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떠나는 출장이란 이런 거다. 한꺼번에 수십개의 가방을 부치고, 또 한꺼번에 수십개의 가방을 잘 챙겨서

누구 하나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


내가 사는 삶이란 이런 거다. 한꺼번에 수십개의 생각과 희망을 품다가, 몇 개쯤 중간에서 잃어버리고 지워버리고

결국 여권만 달랑 남긴 채 죽음에의 입국 수속을 밟는 것.






#1.

두바이, 카이로, 리야드를 거쳐 쿠웨이트시티까지. 비행기를 타면 왠지 인류가 뭔가 대단한 존재에 이르른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가없이 준엄하게 흐르는 시간과 무려 '경쟁'이라도 하듯 달음박질치는 수준인 게다.

덕분에 첫날은 저녁 먹고, 아침 먹고, 점심 먹고, 밥 먹고, 밥 먹고, 다시 저녁을 먹었다. 하루 세 끼-아침, 점심,

저녁-을 챙겨먹는데 익숙해질 대로 익숙한 개념으로는 좀체 하루에 여섯 끼를 먹는다는 것, 그리고 해뜨고

눈뜨고 해지고 다시 눈감을 때까지의 기간이 24시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은 도무지 낯설기만 하다. 게다가,

출발지와 도착지의 시간차이는 (머릿속으로야) 이해한다지만, 대체 비행기 안에서 시간은 어떻게 흐르고

있다는 건가. 손목시계는 여전히 1초를 1초만에 째깍째깍 새기며 돌아가는데, 어쩌면 비행기 안에서는 1초를

사실 2.4초쯤, 아니면 0.5초쯤으로 새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부분은 약해서 잘 모르겠지만, 뭔가 이상하다.


#2.

피곤한 일정 탓에 비행기만 타면 최대한 엉덩이를 의자 가장자리로 위태하게 내몰고는 몸을 쭉뻗어 침대인양

스스로를 속이고 잠들어보려 애쓰는데, 좀체 쉽지가 않다. 일단 대체 언제쯤 올지 가늠할 수 없는 타이밍에

쳐들어오는 기내식 냄새. 파블로프의 개처럼, 냄새가 비행기 안을 꽉 채우면 배가 고파지고, 혹은 배가 고프단

걸 깨닫게 되고, 번쩍 잠에서 깨어 기계적으로 포장을 뜯고 포크질을 하기 시작한다.

오른켠 사람의 팔꿈치에 방해받고 왼켠 사람의 옆구리를 질러가면서 꾸역꾸역 밥을 먹다 보면 문득 사육당한단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분홍색과 똥색이 뒤범벅된 돼지우리 속의 돼지들. 사료 시간만 되면 서로 머리를 치대며

먼저 먹겠다고 아옹다옹대는 뽄새도 그렇지만, 왠지 거대한 비행기 내장 속 기백명의 사람들이 똑같은 시간에

거의 똑같은 메뉴가 똑같이 배열된 식판에 고개를 처박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다. 더군다나 문득 눈뜨면

답답함에 돌아버릴 것 같은 좁디좁은 좌석에 빽빽히 꽂혀 있는 사람들 아닌가.


#3.

"근처에 볼 게 없네."라는 말을 몇 번 들었다. 호텔 주변을 산책하고 왔던 일행들이 내게 그랬다. 사실 나는 이미

중간중간 땡땡이를 치며 쪼끔씩 주변 골목을 돌아봤던 참이었다. 그 말을 들으며, 얼마전 버스에서 "사람이

아무도 없네"라고 생각했던 게 떠올랐다. 허름한 놀이터가 뙤약볕 아래 달궈지고 있었고, 고장난 샤워기같은

분수대에는 페트병들이 수면을 가득 메워 둥둥 떠올라 있었으며, 멋진 아랍어 그래피티가 골목 한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전혀 낯선, 그리고 평범한 카이로, 리야드의 골목 풍경이었다. 너무 평범해서 아직 소모되어

버리지 않은 신선한 이미지들. 예컨대, 스핑크스가 달고 있는 두텁한 소꼬리 조각같은.


#4.

변태는 날 좋아한다. 비록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남성이 결혼하려면 굉장히 많은 액수의 지참금이 필요하고,

때문에 결혼을 못한 남성들이 일종의 '대체재'로 동성애를 취한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그렇다면 난 대체재 중

상급에 속함에 틀림없다. 리야드의 밤거리, 밤 열두시가 넘은 시각 산책을 하다가 변태를 만났다. 보기 드문

긴머리 히피스타일의 젊은 아저씨가 차에서 내리다가 내 눈과 마주치곤 히죽대며 자신의 온몸을 더듬기

시작한다. 이윽히 시작된 신음소리와 밭은 한숨소리가 걸음을 재촉해 지나친 내 귓가로 달겨들었다. 잠시후

뒤에서부터 달려온 차는 내 앞에 서더니 오른쪽 차문이 덜컹 열리며 시끄러운 음악소리를 뱉어냈다. 두가지

정도 질문을 머릿속에 떠올려봤다. 어디로 갈래? 얼마 줄 거야?


차마 말하진 않고, 그 대신 꺼져줄래, 라고 말해줬다. 한국말로. 그리고 속으로 좋아했다. 꺄오, 뉴욕, 카이로,

태국에 이어 리야드에서 먹히는군하~ 잇힝~* (비록 남자에게일지언정)


#5.

출장도 거의 끝나간다. 여긴 쿠웨이트, 밤 12시. 이번 출장 완전 쒯.

일반 개황

수 도

리야드 (Riyadh, 3백만명)

정부형태

이슬람군주국

면 적

2,150,000㎢ (한반도의 10배)

국가원수

Abdullah 국왕

언 어

아랍어

인 구

28.1백만 (2008)

표 준 시

GM + 3 (한국과 6시간차)

환 율

US$1 - 3.74980 SAR(Riyal)


경제 지표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GDP(십억 달러)

214.9

250.7

315.8

356.6

381.9

528.3

1인당 GDP(달러)

9,758

11,127

13,658

15,050

15,724

21,221

경제성장률(%)

7.7

5.3

5.6

3.0

3.5

5.9

재정수지(백만 달러)

28,085

52,097

90,596

99,632

95,762

171,662

재정균형률(% GDP)

13.1

20.8

28.7

27.9

25.1

32.5

상품/서비스 수출(% GDP)

46.1

52.6

59.1

62.5

65.5

72.8

물가상승률(%)

0.6

0.4

1.2

2.9

4.1

11.5



한국의 대사우디 아라비아 수출/수입 현황(백만 달러, %)

2005

2006

2007

2008

성장률(전년대비)

수 출 액

2,093

2,978

4,026

5,253(20)

30.5

수 입 액

16,106

20,552

21,164

33,781(6)

59.6

총교역액

18,199

23,530

25,190

39,034

54.9


한국의 주요 수출입 품목(2008, 백만 달러)

수출

수입

1

자동차

1,106

1

원유

28,647

2

정전(static electric) 기기

363

2

석유제품

3,211

3

공기조절기및냉난방기

361

3

LPG

1,025

4

철강판

242

4

석유화학합섬원료

385

5

섬유및화학기계

187

5

기타석유화학제품

223

6

원동기및펌프

186

6

석유화학중간원료

70

7

형강

168

7

기초유분

61



사우디 아라비아의 주요 수출/수입국(2008. 1-9월, 백만 달러)

수출

수입

1

미국

46,733

1

미국

10,736

2

일본

33,919

2

중국

9,673

3

중국

24,086

3

독일

7,014

4

한국

20,483

6

한국

4,557






EGY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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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 주재하는 외국 대사관들의 영문 주소, 전화 및 팩스, 이메일주소, 오피스아워, 대사 인명을 담고 있습니다.
메리어트 리야드 호텔에서 짐을 싸고 공항으로 가기 직전, 이번 출장을 위해 산 가방을 잠시 주목. 무려 29인치짜리

거대한 가방, 시중에서 파는 가방 중에 가장 큰 사이즈이고, 3년간 무상수리가 보장된 가방이다. 애초 사무실에선

출장을 자주 다니다보면 가방이 마구 다뤄지기 때문에 바퀴나 손잡이가 파손되기 쉽다고 하면서 '샘소나마이트'표

가방을 강추했지만, 사실 제품보장이나 사후서비스가 철저한 브랜드, 그리고 딴딴한 품질은 꼭 그것만 있는 시대는

이미 아닌 거 같다. 사이즈로 말하자면, 출장 갈 일이 아니라면...글쎄, 나중에 이민이나 가면 모를까 나 혼자 여행

다닐 때에는 좀체 쓸 일이 없을 거 같은 가방이다. 가뜩이나 나는 짐을 가볍게 하고 다니는 걸 중요시하는 편이다.

