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불국사에 이어 찾은 곳은 석굴암,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석굴암 가는 길은 그야말로 지그재그. 지리산 대청봉을 보고 달리는

 

와일드한 드라이브 코스에 비길만한 커브와 경사로가 연속된 구간이었다. 불국사에서 걸어 올라갈 수도 있다는데 왕복 2시간쯤.

 

전혀 기억에 없던-하긴 관광버스로는 이런 짧은 터널을 지나는지 전혀 알 방법이 없었겠지만-터널이랄까 문을 지나다 말고

 

잠시 차를 세웠다. 아마도 석굴암의 내부 한쪽 면에서 봤거나 혹은 국사책 어딘가에서 봤던 기억이 어렴풋한 나한이 서 있는

 

모습을 그대로 넘어갈 수는 없었달까.

 

석굴암 주차장에 도착, 커브가 심한 이차선 도로를 따라 가파른 산을 꽤나 올라왔다 싶더니 역시나 전망이 탁 트였다.

 

 

구름이 조금 끼어있는 날씨가 아니라 완전 청명하고 파란 하늘이 반짝거리는 날씨였다면 저 아래 경주 시내가 좀더 잘 보였을 듯.

 

석굴암이 주차장 바로 앞에 있을 거라고, 전혀 근거는 없지만 그냥 막연히 믿고 있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여기서부터 또 한참

 

산길을 걷고 오르고 해야 도착하는 게 바로 석굴암. 여기는 그저 주차를 하고 티켓을 구매하는 입구에 불과하더라는.

 

 

알록달록한 연등이 양쪽에서 길을 안내해 주고, 산등성이의 짙은 그늘을 따라 걷기엔 꽤나 추워서 쉽지 않다고 느낄만큼

 

깊은 산의 서늘한 냉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런 길을 따라 이십분여 걸었을까.

 

불쑥 나타난 건물 한 채. 이게 석굴암이었던가 살짝 당황하고 있는데.

 

불쑥 나타난 저 위의 자그마한 또다른 건물 한 채. 이게 바로 석굴암 되시겠다.

 

원래는 석굴암의 외벽이 저렇게 시멘트로 발라져 있던 것이 아니라는 말도 있고 진짜인지 모르겠지만 본존불의 이마에는

 

거대한 보석이 박혀서 때에 맞춰서 광선을 석굴암 내부로 찬연하게 반사시켰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여하간, 내부는 촬영금지.

 

그런데 정말, 석굴암의 본존불상은 굉장했다. 비록 유리벽으로 막힌 채 몇 미터 거리를 두고 바라봐야 했지만, 인상은 압도적이었다.

 

소소한 세상사, 갑남을녀의 개인적인 고민은 비집고 들어가기도 민망할 만큼 중대하고도 근본적인 것을 마주하고 있는 표정이랄까.

 

최소한 일국의, 아니 인류의 차원에서 대두된 문제들, 나타날 문제들에 대한 깊고도 고귀한 명상과 성찰을 그치지 않는,

 

그야말로 신적인 지혜와 깨달음이 가득한 자의 표정과 눈빛이었다. 굉장히 우아하고 존엄한 분위기, 이런 표정과 분위기를 가진

 

자를 뭐라고 부르던, 당신과 나는 절대 동등하지 않으며 그 지혜와 깊이에 있어 난 하잘것 없는 미물이노라고 고백하고야 말 듯한.

 

이런 분위기의 부처를 보는 건 처음이라고 할 만큼, 마음을 뒤흔들어버렸다. 분명히 예전에도 이걸 봤었을 텐데. 비록 어리고

 

아무것도 몰랐을 때라지만, 그 때 전혀 이런 분위기를 감지하지 못한 것도, 그리고 지금 이런 분위기와 표정에 충격을 받은 것도

 

모두 놀라울 따름이다. 이건 전혀 다른 의미의 아름다움이자 극한에 달한 신성함..에 가깝지 않을까.

 

 

 

조금은 멍해진 채로, 저런 부처에게 세사 잡일을 고하고 일신의 복을 기원하는 것은 굉장히 무례하달까 격에 맞지 않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돌아왔다. 석굴암의 부처는 사람들이 복받고 행복하게 사는데 관심을 두는 게 아니라,

 

인류 모두의 정신적 고양과 열반이랄까, 그런 것들에 주의를 온통 쏟고 있는 거다. 자애로운 미소가 아니라

 

살짝 경직되고 진중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하는 건 어디까지나 내 상상일 뿐이지만.

