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마석에 있는 모란공원묘지, 추석이 채 일주일도 남지 않은 때 찾았던 묘지분위기는 그렇지만

정말 썰렁했다. 공기에 짓눌린 채 바싹 말라버린 꽃가지 하나가 화석처럼 대리석 제단 위에 고여있었다.

이전 포스팅 ( 
이소선 여사 마지막 가시는 길. )에서 올렸던 사진들은 이소선 여사의 안식처가 될 공간

중심이어서 그나마 사람들이 북적북적, 공기를 흩어놓고 있었지만 다른 수많은 묘소들은 무겁게 공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더욱 기분이 울적했던 건, 묘소 곳곳에 붙어있던 이런 관리비 독촉 스티커.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그들이 가고 나서 재산이나 가족이 제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도 대개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데,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이들 역시 묫자리 하나 맘편하게 쓰지도 못하고

죽고 나서도 편히 쉬지 못하는 건 아닌지. 없는 사람들, 재산도 없고 가족도 없는 사람들이 그래도

민주묘역에 묻힐 수 있었던 게 다행인 걸까. 추석때 찾아와 무성한 잡초라도 끊어줄 사람은 있을까.

모란공원묘지에 들어가기 전 입구에서 만난 꽃가게. 한지에 붓으로 엉성하게 써둔 문구가 굉장히

담백하면서도 왠지 호소력 짙어보였다. "아름다운 생화 사시오 여기로 오시오"

모란공원 입구는 야트막한 돌기둥 두개, 그리고 기둥 사이로 녹슬고 성긴 초록색 철문으로 열리고

닫히고 있었다. 철문에 페인트칠은 벗겨지고, 개방시간을 알리는 철판은 글씨가 낡고 삭아 군데군데

떨어져 있었고. 그 와중에 눈에 띄던 건, 아마도 남양주에서도 트레킹코스를 개발한듯 어딘가로부터의

코스가 끝났음을 알리는 '종점 시점' 표지판. 인생이 끝나는 묘역에서 맞는 트레킹 코스의 종점이라.

입구를 들어서니 바로 묘소들이다. 뭔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준비하기도 전에, 촘촘하게 모셔진 무덤들이

눈앞으로 확 달려들었다. 나름 겉에서 보기엔 색색의 꽃들도 꼽혀있어 색깔도 다양하고, 검고 하얀 대리석

조형물들도 묘소 옆을 지키고 있어 그럴듯해 보이기도 하지만, 꽃들은 전부 빛바랜 조화.

민족민주열사 묘역도가 묘소로 들어가는 길 앞섶에 세워져있었다. 많다. 그리 넓은 않은 부지에 꽉꽉

채워진 느낌이다 했더니, 묘역도를 봐도 그 느낌 그대로다. 그리고 중간중간에는 미처 그림에 반영되지

못한 새로 모셔진 분들의 위치가 사인펜으로, 볼펜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 중에 눈에 띄던 표시,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이명박정부는 이미 만원이 되어버린 모란공원묘지의

밀도를 더욱 높이는데 일조하고 있다. 하긴, 이명박정부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노무현 때라고, 김대중

때라고 태평성대도 아니었거니와, 사람들의 피와 땀을 쉼없이 요구하는 괴물이 어딘가에 버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더 크고 넓은 묘역이 필요한 거다.

민주열사 묘역으로 올라가는 길, 문득 머릿속을 맴돌던 노래 하나가 계속 무한도돌이표를 그려냈다.

꽃다지가 불렀던 '열사가 전사에게'라는 민중가요.

꽃무더기 뿌려놓은 동지의 길을
피비린 전사의 못다한 길을
내 다시 살아온대도 그 길 가리라
그 길가다 피눈물 고여 바다된대도
싸우는 전사의 오늘있는 한
피눈물 갈라 흐르는 내 길을 가리라

동지여 그대가 보낸 오늘 하루가
어제 내가 그토록 살고 싶었던 내일
동지여 그대가 보낸 오늘 하루가
내가 그토록 투쟁하고 싶었던 내일
복수의 빛나는 총탄으로 이제 고인 눈물을 닦아다오
마침내 올려질 승리의 깃발 힘차게 펄럭여다오

민주열사 추모비. 신영복 선생의 글씨로 새겨진 글이 뜨겁다.

