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학전그린소극장, "빨래"를 보았다. '빨래는 뮤지컬입니다'라는 카피가 앞세웠듯, 대학로하면 대개 연극만

오른다 생각하기 쉽지만 '빨래'는 뮤지컬이다. 이렇게 즐겁게 웃으며 노래를 부르고 팔짝팔짝 뛰어다니는.

공연 중에는 물론 사진을 찍거나 휴대폰을 꺼내들 수 없다. 공연 시작전, 가실 줄 모르는 맹렬한 꽃샘추위에

일찍 도착한 공연장 안의 무대를 이리저리 구경하며 사진을 살짝. 교회와 청담보살, 맥반석오징어와 국제전화카드.

뮤지컬 제목에 어울리게 무대 뒷편은 온통 조그맣게 나부끼는 빨래들이 차지했고, 앞줄에도 저렇게 속옷들과

작은 옷가지들이 빨랫줄에 널렸다. 대학로의 여느 공연장들이 그렇듯 바로 무대 코앞까지 치고 나온 객석.


무대를 곰곰이 살피다보면 자그마한 곳 하나, 눈길이 채 닿지 않을 곳 하나까지 디테일하게 신경쓴 흔적을 찾게 된다.

예컨대 이런 거. '미러 유~' 무대의 한 구석에 있는, 허리를 굽히고서야 들고 날 것 같은 조그마한 슈퍼 문짝에 쓰인

글자, 이걸 적어넣은 사람은 아마도 무대에 자기나 눈밝은 사람 몇몇이나 발견할 비밀을 새기는 기분이지 않았을까.

인터미션 10분을 포함한 총 공연시간 150분, 어떤 사람은 예기치 않게 눈물을 펑펑 흘렸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생각보다는 슬프지 않았다고도 하지만, 150분의 시간이 꽤나 밀도있게 휙 지나버린 건 확실하다. 여주인공 나영 역을

맡았던 조헌정, 남주인공 솔롱고 역을 맡았던 정문성이 한판 뮤지컬을 마치고 서로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넙죽, 인사를 마치고 일어선 나영이의 머리가 온통 하늘로 치솟았다. 강원도 처자가 서울에 올라와 오년동안 숱한

어려움과 신산스러움을 견뎌내며, 아니 어쩔 수 없으니 그저 배겨내며 잘도 참았다. 그녀의 노래 중 가장 맘에 꽂혔던

가사는, "난 빨래를 하면서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려요,

잘 다려진 내일을 걸치고 오늘을 살아요"
라던 부분.

그리고 1막이 끝나기 직전에 나왔던 노래, '비오는 날이면'에 맞추어서 펼쳐졌던 군무. 고작 한사람 어깨까지만

가릴 수 있을 우산을 쓴 채 사방을 뛰어다니는 사람들, 그리고 후드티만 올려쓴 채 멍하니 서있는 몽골청년 솔롱고.

우산 하나에 의지한 채 바삐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외롭고 연약해보였지만 한가운데 동그마니 멈춰선 그의

모습은 그자체로 어찌나 저릿저릿하던지. 누군가가 바쁘고 힘든 걸음을 멈춰 그에게 우산 한곁을 내주기를, 그래서

그와 함께 외로움을 덜어버릴 수 있기를 바라게 될 만큼.

조헌정-정문성의 인사. 두 사람 아주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으셔. 그러고 보니 검색중에 알게 된 사실.

내가 좋아하는 홍지킬, 홍광호도 '빨래'의 솔롱고 역을 이전에 맡았었다는. 그의 노래는 어땠을까 다시 궁금해서 검색질.


홍광호가 부른 '참 예뻐요'. 참 예쁘게 부르는구나. "참 예뻐요~ 내맘 가져간 사람~"

관객들에게 인사하던 마지막 장면. 비누방울이 퐁퐁 날리며 '빨래'의 이미지를 극대화하는가 싶더니 모두가 활짝

웃으며 우리를 다시 현실로 돌려보내 버렸다. 이곳은 아직, "빨래를 하면서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려야 하는" 그런 세상. 그렇다 해도 잠시나마 그들의 응축된 잘 짜인 이야기에 빠져들며

눈물 한방울이라도 흘리고 마음을 빨고 털고 널어두는 느낌을 가졌으니 그걸로 충분하지 싶다.