 

 

 

그리고 석굴암에서 내려와 다시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에 담은 몇몇 풍경들. 비록 경주시내에서 불국사까지 가는 길이

 

생각보다 가깝진 않고, 또 불국사에서 석굴암까지 가는 길 역시 그리 쉽거나 가깝지 않지만, 석굴암의 부처님을 만나는 건

 

어쩌면 세속화된 부처들, 인간화된 신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굉장히 드물고 경이로운 순간으로 남을지 모른다. 내가 그랬듯.

 

 

 

 

경주 시내와 불국사가 이렇게 떨어져 있다는 감이 전혀 없었다. 수학여행의 기억은 몇 장 사진으로만 남았을 뿐.

 

시내에서 적잖이 차로 달려야 도착하는 불국사, 그러고 보면 불국사 안의 풍경 역시 깜깜하니 기억 하나 남지 않았었다.

 

 

산문을 들어서자마자 나타나는 구름다리. 우아한 아치를 그리고 선 돌다리가 정문과 불국사 본전을 잇고 있었다.

 

남쪽부터 슬슬 봄바람이 일기 시작하는지 연못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 능수버들엔 연두빛 물이 올랐다.

 

 

너무 새빨갛거나 새파랗지 않게 적당히 세월을 머금은 단청의 빛깔이 녹록치 않은 불국사의 역사와 위상을 말해주는 듯. 

 

 

그러고 보니 여기는 생각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다짜고짜 저 높고도 날렵한 계단 앞에서 고등학교 친구들과 사진을 찍었던 기억.

 

경내에 들어서면 좌우로 복도가 있는데, 울긋불긋한 그 단청이 적당히 까뭇한 그늘에 반쯤 가리운 풍취가 참 좋다.

 

 

그리고 어디랄 것도 없이 적당히 녹슨 듯, 적당히 이끼가 스민 듯한 분위기의 불국사 풍경이라니. 사실 불국사는 1900년대

 

중반까지 몇 채의 건물을 제외하고는 거의 몰락해가는 낡은 절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후 복원을 거듭하며 현재의 위용을

 

되찾았다는 건데, 그 시절 역시 적잖이 소요되어 이렇게 건물의 맵시나 색감이 자연스러워졌나보다.

 

불국사, 하면 빠질 수 없는 것 두 가지. 석가탑과 다보탑..인데, 근데 다보탑이 이렇게 컸던가. 새삼스레 놀라고 말았다.

 

아쉽게도 다보탑과 마주한 석가탑은 그 탑신을 볼 수가 없었다. 2010년 기단 덮개돌에 균열이 발견되었다나, 하여

 

지금은 완전히 해체해서 수리 중이라고 한다. 2015년이 되어야 다시 공개될 예정이라고 하니 잘 보이지도 않는 가림막에

 

아무리 고개를 들이밀고 이리저리 눈알을 굴려봐야 보이는 게 하나도 없다. 석가탑의 다른 이름이 무영탑이라더니,

 

아크릴로 된 가림막에는 과연 다보탑의 그림자만 비칠 뿐, 석가탑은 그림자 끄트머리도 보이지 않는구나.

 

 

그리고 불국사 심장부에 위치한 대웅전, 살짝 이르지만 나른하니 기분좋은 봄볕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파르라니 깍은 머리를 반짝거리는 스님은 어딘가로 총총걸음을 옮기고 계셨고.

 

 

대웅전의 청록빛이랄까 청동빛에 가깝도록 바랜 나무창살문을 보며 대체 이런 데를 내가 온 적이 있던가, 다시금 패닉에 빠지고.

 

도무지 단청을 화려하게 드리운 이런 오랜 사찰에 들어서면 눈을 사방으로 돌리느라 여념이 없으면서도 뭔가를 늘 놓치는

 

기분이다. 워낙에 오밀조밀한 구석까지 디테일을 챙겼던 옛 선조들 덕분에 전후좌우 위아래로 열심히 고개를 돌리는 중.

 

 

 

휘영청 하늘을 향해 말려올라간 처마의 곡선을 따라 푸른용 한마리가 고개를 들고 금세라도 뛰쳐오를 듯한 기세로 이빨을 드러냈다.

 

금세라도 콧김으로 불기운을 내뿜을 듯한 이 형상은 날카롭고 커다란 이빨 사이로 문고리를 꽉 움켜물었다.

 

 

 

도무지 사진으로 담기가 쉽지 않은, 수평하거나 수직한 직선도 아니고 사선도 아닌 처마의 저 율동감 넘치는 은근한 곡선미.

 

 

 

그러나저러나, 도대체 고등학교 2학년짜리들이 우르르 불국사에 몰려와서는 대체 뭘 보고 갔던 걸까. 이토록 아무 기억이 없다니.

 

 

아마도 천년은 훌쩍 넘었을 부처님의 모습을 수호하고 있는 붉은 나무울타리. 저 나무들이 모두 삭아 스러진대도 돌에 새긴

 

부처님은 다시금 천년을 버티고도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왠지 먹먹하다.

