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재임시절 모든 사람들의 입버릇이던 문장이 있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경제가 안 좋은 것도, 일자리가 없는 것도, 대학교육이 엉망인 것도, 집값이 폭등하는 것도, 심지어 시험성적이 떨어진 것도

전부 다 노무현 때문이라 했었다. 그러더니 그의 사후, 그는 갑자기 구름같은 추모물결을 불러일으키는 '우리의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고, 그의 재임시절은 마치 정의와 행복이 강처럼 흐르던 민주주의와 경제정의의 호시절이었다는 식으로 드라마틱한

역전현상이 일어나고 말았다. 노랑풍선이 일렁였고, 그는 (참 모호하지만) '소탈하고 정많고 정의롭던 대통령'이 되었다.


분명 노무현은 그렇게 세상만사에 대해 욕을 먹어야 하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민주주의의 상징이라거나

올바른 지향점으로 여겨져야 할 인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한미FTA다. 2005년 6월 한미FTA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불쑥 내지르고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국내정치와 사회의 소모적이고 극단화된 형태의 분란이 끊이진 않는 건

분명히 노무현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이명박을 욕하지만, 한미FTA는 (기본적으로) 노무현 때문이다.


워낙 한미FTA와 관련한 이슈들도 많았고 논란거리들도 많았으니 기억조차 가물가물하지만 살짝만 짚어보면 그렇다.

협상개시 선언 후, 이른바 4대 선결문제를 미리 해결한다며 스크린쿼터 축소, 미국산쇠고기 수입재개 따위를 양보해버렸다.

영화계와 농민계가 반발하고 항의하자 집단이기주의네 폭력시위네 하며 수천수만의 전경을 동원해 진압해버렸었다. 정책이

결정되기 위한 사전절차로 국민 혹은 국회를 설득하거나 논의하는 과정은 생략됐다.


그뿐인가. 한국이 미국에 비해 어떤 실익을 얻었고 양측의 실익이 균형잡혔는지조차 의문이 남는 협상 결과에 대한 투명하고

충분한 해명이 없었으며, 심지어 협정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접근권조차 비공개로 봉쇄하고 국회의원에게조차 제한했었다.

악명높은 독소조항이라는 몇몇 항목에 대한 비판 역시 어정쩡한 얼버무림으로 넘어가며 협박하기를, 개방은 무조건 좋은 것이며,

국내 경제를 선진 미국의 경제시스템으로 재편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고 싶다면 따르라는 것이었다.


그 결과가 지금의 난맥상이다. 국내 여론을 수렴하지도, 한미FTA의 필요성이나 효과나 대책에 대해서 아무런 공론화의 과정도

거치지 않고 시작했고, 그런 태도 그대로 밀어붙였던 거다. 각각의 국면에서 점검하고 논의하고 의견이 모였어야 할 이슈들이

있었지만 우격다짐으로 미루기만 했던 문제들이 지금 순간에 폭발하고 있는 거다. 사실 ISD같은 조항의 유독성 여부나 의료보건

분야 등에 대한 파급효과 예측이라거나 국내 경제에 대한 효과라거나 따위를 협상이 다 끝난 다음에 따진다는 건 코미디다.
 


그런 측면에서 이명박은 억울한 면이 없지 않을 거다. 한미FTA 광고에 노무현이 나왔다고 많은 이들이 분개했다지만 대통령

노무현의 대표적인 '성과'였던 게 사실 아닌가.
그 공을 이어받았을 뿐인데, 이제 와서 노무현의 사람들이 그들을 손가락질하고

대중을 '선동'해서 매국노라느니 비난하고 있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홍준표 한나라당대표가 그렇게 억울해 하는 거 아닌가.

물론 이명박이 정권을 이어받은 이후의 일들, 여전했던 불통과 불투명성 따위에 대한 비판은 올곧이 그의 몫이다.


노무현을 욕해야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참여정부의 동시다발적 FTA 체결 전략의 핵심이었던 '한미FTA'를 추진한 최고정치인

대통령 노무현을 욕해야 한다. 그를 밟고 넘어서지 않고서는 기껏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이런 것 뿐이다. "그의 한미FTA와 이명박의

한미FTA는 다르다." 다르다고? 뭐가 얼마나 다른지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나라를 말아먹으려고 한다."

그들이라고 나라 팔아먹겠다고 눈이 벌개 혈안이 되어 한미FTA를 추진하는 게 아니다. 노무현과 당시 열린우리당은 그랬나.


