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지나가고, 남은 건 좌절과 냉소뿐이었다.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출발하여 정치에 대한 냉소로 끝난 싸움.

 

그건, 이른바 '시대정신'이라 거창하게 호명되는 일반대중의 정서가 어느결엔가 돌고 있는 뫼비우스의 띠같은 것이기도 하다.

 

 

불신과 냉소의 악순환.



촛불의 실패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있고, 우선 촛불이 실패했는지에 대한 평가부터 다르겠지만 내겐 그렇다.

 

촛불은 아무 것도 얻지 못했고, 아무 것도 저지시키지 못했으며, 촛불을 든 스스로조차 거의 바꾸지 못했다.

 

오히려 안으로 더욱 옹송그린 채 냉소만 머금게 만들었으니 철저하게 패배한 싸움.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정치에 대한 거부, 부정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질서유지선 안에서 '상식' 수준에 머문 채 점점이 흩어져 있었다.

 

'하나'였다..고 말하지만 그 누구도, 어떤 의제도, 그들을 대변하거나 응집시키지 못했다.

 

광우병 걸리기 싫다는 정서만 공유했을 뿐, 그래서 어쩌겠다는 건지, 뭐가 문제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진전되지 못한 건 그래서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심화시키는 과정, 그 소란스러움과 긴장감이 바로 정치의 본령일진대 그걸 거부했다.

 

(논쟁이라 부르기도 어설픈 '비폭력 논쟁' 나부랭이가 고작이었고, 유모차 부대는 '해맑은 아이들의 눈에 맨날

 

싸움박질만 하는 정치인들은 부끄럽지 않나요' 따위의 신화적 정치에의 감성에 감응하는 면이 없지 않다.)



그리고 안철수.

 

 

변화를 원하지만 정확히 뭘 원하는지 모르는, 게다가 정치를 혐오하도록 교육받은 사람들이 켜든 또다른 촛불이나 다름없지 싶다.

 

현상타파의 눈먼 의지(혹자는 그 눈멀었음을 상식이라 포장하기도 하지만).

 

그리고 정치(과정)에 대한 불신과 정치 그 자체에 대한 부정이 아마도 2012년 대선후보 안철수라는 아바타에 투영된 '시대정신' 아닐까.

 

 

대선에 뛰어든 이후 현재까지 그가 보여준 짧막한 말들과 모호한 입장에서 볼 수 있는 건,

 

대개 그런 식의 '정치에 대한 부정/거부', 정치에 대한 혐오에 그 뿌리를 기대고 있는 '앙상한 상식' 뿐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런 식으로라면, 그가 만의 하나 대선에 승리한다고 치더라도 별반 기대할 것은 없어 보인다.

 

가치판단과 입장이 없는 '상식'에 기대어 공공의 장에서 발언하고 정책을 실시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는 데다가,

 

어떤 정책을 어떠한 철학으로 펼쳐낼지에 대한 공백상태에선 또다시 대중의 열광은 냉소와 불신만 불러일으킬지 모른다.

 

 

촛불을 거치며 크게 소진해 버린 변화와 혁신의 욕망, 그 에너지가 다시 방향을 잘못 찾고 소진되어 버리는 건 아닐지 우려스럽다.

 

암울하게도, 지난 촛불의 낯부끄러운 패배와 뒤따른 냉소의 시기..수년간의 절망은 곧 재연될 거 같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경우에도,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야당 누군가가 대통령이 되는 경우에도, 준비 안된 안철수가 되는 경우에도)

 

 

안철수를 보면 촛불이 떠오르는 이유다.

 

 

 

 

 

* 참고삼아 읽어둘 만한 글 하나.(글 내용과 크게 관련은 없지만)

 

 

촛불시위 2년, 내가 쓰는 ‘촛불 반성문’ (시사평론가 유창선, 2010. 5월)

 

 

 

진보집권플랜 - 6점
조국.오연호 지음/오마이북

노무현은 삑사리로 들어간 뽀록구


노회찬 진보신당 전 대표가 말했다. "1948년 이래 가장 나은 정부가 1987년 이래 가장

나쁜 정부를 탄생시키는 배경이 된 이 역설을 고민해야 한다"고. 노무현 정권이 어쩌다

이명박 정권을 탄생시키는데 가장 크게 공헌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이야기일 거다.


왜일까. 왜였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노무현의 사후 1년이 지나고 어느 잡지에서

'우리시대 노무현의 정의'를 모으는 기사에 내가 썼던 한 줄이 여전히 난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의 재임 시절에도 늘 생각하던 것. 내가 그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


@ytzsche "노무현은 삑사리로 들어간 뽀록구다."

