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대륙의 보물들 중에서도 귀중하다는 것들만 선별해 무사히 타이완 섬까지 수송해냈다는

그 군사 작전 자체의 이야기만으로도 경이로움을 들게 하는 곳, 타이완의 고궁박물관이다.

부패하고 무능력하던 장개츠의 국민군이 패배를 거듭하며 결국 대륙 밖으로 축출되는 와중에도

그때까지 발굴된 중국 대륙의 국보급 문화재들을 모으고 선별하고 안전하게 포장해서 바다건너

타이완섬까지 수송하는 과정이라는 건, 어쩌면 그 자체만으로도 또 하나의 전쟁이었을 거다.


그 곳을 둘러보다가 문득 '자연이 부르는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다소 당황하지 않을까 싶었다.

남자화장실과 여자화장실이 한 곳에 모여 있지 않고 이쪽 끝과 저쪽 끝에 떨어져 있어서, 중국의

귀중한 유물들을 구경하다가 타이밍이라도 놓칠라 치면 저런 일이 종종 생길 게다. 남자가

다짜고짜 덥썩, 에라 모르겠다 하며 여자화장실로 뛰어드는. 


*  타이완 고궁박물관에서 황제의 다과를 맛보다.

중례츠, 한자 그대로 읽으면 충렬사. 타이완의 '호국영령'들을 모셔둔 일종의 사당이랄까, 아님

현대적인 단어로 고치자면 '현충원' 정도 되려나.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선전되는

애국심의 화신들을 모셔두고 살아있는 사람들과 후세의 귀감으로 활용하기 위한 그 공간에서

정작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기본적이고 인간적인 공간은 꽤나 홀대받고 있었다는 느낌.


* 파란하늘, 하얗게 작렬하는 태양 아래 붉은 피 흥건한 중례츠(忠烈祠),




* Mother nature is calling me, 직역하면 '자연이 나를 부르고 있어' 정도가 되겠지만 보통

이 문장은 허물없는 사이에서 화장실 다녀오겠다는 의미로 새겨지게 됩니다. 여행을 다니며

결코 빠질 수 없는 '답사지' 중 하나가 그곳의 화장실이란 점에서, 또 그곳의 문화와 분위기를

화장실 표시에까지 녹여내는 곳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국내외의 특징적인 화장실 사진을

이 폴더 'Number one or number two?'에 모아보고자 합니다. 그 표현 역시 우리말로 치자면

'큰 거야 아님 작은 거야?' 정도겠네요^^





한자 그대로 읽자면 충렬사, 그리고 중국식 발음으로 읽자면 중례츠, 조금 답답한 게 한자는 뻔히 보이고 무슨

뜻인지, 한국식으로 읽음 어떻게 읽는지 다 알겠는데 좀체 타이완 사람들과 소통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중례츠'라는 발음 역시 아무리 책으로 보고 눈으로 익혔어도 좀체 입에 붙지가 않아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중례츠, 라는 현판이 걸린 좌우에는 인을 이루라는 뜻의 성인(成仁), 그리고 의를 취하라는 뜻의 취의(取義)라는
 
조금 작은 현판이 걸린 채 내부로 들어가는 세 개의 아치형 정문 위에 걸려있었다.

말하자면 여기는 서울의 현충원 같은 곳이랄까. 일제 세력과 중국 내 공산당 세력과 항전하며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를 위해 목숨을 바친, '타이완'의 애국선열을 위한 공간인 거다.

해가 중천에서 약간 이그러지고, 그렇지만 이제 잔뜩 열받은 땅이 한창 열기를 푹푹 쏟아내기 시작하는 오후2시

거칠고 하얀 바닥 표면에서조차 섬광처럼 번뜩이는 햇살이 튕겨나왔다.

북경 자금성 내의 태화전을 따라 지었다는 중례츠, 충렬사의 본전에 얹힌 금색 지붕도 어찌나 반짝거리던지.

처음 도착했을 때만 해도 나 밖에 없다 싶더니, 슬금슬금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관광버스에서 올컥울컥

토해내지고 나니 어느새 북적북적대고 있다. 정문의 뒷면 현판에는 만고유방, 충의천추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이들의 타이완을 향한 '애국'의 의기가 오래도록 전해지리라는 희망과 주문, 그리고 그들의 충성과 '의로움'이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는 계시나 점지와도 같은 의미렸다.

공사 중인지라 내부에선 사실 가까이 들어가 살펴보거나 건물 안에 들어가 돌아볼 만한 여지가 전혀 없었다.

아마도 저 누각 아래 있는 흉상도 장개석의 것이 아닐까 싶은데, 그가 공산당에 쫓겨 내려와 원주민을 압박하며

만들어낸 '타이완'이란 나라에 대한 애국의 대가, 애국의 보상을 위한 공간인 셈이다, 여긴.

화려한 문양들, 고궁박물관에서도 느낀 거지만 이들의 용 문양에는 꼭 발톱이 다섯 개다. 황제의 용에는 발톱이

다섯 개, 왕이나 제후의 용에는 발톱이 네 개나 심지어는 세 개. 조선시대 왕의 곤륭포니 의복이나 장신구에

나타난 용의 발톱은 늘 네 개였다. 사대교린의 국제질서와 관념 하의 세계였으니 그게 당연한 거였다.