치졸하다. 대통령 노무현의 전반적인 공과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한미FTA 추진정책에 대한 평가로부터 시작해야 이런 치졸한

항변이나 인신공격 이상의 비판을 할 수 있다. 최소한 민주당 내의 한미FTA반대파들, 그리고 한미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노무현에 대한 '의리'를 깨고 그의 정책을 냉정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이명박에 대한 막연한 반감으로,

혹은 정략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반대하는 것은 설사 그 반대가 성공한다 해도 아무 교훈도 남기지 못할 거다.


그랬을 때 우리가 얻게 될 교훈, 그리고 새로운 생각거리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될 거다. 시장과 개방, 시장개방이 과연

좋기만 한 것일까. 2005년과 2011년, 한국과 세계 경제환경은 어떻게 바뀌고 어떻게 동일한 것일까. 한국 경제는 어떻게

발전해야 하며, 그 이득은 어디로 어떻게 분배되어야 할까. 정부는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어디까지

역할을 할 수 있으며 해야 할까. 그런 방향과 가치를 정하는 과정으로 한미FTA 찬반 논의가 가야 한다.


그러면서, 이명박은 물론이고 노무현도 넘어서는, 그런 인물을 발견하고 골라내는 안목을 키울 수 있을 거다.

단순히 인물 한명에 기대어 나라가 좌지우지되고 흔들거리는 허탈한 후진국가를 이젠 좀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한미FTA 통과후 첨언]

허탈하다. 기껏 열심히 썼더니, MB가 순방에서 돌아오는 시점에 맞춰 날치기를 해버리다니. 비록 통과가 되어버려

더이상 한미FTA 반대를 말하는 게 의미를 잃어버린 상황에 처하고 말았지만, 이 글의 본래 의미는 크게 손상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어차피 MB를 넘어서려면 노무현의 공과에 대한 평가가 진행되어야 하며, 그런 바탕에서

한미FTA에 대한 비판비난질책이 귀결될 지점이 어디인지 살펴보는 건 여전히 의미있으리라 보기 때문이다.





p.s. 지금도 국회에선 강행처리를 막으려는 진보정당 의원들의 절박한 몸부림이 있었다는 속보가 떴다. 한미FTA를 둘러싼

정치인들의 고성과 몸싸움을 그저 '정치싸움꾼'들의 난동으로 치부하고 손쉬운 양비론으로 빠지는 것은 피할 일이다.


p.s.2. [리뷰] 자유무역협정의 정치경제(윤영관, 인간사랑)(2007.4.19)

노무현 정권 때 외교통상부장관을 역임했던 윤영관 교수의 '국제정치경제' 수업 게시판에 올렸던 글인데, 첫단추부터

잘못 꿰였던 정황이 조금이나마 묻어난다 싶어 첨부한다.


p.s.3. 2011년 11월 22일 오후 4시 한미FTA 비준안 국회본회의 통과.

당장 한국이 멕시코나 미국처럼 의료보험체계가 붕괴하고 사람 못살 곳으로 변하지는 않을 거다. 다만, 체감하기 어려울

정도로 서서히, 마치 조금씩 온도가 올라가는 냄비 속에 담긴 개구리가 조용히 삶아지듯, 그렇게 삶의 환경과 조건이

악화되지 않을까. 수년쯤 지나 문득 뒤돌아보면 어라, 생각보다 많은 게 변했구나 하는 식으로.


아울러, 한미FTA는 노무현 때문이다, 란 말에도 약간의 추가를 해야겠다.

한미FTA는 노무현과 이명박 때문이다.


자정 쯤에는 한미 FTA가 타결될지 알 수 있을 거라는데, 글쎄요, 시한 안에 협상을 타결짓고 세부적인 조항은

이삼일 동안 더 논의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고, 민변이나 국회의원들의 반발도 가세한 반대 시위는 촛불의

장관을 이루기도 했고. 협상 체결 후 일방적인 파기의 가능성은 아마도 한국에서 더 크지 않을까요. 워낙 국내적

합의가 미진한 상태에서, 꾸준히 여론을 무시한 채 달려간 합의라서요.ㅋ

저는 FTA 내용 자체보다도, 협상을 진척시키면서 전혀 국내 정치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는 한국의 외교적

마인드랄까..가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다른 분들의 의견은..현실주의적으로 보았을 땐 다소 암담한 그림이 나온다, 그리고 지금 조금씩 국제 레짐이

형성되고 있으니 그에 기반하면 한국도 이기는 게임을 할 수 있다..라는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현실적인 기반이 제공하는 객관적 범위 내에서 의지를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하구요, 국제 레짐은

강대국이 이른바 단기적인 이익을 양보하는 수준 정도에 (아직은) 불과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앞으로도

국제관계를 규율하는 레짐이 그 범위를 계속 넓히리라거나 발전해 나갈 거라는 전망도 너무 낙관적이라고

생각하구요.