그를 대통령으로 앉혀놓고 진보적인 정책을 강제할만큼 그도 우리도 준비되지 않았는데 덜컥 그가 대통령이 되고, 돌아갔죠. 삑사리로 들어간 뽀록구, 실력은 금세 바닥을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 “노무현은 마라톤 42.195Km이다.”(2010.5.23, 시사IN)



이 책의 내용보다 더 궁금했던 것


사실 이 책을 읽기는 굉장히 어려웠다. 나름 2000년을 전후해 대학에서 '돌과 빠이'를

쥐었던 데다가 '진보신당의 (페이퍼)당원'이 내 정체성 중의 큰 부분이라 생각하는 '좌파'로서,

이 책에서 다루는 사회/경제민주화, 교육과 남북 문제, 권력 등의 내용은 내게는 너무

'상식'적인 내용이었던 거다. 진부하고 심심했다.


꾸역꾸역 읽어나가며 다른 곳에 관심이 쏠렸다. 왜 이 책일까. 왜 갑자기 이 책이 대중의

관심을 얻게 된 것일까. 대담이란 형식의 특성상 정식화하고 나면 몇 페이지에 불과한

팜플렛 밖에 안 될 내용인데, 딱히 새로운 발상이나 아이디어도 없는데, 이런 정치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란 쉽지 않은데, 대체 왜 사람들은 갑자기 '진보집권플랜'을 집어들었을까.


몇가지 음흉한 음모론이 있을 수 있다. 노회찬의 사상이 섹시하다며 그를 문화적으로

소비하던 이들에게 잘 생기고 젠틀하며 사상도 섹시한 조국 교수는 가히 팬덤을 몰고 올만한

인물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학교에서도 그랬으니까 새삼스럽지도 않다.) 때론 경악스러운

트렌드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와아~ 하며 우르르 달려가는, 최근 '정의란 무엇인가' 따위

책들에 달려간 새삼스럽고 집단주의적인 구매 성향의 일환일지도. 너무 시니컬한가.



'진보'정권의 집권을 위한 공부 열풍

조금은 희망적이고 싶다. 사람들이 노무현을 거치면서, 준비되지 않은 집권이 결국

그를 죽이고 우리 모두를 질곡에 몰았음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았기 때문이었다고 믿는다.

기적이나 요행처럼 대통령 하나 바뀌어서 될 일이 아니었다고. 그저 구습에 대한

부정이나 분노만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고. 그리고 우리 모두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고.


새로운 비전과 플랜이 필요한 거다. 뽀록구도 실력이라지만 그런 거 금방 바닥이 드러나고

마는 거니까, 다행히도 이제는 '진보'라 자처한다 하여 '빨갱이'로 등식화되는 지경은

벗어난 거 같으니까 좀더 본격적이고 시끄럽게 이야기를 할 때가 온 거 같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국과 오연호가 말을 주고 받은 이 기록은 '진보'를 위한 최소한의 상식선,

최소한의 공유 가치를 품고 있으니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사실 진짜 리뷰는 여기부터.


그렇다. 이 책은 '시작점'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교과서같은 이야기만 있는 듯

보이면서도 현실정치에 적용이 가능해보이는 수준의 정책적 구상과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적 제언들이 들어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이 책은, 조국 버전의 '진보'와 조국

버전의 '집권플랜'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그건 또다시 민주당 위주의 일치단결,

한나라당 말고 될놈 찍자는 '비판적 지지'의 망령을 불러내기 십상이란 점이다.


조국의 통큰 '진보'는 누구인가

그는 계속해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통칭해 민주정권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리고

현재의 야권을 '개혁적/진보적 자유주의' 세력과 '사회(민주)주의' 세력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고 있지만, 그런 전제가 옳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두 정권을 두고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이 급격히 이루어진 시기라 평하기도 하고, 현재의 야권 중 민주당의

적잖은 의원은 수구/보수와 별반 다르지 않은 DNA를 갖고 있다 평해지기도 하니까.


게다가 그의 입장 중에서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도 적잖이 보인다. 한미FTA를 비롯한

자유무역협정 일반에 대한 그의 긍정적인 입장이나, '친미'와 '반미'를 넘어선 '용미'를

하자는 그의 그럴듯하지만 모호한 입장-이미 외교학과 하영선 교수가 익히 말해온

개념이지만 역시 알맹이를 알 수 없는- 따위가 그렇다. 그리고 북한의 3대세습이나

인권 문제에 대해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것도 다른 '진보'와는 균열을 그을 거 같다.