사우디에 처음 들어와서 공항서 호텔까지 가면서, 앞서고 뒷서는 차들의 번호판을 보면서 오랜만에 아랍어 숫자

공부를 다시 했다. 이집트 여행다니면서 이미 한번 완전히 익숙해졌었던 체계라서 금세 1부터 0까지의 숫자를

식별해 낼 수 있었다. 다시 리야드 공항으로 가는 길, 이제 다시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번호판들과 교통표지판들의

숫자를 읽으면서 느낄만한 잔재미까지 지워져 버리지는 않았다. 더구나 저런 산만한 치장을 하고 달리는 차라면

내 시선을 붙잡기에 부족함이 없달까.

*참고삼아, 아랍의 숫자체계를 보여줄 그림 두개를 퍼왔다. 내가 미처 챙기지 못한 이런 사진까지 찍어놓으신 분께

감사합니다~*

사우디 공항에 들어서서 보니, 처음 사우디에 도착했을 때처럼 포도송이 눌린 듯한 모냥새의 공항 건물이 왠지

반갑다. 사우디의 맛만 보고 간다기도 뭐한 며칠간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그래도, 이제 내 머릿속에다가 사우디란

나라를 단단히 박아넣은 느낌이다. 몇몇 사람들의 웃음어린 얼굴과 혹은 모래처럼 부석하게 표정이 말라붙은 얼굴,

그런 것들과 함께 성황을 이뤘던 상담회까지.

티켓팅을 하고 공항 로비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며 쉬었다. 울룩불룩한 천장의 틈새에서 삼각형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햇살이 뿌여스름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자연채광이라 산뜻한 느낌. 베이지색의 안온한 기둥과 더 엷은

베이지색의 천장 무늬도 차분하다.

까페에 앉아서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주위를 찬찬히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다. 인적이 어찌나 드문지 공항서

일하는 사람들이 공항을 이용하는 사람들보다 많아보일 지경이다.

공항 벽면에 그려진 '아랍스러운'  문양. 모스크 사방에 저런 글씨랄까, 그림이랄까, 크게 그려져서 걸려 있는 것도

보았었지만..그 형이상학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모양 자체로도 충분히 인상적이다.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어떻게

그려지는 건지, 하다못해 글씨인지 그림인지부터 분간도 못하고 있으면서도.

다음 행선지는 카타르. 카타르까지는 사우디아라비아 항공을 타고 가게 되었다. 그런데 받아들고 보니 이 티켓이란

게 얼마나 엉성한지, 예전에 쓰이던 얇은 팩스용지같은 데다가 타자로 찍어낸 것 같은 글씨의 인쇄상태라니.

어쨌든 보기도 힘든 사우디아라비아항공, 사우디의 국적기를 탄다는 사실은 은근히 설레는 것이었다.

스튜어디스(flight-attendant라는 단어가 보다 적절하다고 생각하지만)가 서빙을 하고 있을지, 비행기 내에서 주류

제공이 가능할지 등등.

리야드에서 카타르 도하까지는 고작 1시간 20분의 비행. 조그마한 비행기 안에서 스튜어드가 비상탈출 방법을

열심히 알려주었다. 대체 저런 교육을 받으면 지상 수천미터 상공의 비행기에서 무사히, 혹은 죽지 않고 탈출할

수 있을지 회의스럽기 짝이 없지만..그래도 들어두면 나중에 능숙하게 써먹을 일이 있겠지, 하고 귀를 쫑긋 세우고

듣게 된다. 음음..산소마스크는 여기에 있고, 구명조끼는 이걸 땡기면 순식간에 부풀어오르는구나. 비상구는

저쪽에 있으니 비행기가 위태롭다 싶음 초연하게 훌쩍 뛰어내리면 되겠고. 어, 앞에 신문만 보고 있는 아저씨들,

아저씨들도 좀 배워둬야 하지 않겠어요? 나이들면 모든 것에 초연해진다.

이런 높이에서 날고 있단 말이다. 아무리 비행기의 떨림이나 좌우 롤링이 마치 비포장도로를 내닫는 4WD 자동차의

그것과 비슷하게 느껴질 뿐이라 해도, 엄연히 여긴 하늘 위 세상이다. 발 딛을 곳 하나 없이, 날개도 없는 동물이

고작 저 얄포름한 날개 한짝 믿고 신문이나 펼쳐 보고 있거나, 심지어는 잠이 들어버린다니. 가만보면 저 날개란

것도 웨이브하듯이 진동이 끝에서부터 타고 들어오는 게 보일 때가 있다. 아기코끼리 점보의 커다란 귀가

펄럭펄럭하듯이 말이다.

좌석 앞에 놓인 멀미봉투와 비행기 안전소개 팜플렛. 저 요상한 폰트의 한국어가 시선을 확 잡아챘다. 아랍어,

영어, 불어, 독일어, 한국어...정도 밖에 알아보지를 못하겠다. 은근히 외국인들이 많이 타나부다..그리고 한국인도

많이 타나부다..하고 감탄해버렸다.

기내식은, 최악이었다. 이렇게 맛없는 건 처음 먹어봤지 싶을 정도. 물론 기내식 자체가 별로 기대할 만한 밥은

아니란 건 알지만, 그래도 푸석푸석한 닭고기가 밥속에 숨겨진 저 노란 밥도 그렇고, 바싹 마른 빵위에 느끼하기만

한 초콜렛판이 이미 분리된 채 따로 노는 저 조각케잌, 그리고 빵이라기엔 뭔가가 부족한 느낌의 저 밀가루반죽

부풀어올린 것까지. 그레이프후르트와 오렌지가 나온 과일만 먹고 식판을 물리고 말았다.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항공에는 여성승무원이 있다. 빵을 나눠주고 밥을 나눠주시는 분, 후덕하신 웃음과 함께

나눠주셨다.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금지되어 있는 사우디 국내에서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아마 사우디 내

여성들의 지위에 대한 변화의 조짐이 아닐까 싶다. 걸치고 계신 게 제복인 듯 한데 무지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알 파이잘리야 타워에서 저녁을 먹게 되었다. 사우디를 떠나기 전 최후의 만찬, 비록 며칠 안 있었다지만.

메리어트 리야드 호텔에서 멀리 어슴푸레 윤곽만 보이던 걸 아쉬워하던 그 뾰족한 뿔같은 유선형의 건물이다.

대체 애초에 뭘 형상화하고 싶었던 걸까, 건물에 조금씩 접근하면서도 계속 궁금했다. 단도? 칼날? 창? 아님...

죽순? 뭔가 봉긋 튀어나오고 날카로운 느낌이 강한 사각뿔 형태의 것..뭘까.

