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의 구시가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관광지 벨트'랄까, 톱카프 궁전-아야 소피아 박물관-

지하 저수조-블루 모스크로 이어지는 그 구역에서 가장 맘 편하게 둘러볼 수 있는 곳은 바로

블루 모스크다. 아야 소피아 박물관과 나란히 마주보고 있으면서도 붉은 빛이 감도는 그것과는

달리 훨씬 포근한 푸른빛 감도는 잿빛 건물이 온화한 데다가 주위에 벤치나 녹지공간도 많이

품고 있어서 쉬기에 좋다. 게다가 내부를 구경하는 것도 공짜, 아무래도 블루 모스크가 가장

맘을 풀어둔 채 쉴 수 있고 또 그만큼 기억도 많이 남길 수 있는 이유다.

블루모스크의 이름이야 당연히 푸른빛이 은은한 이 외관에서 비롯했겠지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꾸물꾸물한 하늘 아래서 바라보니 오히려 살짝 칙칙한 잿빛이나 회색빛의 느낌이 강하다. 그렇지만

그 파스텔톤의 한결 가라앉은 색감이 여전히 번뜩이는 황금빛 장식들과 어우러져 던지는 운치란 

또 나름의 매력이었다. 얄쌍하게 뻗은 네 개의 미나렛에서 풍기는 세련되고 단아한 느낌은 한결같다.

블루 모스크 앞 벤치가 비 때문에 축축해지고 나니까 사람들 대신 고양이들이 활개를 쳤다.

인류의 엉덩이가 드리워져야 할 벤치에 뽀송뽀송 곱게 살이 오른 고양이 발바닥이 종종 찍혔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귀찮다는 듯 느적대며 자리를 피하는 고양이 녀석.

옆의 아야 소피아 박물관 2층 창문에서 슬쩍 내비치는 블루모스크의 미나렛과 중앙 돔의 모습.

많이 느낌이 다른 두 개의 거대한 사원이 서로 나란히 붙어 있으니, 게다가 한놈은 파랗고 한놈은

빨개서 좀 우습지만, 그래도 한 눈에 두 건물을 바라보면 꽤나 흐뭇한 광경이 된다.

지도로 바라본 이스탄불의 구시가. 맨 오른쪽 아래의 블루모스크, 그 위로 예레비탄 사라이,

그 위로 아야 소피아 박물관, 그리고 톱카프 궁전까지 딱 하루동안 돌아보기에 좋은 알짜코스.

사실은, 블루 모스크라면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이라도 맨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라볼 수

있겠다는 게 솔직한 본심이다. 며칠짜리 코스가 어디 있나, 그냥 맘이 채워질 때까지 묵묵히

이리도 돌아보고 저리도 돌아보고, 다시 또 뒤로 돌아보기도 하는 게 여행.




Kenooz 레스토랑서 기필코 저녁 한 끼 먹어볼라다가 오늘은 또 '오늘부터 내부수리'란다. 결국 벼르고 별렀던 대충야자

밀크 쉐이크는 맛도 못보고, 걍 오다가다 대추야자만 실컷 따먹었다. 어찌나 달콤한지 나중에 배가 아릴 정도..

Shali에 올라 석양을 보려는데, 앞에서 파블로와 마르코가 내려온다. 이미 끝났대나..그래도 정상에서 벌겋게 불붙은

하늘을 보며 시와의 마지막 해를 잔뜩 감상해줬다. 생각해 보면, 아침에 일어나 해뜨는 것보고 미친 것처럼 사막으로
 
내달려 하염없이 사막을 바라보다가, 저녁이면 해지는 것 보고 별 총총한 하늘을 원없이 구경하다가 자고.

요새 계속 그런 식이다. 그렇다고 전혀 식상해질 줄 모르는 이런 스케줄..언제 또 가능할지.

샤워하고 버스를 탔는데 얼마 못가 차가 '퍼졌다'. 고친다고 운전사가 꾸물꾸물 움직거리는 새 버스 앞 아스팔트 도로에

누워 어젯밤만큼 멋진 밤하늘을 뚫어져라, 눈깜빡이는 것도 아까워하며 바라보았다. 별똥별은 역시 그냥 떨어져라,

냅뒀다. 눈에 담아가고, 마음에 담아가고, 넘칠 만큼 길어가고 싶은 이미지와 감흥과 감각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시와는.