"의로운 것이야말로 진실임을, 싸우는 것이야말로 양심임을 이 비앞에 서면 새삼 알리라."

"지나는 이 있어 스스로 빛을 발한 이 불멸의 영혼들에게서 삼가 불씨를 구할지어니."


허세욱 열사. 2007년 한미 FTA를 반대하며 분신하신 택시운전 노동자였다. 운전을 하며 틈틈이 얻은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각종 집회와 진보정당 모임에 빠지지않고 나가기까지, 그렇게 스스로

세상을 공부하고 의견을 말하시던 분. 한미FTA가 지고의 가치인양 치장하는 건 2007년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지만..스스로 빛을 밝힌 그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안타깝던 건, 묘비나 이런 안내문 위에 언제 떨어졌는지도 모를 새똥이 하얗게 말라붙어 있던 모습.

조금만 신경써서 관리해줘도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을 텐데, 햇빛에 하얗게 바래어가는 종이만큼

녹슬고 더러워진 시설물들이 너무 아쉽다.

그래도, 묘비 머리마다 둘린 머리띠가 팽팽하다. 열사정신 계승, 단결투쟁, 이명박정권 퇴진까지. 생전에

그렇게도 자주 둘렸을 머리띠가 이제 묘비에 둘린 채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어느 노동자의 무덤 앞에는 백기완 선생님의 헌시가 새겨진 돌도 서 있었다. 정말 비장하고 무거운,

새들마저 부리를 여미는 그런 분위기가 꽉 들이찼던 곳.

그리고 전태일. 수없이 고문당하고 고통받고 죽어간 노동자들, 민주투사들의 대명사이자 상징처럼

되어버린 그의 묘소는 제법 색색의 꽃들이 화려하게 놓여있었다. 그 이외에는 다른 묘소들과 크게

다를 바 없던. 그런데 그는 '기독청년'이란 앞머리를 달고 누워있었구나, 갈수록 대형화, 상업화되며

심지어 정치까지 넘보는 교회세력이 들끓는 시대의 눈으로 보니 좀 낯설다.


전태일 추모비. 납작하고 그리 크지 않은 검정 대리석 네면에 빼곡한 글씨로 전태일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의 신념을 적어두었다. 네 면을 순서대로 찍어두었으니 한번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돌아나오는 길, 곳곳에서 눈에 띄는 관리비 납부 독촉장이 석상 위에 차례 음식이나 꽃 한송이 대신

모질게도 찰싹 붙어있는게 맘에 걸렸다. 이번 추석에는 무성한 잡초도 좀 정리하고 먼지와 독촉장만

내려앉은 대리석 차례상 위에 그래도 조금은 풍성해도 좋을 음식들이 올라앉아 있으면 좋겠는데.






거꾸로 보는 고대사 - 10점
박노자 지음/한겨레출판
 
"현재 북한을 충분히 이길 수 있으니 군사적 압박을 가하자는 전쟁 불사론은 바로 이런 네오콘식 선제 정밀 타격과 전쟁 수행을 통해 무력으로 김정일 정권을 붕괴시키자는 주장의 판박이다.
일부 국내 호전론자들은 만일 미군이 결심만 하면 북한 수복은 물론이고 만주까지 치고 올라가 잃어버린 고토를 회복할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펼친다."
- 시사인 11.29일자, 한반도 전쟁 시뮬레이션 해봤더니…하루만에 240만명 사상 중.