#1. 암기 강요

부대에 배치받고 내무실이 정해지자마자, 바로 위 고참은 '몇월 군번'인지 서열에 따라 왼쪽 상단부터

오른쪽 하단으로 내려가는 군홧장 앞으로 데려갔었다. 몇 월에 입대했는지를 외우고, 이름을 외우고,

보직이 뭔지를 외우고, 30분을 줄 테니 전부 외우라고 했었다. 그게 편한 군생활을 시작하는 길이라고.

당연히 한번에 외우지는 못했고 그때마다 얼빵하다느니, 그것밖에 안 되냐느니 따위 비아냥과 갈굼을

들어야 했었다. 필사적으로 외우고 났더니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다른 내무실도 전부 외워야했다.


#2. 각잡고 앉아있기

내무실 맨 끄트머리에 더블백을 풀고는 이내 자세를 잡고 앉았다. 허리를 바싹 세우고 책상 다리를

하곤 두 팔을 빳빳이 펴서 양쪽 무릎 위에 올려두는 자세, 자연스레 양 어깨가 귓볼까지 와닿는

바싹 주눅든 채 굳어버린 모양새가 나오는 거다. 그야말로 신병의 기본자세, 갈기거나 할 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다닥다닥 붙어서 그 자세로 앉아있다가 옆에서 발차기라도 날아오면 속절없이

우르르 넘어졌다가 후다닥 다시 모양새를 잡아야 했다.


#3. 코골이.

원래 코를 안 고는데, 노란 따까리를 붙이고 긴장한 채 뛰어다니는 신병 생활인지라 밤에 조금 코를

골았나보다. 슬리퍼가 날아오고 군화가 날아오더니, 씨발씨발거리며 내 자리로 와서 따귀를 철썩

갈기고 다시 잠들던 말년 병장이 있었다. 담날부터 베개를 안 베거나 엎드려 자거나 심지어 휴지를

돌돌 말아 코피날 때처럼 양쪽에 박아두기도 했지만 별무소용, 일주일 후인가 그는 한밤중에 내무실

전체 인원을 깨우더니 전부 머리박게 시키며 소리를 쳤다. "신병을 얼마나 풀어놨길래 잘 때도

긴장 하나 안하고 코를 고냐!!" 내게 하이바를 씌우고는 소총으로 머리를 때리고 발로 걷어차다가,

자기부터 차례차례 하나씩 잠이 든 걸 확인하고 자도록 했었다. 이후에도 방독면을 쓰고 자기도 하고,

군대가면 철든다는 건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코고는 습관은 확실히 고쳤으니.


#4. 뻗치기 등 직접적인 구타행위

내무실 관물함과 벽 사이에 약간의 틈이 있었는데, 일과 이후 취침 점호 때까지 거기에 들어가 있으란

것도 하나의 처벌이었다. 이유는 다양했지만 대체로 그것들은 '요새 군기가 빠졌어'란 말로 축약될

그런 애매모호한 것들이었다. 벽을 바라본 채 똑바로 서서 두세시간씩 버티고 있는 건 눈앞이 핑핑

돌고 귀가 멍멍해지는 일이었지만, 귀로 조금씩 흘러들어오는 티비소리에 정신을 집중해서 버티곤 했다.

그 밖에 너무도 흔해 오히려 문제로 느껴지지 않는 것들, 식당 뒤로 집합시켜서는 머리박기, 엎드려뻗쳐,

쪼인트까기, 따귀 때리고 발로 밟는 따위. 사실 초등학교 때 보이스카웃 단장을 겸했던 선생님에게부터

단련된 것들이니 새삼 군대 구타가혹행위라 하기도 우스울지 모르겠지만.


#5. 빨래해주기, 말리고 개어서 관물함에 넣어주기

병장이 되면 세탁기와 세제를 쓸 수 있었고, 조금 잘 보이면 상병 5호봉이 되고도 쓸 수 있는 게 내가

이병 때의 룰이었던 거다. 착한 고참은 자신의 빨래를 해주는 대신 내 빨래도 함께 슬쩍 돌릴 수 있게

배려를 해주었고, 나쁜 고참은 그냥 자기 빨래만 세탁기 돌리도록 했었다. 이후 빨랫줄에 널거나

건조기를 돌리고 찾아오고 각잡아 개어서 각자의 관물함에 넣어주는 건 막내들의 몫.