'진보'의 가치를 어떤 정치세력에게 의지할 것인가의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집권, 정권을

장악하는 행위 자체가 정당을 기본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집권했기에

수구/보수의 집권기라고 말하듯 특정 정당이 집권해야 '진보'가 집권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거다. 내가 조국에게 묻고 싶은 질문은 그거다. 현재의 민주당이 집권하면 진보가

집권한 건가. 민주당을 '진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대통령 김대중과 대통령 노무현을

'진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조국 버전 '진보집권플랜'의 한계

물론 조국은 이 책에서 이야기한 여러 이슈에 대한 진보적이고 전향적인 입장을 밝히는

정치세력이 집권하도록 대중이 강제할 수 있다고 말할 거다. 현재의 민주당은 부족함이

많지만 나름 '복지'니 '무상급식'이니 좌향좌하는 기색도 있으니 지켜보자고 말할지도

모르고 연정의 가능성을 이야기할지 모른다. 이 책에서 제기된 진보적인 의제들을 받아서

어쨌든 다음 정권에선 '진보'가 집권하자는 게 그의 취지이고 충정이라는 건 이해한다.


그렇지만, 현실 정치에서 돌아가는 판세는 이미 (당연하게도) 이 책에서 언급된 교과서적인

모범답안을 뛰어넘은 것 같다. 그는 고작 두 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으로 일반론 차원에서

언급하고 만 '복지를 위한 증세' 부분에 대해 지금 얼마나 많은 논란이 일고 지향이 갈라지고

있는지만 봐도 그렇다. 그밖에 해외파병이나 다문화사회에 대한 원칙적인 답변도 막상 현실에

닥쳐 결정을 해야 할 시기에는 크게 도움이 될 수 없는 이야기다.


책의 말미에는 굉장히 긍정적이고 희망차게 이야기했지만, 과연 그럴까. 지금의 민주당이

보여주는 노선, 행태, 리더십을 진보 쪽에 가깝게 끌어갈 수 있을까. 그의 표현을 빌어 개혁

담당 민주당과 진보 담당 소수 정당들이 서로 이해를 조율하여 하나의 진영으로 단결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진보가 밥먹여준다'는 걸 보여주고 '밥의 품격'을 논하는 게

사람들의 표로 되돌아올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기도 하다. 그나마 노무현의 정책 이상으로

진보적 가치에 접근한 적이 없는 나라에서 이 책의 진보정책 구상들이 실현될 수 있을까. 
 

'반MB' 명분 하의 진보개혁 진영의 소통합 결과는.

결국 우려스러운 지점은 그거다. 이 책의 온갖 장점과 '진보'정책 일반의 지향을 세워

대중에게 광범위하게 전파하는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진보집권플랜이 결국

지극히 현실정치적인 차원에서 '반MB'로 뭉치게 되는, 혹은 뭉쳐야 한다는 절박하고

긴급한 요청으로 수렴되는 건 아닐까. 그의 '통큰' 진보는 MB와 한나라당으로 대변되는

'수구/보수'를 뺀 여집합과 같기에, 쉽게 말해 한나라당 말고 될 놈, 민주당 찍으란

이야기로 돌아가는 건 아닐지 우려스럽다.


조국도 그런 걸 원하는 건 아니리라고 생각한다. 2012년이던, 2017년이던, 언제가 되었건

진보진영이 집권했을 때 제대로 해서 더이상 후퇴하지 않는 단단한 기반을 만들자는

게 그의 반복된 주장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과잉대표되고 승자독식하는 한국의

선거제도에 대해서도 깊이있는 통찰과 제안이 있어야 했지 싶다. 그리고 '진보'라는

단어를 그렇게 느슨하고 통크게 써서 '진보/보수'의 구도로 한국 정치를 보는 것보다

'(진보)/중도/보수'의 구도로 읽는 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그의 '진보집권플랜'은, 그래서 시작점이다. 여기로부터 논의가 만발해서 다양한 집권플랜이

짜이고 더욱 가다듬어지도록 맨처음 부어진 마중물의 역할이라면 부족함은 없어보인다.






99년만 해도 등록금과 입학금을 합쳐도 백만원이 안 되었었다. 사회대는 그랬었다. 물론

미미하지만 꾸준히 등록금은 올랐고, 졸업할 때쯤엔 백팔십..이었던가, 꽤나 오른 셈이다.

