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미술관, 규모는 작지만 나름 재미있고 알찬 전시를 꾸준히 하고 있어서 나 역시 꾸준히 발걸음을 하는 이 곳에,

 

11월부터 시작되어 내년 3월중순에 끝나는 전시회가 하나 열렸으니 바로 '스와로브스키, Sparkling Secrets'展.

 

 스와로브스키의 상징인 우아한 백조와 함께 조그마한 쥐도 한 마리 보였고(내가 본 쥐 캐릭터 중에 손꼽을 만큼

 

귀여운 녀석이었던 듯. 쥐에 대한 생래적인 혐오감과 더불어 최근 학습된 반감을 거의 극복해낸 아이템이었다.)

 

 

 크리스털로 만든 열쇠가 두 벌, 목걸이에 걸어서 짤랑짤랑 소리나도록 하고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저 열쇠에 맞는 자물쇠도 같이 크리스털로 만들 수 있다면 멋지겠다는 생각도 해보고.

 

 스와로브스키가 제작, 가공하는 크리스털들이 최대한 친환경적으로, 납성분같은 것들을 유출시키지 않고 만들기 위한

 

노력을 소개하는 장에서, 무려 250mm나 되는 크리스털을 그런 친환경 방식으로 만들었다고 전시를 해놓았다. 빙글빙글

 

돌면서 사방으로 무지갯빛을 흩뿌리는 커팅면의 굴곡이 오묘하다.

 

 제법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문구들을 담은 스와로브스키 전의 아트북 중 한 문장.

 

"사람은 감동을 받기 위해 하루를 살아가고, 감동은 사랑을 주기 위해 순간을 간직한다."

 

 색색의 원석들, black diamond라거나 saphire라거나. 스와로브스키가 활용하는 오색빛깔 영롱한 크리스털들 차트다.

 

스와로브스키가 다양한 셀렙들과 오랜 세월 함께 했던 건 익히 알려져 있다지만, 마릴린 먼로, 마돈나, 제니퍼 로페즈 등

 

불멸의 스타가 된 이들을 빛내주는 아이템들을 옷이라거나 액세서리라거나, 아님 이런 크리스털 '가발'로 함께 했는줄은.

 

 

 게다가 여러 예술가들과의 콜라보레이션도 오랜 기간 진행했다고.

 

크리스털들을 마치 나뭇가지에서 돋아난 잎새처럼 뾰족뾰족하게 표현한 작품. 제목이...Crystal Branch였던가.

 

 달팽이랑 나비가 마주 보고 사랑에 빠진 모양이 넘 귀여웠던 반지도 있었고.

 

실키한 핑크빛 레이스에 파스텔톤 크리스털이 보드랗게 이어지는 목걸이. 굉장히 여성스러운 느낌이다.

 

 영화 '물랑 루즈'나 다른 화려한 쇼 장면이 있는 영화, 뮤지컬 등에서 활용되었다는 스와로브스키의 아이템들.

 

스와로브스키의 반짝임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서였겠지만, 온통 전시공간은 깜깜하게 빛을 가리고 있었다.

 

그래서 검은색 주렴이 드리워진 대림미술관의 숨겨진 휴식공간에 앉아 쉬기도 하고.

 

 2층부터 4층으로 이어지는 전시공간, 4층에 오르고 나서야 비로소 조금 환해진 느낌인 건, 이 샹들리에의 역할이 컸던 듯.

 

영화 '블랙 스완'에 나왔던 바로 그 샹들리에라고 하는데, 아마 주인공 그녀가 마지막 장면에서 이 샹들리에에 깔리던가.

 

 베라 왕 등 유명 디자이너들의 작품에도 스와로브스키는 여지없이 그 빛을 발했다. 이를테면, 그들의 작품인 옷에

 

화사함을 더하고 포인트를 주는 한줌의 시즈닝이랄까.

 

 

 

 이런 식의 반전 뒷태를 책임지는 스와로브스키의 크리스털들.

 

 

 

 그리고 다시 1층. 어느새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장하기 시작한 그곳에서 이미 한바퀴 둘러보고 나온 사람의 만족감이란.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가 서 있고, 파란 배경에 투명한 크리스털이 반짝거리며 오색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대림미술관 뒷켠의 까페 공간도 스와로브스키 전시공간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마치 크리스털이 커팅되었듯

 

수십수백개의 맨들한 면을 불연속적으로 이어붙인 채 커다랗게 부푼 공간이 거기 있었으니깐.

 

 

 그리고 스와로브스키의 반지가 흔히 갖고 있는 수백개의 커팅면을 그대로 키워낸 거울면의 아우라를 뒤로 받친 채,

 

온통 일렁일렁이는 환상적인 풍경 한 가운데에 반지 하나가 흔들림없이 버티고 섰다.

 

겸겸 나도 한 장. 핑크빛의 조명이 거울 내로 스며들어서 온통 핑크핑크한 분위기에서, 참 야무지게도 카메라를 쥐었구나 싶다.