#6. 사제 용품 금지

상병이 되면 샴푸, 린스를 쓸 수 있었고, 병장이 되면 폼클렌징과 바디워시를 쓸 수 있었다. 그 전까진

초록빛 비누 한장으로 머리도 감고 세수도 하고 빨래도 하고. 어느 내무실에서 이병이 샴푸, 린스를

휴가다녀오며 들고 왔을 때 전 내무실장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아랫것들 군기 제대로 잡자는 방침을 천명하고 이후 강고한 구타와 정신교육으로 '밥대가리 없는

것들의 정신나간 행위'를 박멸했던 적이 있었던 거다.


#7. 삐엑스, 독서실, 헬스장, 피씨방 등 출입금지

보통 피엑스라 하는 매점, 공군은 삐엑스라 하는데 거긴 상병 이상만 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독서실과 헬스장은 병장 이후, 피씨 세대가 놓인 피씨방은 사실상 유명무실했으니 논외로 치더라도

책 한권 보거나 아령 하나 들어볼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군기빠진 생각이자 건방지기 짝이없는

불순한 생각이라고 모두가 생각했던 거다.




별로 오랜 이야기는 아니다. 2002년부터 2004년 8월, 2년 5개월 1주일동안 공군으로 복무했던 시절의

앞부분 이야기니까. 2002년 한국의 월드컵 경기 직전마다 전 내무실을 돌며 '대한민국~ 짝짝짝' 응원을

홀로 목청껏 외치고서야 경기를 볼 수 있었던 때쯤의 이야기니까. 새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요새

'숨소리가 크다'느니 따위의 이유로 벌어진다는 전의경들 사이의 구타가혹행위가 그야말로 '새삼'

이슈가 되고 있는 게 웃겨서다. 여태까지 그런 게 없었던 것처럼 새삼 부각시키는 이유는 뭐지, 그리고

전의경제도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체 군대의 문제임은 왜 끝내 외면하려 드는 거지 싶어서.


누구나 그렇듯, 나도 이러저러한 피해자였던 동시에 누군가에게 가해자이기도 했다. 아무리 내가

'밥이 차고' '힘이 생긴' 후에 평소 생각하던대로 각종 금지를 풀고 암기니 뭐니 하지 말도록 했지만

그 이전에 어느 순간에는 밑의 후임을 갈궈야 했던 거다. 위에서부터 차곡차곡 내려오는 갈굼 쓰나미에

휩쓸렸다고 자위하기에는, 내 머리와 손과 몸이 기억하고 있는 거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렸는지

어쨌는지, 어느새 나도 조금은 군대물이 들었는지 어쨌는지, 누군가의 머리통을 쥐어박고 욕설을

내뱉는 그 기분은 처음보다는 두번째가 덤덤했고, 두번째보다 세번째가 덤덤해졌었다.


반성부터 해야 할 일이다. 피해자로만 자처하기에는, 그 군대라는 시스템 하에서 시간이 흘러가며

자발적이건 비자발적이건 맡겨졌던 악역과 가해자 역할의 시간 역시 짧지 않았다. 좀더 철저했더라면

자신이 맞는 것을 거부하는 만큼이나 자신이 때리는 상황에 처하는 것 역시 거부했어야 했다. 고작

이년여의 시간만 지나면 끝나버릴 병정놀이였는데 너무 진지하게 몰입해버렸던 건지도 모른다. 좀더

폭력에 민감한 채 유지했어야 했다.


그렇게 제대를 하고 두번 다시 내가 원치 않는 상황에서 원치 않는 역할을 맡지는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생각보다 바깥 사회와 군대 내의 사회는 비슷하게 굴러가고 있었다. 요새는 점점 더 비슷해진다는

생각마저 든다. 나이로 밀어붙이는 꼰대들은 여전하고, 한발 떨어져 생각하면 우습지도 않은 권력과

위세를 부리며 못살게 구는 '가해자'들의 유치함과 폭력성도 비슷하다. 게다가 웬만한 폭력은 전혀

폭력으로 인식하지도 못하는 불감증이 온사회에 만연해 버린 느낌도 여전하다. 지금의 치유불가능한

꼰대들이 전부 사라지고 나면 해결될까.