'서울대 법인화' 문제는 벌써 이야기나온지 십년쯤 된 것 같은데, 한마디로 서울대를 회사처럼

운영하겠다는 거다. 돈되는 학문 키우고, 등록금 '현실화'해서 수익도 남기고, 기념품도 적극

판매하고, 뒤집어 이야기하자면 돈안되는 학문분야는 버리거나 축소하고, 등록금 부담스런

학생들은 생활이 피폐해지는 흐름이다.


서울대 이외에 다른 대학들은 이미 한참전부터 그렇게 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회 모두가

효율과 수익을 집요하게 따지기 시작하면서 교육 역시도 더 나은 효율과 수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렸고, 대학은 예전과 같은 '신성성'이랄까 '사회비판'의 기능 따위는

상실한 채 적극적으로 사회에 필요한 인력 공급으로 돈벌이에 매진하는 사업체가 되어버린 것 같다.

그나마, 대학이 어떤 대학이어야 하는지, 대학 교육이 본질적으로 어떤 걸 가르쳐야 하는지

고민할 수 있는 그나마의 '여유'란 게 남아있던 공간 중 하나가 서울대였던 게 현실이다. 대학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그래도 순진하다거나 세상물정 모른다는 식의

면박을 당하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이 서울대였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서울대가

대학교육 본연의 문제와 사회문제에 대한 적극적 문제제기를 해온 것도 아니지만 어정쩡하게나마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있었기에 여태 '법인화'가 미뤄졌는지도 모른다.


법인화의 귀결은 뻔하다. 그나마 어정쩡하게 옛 대학의 그림자가 남아있던 서울대마저

여느 대학들처럼 돈벌이에 급급한 기업이 되는 거다. 대기업 취직율을 떠들고, 고시 합격률을

광고하며, 등록금은 매년 천정부지로 치솟는 그런 대학. 교육부의 입김에 맞춰 매년 입학

전형방식을 시험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로 가린 채 돈많고 집안좋은 애들만 받게 되는

결과를 빚게 될 거다. '반값 등록금'이니 '교육의 공공성'이니 따위 더욱 멀어지게 될 거다.

그런 의제들이 실현불가능한 몽상으로 치부되거나, 아예 상상하기조차 힘들어질 거다.


아직은 상상할 수 있는 시간, 실현가능하다 믿을 수 있는 시간, 지금의 서울대학도 아니고

법인화된 서울대학도 아니고, 내가 바라는 대학은 그렇다. 단순히 취업준비 단체교습소도

아니고, 지식만 반복재생산하는 학원도 아니고, 사회와 유리된 상아탑도 아닌 대학.


대학생들 전부가 피폐한 사회흐름에 잔뜩 핀치에 몰려있을 때, 대학이 전부 돈벌이에 눈이 벌개

등록금올리고 로스쿨 양산할 때, 사회가 집단적인 광기를 보이며 이명박을 뽑고 G20을 찬양할 때,

이성과 지성이 매도되고 하향평준화를 요구하는 '민주주의'가 횡행할 때, 마치 정의구현사제단이

그러듯 사회에 대해 일종의 이정표와 가치를 제시할 수 있는 집단.


그렇게 대학이 기능하려면 나아가야 하는 길과 '서울대 법인화'의 길은 아마도 정반대.



p.s. 솔직히 서울대 교수들 너무 고상한 척만 한다. 각자의 전문 분야와 관련된 사회적 이슈가

터졌을 때 어떤 입장이던 적극적으로 개진하며 발언하는 것도 '교수'의 사회적 역할일 텐데

아래 인터뷰한 서사과 최갑수 교수나 법대 조국 교수 정도 밖에 안 떠오른다. FTA이슈가 터졌을 때,

통상 이슈가 터졌을 때, 그리고 하다못해 서울대 법인화 이슈에 대해 우리 외교과 교수님들은 대체

뭐하고 있는 건지 부끄러울 뿐. 최갑수 교수가 '미생물이 아니라 무생물같다'고 말한 게 그런 거다.