건물 상층부에 남보랏빛 조명 아래 잠시 어두운 부분을 지나치면 드문드문 불이 켜진 (그나마 평범해보이는)

층 공간들의 식별이 가능하다. 그 불빛없는 상층부 공간은 금빛 구가 틀어박혀 있는 곳이다. 그러고 보니 이 건물,

정말 뭘 형상화한 걸까. 날렵하게 빠진 유선형으로 다듬어진 사각뿔, 게다가 끝부분 가까이에는 금색 구까지

박혀있다니. 그나저나 건물에 조명시설은 꽤나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타워 옆에는 호텔 건물이 있었다. 렉서스니 크라이슬러니 벤츠니 베엠베(BMW)의 로고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그 앞 주차 공간에서 유독 많이 보이던 차종은 SUV. 암만해도 사막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니 딱 어울리는 곳이긴

할 거 같다. 저 T자형 하얀 불빛이 차곡차곡 쌓인 공간은 아마도 호텔의 라운지 공간이나..그런 거 같았지만,

모시고 다녀야 할 일행분들을 챙겨야 하므로 쫑긋 고개를 든 궁금증은 애써 눌러담았다.

타워에 들어서기 직전 뒤돌아 찍은 호텔의 전경. 아주 독특한 외관을 갖고 있었는데, 뭐랄까, 둥글게 휜 점토판에

네모난 빵꾸를 뽕뽕 격자무늬로 뚫어놓은 듯한 전면의 모습. 이미 어둠이 많이 깊어진 시간이었고, 배가 고팠기

때문에 다시금 궁금증을 즈려 밟아주었다.

리야드의 통치자인 왕자의 명을 받아 1997년 착공했다는 내용의 '머릿돌'이랄까. 알 파이잘리야 타워는 생각보다

오래 된 거구나, 사우디의 저력..아님 금력을 보여주는 거 같다.

타원 안에 들어서니 모형이 로비 한가운데 버티고 서 있다. 이 곳 역시 금속탐지기에 짐을 던지고, 나 자신 역시

스캐너를 통과해야 입장이 가능한 곳이었다. 아..저런 부속건물이 있구나, 하는 것보다는 그저 이 타워 자체가

참 신기하게 생겼단 느낌이다. 상해에 갔을 때도 동그란 구를 위아래로 두개 꼬치 모냥으로 꼽아놓은 건물, 이름이

동방명주탑이던가..그걸 보고 대체 촌스럽고 초현실적인 저게 뭐냐 했었는데, 그것처럼 똑같은 구를 건물 형태에

본격적으로 도입했으면서도 뭔가 세련된 느낌이다. 실용적인지는 차치하고, 건물의 날렵한 외관을 잡아주는 네개

선 안에 고이 모셔져 있는 황금빛 구는 확실히 그럴듯하다 싶다.

로비 한 벽면에 장식되어 있는 낙타, 그리고 사막의 모래구름 풍경 사진. 사실은 이걸 찍는 척 하면서 저 벤치에

앉은 세 사람을 찍고 싶었다. 온통 까만 옷으로 전신을 감싼 채 두손 모으고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여성, 그리고

마치 신라시대 불상에서 느껴질 법한 우아하고 맵시있게 떨어지는 옷의 주름을 과시하려는 듯 쩍벌남의 자세를

과시하며 완연히 여성을 소외시킨 두 남성. 여성이 살풋 고개를 숙인 채 이야기에 공손히 귀기울이고 있는 듯한

자세가 왠지 이 나라, 사우디아라비아의 분위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 같았다.

위의 사진을 찍고는 잽싸게 초점을 옆으로 이동, 안 그래도 일행분들이 저사람들이 여자 사진찍는 줄 오해하면

큰일난다고(실제로 사진 찍은 건데), 그러다 카메라 뺏긴다며 염려해 주셨다. 천장도 높고 공간도 꽤나 넓은

로비였지만,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건 단지 커다란 금속탐지기, 타워 모형, 그리고 드문드문 엉성하게 놓인

저 화분들. 휑뎅그레한 느낌이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10층이던가, 그쯤에 있는 식당으로 올라가면 드디어 밥을 먹을 수 있는 거다.

아무리 배가 고파 손이 떨려도 엘레베이터 문짝이 건물 모습을 담고 있는데야 또 게으를 수는 없지 싶어서.

10층, 통유리로 감싸인 실내의 레스토랑은 부페식, 양고기와 온갖 아랍 전통 음식이 가득했지만 그보다 내 관심은

유리문을 열고 나가면 실외 전망공간으로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 온통 그쪽으로 쏠려 버렸다.

생각보다 사우디 리야드의 야경도 볼 만하다 싶었다. 그렇게 높은 곳에 오른 건 아니어서 거리나 건물의 불빛들을

위에서 내리꽂듯 본다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이런 식으로 살짝 비스듬한 각도로 편하게 보는 것도 좋았다.

건물들의 실루엣에 중간중간 끊겨나간 거리의 꼬마가로등 불빛들, 앞건물에 가리워진 뒷건물의 옆구리. 그리고

저 멀리 까만 하늘과 까만 땅의 경계를 그어주는 주홍불빛무리들. 그런 것들이 왠지 살짝 감질나면서도 못견디게

사랑스러워지는 순간. 저 불빛 하나하나가 사람의 심장이거나 생명 그 자체인 양 따스한 느낌이다.
큰길을 따라 주욱 늘어선 가게나 기타 자본주의적 공간들의 네온사인이 화려하다. 다국적기업들의 간판도 꽤나

많이 봤고, 베스킨라빈스, 맥도널드, 피자헛 이런 것들도 쉽게 눈에 띄는 곳이라 첨에는 살짝 당황했지만, 여기

사우디는 원래 그런 곳이었던 거다. 다른 아랍권 국가들처럼 반자본주의, 반미적인 투사형 국가가 아니라, 단지

자신들의 왕정의 안위가 가장 큰 관심사일 사우디 아라비아 왕국.


실외로 나서니 한바퀴 돌아볼 수 있게 사면으로 연결이 되어있었다. 한쪽 방향에서 한 장씩, 그렇게 네장을

찍음 되겠다 했지만 그게 또 아니다. 보다 밝고 불빛이 화사한 곳, 보다 어둡고 불빛이 귀한 곳, 고만고만한 높이의

건물들 사이에서 불쑥 뛰쳐올라 하늘을 찌르는 건물-랜드마크라고 부르는-이 있는 방향이 있는가 하면, 그 고만한

높이마저도 현저히 낮아보이는 주택가 지역쪽 방향이 있다는 걸 금세 알아채고 말았다.


확실히 심심하고 단조롭게 배치된 불빛들, 단순히 내 생각일까, 불빛도 한결 흐리멍텅해 보인다.

이게 내가 느낀 사우디의 이미지에는 훨씬 맞아떨어지지 싶다. 그러고보니 이쪽에는 가게 간판 불빛도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다시 한번 비교해 봐도 뭔가 많이 다른 것 같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라 해도 다양한 풍경과 높이, 그리고 불빛이

공존하듯 이곳 리야드 역시 그런 게다.

사진을 얼추 찍고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실외에 마련된 자리 한 켠에 검은 옷으로 둘둘 감은 여성들만 세네명이

앉아 까르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거다. 순간 내 머리를 스친 두가지 생각, 실외의 전망을 위한 통로를

찍는 척하면서 찍어야겠다는 생각과 잘못 찍었다가 큰일나겠다라는 생각. 첫번째 생각이 카메라를 눈높이로

끌어올려 전광석화같은 속도로 셔터를 누르도록 시키는데 두번째 생각이 개입해서는 손을 잡아끌어버렸다.

