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몽이스 공원에서 세인트 안토니오 성당을 거쳐, 세인트폴 대성당을 지나 세나도 광장으로 내려가는 길.

 

빗발이 갈수록 굵어져 서두르던 참에도 옆으로 뻗은 골목 하나가 시선을 붙잡았다. 살짝 굽어진 코너 위로 붉은 사당이.

 

또 그냥 보아넘길 수는 없어 꾸역꾸역 올라와서 봤더니 나차 사당이었다. 어린이의 모습을 하고 역신을 퇴치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나차를 모시는 사당이라고. 사당 자체는 작은 데다가 들어가 구경도 할 수 없어 별 게 없는데

 

이것 역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랜다.

 

사당 안에서 커다란 쟁반 위에 올려져서 원뿔 모양으로 타들어가는 거대한 향, 그리고 향불을 피워올릴 때 세개씩

 

들고 불을 붙이더니 그게 바로 왼쪽의 커다란 초같은 향.

 

 

오히려 사당 옆에서 저렇게 허름한 건물들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삶이 더 흥미진진하고 입체적으로 보이는 거 같다.

 

그리고 잔뜩 비에 젖은 채 다시 마카오 페리터미널로. 지친 와중에도 쓰레기통을 이렇게 센스있게 만들어둔 것에

 

카메라를 들어 한 장 남겨두었다. 굉장히 감각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실수해서 버리기도 힘들만큼 이쁜 쓰레기통.

 

고속 페리를 타고 다시 홍콩으로 가려는 길.

 

우측으로 보이는 또다른 카지노 호텔의 붉은 불빛이 온통 희뿌옇게 찌뿌린 하늘과 물안개 속에서 선연하다.

 

 

 

질퍽하게 더러워지고 만 도로와는 달리 사람들이 감히 밟고 다닐 엄두도 못 내게 만들던

삼엄한 눈발 속 쓰레기통의 위엄. 자동차도로보다 순결해보이는 쓰레기통이다.

게다가 하얗게 눈모자를 쓰고는, 평소라면 캔 나부랭이나 담겼을 그물망에는 소보록하니

눈송이가 잔뜩 담겼다. 예수가 '사람 낚는 어부' 운운했던 걸 빌자면, 이 쓰레기통이 쥐고 있는

그물망은 '쓰레기 낚는 그물망'이 아니라 '눈송이 낚는 그물망'으로 변신한 셈이다.

그리고 조금은 지치고 시든 듯한 초록빛 상록수잎 위로 그득하게 엉겨붙은 눈뭉치들.

이미 나려들던 때의 여리여리함과 따꼼한 찰나의 온기 따위는 지워버린 채 덜 떨어진

냉동고 속이나 찜질방 얼음방 속에 서걱거리는 얼음샤벳으로 변신해 버렸다.

눈이 턱밑까지 차오르면 내일 출근할 때에는 삽 한자루를 쥐고 버스 정류장까지 굴을 만들어서

뚫고 가는 재미라도 있을 텐데, 밤에 돌아오려니 제법 삼삼한 날씨인 것이 더이상 눈오기는

글러먹었다. 게다가 차도도 대충 무지막지한 염화칼슘의 위력으로 정리된 듯 하니...별로

딱히 일상에 영향을 미칠 거 같지는 않아서 아쉽달까. 하루쯤 일 안하고 모두들 그냥 집안에

갇힌 채 지내는 것도 좋을 텐데. (일체의 열외없이 전부.)

이런 날은 어디든 사람들 눈치 안 보고 눈밭에서 마구 뒹굴 수 있는 곳에 있었으면 했다.






쓰레기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정부종합청사 화장실에서 발견한 멘트라서 더욱 가슴 깊이 파고드는 문장이랄까.

쓰레기..쓰레기..굉장히 함축적인 단어. 굉장히 함축적이라, 누가 누굴 지켜보고 있다는 건지

그 두 개의 '누구'에 온갖 상황을 대입해보게 만드는.