*                                                        *                                                        *

[프레시안] "서울대마저 등록금 오르면 가난한 학생들이 갈 곳은…"

지난 8일 예산안 강행처리의 후폭풍이 거세다. 이 중 '서울대법인화법'도 '쥐도 새도 모르게' 통과됐다. 교수들은 "끼워팔기, 신종날치기"라고 즉각 반발했다. 무엇보다 평소 "교육이 백년지대계"라고 외치던 이들이 교육 관련 법안을 충분한 상임위 논의 없이 바로 통과시킨 것에 대해 분노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법인화법이 통과됨에 따라 서울대는 2012년부터 국립대에서 독립된 법인으로 전환된다. 총장 선출은 직선제에서 간선제로 바뀌어 이사회의 선출과 대통령 임명 과정을 거친다. 법인이 되면 채권을 발행할 수 있고 수익 사업도 가능해진다.

서울대를 법인화하려는 주된 이유는 인사와 재정의 자율성이 확보돼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인화에 반대하는 이들은 학문의 자율성이 침해받고, 기초학문이 고사할 뿐만 아니라 등록금도 상승하는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고 말한다.

2007년에 발간된 '서울대학교 장기발전계획'이란 책자에는 "대폭적인 등록금 인상(2007년 기준 200%)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와 학내의 합의를 이루기 위한 특단의 조치들이 필요함(208p)"이라고 적혀 있다.

게다가 당장 이런 법인화법 같은 사안이 터질 때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교수들이 줄어들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총장을 선출하는 이사회에 교과부, 기획재정부 차관이 포함되는 만큼 교수들의 '정부 눈치 보기'가 심해진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대학의 사회비판 기능이 위축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지방 국립대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법인화 때문에 당장 예산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시장 논리가 강하게 개입되면 이른바 인기학과에만 투자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법안은 통과됐지만 '서울대학교 법인화반대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와 학생들이 거부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민주당도 법안 폐기를 주장할 예정이어서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모양새다.

<프레시안>은 공대위의 최갑수 상임대표(서양사학과)를 14일 만나 '서울대법인화법'의 문제점을 살펴봤다.

▲ 인터뷰는 서울대학교내 최갑수 교수 연구실에서 이뤄졌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법인화가 되면 가장 먼저 어떤 변화가 생기는 것인가? 대학 지배 구조에 변동이 생길 텐데.

최갑수 : 법인화는 대학의 지배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지금은 교수들이 총장을 직선으로 뽑고, 그 총장이 사실상 전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총장은 예산편성권이나 직원인사권은 없다. 교육부가 큰 틀에서 통제하고 대학 안에서는 총장이 모든 것을 하지만, 교수들은 총장직선제를 통해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다. 서로 견제가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법인화가 되면 이사회가 학교의 사실상 주인이 된다. 총장 한 명에 부총장 두 명, 교수대표는 딱 한 명만 들어간다. 그리고 나머지는 다 외부자 중심이다. 당연직으로 교육부 차관, 기획부 차관이 들어오고 나머지는 사실상 재계인사가 들어올 것이다. 교내 인사는 15명 중 최대 4명 정도라고 보면 된다.

프레시안 : 교내 인사가 최대 4명이라는 것이 주는 의미는?

최갑수 : 이렇게 되면 사실상 대학이 공기업화 되는 것이다. 겉으로는 자율성이 부여된 것처럼 보이지만 대학 이사회를 교육부가 장악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관치'가 강화되는 측면이 있다. 예산, 인사 모두 이사회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된다.

프레시안 : 법인화,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라고 보는가?

최갑수 : 전 세계 OECD 국가 중 고등교육에서 국가가 재정지원 하는 비중이 우리나라가 제일 적다. GDP 0.5% 수준이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사립대학의 비중이 제일 높은 게 우리나라다. 학부 수준으로 80%가 사립대학이다. 미국, 일본보다 높은 수준이다.

유럽이나 제3세계는 사립대학 개념 자체가 없다. 다 국립대학이다. 사립대학이 우리만큼 많은 나라가 일본인데 75% 정도다. 하지만 일본 최상위 대학은 모두 국립대학이다. 국가가 대학에 재정 지원하는 원칙이 확고한 것이다. 물론 일본은 법인화를 했다. 하지만 처음 법인화 논의가 나왔을 때 문부성은 찬성하지 않았다. 총리가 설득해서 시작하게 됐다. 그러나 대학 예산과 몸집을 줄이기 위해 구조조정을 하면서 많은 문제점이 나타났다. 일본 법인화는 실패했다고 보는 게 맞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대학이 기업화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최갑수 : 물론이다. 법인화는 국가가 고등교육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국립대학이 무너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국립대학 때문에 기초학문과 응용학문의 균형이 이뤄졌다. 그리고 수도권과 지방대학, 국립과 사립의 균형이 유지됐다.

