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상태 훌륭해보이는 400년전의 대포가 그랜드 리스보아 카지노호텔을 겨누고 있는 곳은 몬테 요새 위의 공원.

 

그야말로 마카오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 포인트다.

 

길 찾기가 조금 쉽지 않았던 거 같기도 하지만, 대충 오르막길이겠거니 하고 어림짐작으로 밟은 길이 그대로

 

몬테요새로 올라가는 길이 되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것은 대체 어떤 요구조건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마카오에는 유난히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는 문화재들이 많다.

 

몬테 요새에서 내려다보이는 저 건물 정면만 남겨진 벽면이 바로 세인트 폴 대성당.

 

그리고 이렇게 공원이란 쓰임에 걸맞게 이쁜 꽃나무들이 드문드문 서 있기도 한 이곳은 거의 마카오인들의 휴식처라고.

 

 

이 곳에는 총 22문의 400년전 대포가 성벽을 따라 배치되어 있는데, 실제로 사용된 건 17세기에 딱 한번 뿐이라고 한다.

 

네덜란드 함대가 공격해왔을 때, 단번에 함대의 탄약고를 폭파시켜 승리로 이끌었다나.

 

 

 

 

 

 

 

벼르고 벼르다가 처음으로 가봤던 안동하회마을, 마침 안동하면 떠오르는 부네탈이니 양반탈을 쓰고 벌이던 마당극부터 운좋게 조우.

 

양반집 대문에는 역시, 용龍과 호랑이虎가 새겨져 있는 운치있는 데코레이션.

 

곳곳에 세워진 자그마한 장승같은 목상들, 얼굴은 그대로 잘라내면 탈로 쓸 수 있겠다 싶을 만큼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던.

 

 

이런 표찰도 있구나, 싶던 '독립유공자의 집' 표찰. 멋지기도 하고, 그게 고작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저런 걸로 되려나 싶기도 하고.

 

 

검은 기와를 훌쩍훌쩍 뛰어넘다보면 층층이 올라가 본채의 지붕 끄트머리까지 가닿는 시야.

 

중간중간 이렇게 초가지붕으로 소담하게 지어올린 집들도 섞여 있긴 하지만 대개가 고래등같은 기와집.

 

 

이런 고택이 민속촌이니 뭐 그런 박물관화된 곳에서 사람냄새없이 동그마니 있는 것보다 훨씬 정겹다. 사람이 살아가는 온기란 것.

 

 

야트막한 담벼락들도 마치 경복궁 옆 돌담길처럼 이런저런 문양을 꼼꼼히도 채워넣었다. 그야말로 한칸한칸 채워넣었을 문양.

 

어렸을 적 처마가 과하게 쳐올라가지도 않고 너무 단정히 미끄러져내리지도 않는다며 한국의 미란 게 바로

 

저 은근한 각도, 중국과 일본의 중간쯤에 처한 각도에 있단 글을 읽었었는데 정말 미묘하긴 하다. 저 처마의 추임새 모양이란 게.

 

 

 

기와지붕이 그나마 풍경에서 조금 직선의 느낌을 던지는 정도지, 온통 둥글둥글한 풍경이다. 산도 초가지붕도.

 

다시, 이렇게 사람 살아가는 풍경이라니. 집 뒷켠 나무에 얹힌 까치집 두개가 더 정겹다.

 

 

문득 마주친 검은 고양이. 앞발을 모아세우고는 담벼락 위에서 해바라기 중인가부다.

 

제법 규모가 있는 가택들은 본채에 별채에, 이어지는 행랑채들까지. 꼬맹이 발걸음으로는 한바퀴 도는 것도 쉽지 않겠다.

 

 

뭐랄까. 한옥의 전통보다는 좀더 일상의 쓰임에 집중했달까. 목재와 돌로 지어진 전통 가옥에

 

플라스틱과 비닐, 스테인레스의 조합이 미묘하면서도 재미있는 균형을 만들어내는 거 같다.

 

 

위풍당당한 양반댁의 풍경 중 하나.

 

이렇게 보기드물게도 호기로운 커다란 대문도 인상적이었다. 흔히 한국적이라 말하는 분위기와는 다소 달라보인달까.

 

절제하고 소박한 조선 시대 선비의 분위기가 우리가 익히 아는 '한국적'인 분위기라면 약간 그보다는 당당하고 위압적인.

 

색을 절제하고 나무 본연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색감과 질감을 그대로 살린 고택. 멋지다.

 

 

야트막한 돌담길 사이를 하릴없이 거닐다 보면 계속해서 새로운 풍경과 지점으로 가닿는 게 매번 신기하기만 하다.

 

 

한옥 지붕의 옆면이랄까, 저렇게 벽돌인지 기와인지 검정 재료를 황토 사이에 촘촘히 찔러넣어 세련된 문양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하회마을의 수호목. 소원을 적어 매달아둔 하얀 종이들이 꼭 흰나비처럼 나무를 뒤덮었다.

 

 

Let it be.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기면 될 텐데 굳이 소원을 빌려고 하는 건 절박하거나 불안하기 때문이겠지만..

 

사실은 꼭 그렇게 삐딱하지 않더라도 재미삼아랄까 혹은 보험들어두는 셈이랄까. 그렇게 볼 수도 있는 일.

 

하회마을을 돌아나오는 길에 만난 버스. 오자마자 관람할 수 있었던 탈춤 공연의 한장면이 그대로 차 꽁무니에 담겼다.

 

 

그리고 안동하회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부용대. 걸어올라가는 길은 생각보다 금방이지만, 거기에서

 

내려다보이는 하회마을은 정말이지 무슨 미니어쳐 마을같은 느낌. 한 귀퉁이에서는 저녁밥을 짓는지 연기가 피어오르고,

 

웅크리고 있는 동물떼처럼 야트막한 기와지붕과 초가지붕들이 사이좋게 어깨를 견주고 있는 풍경.

 

 

 

 

 

영금정 옆의 등대 전망대, 제법 가팔라보이는 길이 200여미터 수직으로 상승한다는 표지에 번번이 지나치기만 했던 곳.

 

이번에는 한번 올라가보겠다며 마음을 먹고 올라가는 길에 이렇게 갈매기 모양의 가로등을 만났다.

 

속초의 청초호, 그리고 여객터미널이 내려다보이고. 은근한 빛무리가 구름 사이에서 내리쬐이기도 하고.

 

생각보다 금방 도달했던 등대전망대의 꼭대기. 속초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점이다 보니 풍경이 시원하다.

 

북쪽으로 계속 이어지는 해안선을 따라 함께 흘러가는 설악산줄기.

 

전망대에 있는 갈매기 모양의 조형물.

 

방금 한바퀴 둘러보았던 영금정 정자와 전망대.

 

전망대에서 하릴없이 바닷바람 맞다가 멀찌감치 내달리는 배 한척을 발견했다. 오선지같은 울타리에 걸린 음표 하나.

 

영금정. 파도가 탄주하는 가야금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정자라 해서 영금정이라 했던가. 그때의 소리는 항구 개발이다 뭐다로

 

사라져버린지 오래라고 하지만 이름만 남아서, 이렇게 그 연원을 밝히는 조형물이 동그마니.

 

 

 

 

 갯배를 타려고 줄을 선 사람들을 배경으로, 드라마 '가을동화'였던가의 한장면을 찍는 듯한 동상 아저씨.

 

 그리고 동상 아저씨가 보는 풍경 속에는 까만색 털모자를 따뜻하게 뒤집어쓴 송혜교 동상과 그녀에게 따스한 백허그를 당한 원빈 동상.

 

그리고 갯배. 바다라기보다는 걸쭉한 스프같은 점도가 느껴지는 내해의 좁은 수로를 횡단하는 이 독특한 탈것의 매력이라니.

 

갯배를 타지 않고 자전거를 계속 달려 영금정 앞에 이르렀다. 문득 눈에 띈 양심저울. 해산물을 구매하고 무게가 의심스러우면 여기로.

 

 영금정 위에서 내려다본 바다쪽 전망대로 향하는 녹슬고 야윈 현수교. 어떻게 보면 굉장히 퇴락한 금문교 같기도 하고.

 

 바닷가 쪽을 내려다보니 온통 해산물인지 젓갈인지를 담고 있는 '다라이'가 풍년이다.

 

 

청초호 안쪽으로는 자전거를 달려 지나온 두개의 붉고 푸른 구름다리가.

 

 

 영금정의 육각 지붕.

 

 

그리고 바닷가쪽 정자에서 영금정 전망대를 올려다본 모습.

 

 

 

 

 

 

 

Chijmes, 차임스라고 읽어야 하지만 자신있게 발음하기 쉽지 않은 이 곳은 1980년대까지 수녀님들이 고아들을 돕기 위해 이용한

 

일종의 보육시설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웨딩 촬영이 곳곳에서 성행하는 데이트 코스이자 이름난 레스토랑들이 집결한 곳.

 

 

아르메니안 교회 정원, 시내 한 가운데에 있지만 굉장히 조용하고 시내의 소음에서 뚝 떨어진 느낌의 하얗고 자그마한 교회

 

주변으로는 이렇게 십자가로 고행하는 예수를 담은 십자가의 길이 3D로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싱가포르의 중앙 소방서. 건물이 아기자기 귀엽게 생긴 게 소방서의 급박하거나 긴장감 넘칠 업무와는 영 딴판.

 

멀라이언 파크에서 싱가포르의 서쪽으로. 남쪽 해안으로는 온통 술집과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군락을 이루고, 뒤에는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 고층빌딩들이 한무더기.

 

무더기째 뭉쳐져 있던 건물들로 한발 재겨딛으면 이렇게 활짝 열리는 미지의 뒷골목.  

 

마리나베이 샌즈 쇼핑몰 중앙에서 수시때때로 기획되어 있는 듯한 라이브 공연. 나름 시스루를 입고 나오셨다.

 

 

그리고 헬릭스 브리지. 싱가포르의 다민족, 다인종성을 상징하듯 DNA 나선구조가 거침없이 꽈배기로 용틀임하는 모습을 담았다나.

 

 

물론 다리가 온통 불밝히는 밤도 좋지만 낮에도 걷기 괜찮은 다리,

 

다리가 잇고 있는 마리나 베이 샌즈 쪽과 싱가포르 플라이어 쪽의 풍경도 좋다.

 

 

 

다리 중간중간에 불쑥 튀어나와 있는 전망대. 저기에서 마리나 베이 저끄트머리의 멀라이온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두리안, 이라는 별칭의 에스플러네이드. 일종의 복합 문화공간으로 미술 전시나 공연이 이어진다고 한다.

 

잠시 둘러보려 들어갔는데 싱가포르 전통악기 공연이 있다길래 삼십여분 무료 와이파이를 즐기다가 연주를 감상.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할 때더라, 택시를 탔더니 온통 불상과 힌두교 신들, 혹은 무조건 복을 빌어주는 각종 잡신들, 심지어

 

손님을 빌어주는 일본 고양이인형까지 모아둔 정신사나운 모양새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독일 맥주가 굉장굉장굉장히 맛있었던 어느 바. 특히나 더웠던 날 점심부터 맥주를 대차게 마셔줬다.

 

이건 센토사, 동남아 최초의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있는 것으로 유명한 싱가포르 남쪽의 리조트 월드 공간이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이미 로스앤젤레스에서 오리지널로 경험했으니 패스, 대신 택한 건 실내 스카이다이빙 체험.

 

 

 

 

시욜라바자르에서 눈을 뜬 아침, 마치 신기루처럼 멀리 보이는 마차푸차레의 두갈래 봉우리. 그러고 보면 굉장히 많이 걸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부지런히 내려와 꼬박 이틀동안 걸었으니 산봉우리가 저만치 밀려날 만 하다.

 

 

이제 두시간여 나야풀까지만 걸어가면 거기서부턴 택시를 타고 한시간, 포카라로 들어가 조금 돌아보고는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니

 

사실상 두시간 정도 후면 트레킹도 끝이다. 왠지 헛헛한 마음으로 롯지 근처를 둘러보며 여유로운 아침시간을 즐기는 중.

 

조그마한 키의 주인 아주머니도 진한 홍차를 한잔 들고 나와 아침의 선선한 공기를 즐기시는가보다.

 

롯지 안의 부엌과 여차하면 침대로도 쓸수 있는 식당의 의자들. 실제로 성수기에 방이 모자라면 식당에서 자기도 한다고.

 

 

커다란 물고기 모양의 방키가 나란히 걸려있고, 네팔어인지 티벳어인지 글씨가 쐐기문자처럼 촘촘히 박혀있는 색색의 깃발들.

 

오늘은 얼마 걷지 않을 테니 간단하게 아침식사. 마치 공갈빵을 닮은 구릉족의 전통빵과 벌꿀.

 

아무래도 물자가 귀하고 조달하기도 쉽지 않을 테니, 플라스틱 의자같은 것들도 이렇게 수리해서 쓰는 동네다.

 

이제 마지막 여정을 완수하러 다시 출발. 지붕만 덮인 비닐하우스 너머로 평탄하고 여유로운 길이 계속 이어진다.

 

길을 막고 선 송아지가 혀를 빼물고는 달려들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뭔가 그로테스크하기도 하고, 광우병은 아니겠지 싶기도 하고.

 

트레킹 코스 옆의 허름한 가건물같은 상점에서 과일을 파는 꼬마애들은 자기들이 강에서 잡았다며 '피시~피시~' 이런다.

 

길은 중간중간 히말라야에서부터 터져나온 물줄기로 흠뻑 젖고 잠기고 끊기기도 한 제법 도전적인 오프로드길.

 

 

트레킹 첫날 점심을 먹었던 비레탄티. 이곳에서 트레커 카드와 TIMS카드를 검사받고 체크인을 했었는데, 꼬박 8일만에 체크아웃.

 

아저씨가 도장을 쾅쾅 찍어주고는 어디까지 갔다왔냐며 활짝 웃어준다.

 

비레탄티에서 나야풀로 걷는 길은 트레커들을 위한 장비점들, 그리고 온갖 조잡한 기념품점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 와중에 눈길을 끈 장면. 말그대로 '닭장차'에서 닭을 사려는 아주머니가 날갯죽지를 잡고 거침없이 끌어당기는 모습.

 

신기하게도 박스 안에 담긴 닭은 더이상 저항도 하지 않고 날개를 늘어뜨린 채 얌전하다.