정말 황당한 주장이다. 당장 황당한 건 '잃어버린 고토'라는 단어에서 배어나오는 재미없고

칙칙한 열혈 우국지사틱한 마인드고, 또 그들이 잃어버린 고토라는 '우리땅' 만주에서

비롯하는 낯설고 생경한 어감이다. 수백만명이 죽고 다치는 전쟁을 무슨 땅따먹기놀이처럼

생각하는 무식한 야만성이나 미군이 미국 국익의 고려없이 무조건 우리편이라는 유아적

사고에 멈춰있다는 따위, 지엽적인 문제는 넘어가기로 하자.


대체 어떤 또라이들이 저런 주장을 하나 싶다. 그런데 사실 그들이 발딛고 선 논리랄까,

마인드의 문제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유롭지 못하단 게 문제다. 사실 이미 드라마니

영화니 잡서들을 통해 가공의 역사와 특정한 시각이 알게 모르게 친숙해져 버린 건 아닐까

걱정스러울 정도다. 주몽이니 근초고왕이니, 고대사를 다룬 드라마들이나 조선의 세종을

다룬 영화('신기전'이었던가), 심지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따위 쓰레기까지, 조금만

더 진지해지면 저런 황당한 주장을 펼치는 또라이와 같아질 정도로 접근해왔다.


그들은 단순하게도 오늘날 나라와 나라 사이를 구획하는 경계선이 단단하듯 수천년전에도

똑같이 명확한 국경선이 그어졌을 거라고 상상한다. 아니, 그렇지 않다는 거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정립했다는 시기에조차 각 고대국가는 도읍을 중심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정 권역의 개념이었지 국가간 경계선을 그을 정도로 안정적이고 확정된

근대적 '영토'를 갖지는 않았다. 예컨대 고조선이 만주 일정지역에 영향을 행사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신채호가 말한 것처럼 '정복 왕조'로서 파악되거나 단군을 '정복자'로

묘사할 만한 정도의 것이 아니라 일정 지역에서 공물을 거두는 정도였다는 거다.


게다가 어느 한때, 잠시동안 '만주'를 영향력 하에 두었다고 해서 '원래 우리민족,

우리나라 땅'이라고 하는 게 말이 되나. 그 이전이후의 다른 점유자들은 강탈자인 건가.

팔레스타인 땅을 두고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벌이는 강탈과 똑같은 논리인 셈이다.

물론 '만주'에 대한 고토회복의 열망은 좀더 근대의 기록에 근거한다고 반박할 거다.

백두산 정계비에 쓰인 조선-청 간의 영토획정 결과 간도지역이 조선에 속한다는 건데,

글쎄, 청과 조선이 모두 망했고 백년이 넘은 지금 상황에서 그걸 주장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한국이 독도를 실효적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중국이 지배하고 있는 땅이다.


두번째로, 오늘날 그어진 국경선 내에 꾸깃꾸깃 살고 있는 사람들이 수천년 전부터 동일한

민족을 이룬 채 살아왔다고 착각한다는 점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주민들은 서로를

한민족으로 인식하고 있었을 거라는 착각인데, 덕분에 당나라를 끌어들여 '통일'을 이룬

신라의 김유신과 김춘추는 거의 '민족반역자' 수준의 비난을 받아온 거다. '조선일천년래

제일사건'이라며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을 애통해 했던 신채호의 입장은 이후 남북한을

막론하고 이 사건을 보는 기본적인 시각이나 멘탈리티로 굳어진 셈이다.


그렇지만 과연 그랬을까. 그때의 '우리'라는 관념이 지금처럼 국가나 민족단위로 단단하게

있었을지도 의문이고, 동일 언어를 쓰는 한민족, 혹은 단군의 자손이라는 '삼한일통'의

정신이 뚜렷이 드러나는지는 더욱 회의적이다. 국가가 구성원을 통제하는 수단이나

정도가 근대국가에 비해 훨씬 미미했던 그때, 사람들은 씨족이나 가문 정도에서 가장 크고

확실한 정체성을 얻지 않았을까. 설혹 신라인, 백제인으로 스스로를 규정한다 해도 그들이

'뙤놈'과 '왜놈' 사이에서 '우리민족'을 의식했다는 건 소설에 가깝다. 동일 언어를 썼으니

말도 잘 통했을 거라는 막연한 상상도 서로 국서가 불통하더라는 사실 앞에 무너진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일본 혹은 다른 타국을 의식하는 방식이다. 일본에 대해서는 근대의