 

 

 

 

 

 

 

 

 

 

 

 

 

 

 

단편소설은 차라리 시와 같다, 라고 한 옮긴이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마 작가는 자신의

단편소설에 놓인 단어, 문장, 문단들을 어느 하나 허투루 놓지 않은 채 자그맣지만 더없이 날카롭고

위험한 덫을 하나 엮어놓는다고 상상할지 모른다. 글을 읽던 사람들을 조금씩 홀리게 만들어 자신이

원하는 지점에까지 유인한 뒤에, 작정한 순간 휙, 하고 독자의 다리를 잡아채는 쾌감을 좇는 거다.


독자가 단편소설을 읽으며 바라는 것 역시 바로 그 정반대의 쾌감, 뭔가 마조히즘적인 쾌감일지 모른다.

어디에 덫이 숨어있을지 더듬어보고 예측해 보는 쾌감, 아니면 그 덫이 얼마나 잘 위장되어 있고

예기치못한 방식으로 자신을 덮칠지 두근거리며 기다리는 쾌감. 그 덫은 꼭 생각지 못한 반전일 필요는

없고, 분절되어 있는 의미와 단어들이 어느순간 단단히 연결되어 있거나 정렬해 있는 걸 뒤늦게

깨닫는 종류의 것이어도 좋겠다.


사실 그래서 단편은 대개 독자의 기대를 배반하는지도 모른다. 호흡이 유장하지도 않고 스토리가 

거대하지도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외려 뼈대만 튼튼히 남아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에 사람들은 

단편소설의 몇 장 되지도 않는 페이지를 쉽게 넘기는 거다. 그렇지만 이야기가 복잡하게 전개될 여지도

없고 중층적으로 꼬이기도 쉽지 않은 고작 몇 장의 이야기니까 말하자면 '맵'은 뻔한 상황, 작가들은

이야기를 Zipping하면서 좀더 함축하고 응집하려 들지만 독자는 대개 결말에 쉽게 와닿아 '덫'을

찾아내고 흔들어보인다. 겨우 이거야, 하고 실망하며.


그런 게 내가 늘 단편의 숲을 거닐며 혼자 해보는 상상. 사냥꾼이 만들어낸 조그마한 사냥터의 출구를

향해 조심스레 걸음을 내딛는 조그마한 메추리 같은 새가 되어, 이왕이면 멋진 덫에 더없이 멋지게

걸려넘어가 주겠어, 하는 다짐을 해보는 거다. 몇 개 등장하지 않는 소재와 대사, 단어들을 요리조리

뒤집어 보며 맛보고 확인하는 훌륭한 독자가 되어 차근차근, 이왕이면 멋지게 잡아채이겠다는 다짐이다.

그런 점에서, 쑤퉁이 지은 '다리 위 미친 여자'라는 단편집에 실린 열네 개의 사냥터 중 여섯 개는 정말

굉장히 좋았고, 두 개는 조금 약했으며, 나머지는 괜찮았다.


내가 좋았던 단편을 나열해 보자면, '다리 위 미친 여자', '좀도둑', '술자리', '신녀봉', '대기압력',

'집으로 가는 5월' 정도인 듯. 다들 제각기 생김과 쾌감이 다른, 그리고 중국의 현대사가 새겨둔 상흔을

깊게 간직한 덫을 숨기고 있던 소설들. 한국에선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중국에서만 가능한 소설을

맛보고 싶다면 한번 시도해보아도 좋을 듯.

다리 위 미친 여자 - 8점
쑤퉁 지음, 문현선 옮김/문학동네

약간 싸구려스럽게 빰빰거리며 울리는 배경음악이라거나 중간중간 챕터 제목을 붙여주듯 커튼이 내려가듯

그림이 끼어있는 것들, 1973년의 미국영화란 건 그랬구나 라는 깨달음은 줄지언정 오히려 영화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었던 요소들이었다. 아무래도 요새 영화보다 못하지 않겠냐고 턱없이 얕잡아보며, 그래도 고전을 본다는

의의는 있겠거니 쉽게 생각하며 보기 시작한 영화였다.


그렇지만 굉장히 재미있었다. '영화'라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능력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발전하고

있으리라 그저 믿고 있었는데, 그런 거 아닌 거 같다. 짜릿한 반전의 쾌감은 어쩌면 사십여년 전에도 영화를

갖고 이렇게 재미있고 잘 짜인 이야기를 할 수 있구나 하는 데서 오는 신기함일 수도 있겠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어렴풋이 이름을 들었었던 과거의 배우들, 폴 뉴먼이라거나 로버트 레드포드의 연기력도 그렇고 엔간한 반전은

능히 꿰뚫어 볼 수 있을 만큼 닳고닳은 이에게도 감탄하게 만드는 스토리도 그렇고, 결코 짧지 않은 러닝타임을

지루하지 않게 탄탄하게 끌고 가는 감독의 역량도 그렇고. 도박과 사기를 소재로 한 영화야 쉼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지만, 그 모든 작품들의 원류이자 지향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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