윈셋 이론이나, 국제레짐 이론에서 말하는 협상이란 건 다소 자연과학의 실험실과 같은 조건을 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경제학에서 말하는 'Ceteris Paribus'와 같은 거지요. "다른 조건이 모두 같다면"이라는

전제 조건이요. 여타 국제 정치적 상황이 안정되어 있고 지금의 협상에 아무런(혹은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가정이겠죠. 문제는, 미국같은 강대국은 판 자체를 새롭게 다시 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겁니다.

냉전 해체 후 단극 질서의 안정성을 의심받던 상황에서 돌발적인, 또한 예견되었던 9.11 테러를 빌미로, 미국은

성공적으로 자국이 확보한 가장 큰 자산의 효용을 갱신해냈습니다. 새로운 집단으로부터의 테러 위협에

대항하겠다는 소위 '테러와의 전쟁'을 의제화하고 '악의 축'국가를 상정하면서 잠시 의문시되었던 무력의

중요성을 복권시킨 것 아닐까요. NMD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고, 신속기동군을 축으로 한 해외주둔 미군의

재배치(GPR)도 그렇구요. 세계적 차원의 반미반전 여론이 일고 있고, 미국 내에서도 반발이 거센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이 탈냉전의 세계에 새로운 적을 규정짓는 데에는 성공한 것 같은데요. 상존하는 위험성,

불안정성을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것은, 미국의 헤게모니와 권력자원을 공고히 하는데 공헌했죠.

요는, 국제 레짐이나 협상이론에서 말하는 공정한 체스판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도록 강대국이 보아 넘기리라

생각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새로운 의제를 던지면서 판 자체를 흔들어 자국에 유리한

국제 환경을 조성하는 것, 실제로 모든 국가들의 생존전략 아닌가요.


물론,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 단기적인 손해를 감수할 수 있겠죠. 그런데 이 말 자체가 무엇을 의미할까요? 대체로

단기적인 손해는 소프트한 영역의 레짐에서 일어나는 반면, 보다 장기적인, 근본적인 이익은 전지구적 차원의

병력 배치를 관철한다거나, 에너지 자원의 확보,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군사정치적 헤게모니의 유지, 혹은

(헤게모니란 단어가 거슬리신다면) 국력의 현상유지 아닐까요. 이러한 장/단기적 이익을 구분할 때, 대략 하드/

소프트 폴리틱스의
영역과 중첩되는 것 같거든요. 물론 경제적 분야의 경우처럼 그 자체의 장/단기적 이익이

상충하는 경우도 있겠지만요. 그렇다면 여전히 현실주의적 가정이 살아있는 것 아닐지요. 어느분이 예로 드신 게

이라크전에 대한 미국내 역풍이었던 것 같은데, 거기서 문제되는 장/단기적 이익이 뭔지 잘 이해가 안 되네요.^^;;

미국내 역풍은 결국 미국의 헤게모니와 권력자원(소프트&하드)를 허비시킨 것에 대한 전술적 차원의 반발일

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현실주의의 시각을 차용했을 때, '우리'에게 주어진 여지가 상당히 좁고 답답해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그치만

그건, 마치 우리 나라의 영토적 사이즈가 작기 때문에 강대국이 되기 힘든 본래적 제약이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거든요. 시장규모, (경제활동)인구, 인재발생 가능성, 자원 등 여러 측면에서

출발선이 다른 걸 인정하듯, '우리'에게 주어진 권력 자원이나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희소한 것이 사실이죠. 머..

그런 '비장한' 현실인식 위에서 전략을 짜는 것이 꼭 '패배주의'와 동일시되어야 한단 법은 없는 것 같은데요.

거기에 역사적인 피해의식과 조바심, 그리고 '우리'를 국가 자신으로 사고하는 다소 국가중심적인 사고방식이

열패감을 조장하는 게 아닐까요.