그러니 이 사진은 내 머릿속에서 두가지 생각이 광선검의 뿜어나오는 섬광같은 속도로 충돌하며 빚어진 사고현장.
자리에 돌아와 밖에 여자들만 앉아 있다는 이야기를 하니, 나보다 앞서 그곳을 지나쳤던 일행 한 분은 그 여자들이

자신을 응시하며 말을 걸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신다. 알고 보니 이곳은, 일반인이 출입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장소라 왕족 같은 높은 신분이나 부유한 계층(이 두 집합은 대개 겹치기 마련이지만)의 여성들이 와서 다소간의

자유를 즐기고 가는 공간이랜다. 머릿수건, 히잡을 잠시 벗고 담배를 피거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여성끼리

와서 움직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다른 남성에게 말을 거는 일도 있는 곳. 그런 자유를 원하는 건 신분고하나

빈부격차를 막론하고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어쨌든 이곳은 거의 유일한 사우디 여성의 해방구라는.

실내 레스토랑 천장에서 별빛처럼 반짝이는 조명들. 창밖 어둠이 깊어질수록 실내도 점점 어두워지면서, 저 멋진

조명은 사실 아무런 조명으로서의 기능은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촛불이라봐야 음식이 어떻게

생겼는지 정도나 알려주고 앞사람 얼굴이 웃고 있는지, 찡그리고 있는지 정도나 알려줄 뿐.


참, 술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 사우디에선, 살짝 탄산맛이 나는 사과레몬주스를 술 대신 마셨다. 발효가 조금

되었는지 알콜맛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사과와 레몬맛이 섞여서 달콤시큼한 게 맛있는 주스같기도 하고 그랬다.

사우디는 비록 금주령으로 유명하고, 공식적으로 술을 팔지도 사지도 못한다고는 하지만, 또 음성적인 밀수로

들어오는 술의 양이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그 술들은 대개 왕족들이 개인적으로 소비하게 된다는데,

일종의 암시장에서 수급상황에 따라 널뛰기하는 가격만 맞출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구할 수야 있다고 한다.

또 하나. 사우디의 밤거리를 달리는 차들을 보면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데, 떠날 때가 다 되어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불빛들이 강렬하게 눈을 찌른다. 마치 빙판위를 달리는 것처럼, 자동차의 불빛들이 아스팔트 노면위에서

잔뜩 궁글려져서는 더욱 번쩍번쩍 시야를 교란하고 있는 거다. 저게 고급 아스팔트라는 설명이었다.

왜 레이싱 도로를 보면 반질반질 윤이 나고 타이어와의 접착력이 높다고 하는데, 바로 그 아스팔트 도로라는 것.

비가 올 일이 일년에 하루 있을까말까 하다는 곳인지라 이런 매끄러운 아스팔트를 써도 거의 무방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대신 어쩌다가 정말 비라도 오면 여기저기서 사고가 터진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불빛을 저렇게나 반사시키며 미끄러뜨리는 걸 보건대, 운전할 맛은 제대로 나지 않을까 싶었다. 거칠거칠한

표면 위가 아니라 벨벳처럼 부드럽고 매끈한 도로 위를 착 달라붙는 느낌으로 운전한다면..절로 엑셀레이터에

발이 가겠지. 차들이 아스팔트 위가 아니라 검은색 빙판 위에 버티고 선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화장실 표시도 남다른 사우디아라비아. 터번을 감은 턱수염 아저씨와 머릿수건 히잡을 쓴 망사 속의 아가씨가

각각 남여 화장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왠지 여성은 검은 색이 많이 들어가서 그런지 남성보다 은밀하고 숨겨진 느낌이 든다. 단순히 조명이 직접

때려지지 않아 마침 광택이 조금 덜했던 걸 넘 크게 해석한 걸까.

남성이라면 잠시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난 첨 화장실에 들어가서 이걸 보는데, 앉아서 쓰란 건지 서서 쓰란 건지

순간 혼란스러운 느낌마저 일었었다. 저 거창한 칸막이도 흔히 보는 소변기 사이의 칸막이라기엔 좀 거시기하다.

비록 생긴 건 좌변기같이 길쭘하게 생겼지만, 어쨌든 이건 남성용 소변기. 서서 쓰는 거다.ㅡㅡ;

아침부터 시작한 상담회인데, 하루 종일 실내에만 있으려니 하도 답답해서 잠시 호텔 밖으로 나섰다. 여전히 호텔

문 앞에서 사람들과 짐들을 스캐닝하고 있는 금속 탐지기. 안그래도 내 손에 쥐어진 카메라를 불안하게 경계하던

보안요원은 내가 미친 척하고 카메라를 들이대자 즉각 반응한다. 찍지 말랜다.


알았다고, 웃음기조차 없는 그 얼굴이 인상쓰면 정말 무섭겠다 싶어 얼른 밖에 나섰더니 어느새 새까만 어둠이

내려앉아 있다.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은 알 파이잘리야(Al Faisaliah) 타워, 사우디 리야드의 가장 높은 건물 중의

하나이자 대표적인 랜드마크라고 한다. 붉고 노란 라이트불빛만 늘어뜨리고 호텔 앞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들.

초점이 안 맞은 채 찍힌 사진이지만, 왠지 이 딱딱하고 적대적인 공간을 조금이나마 부드러운 이미지로 기억시켜

줄 것 같은 사진. 하품이라도 하고 눈에 물기가 잔뜩 어린 채 쳐다보는 세상같다.

다시 상담회장으로 돌아가는 길, 불과 십 분도 안 되는 짧은시간 건물을 나갔다 들어왔지만 예외없이 금속탐지기를

통과해야 했다. 우선 플라스틱 바구니에 카메라와 주머니속 잡동사니들을 빼놓고는 검은색 고무로 된 컨베이어

벨트 위에 얹는다. 그리고 그 바구니가 거의 소형차 마티즈만한 사이즈의 기계를 통과하는 동안 나는 공항에서

흔히 보는 탐지기를 통과해서 스캐너로 사지를 스캔당한다. 통과. 당할 때마다 불쾌하지만, 어쩔 수 없다.


상담회장 바로 옆에 카펫 판매장이 있었다. 호텔 내 기념품점이야 어느 나라에나 있고 이곳에도 이런저런

기념품을 파는 매장이 따로 있었지만 카펫을 파는 곳이 아예 이렇게 따로 있을 줄이야. 잠시 들어가서

한바퀴 돌아보며 카펫의 문양과 촉감을 구경하고 나왔다. 따스하고 보들보들한 느낌이 손끝을 스치는 게

둘둘 감고 있으면 포근할 거 같다.

메리어트 리야드 호텔의 1층 로비. 은근하지만 화려한 조명과 야자수가 휘영청 늘어진 느낌이 그럴 듯 하다.

두바이 공항과 달랐던 점은 저 야자수들이 전부 진짜였다는 점, 그리고 잎사귀에 먼지가 낄 새도 없이 잘 관리되고

있어서 반질반질 윤이 날 정도였다는 점. 역시 호텔은 가오로 먹고 산다.

별 모양으로 늘어뜨려진 조명과 저 멀리 초대 국왕, 선대 국왕, 그리고 현재 국왕의 초상화가 보인다. 흡연이

자유로운 아랍 문화답게 호텔 로비에서던, 복도에서던 흡연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는다.

내가 들은 기억으론 가운데가 초대 국왕, 왼쪽이 선대 국왕, 그리고 오른쪽이 현재 국왕이라고 했던 거 같다.

가운데 아저씨가 입고 있는 검은색 옷(사실은 왼쪽 오른쪽 아저씨들도 입고 있지만)은 굵은 금색 실로 치장되어

상당히 화려한 느낌을 주는 의례복으로, 왕가의 사람들이 공식적 행사에 참여할 때 입는 복식이라고 한다.

호텔의 섬세한 손길이 느껴지는 엘레베이터 앞 재떨이. 거리낌없이 아침부터 담배를 피워대는 투숙객들 때문에,

두 개층을 오르내리며 겨우 흐트러지지 않은 재떨이 모래무지를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알고 보니

수시로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치우고 모래를 일부 걷어내고는 다시 메리어트 호텔 마크를 저렇게 찍어 놓고 있었다.