차가 고장나서 한 30여분 아스팔트 바닥에 대자로 누워 칠흑같은 밤에 한가득 펼쳐진 별들을 잔뜩 바라본 거 빼고는,

좀체 정신을 못차리고 잠만 집요하게 청하고 만 밤 버스여행이었다. 문득 잠이 깨서 눈뜨니 왠 생경한 버스 터미널,

알렉산드리아란다. 6시 20분. 바다내음과 잔망스러운 모기떼들을 보면 알렉산드리아 같기는 한데, 사람들 표정이나

공기가 영 낯설다. 굳은 표정과 어수선하고 차가운 공기. 시와의 분위기나 호흡에 꽤나 익숙해져 있었던 게다.

그래도 친절한 아저씨 한분이 시디가베르 정류장 근처 내가 가려던 호텔까지 안내해 주어 금방 체크인할 수 있었다.

체크인하고 샤워 한번 하고는 바로 나와서, 포트 콰이트베이. 등대의 모습은 찾을 길 없고 그저 귀여운 외양의 요새만

서 있는데, 무엇보다 다시 혼자가 되어 사진찍어줄 사람도 없어지고 얘기할 사람도 없어졌단 게 좀 아쉬웠다. 그런 거다.

누군가에게 등을 보여주고 등을 보고..그렇게 나란히 서는 것. '드래곤 라자'의 후치처럼 그렇게 등을 보여주는 사람을

왕이라 생각지는 않더라도.

이제 어디로 가볼까. 생각해보면 은근히 빡시게도 여기까지 왔다. 좀 쉬엄쉬엄, 오늘은 그렇게 한 호흡 골라낼 생각인데

또 모르겠다. 트램을 한번 갈아타고 '폼페이의 기둥'을 봤다. 날 일본인이라 오해한 이집션이 일본어 한번 실습해 보려고
 
말을 걸었다가 함께 도서관이랑 기둥이랑, 사진도 번갈아 찍어주고, 근데 막상 또 한명이 생기니 불편하다. 해서 먼저

보내고, 혼자 카타콤을 향했다. 일종의 지하 공동묘지랄까, 죽음의 냄새가 짙게 서린 곳.

일본인 집단1과 프랑스 패키지집단2가 계속 앞길을 가로막아서 아예 확 뒤처져 유유히 돌아볼 생각도 했지만,

내부가 워낙 공포물스러웠던지라. 시와에서처럼 미라 한두어구 있었더라면 정말 식은땀이 흘렀을 게다.

지상으로 다시 나오니 폭싹 지쳐버렸다. 마땅히 걸을 거리도 아니고 해서, 택시 잡고 7EP 부르는 걸 4EP로 깍았다.

방금 점심삼아 먹었던 망고주스-거의 중독수준으로 마시고 있다..-랑 꿀 들어있는 빵 값이 빠진 셈이라고 어찌나

기쁘던지.ㅡㅡ; 아저씨가 영어를 잘 못하는데, 대우/현대차 지나갈 때마다 알려주며 한국좋다고 그러길래, 나도 이집트

좋다고, 멋지다고 엄지손가락을 쭉쭉 뻗어줬다. 그레코로망박물관. 로마식의 유물은 터키서도 많이 봤었지만, 마치

카타콤에서 봤던 아누비스가 로마틱한 옷을 입고 있었듯이 조금씩 융합된 유물들을 감별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던 듯.

이집트 유적도 그렇고.