저는 사실 외교과 학생들이 너무 국가중심적인 사고만 하는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말해봅니다. 흔히 수업시간에

'우리'라는 단어로 지칭되는 건, 단일자로서의 국가, '대한민국'이죠. 국가에 몰입하는 것이야말로 현실주의적

사고의 가장 큰 폐해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라고 흔히 지칭되는 측면에서 망각되기 쉬운 건

국내정치적 문제구요. 국제정치와 국내정치간의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지는 상황에서, '우리'라고 묶여서

호칭되는 국가의 이익을 좀 깨어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전부다 대한민국의 대표인양 말하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국내정치의 동학과 연계해서 그야말로 '비국가 행위자'의 입지를 강화하고 그에 대한 이론적 성과를

내놓는 것. 그것이 현실주의의 암울한 전망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지요. 한국이라는 공간 내에 하나의

액터만이 아니라, 여러 개의 액터가 존재할 수 있고, 이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국내정치와 국제정치영역을

넘나들며 작용하고 있다는 것.


게다가, 지금 FTA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온갖 오류들은, 결국 국가적인 차원의 경쟁력과 수익을

제고하겠다고 채근하는 과정에서 국내 정치적 요소는 도외시하고 활용하거나 고려할 생각도 안 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외교정책 담당자들이 너무 국가중심적으로만 사고해왔기 때문은 아닐지요.

외교가 국가의 총수익만 키워놓으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던 시기는 지났다고 보는데요.


그래서 사실, 윤영관 선생님이 저한테 그 질문을 하셨다면, 제 답은 아마도..당신이 돈많은 사람이면 한국이 더

편하니 눌러 붙어있고, 돈없고 빽없는 사회적 약자라면 어딜가나 똑같으니 남아라..정도일까요.^^ㆀ

(사실 이민가고 싶음 가는 거지 모. 지가 가겠다는데 왜 말리겠어.ㅋ)


from '국제정치경제' 수업 커뮤니티게시판.

윤영관선생님께서 오늘 학생들에게 물으셨던 질문, '미국으로 이민가려는 사람에게 한국의 가능성을 확신시키고

회유할 수 있는 방법은?'에 대해서 선생님은 복합적 상호의존론에 기반한 해답을 제시하신 것 같습니다. 아울러

강대국 위주로 짜인 현실주의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할 경우 종속이론이나 패배주의에 빠지기 쉽다는 우려도

하셨구요.


그렇지만 저는 선생님의 해답이 다소 의지적이거나 당위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실주의의 기본전제 세가지, 합리적인 단일 행위자로서의 국가, 이슈간의 위계, 무력 사용의 효율성 등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지금의 국제 정치 현실이 많이 바뀌었고, 때문에 다층적인 장기판을 상정한 복합적

상호의존론이 유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커헤인과 나이가 애초부터 명백히 한 바와 같이, 이는

어디까지나 현실주의의 설명력을 보완하고 이론적인 이상형의 다른 극단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를테면, 현실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의 한 극단이 현실주의라면, 정반대의 한 극단이

상호의존론이라는 식으로요. 현실은 그 중간 어딘가쯤에서 케이스에 따라 적절히 해명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 여전히 군사안보 분야에서 북한이라는 변수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어느 정도 현실주의에 무게중심이 실린 해석을 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이 역시 사안별로, 이슈 영역에 따라 다르긴 할 테고, 분단 상황의 추이에 따라 변화할 여지가 점차 커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한국의 경제력이나 문화적 역량으로 군사 안보면의 취약점을 단순히 상쇄한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보는데요. 이른바 '코리안 디스카운트'의 문제라거나, 미국 등 주변국과의 외교적 교섭

과정에서 북한 문제가 계속 불거지고 있구요. 동북공정이나 독도 문제, FTA 등에 대한 제약조건으로

군사안보적인 고려가 일정부분 작용하고 있다는 건 여전히 한국에 있어선 이슈간의 위계가 있다는 의미가

아닐지요. '최종심급'에서의 판단이랄 수도 있겠구요. 그래서 저는 한국에서는 여전히 군사안보상의 고려를

우선하는 현실주의적인 판단이 보다 적실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대적 약소국의 입장에서 현실주의의 함의가 패배주의적인 종속을 의미한다 할지라도- 저도 그렇게는 생각지

않지만-아직은 현실주의적 시각이 한국의 입장을 일반적으로 보다 잘 설명한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from '국제정치경제' 수업 커뮤니티게시판.