아픔만큼 과거에는 우리가 우월했음을 강변하는 식으로 대처하고, 중국에 대해서는 과거의

조공으로 맺어진 사대관계를 얼버무리는 대신 '만주'를 회복해 우리가 중심이 되겠다는

식으로 대응한다. 특히 일본에 대해서는 고대 한국으로부터의 일방적인 문화전파만이

있었는데 배은망덕하게도 한반도를 호시탐탐 노려왔다는 아주 간편하고 단순한 전제가

늘 깔려 있다.


일부 민족사학자들은 일본을 아예 백제 유민이 건설하고 이후 쭉 천황계보를 이어오고 있는

형제의 나라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백제의 일본'이라 해도 그런 전제가 달라지진 않는다.

아무런 문화도 없던 섬나라의 원숭이들에게 문화를 전파하는 선진국의 이미지, 그리고

그런 은인의 나라를 욕보이고 덥썩 집어삼킬 생각에만 골몰하고 있는 양아치 원숭이의 이미지.

역사를 조금만 보면, 오히려 한반도와 왜국 간의 긴밀한 문화 교류-일방적 전파가 아니라-의

사례들이 수천년동안 발견될 뿐 아니라 왜국은 중요한 외교적 파트너로 존중되었단 거다.


사대교린 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중국의 문화적 역량과 군사적 역량을 앞세워 구축한

천하질서는 당대 외교질서의 문법이었을 뿐이다. 오늘날 미국이 구축한 세계질서 하에서

다른 국가들이 자리매김하고 각개약진하며 미국의 문화적 군사적 역량을 제공받듯, 당대

중국의 문화를 교류하고 천하질서 하에서 상석을 차지하는 경쟁이 벌어진 셈이다. 그건

국가의 실리를 위한 외교정책이었을 뿐, 그 어디에도 근대적 의미로의 '예속'이나 '식민'의

굴욕을 떠올려야 할 구석은 찾을 수 없는 거다.


결국 '거꾸로 읽는 고대사'를 읽으면서 계속 부딪히는 건 '민족사관'의 문제 그 자체다.

'우리 대한민국', 혹은 '우리 한민족'이 먼옛날 언젠가 만주벌판을 호령하며 '뙤놈'과

'왜놈' 따위는 가뿐히 무찌르고 군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최고였다는 유치찬란한

환상, 그리고 그 '우리'는 수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변함없어서 가히 개인의

목숨 따위보다 훨씬 지고하고 신성한 집단, 민족공동체라는 구라. 박노자가 줄기차게

하는 이야기는 굉장히 심플하고 기본적이다. 민족사관의 거품을 빼자. 민족사관이

편의적으로 취사선택해 부풀린 몇 개의 사실들만 말고, 균형을 잡고 보자는 거다.


신채호가 고대사를 읽어내던 시대는 지금의 시대와 다르다. 달라야 한다. 근대국가로의

경쟁적인 변신이 이루어지던 와중, 일본 제국주의가 한반도를 침탈하는 등 야만적이고

가차없는 힘의 논리가 극강하던 시절에야, 뒤늦게라도 '한민족'을 만들어내고 하나로

규합해서 근대민족국가를 만들 필요가 '민족사관'을 만들어냈던 거다. 언제고 국제사회는

냉엄한 현실 논리, 힘의 논리로 움직인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존재했던 평화와 공존의

시기에서 눈돌려서는 안 될 일이다.