다음날 새벽, 산책을 겸해 호텔 밖을 또(!) 나섰다. 호텔 바깥의 녹색 공간은 시간맞춰 분사되는 이런 스프링쿨러

시스템에 크게 빚지고 있었다.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몇십분 동안 쉼없이 흩뿌려지는 물들, 중동권에서 물은

기름보다 비싸다던가. 세계 최대의 산유국이자 무진장한 수준의 천연가스를 보유하고 있는 사우디에서 더욱더

실감나는 말이다. 심지어 이들은 천연가스는 아직 개발도 제대로 시작하지 않은 상태인 거다.


보안요원이 따라나오더니 사진 찍지 말랜다. 왜!! 냐고 묻고 싶었지만, 역시 무서운 얼굴에 쫄아버렸다. 나무에

물주는 거 찍겠다는 나도 니들눈에 웃길지 몰라도, 그걸 굳이 막겠다고 나선 니들도 웃기다 참.

우선 알겠다고 하고 몇걸음 내딛다가 다시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 건 그 뒷켠의 화단. 물기없이 부석부석한 흙에서

비실대고 있는 꽃들이 안쓰럽다. 호스가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저런식으로 물을 뿌려주고 있었지만 글쎄..축 쳐진채

잔뜩 목말라보이는 저 꽃의 뿌리까지 촉촉하게 젖어서 꽃잎이 팽팽해지려면 한참 걸리지 싶다.

근데 이 꽃...한국에서도 많이 봤던 거 같은데, 이름도 알았던 거 같은데 영 기억이 안 난다.

꽃에 대고 사진찍는 것도 못마땅했나보다. 여기까지 다시 쫓아나온 보안요원, 오늘은 아침부터 보안요원하고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숨바꼭질하는 것도 아니고. 이번엔 짜증을 낸다. 자꾸 이러면 카메라를 검사해서 사진을 다 지워

버리는 수가 있댄다. 나도 대체 왜, 왜 꽃이나 나무도 못 찍게 하냐고 물었더니 그게 규정이랜다. 호텔, 공공건물을

촬영하는 게 금지되어 있다나. 사실 카메라를 검사하겠다는 으름장에 살짝 쫄아있던 상태였는지라, 고분고분 말을

듣기로 했다. 카메라 안에는 이들 왕의 초상화도 담겨 있는데 행여 걸리면 어찌되겠다 싶어서.


그래도 이대로 들어가긴 따땃한 사우디의 아침햇살이 너무 아쉽다. 호텔 안의 에어컨 바람에 질린 참이었다.

알 파이잘리야 타워 쪽 아침 풍경을 한번 돌아보았더니, 이번에는 타워 위쪽에 있는 구 형태의 조형까지 뚜렷이

보인다. 그리고 발톱처럼 유선형으로 건물을 타고 오르는 곡선의 실루엣도 선명하다.

메리어트 리야드 호텔 옆에 이어지는 정원, 그리고 부속건물들. 이건 대체 무슨 건물인가 싶어서 크게 호텔 주변을

돌아보기로 맘먹었다. 호텔보다 화려하고 얼마 되지 않은 새 건물 같은 게, 뭔가 특별한 용도가 있지 싶었다.

알고 보니 허무하다. 메리어트에 딸린 bodyline Health Club & Spa랜다. 사우디의 부유층들은 운동량이 정말

얼마 안 된다고 한다. 당뇨 등 성인병이 만연해 있고 양고기 등 기름진 음식에 대한 경계심도 없는 데다가, 따로

운동을 해서 건강관리를 해야겠다는 의식도 없는 탓이라고 하는데 여긴 장사가 될런지 모르겠다. 아직 한국같은

'웰빙' 바람이 불어닥치지 않은 무풍지대, 사우디아라비아.

이런 세계도 있을 수 있음을 몰랐다.

'여행'이라는 방법만이 외국을 접하는 유일한 통로였던 때에는, 여행자의 카메라와 시계 등속에 관심을 보이며

서툴게 말을 건네던 길 위의 행인들이 그 나라의 얼굴이었다. 마주치던 그 나라의 풍경 역시 대부분 길위에서,

어느 점에서 다른 점으로 이동해 가는 그 선상에서 마주한 것들이었다. 바람이 불고, 하늘이 보이며, 땅을 밟는.

설혹 박물관이나 기념건물 등의 실내로 들어선다 해도 눈에 보이는 모든 걸 신기하게 바라볼 태세가 되어 있는

여행자의 시각으로, 뭔가 그 장소에서 그 나라가 보여주려는 걸 동조해 보려고 노력하면 그만이었다.


그렇지만 출장이란, 출장으로 떠난 나라를 맛본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도 않지만 또 다른 이야기같기도 하다.

물론 출장이라고 해도 다양한 방식과 목적을 가진 출장이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떠난 출장은 호텔에서 호텔로

전전하며 비즈니스상담회를 진행하는 것이 주목적이었기 때문에 더욱 다르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봤던

건, 여행자로서 부닥뜨리게 될 세계와는 또 다른,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지만 엄청 다른 풍경을 보이는 세계였다.

같은 사우디라 해도 호텔 내에서 하늘 한번 바라보지 못하고 해가 뜨고 지고 하는 그런 조건에서 보이는 사우디는

당연히, 사우디가 외부에 보여줄 준비가 된 관광지-그게 실내 장소이건 실외 장소이건 간에-를 둘러보며 느끼는

사우디랑 다른 게 당연할 게다. 그러니 자칫 출장을 나가 된통 고생하고 온 나라에 대해서는 첫인상은 첫인상대로

구기고, 제대로 본 건 없지만 그렇다고 안 갔다고 할 수도 없게 되어 버리니, 선배들 이야기대로 그 나라와의

관계를 망치기 십상이겠다 납득이 간다.


그렇지만 최대한, (할 일은 하면서도) 여행자의 시각을 갖고 비즈니스의 세계 호텔을 둘러보고, 짬나는 시간마다

창밖을 둘러보려고 애쓰다 보니 또 나름의 쏠쏠한 재미가 있었던 것 같다.


같은 호텔 건물이라 해도, 여행자에게는 아늑한 휴식의 공간, 출장을 나온 직딩에게는 밤 두세시가 지나도록 일을

하는 작업의 공간. 이틀만에 옮겨야 하는 일정인지라 가방은 다 풀지도 않고 저렇게 쩍하니 입만 벌려놓았다.

아무리 호텔의 백열등이 그 불빛의 세례를 받은 것들을 고급스럽고 아늑하게 보이도록 마법을 걸어준다 해도,

이 정신사나운 풍경마저 그렇게 감싸기란 쉽지 않다. 생각보다 환시(幻視)란 건 조건이 까다로운지도.ㅋ

호텔방에 들어서자마자 한 일은 한 켠의 화장대로 쓰일법한 테이블 위를 싹 밀어내고는 노트북과 휴대용 프린터를

설치한 일이었다. 다행히도 사우디는 220볼트 돼지코 콘센트가 그대로 쓰인다. 카타르나 쿠웨이트는 별도의

호환 플러그가 필요하다.

잠시 호텔을 나서 저녁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쇼바가 꺼졌는지 잔뜩 출렁이는 차에서 운전자 뒷좌석서 겨우 찍은

사진에서는 불빛들이 팔분음표를 그리고 있다. 내가 이 사진을 찍으면서 남기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다른 중동

국가들처럼 사우디 역시 직업군에 상당히 강고한 위계가 있으며, 그 위계 내 '하층 직업'을 차지한 사람들은 대부분

서남아 등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란 거다. 예컨대 택시기사는 인도/파키스탄 사람,(인도사람은 또한 중동의 오일

머니를 실제로 운영하는 중간관리자 역할을 장악하고 있기도 하다) 청소부는 방글라데시 사람, 트럭운전수는

어느나라 사람, 이런 식인 게다. 택시기사란 직업은 우리나라랑 크게 다르지 않은 조건인지, 사납금을 일정액씩

매일 납부를 해야 하는데, 그걸 채우기도 벅찬 데다가 아저씨 삶을 꾸리기 위해서는 하루에 18시간씩 운전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푸념하는 아저씨. 그 얘길 들으면서 문득 불안해졌었다.