 

 

음..절에 갈 때마다 눈에 밟히는 건 저런 크고 작은, 높고 낮은 돌탑들. 다른 돌들의 균형을 흐트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돌 하나를

 

그 위에 얹는다는 행위가 갖는 기묘한 주술적 효과라거나 기복적인 요소를 인정하더라도, 여기만큼 대대적으로 벌어진 발원과

 

욕망의 탑쌓기는 처음 본 거 같다. 멀쩡한 마당도 모자라 기와가 오른 담장 위에도, 쪽문 위에도, 빗장 위에도 온통 돌탑이다.

 

 

 

워낙 사방으로 문이 나있어서 대체 어디로 어떻게 가야 전체를 한 바퀴 돌아보게 되는 건지 주춤거리게 된다. 게다가 한두개의

 

문만 지나와도 같은 듯 하면서도 또다른 실루엣과 풍경이 전개되는 판이라 마치 작은 미로 속에서 헤매이는 느낌이 들기도.

 

그 와중에 만난 복돼지상. 돼지라기보다는 살짝 쥐를 닮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삐죽삐죽 묘사된 털도 그렇지만 저 얍실한 눈빛.

 

 

 

 

그리고, 무려 신라시대 화장실 유구란다. 저렇게 돌을 깍아만든 두 발디딤대 사이로 장차 비료가 될 것들이 보관되었단 이야기.

 

 

다시 돌아내려오는 길, 왠지 들어가던 길과 다르다 했더니 역시. 그러고 보니 불국사로 드나드는 길이 꼭 한 개가 아니었던 거다.

 

이렇게 넓은 부지, 넓은 정원과 수많은 전각들. 대체 난, 고등학교 2학년의 나는 친구들과 어떤 길을 어떻게 밟았던 걸까 싶다.

 

그림자 없는 석가탑과 십원짜리 다보탑의 이미지조차 온전히 간직하지 못했던 걸 보면, 아마도 친구들과 떠들고 뛰어노느라

 

정신없지 않았던가 싶기도 하고. (아마도 전날밤에 몰래 마셨던 술의 뒤끝에 잡혀서 비몽사몽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강화도 외포리 외포선착장에서 카페리를 타고 십분. 그렇게 도착하는 석모도는 생각보다 꽤나 큰 섬인데다가 나름

'산'이라 이름붙은 야트막한 야산들도 불쑥불쑥 솟아 있는 거다. 그 중 하나, 200여미터의 높이로 솟아 있는 봉긋한

낙가산에 기댄 보문사란 절을 찾았다.

석모도는 서울이랑 가까우면서도 배를 타고 나간다는 느낌 덕인지 예전부터 몇 차례 놀러왔던 곳이다. 대학생 때는

훌쩍 섭을 째고는 혼자 놀러 와보기도 했었고, 언젠가의 연말 굉장히 춥던 날에 오기도 했었고. 보문사는 그렇게

벌써 두번째, 그때나 지금이나 하늘로 곧추솟은 이 소나무들이 보문사의 첫인상이다.


가을에서 겨울로 간당간당 넘어갈라는 시기, 축축해진 낙엽이 길을 온통 덮었고, 그 사이로 탑처럼 솟아있는 건

사람들이 보문사에 내려놓고 가는 소원 한토막들. 비가 올 거라던 일기예보는 틀렸지만 공기는 꽤나 촉촉했다.

보문사는 양양의 낙산사와 금산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의 3대 해상 관음 기도도량이라고 한다. 무려 신라시대로

거슬러올라가는 천오백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는 것도 미처 몰랐던 사실이다. 그러고 보니 매번 올 때마다

무언가를 간절히 간구하는 불자들의 행렬이 결코 적지 않았었던 거 같다. 당장 이번에 찾았을 때만 해도 수능시험이

끝나고 좋은 대학에 가게 해달라는 어머니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보문사를 특히 유명하게 만든 건 저 위로 보이는 마애관음좌상과 앞쪽의 석실 덕분이다. 마애관음좌상을 보려면

근 500여개의 계단을 올라 저 위로 올라야 하니 일단은 차치하고, 석실부터 꼼꼼히 살펴보기로 했다.

보문사 석실, 우리나라에 흔치 않은 석굴사원의 하나라고 하는데 생각해보면 정말 석굴암 말고 또 석굴을 파고 조성된

사원을 본 적이 없는 거 같다. 이 안에는 전부 스물두분의 나한상이 모셔져 있다는데 제법 넓찍한 석실 내부에서 스님이

두드리는 목탁소리가 둥그렇고 무지근한 파장을 그리며 울려퍼졌다. 천장에는 온통 연등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는데

왠지 생일파티때 헬륨가스를 잔뜩 불어넣은 풍선들을 천장에 빼곡하도록 불어올린 그런 분위기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 보문사 석실(안내판 참조) :

신라 선덕여왕 4년(635)에 회정대사가 처음 건립하고 조선 순조 12년(1812)에 다시 고쳐지은 석굴사원이다.