일본을 늘 한결같이 악하고 못 믿을 존재로 규정짓는 역사를 공부한 사람과, 때로는 굉장히

갈등하기도 했지만 또 때로는 생각 이상으로 긴밀하고 절실하게 상호 교류해온 나라로

공부한 사람, 그 인식의 차이는 어쩌면 이후 한국 사회가 얼마나 다채롭고 성숙할 수 있을지

열쇠가 될지 모른다. '한민족'이라는 집단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생성되고 변화되어 왔는지

그 임의성을 알게 된다면 사람들은 비로소 근대인으로, 주체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P.S. 박노자는 이 책에서 한사군이 존재했다 말한다. 한사군이 존재했는지에 대해서는

감정적인 불쾌감과 민족적 '책무감'이 더해 가타부타 말이 많지만, 박노자는 정작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탄탄히 대는 데에는 힘을 쏟지 않는다. 그는 한사군의 존재 여부보다

그 존재에 대해 일단 거부하고 보는 한국 사학계의 멘탈리티 혹은 태도를 한번 따져보길

바라는 거다. 한사군이 있었다고 해도 일제 시대처럼 총독부를 설치하고 식민화한 게

아니라, 그저 중국계 유민들의 부락 정도였을 거라는 게 그의 추측이다. 우리 시대에

우리가 현재 아는 것에 빗대어 상상하는 게 위험하다는 걸 잘 보여주는 좋은 사례.





경주 대릉원 내의 천마총을 둘러보다가, 무덤 앞에 놓인 까만색 석비가 눈에 띄었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신라의 통일정신을 오늘에 되살리고 찬란한 민족문화를 기리 보존하여 위하여' 천마총을 발굴, 복원했단

내용의 글이 새겨져 있었다. 그가 정권을 탈취하던 당시 북한에 대한 군사적, 경제적 열세를 절감했다가

이제 조금씩 경제적 우위를 선점하고 베트남전 파병 등을 통해 군사적 우위에 대한 자신감도 보인

영향인 걸까. '통일'이라는 이슈를 자신감있게 제기하던 그쯤, 삼국시대 신라는 일종의 롤모델이거나

동일시의 대상이었을지 모른다. 평화가 아니라 통일 그 자체, 신라에 의한, 그리고 남한에 의한

통일이 강조되던 시기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런 분위기는 천마총에서 그치는 건 아니었다. 부처가 살고 있다고 여겨지던 신성한 경주 남산의

동쪽 기슭, '화랑교육원'이니 '통일전'이니 그런 식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는 거창한 건물들이

세워져 있던 거다. 박정희가 권좌에 있던 시절, 민족문화를 중시한다는 식으로 뭉뚱그려지는

이면에는 그렇게 신라 중심의 통일, 군인정신의 모범으로 이미지화된 '화랑'에 대한 강조 따위가

숨어있기도 했던 것.


신라의 왕족들이 남산을 신성한 곳으로 꾸며내고, 부처와 천심을 업고 다른 나라들에 대한

통일, 혹은 지배 욕망을 정당화했듯이 박정희 역시 경주 남산과 신라의 고총들에 기대어 그런

정당화를 꾀했던 건 아닐까. 남북간의 군비 경쟁과 체제 경쟁에서 이겼다는 자신감과 함께.



사람 두명 덮고잘만한 사이즈의 깃발이 펄럭이는 걸 보면, 더구나 피처럼 붉은색의 붓글씨라면 가슴이 뛴다.

깃발을 볼 때마다 난 가슴이 뛰고, 또 내가 얼마나 비이성적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1학년 때 곽모군과 표모군이랑,

전경이 겹겹 에워싼 학교를 넘보다가 담을 넘어 기어코 가보았던 국보법 문화제. 그 이후로 엔엘 애들 문화제는

참 오랜만이었다. 마임보단 전투문예가 좋았던 나.


연세대의 교정에는 자주와 민족이라는 단어들이 낙엽처럼 뿌려져 있었지만, 사람들은 발로 툭툭 찰 생각도 없어

보였다. 학교에서 아예 외부인사의 출입을 금하고 나선 분위기 탓도, 노무현의 '무능한 진보'라는 이미지 탓도

아니었다. 그냥, 으레 그런 시위 전야의 분위기. 더군다나 35도가 넘는다는 햇볕아래였으니.


