적도 있긴 하지만 대충 그 정도씩만 걸어도..하루 열시간 가까이 걷는 거구나.

 

 

히말라야 캠프의 롯지는 고작 세 동이던가, 위로 올라갈수록 롯지 수도 줄어들고 마을 자체가 형성되지 않은 곳이 많다더니 정말이다.

 

그래도 납작평평한 돌들로 이렇게 테라스도 만들고 계단도 쌓아두고, 생각보다 훨씬 잘 정비되어 있어서 놀랐다.

 

그렇다고 따뜻한 온수가 나온다거나 난로가 지펴지는 건 아니어서 꽤나 추웠지만, 덕분에 제대로 씻지도 못한 땀과 땟국물이

 

그렇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방금까지 열심히 걸으며 온몸 가득 흠뻑 젖었던 땀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뽀송뽀송해진 상태.

 

건물 외벽에 나와있는 요 단촐한 시설이 세면대. 여기에서 씻고 이닦고 발도 닦고.

 

어느 포터의 등짐. 대나무로 엮어 만든 등짐에 대충 질긴 천을 찢어 묶어서는 어깨끈을 만들었다.

 

히말라야 캠프 앞쪽의, 아마도 공용 설비라고 해야 하나. 뭐 딱히 롯지끼리 니꺼내꺼 갈라 쓰는 분위긴 아니라지만 여긴 위치상 공용.

 

속속들이 집결하는 트레커들. 촘롱 이후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오르는 길은 이길 하나밖에 없으니 사람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눈인사만 주고받던 사람들이던 '나마스떼~'하고 인사를 나눴던 사람들이던 결국 몇번씩 얼굴을 마주치게 된다.

 

 

아직 우기의 끄트머리라 그런가, 그러고보면 4일차에 이르도록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왔다. 그나마 하루 빼고는 오후 늦게부터 비가

 

오기 시작해서 걷는데 지장이 없었지만, 중간에 하루 비맞으며 마침 굉장히 오래 걷고 났더니 굉장히 타격이 크다. 옷도 다 젖고.

 

3천미터 어간에서부터 주의해야 하는 고산병.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거나, 식욕이 없다거나, 몸이 무거워지는 등등 다양한 증세를

 

보인다고 하는데, 요새는 고산병 약으로 (혈관 확장효과 때문에) 비아그라를 많이 쓰기도 한다고 한다. 그치만 현지 가이드의 추천을

 

듣건대, 그리고 내 경험상으로도 단언컨대, 고산병에는 마늘수프가 최고다. 갈릭 수프.

 

저녁은 간단하게 갈릭수프와 감자전 비스무레한 것. 갈릭수프는 기대 이상으로 꽤나 맛있었고, 몸도 따뜻하게 덥혀주는 효과까지.

 

네팔같은 빈국의 경제 상황을 가늠케 해주는 것 중 하나는 이런 기본적인 생필품들의 퀄리티를 보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느쪽이 칼날인지 헷갈릴 정도로 얇디얇은 저 손잡이들. 칼뿐 아니라 숟갈이나 포크 역시 마찬가지다. 칼날만큼 얇은 손잡이.

 

그리고 가스 버너. 한국의 등산가들이 갖고 와서 쓰다가 놓고 갔다던가. 왠지 이 동네에 딱 어울리는 물건이지 싶다.

 

 

그리고 전기조차 귀해서 알전구가 빠져 있는 내 숙소방. 전기가 끊긴 건지 전구가 비싼 건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내게 지급된 초 한자루.

 

바깥 기온과 딱히 다를 바 없는 실내 기온 때문에 오리털 침낭을 덮고 그 위에 이불을 또 덮었지만 별무소용이라, 따뜻한 물을 다시

 

주문해서 계속 마셨다. 양초도 어찌나 조악하고 조그맣고 얇은지, 생일 케이크 위에 올라가는 초라고 해도 믿겠다.

 

그래도 이토록 짙고 농염한 어둠 속에서도 양초 한 자루, 그리고 헤드랜턴 두개를 가지고 히말라야의 긴긴 밤동안 책도 읽고

 

일기도 쓰고. 가져갔던 책이 네 권인데 전부 다 읽고 돌아왔다.

 

 

 

 

촘롱, 해발 2,170미터까지 내려온 셈이지만 이제부터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는 죽 올라가는 한 길이다.

 

제법 큰 이 마을에서 당분간은 누릴 수 없을 따뜻한 물 샤워를 즐기고 떠나기 전, 새벽 댓바람부터 안나푸르나 봉우리들이 훤히 보인다.

 

안나푸르나 1, 안나푸르나 사우스, 그리고 두 갈래로 갈라진 물고기 꼬리를 닮았다 하여 붙은 이름 마차푸챠레

 

(마차 : 물고기, 푸챠레 : 꼬리)의 봉우리가 아무런 장애물없이 훤하게 보이는 아침이다.

 

 

밤새 묵었던 촘롱의 롯지. 그래도 비에 쫄딱 젖은 옷들과 우비들은 모두 방앞의 빨랫줄에 걸어놨지만, 밤사이에 말랐을리 만무.

 

 

안나푸르나 1과 안나푸르나 사우스.

 

그리고 마차푸챠레. 슬쩍 빗겨올라치는 햇살이 뚜렷한 선을 긋는다.