 

 

나야풀 즈음에서, 그러고 보니 내가 딱 출발했던 바로 그 지점에서 빨노파의 트레커들이 장비를 챙기고 이제 출발하려나보다.

 

그리고 나야풀에 거의 도착할 즈음 가이드가 잡은 택시 한대. 이제 안나푸르나 푼힐, 그리고 베이스캠프 트레킹은 끝.

 

용수철 소리 삐걱거리는 자동차의 쿠션에 감탄하며 몸을 편히 뉘인 채 잠시 가던 중에, 차도 역시 히말라야에서 터져나온

 

물줄기들로 잡아먹힌 구간들을 지나게 되어 그야말로 오프로드 체험을 방불케 했다. 저런 길을 지프도 아니고 소형차로 막 건너고.

 

그렇게 나야풀에서 포카라로. 포카라에서는 페와호수를 둘러보고 카투만두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다.

 

 

 

총 10일동안의 휴가, 직행비행기가 아니라 오갈 때 근 12시간-15시간을 소요하고 남는 시간은 거의 전부 트레킹에 썼던 휴가.

 

카투만두에서 포카라까지 국내선 비행기를 타서 오가며 시간을 아끼고, 그렇게 남긴 시간으로 조금 포카라와 카투만두를

 

둘러볼 수는 있었지만, 트레킹에 근 7일을 꽉 채워 할애한 셈이다.

 

 

 

 

 

 

 

 

 

 

이제 거의 7-8일에 달하는 히말라야 트레킹, 정확하게는 안나푸르나 푼힐전망대 코스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코스를

 

합한 일정의 대단원에 도달하는 즈음. 시욜리 바자르까지 가서 하룻밤 묵고 나면, 내일아침에 두어시간 더 걸어서

 

나야풀까지 가면 트레킹 코스의 끝에 닿는 거다. 한층 더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제 2,000미터 아래로 내려온지라 경사도 훨씬 완만해졌고 길도 편한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나무 가지를 줄넘기삼아 깡총거리는 꼬맹이의 표정도 위에서 만났던 소년소녀들보다 훨씬 밝아보이는 것 같고.

 

 

한쪽으로 산비탈이 상당한 이런 좁고 오르내리막하는 길조차 이제는 굉장히 편하고 다정다감한 길로 느껴지는 수준에 이르렀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부터 흘러내려오는 강물도 훨씬 유속이 느려졌고, 트레킹 코스와의 낙차도 그리 크지 않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이 걷기도 재미있고, 중간에 고삐풀린 염소떼들이 온통 길을 점령하고는 시끄럽게 훈계질하는 것도 듣고.

 

 

중간에서 만난 또다른 염소떼들은, 사람을 겁내면서도 잰 걸음으로 자기들 헛간으로 들어가느라 바쁘다.

 

 

안전한 집으로 일단 피신하고는, 커다란 카메라를 들이대는 낯선 사람이 궁금했는지 고개를 갸웃하며 삐죽삐죽 고개들만 빼밀었다.

 

차가 다니길래, 시욜리바자르에 다 왔는가 했다. 그게 아니라, 사륜구동 지프차는 여기서부터 다닌다고 한다. 비정기적으로 다니는

 

지프인데, 시욜리바자르나 나야풀까지 간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걷는 길은 좀 비포장된 시골길이랄까, 차가 다닐만한 널찍한 길.

 

 

그래봐야 다랭이논을 이쁘게 정돈해서 빡빡한 생업에 힘쓰는 건 산 아래나 위나 똑같고, 자유롭게 풀린 닭들이 천지사방으로 기웃대며

 

닭털을 풀풀 날리고 다니는 것도 똑같고. 차가 다닌다고 해서 딱히 더 발전된 모습이 보이는 건 아니었다.

 

그 비포장된 시골길을 한참 걷고 있는데, 이제야 손님을 다 채운 지프차가 따라잡았다. 온통 물이 범람하고 바윗돌들이 들썩거리는

 

데다가 심지어 저만큼 한쪽으로 기울어진 길을 거침없이 달리는 지프에는 사람이 그득그득, 뒤에까지 저렇게 매달린 채 달린다.

 

지프를 먼저 보내고 걷고 있다가 만난 네팔의 젊은 아가씨. 등짐을 가득 지고는 맨발로 저런 길을 걸어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버스. 이제 저 굉음과 악취를 동반하는 쇳덩어리가 지배하는 영역으로 들어왔구나, 확실히 실감하고 있었다.

 

맑은 공기 마시며 히말라야 산길을 거침없이 내달리던 지난 며칠이 벌써부터 그리워지던 순간.

 

 

그렇게 찻길을 따라 좀 걷다가, 저 강 옆에 모여있는 집들, 시욜리 바자르로 내려가는 샛길로. 그러고 보면 '바자르'란 단어는

 

아랍쪽에서도 시장이라는 의미로 쓰는 단어인데, 뜻도 같고 발음도 같다. 그렇다고 저 동네가 무슨 시장통은 아니고 이전에

 

그런 물물교환의 거점 역할을 한 모양인데, 대체 네팔과 아랍, 멀리 떨어진 두 지역에서 어떻게 같은 단어를 쓰는 건지는 신기할 따름.

 

 

 

시욜리 바자르에 도착,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저녁을 간단하게 먹고 그동안 잘 인도해주고 챙겨줬던

 

가이드 커멀과 맥주를 한잔 나눴다. 그동안 고마웠다는 이야기며, 덕분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는 치하,

 

그리고 나중에 히말라야 트레킹에 관심있어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추천해주겠다는 약속까지.

 

진짜로, 영어와 한국어와 네팔어와 인도어를 굉장히 잘 구사하는 가이드, 게다가 친절하고 자상한 가이드,

 

아무리 네팔 사람들이 순하고 밝고 착하다고는 해도, 이런 가이드는 흔치 않다.

 

우리가 함꼐 나눈 맥주. 독일 맥주던가, 투벅의 공장이 네팔에 있다고 한다. 제법 맛도 좋고 값도 무지 싸고.

 

그가 내 무릎에 압박붕대 대신 감아줬던 그의 손수건. 마치 깃발처럼 그의 방앞 빨랫줄에 얌전히 내걸렸다.

 

그렇게 깊어가는 안나푸르나의 마지막 밤. 이제 다음날 아침 두시간 정도만 걸으면 트레킹도 끝이다.

 

 

네팔어로 '파니'는 물, water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고레파니나 타다파니, 혹은 여기 히말파니까지의 지명에 '파니'가 들어가

 

있는 거라고. 특히나 이곳 히말파니는 히말라야의 물, 이란 의미로 온천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이곳 히말파니까지 오는 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한 데다가 욱신거리는 무릎을 뜨거운 물에서 좀 쉬게 하고 싶어, 점심도 먹을 겸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롯지는 이제 우기가 끝나고 몰아닥칠 트레커들을 위해 단장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점심으로 볶음면과 맥주를 주문하고는

 

내리막길로 걸어서 15분정도 걸린다는 온천에 다녀오기로 했다.

 

15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도 나올 생각은 없고, 앞서 가던 가이드가 물소들이 몸을 담근 저 늪을 두고 온천이라는 소리에 잠시

 

시껍했으나, 다행히도 저렇게 정비되지 않은 물구덩이를 두고 온천이라고 하진 않는 듯 했다. 궁금증은 커져만 가고.

 

사정없는 내리막길이라 무릎이 더욱 아파올 무렵, 근 40분 가까이 걸었다 싶던 참에 비로소 강물 옆으로 나타난 온천 건물.

 

건물이라기보다는 그냥 기둥 박아놓고 슬레이트 지붕 얹어놓은 정도지만 저 정도만 되어도 기대 이상이다.

 

너도나도 재빨리 옷을 벗고 최소한의 복장만 갖춘 채-함께 내려가던 일행 중에 여성도 있었기 때문에-콸콸 쏟아지는 온천수로.

 

강물이 이렇게 거칠게 흐르는 산골짜기 아래까지 내려와야 했으니 롯지에서 여기 온천까지 오는 길이 그리도 험했던 거다.

 

 

그 와중에 먼저 와서 실컷 즐기다가 다시 위로 올라가려는, 예수처럼 생긴 서양 아이 하나. 그러고 보니 그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벌렁 누워 가방에 꽂힌 우쿨렐레를 연습하던 그 녀석이다. 여성 앞에서도 거침없이 덜렁덜렁 지나가는,

 

그리고 여성 역시도 그다지 당황하지 않는, 서양인들의 그 쿨함과 자연스러움에 잠시 이질감을 느꼈던 순간이기도.

 

옆에서는 두번째 탕을 한창 공사중이었다. 이곳에서 상주하는 것 같은 대머리 할아버지랑 그의 아들인 것 같은 두 명이서

 

언제 다 지어질까 싶은 네모난 탕을 만들려는 듯. 물은 뜨겁진 않고 따뜻한 정도, 그치만 몸을 푹 담그니 피로가 확 풀린다.

 

굳이 하나 더 짓지 않고 하나 갖고 복작복작하는 게 왠지 더 이곳의 분위기에는 어울릴 거 같은데.

 

점심으로 나온 볶음면. 다시 올라오는데 걸린 시간은 역시 30분이 넘었던 듯 하고, 올라오느라 어느새 온몸은 땀범벅이 되고

 

조금 나아진 듯 했던 무릎도 다시 아팠지만, 그래도 한번 꼭 들러보길 강력히 추천하고픈 히말파니의 온천.

 

 

한결 개운해진 몸과 가벼워진 무릎으로 한참을 걸어 가던 참에, 이날따라 유난히 햇살이 뜨거워 쉬엄쉬엄. 나오는 마을이나

 

롯지마다 한번씩은 앉아서 땀도 식히고 선크림도 다시 바르고 했던 것 같다. 챙겨간 볼펜을 줘도 좀체 웃지 않던 요 꼬맹이.

 

색색의 빨래들이 얹힌 은빛 슬레이트 지붕, 그리고 마당에 편히 자리잡고 앉아 옥수수를 말리는 아주머니의 다부진 머릿수건.

 

 

와중에 굉장히 이쁘게 꾸며졌다 싶던 어느 마을, 간드룩 지방에 있는 어느 조그마한 마을이었는데 지천에 사루비아가 넘실넘실.

 

길은 거의 헷갈리거나 잘못 들 염려가 없는 한길이었지만 그래도 중간중간 샛길도 나있고, 그럴 때마다 이렇게 친절한 표지판 등장.

 

게다가, 어느 마을에서부터 졸졸 쫓아오더니 아예 앞장서서 인도해주는 길앞잡이 개까지 친절하다.

 

비록 중간에 물소가 길을 막고 있으면 겁먹고선 꼼짝도 못하는 순둥이에다가, 가파른 내리막 앞에선 주춤거리다가 절룩거리는

 

내 다리 사이로 진로방해를 하는 녀석이긴 헀지만, 그래도 잠시 쉬어가려 배낭을 내려놓으면 다시 돌아와서 같이 쉬어주는 센스쟁이.

 

그렇게 도착한 큐미. 간드룩 지방의 여러 마을 중에 하나라고 하는데, 이 다음 마을인 시욜리 바자르Syauli Bazar에서부터는

 

포카라로 가는 교통편을 탈 수가 있다고 한다. 트레킹을 처음 시작한 나야풀까지 가는 마을버스를 타고, 거기에서 다시 택시를 타는

 

코스라고 하는데, 그러고 보니 7일동안 바퀴달린 거나 엔진같은 동력기관을 본 적이 없다. 왠지 그 세계로 다시 들어가는 걸 최대한

 

미루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큐미에서 하룻밤 자고 내일 들어갈까 아니면 시욜리 바자르까지 예정했던 대로 갈까 고민 시작.

 

꽃나무도 많고, 롯지 한쪽에서는 이렇게 재봉틀이 발랄하게 돌아가는 소리를 내고 있는 말끔한 마을이어서 꽤나 맘이 동했지만

 

그래도 온천빨이 아직 남아있으니 좀더 걸어두기로 했다. 시욜리 바자르까지 가서 저녁 먹고 자는 걸로 결정.

 

 

큐미에서 잠시 앉아서 쉬었다 가려는데 난데없이 들이닥친, 끝도 없이 이어지는 당나귀떼들. 마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들에서

 

출현했던 듯한 수많은 당나귀들이 ctrl+c, ctrl+v로 찍어낸 느낌으로 불어나있었다.

 

그 와중에 앞엣놈 엉덩이 냄새를 맡는 놈도 있고, 괜히 대열을 벗어나 사람들에 흥미를 보이는 녀석도 있고.

 

그러고 보면 무릎이 아프기 시작한 게 하산길 초입이니 이틀째 아픔이 지속되고 있는데, 걷고 있는 시간은 좀체 줄지 않았다.

 

아침 일곱시반쯤부터 오후 대여섯시까지, 점심먹는 시간이나 쉬는 시간들을 빼더라도 대략 열시간 내외 걷는 것 같다.

 

 

 

 

여태 들렀던 롯지 중에서 가장 화려하게 치장되어있던 곳이어서 눈여겨 보았더니, 자매만 셋인 집이었나보다. 나름 한껏 치장하고

 

포즈를 잡은 사진들을 벽면에 잔뜩 붙여두었는데, 히말라야의 녹색 풍경 속에서 문득 현란한 색감을 마주하니 느낌이 새로웠다.

 

이제는 마차푸챠레 봉우리도 등지고 안나푸르나도 등지고, 정말 산에서 내려간다는 실감이 팡팡 나는 내리막길들.

 

 

여느 때와 같이 아침 일곱시 반부터 출발해서 조금 걷지 않아 무릎이 절룩거리길래, 중간에 어느 마을에서 잠시 쉬려던 참.

 

꼬맹이들 둘이서 끈을 잡고 앞뒤로 살살 흔들어대는 뭔가가 흥미를 잔뜩 돋궜다. 뭘까.

 

따뜻한 담요로 꽁꽁 싸매어진 그것은 바로 갓난아이가 담긴 포대기. 눈까지 푹 내리씌운 자줏빛 모자가 귀엽다.

 

저런 식의 한글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는 건, 요새 히말라야 트레킹을 오는 한국인이 많다는 반증이겠다.

 

이제 햇살도 다시 완연히 뜨거워졌고, 왠지 초록빛들도 훨씬 더 싱싱해진 느낌. 멀리 새하얀 봉우리가 꿈만 같다.