한미 FTA의 의의에 대해, 진행 방식에 대해, 그리고 성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수업시간에 몇번씩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책이 나왔다는 말씀에 꾹꾹 참았었습니다^^

여러 교수님들의 논문이 묶인 책이고, 미처 한미 FTA가 급물살을 타고 타결되기 전인 작년 11월에 탈고한

책이지만, 윤영관교수님이 어떠한 대답을 하셨을지는 대략 감을 잡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미 FTA는 한국이 '개방형 통상국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필요한 하나의 과정이란 사실은 아마 대부분 합의를

할 것 같은데요. 다만 책에서 지적되듯 로드맵도 무시하고 국내정치적인 협상도 건너뛰고 조급하고 임의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측면이 낳는 부작용이 너무 크다고 생각합니다. 애초 동시다발적 FTA전략이란 과감한 전략

자체도 우선순위를 정해서 영향이 적은 소규모경제권부터 시작하기로 했던 것이니까요.


더구나 일단 FTA가 타결되고 나니까,마치 루비콘강을 건넌양 "돌이킬 수 없으니 계속 가자, 국제신용도도 그렇고

외국인투자도 그렇고 지금와서 반대해봐야 죽음뿐이다"라는 식으로 몰고 가는 여론이 우려스럽습니다.

한칠레 FTA도 국내 비준까지는 1년반이나 걸렸는데, 그보다 더욱 파장이 큰 한미 FTA는 한국측, 미국측 모두

비준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장애물과 난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실제로 재협상의 가능성도 조금씩

높아지는 것 같구요. 만약 최종적인 비준에 실패했을 때 한국에 미칠 역풍을 한국정부, 언론 등이 스스로 키우는

건 아닐까요. 초점을 맞춰야 할 건 장기적으로 개방형 통상국가가 되기 위한 비전이지, 졸속처리된 한미 FTA

자체의 가부결이 아닌 것 같은데요.

협상이 좌초한다고 해서 한국 경제가 당장 나락으로 구를 것처럼, 혹은 타결된다고 해서 당장 (깃발들고 말달리며
 
태평양을 건너) 미국시장을 호령할 것처럼 겁주고 어르는 것은, 전혀 한국 내부의 이익조정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한미 FTA에 목매달고 있다고 광고해서 스스로의 협상역량을 부식시키는 일 같습니다. 저는 차라리 지금의

한미 FTA를 원점으로 되돌리고 우리의 로드맵에 따라 '개방형 통상국가'를 추구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때엔 다른 한미 FTA를 협상할 수 있겠지요, 한국 내 여론을 수렴하고

피해상황도 좀더 분석된 후에요.


또하나, 흔히 자유무역의 장애물을 말할 때 반대 이익집단이 보다 집중화, 조직화되기 쉬워서 자유무역이

좌초되기 쉽다고 말하는데, 과연 한국에서도 그러한 일반적인 설명이 그대로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정당이나

합법적 채널이 모두 막힌 상황에서, 그야말로 집회, 시위, 폭력행위같은 강압적 채널만이 허용된 한국의 자유무역

피해집단(농민, 중소기업, 노동자 등)은 이미 그 자체로 여론과 정책집단에 대한 영향력을 일정정도 상실하고

시작하는 것 아닐지요. 찬성집단이 정당과 합법적 채널을 장악하고 유려하게 여론몰이를 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반대집단이 찬성집단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판단은 다소 피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책에서

지적된 대로 한칠레FTA 비준을 세차례나 연기시킨 역량이 있긴 했지만, 이미 판세나 여론은 찬성을 대세로 한

상황이었다고 보는데요. 한미 FTA 역시, 일부 반대 이익집단이 강력했다기보다는 교수들이나 사회단체들이

나서는 등 총론 차원에서 우려가 컸기 때문에 사회적 반발이 컸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교수님이 '21세기 한국의 정치경제모델'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한국사회의 권력 분산이 시급하다는

진단에 비추었을 때 협상과정에서 끊임없이 노출되는 파열음들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앞선 채널의 편재에

대한 얘기는, 여전히 권력이 대기업과 자본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세계화와 개방을

이야기하면서 외려 대기업들은 반독점이나 공정 거래에 대한 국내적 규율을 약화시키기를 요구하고 있구요.

세계화의 진척이 도리어 한국의 권력 분포를 집중시킨다는 것은, 어쩌면 지금의 세계화 자체가 그러한 권력의

집중과 비민주화를 유인하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좀더 나아간 질문으로는, 한국이 IMF라는 위기를 기회삼아 구조 조정과 권력 분산에 성공했다고 보시는지요??



아..전 왜 요새 언론 모냥새 보면서 계속 OECD가입했을 때의 장밋빛 일색이던 그 모냥새가 생각나죠?-.ㅡ^



from '국제정치경제' 수업 커뮤니티게시판.


세계정치 6 - 6점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엮음/인간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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