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에서부터 한 사십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 리펄스 베이. 중간에 인도가 없이 차도와 중첩되는 구간이 있어 조금

 

위험해 보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걸어서 갈 만 한거 같다. 어느순간 눈앞에 펼쳐진 리펄스 베이의 전경.

 

원래 리펄스베이는 20세기초부터 상류층의 별장들이 있는 걸로 유명했고, 지금 역시 홍콩 제일의 부촌이라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이곳의 유명한 리펄스 베이 해수욕장이 사실 해외에서 수입한 모래로 조성한 인공의

 

해변이라는 점, 500여미터 정도 이어지는 완만한 곡선의 백사장이 전부 인공이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역시 해수욕장 배후에는 고층의 개성있는 건물들이 줄지어 있다. 마치 요새의 해운대 신시가지를 보는 느낌이랄까.

 

 

온갖 것들이 금지되어 있는 해안가. 하나하나 이미지가 꽤나  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틴하우 상 도교사원. 여기는 홍콩의 유력인사들이 기증한 불상과 신상들이 넘쳐나는데, 그중에서도

 

살펴볼 만한 건 바로 월하노인상이다. '그들이 사는 세상'에 나왔던 인연끼리의 붉은실이 매어있다는 설화가

 

바로 월하노인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

 

 

 

해안으로 길게 내밀어진 부두시설은 바다의 높이에 따라서 저렇게 철썩거리며 수면 아래로 잠기기도 하고,

 

아마도 좀더 낮시간에는 수면위로 불쑥 올라오기도 할 것.

 

 

 

 

 

Chijmes, 차임스라고 읽어야 하지만 자신있게 발음하기 쉽지 않은 이 곳은 1980년대까지 수녀님들이 고아들을 돕기 위해 이용한

 

일종의 보육시설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웨딩 촬영이 곳곳에서 성행하는 데이트 코스이자 이름난 레스토랑들이 집결한 곳.

 

 

아르메니안 교회 정원, 시내 한 가운데에 있지만 굉장히 조용하고 시내의 소음에서 뚝 떨어진 느낌의 하얗고 자그마한 교회

 

주변으로는 이렇게 십자가로 고행하는 예수를 담은 십자가의 길이 3D로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싱가포르의 중앙 소방서. 건물이 아기자기 귀엽게 생긴 게 소방서의 급박하거나 긴장감 넘칠 업무와는 영 딴판.

 

멀라이언 파크에서 싱가포르의 서쪽으로. 남쪽 해안으로는 온통 술집과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군락을 이루고, 뒤에는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 고층빌딩들이 한무더기.

 

무더기째 뭉쳐져 있던 건물들로 한발 재겨딛으면 이렇게 활짝 열리는 미지의 뒷골목.  

 

마리나베이 샌즈 쇼핑몰 중앙에서 수시때때로 기획되어 있는 듯한 라이브 공연. 나름 시스루를 입고 나오셨다.

 

 

그리고 헬릭스 브리지. 싱가포르의 다민족, 다인종성을 상징하듯 DNA 나선구조가 거침없이 꽈배기로 용틀임하는 모습을 담았다나.

 

 

물론 다리가 온통 불밝히는 밤도 좋지만 낮에도 걷기 괜찮은 다리,

 

다리가 잇고 있는 마리나 베이 샌즈 쪽과 싱가포르 플라이어 쪽의 풍경도 좋다.

 

 

 

다리 중간중간에 불쑥 튀어나와 있는 전망대. 저기에서 마리나 베이 저끄트머리의 멀라이온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두리안, 이라는 별칭의 에스플러네이드. 일종의 복합 문화공간으로 미술 전시나 공연이 이어진다고 한다.

 

잠시 둘러보려 들어갔는데 싱가포르 전통악기 공연이 있다길래 삼십여분 무료 와이파이를 즐기다가 연주를 감상.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할 때더라, 택시를 탔더니 온통 불상과 힌두교 신들, 혹은 무조건 복을 빌어주는 각종 잡신들, 심지어

 

손님을 빌어주는 일본 고양이인형까지 모아둔 정신사나운 모양새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독일 맥주가 굉장굉장굉장히 맛있었던 어느 바. 특히나 더웠던 날 점심부터 맥주를 대차게 마셔줬다.