 

 

 

시누와 아랫마을부터는 물소도 보이고, 당나귀도 짐을 싣고 다니고. 시누와가 그 마지노선이라고 했었다.

 

내리막이라고 마냥 내리막길만 있는 건 아니다. 꼬맹이들도 애기를 업고 이렇게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오르기도 하고.

 

 

그리고 트레킹 길을 관통하며 세워진 '굉장히 큰' 상점. 거의 히말라야 최대의 대형마트 수준인 거다 이정도면.

 

술도 팔고 담배도 팔고 과자와 물과 등산화와 스틱, 수건에 필름, 건전지, 약품류까지. 없는 거 빼놓고 없는 게 없는 상점.

 

 

 

그리고 촘롱에 도착해서 일단 맥주부터 한잔. 아침 6시반부터 열심히 오르내리막, 전반적으로는 내리막길을 걸었더니 몇시간

 

걷지 않아 땀이 흠뻑 나버렸다. 아무래도 아래로 내려올수록 기온이 확 올라가는 게 체감될 정도로, 가파르게 하강 중인 거다.

 

맑은 날에는 촘롱에서 안나푸르나 사우스 봉우리와 마차푸챠레 봉우리가 보인다더니, 정말 선명하게 두개 봉우리가 보인다.

 

새하얗게 반짝이는 만년설로 덮인 날카롭고 위태로와 보이는 두개의 봉우리.

 

다리가 아파 더이상 못걷겠다는 어떤 트레커는 이제부터 말을 타고 내려가기로 하고 백마를 호출했다.

 

 

잠시 쉬고는 다시 출발, 닭들을 쫓으며 노는 아이를 지나기도 하고.

 

노랗고 빨간 무늬의 수건이 높은 바람에 펄럭이는 제법 '대문'이란 것도 갖춰놓은 집을 지나기도 하고.

 

안나푸르나 사우스와

 

마차푸차레를 바싹 당겨 관찰해보기도 하고.

 

푼힐 전망대쪽으로 가는 갈림길까지 도착해서는 반대쪽 길로.

 

 

층층이 그 육중한 무게감과 부피감을 과시하는 산의 옆구리들. 그리고 그 모든 굵직한 주름들 너머로

 

짙고 두터운 하얀 구름을 피워올리며 홀로 새하얗게 빛나고 있는 안나푸르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히말라야 산봉우리들을 배경으로 한 일출을 보고, 조금더 안나푸르나 쪽으로 걸어보기도 하면서

 

훌쩍 지나버린 아침시간. 이 풍경들을 이곳에 놓고 와야 한다는 게 너무 아쉬워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조금이라도 위험한 길이다치면 빈틈없이 내 옆에서 길을 안내해주고 여기는 어디, 저기는 어디, 안내해주던 훌륭한 가이드 커멀.

 

그를 먼저 내려보내고는 거의 한걸음에 한 장씩, 이 멋진 광경을 꼭꼭 새겨두리라 다짐하며 셔터를 눌렀다.

 

 

 

 

 

 

같은 듯 다른 사진들. 뭐하나 차마 버릴 수가 없던 디테일들.

 

그렇게 겨우 숙소까지 도착해서는 지난 밤 덜덜 떨며 비몽사몽간에 홀로 지새운 휑뎅그레한 삼인실 방을 정리하고는 하산 시작.

 

그새 구름을 잔뜩 뿜어낸 안나푸르나. 구름이 어디선가 흘러와서 덮는 게 아니라 산 스스로가 만들어내어 덮는 느낌이다.

 

 

어제에 비해 훨씬 맑아진 하산길의 시계.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로 향하는 완만한 경사길 위로 강렬한 햇살이 빗겨들었다.

 

이제는 안나푸르나를 등지고, 마차푸차레를 바라보며 가는 길이다. 물고기 꼬리처럼 생긴 마차푸차레 봉우리가 선연하다.

 

몰랐는데,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게이트의 뒷면에는 이런 따뜻한 인사말이 적혀있었다.

 

 

 

그새 풍성해진 구름 틈새로 안나푸르나 사우스 봉우리가 손을 흔들어주는 듯 하다. 마치 오랜 친구를 떠나듯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로 내려가는 길. 전날 오후에 짙은 안개 혹은 구름 속을 헤치며 왔을 때는 몰랐던 풍경이다.

 

 

회색빛 강을 따라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 걸어가기를 두시간이 채 안되었을 즈음,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를 지나고 데우랄리를

 

지나고, 어느덧 4,120여미터의 고도에서 3,000미터 어간으로, 다시 2,600미터 어간의 도반까지 내려왔다.

 

달밧으로 점심을 먹고, 따뜻하게 몸을 덥히고 다리를 좀 주물러주다가 다시 출발.

 

사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내려오는 순간부터 다리에 문제가 있었다. 두개의 스틱을 잘 써서 거의 네발짐승처럼

 

빠르고 안전하게 산을 오르긴 했지만, 하루 열시간을 넘나드는 오르내리막의 산길을 6일째 쉼없이 걷다보니 아마도 무리했던 거다.

 

왼쪽 무릎과 오른쪽 무릎이 서로 통증을 호소하며 자기가 더 아프다고 경쟁하더니, 왼쪽 무릎으로 모든 통증이 옮겨가는 걸로

 

정리가 되어서는 발을 내리딛을 때 거의 도가니가 찢겨가는 듯한 아픔이 있었다. 절룩거리며 왼발을 제외한 세 다리로 하산 재개.

 

그래서, 해발 4,120미터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해발 2,360미터의 시누와까지 내려오기까지는 카메라도 가방 안에 넣고

 

무사히 내려오는 데 온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특히 점심 먹고 이후의 코스가 꽤나 가파르고 험한 돌밭이어서 조심조심.

 

그래도 무릎에 맨소래담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네팔 현지 연고를 바르고 손수건을 압박붕대삼아 칭칭 감고 걸으니 좀 괜찮은 듯 하여

 

여지없이 열시간 가까이 걷는 하루를 이어갔다. 저녁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사이에 시누와 동네 사진 한장. 트레킹코스를 따라

 

길게 형성된 롯지들의 군집. 그게 시누와를 포함한 다른 히말라야 고산지대의 마을들이 생겨나고 커지는 방식인 듯 싶다.

 

 

저녁은, 두둥. 어느 롯지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Noodle' 메뉴 중의 하나, 'Korean shin lamen noodle'. 심지어 한글로 '신라면'이라

 

적혀있기도 하길래, 대체 맛이 어떠려나 궁금해서 한번 먹어보았는데, 면발이 꼬들꼬들하고 한국보다 더 매콤하니 맛있었다.

 

다리가 아프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등산길보다 하산길은 훨씬 빠르게 주파하는 중이다.

 

올라올 때는 근 이틀이 소요되었던 구간을 하루만에 내려와버린 셈이니. 다리가 안 아팠다면 훨씬 빨리 내려올 수 있었을 듯.

 

 

 

 

해발 4,120미터 고지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새벽부터 일어나 히말라야 산봉우리 사이로 솟는 해를 보고 난 뒤라

 

꽤나 흥분 상태가 오래 지속되었던 거 같다. 금세 배가 고팠지만 전날 선주문해둔 아침식사라고는 고작 구릉족 전통빵과 벌꿀.

 

그에 더해서 고산병 예방에 특효이자 이 추운 동네에서 몸을 따뜻하게 지켜주는데 효험이 좋다는 마늘 스프까지.

 

아침을 먹고 다시 나왔더니 그새 새파란 하늘이 조금씩 구름을 몰아내는 중이다.

 

 

다시금 두근두근, 이 새하얗고 거대하고 위엄돋는 자연 앞에 언제 다시 서보랴 싶어서 카메라를 쥐고 안나푸르나 쪽으로 무작정 걷다.

 

이제 이 곳에도 새로운 롯지를 짓느라 꾸역꾸역 건축자재들을 등짐으로 이고 지고 나르며 작업이 한창이긴 하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안나푸르나를 비롯한 마차푸챠레, 닐기리 등등 숱한 히말라야의 높은 봉우리들은 여전히 굽어볼 뿐이다.

 

 

롯지 여기저기서 튀어나온 다국적인들, 일행과 함께 혹은 나처럼 혼자서 산을 향해 걷는다. 뭔가 홀린 사람들같기도 하다.

 

 

 

정신줄 놓고 그저 셔터만 누를 뿐. 이런 풍경 앞에서 감히 무슨 단어와 표현을 동원할 수 있겠나 싶다.

 

 

 

 

 

빙하가 훑고 지나며 수백수천년 간 갈아엎었을 저 주름진 협곡.

 

 

 

새하얀 구름들은 새파란 하늘 속으로 점점 녹아내리고, 산봉우리들을 포근하게 감싼 하얀 만년설은 얼음처럼 반짝거린다.

 

 

더 이상 접근하긴 힘들겠다 싶을 즈음, 더 이상 롯지로부터 대책없이 떨어지긴 겁난다 싶을 즈음.

 

 

박영석 대장을 비롯한 안나푸르나 등반대 3인의 위령탑을 발견했다. 불과 2011년의 일. 탑 아래엔 가족사진이 빛바랜채 놓였다.

 

여전히 이 시대에 '탐험'과 '모험'이라는 걸 찾아다니느라 피가 끓었을 사람들, 이 곳에서 평안히 잠드셨기를.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사진을 추리고 걸러내려 애써봐도, 약간의 각도만 틀어져도 또다른 디테일들이 나타나는 거다.

 

그저 얼음 좀 얹혀있는 커다란 바윗덩이려니 생각했는데, 수만년의 시간동안 쪼아지고 다듬어졌을 그 표피의 질감과 무게감이라니.

 

게다가 환청인가 싶을 만큼 드문드문 갸날픈 신음소리를 내며 흘러내리는 빙하. 금세라도 우르릉,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아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던 풍경이라 사진 역시 뭐 하나 버릴 수가 없더란 점.

 

 

해발 4,120미터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그곳에서 올려다본 안나푸르나 산봉우리를 비롯한 히말라야의 산줄기들은,

 

하얀 색과 검은 색이 어우러졌을 때 도달할 수 있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이고 있었다.

  

w/ Pentax K-5, 15mm limited lens

 

 

 

 

 

 

해발 4,130미터. 이 표지를 보고 나자 생각보다 훨씬 감개무량한 느낌이 들었다. 여기를 오려고 여태 걸었구나, 싶기도 하고

 

내가 이렇게 높이까지 걸어올라와 보았구나, 싶기도 하고. 그냥, 질리도록 걷고 싶었는데 그야말로 5일간 징하게 걸어서 도착한 곳.

 

 

그리고 짙은 안개속에서 헤엄치듯 조금 더 걸어가니 비로소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가 나타났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예기치 않게도 산악인 고 박영석의 기념패. 2011년에 안나푸르나 등정을 왔다가 유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크고 황량하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시즌이 아니라 더욱 사람이 적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앞서 걷던 미국 친구 하나는 벌써 다이닝룸에 누워서는 우쿨렐레를 연주하고 있길래, 슬쩍 도촬. 훌륭한 풍경이다.

 

그리고 한쪽에는 새로 롯지를 짓고 있는 공사판이 있고, 그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을 위한 텐트가 짙은 구름 속에 숨어있다.

 

새로 지어지는 롯지에 들어갈 침대들. 그러고 보니 트레킹 중에 내가 누웠던 침대는 모두 저렇게 생겼던 거 같다.

 

멀찍이 흐릿하게 보이는 탑 같은 형체가 삐죽 솟았길래 슬쩍 가봤다.

 

가는 길에는 온통 누군가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사진과 글귀가 가득했고.

 

 

탑 역시도 티벳 불교식의 깃발을 온통 휘감고서는 안나푸르나를 바라보고 향했던 사람들을 품었다.

 

 

 

비교적 최근에 늘어뜨린 것처럼 보이는 선명한 빛깔의 깃발은 '부처의 눈' 그림을 새긴 채 산아래를 굽어보는 중.

 

4,130미터 고도의 이곳에서도 공사판은 별다를 거 없다. 물론 건축용 부자재들은 하나씩 전부 사람이 이고지고 날라야 한다는

 

차이가 있다면 있겠지만, 그렇게 날라온 문짝과 유리와 나무판넬들을 가지고 건물을 세우는 건 기술자들의 몫.

 

이렇게 촘촘한 발받침을 갖고 있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기도 할 테고. 저렇게 간격이 좁으면 오히려 불편하지 않을까, 괜한 걱정.

 

여기까지 무사히 트레커들을 인도해서 끌고 온 가이드와 포터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이야기에 열중이다.

 

모두들 추위를 막기위해 오리털 파카에 네팔 전통의 양털 모자를 썼다.

 

그리고 이미 이 곳 다이닝룸에 자리를 잡은 한 트레커는 침낭 안에 들어간 채 꽁꽁 옷을 싸매고 모자까지 쓴 채 독서삼매경.

 

아침마다 향을 새롭게 갈아 피울 텐데, 저렇게 나무벽에 찰싹 붙여서 태우면 위험하지 않으려나 걱정스럽기도 하고.

 

애초 제대로 씻을 생각도 없었지만, 그래도 고양이세수라도 하려고 화장실을 찾았더니 주인 아저씨가 양동이를 내준다.

 

여기는 물도 귀하다면서 저 양동이에 달린 수도꼭지를 틀고 세수도 하고 발도 닦고 하라는 것. 대충 씻고 치웠다.

 

 

그리고, 짙은 안개를 뚫고 불현듯 안나푸르나 봉우리들이 나타났다. 그야말로 두둥실, 구름 사이에서 삐쭉 고객만 내밀었다.

 

근데 이토록 가까이 다가섰을 줄이야. 거의 코앞이잖아 싶을 정도로 눈앞을 압도하는 위용과 그 디테일.

 

이내 짙은 구름 속으로 다시 숨어버렸고, 한참을 바라보아도 좀체 다시 나타날 기미가 없더니,

 

해가 거의 떨어지기 직전 다시 한번 슬쩍 안부인사를 건넸다. 굳 나잇. 내일 새벽에 봅시다.

 

 

5일차의 아침이 밝았다. 히말라야 캠프는 2,920미터, 점심은 3,700미터의 MBC, 그러니까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에서,

 

그리고 저녁은 4,130미터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먹기로 했다. 계속해서 올라가는 길, 정점을 찍는 날이다.