이 차가 이렇게 꿀렁이는 게 단지 아스팔트 바닥면의 문제라거나 차의 쇼바 문제가 아니라, 급출발 급제동을

반복하며 잠을 쫓아내는 아저씨의 발놀림에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행사장이 세팅된 Najd룸은 인테리어가 특이한 거 같다. 거울을 별 모양으로 천장이고 벽면이고 할 거

없이 붙여놓았고, 심지어 나즈드룸에 들어서는 입구에 있는 기둥조차 이런 식으로 별모양으로 세워

놓고는 유리로 감싸 버렸다. 이게 몇각별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랍권의 문화와 맥이 닿아 있는 걸까.

지배인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해놓고 까먹어 버렸으니, 여전히 답이 나오지 않은 궁금증.

상담회가 시작되고, 나는 현지 바이어들이 한명씩 제대로 스케줄에 맞춰 오고 있는지, 상담은 문제없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챙겨놓은 오렌지 주스 한잔을 홀짝대기도 쉽지 않을 만큼

정신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사우디의 바이어들이 살짝 원망스러우면서도, 성황을 이루고 있단 사실

자체가 뿌듯하기도 했다.

중동의 거상이나 거물정치가를 떠올릴 때 당연히 연상하게 되는 저 머릿수건. 평소 궁금했던 점은, 저 색깔이나

디자인, 혹은 착용방법이 본인의 신분이나 위치를 드러내는 걸까 하는 거였는데, 아니랜다. 빨간 격자무늬를 하던,

민무늬 하얀천을 하던, 띠를 두르던 안 두르던 아무 상관없이 그냥 패션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그런 머릿수건을

하고 하얀 긴팔소매 치마옷을 입고 온 사람들은 딱 보기에도 유한계층이랄까, 그런 느낌이다. 뛸 수도 없고 손을

놀려 일할 수도 없는 새하얀 옷을 입고 있는 이들은 마치 18세기 조선에서 유행했다던 넓은 소매 옷을 입고

유유자적하던 양반들을 떠올리게 한다. 생산하지 않는 계층으로서의 과시일까.


그치만 아랍권에 왔다는 실감을 느끼게 해주니, 양복차림새보다는 저런 차림새로 상담하러 온 사람들이 더 반가운
 
건 인지상정. 또 계속 보다보면 은근히 매력있는 옷이라고 느끼게 된다. 옷에서 흘러내리는 주름이라거나, 몸의

윤곽을 살짝살짝 드러내주는 그 부드러운 재질감이라거나.


참, 저 머릿수건을 벗겨내면 유대인들이 쓰고 있는 조그마한 모자같이 생긴 게 나온다. 유대인의 문화(혹은 종교),

아랍권의 문화(혹은 종교)가 기실 한끝 차이임을 드러내는 거 같아 유쾌한 발견이다.

오찬을 위해 이동한 곳 천장에서 대롱대는 특이한 형태의 조명. 이런식의 형용사가 허용된다면, 왠지

"아랍스럽다".

두바이를 떠난 비행기가 리야드에 도착할 무렵이 되자 창밖 풍경이 언뜻언뜻 보인다. 온통 누렇고도 붉은 기가

감도는 모래벌판인데, 네모난 건물들이 보이고 모래벽을 쌓아 자신의 앞마당을 구획지은 듯 하다. 왜 선사시대의

집터를 발굴해 놨다는 곳에서 저런 식으로 복원된 흙벽이 꼬불대며 이어지고 있는 거랑 비슷해 보인다.

모랫판 위에다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린 걸까. 그런 선사시대 집터 복원현장같은 공간들을 시원하게 가로지르며

검은색 아스팔트 도로가 놓여 있다. 잘 보면 사막의 모래가 야곰대며 그 검은색 아스팔트 도로의 가장자리부터

조금씩 침식해들어가고 있는게 보인다. 누런 사막과 검정 도로의 경계가 슬몃 섞여 들어가는 느낌.

도착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아마도 초원이 늘어나는 느낌이다. 정확히는 초원이 아니라 각 집에서 꾸미는 정원이나

그런 거지 싶다. 아랍에서 초록색을 평화의 색, 부의 색..이라고 한다는 건 이 황량한 사막에서 마주친 녹색 식물의

귀함을 생각하면 쉽사리 수긍할 수 있는 일이다. 저 가정들도 정원을 꾸미고 녹색 공간을 유지하는데 얼마나 많은

노고와 비용을 들이고 있을까. 가정이라기엔 너무 크지 싶기도 하지만, 왕족만 기십기백을 헤아린다는 이 독특한

왕국에서는 그런 왕족의 집 중 한 채인가부지 하고 마는 게다.

사우디에서는 관광비자를 내주지 않고 단지 사업용, 비즈니스용 비자만 내준다고 한다. 사전에 여러 복잡한 서류를

구비해서 사우디 비자를 받아내는 데 성공한 후에야 사우디를 향해 떠날 수 있는 셈이다. 여성의 경우에는 그 비자

받는 것부터 쉽지 않다고 하며, 사우디 현지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댄다. 여성은 사회생활도 못 하고,

운전대도 못 잡으니 집밖에 나서려면 꼭 운전수 혹은 가드 역할을 할 남자가 필요한 나라. 사우디아라비아왕국.


비행기가 착륙했다. 황사가 심한 봄날처럼 시계가 온통 뿌연 비행기창 너머로 보이는 공항 건물도 특이하다.

모랫바람을 피해 땅위에 바싹 웅크린 듯 한 모양이랄까. 비행기가 몇 대 보이지 않는데, 알고 보니 왕족 전용

공항은 따로 있다고 한다. 그 쪽이 훨씬 사용자 수도 많고 비행기 수도 많다나.

사우디 아라비아 항공의 꼬리 날개 부분. 야자수 아래 교차된 칼 두자루 그림은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상징같은

거다. 비행기 댓수가 적어서만은 아닌 거 같은데, 방금 거쳐온 두바이 공항에 비해서는 왠지 활기가 없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불과 며칠 사우디에 머물렀을 뿐이지만, 그 잔뜩 처지고 늘어지는 느낌이란.

사우디 출장용 비자는 단수 비자, 유효기간은 발급일부터 3개월. 그리고 "Not Permitted to Work"라는 글자가

선명히 박혀 있었다. 두바이를 떠난 비행기에서 내려 모랫빛 건물 리야드 공항 안으로 도착하니, 정말 휑하다.

그도 그럴 것이 관광객은 전혀 없고 단지 비즈니스를 목적으로 한 사람들이나 공항을 이용하겠지만, 사우디에서

사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몹시 쉽지 않기 때문일 거다. 요즘 세상에 흔치 않은 왕정 체제에, 기십명에 달하는

왕족과의 연줄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사우디의 유력자가 스폰서십-그것도 심히 불공정한-을 맺어주지 않으면

왕국 내에서 사업도 불가능한 나라랜다. 게다가 공무원을 거슬리면 입국도 못하고 쫓겨나는 수도 있다는 아주

고약한 공무원 우위의 나라.


입국심사대 앞에서 받은 입국카드. 마약소지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붉은 글씨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하나씩 칸을 채우다가 잠시 펜끝을 망설이게 만든 항목, 종교. 무슬림이라고 적어야 통과시켜 주는 건 아닐까.

아님 최소한 기독교 계통은 아니라고 적어야 통과시켜 주지 않을까. 무교라고 적으면 뭐라 그럴까. 왼갖

생각들이 소용돌이치다가, 그냥 비워버렸다. 나중에 들었지만 무슬림들은 믿는 종교가 없다는 것에 대해

이해를 쉽게 하지 못한다고 한다. 신은 분명히 있는데 왜 믿지를 못하냐는 식인 거 같다.