문화제를 보면서 대체 한총련이 좌파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가 들었다. 물론 분단국가인 한국의 지형

아래에선, 통일을 말하는 것 자체가 진보성을 일정하게 담보할 수 있겠지만, '통일과 자주'라는 성긴

그물망으로는 빠지는 것들이 너무 많다. 이미 '지배 진영'의 수사로 포섭되어 버린 '민족 자주'라는 이야기의

한계도 있고. 이미 그들의 유인물에는, "미사일 기술을 원천기술로 해서 남북한 양국이 과학강국으로 발전하자"

라거나, "통일이 되면 북한의 값싼 노동력으로 국가발전에 획기적인 전기가 된다"등의 위험한 이야기들이 버젓이

실려있다. 민족의 딸로 성화된 효순, 미선의 여성성,그리고 부끄러운 민족의 치부라서일까, 거기서 배제되기

십상이던 성매매 여성들의 죽음들은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우리 '민족'처럼 순박하고 착하지 않아서 제국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니다. 피해자로

스스로를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정화하고 순결한 양 치장하고 싶은거 같다. 우리나라가 "분단의 족쇄를

끊고, 미제의 얼룩을 깨끗이 씻어내면" 평화와 행복으로 가득찬 세계가 도래한다는 건가. '양키'와 '원숭이'와

'뙤놈'이 우리보다 센게 문제라는 건가. 그물망을 보다 섬세하게 짜보려는 노력 따위 보이지도 않았다.

반미투쟁!이라는 꼬리말이 무색하게, 영어단어들이 무딘 혀끝에서 적잖게 튀어나왔다. 문화제에서 사장과

노동자는 오로지 통일을 위해 어깨를 걸었으며, 통일은 무조건 되야한다는 말에서 공감을 요구했다.


결국, 한총련 혹은 민족자주 진영은...멘탈리티로 뭉쳐있을 뿐인 거 같다. 민족에 대한 센티멘탈리즘과

전통사회에의 향수. 미국을 최종 심급의 거악으로 규정짓는 순간 세상사는 단순해진다. 어찌보면 이미 한총련은

비전이 희미해지고 있다. 통일 이후에..그들은 어떤 비판의식을 유지할 수 있을까. 통일이 마치 세상 끝날인

것처럼 절대적으로 봉헌된 마당에. 노무현을 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직도 재고 있다. '민족'과 '자주'는

더이상 비주류가 아니다. 센치한 녀석들.


통일을 말하고, 민족을 운운하는 건, '민족정론'을 자처하는 우파 보수 언론들이 해야 할 거 아닌가. 왜 이땅에선

그런 것들이 빨갱이로 몰려 '좌파'로 매도당하지? 좌우가 상대적인 개념이라면, 대체 우리나라에서 그들을

'좌파'라고 칭하는 진영은 어떻게 스스로를 규정짓고 있는 걸까.



#. 왜 동아일보는 노무현을 '좌파정부'라고 까대냐는 내 질문에 선배기자가 했던 말. 원래 좌우는 상대적인 거야.

치사하고 교활한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좌'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과 불신감을 심어놓은 왼손이 한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한다 이거지.

#. 다 쓰고 나서 봤더니, 난 어쩜 '좌'라는 단어에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센치하게.ㅋㅋ

운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에 이어 정권마다 반복되던 독도 문제가 곧바로 불거져 나왔다. "2MB 대통령이 독도를 일본에 팔아넘기려 한다"는 '독도 괴담'을 방불케 하는 <요미우리>의 자극적인 보도 내용과 사안 자체의 심각성은 독도 문제를 금세 여론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또, 대북문제에서 교착상태에 빠져 있던 정부는 이번만큼은 '건수'를 잡은 듯 마음껏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독도 괴담'의 주인공인 만큼 그 혐의를 벗기 위해 열심인 모습이 꽤나 가상하다. 하지만 역시 '2MB'는 역시 '2MB'다.
 