 

4일차의 아침. 오늘은 촘롱에서 시누와를 거쳐 2,920미터에 있는 히말라야 캠프까지 올라가는 걸로 일정을 잡고.

 

그새 태양은 불쑥 떠올라 산봉우리들과 거의 눈높이를 맞췄다. 여전히 시꺼먼 어둠 속에 잠겨있는 산의 아랫도리.

 

창밖으로 보이는 안나푸르나 봉우리의 저 디테일한 근육들과 하얗게 반짝거리는 만년설이 빚어내는 몽환스러움.

 

 

숙소의 내 방 앞을 장식했던 티벳 불교식의 부적들.

 

 

역시나 2인룸이었지만, 이 롯지의 여남은 개 되는 방이 텅텅 빈 채였으니 혼자 넓찍하게 쓸 수 있었다.

 

 

  출발해서 몇 걸음 옮기기도 전. 아침밥 짓는 연기가 부엌의 문짝 위로 새어오르고 닭들과 염소들이 겁없이 길을 막고 서는.

 

 

온통 산악지대다 보니 바퀴 달린 도구를 쓰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 당나귀를 시키거나 아님 사람이 직접 나른다.

 

 

이렇게 자기 키를 훌쩍 넘는 짐꾸러미도 어떻게든 꾸메꾸메 엮어서 한발한발 조심스레 옮겨다니는.

 

 

커다란 협곡 위를 가로지르는 흔들다리. 굉장히 길고 출렁거리는 게 장난이 아니어서 소름이 슬쩍.

 

그나마 다리 옆 얼마전까지 썼다는 허름하고 다 부서져내린 다리를 보니 이게 훨씬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잠시 쉬어가는 참, 촘롱 위에서부터는 미네랄 워터도 팔지 않고 그냥 히말라야 산에서 내려온 물들을 끓여서 정제해서 판다고 하더니.

 

그리고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물값과 음식값이 비싸진다. 그래봐야 물 1리터에 400원 어간에서 1000원 어간으로 오른 셈이지만.

 

 

제법 화사하게 꾸민 집 한 채 앞뒤로 층층이 다랭이논이 가꾸어져 있고, 알록달록한 색색의 빨래가 길게 꼬리를 늘어뜨렸다.

 

 

여태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니 저 산등성이들 사이로 요리조리 걸었던 것만 같고.

 

잠시 쉬어가는 참에 벌러덩 누워 하늘을 보니 새파란 게 옆엣 롯지의 새파란 굴뚝과 깔맞춤을 했나 싶다.

 

 

 

어느 집에서는 갓 태어난 듯한 새끼고양이가 베개 위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지만, 이미 내 몸도 힘들어서 쓰다듬어줄 생각도 못하고.

 

 

아침에 출발하고 또 네다섯시간, 점심을 먹기로 한 마을, 시누와가 눈앞에 나타나는 것을 보니 걸음이 다시 빨라진다.

 

 

어제 촘롱까지 오는 길에 워낙 무리를 한 탓인지 오늘은 체코에서 왔다는 70대 노부부와 페이스를 맞춰 걷던 참이었다.

 

78살의 할아버지와 77살의 할머니. 오르막이건 내리막이건 평지건, 한결같은 페이스와 보폭으로 걸어가시는 게 뭔가

 

인생의 연륜이 묻어있다는 생각을 절로 들게 만드는 두 분. 그래서 결국 무턱대고 달리는 젊은이들보다 빨리 도착하던.

 

할튼, 해발 2,360미터 시누와에 도착. 점심시간이다.

 

12월 26일부터 29일, 군대놀이 3박4일. 자그마치 포항까지 내려가서 받고 왔다.


항상 경이롭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은 즐겨라'라는 마법의 말은, 사람을 좀체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 그 공간에선

너무도 강력하다. 당신들은 이곳에 절대 놀러온게 아니며 '불굴의 투지와 필승의 신념으로 세계최고의 무역진흥

서비스기관을 만들라'고 엄포놓는 빨간모자 교관들이 밉살스러워서, '난 절대 놀러왔으며 우리 재미있게 놀자'고

입소 소감을 밝히긴 했는데 사실 잘 놀았다.ㅋ


다만 문제라면, 개싸움도 편든다는 '우리가 남이가'식의 막가파식 동기애를 자랑하는 해병대 교관, Y/N만을

요구하는 발화라는 것이 얼마나 앙상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던 교관들과의 관계, 대체 왜 해야 하는지-알아서

길어올린 '재미'라는 걸 빼고 나면-알 수 없는 제식훈련/유격훈련/해상IBS훈련. 목소리크고 힘세고 지저분하고

우왁스러워야 하는 그 공간의 남자냄새는 생략하더라도.


물론, 일탈적 상황에서 더욱 진하고 끈끈한 동기애가 나올 수야 있겠지. 조심스레 이것저것 재고 체면치레하는

과정을 생략할 테니깐. 글치만 그렇다고 해서 평소로 복귀해서도 그러한 동기애가 굳건히 유지되며 발휘될

거라는 건 뭔가 논리적인 비약이야. 아님 그러한 인간의 감성 자체가 논리적 비약이거나. 어쨌거나, 이로써

12명의 동기와 연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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