 

이건 센토사, 동남아 최초의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있는 것으로 유명한 싱가포르 남쪽의 리조트 월드 공간이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이미 로스앤젤레스에서 오리지널로 경험했으니 패스, 대신 택한 건 실내 스카이다이빙 체험.

 

 

 

경주 불국사에 이어 찾은 곳은 석굴암,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석굴암 가는 길은 그야말로 지그재그. 지리산 대청봉을 보고 달리는

 

와일드한 드라이브 코스에 비길만한 커브와 경사로가 연속된 구간이었다. 불국사에서 걸어 올라갈 수도 있다는데 왕복 2시간쯤.

 

전혀 기억에 없던-하긴 관광버스로는 이런 짧은 터널을 지나는지 전혀 알 방법이 없었겠지만-터널이랄까 문을 지나다 말고

 

잠시 차를 세웠다. 아마도 석굴암의 내부 한쪽 면에서 봤거나 혹은 국사책 어딘가에서 봤던 기억이 어렴풋한 나한이 서 있는

 

모습을 그대로 넘어갈 수는 없었달까.

 

석굴암 주차장에 도착, 커브가 심한 이차선 도로를 따라 가파른 산을 꽤나 올라왔다 싶더니 역시나 전망이 탁 트였다.

 

 

구름이 조금 끼어있는 날씨가 아니라 완전 청명하고 파란 하늘이 반짝거리는 날씨였다면 저 아래 경주 시내가 좀더 잘 보였을 듯.

 

석굴암이 주차장 바로 앞에 있을 거라고, 전혀 근거는 없지만 그냥 막연히 믿고 있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여기서부터 또 한참

 

산길을 걷고 오르고 해야 도착하는 게 바로 석굴암. 여기는 그저 주차를 하고 티켓을 구매하는 입구에 불과하더라는.

 

 

알록달록한 연등이 양쪽에서 길을 안내해 주고, 산등성이의 짙은 그늘을 따라 걷기엔 꽤나 추워서 쉽지 않다고 느낄만큼

 

깊은 산의 서늘한 냉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런 길을 따라 이십분여 걸었을까.

 

불쑥 나타난 건물 한 채. 이게 석굴암이었던가 살짝 당황하고 있는데.

 

불쑥 나타난 저 위의 자그마한 또다른 건물 한 채. 이게 바로 석굴암 되시겠다.

 

원래는 석굴암의 외벽이 저렇게 시멘트로 발라져 있던 것이 아니라는 말도 있고 진짜인지 모르겠지만 본존불의 이마에는

 

거대한 보석이 박혀서 때에 맞춰서 광선을 석굴암 내부로 찬연하게 반사시켰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여하간, 내부는 촬영금지.

 

그런데 정말, 석굴암의 본존불상은 굉장했다. 비록 유리벽으로 막힌 채 몇 미터 거리를 두고 바라봐야 했지만, 인상은 압도적이었다.

 

소소한 세상사, 갑남을녀의 개인적인 고민은 비집고 들어가기도 민망할 만큼 중대하고도 근본적인 것을 마주하고 있는 표정이랄까.

 

최소한 일국의, 아니 인류의 차원에서 대두된 문제들, 나타날 문제들에 대한 깊고도 고귀한 명상과 성찰을 그치지 않는,

 

그야말로 신적인 지혜와 깨달음이 가득한 자의 표정과 눈빛이었다. 굉장히 우아하고 존엄한 분위기, 이런 표정과 분위기를 가진

 

자를 뭐라고 부르던, 당신과 나는 절대 동등하지 않으며 그 지혜와 깊이에 있어 난 하잘것 없는 미물이노라고 고백하고야 말 듯한.