 

바깥이 시끌벅적하길래 눈을 떴다. 맹렬한 추위로 뼈마디가 온통 굳어버렸고 무릎도 발가락도 온통 아프지만, 일단 카메라를 쥐고

 

밖으로 뛰쳐나왔더니 맑은 하늘에 안나푸르나 봉우리가 보인다. 밤새 비가 오더니 그래도 아침만 되면 용케 비가 그치니 다행이다.

 

 

위풍당당하게 출발, 기온이 확실히 떨어져있어서 옷을 좀 두껍게 입을까 하다가 어차피 계속 걷다보면 열이 오르고 땀이 나니 패스.

 

MBC,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가는 길에 있는 거대한 동굴. 비가 오거나 하면 잠시 앉아 쉬어가며 구름바다를 구경하는 것도 좋을 듯.

 

길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그렇게 오르막 일색인 것도 아니고, 적당한 경사의 오르내리막이 이어지는, 그리고 중간중간

 

날 듯이 걸어갈 수 있는 평지 구간도 안배되어 있다.

 

 

걸어가면서 점점 눈에 잘 띄는 삼각뿔 모양의, 마치 피라미드 같은 안나푸르나 사우스 봉우리.

 

얼마 가지 않았다 싶은데 벌써 시야에는 다음 마을, 데우랄리가 보인다. 해발 3,200미터상의 마을이자 그 위로는 단지 ABC와

 

MBC만을 두고 있는 하늘아래 첫동네이기도 하다. 각기 안나푸르나(7,200여미터)와 마차푸차레 등정(7,000미터)을 등정하기 위한

 

베이스캠프인 ABC와 MBC 그 두개는 딱히 마을이라고 부르기는 좀 무리가 있어 보이니깐.

 

 

물살은 한결 더 급하고 격하고, 유량도 많다. 최근에도 이 곳에서 한국 트레커가 한 명 실족해서 사망했던 일이 있었을 만큼,

 

잠깐의 방심이나 실수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빚을 수 있는 곳이다.

 

 

데우랄리에 도착했을 즈음, 하늘은 더 없이 파랗고 햇살은 정말 눈부시다. 자외선지수도 엄청 높을 테니 잠시 앉아 쉴 때마다

 

선크림을 챱챱 발라주고, 안경 대신 렌즈에 선그라스를 끼고 다니기를 정말 잘했다고 실감하는 하늘이다.

 

 

잠시 앉아서 땀도 식히고 물도 좀 마시고 나서는 다시 출발. 이제 마차푸챠레와 안나푸르나가 코앞이라고 하니 없던 기운도 솟는다.

 

 

햇살이 눈부시지만, 그 햇살 속에 물고기 꼬리 모양으로 갈라진 마차푸챠레 봉우리가 신기루처럼 둥실 떠 있다.

 

 

그리고, 데우랄리 위쪽으로는 계속 걷기 무난한 코스가 이어지고. 사실 촘롱으로 들어선 이후로 그렇게 길이 험하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들었던 거 같다. 푼힐 전망대쪽에서 촘롱으로 이어지는 구간이 제일 어려웠던 듯. 정확하게는 타다파니에서 촘롱 구간.

 

 

 

양쪽으로 봉우리가 우뚝 솟아난 틈새, 그 협곡을 따라 걸어올라가는 길이다.

 

 

한쪽으로는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녹아서 내리는 듯한 회색빛의 시냇물이 요란하게 흐르고, 한쪽으론 제법 평평한 공간에 꽃들이.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새하얀 암벽. 히말라야의 숨겨진 비경이다.

 

 

그리고,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가 드디어 시야에 잡히다.

 

 

고도가 높으니 나무같은 것들은 안 보인지 오래. 키작고 조그마한 식물들이 빽빽히 들어찬 초원이라고 해야 하나.

 

 

왔던 길을 돌아보니 구불구불, 길이 참 이쁘기도 하다.

 

그리고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 해발 3,700미터 고지다. 아침에 먹은 갈릭수프 덕분인지 고산병의 징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얼마전에 막 새로 단장한 듯 말끔한 페인트칠에, 어라, 벽면에는 이러저러한 기하학적 문양까지 새겨넣었다.

 

그리고 눈이 멀도록 새하얗고 강렬한 태양. 기온은 서늘할 정도로 낮은데 햇살은 찌르는 듯 따가운 그런 기묘한 느낌.

 

마치, 왼발은 찬물에 오른발은 뜨거운물에 담그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려나.

 

 

 

 

그러고 보면 매일 비슷한 일정이다. 아침 7시반쯤 출발, 오후 4시에서 4시반쯤 대충 도착. 가끔 오후 6시까지 걷기도 하고, 혹은 아침의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4시부터 움직인 적도 있긴 하지만 대충 그 정도씩만 걸어도..하루 열시간 가까이 걷는 거구나.

 

 

히말라야 캠프의 롯지는 고작 세 동이던가, 위로 올라갈수록 롯지 수도 줄어들고 마을 자체가 형성되지 않은 곳이 많다더니 정말이다.

 

그래도 납작평평한 돌들로 이렇게 테라스도 만들고 계단도 쌓아두고, 생각보다 훨씬 잘 정비되어 있어서 놀랐다.

 

그렇다고 따뜻한 온수가 나온다거나 난로가 지펴지는 건 아니어서 꽤나 추웠지만, 덕분에 제대로 씻지도 못한 땀과 땟국물이

 

그렇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방금까지 열심히 걸으며 온몸 가득 흠뻑 젖었던 땀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뽀송뽀송해진 상태.

 

건물 외벽에 나와있는 요 단촐한 시설이 세면대. 여기에서 씻고 이닦고 발도 닦고.

 

어느 포터의 등짐. 대나무로 엮어 만든 등짐에 대충 질긴 천을 찢어 묶어서는 어깨끈을 만들었다.

 

히말라야 캠프 앞쪽의, 아마도 공용 설비라고 해야 하나. 뭐 딱히 롯지끼리 니꺼내꺼 갈라 쓰는 분위긴 아니라지만 여긴 위치상 공용.

 

속속들이 집결하는 트레커들. 촘롱 이후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오르는 길은 이길 하나밖에 없으니 사람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눈인사만 주고받던 사람들이던 '나마스떼~'하고 인사를 나눴던 사람들이던 결국 몇번씩 얼굴을 마주치게 된다.

 

 

아직 우기의 끄트머리라 그런가, 그러고보면 4일차에 이르도록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왔다. 그나마 하루 빼고는 오후 늦게부터 비가

 

오기 시작해서 걷는데 지장이 없었지만, 중간에 하루 비맞으며 마침 굉장히 오래 걷고 났더니 굉장히 타격이 크다. 옷도 다 젖고.

 

3천미터 어간에서부터 주의해야 하는 고산병.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거나, 식욕이 없다거나, 몸이 무거워지는 등등 다양한 증세를

 

보인다고 하는데, 요새는 고산병 약으로 (혈관 확장효과 때문에) 비아그라를 많이 쓰기도 한다고 한다. 그치만 현지 가이드의 추천을

 

듣건대, 그리고 내 경험상으로도 단언컨대, 고산병에는 마늘수프가 최고다. 갈릭 수프.

 

저녁은 간단하게 갈릭수프와 감자전 비스무레한 것. 갈릭수프는 기대 이상으로 꽤나 맛있었고, 몸도 따뜻하게 덥혀주는 효과까지.

 

네팔같은 빈국의 경제 상황을 가늠케 해주는 것 중 하나는 이런 기본적인 생필품들의 퀄리티를 보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느쪽이 칼날인지 헷갈릴 정도로 얇디얇은 저 손잡이들. 칼뿐 아니라 숟갈이나 포크 역시 마찬가지다. 칼날만큼 얇은 손잡이.

 

그리고 가스 버너. 한국의 등산가들이 갖고 와서 쓰다가 놓고 갔다던가. 왠지 이 동네에 딱 어울리는 물건이지 싶다.

 

 

그리고 전기조차 귀해서 알전구가 빠져 있는 내 숙소방. 전기가 끊긴 건지 전구가 비싼 건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내게 지급된 초 한자루.

 

바깥 기온과 딱히 다를 바 없는 실내 기온 때문에 오리털 침낭을 덮고 그 위에 이불을 또 덮었지만 별무소용이라, 따뜻한 물을 다시

 

주문해서 계속 마셨다. 양초도 어찌나 조악하고 조그맣고 얇은지, 생일 케이크 위에 올라가는 초라고 해도 믿겠다.

 

그래도 이토록 짙고 농염한 어둠 속에서도 양초 한 자루, 그리고 헤드랜턴 두개를 가지고 히말라야의 긴긴 밤동안 책도 읽고

 

일기도 쓰고. 가져갔던 책이 네 권인데 전부 다 읽고 돌아왔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향하는 거침없는 오르막길, 그 문턱에 있는 시누와. 시누와까지만 당나귀나 물소가 다니고 그 위로는

 

사람만 등짐을 메고 다닐 뿐이라고 한다. 덕분에 거머리의 습격도 없고 당나귀 똥밭도 없긴 하지만, 또 그래서 시누와 위쪽으로는

 

미네랄 워터를 팔지도 않고 그저 끓여서 정제한 물만 판다는 단점도 있다. 위로 오를수록 물가가 올라간다는 점도 있고.

 

시누와를 지나 2,310미터 고지의 밤부Bamboo에 다다라 점심을 먹기로 했다. 대나무가 많이 나는 마을이라 밤부, 맞다고 한다.

 

 

 

지천으로 피어있는 게 꽃나무고 풀떼기들인데도, 이렇게 플라스틱 케이스를 재활용해서 롯지 곳곳을 식물로 꾸며놓았다.

 

롯지 앞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대나무숲, 사람들이 몇명 들어가서 대나무를 베고 죽순을 채취하고 있었다.

 

이미 슬쩍 소슬해질 만큼 낙차가 느껴지는 기후, 맨땅바닥에 그대로 앉으면 엉덩이가 차가워져서 꼭 저렇게 양털가죽을 깔고 앉으라

 

말해주는 세심한 가이드, 그 덕분에 푼힐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코스를 무사히 잘 다녀왔다.

 

그리고 점심. 달밧을 시켰는데 반찬이 색다르다. 역시, 대나무가 많이 나는 지역이라더니 밑반찬도 대나무 속대로 만든 요리. 맛있었다.

 

 

다시 배를 채우고 출발, 해발 2,920미터 고지의 히말라야 캠프까지 올라갈 생각이었는데 그러면 대충 500미터 어간을 올라야 하는 셈.

 

체코에서 오신 70대 노부부의 페이스에 맞춰서 살살 '천천히 천천히' 올라가기로 했다. 한국어와 영어를 굉장히 잘하는 가이드가

 

제일 먼저 배운 한국말은 역시나, '천천히 천천히'라고 했던가. 무작정 서두르고 다그치며 오르는 한국인들이 많은가보다.

 

한참 걸어가는데 옆에서 대나무 속대를 채취해서는 다듬고 있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등짐을 메고 이마로 끈을 버팅기며 저 무거운 가스통을 이고 지고 나르는 사람.

 

 

앞의 체코 노부부를 챙기는 가이드도 굉장히 살뜰하고 세심한 사람이었다. 다리를 건너거나 경사가 가파른 곳을 지날 때는

 

원, 투, 쓰리, 발 딛을 곳까지 하나하나 지정해줘가며 인도해주고, 어떨 때는 이렇게 힘껏 지탱해주는 든든한 버팀목도 되어주고.

 

아무리 봐도 네팔어는 참, 저 글자를 어떻게 쓰는 건지 신기하기만 하다. 쓴다기보다 그린다는 표현이 맞을 거 같다.

 

 

점점 안개인지 구름이 휘감고 있는 지역이 늘어나고, 경사도는 완만해질 줄 모르고 끝없이 오르막인데다가 짐은 무겁다.

 

 

그래도 주변의 풍경들, 급류를 이루고 흘러가는 개울과 온통 초록초록한 가운데 점점이 뿌려진 꽃송이들.

 

그런 풍경을 천천히 음미하며 오르다보니 금세 히말라야 캠프. 2,920미터의 이곳에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는 이제

 

세개 포스트 남았다. 데우랄리,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 그리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촘롱, 해발 2,170미터까지 내려온 셈이지만 이제부터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는 죽 올라가는 한 길이다.

 

제법 큰 이 마을에서 당분간은 누릴 수 없을 따뜻한 물 샤워를 즐기고 떠나기 전, 새벽 댓바람부터 안나푸르나 봉우리들이 훤히 보인다.

 

안나푸르나 1, 안나푸르나 사우스, 그리고 두 갈래로 갈라진 물고기 꼬리를 닮았다 하여 붙은 이름 마차푸챠레

 

(마차 : 물고기, 푸챠레 : 꼬리)의 봉우리가 아무런 장애물없이 훤하게 보이는 아침이다.

 

 

밤새 묵었던 촘롱의 롯지. 그래도 비에 쫄딱 젖은 옷들과 우비들은 모두 방앞의 빨랫줄에 걸어놨지만, 밤사이에 말랐을리 만무.

 

 

안나푸르나 1과 안나푸르나 사우스.

 

그리고 마차푸챠레. 슬쩍 빗겨올라치는 햇살이 뚜렷한 선을 긋는다.

 

4일차의 아침. 오늘은 촘롱에서 시누와를 거쳐 2,920미터에 있는 히말라야 캠프까지 올라가는 걸로 일정을 잡고.

 

그새 태양은 불쑥 떠올라 산봉우리들과 거의 눈높이를 맞췄다. 여전히 시꺼먼 어둠 속에 잠겨있는 산의 아랫도리.

 

창밖으로 보이는 안나푸르나 봉우리의 저 디테일한 근육들과 하얗게 반짝거리는 만년설이 빚어내는 몽환스러움.

 

 

숙소의 내 방 앞을 장식했던 티벳 불교식의 부적들.

 

 

역시나 2인룸이었지만, 이 롯지의 여남은 개 되는 방이 텅텅 빈 채였으니 혼자 넓찍하게 쓸 수 있었다.

 

 

  출발해서 몇 걸음 옮기기도 전. 아침밥 짓는 연기가 부엌의 문짝 위로 새어오르고 닭들과 염소들이 겁없이 길을 막고 서는.

 

 

온통 산악지대다 보니 바퀴 달린 도구를 쓰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 당나귀를 시키거나 아님 사람이 직접 나른다.

 

 

이렇게 자기 키를 훌쩍 넘는 짐꾸러미도 어떻게든 꾸메꾸메 엮어서 한발한발 조심스레 옮겨다니는.

