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앞바다가 고스란히 내려다보이는 호텔. 대체로 경포해수욕장이나 그 옆의 사근진해수욕장에 인접한 호텔/모텔들은

 

바다쪽 오션뷰와 경포호쪽 마운틴뷰 중에 하나를 골라잡게 되는데, 이 곳 같은 경우는 높이나 위치나 딱 바다 옆이다.

 

창가 밖 테라스에 나가 아래를 굽어보면 용궁민박집도 보이고, 담백하고 고졸한 기와지붕과 색색으로 널린 빨래를

 

몽창 삼켜버릴 듯한 파도가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밀려들어오고 빠져나가고.

 

비치 하우스라고 적힌 간판의 '스'를 가만히 보면 나름의 센스랄까 미감이 느껴져서 훈훈하기도 하다.

 

해안도로와 바다 사이, 갈수록 쓸려나가며 좁아지기만 한다는 모래톱에 바닥을 뉘이고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파랗고 벌겋고 희끄무레한 단층 민박집들이 쪼르르 늘어섰다.

 

 

 

이리저리 창밖으로만 둘러봐도 속이 탁 트이는 동해바다 풍경.

 

다음날 아침, 졸린 눈 부비며 테라스로 나가 게으르게 몇 방 찍어본 일출 사진. 날이 흐려서 조금 찍다가 말았지만.

 

언제고 이런 풍경을 가진 방이라면 와서 머물고 싶다는 생각. 몸이고 마음이고 금세 충전될 거 같다.

 

호텔방을 나와 잠시 해변가를 산책하다 눈에 띈 들꽃 한 무더기. 11월 중순이니 제법 추웠는데 지지 않았다.

 

지지 않은 건 노랑 꽃잎들 말고도 싱싱한 젊음들 역시. 저러다 따뜻하게 덥혀진 방에 들어가면 바로 뻗겠지만서도.

 

아무래도 겨울 바다란 건, 이렇게 휑한 게 정상이다. 일말의 로맨스나 낭만을 꿈꾸지만 이내 차갑게 몸이 식고 마니까.

 

 

조금 차로 내달려 강릉초당순두부마을을 가다가 만난 텅빈 들녘. 어느새 산너머 가라앉는 해가 단말마의 비명을.

 

뙇. 하고 내지르다.

 

바다를 옆에 끼고서, 잠시잠깐의 침묵도 존재하지 않도록 파도소리가 우르릉거리며 맥놀이 중인 곳이기도 하지만.

 

살짝살짝 변주되며 쉼없이 이어지는 파도소리가 어느 순간 먹먹하게 사라져버리는, 그런 순간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1. 

출장을 다녀오니 조직개편과 인사이동이 있었다. 미리 짐을 바리바리 박스에 싸두며 '심적 대비'를 하긴 했지만

막상 낯선 사무실과 낯선 책상에 자리를 잡자니 영 낯설다. 새로 생긴 부서인지라 모두들 약간씩 붕 떠있기는

매한가지, 그 와중에 올해 신입직원까지 배치되었으니 분위기는 더욱 어벙벙하달까. 그렇게 전부다 살짝

신입직원스런 마음으로, 또다시 눈앞에 닥친 몇몇 행사들을 준비하는데 매달리고 있다.


#2.

어느덧 3년차, 여태 부서 막내로 지내다가 갑자기 신입도 들어오고 2년차 후배도 들어오고 부자가 되어버렸다.

젊지 않다, 란 느낌이 퍼뜩 들었던 건 아마도 그때쯤. 연극으로 치면 '막내'의 역할이야 빠릿빠릿하고 눈치껏

일의 부분을 메꾸면 되는 거였지만 이제 새로운 역할을 맡아버린 거다. 중간에서 일을 나눠주고 조율하고

큰 그림을 그려주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일은 많이 하고. 음..돈 벌기가 갈수록 쉽지 않아진다더니.


#3.

젊지 않다, '젊잖다' 라는 말에서 '점잖다'라는 단어가 겹쳤다. 어쩌면 점잖다는 표현은 더이상 젊지 않다,

더이상 좌충우돌하거나 격동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비롯한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두 단어는 모양새도

닮았고 의미도 닮아보인다. 젊잖다. 점잖다. 물론 당연히도 젊잖다고 절로 점잖아지는 건 아니다. 고무적인

사실이라면, 이제 조금은 '점잖아'져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 예전이라면 점잔 따위

개나 줘버려 이랬을 텐데.