 

이런 분위기의 부처를 보는 건 처음이라고 할 만큼, 마음을 뒤흔들어버렸다. 분명히 예전에도 이걸 봤었을 텐데. 비록 어리고

 

아무것도 몰랐을 때라지만, 그 때 전혀 이런 분위기를 감지하지 못한 것도, 그리고 지금 이런 분위기와 표정에 충격을 받은 것도

 

모두 놀라울 따름이다. 이건 전혀 다른 의미의 아름다움이자 극한에 달한 신성함..에 가깝지 않을까.

 

 

 

조금은 멍해진 채로, 저런 부처에게 세사 잡일을 고하고 일신의 복을 기원하는 것은 굉장히 무례하달까 격에 맞지 않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돌아왔다. 석굴암의 부처는 사람들이 복받고 행복하게 사는데 관심을 두는 게 아니라,

 

인류 모두의 정신적 고양과 열반이랄까, 그런 것들에 주의를 온통 쏟고 있는 거다. 자애로운 미소가 아니라

 

살짝 경직되고 진중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하는 건 어디까지나 내 상상일 뿐이지만.

 

 

 

그리고 석굴암에서 내려와 다시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에 담은 몇몇 풍경들. 비록 경주시내에서 불국사까지 가는 길이

 

생각보다 가깝진 않고, 또 불국사에서 석굴암까지 가는 길 역시 그리 쉽거나 가깝지 않지만, 석굴암의 부처님을 만나는 건

 

어쩌면 세속화된 부처들, 인간화된 신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굉장히 드물고 경이로운 순간으로 남을지 모른다. 내가 그랬듯.

 

 

 

 

경주 남산에 오르는 길, 삼릉을 거쳐 지나는 골짜기에서 제일 먼저 마주치는 건 다소 묘한 손모양의 목잘린 좌불.

 

석조여래좌상, 삼릉어귀의 길로부터 출발해 남산에 오르는 길은 예전부터 절도 많고 불상도 많았다나.

 

무려 11개소의 절터와 15구의 불상이 산재한데다가 금오산 정상까지 오르는 길이라 제일 즐겨찾는 등산로란다.

 

 

어느새 싱그러운 녹빛이 솔잎바늘 끝까지 충만한 소나무들. 남녘에는 봄이 왔다.

 

바위 위에 새겨진 관세음보살상. 천수관음의 자비를 바라는 사람들의 열망은 천년을 이어지고.

 

관세음보살이 굽어보는 경주 남산의 앞마당. 하늘이 좀만 더 파랗게 맑았음 좋았을 텐데 아쉽다.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석가삼존과 아미타삼존이 새겨져 계시다는데, 머리에 둥그렇게 보름달같은 휘광이 비치는

 

부처님 세분이 계시니 뭔가 더욱더 강력해 보인달까. 이렇게 선으로만 새겨진 부처상은 남산에선 드문 거라고 한다.

 

하얗고 검은 바위의 육중한 옆구리에 명료하지만 가느다란 선으로 한붓그리기하듯 그려놓은 부처님들을

 

눈으로 따르다 보면 중간에 살짝 선을 놓치기도 하고 어지러워지기도 하고. 구도의 길이 멀고도 험하다는 은유일 수도.ㅋ

 

그리고 석가여래좌상. 부분부분 깨어져나간 부분도 보이고 뒤의 휘광도 다시 조각붙이기를 한 거 같지만

 

엄숙하고 우아한 표정이나 진중한 앉은 자세가 여전히 당당하다.

 

 

부처님한테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 요모조모 얼굴과 몸의 굴곡을 살펴보려는데, 부처님 왠지 우셨던 거 같다.

 

하긴 요새 세상이 위에서 내려다보기에 참 슬픈 일 투성이들일 테니. 놀랄 일은 아니지만 눈물자국이 선연하다.

 

 

남산 정상까지는 안 가고 내려오는 길, 색색의 등산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그다지 좁지 않은 길을 꽉 채워서

 

남산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좌우로 허리를 굽힌 채 소나무 터널을 만들어주고 있던 남산의 노송들.

 

 

그리고 남산 아랫자락에 그리 오래진 않아보이는 망월사라는 절에 잠깐 인사드리러 들어가는 길.