 

 

커다란 협곡 위를 가로지르는 흔들다리. 굉장히 길고 출렁거리는 게 장난이 아니어서 소름이 슬쩍.

 

그나마 다리 옆 얼마전까지 썼다는 허름하고 다 부서져내린 다리를 보니 이게 훨씬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잠시 쉬어가는 참, 촘롱 위에서부터는 미네랄 워터도 팔지 않고 그냥 히말라야 산에서 내려온 물들을 끓여서 정제해서 판다고 하더니.

 

그리고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물값과 음식값이 비싸진다. 그래봐야 물 1리터에 400원 어간에서 1000원 어간으로 오른 셈이지만.

 

 

제법 화사하게 꾸민 집 한 채 앞뒤로 층층이 다랭이논이 가꾸어져 있고, 알록달록한 색색의 빨래가 길게 꼬리를 늘어뜨렸다.

 

 

여태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니 저 산등성이들 사이로 요리조리 걸었던 것만 같고.

 

잠시 쉬어가는 참에 벌러덩 누워 하늘을 보니 새파란 게 옆엣 롯지의 새파란 굴뚝과 깔맞춤을 했나 싶다.

 

 

 

어느 집에서는 갓 태어난 듯한 새끼고양이가 베개 위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지만, 이미 내 몸도 힘들어서 쓰다듬어줄 생각도 못하고.

 

 

아침에 출발하고 또 네다섯시간, 점심을 먹기로 한 마을, 시누와가 눈앞에 나타나는 것을 보니 걸음이 다시 빨라진다.

 

 

어제 촘롱까지 오는 길에 워낙 무리를 한 탓인지 오늘은 체코에서 왔다는 70대 노부부와 페이스를 맞춰 걷던 참이었다.

 

78살의 할아버지와 77살의 할머니. 오르막이건 내리막이건 평지건, 한결같은 페이스와 보폭으로 걸어가시는 게 뭔가

 

인생의 연륜이 묻어있다는 생각을 절로 들게 만드는 두 분. 그래서 결국 무턱대고 달리는 젊은이들보다 빨리 도착하던.

 

할튼, 해발 2,360미터 시누와에 도착. 점심시간이다.

 

해발 2,590미터의 타다파니, 롯지들이 몇채 옹기종기 모여있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집집마다 티벳 불교도임을 알리는 깃대가 섰다.

 

 새로운 메뉴에 도전, 치즈를 얹은 볶음면. 고수도 들어가고 몇가지 향신료가 독특했지만 전반적으로 좀 질척하고 양도 너무 많았다.

 

그러니까 오늘 새벽 4시반부터 걸은 코스는, 고레파니에서 왼쪽위의 푼힐, 다시 고레파니로 가서 데우랄리에서 벤탄티, 타다파니까지.

 

점심을 먹고 나면 출레, 구르정을 지나 촘롱까지 가기로 했다. 그러고 나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계속 오르막길.

 

 

 

점심을 먹고 계속 가는 길, 점점 구름이 짙어지는 것이 심상치 않은 날씨다 싶더니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어느 아저씨는 물소고기를 손질하느라 휘어진 모양의 네팔 전통칼을 능란하게 휘두르고 계시고.

 

롯지 앞을 장식한 염소의 뿔.

 

그리고 한사람이 겨우 지나는 오솔길을 턱하니 온몸으로 막고 선 물소 녀석. 네팔을 떠나기 전 네녀석 고기를 맛보고 싶었는데 아쉽.

 

 

잠시 쉬었다 가는 길. 물소가 지났던 길에는 거머리를 조심하라더니, 여기서 잠시 쉬다가 순식간에 거머리의 습격으로 피를 빨리고.

 

 

 

그리고 여기서 쉬던 참에는 우연찮게 며칠째 같이 걷고 있는 스페인 친구가 또 거머리에 당해버렸다. 어찌나 피를 많이 빨던지.

 

 

그리고 촘롱까지 가는 길, 더이상 억수같이 붓는 비를 견디지 못하고 카메라를 가방 속에 넣어버리는 바람에 더이상 사진은 없고,

 

그저 우비를 입고 가방에도 비막이를 씌우고 물을 뚝뚝 흘리며 물에 빠진 생쥐처럼 몇시간을 더 걸었다는 것만.

 

대략 오전 4시반부터 오후 6시까지 걸었으니까..13시간 이상 걸은 셈이다. 그리고 촘롱에서 도착직후 쓰러져 잠들다.

푼힐전망대를 내려와서 다시 고레파니의 롯지로. 어제 저녁 주문해놨던 아침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구릉족 고유의 빵과 감자,

 

그리고 오믈렛까지 든든하게 먹고서 다시 길을 떠날 준비. 이제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코스로 넘어가야 한다.

 

 

짐싸기 전, 밤새 싸늘한 추위에 오리털 침낭안에 들어가고 그 위에 이불을 덮은 채로 머물렀던 내 방에서 보이는 안나푸르나의 설봉.

 

이른 아침의 향내가 은은한 가운데, 입구에는 어김없이 꽃 한송이가 바쳐졌다.

 

롯지의 다이닝룸, 그리고 온갖 기초적인 음료와 간식류들.

 

하트 모양이라 해야하나, 길쭉한 고추 모양이라고 해야 하나, 할튼 숙소방 열쇠들.

 

달밧과 구릉빵과 온갖 메뉴들을 주문받아 만들어내는 주방.

 

어느결엔가 차갑게 식어버린 난로. 그 위의 온갖 세탁물들과 침대 커버들이 무색하다.

 

 

다시 내 방의 창문. 2인실이었지만 아직은 비수기인 덕택에 혼자 널럴하게 다 썼다. 침대 하나는 테이블로 삼고.

 

공용 화장실. 앙상한 세면대와 샤워기, 그리고 그나마 파스텔톤의 색감이 느껴지며 다른 곳의 화장실보다 낫던 곳.

 

출발, 여기도 허수아비를 세워두는구나.

 

 

고레파니에서 동쪽으로 계속 가서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챠레의 두 봉우리 아랫목까지 걸을 생각인데, 제법 이쁜 길이 이어진다.

 

다른 트레커들의 짐을 들어주고 계시던 포터 할아버지, 나이도 꽤 지긋해 보이시는데다 슬리퍼 차림이라니 깜짝 놀랬다.

 

 

그리고 꽃밭. 온통 노랑꽃이 지천으로 피어나선 사방에서 돌비서라운드로 들리는 시냇물 흐르는 소리와 마구 뒤섞인다.

 

 

 

해발 3천미터 고지대에서 오르내리막하다보니 온통 안개 속이다. 안개인지 구름인지. 그 중 하나의 꼭지점에서 잠시 휴식.

 

 

성수기에는 저 집에서 음료도 팔고 물도 팔고 그런다는데 지금은 그저 텅 비어있는 버려진 초막 같은 느낌.

 

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노란 꽃들과 보라색 꽃들이 툭툭 튀어나오는 풍경, 그 가운데로 뻗어나가는 구불구불한 오솔길까지.

 

 

 

 

 

왜 그 등산화를 포함해서 등산용품들을 선전하는 광고에서 흔히 보이는 '히말라야 트레킹' 장면 같은 멋진 풍경들이다.

 

 

 

나무가 꺽여나간 그루터기 위, 소담한 이끼와 이파리들이 하나의 조그마한 숲을 이루었다.

 

중간에 들른 어느 마을, 하루에 20여킬로씩 걷다 보면 마을을 최소한 세네개는 지나게 되는 것 같다. 여긴 입구부터 버섯을 말리는 중.

 

잠시 차 한잔 마시며 쉬었다 갈까 하다가, 별로 힘들지 않은 길이고 걷기에 참 좋은 길이어서 그냥 계속 가기로.

 

 

 

 

중간에 만난 자그마한 폭포. 히말라야 산맥의 산들은 어찌나 물이 많은지, 사방에서 조그마한 내와 폭포가 흘러넘친다.

 

 

개울을 지나는데 깜짝, 이렇게 돌탑을 쌓아두는 건 우리나라에서만 보이는 건 줄 알았더니 아닌가보다. 납작평평한 이 동네에서

 

자주 보이는 돌들이 이런 돌탑을 쌓는데에는 굉장히 유리한 조건을 제공해준다.

 

 

 

그리고 중간중간 개울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 굉장히 엉성하게 나무 두어그루를 묶어둔 것도 있고, 이렇게 제법 꼴을 갖춘 것도 있고.

 

 

 

알게 모르게 설렁설렁 올라가는 길 같기도 하고, 갈수록 점점 산이 깊어진다는 느낌은 짙어진다.

 

그리고 해발 2,870여미터의 고레파니에서 삼백여미터 아랫춤의 타다파니(해발 2,590미터)까지 도착해서 점심시간.

 

 

 

푼힐전망대, 안나푸르나 서쪽에 위치한 이곳은 해발 3,210미터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코스에서 만나게 될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 직전의 데우랄리쯤과 비슷한 고도를 점하고 있는 곳이다. 새벽 4시반부터 롯지를 나와 산행을 시작한 건,

 

이 전망대에서 해뜨는 걸 보며 동시에 안나푸르나 사우스, 안나푸르나 1, 마차푸챠레, 닐길리, 힌출리 등의 이름 높은 산들을

 

바라보고자 함이지만, 사실 밤새 구름이 많이 끼고 심지어 비도 조금 내렸어서 큰 기대는 없었다.

 

캄캄한 어둠 속을 헤드랜턴으로 헤치며 근 1시간가까이 헉헉대며 산행을 했을까, 해발 2,874미터에 위치한 고레파니에서 수직으로

 

약 400미터 가까이 올라가야 하는 셈이니 생각보다 거친 산행이었던 셈이다. 슬몃 하늘이 밝아진다 싶을 때 전망대에 도착했다.

 

저멀리 닐기리 산의 눈덮인 정상부가 짙은 구름 사이에서 신비스러운 빛을 내뿜는 게 보였지만, 전반적으로는 구름에 숨은 상태.

 

 

우선 전망대에 위치한 찻집에서 밀크티, 찌야를 마시며 몸을 좀 녹였다. 보통 롯지에서는 50루피 내외(KRW 500원 정도)이던 찌야가

 

무려 240루피. 역시나 여기서도 네팔 본국 사람에 대한 우대는 여전해서, 같은 찌야가 고작 120루피. 대개 그렇듯 차 역시 반값이다.

 

 

맹렬한 속도로 움직이는 구름, 날카로운 삼각뿔 형태의 안나푸르나 사우스에 갈갈이 찢기면서도 하릴없이 몰려왔다. 볼 수 있을까.

 

그 와중에도 한쪽의 벤치에는 쌍쌍이 앉아 있는 커플들, 마치 알프스의 다정다감하고 온유한 산정에 오른 듯한 분위기를 연출 중이다.

 

구름이 없이 맑은 날이면 전망대 아랫춤에 붙어있는 그림처럼 쭈욱 이어지는 산봉우리들을 볼 수 있을 텐데.

 

 

끈덕지게 시야를 가로막던 구름들이 조금씩 산개하며 밀려나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푼힐 전망대의 전망탑. 하늘은 파래졌지만 사실 아직 태양이 지면 위로 떠오르지는 않은, 그야말로 일출 직전의 긴장감.

 

 

밤새 이슬이 내려앉은 어느 벤치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 봉우리들.

 

 

삐쭉, 봉우리가 구름 위로 솟았지만 여전히 계속 감질나는 시츄에이션.

 

그 와중에 봉우리들 틈새로 햇살이 빗겨 번지기 시작했다.

 

무슨 수묵담채화도 아니고, 옅은 금빛의 햇살이 시꺼먼 산 아랫도리를 부드럽게 헤집으며 서서히 채비를 갖췄다.

 

 

 

끝내 맑은 하늘을 못 보려는가 싶으면서도 뭐 딱히 서두를 거 있나, 하는 느긋한 마음으로 이제나 저제나 목을 빼고 기다리는 중.

 

사실 딱히 안나푸르나 사우스니 마차푸챠레니 하는 봉우리들이 하나씩 툭툭 불거지지 않아도 좋았다. 어차피 난 푼힐 트레킹 코스

 

말고도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코스로 넘어갈 거고, 그러면 계속해서 그 봉우리들을 바라보고 걷게 될 테니 급할 건 없다.

 

 

 

오호라, 그렇지만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안나푸르나 1과 안나푸르나 사우스 봉우리를 대면할 수 있었다. 금빛 아침햇살을 머금고

 

반짝거리는 새하얗고 매끄러워 보이는 만년설의 질감이란. 게다가 저토록 섬세한 디테일들이 맨눈에도 쉽게 드러나다니 감탄 또 감탄.

 

 

실컷 감상을 하고서 슬슬 내려오면서도 계속 안나푸르나의 봉우리들은 뒤를 지켜 주었다. 이제 모두 저멀리로 날아가버린 구름들,

 

가끔 깃털인양 한두조각씩 걸쳐지는 구름들을 불어내면서 그 거대하고 웅장한, 위엄돋는 봉우리들이 하늘을 받치고 있었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올 때보다 쉬웠다. 우선 날이 밝아 발밑이 안전했고, 줄곧 내리막이었으며, 배가 고팠으니깐. 금세 푼힐전망대의

 

티켓 오피스를 지났고 이내 고레파니의 숙소까지 내달릴 수 있었다.

 

고레파니 마을로 들어서기 직전의 회전문. 대체 왜 저런 문을 설치했나 했더니, 닭이니 염소니 물소니 그런 것들이 함부로

 

마을 경계를 넘어 도망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란다.

 

 

 

 

해발 2,874미터의 마을 고레파니. 백두산이 2,744미터였던가 그러니까 이미 백두산보다 높은 지역으로 올라온 셈이다.

 

제법 기온도 서늘해졌다 싶더니, 해가 떨어지고 나니 삽시간에 추위가 몰려온다.

 

아직은 해가 떨어지기 전, 아침 7시반부터 3시까지 근 7시간여 걷고 난 후에 숙소에 들어오고 나서 마을 구경에 나섰다.

 

머물게 된 숙소 근처에서 발견한 그럴듯하게 휘감긴 염소뿔의 위용. 슬쩍 집어오고 싶을 정도로 위풍당당하더라는.

 

 

하루의 트레킹을 끝내고 숙소로 오면 일단 맥주부터 시원하게 한 캔 혹은 한 병씩을 마시는 게 그렇게도 맛났다.