입국카드의 뒷면. 스폰서와 주소를 적는 칸이 있지만, 우리는 사우디에서 스폰서를 구해서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므로 비운 채 패스. 스폰서를 구하게 되면 보통 수익은 51:49로 배분하게 된단다. 사업자가

51이 아니라 스폰서가 51을 먹는 불공정한 룰. 게다가, 언제든지 스폰서는 사업자를 떼어내고 자신의

바지사장을 내려보내 본인의 사업으로 꿀꺽할 수 있다는 점도 위험 요소다.

무사히 공항을 벗어났다. 에어콘이 빵빵하던 공항문을 나서자마자 훅, 하고 뻗쳐오는 건조하고 텁텁한 열감.

오랜만에 느껴보는 중동의 열기였다. 흐르던 땀이 말라붙고 입술이 바싹 타들어가는 땡볕 아래서 잠시 해바라기.

공항을 벗어나 시가로 진입하는 길에 보이는 건물들은 모두 모랫빛이다. 화려한 색깔 따위는 찾아볼 수 없고

모랫빛 풍경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건 그나마 짙은 녹색의 야자수 가로수들. 하늘마저 파랗다기보다는 뿌연

하늘빛이다. 왠지 침침하고 모래가 서걱서걱해 보이는 살풍경.

도심으로 향할수록 차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이 차들, 운전이 과격하다. 양쪽 사이드미러를 다 깨뜨리고 앞뒤

범퍼가 성한 차를 찾기 힘든 이집트 차들만큼은 아니더라도, 깜빡이도 안 켜고 훌쩍 1차선에서 3차선으로 내려서는

차가 있는가 하면 맹렬히 앞차를 추격하고 기어코 끼어드는 차들로 가득한 도로. 과격한 운전솜씨는 유명하댄다.

도착한 곳은 메리어트 리야드 호텔. 오성급 특급호텔이라지만, 꽤나 오래된 건물이지 싶다. 역시 누런 모랫빛

건물이고, 건물 앞의 네온사인은 중간중간 허물어졌다. 겉으로 보기엔 별로 좋아보이지 않았지만, 일단 들어가서

돌아다니며 확인을 해본 후 평가를 내리기로 했다.

그래도 호텔 주변은 잔디밭도 조성되어 있고 이런저런 녹색 식물들이 잘 가꿔지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우디 호텔이나 공항 등 공공장소를 함부로 사진찍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고 했다. 게다가 이 호텔도 들어가려면

정문에서 자신의 짐과 몸 모두 금속탐지기를 통과해야 했다. 잠시 나갔다 들어올 때에도 꼭 금속탐지기를 통과해야

하는 불편함은 기실 사우디 뿐 아니라 이후 카타르, 쿠웨이트 모든 나라들이 다 그랬기 때문에 나중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지만, 처음에는 엄청 불편했다. 테러의 위협을 대비한 것이라고 하던데, 실제 이집트나 쿠웨이트에서

호텔을 겨냥한 테러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몇 년 전쯤  얼핏 들어본 것 같기도 하다.

출장을 떠나게 되었다. 사우디 아라비아, 카타르, 그리고 쿠웨이트의 삼개국.

내 머릿속의 세계지도를 펼쳐놓으라면 아마도..커다란 존재감을 과시하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내가 가본 프랑스,

터키, 이집트, 태국, 일본..그런 나라들에 밀려 구석탱이에 조그맣게 눌려있거나 혹은 아예 존재치 않았었을

나라들이다.


두 달여 정신없이 이런저런 일들과 함께 동시에 준비하던 출장이라, 삼개국 관련한 국가 자료를 만들고 어쩌고

했지만 막상 도착할 때까지도 이 나라들이 대체 어떤 나라들일지, 아무런 감이 없었다. 그저 어렸을 적 아버지가

일하시러 떠나셨던, 멀고먼 세계의 끝에나 있을 나라랄까, 난 한번도 밟을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그런 나라.


출장 떠나기 직전, 정신사납게 어질러져 있는 사무실 내 책상. 들고 가야 할 온갖 자료들, 서류 뭉치들과 남겨놓은

일들, 계산기나 잡다한 문구류들. 눈앞의 일들에 급급해 막상 떠나는 곳에 대한 아무런 '선입견'도 없이 출발했단

걸 깨달았던 것은, 리야드행 비행기가 인천공항을 떠나 두바이를 경유했던 그 쯔음이었을 게다.


이번 출장을 위해 산 29인치짜리 초대형 가방에 들어간 건 아마도 9할쯤이 가서 일하기 위한 준비였고, 내 짐은

그 나머지 1할 밖에 차지하지 않았다. 저 컵라면박스는 가서 선물로 주고 오거나, 출장길을 함께 하는 분들을 위해

챙겨가는 비상식량. 휴대용 프린터은 억지로 우겨넣고, 카메라가방은 메고 가기로 했다.

밤 11시 55분 비행기로 우선 두바이까지 10시간 15분여를 날아간 후, 6시간 정도 트랜짓 시간을 거쳐 다시 1시간

40여분을 날아 사우디 리야드에 도착하는 게 우선의 일정이었다. 밤 9시가 넘어 도착한 인천공항은 흔히 보던

낮의 풍경과는 너무 많이 달랐다. 출국심사대를 거치고 바로 나타난 면세품 찾는 곳에서는 하루일을 정리중이었다.

기다리는 사람도 하나 없었고, 백화점 면세점에서 미리 구매한 물건들을 쌓아두었을 뒷켠의 캐비넷들은 온통 텅텅

비어있었고, 그리고 짐을 옮기는 플라스틱 상자와 가방들을 모두 꺼내놓고 셔터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줄서서 면세품을 챙겨가던 그곳의 낯선 풍경.

평소에 즐비하게 늘어서있던 명품샵들과 화장품, 주류, 담배 등을 빼곡히 팔던 면세점들은 온통 닫았다. 한바퀴

둘러보며 보딩 시간을 기다리려던 계획이 틀어져서 다소 심드렁하던 차에 문득 눈에 띈 24시간 심야면세점 표지판.

뭐 볼 게 있을까 했지만, 이건 모...김, 김치, 인삼, 홍삼...전부 먹을거리 뿐이다. 밤비행기를 타면 면세점도 못

돌아보는구나 하고 실망해서 발걸음을 돌렸다. 참...밤비행기를 타기 전엔 시간 보내기도 쉽지 않구나, 했다.

그리고 10시간동안 영화도 보고 잠도 자고 하다가 도착한 두바이. 좌석 앞에 붙은 모니터안의 조그마한 비행기는

태양에 조금씩 노출되어 가는 지구면을 피해서 기를 쓰고 어둠 속으로 날고 있었다.


아랍에미레이트의 수도 아부다비보다 더 잘 알려진 아랍에미레이트 연방의 현대적 상업 도시, 두바이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현지 시간 새벽 5시 10분. 'Transfer' 사인을 따라 들어온 두바이 공항의 실내는 왕궁을 떠올리게 하는

인테리어가 눈에 띄었다. 별이 총총한, 시와 사막에서 봤었던 듯 한 밤하늘이 그려진 것도 그랬고.

아직 해가 뜨기 전, 한밤중이랄 시간인데도 공항이 무척이나 번잡스러웠다. 빼곡한 좌석마다 사람들이 그득히

앉아 있었고, 미처 자리를 못잡은 듯한 사람들은 아무데나 철푸덕 앉아서는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에스컬레이터로

어딘가를 향해 걷기도 한다. 인천공항에서 느꼈던 분위기와는 영 다르다. 왠지 10시간여의 비행을 한 노곤한

몸이었음에도, 사람들이 꽉 차있고 번잡스런 두바이 공항의 분위기에 젖어서인지 잠이 깨는 느낌이었다.