지중해 도시로 이집트의 대체적인 분위기와 상당히 이질적인 알렉산드리아마저 모스크와 미나렛들은 빼곡했다. 그중에

이 사원은, 중세까지의 황금기를 거치고 이민족들의 지배를 몇백년간 받음서 황폐해진 이집트에서 근대에 들어와 다시금

피워낸 이슬람 건축문화의 백미라고 하던가. 어찌보면, 고대 이집트에서 탑처럼 세워낸 오벨리스크는 미나렛에 상응하고,

히에라글리프(상형문자)를 빼곡히 채워낸 건물 벽면은 모스크에 잔뜩 새겨진 코란문구와 아랍어에 상응하고...그런

식으로 꾸며내는 방식을 이어온 듯하다. 물론 그 내용은 고대 이집트 문명과 이슬람 문명으로 판이하게 달랐다지만,

그걸 담아내는 그릇, 그것을 위한 상상력은 역시나 역사적인 맥락을 이어왔단 추측..어쨌거나 우리나라에도 이런 멋진

모스크가 잔뜩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막판에는 시든 풀처럼 지쳐서 아무생각없이 숙소로 돌아와 샤워하고 잠들어 버렸다. 한 세시간쯤. 그러고 보니 여태껏 푹

낮잠을 자본 게 시와의 야자수 정원에 묶여있던 해먹에서 한번뿐이었다. 생각보다 강행군이었는지도. 자고 일어나 모처럼

-무려 나흘만에-돈 계산을 해볼까 하고 다 뒤적여 꺼냈더니 복대 안의 달러가 모자란다. 최근에 정산해 본 이래로 여행자

수표(T/C) 한장 환전한 것밖에는 없는데, 허리 쌕은 잘 때도 껴안고 잤는데, 떼어놓은 적이라곤...언제지...? 어디서, 누가
 
그랬을지, 누가 그랬을 가능성이 있는지 생각해 보기도 싫다. 여태 좋은 사람들만 만나고 좋은 기억들만 쌓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내가 어디에서 흘린 게다.


저녁 한끼 덜먹고 돈 덜 쓴다고 복구될 것도 아니고, 걍 지금까지처럼 크게 구애받지 않는 선에서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근데 결국 저녁은 1.5EP(300원짜리) 망고주스랑 1EP(200원짜리) 펠라페. 윽..내 나흘치 노가다 일당.


어딜 가나 말을 걸어주고 친구라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다. 포트 콰이트베이에서나, 폼페이의 기둥에서나, 그레코로망

박물관에서조차. 때론 무지 고맙고 재미있고 그런데, 때론 내가 혼자 조용히 다이어리를 정리하거나 론리플래넷을 뒤적일

여지조차 치고 들어온다는 사실에 짜증이 살짝 일 때도 있다. 여행자 수준의 영어를 되풀이하며, 도식적이라 할 만한

자기 소개와 인사말을 건넨 후 이집트 좋은지, 이 지역 좋은지 계속 물어보는 그들.


여행, 확실히 친구랑도 젤 마지막에 해야한다는 이벤트인 건 확실하지 싶다. 그래도 여기서 만난 사람들하고 이렇게

저렇게 서로 맞춰가면서 말을 섞는 것도 나쁘진 않다. 다만 정말 계속 붙어다닐 수 있는 한 명 정도 있으면 훨씬

좋겠단 생각도 들지만. 참, 파블로와 마르코를 또다시 알렉산드리아 거리에서 조우했다. 어찌나 반갑던지,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그들 남매에게 펄쩍 안기듯 악수했다.





이슬람교는 신의 외양을 흉내낸 것들에 주의가 기울여지는 순간 우상숭배로 빠질 수 있다면서 조각상이나 징표를

빌려 신을 기리는 걸 경계할 만큼 분별있는 종교라고 생각한다. 모스크에 가도 화려한 스태인드글라스나 장식,

조각상들은 보이지 않고, 다만 코란 말씀들을 적어넣은 아랍문자들이 그림처럼 장식되어 있을 뿐. 그런 맥락에서

모스크가 주변 건물들에 포위당한 듯 압도당한 그림이 나오는 건 어떻게 생각할지 잘 모르겠다. 어쩜 크게 괘념치

않을지도 모르겠고, 아님 반대로 그렇게 독실하게 따르는 신의 처소 내지 전당을 압박하는 것에 버럭할지도.


보통 이렇게 띄엄띄엄 놓인 건물들 사이에서라면, 모스크가 아무리 작고 야트막해 보인다하더라도 하루 다섯번씩

독경 소리를 울려퍼뜨리며 기도시간을 알리는 미나렛이, 마치 물 밖으로 튀어나온 스노클링처럼 톡 튀어나와서는

모스크의 존재를 알리게 된다.