더욱 무서운 사실 하나, 나름대로 부대 내에서 입지를 쥐고 난 이후 모든 부당한 차별과 불평등한

제한들을 풀어버렸지만 오래 가지 못했던 거 같다. 군대란 원래 그런 조직이며, 군대에서 배워야 할 건

그런 인내심과 '사회생활'이라는 식의 생각, 그 이면에 자신이 누리지 못했던 것에 대한 질시나

배아픔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제대하고 난 이후 다시 원상으로 복귀했다고 들었다. 길고

긴 군생활을 재밌게 하려면 처음부터 다 풀어주면 안 된다고 했다던가. 비슷하지 않은가. 우리나라에

박정희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나 복지확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와 비교해서.


군대에서 이루어지는 잘못된 '사회화', 그게 모범답안인 양 사회 전체에 횡행하며 힘을 발휘하고

있는 이상 군대를 이야기하는 건 사회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는 거 같다. 군대 내의

구타가혹행위의 가해자들이 아무런 가책이나 반성없이 똑같은 마인드를 가진 채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리라는 (결코 근거없지 않은) 상상, 혹은 자신은 그저 군대의 선한 피해자였을 뿐이라고 맘대로

기억을 재구성하듯 지금도 숨죽인 채 사회 시류에 휩쓸리는 모습을 정당화하고 있진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노라면, 많이 우울해지는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 배우고 있다.



오대수(최민식)에게 이우진(유지태)이 말한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니들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오대수가 찾아간 최면술사는 그의 자아를 양분하여 그사실을 아는 자아(악한 자신)를 제거해 버리는 시술을

해 놓지만, 성공과 실패를 장담할 수 없다는 여운을 남긴 것. 문득 정신을 차린 대수 위로 눈이 한없이 쏟아지고..

미도(강혜정)가 대수에게 와서 대사. "아저씨..사랑해요.."


대수의 손이 움찔 떨고는 미도의 등저리를 감싸안으며..그 우는듯 웃는듯한, 처연하면서도 결연한 표정이 클로접.

최면이 성공한 걸까. 그래서 그저 그 인상적인 표정은 '복수심밖에 남지 않았다던' 황량한 과거를 매듭짓고

새로운 사람, 사랑을 얻은 감개무량함인 걸까. 혹 최면이 실패로 돌아간 게 아닌지. 이미 누차 대수가 인위적인

조작을 깨부수고 온전히 자각해나갔듯이 말이지.


우진이 누이와의 일을 겪으며 그 현실을 자신이 소화해낼 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강렬한 증오를 대수에게

투사하며 사건을 왜곡했던 것처럼..'문명화된' 인류의 성금기를 깬다는 일은 아마도 쉽게 묻어버리거나 긍정해

버릴만한 소사는 아닌 거다. 그걸 단지 시술자의 실력, 컨디션. 구상력이랄까, 그런 것에 우연처럼 맡긴 채

지워버릴 수 있단 건 너무 무책임하지 않나..세탁소에 빨래 맡기는 게 아니란 말이다.


해서..결국 최면에의 기댐은 현실을 좀 쉽게 돌파하려는 대수의 꼼수였던 게 아닐까..혹은 조금이라도 꿈인 양

위로받고 싶었던 대수의 painkiller같은 건 아니었을까. 현실이란 건, 그게 설사 사촌과 관계를 맺던 딸자식과

관계를 맺건 결국은 자신이 어떻게든 질겅이며 소화를 시켜나가야 하는 걸 테니까. 다만, 그 와중에 제멋대로

현실을 꾸깃꾸깃 소화하기 편하게 해석하다가 우진처럼 편법을 쓰지도 말 일. 무조건 타인에게 내처 전가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니.


그렇게 생각을 고쳐먹은 걸까. 미도라는 여자를 껴안음으로서 자신이 아프게 깨닫고 있는 그 '현실'을 인정하면서..

대수는 그렇게, 우는듯 웃는듯..처연하지만 결연한 표정을 지은게 아닐지.


사운드트랙이 참 맛깔스럽게 배치가 되었지 싶다. 효과적인 음향과 변주를 통한 분위기 일신. 2시간의 러닝타임을
 
팽팽히 유지하는 극적인 탄탄함과 설득력있는 반전들도 그렇거니와, 하드코어틱한 장면들이 극에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고 외려 받침이 되는 적절한 연기와 안배를 통해 잘 '버무려진 듯'. 멋진 영화였어.



(200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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