근본적으로 대학이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대학은 그 사회의 비판적 성찰 능력을 담아내는 것이다. 그것이 대학의 존재 이유다. 법인화는 자본의 논리 때문에 대학이 기업에 종속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국민들이 대학교수에게는 기업 연구원하고는 다르게, 상대적으로 비판적이고 중립적인 것을 기대한다. 자본, 권력과는 다른 것이 지성에게 있다고 믿는 것이다.

서울대 교수에게 '전문가'가 되라고 말한다면 법인화를 반대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모두가 '지식인'이 되길 바라지 않은가? 법인화 이후의 구조라면 대학에서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비판적인 목소리는 당연히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등록금도 자연스럽게 오를 것이다. 정부 지원 예산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한 실제로 법인화를 준비하면서 등록금을 올릴 계획을 준비한 자료도 있다.

2007년에 발간된 '서울대학교 장기발전계획'이란 책자인데 법인화를 핵심 내용으로 삼고 있다. 이 책을 보면 등록금의 대폭 인상을 전제로 한 (법인화) 전략의 수립이 필요하다고 나와 있다. "대폭적인 등록금 인상(2007년 기준 200%)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와 학내의 합의를 이루기 위한 특단의 조치들이 필요함(208p)"이란 문구가 선명하게 적혀 있다.

그런데 등록금이 지금도 절대 싸지 않다. 서울대마저 등록금이 오르면 가난한 사람들 좋은 대학에 갈 수가 없다. 저렴한 등록금으로 좋은 대학이 운영되는 것은 그 사회가 굉장히 건강하다는 증거이다.

프레시안 : 그러나 서울대가 정체돼 있고 발전을 위해선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또한 법인화법이라는 것이 서울대보다는 지방 국립대에 더 불리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최갑수 : 서울대가 정체돼 있다는 것이 단지 경쟁이 부족하다는 의미라면 동의할 수 없다. 현재도 충분히 법인화에 준하는 제도들이 있다. 서울대 안에는 지주회사도 있고, 교수들도 기본적으로는 호봉제지만 연말 성과급제로 급여가 조금씩 다르다. 그리고 연구비에 따라 이미 차이가 많이 난다.

경쟁과 협동은 물론 병행되어야 한다. 학교 발전에도 경쟁은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경쟁은 매우 많다. 95년도에 제기된 법인화 논의와 지금의 법인화 논의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지방 국립대가 더 심각한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건 맞는 말이다. 서울대 몫이 늘면 다른 국립대 몫은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꼭 서울대 법인화만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국립대의 법인화를 반대하는 것이다. 절대로 서울대 혼자서는 발전 못 한다. 고등교육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같이 발전해 가는 것이 이상적이다.

프레시안 : 법인화 법이 통과됐다. 어떤 심정인가? 앞으로 계획은?

최갑수 : 상임위 상정도 안 된 채 통과된 것을 보고 학문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했다. 모멸감 느낀다. 앞으로 공대위는 이 법안의 무효화 투쟁을 할 것이다. 일단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하라고 할 것이다. 민주당도 폐기법안을 요구하고 있고, 서울대 교수협회는 헌법소원까지 낼 예정이라고 한다. 내년 봄까진 무효화 투쟁 이어갈 것이다.

프레시안 : 국립 서울대는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법인화를 할 게 아니라 망해가는 사립대를 국립대로 만드는 것이 옳은 정책 방향이다. 서울대는 '겨레, 학문, 세계의 대학'을 목표로 삼고 있는데, 이런 대학이 되기 위해서는 특권적 지위 포기해야 한다. 모든 국립대학이 하기는 그렇고, 거점 국립대학하고 만이라도 같이 입시를 꾸린다든지, 학문적 네트워크를 만든다든지 해볼 수 있다.

학문의 대학으로 가기 위해서는 국‧사립대가 역할 분담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립대는 기초의학, 기초공학 등 기초학문 중심으로 가고, 로스쿨, 경영학 이런 건 굳이 서울대에 있을 필요가 없다. 사립대가 하면 된다. 이럴 때 기초학문과 응용학문의 균형이 이뤄질 수 있다.

서울대학은 자기 정체성 일신해야 한다. 국민, 사회로부터 너무 멀어졌다. 이번 법인화 문제도 침묵을 지키는 교수들이 많다. 투쟁하면서도 외롭다. 당장 법인 이사회의 '직원'으로 자신의 신분이 바뀌는데도 조용하다. 실망스럽다. 서울대란 조직이 미생물이 아니라 무생물 같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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