태양은 양껏 때려부었지만 그래도 바람이 멎지 않아 다행이었다. 내부 양켠으로 쭉 늘어선 깃발을 쉼없이

희롱하는 바람 덕에 '청천백일기'가 휘날리는 걸 원없이 봤다. 파란 하늘에 선명히 박힌 하얗고 강렬한 태양,

그리고 온통 시뻘건 핏빛으로 가득한 대지. 그게 청천백일기에 담긴 의미 혹은 비주얼이라는.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고 정결한 몸과 마음으로 매시 정각에 시작하는 위병 교대식을 보기로 했다. 9시부터

17시까지 문을 연다고 하는데, 그럼 17시 정각에도 교대식을 하는 걸까 아님 그냥 위병들이 들어가고 문닫으면

끝인 걸까 모르겠다. 그나저나, 참 촌스럽고 색이 바랠대로 바랜 표지판. 아무리 여기가 국가를 위해 죽어간

영혼들의 애국심과 용맹을 기리는 공간이라 해도, 산 사람은 싸야 할 거 아니냐.

꼼짝도 않고 밀랍 인형처럼 굳어 있던 위병들이 움직이기 직전. 그들은 숨을 쉬는지조차 눈치채지 못하게

아주아주 얌전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고, 그러고 있었을 거다.

기합소리와 함께 시작된 위병 교대식. 아마 매 시간마다 정복의 색깔이 흰색과 파란색, 교대로 바뀌나보다.

교대할 위병 두명, 그리고 약간 앞에서 그들을 인솔하는 인솔자 한 명이 팔과 무릎의 각을 탁탁 맞춘 채

구분동작으로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제자리걸음부터 시작해 서서히 굳었던 몸을 풀기 시작한 위병 둘.





다섯 명이서 내부로 스무 걸음쯤 걸어들어가더니 한참을 총도 돌리고, 군화로 착착 소리도 내고, 그랬다.

움직임은 과히 나무랄 데 없어서 볼 만 했지만, 기본적으로 그런 군대 병정놀이따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요새 많이 자제하고는 있지만 또 울컥, 아뉘 그 EBS 강사가 한 말 다 맞잖아. 군대가서 사람죽이는 거 배워오는

것도 맞고, 군대가 애초 사람죽이고 나라지키려고 가는 거잖아. 게다가 그에 더해 온갖 사회의 더러운 꼴의

원형에 익숙해져 오는 것도 맞고, 그렇게 자발성도 없고 동기부여도 안되는 허섭스런 징병제도의 부작용이

긍정적 효과보다 크다 싶으면 다른 방식을 찾아가는 것도 맞는 거고. 근본적으로는 군대나 경찰, 국가로부터

인증된 합법적 폭력집단이 해체되어야 하는 것도 맞는 거고. 뭐가 문제인 거지..?

이들 위병들이나, 이미 이 공간에서 기려길 자격을 획득한 군인들이나, 타이완 쪽에서 보면야 나라를 사랑하고

가족을 지키고 '진충보국'하는 모범사례겠지만, 사실 그들은 적국의 군인과 민간인을 살상함으로써 그걸 가능케

하는 거다. 전쟁터에 총알받이되러 나간다, 는 표현의 어폐는 그걸 숨기는데 있다. 전쟁터에는, 전쟁은, 사람을

죽이러 가는 거다. 그리하여 파란하늘, 하얗게 작렬하는 태양 아래 대지를 온통 적의 피로 붉게 물들이려는 거다.


이 분 파란색 정복에 있는 명찰을 보니 공군의전, 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면 흰색 정복은 공군이 아닌 육군이나

해군인 걸까. 왠지 삼군이 번갈아 한 시간씩 지키고 있지 않을까 하는 심증이 굳어졌지만, 그걸 확인하자고

한시간이나 더 여기서 개기자니 딱히 볼 거라곤 교대식밖에 없는 곳에 발이 묶일 순 없다 싶어서 포기.

드디어 교대해 줄 병정 둘이 위에 올라섰다. 꼬맹이들은 어찌나 열중하고 보고 있는지 입을 헤 벌린 채 눈도

똥그랗게 뜨고 있는 게 꽤나 귀엽다.

대 위에 올라서고 나서도 한참 계속되는 일사분란한 '구.분.동.작'. 왼다리 들어, 오른다리 들지 말고 왼다리놔.

왼다리 들고 오른다리 부딪혀. 총 한바퀴 돌리고 멜빵끈에 손가락 걸어, 뭐 요런 식의 성마르고 까탈스런

청기백기 게임처럼 한없이 지속될 거 같은 그들의 움직임이 기이한 침묵 속에 계속되었다. 들리는 소리라곤

가끔씩 부딪혀주는 군화발 소리, 그리고 휘둘려지고 꽉 쥐여지는 총에서 비롯하는 철컥대는 쇳소리.

약 십오분에서 이십분, 그렇게 위병 교대식이 끝나고 나니 다시 위병 둘은 밀랍인형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잠시 어물대는 사이 관광객들을 다시 꾸역꾸역 버스 안으로 소환되어 쌩하니 떠나고 말았다. 



병정 둘이 남았다. 왠지 그들이 딛고 선 중례츠의 바닥이 온통 붉은 핏빛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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