그렇지만 이미 한껏 높아져 버린 카타르 도심의 공사현장 틈바구니에서는 미나렛이 제아무리 쫑긋대봐야

잘 눈에 띄지도 않는다. 외려 저 괴물처럼 커다란 건물 꼭대기쯤에서 신에게 기도드릴 시간임을 알리는 게

더 웅장하고 그럴듯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작고 약해보이는 모스크가 금세라도 밀쳐질 거 같다.

이 건물은 뭔가...세계 몇 번째로 높네 어쩌네 말이 나오고 있을 거 같다. 아직 건물이 다 올라간 건지, 아님 미처

다 올리지 못하고 여전히 올리고 있는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주위에 크레인이 없는 걸로 봐서 이미 다

올릴 만큼 올린 걸까. 저 높이쯤임 만족하고 세계 몇 번째니 하는 섹시한 광고문구와 타이틀을 거머쥐는 건가.

근방의 건물들도 모두 공사중. 카타르 도하는 공사중. 이렇게 짧막하게 이야기해도 별로 무리가 없지 싶을 정도로

차암~ 여기저기서 공사중이다. 도심을 지나는 도로가 대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모를만큼 길을 중간중간 막아놓고

돌려놓으며, 공사를 벌이고 있었다.

사진으로 카타르의 열감과 열풍을 전할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뿐. 저 분들이 얼마나 더울까..그래도 햇볕에 직접

닿지만 않으면 조금은 서늘한 기분마저 느낄 수 있기에 머리고 팔이고 온통 천으로 가려 놓은 듯 하다.

노가다 현장에서 몇 달 일을 해본 바로는, 일 자체가 고되다기 보다는 그 먼지날리고 위험한 작업환경이 더

고되었던 것 같다. 다만 드럼통에 목재들 넣고 모닥불을 쬐가며 작업해야 할 만큼 추운 날이라거나, 햇볕이 너무

뜨거워 오후 한시에서 세시정도까지는 아예 그늘을 찾아 쉬어버리는 날에는 날씨 그 자체도 무지 힘들었다.

여긴 어떨까. 7,80년대, 그리고 지금도 이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어떨까.

도심을 벗어나 시 외곽쪽으로 조금만 나서면 이렇게 여유있고 설렁설렁 공간을 쓰고 있는 건물들이 천지삐까리다.

삼각뿔 형태의 담장, 삼각뿔 형태의 건물 외관. 그리고 빨간 삼각뿔이 뒤집어진 형태의 못알아먹을 교통표지판.

도하에 면한 아라비아해의 파란 바다를 내려다보는 저 집들. 여긴 딱히 모래사장을 찾아 걷고 싶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바다 앞에 지어진 집들은 좋을 거 같다. 낚시도 하고, 보트도 타고..가끔 살짝 잊어버리곤 하는데, 사막

근처의 바다라고 해서 바다까지 사막처럼 황량한 건 아닐 거다. 이집트 여행때 휴양도시 다합에서도 느꼈었지만,

바다는 어디에서든 바다다. 온갖 빛깔의 어패류와 생명들이 가득한.

물론 마냥 황량하게만 보이는 사막도 사실은 조심조심 생명들을 품고 있다.

이건 뭘까. 카타르에서 이용해본 대중교통이라곤 택시가 전부여서, 저게 일반인들이 이용하는 버스라고 확실히

단언하진 못하겠다. 왠지 스쿨버스의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흔치 않게 강한 색을 가진 집이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살짝 흐끄무레한 색깔을 띄고 있거나 오랜시간 닳아버린

모랫빛깔을 닮아 있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색 자체가 강하진 않더라도 뭔가 선명하고 단호한 느낌의 건물이라

맘에 들었다.

펄 카타르에 지어질 건물을 광고하는 대형 포스터랄까. 펄 카타르가 다 완성이 되면 저렇게 되는구나..빨간 원색이

좀 많이 쓰이고 녹색 정원이 건물 사이의 공간을 꽉 메운.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색깔이 좀더 밝고 선명해지고,

녹색이 훨씬 많이 눈에 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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