 

네팔의 국산맥주인 에베레스트 맥주는 좀 싱거운 느낌이었고, 원래 유럽맥주지만 네팔에 공장이 있다는 투벅 맥주는 훌륭한 편.

 

그 외에 위스키나 럼, 아니면 옥수수나 곡물을 증류해서 만든 네팔 전통주 락시도 있는데 락시는 약한 안동소주의 느낌이랄까.

 

 

마치 서울의 여느 달동네나 산동네처럼 야트막한 집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이 입체적인 마을에서 그나마 너른 편인 광장 한켠,

 

아저씨들이 모여서 시끌벅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이런 게 바로 그 유명한 '투전판'이로구나. 주사위가 들어있는 검정 사발을 흔들고 뒤집는 아저씨들의

 

손놀림이 유쾌하다. 타지에서 온 트레커 따위는 거의 신경쓰지도 않고 즐겁게 놀고 계셨다.

 

 

어느 틈에 그 조그마한 광장을 점령해버린 당나귀 동무들. 등짐도 안 올리고 어딜 그렇게 왁자지껄하게 몰려다니는 거요.

 

좀더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흥미로운 표식. 여긴 초등학교에서 뭔가 마법진 연성하는 걸 가르치는 건가 싶은 저 별모양이라니.

 

사실 네팔에 대한 흥미는 어렸을 적 '3X3 EYES'로부터 유래했는지도 모른다. 시바와 파르바티, 삼지안이 등장하는 그 초현실적인 만화.

 

 

그렇지만 초등학교 운동장에서는 정작 신체 건강하고 정신도 건전한 네팔의 남녀 젊은이들이 무려 성대결을 펼치는 중이었다.

 

그들이 토스하고 스파이크하는 소리가 산중에 메아리치는 느낌, 대결을 지켜보는 어느 어머니의 표정이 따사롭다.

 

이런 빈티지스러운 학교 간판이라니.

 

 

 

 

마을 입구에서 아까 지나쳤던 사당, 제법 모질게 부는 바람에 사당 입구를 수놓은 붉은 리본들이 마구 휘날린다.

 

 

숙소로 다시 돌아와 고레파니 마을을 내려다보니, 온통 파란 지붕들이 시루떡처럼 층층이다.

 

 

숙소 안으로 들어와 그새 차갑게 굳은 몸을 녹이려 밀크티 찌야를 마시며 이번엔 숙소 안 구경. 여기는 식당마다 휴지를 저렇게

 

한장한장, 삐뚤빼뚤 포개넣으며 탑을 쌓아놨더라. 그게 꼭 활짝 피어오르는 꽃송이 같더라.

 

그리고 밤새 추위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난로, 뜨거운 물로 샤워를 모처럼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요, 땀에 흠뻑 젖은 옷들을

 

슬쩍 빨아볼 엄두를 내게 해준 것도 이 난로 덕분이었다.

 

그리고 저녁. 아무리 롯지마다 다른 레시피의 달밧을 내어준다지만 뭔가 변화를 주고 싶어서 주문한 베지터블 카레.

 

 

 

바탄티에서 점심을 먹고 고레파니까지 가는 것이 2일차 오후의 목표. 고레파니는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 중 이름난 전망대인

 

푼힐 전망대와 1시간 이내로 떨어져있는 곳이어서, 내일 아침 해뜨는 것을 푼힐에서 보려면 해발 2,874미터의 고레파니까진 가야한다.

 

으레 그렇듯 점심 메뉴를 고르고 나면 적어도 삼십여분, 노닥거리는 시간이 생기기 마련이어서 롯지 주변을 어슬렁대다가

 

새끼 고양이를 둔 고양이 부부를 발견했다. (주문후 음식이 나오기까지는 최소 삼십분, 길면 한시간까지도 각오해야 한다는)

 

어미인지 애비인지, 제 부모 꼬리가 들썩일 때마다 정신못차리고 덤벼드는 꼬꼬마 새끼 고양이.

 

여긴 그래도 제법 사방에 꽃도 피어있고 나름 정원 비스무레한 느낌을 주는 앞마당이 아늑한 편이다.

 

주인 아저씨가 돌을 일정하게 깔아둔 포석 사이의 잡풀을 뜯고 있는데 고양이 녀석은 안겨들고, 강아지는 뜯긴 풀을 씹고 있다.

 

그야말로 개풀 뜯어먹을 만큼 평화롭다 못해 나른해지는 정경.

 

메뉴는 달밧. 달밧을 시키면 저 콩으로 된 스프인 '달'과 밑반찬들, 그리고 풀풀 날리는 안남미쌀밥을 무제한 리필 요청할 수가 있다.

 

 

 

주인 아저씨가 다른 가이드들과 한담을 나누는 사이 이번엔 주인 아주머니가 풀뜯기에 나섰다. 몇분 지켜보지 못하고 아주머니한테

 

엉겨붙어 놀아달라고 애교부리는 강아지 녀석. 아주머니는 반갑게 덥썩 안아주며 요래조래 놀아주었지만.

 

 

너무 신난 나머지 정신못차리고 엉겨붙던 녀석은 급기야 아주머니한테 한대 씨게 얻어맞을 뻔 하고서는

 

잔뜩 주눅이 들어 저쪽 그늘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양이 가족들의 단란한 한때. 새끼고양이의 재롱에 부모 모두 차마 눈도 못 뜨고 있다.

 

 

그러다 이내, 이렇게 두 녀석이 휘영청 구부러진 몸뚱이를 찰싹 붙이고는 하트 모양으로, 게다가 제 새끼는 척, 팔로 감싸고.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건 오래 걸려도 먹고 잠시 쉬다가 출발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통틀어 한시간 내외정도.

 

뭐, 어차피 스케줄이나 움직이는 시간 같은 거야 전적으로 내가 알아서 하는 거니깐 내 맘대로 하면 되지만, 그래도 움직여야 할 때.

 

노랑꽃들이 흐벅지게 길 양옆에 피어났다. 원래는 봄철에 와야 산 전체가 네팔의 국화인 붉은 랄리그라스가 지천에 피어 더 이쁘단다.

 

잠시 쉬어가는 길, 내 짐과 (양 팔을 이어 두발로 기능케해 준) 두 개의 스틱, 그리고 가이드이자 동반자인 친구의 짐을 내렸다.

 

 

우연히 마주친 다른 일행의 포터. 포터는 정해진 루트를 따라 짐을 옮겨주는 것을 본업으로 하는 사람이라, 아무래도 짐이 무겁다.

 

 

얼마동안이고 힘들고 지칠 때까지 걷다가, 잠시 길가에 적당한 돌들을 골라 그 위에 털썩. 이왕임 근처에 물가라도 있음 더욱 좋고.

 

 

그리고 고레파니 도착. 꽤나 큰 마을이어서, 마을 입구에는 이런 환영의 표지물도 다 서 있다.

 

 

 

마을을 가로질러 머물 롯지를 찾는 중에 발견한 히말라야 마오이스트들의 표지와 구호. 이제 3천미터에 가까운 고도에 걸맞게

 

슬쩍 서늘한 느낌이 드는 터에, 이 게릴라 집단이 여전히 횡행하는 지역에 있다는 실감에 더욱 소슬해졌다.

 

그랬다가, 요 염소 녀석이 꼬맹이들을 무시하고 사방으로 내달리려 하는 모양새에 이내 웃음이 터져버리고.

 

줄을 꼬옥 움켜쥐고 끌려가지 않으려는 다홍빛 전통의상의 꼬맹이 입매에 서린 긴장과 결의가 대단해 보인다.

 

 

고레파니의 체크포인트. 트레커 카드와 TIMS 카드의 소지 여부를 확인하고, 지금 현재의 이곳까지는 아무 문제없이

 

무사히 도착했음을 기록으로 남기는 기능을 하는 곳이다. 만의 하나 사고가 났을 때를 대비한 기록인 셈이다.

 

그리고, 이 고산지대 마을 가운데 조그마한 광장 한가운데서 눈에 띄었던 '부처의 눈'이 그려진 조그마한 탑.

 

 

 

 

안나푸르나 푼힐 전망대 코스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코스를 합쳐서 대략 8일쯤의 일정을 생각하고 있는데,

 

그 중 2일차의 아침이 밝았다. 현재 해발 1,540미터 고지의 티케둥가의 롯지.

 

한국에선 밀크티, 인도에선 짜이, 그리고 네팔에선 찌야. 차 한잔과 Gurung Bread, 말그대로 구릉족의 전통빵 하나를 꿀과 함께

 

먹는 것으로 아침식사를 마쳤다. 조금 양이 모자랄까 싶어 꿀을 듬뿍듬뿍 발라 먹어주는 센스.

 

현재시간 6시, 창밖은 어느새 환하게 날이 밝았고 새소리와 물소리가 쉼없이 쏟아져들어온다. 밤새 짖던 개는 뉘집 개일꼬.

 

엊저녁 가이드에게 배웠던 네팔의 독특한 숫자 체계, 그리고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이 붉게 칠해진 달력.

 

히말라야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티벳 불교도들, 아침마다 향을 피우고 문턱 양쪽을 꽃으로 장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전날밤 친해진 스페인에서 온 친구와 그의 가이드. 히말라야 트레킹은 대개 한두명의 소수로 와서 가이드나 포터가 한둘 붙는 형태다.

 

 

고뇌하는 당나귀. 다리를 건널 것인가 말 것인가. 그렇지만 늘 그렇듯 그는 온순하고 순종적이다.

 

 

쉬지 않고 혀를 차고 기합소리를 넣으며 당나귀들을 몰아대는 꼬맹이, 카메라를 보더니 든든하게 포즈를 잡았다.

 

 

다리 저편에서는 어느 부부가 당나귀 등짐으로 닭장 가득 우겨넣어진 닭들을 동여매는 참.

 

 

이른 아침 제법 소슬한 바람에도 슬몃 땀이 배어들 만큼 걸었을 즈음, 어느 집에서는 뒤늦은 밥연기가 피어올랐다.

 

남녀를 불문하고 자식을 갖게 해준다는 '영험'을 가졌다는 비석이 불쑥 눈앞으로.

 

 

꽤나 화려하게 치장을 하려다가 실패한 모양, 남아있는 잔해는 왠지 화투의 6, 매화그림 같기도 하고.

 

 

잠시 쉬어갈 요량으로 들른 롯지, 밀크티 찌야를 시키고 땀을 식히려는데 꼬맹이 동생을 얼르고 달래는 누나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미리 챙겨갔던 볼펜을 두어자루 꺼내들고 누나랑 동생한테 하나씩 쥐어주었더니 '나마스떼'도 두손모아 인사해주고

 

방긋방긋 경계심없이 활짝 웃어주는 거다. 심지어는 꼬맹이를 업었던 숄을 풀어서는 저렇게 해맑해맑한 표정으로 패션쇼까지.

 

그 와중에 깜놀, 이 해맑고 순수한 아이들이 앵그리버드가 뭔지는 알까. 근데 여하간 옷과 신발에는 저런 캐릭터들이.

 

마시고 난 찻잔, 먹고 난 식판들은 모두 마당 한쪽 구석의 세면대로. 히말라야가 쉼없이 흘려보내는 물이 호스를 타고 콸콸 흐른다.

 

이 집은 그래도 센스있게도, 호스로 물을 사용할 때는 뚜껑을 닫고, 아닐 때는 저렇게 다른 호스로 연결해서 다랭이논으로 직행.

 

 

주인댁이 사는 방문이 열려있길래 슬쩍. 어떤 분위기인지 기웃기웃.

 

 

허름한 삶의 터전, 철사와 전선으로 칭칭 동여맨 슬레이트 지붕엔 녹슬고 날카로운 못이 불쑥 튀어나와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온통 나무와 곡선, 짙푸른 녹색의 향연이다.

 

 

 

 

길 한 복판에 덜컥 서서는 지나는 이를 뒷발로 차겠다고 벼르는 듯한, 결기어린 눈빛의 염소 한 마리.

 

 

 

울레리Ulleri라는 마을에 접어들었지만 신속하게 빠져나가는 참, 점심은 2,210미터 고지에 위치한 반탄티Banthanti라는 곳에서 먹기로.

 

매콤해보이는 새빨간 고추가 야트막한 집 지붕 위에 얹혀 햇볕 아래 반짝반짝.

 

 

 

계속해서 오르막길, 가파른 계단길이 계속되다 보니 체력이 급속히 저하되고 있는 참에 통닭들이 어른어른거린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어차피 걷는 길은 뻔하다지만 각자의 페이스가 다르고 체력안배를 위해 쉼표를 찍는 지점이 다르다.

 

그러다 보니 앞서거니 뒷서거니, 때로는 몇걸음 차로 붙어다니다가도 훌쩍 멀어져 안보이기도 하고. 만나면 더욱 반가울 수 밖에.

 

 

대나무로 바구니를 엮고 계신 할아버지와 마을 어르신들 옆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서는 천하태평의 기세로 잠든 검둥이.

 

 

 

 

여기도 페인트칠, 다소곳한 손놀림으로 창틀을 갈색으로 칠하고 계신 아저씨. 근데 왜 다들 파란색과 갈색 일색일까.

 

 

 

오르막과 내리막, 그리고 평지. 세가지 모드로 천변만화하는 트랙의 변화 속에서도 일정한 자신만의 속도와

 

체력안배를 유지하는 것이 정말정말 중요하다.

 

 

신기한 게 사방에서 봇물터지듯 흘러내리는 냇물, 개울들이 모두 약간씩 회색빛을 띄고 있다는 사실. 빙하가 녹아내려서 그럴까.

 

 

 

이제 점심을 먹기로 스케줄을 짜둔 반탄티Banthanti 어귀로 도착. 돌로 쌓아둔 휴식처에 삼각형 모양 제단이 설치되어선 향내음이 물씬.

 

그리고 그 위로는, 히말라야 지역에 여전히 존재하며 활동중이라는 마오이스트들의 표시. 낫과 망치의 그림이 선명하다.

 

최근에도 트레커나 등산가들을 향한 테러를 저질렀다고 했던가. 여전히 이 깊은 산에 의지해 게릴라 활동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은근히, 의외로 많이 보이는 한글들. 어느 롯지에서고 'Noodle' 메뉴에서는 '신라면'을 찾아볼 수가 있을 정도다.

 

드디어, 바탄티에서 점심을 먹을 롯지에 도착. 아주머니가 주문을 받아 들어간 주방에 슬쩍 따라들어가 구경을 잠시.