천연동굴을 이용하여 입구에 3개의 무지개 모양을 한 홍예문을 만들고, 동굴 안에 불상들을 모셔 놓은 감실을

설치하여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미륵보살과 나한상을 모셨다. 이들 석불에는 신라 선덕여왕 때 어떤 어부가

고기잡이 그물에 걸린 돌덩이를 꿈에서 본대로 모셨더니 부처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내려오고 있다.



보문사 석실 앞에 세워져있던 잘 생긴 향나무. 나무둥치가 바로 선 게 아니라 뭔가 구불텅하게 두어번 휜 것이

마치 용틀임하는 모양을 닮은 거 같기도 하다. 향나무의 생김이 범상치 않아 그런지 향나무를 둘러안고 있는

대리석들 위에도 꼬마스님들이나 부처님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으셨다.


보문사의 본당인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해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삼성각이,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마애관음좌상으로 가는

길이 있다. 몰랐는데 한국에 관음성지로 지정되었다는 서른세곳의 성지 중에서 첫번째로 손꼽힌 곳이 바로 이곳,

보문사라는 표지가 붙어있었다. 그냥 서울에서 가까운 바람쐬기 좋은 곳,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석실도 살펴보고

보문사 구석구석 살펴보다보니 생각이 바뀐다. 등잔밑이 어둡다, 는 속담이 자꾸 생각나고 있었다.

그렇게 이전에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보문사의 성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던 중 쐐기를 박은 건 바로 이 와불상.

커다란 와불이 법당 하나의 끝에서 끝까지 머리에서 발까지 쭉 몸을 뉘이시곤 누워 계셨다. 조성된지 얼마 되지 않은건지

또렷한 단청무늬와 사려깊은 조명들이 부처님의 얼굴에 떨어졌고, 앞에는 공양된 쌀과 향과 초들이 놓여있었다.

해가 스멀스멀 기우는가 싶더니, 어느순간 확 어두워져 버렸다. 마애관음좌상을 보러 올라갔다가 황급히 내려와보니

그새 보문사의 풍경이 확 바뀌어 있었다. 기와들을 가지런히 쌓아올려 만들어둔 야트막한 담장 사이로 불빛이 새어나와

생선비늘처럼 반짝이고 있었고, 퍼런 물이 짙어져가다가 까무룩 시커멓게 변해버리는 하늘 아래 기와지붕은 나름의

음영을 드러내며 운치를 더했다.

저녁 예불 시간이 되었는지 스님 두분이 큰북을 두들기러 나오셨다. 삽시간에 어두워져버린 풍경들을 뒤로 한채

촛농처럼 아래로만 흘러내리는 불빛 몇 개가 스님의 민머리 위에서 잠시 반짝거리다가 흘러내렸다.

이제 슬슬 가볼 참이었다. 석모도를 뜨는 배는 매시 정시와 30분, 그렇게 30분 간격으로 있다 했으니 지금 움직이면

딱 맞춰서 돌아갈 수 있을 듯 했다. 보문사에 오를 때는 경사가 워낙 급한 오르막이라 힘들었는데, 내려오면서는

차라리 오르막길이 낫다 싶었다. 자꾸 발걸음에 가속이 붙는 게 누가 뒤에서 밀치는 거 같기도 하고, 하여 그저

조심스럽게 내려오는 데에만 집중했다. 한걸음한걸음, 보문사의 관음보살을 뵙고 돌아오는 길은 그렇게 한걸음씩

새기면서 돌아올 길이었다.

석모도 들어올 때도 엄청나게 차들이 많아서 자못 당황했었는데, 사방이 이렇게 꺼뭇꺼뭇해진 시간이 되니 그렇게

들어온 차들이 전부 나가겠다고 꼬리에 꼬리를 문 게 그 붉고 노란 불빛들도 볼 만하다. 평일엔 3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배라고 했지만, 승객들이 늘어나는 공휴일이나 무슨 날에는 그냥 몇 대의 배가 쉼없이 움직이는 거 같다. 들어올 때도

생각보다 금방 차들의 행렬이 줄어들더니 나갈 때도 생각보다 금방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참 가까운 곳,

가까운 곳에 이렇게 영험하고 오랜 사찰이 있는 줄도 모르고 먼 곳만 보았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 인천관광공사에서 컨텐츠 제작에 필요한 지원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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