  청와대는 <요미우리>와 일본 정부에 한국의 내분을 획책한다며 비난했다. 동시에 독도 문제로 맹공을 퍼붓는 야당에 대해서도 '자국 정부보다 일본의 우파 신문을 믿고 대통령을 공격한다'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자국민보다 극우 언론을 믿는 정부의 입에서 나올 소리는 아닌 것 같지만, 2MB를 제외하곤 누구도 완벽하지는 않으니 일단 넘어가기로 하자. 같은 날 나온 다른 보도를 보자. 2MB 대통령은 지난 15일 부산시 업무보고 및 부산 발전전략 토론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외환은 어쩔 수 없지만 내우(內憂)는 하나가 돼 극복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제시된 두 가지 사실을 기억하고 초점을 잠시 '공화국 북반부'로 돌려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국 정부와 언론의 북한 인권문제 제기에 대해 "지도부와 인민을 분열시키려는 음해공작이다"라고 일축했다. 그는 "북한의 식량위기는 미제의 고립 압살 책동 때문이니 이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전 인민의 단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북한에 핵 문제를 제기하는 남한의 '동족'에 대해서는 모두 '미제의 앞잡이'로 매도하고 있다.
 
  극적인 비교를 위해 다소 과장을 하기는 했지만, 기본 구도가 상당히 유사하다. 외부의 적과 어려운 환경을 설정하고 그것을 빌미로 내부의 총화단결을 호소(라고 쓰고 협박이라고 읽는다)하는 수법은 나치 이래로 전체주의 세력들의 고전적 수법이다. 이러한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 '아군'의 악덕을 비판하는 내부 구성원들은 '적군'을 이롭게 하는 반역자로 간주되어 숙청 대상이 된다. 일본 재단의 자금을 지원받는 낙성대 연구소-노파심에서 말하자면 필자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친일적'이기 때문에 매도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보다 일본 언론을 인용해 대통령을 공격하는 민주당이 '국가의 반역자'에 가까워지는 순간이다.
 
  사실 이 수법을 가장 성공적으로 구사한 인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취임 초기부터 반대세력에게 '반미 민족주의 진보'로 낙인찍힌 노무현 대통령은 강경한 대일발언과 자주국방이라는 명분을 통해 대중의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했다. 그는 반대세력이 자신에게 붙인 딱지를 오히려 정치적 자산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그는 참여정부 때 신자유주의적 사회질서를 전면적으로 도입해 사회 각 계급을 재편했고, 이에 따른 불만은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억압되었다. '국익'이라는 단어가 대부분의 정치적 논란을 종결짓고, 잘못을 전가하는 보도가 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반대자들은 '친일세력'으로 규정되어 규탄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평소 민족의 해체를 주장해 대표적 '친일세력'으로 인식되는 '뉴라이트' 세력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는 2MB 정권의 총화단결 호소는 참여정부가 자극한 민족주의 정서와 맥락도 다르고, 효과도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극한 민족주의 역시 '선진 국가'를 위한 국가주의적 프로그램의 외피에 불과하다는 면에서 2MB의 노골적 국가주의와 본질적으로는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정치에서 포장은 상당히 중요한 요소다. 2MB의 딜레마는 자신은 끝없이 국가주의를 강조하지만, 이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종족담론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민족주의와 불협화음을 일으킨다는 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MB 정권은 국가주의를 향한 질주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기세다. 정부는 독도 문제에 대해 신중한 대응을 주문-금강산 문제에 대한 쌍팔년도 식 발언을 보자면 특별히 성숙한 정세판단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이념적 편견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하면서도 대내적으로는 "일본의 언론을 보라", "여야도 없고, 진보-보수도 없고 모두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우리는 본질적이지도 않은 것으로 안에다 총질을 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와 같이 노골적으로 총화단결을 호소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신중한 대응을 외치면서도 마치 외부의 적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일 것인 양 대내적 단결을 호소하는 것은 다소 형용 모순 같다. 과연 무엇을 위한 총화단결일까?
 