 

 

 

나야풀에서 시작한 트레킹, 비레탄티Birhethanti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다시 속행하여 좀더 걷기로 했다.

 

저녁까지 해발 1,540미터의 티케둥가Tikhedhungga까지 가기로 했다.

 

 

길가에서 유유히 노니는 암탉과 병아리들.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도 피하지도 않는 대범함을 소유했다.

 

 

 

특히 이 위풍당당한 녀석은 카메라를 보더니 더욱 당당하게 앞가슴을 내밀고는 지나다니는 암탉들을 노려보느라 여념이 없더라는.

 

 

 

그리고 비레탄티 마을을 벗어나 본격적인 산과 강을 벗삼은 트레킹이 시작됐다.

 

 

 

 

신기하게도 제주도의 전통적인 문살처럼 이 곳에서도 나무기둥 두세개로 문짝을 대신하고는 표지를 정해 의미를 전달한다고.

 

 

 

완만한 오르내리막이 계속되고 층층이 만들어진 다랭이논과 지붕만 겨우 덮은 비닐하우스가 띄엄띄엄 눈에 띈다.

 

상하수도 시설은 이미 포카라를 떠나는 시점에서 포기, 모든 물은 히말라야 산맥을 따라 흘러내리는 자연수에 파이프를 대고 얻는다.

 

물소떼가 길을 문득 가로막는 건 흔한 일, 물소떼가 몰고 다니는 거머리에 물리는 것 역시 흔하디 흔한 일.

 

 

 

산비탈을 따라 층층이 시루떡처럼 쌓아올려진 다랭이논들.

 

중간에 잠시 쉬어가는 롯지에서 만난 부녀는 페인트칠로 새단장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우기가 막 끝나는 9월중순이니

 

이제부터 트레커들이 많이 찾아들 것을 대비하는 타이밍이라는 게 함께 한 가이드 꺼멀의 친절한 설명.

 

 

쌀과 옥수수를 재배해서 주식으로 삼는다더니 온통 집집마다-트레킹 중에 만나는 집은 대부분 롯지를 겸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옥수수를 잔뜩 내걸고 말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티케둥가 마을에 도착. 첫날이라 그런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고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는 정도랄까.

 

살짝 제주도 올레길을 걷는 느낌도 들었고. 여하간 아침 10시쯤부터 오후 3시쯤까지 설렁설렁 걸었다. 이쯤이면 할 만 한데 싶은 정도.

 

 

 

9월 초인 아직은 우기가 끝나기 직전이라더니, 티케둥가에 들어서자마자 쏟아지는 소낙비. 얼른 숙소로 들어섰다.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에서 버스로 한시간 반, '알프스의 눈동자'라 불리는 블레드 호수에 도착했다.

 

날은 굉장히 흐리고 꿀꿀한 게 금세라도 비나 진눈깨비가 내릴 듯한 날씨였지만 호수의 수면은 거울처럼 매끈하다.

 

 

백조가 유유히 직선을 그어내는 호수 너머 조그마한 섬, 매직 아일랜드같은 느낌으로 버틴 섬을 꽉 채운 성모승천 교회.

 

 

그리고 100여미터의 절벽 위에 서 있는 블레드 성. 무려 천년 동안이나 저 위에서 호수를 굽어보았다고 한다.

 

개구리 모양의 (아마도?) 쓰레기통, 그 넓적한 입매가 장난스럽게 비틀어졌다.

 

 

백조님의 클로즈업 샷. 어찌나 깃털이 발수기능이 좋으신지 머리에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는 모습이다.

 

 

생각보다 호수는 엄청 커서, 둘레가 대략 6키로미터라고 했던가. 겨울철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여름엔 무지 북적거린다고 한다.

 

 

그리고 덩굴처럼 자라난 아름드리 나무의 잔가지들이 수면 위로 스물스물 그림자를 드린 가운데 새하얗게 우아한 백조가 그리는 궤적.

 

 

아직 날은 춥고 바람도 세차게 불었지만 여지없이 봄이 내딛는 발자욱은 한걸음씩 진군 중이었다. 꽃망울을 여기저기 터뜨리며.

 

 

 

블레드 성에 오를 즈음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 그칠 기미없이 점점 세차진다 싶더니 급기야 호수 표면에 셀수없는 구멍을 내버렸다.

 

나무 아래에서 잠시 비를 그어갈까 했지만 아직 다들 잎사귀조차 제대로 틔우지 못한 앙상하고 헐벗은 나무들.

 

 

중간중간 블레드 호수로 모이는 개울들의 목소리는 한층 더 드높아졌다.

 

 

 

블레드 섬과 호수 둘레길과의 직선거리가 가장 가까워지던 즈음, 두마리 조그마한 오리들이 섬을 향하듯 호수면을 미끄러지고.

 

잔설이 드문드문 남아있는 호숫가에는 차가운 빗물이지만 쉴새없이 내리며 조금씩 겨울의 흔적들을 걷어내고 있었다.

 

 

블레드 호수의 둘레길, 블레드 성에서 산 와인 한병을 들고서 홀딱 비 맞고 흐느적흐느적 걸으며 병나발 부는 맛이란. 캬.

 

 

 

 

원래 블레드 섬까지 들어가는 유람선이 있다고 해서 그것도 타보고 싶었지만, 워낙 비수기에 와버린 데다가 이렇게 비가 내리니

 

들어가는 건 포기해버렸다. 그 안에는 '소원의 종'이 있는데 그 종을 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나, 내게 소녀시대가 있으니 괜찮아.

 

 

 

섬 주변에는 호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도 곳곳에 있고, 블레드 성같은 오랜 유적도 있는 데다가, 레스토랑이나 까페도

 

뭉탱이 뭉탱이 몰려 있다. 이 건물도 뭔가 까페인 거 같은데, 비수기라 역시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블레드 섬의 360도 뷰를 찍어볼 기세로 호수 둘레길을 걸으며, 와인병을 기울이며 사방에서 찍어댄 결과물들.

 

 

 

그리고 호수를 거의 다 돌았을 무렵,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더이상 촬영은 무리겠다 싶어서 카메라를 집어넣기 직전 마지막으로

 

담은 블레드 성의 옆모습. 얼짱각도에 수렴하는 45도 비껴난 샷이다.

 

다시 블레드에서 류블랴나로 가는 버스 안. 옷이고 신발이고 가방이고 홀딱 젖어서 무척이나 묵직하고 정신없는 와중에 창밖을 보니

 

어느새 빗물이 진눈깨비나 눈발로 바뀌어 내리고 있었다. 날이 좀더 푸릇푸릇하고 맑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래도 이렇게 비를 쫄딱

 

맞으며 와인 한병을 병나발 불며 호수 한바퀴를 도는 경험이란 것 역시 나무랄 데 없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그 시내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싶다면 꼭 가야 할 곳. 그라데츠 성벽 남문의 로트르슈차크 탑 전망대.

 

그 위에 올라서면 그래도 제법 발딛고 돌아볼 수 있는 360도 전망의 뷰가 가능하다.

 

멀찍이 보이는 건 그라데츠 언덕의 상징인 성 마르크 성당. 타일로 장식된 그 지붕이 마치 자수로 한땀한땀 뜬 거 같이 보이기도 하고

 

레고 블럭을 하나씩 쌓아서 만들어진 장난감 같기도 해서 유명한 성당인데, 그 지붕을 살짝 굽어보는 게 가능하다.

 

 

이렇게 로트르슈차크 탑의 아랫층에서는 다른 붉은 지붕을 가진 집들에 가려서 감질나게만 보이던 성당이, 저렇게 확 트이는 셈이다.

 

 

그리고 카프톨 언덕의 꼭대기에 건축되어 천년을 버틴 성모승천 대성당의 모습이 당당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한쪽 첨탑이 아직 보수가 끝나지 않았다는 게 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남은 한쪽을 보고 보수중인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리고 자그레브의 구시가 전경, 저 너머로 보이는 드문드문 높은 스카이라인은 신시가가 시작된다는 표지기도 하다.

 

 

아무래도 시선은 자그레브의 상징이자 심장이었다고 할 수 있는 이 두 역사적인 건축물에 쏠릴 수 밖에 없는 거다.

 

 

 

그리고 붉은 지붕, 파란 하늘, 그 사이에서 반짝이는 하얀 건물들의 멋진 앙상블 그 자체도 매혹적이다.

 

탑의 맨 꼭대기에 숨어있는 오랜 종, 종을 지탱하는 나무 문설주나 기둥들에 빼곡히 채워진 낙서들을 보면

 

저런 데에다가 저렇게 낙서하는 게 비단 한국사람들의 문제만은 아니었구나 싶어지기도 하고.

 

 

남은 사진들. 전망대의 시원한 바람과, 탑의 아랫도리에 앉아 악기를 연주중이시던 할아버지의 음악 소리,

 

이런 것들은 남길 수 없었지만 햇살 반짝이는 파란 하늘 아래의 자그레브 풍경은 아낌없이 담을 수 있었던 게 다행이다.

 

 

그냥 종탑을 중심으로 한바퀴 돌고, 또 한바퀴 돌며 멀찍이 뻗어있는 붉은 지붕들을 눈으로 더듬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을 보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걸 감각해내기에 모자람이 없던 곳. 로트르슈차크 탑의 전망대.

 

 

 

 

그라데츠 언덕의 남쪽에서 로트르슈차크 탑으로 올라가는 길, 건물과 건물벽 사이의 좁은 골목으로 남자 두명 어깨를 맞대고

 

걷기도 힘든 너비지만, 이 길 끝을 향한 관광포인트들의 화살표가 저리도 수다스러우니 한치의 의심없이 가는 거다.

 

 그래피티라기엔 조금 아쉬운 낙서들이 붉은 벽돌담의 회칠을 이리저리 긁어놓고 있었고, 다행히 골목은 조금씩 넓어지고.

 

 

언덕을 올라간다는 실감이 나는 게, 조금씩 자그레브의 구시가부터 야금야금 붉은 지붕들이 눈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몇 걸음 걷지 않았다 싶었는데 성 마르크 성당이랑 그 너머 성모승천 대성당이 보인다. 저기가 자그레브의 또다른 언덕

 

카프톨의 꼭대기인 셈이고, 지금 걸어 올라가는 중인 언덕인 그라데츠를 오르면 자그레브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로트르슈차크 탑을 비롯해서 성모의 기적이 일어났다는 스톤 게이트 등을 볼 수 있다.

 

 제법 높이 올라왔다 싶어서, 뒤로 돌아 밟아 올라온 계단들을 보려는데 문득 눈이 마주친 아가씨. 손을 흔들어주니 흔쾌히 답해준다.

 

 그리고 왠지 알루미늄 호일을 꼬깃꼬깃 구겨서 만들었거나 껍데기를 씌운 듯한 이 조각상은 크로아티아의 유명한 시인이라는

 

'안툰 구스타브 마토사'라는 분을 기려 세워진 거라고 한다. 아니, '세워졌다'는 표현이 어폐가 있다 싶은 게 워낙 친근하고 격의없는

 

느낌의 조각이라 그런 거 같다. 그는 자그레브의 삶을 즐기고 자유로이 살다갔던 보헤미안이었다고 하니 이게 맞겠다.

 

 그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자그레브 시내. 그가 보았던 도시와 지금의 도시는 얼마나 어떻게 바뀌었을까. 여기도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의 삶이 더 척박해지고 속물스러워지고, 게다가 많이 고유의 것들을 잃어버렸을 텐데. 다행히 짧은 체류를 했을 뿐인

 

외지인의 눈에는 꽤나 훌륭하고도 단단한 문화자산들을 갖고 있는 특색있는 나라로 보였지만 말이다.

 

두둥. 아직 3월 중순이라 봄이라고 하긴 애매한 시기지만, 여튼 푸릇푸릇해진 풀밭 너머로 보이는 게 로트르슈차크 탑.

 

그라데츠의 남문을 지키기 위해 세운 감시탑이라고 하는데, 무려 13세기에 지어진 모습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단다.

 

수백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정오에 대포를 발사해서 시간을 알려준다는데 정오가 훌쩍 넘은 시각, 대포 소리는

 

들은 기억이 없지만 여전히 귓가에 남아있는 건 저 씨디도 발매하신 프로 아티스트 할아버지의 연주 소리.

 

 

사실 여기는 이렇게 걸어오는 것도 방법이고, 남쪽의 일리차 거리와 연결되는 케이블카를 올라오는 것도 방법이다.

 

여하간 탑의 조그마한 입구를 들어서면 한산한 기념품샵과 매표소가 있고. 10쿠네(약 2천원)을 내면 저 문 너머

 

탑의 꼭대기로 올라가는 계단을 오르게 된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원형 계단은 우선 건물 외부를 타고 오르게 된다. 발음도 어려운 로트르슈차크 탑과 옆 건물 사이의 빈 공간을

 

따라 나선 계단과 함께 하늘로 치솟는 기괴하게 뒤틀린 나무 한 그루, 그리고 한켠에서 수줍게 나부끼며 응원중인 빨래들.

 

그리고 탑의 실내로 들어섰더니, 마침 자그레브의 젊은 사진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탑의 조그마한 창문들로부터

 

은은하게 비쳐들어오는 흐릿한 햇빛이 탑 내부의 하얀 벽면과 반들거리는 나뭇바닥에 사정없이 반사되면서 분위기가 그럴 듯 하다.

 

슬쩍 내다본 창문 너머로는 방금 올라온 완만한 계단길이, 자기가 그린 그림들을 들고 나온 아가씨의 손수레가,

 

아이스크림을 파는 아저씨가, 그리고 사랑을 속삭이느라 여념이 없는 커플이 보인다.

 

그리고 일리차 거리에서부터 올라온 케이블카가 도착해서 사람들을 쏟아내는 출입구. 사실 그렇게 케이블카를 타는

 

사람들이 많은 거 같진 않던 게, 나선 계단을 따라 탑을 뱅글뱅글 오르는 중에 계속해서 창밖을 내다보았지만 저 문이 열리고

 

관광객들이 우르르 쏟아지는 모습은 보지 못했던 거 같다. 그렇겠다 싶은 게, 운영 거리도 짧거니와 걸어서도 충분한데 뭐.