#4.

출장 다녀오고 사진이 나름 많이 남았고, 창백한 속살을 하얗게 뿜어내던 타지마할의 인상도 생생히 갖고

돌아왔지만, 어쨌거나저쨌거나 출장이었다. 가보지 못한 골목들에 대한 강렬하지만 금기된 유혹이라거나

먹거나 마시면 배탈나기 쉽다는 길거리 음식에 대한 '마조히즘적' 욕망이라거나, 그런 것들을 끙끙 품고만

있다가 돌아와버린 거다. 여행에 대한 욕구만 움씬움씬 자라버린 출장이었다. 하아...


#5.

티스토리 우수블로거에 선정되고 나서 가장 기뻤던 건 블로거 명함이 생겼다는 것. 까맣게 잊고 있다가

엊그제에야 배달을 받고 나서 새삼 해피해피해졌댔다. 1월 동시나눔에 참여해서 좀 여기저기 뿌려보고

싶었는데 여의치 않았고, 독자적으로라도 함 해야겠다. 나눔이벤트(라고 쓰고 명함배포라 읽는다) 커밍순.






이사를 하고 난 후 강남역, 역삼, 선릉, 삼성역 방면에 나갈 때 그냥 걸어다니고 있다.

강남에서 술 한잔하고 걸어서 집으로. 선릉에서 술 한잔하고 걸어서 집으로. 삼성역 근처에서 술 한잔하고 걸어서 집으로.

빠른 걸음으로 삼십분 정도면 대략 집에 도착하는데, 보통 열두시를 전후한 한밤인데다가 동네가 동네니만치

넥타이 맨 아저씨들과 화장진한 아가씨, 혹은 화장진한 아주머니들의 술냄새 섞인 스킨십을 종종 지나친다.


처음엔 별 생각없이 유흥가가 워낙 밀집한 동네니까 그러려니, 했다. 세상에 지치고 감각이 딱딱히 굳어져버린 채
 
말초적인 쾌락을 구매하는 중년의 남자와 신산한 사연과 응분의 대가를 가진 중년 여자 한쌍이려니. 굳이 여자의 허리를

부둥켜안은 남자의 욕정어린 손길과 뭔가를 갈구하는 눈빛, 그리고 끈적한 대화를 들으면서, "저들이 부부가 아니라는데

내 가진돈 전부와 오른손모가지를 걸지. 쫄리면 뒈지시던가." 따위 객기를 부릴 필요도 없었다. 그런 객기는 음식점에서

서로 밥을 먹여주거나 반찬을 집어주는 중년의 남녀 커플을 향하거나, 다정히 손을 맞잡고 산에 오르내리는 어른들을

향할 때에나 쵸큼 효과가 있으려나. Chocolate이니 秘니, 그렇고 그런 이름의 단란한 주점들 앞에서 택시를 잡는

사람들은 빤해 보였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방금 지나친 그 중년커플의 지쳤지만 다정한 분위기와 오랜 관계였음을 암시하는 대화

몇 마디를 듣고 난 다음이었을지 모른다. 그것 역시 사랑일지 모른다.


공정하지 않다. 결혼을 했는지 안했는지, 어떤 정신적 육체적 관계를 맺어 왔는지, 어떤 사연으로 둘은 이 야밤에 술에

취한 채 서로에게 기대어 있는 건지도 모르면서. 그들의 관계와 감정을 한낱 '매매'려니 치부하는 건 흔해빠진 편견이다.


젊음의 생기발랄함을 잃은 채 시들고 주름진 그네들의 육체를 상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네들의 나이에, 그네들의 육체에 걸맞는 건 '사랑'이 아니라 '욕정'이란 단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젊고 팽팽하고 발랄하고 싱싱한...그런 것이 바로 '사랑'이란 감정을 위한 필수조건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식으로 '사랑'이란 단어는 젊음의 특권인 듯 사고하는 건, 젊음을 포기하고 뒷사람에게 물려주면서 '사랑' 역시

자연스럽다는 듯 내치는 결과를 낳는 건 아닐까. 더이상 그런 단어를 입에 올리거나 그런 감정을 느끼는 건

허용되지 않으며, 단지 가끔 상념에 젖어 어렴풋이 추억하는 게 고작이라는 듯. 그게 '어른'이라는 듯이.


물론 '불륜', 내지 '바람'이라는 편리한 딱지도 준비되어 있다. 그건 잘 모르겠다.

다만 불륜이 사랑이 아닌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