 

나른하고 촉촉한 봄볕이 내리쬐이는 절 앞마당에는 벤치도 늘어서 있고, 가지런히 누워 몸을 달구는 기왓장들도 쪼르르.

 

댓돌 위에는 하얀 고무신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였다.

 

 

대웅전 뒤로 푸릇푸릇한 기운이 마구 돋아나는 남산을 배경으로 크고 작게 솟아오른 불상과 불탑들.

 

 

 

 

태국 꼬싸멧의 동부 해안가, 핫 싸이 깨우(보석모래 해변)에서 아오 힌콕(돌 언덕 해변), 그리고 아오 파이(대나무 해변)이란

 

이름으로 이어지는 그곳에서 늘어지게 휴식을 취하기로 하고 우선 아침 겸 점심. 탁한 색깔로 바래버린 먼지투성이 팬이

 

머리 위에서 빙빙 돌아가는 길가의 음식점에서 간단한 식사로 토스트, 햄과 베이컨 등.

 

텔레비전이 있는 음식점을 들어갈 때마다 꼭 한번씩은 한국 드라마나 한국 배우를 봤던 거 같다.

 

여전히 한국의 촌에 드문드문 남아있는 시골 상회같은 느낌으로 번다한 음식점의 카운터.

 

그리고 꼬싸멧 동부해안의 서로 다닥다닥 붙어있어 쉽게 구분하기 쉽지 않은 어느 해안으로 들어가는 길목.

 

아마도 아오 힌 콕과 아오 파이의 사이쯤이랄까, 사실 해변의 이름이 중요하진 않다.

 

이렇게 하얗고 보드랍고 고운, 밀가루같다는 표현이 딱 어울릴법한 모래사장에서 일광욕을 하고 쉴 수 있다면.

 

뜨거운 햇살을 막아줄 천을 파는 아저씨가 온몸을 칭칭 가리고서 모래사장을 산책중이셨고.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파라솔과 긴의자들은 따끈하게 덥혀지는 중이었으며.

 

비로소 자리를 잡고 돌아본 주변 풍경은 정말이지..

 

구아바니 망고니 코코넛을 바구니에 담고 팔러다니시는 행상아주머니도 적절한 타이밍에 찾아주시고.

 

 

어느 중년의 부부는 양산을 하나씩 받쳐들고서, 한손엔 신발을 덜렁거리면서 나란히 백사장을 거닐고 있었다.

 

 

모래사장이 워낙 하얗고 깨끗해서 더욱 맑고 투명해보이는 바닷물.

 

 

바닷물이 이런 파스텔톤의 에메랄드빛이랄까, 청록빛으로 반짝거리는 데야 뭍에서 버틸 재간이 없는 거다.

 

 

잠시 뛰어들어 파도랑 놀다가 다시 파라솔 아래로 들어오면 파라솔에 걸러진 기분좋은 햇살이 몸을 말려준다.

 

이런 풍경을 보면 기분이 더 좋아지기도 한다..지만 잘 모르겠고. 크흠.

 

 

해가 슬금슬금 중천으로 오르며 더욱 많은 사람들이 바닷가로 내몰렸나보다.

 

그러고 보니 긴의자 옆에 적힌 저 태국문자, 이국적이고 매력적이다.

 

 

사람들이 슬슬 많이 보인다 싶더니 패러세일링 하는 사람도 계속 보이고, 멀리 나간 배들도 많아진 듯 하다.

 

파라솔 이용료를 걷으러 다니는 아주머니의 움직임은 살짝 부산해진 거 같지만 역시 여유롭기만 하다.

 

 

파라솔 아래서 뒹굴, 청록빛 파도 아래서 뒹굴, 하다가 슬몃 몸을 일으켜 술을 찾으러 가는 길.

 

술집에는 시계를 걸어두지 않는다더니, 여긴 그래도 시간은 봐가며 마시라고 하나보다. 저 온갖 류의 신의 물방울들은 어쩌고.

 

꽁무니에 태국 국기를 펄럭이며 앞코를 들썩들썩, 벌름벌름하는 게 어지간히 배고픈 모양새다. 내달리는 모터보트.