 

 

조금씩 눈높이가 둥실둥실 떠오르는 게 느껴지려나 모르겠지만, 한층한층 오를 때마다 탑의 네면에 한개씩 있는 창문에 달라붙어

 

바깥 풍경을 구경하며 사진으로 담다보니 사진에서 보이는 풍경들의 눈높이가 점점 지상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러다가 이렇게 자그레브 시내의 붉은 지붕들이 어떤 식으로 디테일하게 타일들을 짜맞춘 건지 궁금증을 풀기도 하고.

 

이만큼 높아진 시선에서야 비로소 붉은 지붕들 너머로 하얗게 반짝거리는 성 마르크 성당의 일부를 보고 설레이기도 하고.

 

아래에서 강아지들을 끌고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의 정수리를 궁금해하며 사진을 담기도 하고.

 

아까 자그레브 대학교의 미대생이라고 본인을 소개했던 저 아가씨는 그새 아이스크림 아저씨랑 한담을 나누는 중이다.

 

 

그래도 케이블카가 운영되지 않는 건 아니어서, 이렇게 두 개의 레일을 따라 파란색 케이블카가 오르내리는 걸 보기도 했다.

 

주변의 낡고 붉은, 그렇지만 그 디테일한 까끌까끌한 질감이 살아있는 지붕들과 완전히 정반대인, 반짝이는 파란, 매끄러운 케이블카.

 

계단은 계속됐고, 그 때마다 자그레브의 신예 작가들의 사진을 빠짐없이 감상하고 게다가 네 면의 조그마한 창문에서 보이는

 

자그레브 시내의 풍경을 감상하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꽤나 걸리고 있었지만, 조금씩 시야가 멀리까지 트이는 걸 실감하며

 

기꺼이 만끽하는 중이었다. 계단도 그렇게 가파르거나 높지 않아서 힘들지 않고.

 

 

이런 창문들이 사각탑의 네 면마다 하나씩. 위로 올라가니 제법 외풍이 세차게 몰아닥쳐 창문을 아예 잠궈놨던데,

 

굳이 그걸 살짝 열고는 유리창의 방해 없이 맨눈의 자그레브를 구경하고 싶었다.

 

 

층수로 치면 4층쯤 되려나. 이제 왠만한 자그레브 시내의 건물들은 얼추 눈아래로 들어온다 싶을 즈음.

 

대포가 나타났다. 이게 매일 정오마다 발포되어 시간을 알려준다는 대포, 리얼 대포다. 대포가 있는 유리방 벽면에 붙어있는

 

온갖 삼엄한 금지 표시들만 봐도 이게 장난이 아니라는 건 알겠는데. 그런 대포를 향해 창문 너머로부터 쏟아지는 이 나른하고도


따스한 햇살은 좀. 반칙 아닌가 말이다.

 

붉게 칠해진 바퀴는 단단히 고정되어 반동을 최소화했고, 어느 하나 녹슨 부품이 보이지 않는 대포의 철제 바디는 보기만 해도

 

왠지 군대의 살상병기가 갖는 위용을 그대로 떠올리게 만들었는데. 그런 대포가 자그레브 시민들에게 정오를 알려주는 유용한

 

알람 시계로 활용되고 있다니 꽤나 교훈적이랄까 바람직하고도 건전한 모습이다.

 

그리고, 사진이 너무 많아 일단 여기서 끊고 로트르슈차크 탑 위에서 보이는 풍경은 다음 포스팅으로.

 

맛보기 삼아 한장만 올리자면, 이 탑 위의 전망대에서는 성 마르크 성당의 자수같은 지붕이랑 아이 컨택이 가능하다.

 

 

 

 

 

 

포항 호미곶,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돋이를 볼 수 있다는 이 곳을 가본 사람이던 안 가본 사람이던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건

 

바로 이렇게 바다에서 불쑥 솟아오른 커다란 손의 형상. 갈매기들이 쉬어 가는 다섯 개의 봉우리이기도 하다.

 

 

사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생각보다 작아 보일 수도, 혹은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는 이 청동 조각상은 '상생의 손'이라는 이름으로

 

새천년을 축하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99년 12월에 완공된 상생의 손, 호미곶 해맞이 축전을 기리는 상징물로, 육지에선

 

왼손, 바다에선 오른손 이렇게 두 손이 함께 도우며 살자는 뜻에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 손이 육지에도

 

하나 더 있다는 사실. 처음 알았다.

 

 

 

성화대에 있는 화반은 해와 달을 의미하고, 두 개의 원형고리는 화합을 의미한다던가.

 

바다에 있는 오른손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진 육지의 왼손. 그 앞에는 독도 일출과 피지의 일출에서 얻어온 불씨가

 

2000년 1월 1일 이래 꺼지지 않고 불을 밝히고 있었다.

 

새천년 기념관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본 왼손과 오른손, 상생하라는 두 개의 손이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공을 쥐고 있는 듯

 

살짝 움켜쥔 모양새로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호미곶에 와서야 알게 된 손 조각상의 진실이랄까.

 

호미곶에 도착하면 딱 보이는 꽃마차들. 말갈기를 쉼없이 희롱하고 있던, 제법 쌀쌀한 바닷바람에도 말들은 꿈쩍없었다.

 

상생의 왼손을 에둘러 바다쪽으로 훅 들어가는 전망대. 바다 쪽에서 육지를 배경으로, 미친 듯이 날아다니며 시야를 가리는

 

갈매기들 틈새로 상생의 오른손을 볼 수 있다.

 

 

전망대 걸어들어가는 길에 한번씩 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거대 문어상. 포항이 문어로도 유명한 데다 심지어 문어축제도 있다는 사실.

 

 

더이상 나갈 곳 없는 전망대의 끝단에 서면 정확히 동쪽을 가리키고 선 꼬마 아이의 동상이 있고, 호미곶의 위치가 잡혀 있는

 

한반도 지도와 나침반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분분히 날아다니며 상생의 손을 향한 시야를 여지없이 가리는 정신사나운 갈매기들. 사람들이 자꾸 과자를 던져댄 탓이다.

 

이쪽에서 보이는 상생의 오른손 측면샷. 아무래도 육지의 왼손보다 크기도 크거니와 그림도 훨씬 이쁘게 잡힌다.

 

다시 광장으로 돌아와서, 미처 보지 못했던 가로등에 눈길이 간다. 포효하는 호랑이 형태의 한반도가 장식된 가로등이다.

 

같은 형태로 동해를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상 , 검고 노란 줄무늬가 선연하던 가로등 호랑이와는 달리 흰색과 하늘색의 줄무늬를 가졌다.

 

그리고 파란 하늘에 둥싯 떠있는 하얀 달을 움켜쥐려는 듯 내뻗은 육지의 왼손상.

 

 

광장에는 지난 새천년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전국 최대의 가마솥이라거나 각종 기념물들. 그 와중에 수쳔년 전의

 

연오랑 세오녀 설화를 기념한 기념탑이 하나 숨바꼭질중.

 

 

새천년 기념관 전망대로 가는 길은 엘레베이터와 계단. 계단으로 갔더니 대충 4층에서 5층 정도 높이가 되는 거 같다.

 

 

옆에 나란히 선 풍력발전기 한 대. 시험삼아 돌리는 건가 싶기도 하고, 뭔가 효성의 광고판 같아보이기도 하고.

 

 

확실히 바닷바람이 매우 세게 몰아치기는 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얼레를 하나씩 손에 쥐고 연을 날리고 있었고,

 

호미곶에 갓 도착한 아이들은 일단 부모손을 끌고 연 하나씩 사달라고 조르고 있었으니. 그나저나 바닷가의 소도시답게,

 

혹은 바닷가의 명소답게 저런 연들을 담은 종이박스에 새겨진 글자가 눈에 잡힌다. 돌자반.

 

 

 

 

 

포항 북부해수욕장, 새벽부터 내달려 세시간반만에 도착한 한반도 동남쪽 바닷가에는 그런 이름이 붙어있었다.

 

해수면까지 짙게 내려앉은 희뿌옇고 눈부신 장막 너머 포스코의 굴뚝들이 은폐엄폐중이던 그 곳.

 

 독도가 경상북도 울릉군, 이었다는 건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문구가 무수히 꽂힌 해수욕장 모래사장과 어릴 적부터

 

익어버린 노래 가사가 서로 만나는 순간 새롭게 각인되었다. 독도는 한국땅.

 

 포스코 제철공장을 마주본 이 곳인지라 그런지 곳곳에 철로 만들어진 조각들이 보였다. 이렇게 커다란 철로 만든 모기도 한마리.

 

 북부해수욕장 끄트머리부터 시작하는 야트막한 구릉은, 봄철에 왔더라면 좀더 물이 올라 싱싱한 초록빛으로 반짝이지 않았을까.

 

중앙공원, 해맞이공원, 혹은 환여공원이라고도 불리는 것 같은, 수많은 이름을 가진 그 큼지막한 공원 가운데께에는 멀리

 

영일만의 반짝이는 파도가 굽어보이는 전망대도 있고, 몇 걸음 더 걷지 않아 도착하는 포항시립미술관(POMA)도 품고 있다.

 

 

 지방이라 그런지 아니면 포항이 부유한 도시여서 그런지 포항시립미술관은 무료. 마침 개관 3주년 기념 전시라며 그간

 

수집한 한국 모더니즘 작가들의 예술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현대적인 분위기 물씬한 미술관 내부에 문득 볕이 들이치던 순간.

 

 미술관 정문 옆에 심어져 있던 아롱다롱한 소망나무 한 그루. 은빛으로 번쩍거리는 열매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필체의 얼룩을 품었다.

 

 그리고 제법 오래 눈길을 붙잡았던, 포항시립미술관 앞의 이 작품. 허리춤을 아프지는 않게, 그렇지만 단단하게 부여잡은 저 손.

 

전망대에서 미술관을 지나 다시 공원 밖으로 내려서는 참에 다시 만난 포스코 제철공장의 어슴푸레한 풍경.

 

맑은날 밤에 여기서 야경을 찍어도 꽤나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콩의 멋진 야경을 볼 수 있는 포인트를 둘 꼽으라면 하나는 '심포니 오브 라이트'를 볼 수 있는 찜사쪼이의 뷰잉 데크가

 

있겠고 (홍콩 야경의 진수, 'Symphony of Lights')  또다른 하나로는 바로 '빅토리아 피크'겠다.

 

센트럴에서 빅토리아 피크 트램을 타고 45도 각도의 언덕을 불과 7분만에 주파하여 올라선 홍콩의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은 대부분의 홍콩 야경 이미지를 얻어내는 곳이기도 하다.

 

홍콩의 택시, 기본적으로 붉은 색으로 칠해진 채 측면에는 때때로 현란한 광고를 온통 도배해놓기도 했는데,

 

재미있는 건 택시 앞 범퍼에 탑승가능인원을 저렇게 표시한다는 것. 더러는 4 SEATS, 더러는 5 SEATS.

 

 

홍콩공원 근처의 스쿼시 센터라거나 공원으로 이어지는 입구.

 

 

홍콩공원 근처의 피크 트램역까지는 택시를 타던, MTR을 타던, 심지어는 걷던 크게 찾는데 무리는 없어 보인다.

 

대충 해 떨어지는 시간을 가늠하고 여기까지 도착하는 시간까지 얼추 맞아떨어졌지만, 문제는 끝이 안 보이는 사람들의 줄.

 

줄에 합류한 시점에서 '1시간 반'이 남았음을 알리는 표지판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앞에 선 사람들도 이미 지쳐서

 

옆에 철푸덕 철푸덕 엉덩이를 붙인 채 쉬고 있었다. 그새 하늘은 삽시간에 어두워지기 시작.

 

 

아무래도 그런 공식적인 대기시간 안내 표지판은 조금 과장하는 면이 없지 않았어서, 실제로 줄을 따라 트램역 안으로

 

들어가서 표를 사고 트램을 타기까지는 대략 한시간 십분쯤 걸린 것 같다. 피크 트램 편도와 피크 타워를 이용할 수 있는

 

티켓은 HKD 53$, 내려올 때도 이렇게 한시간여 기다려서 트램을 타고 올 엄두가 나지 않았다.

 

트램이 왔다갔다 할 때는 가히 특급 연예인을 눈앞에서 보는 팬들의 마음이다. 모두들 푸쳐핸섭~ 해서는 사진을 찍어대는데

 

후레시가 사방에서 터지는 바람에 온통 눈앞이 번쩍거릴 정도다.

 

트램역 안에는 피크 트램의 역사와 이전 모습을 더듬어 보게 해주는 여러 자료들이 남아있었다. 빅토리아 피크는 초기에

 

홍콩 총독의 여름별장이 지어지는 것을 시작으로 부호들의 피서지가 되었다고 하는데, 덕분에 초반에는 가마가 유일한

 

통행수단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1888년부터 최초의 트램이 운행을 시작했다나.

 

근 120년의 역사가 담긴 지금의 트램은 최대 120명이 탑승할 수 있는 트램으로 두 대가 왕복으로 오르내리는 거 같다.

 

해발 28미터에서 396미터까지 약 7분만에 주파해내는 트램인지라 굉장히 가파른 비탈길을 거의 45도 각도로 올라가는

 

느낌인데, 실제로는 4도에서 27도 정도의 각도라고 한다. 그래도 저렇게 누워있는 건물들과 철로의 굉음이 내는 특별함이란.

 

이제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여기가 바로 빅토리아 피크의 피크 타워하고도 그 전망대인 스카이 테라스에서 내려다본 홍콩.

 

 

 

한 옆에는 하트가 뿅뿅 날아다니는 메모판이랄까, 그런 것도 설치되어 있기도 하고,

 

아래로는 빅토리아 피크의 편의시설이나 다른 고급 별장같은 건물들도 보였지만,

 

그래도 눈을 강력하게 붙잡아 둔 채 놓아주지 않는 건 홍콩의 밤거리. 가까운 홍콩섬 쪽의 야경 너머로

 

빅토리아항의 불빛과 찜사쪼이 쪽의 불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전망대의 맨 가장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이 좀처럼 자리를 뜰 생각은 안 하고 전부 카메라와 폰카메라를 꺼내든 채

 

쉼없이 찰칵거리고 있어서 더러 풍경을 가로막기도 했지만, 그래도 저런 사람들의 실루엣이 있으니 좀더 현실감이 든다.

 

 

전망대 외곽을 따라 한바퀴 돌아보고, 쉼없이 색을 바꾸며 명멸하거나 흘러내리고 뿜어올려지는 불빛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홍콩의 야경을 볼 만하다고 하는 이유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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