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팅 #저녁 #접시 #내방 아무데고 '우리'란 단어를 덧붙이는 게 한국의 언어습관이라고는 들었지만, 가끔 내가 혼자 사는 곳을 '우리집'이라고 하는 건 스스로 웃긴다.

본가에서 방학맞은 학생처럼 뒹굴대며 며칠을 쉬다 오랜만에 다시 내방. (내집이란 표현은 좀 휑하고 터무니없이 큰 느낌이라 피해야겠다.) 텃밭에서 따온 가지와 떡갈비를 구워서 이쁜 접시 위에 놓고 저녁식사.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 아쉬하바드를 돌아다니다 보면 옛 소련 시절에 만들어진 낡고 허름한 아파트들을 많이

마주치게 된다. 석유와 가스를 판 돈으로 하얗고 커다란 대리석 빌딩과 고급 아파트 건물들을 지어 올리고 있으니

이 건물들은 조만간 허물어질 운명이겠지만, 내가 걱정스러운 건 정작 허물어뜨리기 전에 지가 먼저 허물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것. 아파트 건물 위에는 물론이고 옆춤까지 빼곡하게 늘어선 저 '접시'들을 보면 그렇다.

접시들도 꽤나 나이먹은 거 같다. 완전히 녹슬어서 접시 전체가 황갈색으로 변해버린 놈이 있는가 하면 여름 한철

퍼부은 장마를 지나고 나서 쉬이 망가져버리는 싸구려 우산같이 얼룩얼룩 녹이 번진 놈도 있다.

요새 전세계 이곳저곳에서 UFO가 출몰하고 있는 듯 하던데, 혹시 이 접시의 영향은 아닐지. 저 허름한 접시를

타고 아파트 건물 안에서 웅얼웅얼, 이곳에 있는 District9을 해방시켜 주세요 하고 누군가 소외된 자들이

잔뜩 호소하고 있는 상상.






쟁반, 접시, 물잔, 맥주잔과 숟가락이 비닐 포장되어 있던 상해의 어느 음식점. 웬만한 음식점에 가면 음식은

맛있다 해도 대부분 찐득찐득하고 더러운 접시 때문에 살짝 기분이 상하곤 했었는데, 이렇게 비닐로 잘 싸여있는

식기류라면 왠지 믿음직스럽겠다 기대가 되었다. 아마도 그런 부분을 감지하고 나온 아이디어 아닐까, 일인용

식기 세트를 완전히 비닐포장해서 그때그때 서빙하는 거.

비닐을 짝짝 찢어서 접시랑 컵이랑 숟가락을 세팅하니까 이런 모양이다. 비닐 포장되긴 했지만 생각보다는 그닥

깨끗하진 않았다. 물이 질질 흐르고, 여전히 군데군데 뭔가 찌꺼기같은 게 붙어있어서, 그냥 비닐 포장하나

안 하나 별차이없는 중국의 식기구나 했다.

그런 접시들을 앞에 놓고, 상해의 명물이라는 '민물게요리'를 먹었다. 새우같기도 하고 가재같기도 하고, 커다란

집게 모양의 앞발이 두 개 달린 새우라고 하면 되려나. 매콤한 양념도 맛있었지만, 껍데기를 입으로 까서 먹는

그 속살의 쫀득이는 식감이 꽤나 매력적이어서 정신없이 먹었다. 접시가 깨끗하니 안하니는 이미 아웃 오브 안중.

먹고 안 죽으면 되지 뭘.

맥주는 맛있는 칭다오. 한국과는 다른 디자인이 꽤나 깔끔하고 고급스러웠다. 민물게요리랑 딱 어울렸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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