@ 정부종합청사

타지마할 바로 앞, 폐가처럼 방치된 건물 안에는 녹슨 용수철이 드러난 매트리스가 하나, 그리고 하얀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가 한 분 쪼그리고 계셨다.

그 옆에 '코카콜라'를 파는 음료수 상점은 나무 가지에 묶어둔 천을 지붕삼고 있었고.

중앙선을 유유자적 활보하는 위풍당당한 소들은 세상부러울 것 없다는 눈빛과 표정으로 사람들을 내려보았다.

옆에선 길가에 의자 하나, 거울 하나, 그리고 보자기 하나와 가위 하나로 머리도 깍고 면도도 하고 맛사지도

해주는 만능 이발사가 판을 벌였다.

삼륜차를 끌고 손님을 기다리는 아이들은 그저 햇볕을 쬐러 나왔는지도 모른다. 극성스럽지 않고 허허로운

느낌마저 불러일으키는 아이들의 몸짓들. 그들의 호흡에 맞추어 보는 게 여행일 텐데.

저런 길거리 음식을 서서 먹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같이 웃음도 나누고, 눈짓도 나누는 거 말이다.

타지마할 매표소까지 나가려면 또다시 저런 바리케이트를 지나 버스를 타야 한다. 나름 삼엄하다면 삼엄한

경계, 총을 든 정복 경찰들도 적잖이 보이지만, 사람들에서 풍겨나오는 어쩔 수 없는 나른함이랄까 유유자적함.

매연을 내뿜지 않는 전기 자동차가 입을 벌리고 대기중. 얼른 삼켜지려다가 옆에 비친 이상한 생명체에 깜짝.

쓰레기통에 얼굴째 들이박은 채 뭔가를 열심히 후비고 있는 숫소.

관광지 주변의 북적북적한 공기는 그대로인데, 뭔가 다른 거 같다. 뭐지...?

또다른 전기 자동차가 앞서 출발. 저 차랑 내가 탄 차랑 요금이 달랐었다. 미미한 차이였지만.

자전거 위로 나무를 한 짐 해가는 아저씨와 장애물 경기를 하듯 심술궂게 길을 툭툭 끊어놓은 바리케이드.

짧막한 거리를 운전한 기사 아저씨는 차가 서자마자 휙 내려버렸다. 클랙션이 도드라진 운전석의 모양새.

이 차 역시 운전석은 오른쪽, 문득 궁금해진 건 엑셀러레이터도 왼쪽으로 옮겨간 걸까? 왼쪽 운전석에선

엑셀레이터가 오른쪽, 브레이크가 왼쪽인데.

화장실 풍경은 습관처럼. 트럼프 카드의 킹과 퀸이 버티고 선 분홍색 화장실 건물.

자전거 삼륜차를 릭샤라고 한다던가, 저런 것도 한번 타봤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배낭 꾸려서 한번 떠야겠다.

소방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채 양동이 몇개 매달아 놓은 게 전부다. 영어와 힌디어로 모두 적힌 채

사이좋게 매달린 양동이들. 그리고 나무둥치엔 흰색 페인트를 발라두었다. 환경 미화의 측면에서 가로수들에

저렇게 색칠을 한다던데, 저게 이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지구상엔 있는 거다.

쓰레기통, 흙으로 빚어낸 듯한 갈색 쓰레기통엔 힌디어가 가득이다.

타지마할을 가리키는 파란색 입간판. 닳고 헤진 벽돌 두개로 받쳐놓은 모습이 허술하지만 정겹다.

나무 그늘을 제대로 활용해 주시는 이발사 아저씨. 뭔가 장비도 잔뜩 갖춰놓은 게 그대로 여느 이발소 내의

풍경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리고 버스를 잡아타고 떠나는 길, 문득문득 창밖을 휙휙 스쳐지나던 남루한 천막들 중 하나를 가까스로

잡아챘다. 저런 삶을 누리는 사람들로부터, 절대적 빈곤의 악함을 끄집어 내어야 할까 아님 정신적 풍요의

중요성을 끄집어 내어야 할까. 둘다 자기 입맛에 맞는 식으로 그들의 삶을 쉽사리 재단하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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