자신의 짐이 놓인 카트를 두고 잠을 청하기란 쉽지 않을 거다. 몸이 아무리 피곤해도 짐에 대한 안전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잠이 올리 만무한 것. 그래서 저렇게, 자신의 몸으로 카트를 고정시켜 두거나 아예 껴안고 자는 사람들.

사막무늬를 형상화한 것이겠지만, 누런 색 바탕에 갈색 물결이 반복되는 카펫 위에는 저런 야자수가 몇그루씩

군집해 있었다. 진짜일까 궁금해져서 나중에 만져봤는데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정교한 가짜여서 살짝 실망.

하긴 인천공항만큼 자연채광이 잘 되어 있지는 않아서 진짜 나무가 자라기에는 매우 열악한 조건이지 싶다.

지하의 면세점은 불야성을 이룬 채 사람들이 가득하다. 인천공항이, 그리고 한국이 동아시아의 허브가 되겠다고

했던 이야기의 온갖 변주가 가득한 한국이다. 금융의 허브, 물류의 허브...그렇지만 얼마전 신문에서 한 교수였던가

한마디 따꼼한 소리를 했던 게 생각난다. 허브라느니, 대문이라느니 식의 이미지 메이킹이나 지향은 피해야 한다,

직접 갈 수 있는 조건이 점차 갖춰질수록 굳이 대문을 지나고 허브를 거칠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게 내가 이해한

그의 포인트. 어쨌든 우리가 몇 년째 공염불로 외고만 있는 그 '허브'라는 거, 두바이 공항은 이미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는 거다. 그래서 이렇게 바글바글, 유럽 가는 길에 경유하고, 아프리카 가는 길에 경유하고, 아시아

가는 길에 경유하고. 불꺼진 공연장을 연상케 했던 인천공항과는 영 딴판이다. 물론, 인천공항이 이렇게 되기에는

여러 현실적 제약도 있을 것이고, 두바이랑 인천은 입지조건이나 주변 국가수라거나..여러 차이도 있을 게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인천이 왜 두바이가 못 되는가..하는 장탄식이 아니라, 한국에서 '허브'라느니 '대문'이라느니

떠드는 선전선동의 태생적 한계..그리고 보다 현실적이고 실현가능한 비전을 구상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굳이

그런 식의 되도않는 이미지를 갖다붙이려 해봐야 어울리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단 말이다.

천장 가까이에서 기둥을 감싸고 있는 저 금빛 구체, 그리고 오오라처럼 사방으로 뿜어져 올라가는 금빛 실오라기.

창밖으로는 조금씩 동이 터오는 듯, 물빛에 비행기 동체가 온통 잠겨있다.

마치 피난민들 같다. 이들은 이런 시간에 익숙한 듯 보인다. 이미 챙겨왔을 모포와 깔개를 한껏 활용해 온몸을

감싸고는 최대한 편한 자세를 취해 숙면하는 것. 천에 둘둘 감긴 미이라를 연상케 할 만큼 꽁꽁 싸매고 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의자 하나만을 활용한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의자를 몇개씩 차지한 채 누워버린 염치없는 사람도

보인다. 우리나라 시골 버스정류장 대합실 분위기랑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두바이 공항은 이들에게 그 정도로

손쉽고 가까운 정류장인지 모른다.

문득, 내가 앉아서 쉬고 있던 곳 바로 옆의 비상구 문을 억지로 열려던 한 아저씨가 사고를 치고 말았다. 뭘 어떻게

만졌는지 미친 듯이 울려대는 사이렌 소리. 그 아저씨는 총총히 자리를 떠버렸고, 나와 내 일행은 모처럼 얻은 자릴

포기하고 기약없는 다른 곳으로 옮기기 싫어 버티기로 했다. 금방 누군가 와서 조치를 취해주고 저 신경 거슬리는

소리를 가라앉혀주겠지, 하고.


30분, 공항에서 근무하는 듯한 제복입은 사람이 왔다. 문을 덜컹거려 보다가 버튼 몇개 눌러보다가 가버린다.

40분, 어이가 없어서 직원을 불러왔다. 문을 덜컹이고 두들겨보고는, 자기는 어쩔 수가 없고 경비원을 불러야

한다며 가버렸다. 45분, 직원들이 귀를 막고 지나간다. 아무도 조치를 취할 생각도 없는 듯, 손에 든 무전기는

장식품인양 하다. 50분, 경비원을 불러왔지만, 자신은 이 구역담당자가 아니랜다. 지칠 줄 모르고 울려대는 사이렌.

일행 중 한명은 휴지로 귀를 막았고, 다른 한명은 비행기에서 쓰던 귀마개를 틀어박았다.

사이렌이 터진지 1시간 반이 지났고, 우리는 다른 곳으로 옮길까 몇번 돌아봤으나 좀처럼 빈자리가 없다. 아무도

와서 소리를 꺼줄 생각을 안 했고, 두바이 공항 한구석에서부터 요란하게 터진 소리는 이미 주변 사람들의 잠을

완전히 깨워버린지 오래였다. 2시간쯤..우린 결국 이 사이렌이 다시 꺼지는 걸 못 보고 리야드행 비행기 티켓팅을

위해 자리를 떴다. 참 지독한 두바이 공항의 직원들. 손을 대는 순간 자신의 책임이 되는 거고, 그걸 싫어하기 때문에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비단 공항직원의 문제가 아니라 중동의 문화가 그렇다고 했다.

티켓팅을 마친 후 살짝 들렀던 두바이 공항의 면세점, 온통 초콜렛, 담배, 그리고 치약같은 자잘한 소비재였다.

중동에서 일하는 인도, 파키스탄, 혹은 기타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귀국하면서 장을 봐갖고 간다고 한다. 대부분

형편이 넉넉치 않은 상황인지라 면세점이 일종의 이마트같은 대형마트 느낌으로 운영되는 건 당연할 거다.

그나저나, 중동에도 가을이면 단풍이 들까. 저 인테리어 디자인이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한국의 백화점같은 데서

볼법한 빨간 단풍 그림.

두바이 공항의 스타벅스. 아랍어로 씌여진 메뉴판이 신기하기도 하고, 한국과는 살짝 다른 휘핑크림의 맛이라거나

메뉴가 새롭기도 했다. 진열장에 조각케잌을 진열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솔찮이 오래 걸린다. 보고 있자니, 케잌

몇개 밀어넣고는 옆사람과 잡담하고, 잠시 신문도 보고, 손님도 맞고. 그리고는 또 몇개 밀어넣고는 딴짓하고.

계속 보면 왠지 깝깝한 기분이 복받칠 거 같아서 그냥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로 했다.

기념품으로 이런 걸 사와도 괜찮겠다 싶을 만큼 특이하고 이뿐 텀블러들. 아랍어로 뭔가가 씌어져 있기도 하고,

문양들 역시 아랍권 문화의 냄새가 풀풀 풍긴다. 스타벅스는 중동에도 성공적으로 정착한 것일까. 가격대를 보면

한국보다 살짝 싸단 느낌이다. 역시, 우리나라 커피값은 세계 최고라는..

아랍에미레이트 항공(EK)을 타면 하나씩 좌석에 비치되어 있는 스티커. 좌석에 자신의 필요대로 알아서 붙이라는

세 가지 종류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건들지 마셈, 밥줄때 깨우셈, 그리고 면세품 팔 때 깨우셈..이라는 세가지.

그림도 귀엽지만 저 꼬불꼬불한 아랍어는 왠지 모를 매력이 있다. 예전에 이집트 여행할 때 아랍어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걸 직접 보고 문화적 충격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온통 손날부분을 시꺼멓게 만들어가며, 글자를

뭉개가며 연필로 꼭꼭 눌러쓰던 기차역 매표원.

그 스티커의 뒷면에는 이렇게 자세한 사용설명서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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