  이러한 모순된 국가주의 드라이브가 계속된다면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라는 내셔널리즘(Nationalism)의 두 얼굴이 서로 대립하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MB 정권은 '우리 민족끼리'에 대한 반명제로서의 친일, 친미적 보수 세력을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는 태생적 한계로 인해 종족담론을 끌어들일 수 없다. 또 2MB 정권은 참여정부의 '황우석 현상' 같은 국가지도자와 민족의 구세주가 일치하는 통일된 내셔널리즘도 확보할 수 없다. 그렇지만 2MB의 대외정책 실패와 일본의 우경화는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국내의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하고 그 세력을 결집시킬 것이다. 그리고 이 세력들은 2MB의 우군보다는 대항세력이 될 공산이 크다.
 
  촛불이 시작된 이래 '민주-반민주'의 구도로 나타났던 대립구도가 10년을 더 후퇴해 '매국노-민족'의 구도로 전환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아마 이런 구도는 한일협정 반대시위를 주도했던 2MB 자신이 더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상당부분 위험한 조짐이 보인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독도 관광 붐이 일어나고, 독도 관련 영화가 개봉되고, 독도 관련 법안들이 무더기로 발의되는 '독도 마케팅'은 매우 우려스럽다. 이런 경향이 지속된다면 촛불시위에서 다양한 형태로 막연하게 표출된 내셔널리즘은 독도라는 구체적 대상을 만나 본격적으로 발현될 것이다.
 
  문제는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대립 구도는 양자가 서로를 '반국가 세력', '매국노'로 규정하는 극한의 대립 속에서 양자를 포괄하는 내셔널리즘 자체의 상승작용을 유도하며, 이렇게 강화된 내셔널리즘으로는 어느 쪽이 승리하든 대립의 발단이 된 내우외환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해결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아니,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데에 일조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이데올로기에 갇힌 대외정책의 막장은 부시 행정부의 지지율이, 국가 혹은 민족의 이름으로 호소된 총화단결의 끝은 계급지배의 강화로 귀결된, 레이거노믹스의 파탄이 이미 증명해주고 있다.
 
  아마 앞으로 2MB 정부가 무엇을 하든 그 태생적 한계와 특유의 촌스러움으로 인해 단결된 국민의 동원에는 실패할 것이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는 전체주의 사회의 도래가 아닌, 앞에서 말했다시피 국가주의를 내세우며 억압하는 지배블록에 대한 도전연합의 저항이 민족주의를 표방하며 전선이 내셔널리즘 내에서 형성되는 경우이다. 이 상황이야말로 정부가 주권의 두 요소인 대외적 자율성-사실 2MB 정권 하에서는 이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과 대내적 수행력 모두를 상실하는 순간이며 대항세력마저 내용물이 다를 뿐 형태는 같기에 그 미래마저 기약할 수 없는 캄캄한 상황일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요구되는 자세는 각자가 각자의 영역에서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정부는 외교문제를 빌미로 주제넘게 시민사회에 대해 윽박지르는 것을 중단하고 본연의 임무인 외교에 충실하게 임하고, 시민들 역시 독도관광 따위의 쇼에 열광하기보다는 정부의 외교정책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그에 대한 의견을 표출해야 한다. 2MB 외교정책의 문제점은 예전부터 수없이 지적되어 왔지만 그것을 방치한 건 우리들 자신이다. 사실 우리가 일장기를 태운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일본 정부의 행동을 바꿀 수는 없는 자위에 불과하다는 것은 스스로가 잘 알고 있지 않는가? 독도 관광 한번으로 숭고를 체험하기에는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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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가 '매국노 대 민족'의 구도로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는 진즉부터 하고 있었지만-촛불시위에 태극기가 나오고 미국에 대한 불명확한 입장 속에 민족주의적 색채가 덧대어지면서-독도 문제 이후 더욱 심각해져버린 것 같다.
그런 구도로 빠져버려 민족주의 담론내로 포섭되는 순간, 한국이나 동아시아 전체에 상당한 부담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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