 

숨은 쉬고 있나, 걱정될 정도로 몸을 운신하지 못하던 검둥개 녀석. 만사 귀찮거나 어지간히 나른한 게다.

 

 

꺄아..이런 물빛을 맨눈으로 볼 수 있었다는 건 정말.

 

패러세일링이나 스노클링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직접 찾아다녀주시는 서비스.

 

흠..찍으려던 게 뭐였냐면..저 푸른 바다..

 

아니면 이렇게 의자까지 갖고 다니시는 간식 파는 아주머니 아저씨.

 

그러고 보면 파라솔 아래 긴의자 밑에는 예기치 않게 강아지들이 숨어있다. 곳곳에 숨은 강아지를 찾아라.

 

그치만 다시 시선은 푸른 바다..로 쏠리고.

 

서양 꼬맹이들은 왜케 인형처럼 귀엽게 생긴 건지, 금새 커버리고 징그러워지겠지만서도.

 

어느 험난한 시절엔가 목을 잘린 불상이런가, 해변 들머리에 놓여있던 부처의 미소가 은근하다.

 

MEDITATION이란 글자 왼쪽에 이렇게 내리깔고 있는 눈매도 인상적이고.

 

그러고 보면, 여기서 이렇게 목걸이도 꿰고 팔찌도 꿰는 이네들의 눈매가 저 그림이랑 닮았다. 순하고 정신적인 느낌.

 

꼬싸멧의 동쪽 해변, 푸른 바다와 하얀 모래 위에서 이리저리 몸을 굴려대며 보낸 한나절.

 

달리 해야 할 것도 보다 중요할 것도 없던 그런 더할나위없던 시간.

 

 

카오산로드에서 동쪽으로 걷기로 맘먹은 날이었다. 점점이 몰려있는 외국인 여행자들을 지나치며
 
무작정 걷다가, 문득 어디선가 징소리가 은은하게 들렸다. 그것도 한두개가 아니라 여러개의

징을 산발적으로 두드려대는 댕댕대댕댕 소리. 저건 뭔가 싶어서 가까이 다가갔더니 왠 자그만

동산이 있고 꽃과 나무가 우거졌으며 태국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점점 커지는 징소리는 이제

머리 위에서, 커다란 말풍선에 담긴 채 하늘에서 징징 진동하며 떨어져내리고 있었고.

집 위의 야트막한 동산에 오르듯 계단을 따라 사람들을 따라 조금 올랐다. 옆으로는 꽃과 나무,

반대편으로는 자연적으로 조성된 건지 인공적으로 만든 건지 알 수 없는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다 중턱쯤에서.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냈다. 수많은 종들. 잡아당기는 손들.

길 양쪽으로 온통 종들이었다. 울림통 안에서 웅얼웅얼대며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 그냥 징 치듯

댕, 하고 짧게 끊기는 쇳소리였지만, 사람들이 순례하듯 지나며 일일이 하나씩 울려주고 있던

덕분에 끊기지 않고 대앵대앵- 울려퍼지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이렇게 커다란 징도 하나. 어찌나 많이 부딪혀댔는지 나무가 온통 뭉그러져버린 데다가

받아주는 징의 볼록한 부분도 한참을 움푹하게 꺼져들어갔다. 뭐, 그럴 만도 한 게 나 역시도

수십개의 종들을 울리며 올라왔지만 그 손맛과는 전혀 비교도 안 되는 커다란 징의 웅웅거리는

울림과 찌릿찌릿한 손맛이라니. 뒤에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않음 좀더 두들겨보고 싶어지는.

그 이후로도 길은 계속 가늘게 이어지며 동산 위로 이끌었다. 종 역시도 계속 이어졌고, 가만 보니

종들의 듬직한 등짝에는 이 곳의 모양이 돋을새김으로 새겨져있었다. 푸 카오 텅, Golden Mountain.

높이 80미터로 정상에 황금색 탑이 세워져 있어 수많은 태국 불자들의 발길이 닿고 있다나. 계단수는

무려 320개를 헤아리는데, 사원은 전체적으로 우주의 중심이라는 메루산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그런 건조한 사실들보다 더욱 눈길을 끄는 건 이런 쓰레기통. 쓰레기를 버리란 건 알겠는데

저 해골바가지 그림은 뭔가 싶었다. 태국어를 알았다면 해골바가지 밑의 간단해보이는 몇글자쯤

해독해 냈을 텐데 싶기도 하고.

드디어 도착한 산..이라기보단 야트막한 언덕의 정상. 사원이 하나 세워져있고 깃발이

나부꼈다. 황금빛 칠이 번쩍거리는 건물벽은 방콕 시내가 반사될 듯 반짝거렸다. 원래

여기를 지을 당시에는 방콕 시내를 벗어나 평화로운 교외의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는데

지금은 여기까지 도시가 우물우물 삼켜버려 예전의 정취와는 판이해졌다.

여기에 모셔진 부처님들 중 일부는 인도에서 가져온 것들이라고 한다. 나름 1960년대까지 방콕을

내려다보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던 사원인만치 그만큼 보물들이 많이 모셔진 걸까.


그런데 이건, 네모난 금박들이 펄럭펄럭 나부끼는 헐벗은 불상들. 선풍기가 돌고 건물 안 공기가

휘몰아 돌면서 불상에 붙어있던 금박들이 파닥파닥 날뛰고 있었다. 더러는 위태롭게 나부끼다가

공중으로 날아오르고, 또 더러는 지나는 사람들의 머리위나 옷위로 내려앉기도 하고.

거의 다 벗겨진 채 누워있는 와불, 아마 저렇게 금박을 한겹한겹 입히는 것도 부처님께 공덕을

쌓는 일일텐데 뭔가 입혀드리는 날짜가 정해져있나보다. 그리고 문득 돋는 세속적인 생각 하나,

저 금박들이 진짜 금일까. 24K는 아닐 테고 18K나 14K쯤? 꽃가루처럼 날아다니는 금박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건물 중앙에 모셔진 황금빛 번쩍거리는 불상 하나가 포인트였다. 동서남북 사면으로

뚫려있는 한 가운데에 모셔진 불상은, 황금 금박이 촘촘하게 붙어있어 바늘꽂을 곳 하나 찾기 힘든

그런 번쩍번쩍한 느낌이면서도 또 보들보들하고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그 앞에 털썩 앉아 간절히

기도하는 분의 뒷모습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내부에 워낙 사람이 꽉꽉 들어차 있었지만, 밖을 향한 창문이 온통 활짝 열려 있어서 딱히 답답한

느낌은 없었다. 밖을 향해 활짝 열린 창문들, 밖으로 고개를 빼문 아이들, 그리고 멀리까지 내려

보이는 방콕의 전경.

뒤에서 아이들의 눈을 따라 휘적휘적 둘러보았다. 태국 국기와 황금산 깃발이 나부끼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낮고 허름한 슬레이트 지붕 뒷켠으로 뾰족뾰족 서 있는 사원들. 그리고

멀찍이 이 언덕보다 높이 솟은 고층건물들이 보였다. 그 아이들의 눈은 어디에 머물렀을까.

옥상으로 올라가니 거대한 금탑이 있었다. 하늘로 향할수록 긴장감넘치게 뾰족해지는 저

삼엄한 탑의 모양은, 거꾸로 지상의 소원과 염원들을 모두 흡입하겠다는 듯 굉장히 크고

넓은 밑둥아리를 갖고 있었다. 그 앞에 가지런히 무르을 모아꿇고 손을 맞붙인 사람들의

엄숙한 표정이나 조심스런 몸가짐들이 신성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런 와중에도, 큰 금탑 주위의 사면에 하나씩 버티고 선 커다란 징은 계속 대앵, 대앵. 어떤

콧수염 아저씨가 채를 잡길래 카메라를 들어 'May I'했더니 방긋 포즈를 잡아주었다.

그리고 진중한 한 방, 사방으로 부들부들 퍼져나가는 울림이 언덕 아래로 낙하했다.

신 앞에 꽃을 바치고, 돈을 바치고, 종을 바치고, 그리고 빨간 천에 소원을 적고. 탑을 감싼

천에 직접 만든 색색의 리본을 달아주기도 하고. 기도를 바치는 존재가 신이라면 굳이 저렇게

써놓거나 박아넣지 않아도 다 알지 않을까. 아닌가, 신은 눈이 하나라서, 그 시선이 내게 오길

기다리는 것보다 스스로 노력하는 게 더 빠를 거라는 이야기도 있으니까 좀더 큰 목소리로

좀더 튀고 마음에 들만한 걸로 신을 꼬드기는 것도 나름 합리적인지도 모르겠다.

선박박물관에서 봤던 그 굉장한 용 머리가 여기에선 몸통까지 제대로 묘사된 채 종을 물고 있었다.

이거..용이 아니라 새였던가, 대체 뭐지 싶을 만큼 상상력이 발휘된 동물. 그 밑으로 바람을 타고

흔들리는 소원들이 재잘거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 용머리가 사람들의 소원들을 발톱으로

움켜쥐고 금세라도 하늘로 날아오르려는건가, 그런 분위기를 노린 건가 싶기도 하고.

이쁘게 만들어진 화환들이 탑 여기저기에 걸렸고, 하얀티에 청바지를 입은 긴머리 아가씨의

뒷모습이 참 이뻤다. 발바닥이 하얗게 질리도록 미동도 않고 곱게 두손 모은 채 뭘 그리도

기도하고 있는 걸까 싶기도 하고. 내 마음까지 절로 숙연해지고 뭔가 간절해지는 느낌.

다시 돌아가는 길, 사람들은 마치 손잡이라도 되는 듯 종을 하나씩 잡고서 댕댕거리며 내려왔다.

뭔가 조금은 더 조신하고 조심스러운 몸가짐으로.

내려오던 길에야 전체 모습을 조망할 수 있었다. 아, 이렇게 생긴 거였구나. 푸 카오 텅, 혹은

GOLDEN MOUNTAIN. 황금산. 저렇게 빙빙 도는 계단을 따라 오르내렸고, 걸으면서 쉽없이

징이나 종을 울려댔던 거로구나 싶었다. 어김없이 걸려있는 꽃 한다발까지.



황금산 정상에서 탑돌이를 하던 분들, 그 와중에 징을 울리며 풍경을 뒤흔들던 그 묘하고도

묵직한 분위기. 소리가 좀더 생생하게 잡혔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실제 음량에 많이 못 미쳐서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그러고 보면, 석굴암의 나한들이나 다른 부처들의 체형은 대부분  이뿌다. 얘네들처럼. 비록 풍파에 휩쓸려 배에

할복이라도 한 양 커다랗게 칼자국이 나있고 머리가 분리된지 오래라지만, 가슴에서 배로 이어지는, 그리고 상체와

하체가 연결되는 그 매끄러운 곡선은 이상적이다. 정말. 달마조사 정도나 배불뚝이로 형상화될까, 그조차 달마의

득도과정에서 이야기되는 '추함'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하나의 팁으로 본다면, 몸에 대한 이상화는 생각보다

오래되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이 부처의 득도수행중의 금식과 고통을 형상화하는 종교적인 의미가 더욱

컸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마치 예수의 삐쩍 마른 몸띵이처럼) 글쎄..여전히 통하는 모티프 하나는,

퍼진몸=게으름..정도 아닐까. 살빼야겠다--+

삐죽거리는 탑들을 이어놓은 회랑에는, 원래 뚜껑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게 황폐해진 벽면과, 그 벽면에

기대어 선 부처상들이 열지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마치 시멘트로 군데군데 엉성하게 보수해 놓은 것같은

붉은 벽돌 구조물같은 모양새지만, 원래부터 저렇게 덮여있던 회칠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마침 뿌연 안개가 빗방울을 머금고 대지에 무겁게 포복중이어서 그랬는지도.

원래 금박이 입혀져있었던 건지, 아님 시주 대신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금박을 한조각씩 붙여넣은 건지 모르겠지만

오돌토돌한 돌기가득한 머리를 괴고 누운 부처의 뺨과 오른쪽 팔엔 드문드문 금박이 묻어있었다. 그리고 몸뚱이를

가리고 있는 커튼같은 노란색 천. 나중에 들으니 저 '옷'도 신도들의 보시로 만들어진댄다.

이곳의 스님들은 모두 주홍색 옷을 입고 계신다. 그래서 아유타야 사원에 촘촘이 늘어선 부처들도 모두 주홍빛

천을 휘날리고 계시다. 아..지금 다시 간다면 훨씬 이뿐 사진들을 찍을 수 있을 것만 같은 풍경.

가부좌를 튼 후 눈은 코끝을 내려다보듯 반개(半開)를 한다. 숨은 그칠 듯 그치지 않는 조식(調息)을 하고...운운.

고등학교 때 기수련에 관심을 가져선, 도우(道友)들과 계룡산에 올라선 밤새 비닐 거적을 뒤집어쓰고 이슬맞으며

연공(練功)을 했던 적이 있었다. 요런 비슷한 자세..였지 싶은데. 그치만 이분의 눈은 코끝이나 배꼽이 아니라 앞에

마주선 사람을 흘겨보는 느낌이다. 손에 들린 건방진 음료수는 또...언제 다 마셔버린 거냐.ㅋ

이왕 시주를 할 거면 온전한 한 컵을 주던가, 저건 누군가의 장난이 아닌가, 쓰레기를 버려놓은 건 아닐까, 혹시

내가 저걸 치워서 버려주면 부처님이 복을 내려주진 않을까 잠시 고민했다.

은근히 와불이 많다. 저렇게 누워 있는 부처는 이곳의 햇살과 왠지 너무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뭔가 얇고 부드러운

실크같은 막이 태양에서부터 너울지며 떨어져 내려 온몸에 감기는 느낌이랄까. 무슨 선블록오일 광고문구처럼

끈적이지 않고 순식간에 흡수되는 뽀송거림. 그리고 기분좋은 나른함까지. 내가 부처라도 눕겠다.

요건 뜬금없는 보너스샷. 비둘기고기 통조림. 태국의 길거리나 공원에 왠지 비둘기가 눈에 띄지 않는다 싶었다.

맛을 보고 싶었는데, 그다지 맛있어 보이지 않아 관뒀다. 나름 여러가지 색깔의 통에 담긴 걸로 보아 여러가지

양념맛이 가미된 듯 했지만, 사실 저렇게 담겨있는 고기는 제아무리 한우 차돌박이라 해도 안 땡길 게다.



사실 태국이 어떤 나라인지, 무슨 풍광이 유명한지도 이번에야 처음 알았다. 사실 내 세계지도는 미국, 터키,

이집트 그리고 남한 땅덩이가 전부였던 거다. 여행 갈 때마다 부딪히는 질문은, 대체 무엇을 보러 가는지. 무엇을

느끼러 가는지. 아무리 피하려 해도, 제약된 시간 내에 한 지역과 그 땅위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본다는 건, 유명한

관광지 그리고 짧막한 관광영어를 벗어나기 힘들다. 

진부한 멜로드라마처럼 타고 내리는 감정선들도 사실은 그렇다. 이미 누천년 이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느꼈고,

봐왔고, 글로 풀어왔던 감정들. 이미 모든 게 읊어졌고, 말해졌다. 무수히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갔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생멸했고, 사람들은 두터운 대지의 더께위에 흙한줌을 보태며 쓰러진다.


그냥...그래도...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아무리 진부하고 범용한 감흥이라도, 내 아가미로 한번 걸러 나오지

않으면 속이 안 풀린다. 그래서...어쩔 수 없이, 혹은 적당히 용서하는 기분으로 카메라 앞에서 어정쩡한 포즈를

잡아주며 증빙샷.

무슨 골프장처럼 넓게 펼쳐진 푸른 잔디밭 위에 곧추선 붉은 벽돌 구조물들이 단단하고 야무져 뵌다. 햇살만큼이나
그림자도 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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