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열두시가 넘어 텅빈 방콕의 거리, 늦게까지 재즈바에서 공연을 보고 맥주를 마시다가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새 비가 쏟아부었는지 아스팔트 바닥엔 가로등 불빛이

그렁그렁 번져 있었다. 파란색 조명이 애꾸눈처럼 노려보는 뚝뚝의 뒷자리에서 나 역시

질수 없다며 운전수 아저씨 뒷통수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그러다 문득 떨궈진 시선, 풉- 하고 짧게 터져 버렸다. 아저씨가 방구쟁이였단 말인가.

누군가 뒷좌석에 손님이 탔고, 아저씨는 방구를 트셨고, 견디지못한 손님이 괴로웠고,

마침 어디선가 산 방구금지 스티커가 있었고, 복수하는 맘으로 붙이고 내린 건가.

뒤에 붙은 스티커는 아는지 모르는지, 아저씨는 계속 달렸다. 파란조명에서 뿜어나온 시선은

쓰리쿠션 돌듯 내게 튕겨 다시 아저씨 뒷통수로. 요란스런 폭음이 문득 멈췄고, 파란조명은

빨간조명 두개와 어깨를 걸었다.




롤루오스 유적군에서 씨엠립 시내까지는 약 15킬로, 뚝뚝을 타고 열심히 달리면 반시간이면 도착하는 듯.

교통 정체도 교통 신호도 딱히 발견치 못했던 씨엠립 근교의 도로들에서 그래도 가장 많이 발견해 냈던 건

'아이 조심'(을 의미하는 듯한) 표지판.

뚝뚝, 자전거, 오토바이, 트럭, 승합차, 승용차..탈 것들이 뒤엉킨 채 차선도 없고 중앙선조차 없는, 게다가 더러

포장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길 위를 종횡한다. 시장 주변을 지나며 조금은 복잡해지는 도로는,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가로등조차 없어 꽤나 위험해질 수 있다.

뚝뚝의 생김이란 이렇다. 오토바이 뒷쪽을 잘라내 버리곤 이륜차랑 연결한다. 쇼바 따위 특별히 갖추지 않은

이륜차인지라 노면의 굴곡이 고스란히 엉덩이로 치받아 올라오지만 나름 푹신한 쿠션을 배려해 놓은데다가

햇볕을 막아주는 차양이 믿음직하니 꽤나 만족스러운 탈 거리다.

정말 놀랐던 장면, 워낙 순식간에 지나간 일이라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지만, 저 오토바이는 무려 세명이 타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마도 계속 맞고 있는 듯한) 수액 링겔병을 몸소 받쳐 들고 있는 아주머니 한분과

젊은 여성 둘이다. 자신이 맞고 있는 링겔을 저렇게 높이 들고 오토바이에 낑겨 타고 가시다니, 굉장히 급한

무슨 일이 있거나 대장부이신 거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는 듯한 자전거도 지나간다. 마대자루 네 개를 자전거 뒤에다가 이어놓았는데, 저 분이

청소부는 아닌 거 같고 어쩌면 자전거를 탄 '넝마주이' 분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참 오랜만에 기억해내는

단어, '넝마주이'. 88년 올림픽을 앞두고 부쩍 그 단어를 많이 듣고 썼던 것 같은데.

꽤나 신선한 충격을 주고야 만 저 티셔츠의 문구. No Money No Honey. 간결하면서도 직설적이다. 그리고

와닿는다. 뭔가 재밌다고 생각했더니 시장 내 판매대마다 색색깔로 팔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길거리에서 이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적잖이 봤더랬다. 말하자면 씨엠립은 지금 'No Money

No Honey' 티셔츠 홀릭중인 건가.

재래시장에서 발견한 '거칠은 한국어' 표현.

밤에는 빵빵하게 틀어놓은 팝송을 들으며 느긋하게 쉬어 앉아 라임 모히토(Lime Mojito) 같은 칵테일을 홀짝댈

수 있는 공간이지만, 아직 해가 중천에서 내리쬐어대는 시간대인지라 조금 기다려야 한다.

(그게 어느 부위던 간에) 원숭이 성분으로 만든 연고인 줄 알고 깜짝 놀랬었다. 점원을 붙잡고 이게 정말

원숭이로 만든 거냐고 일부러 묻기까지 했는데, 일부러 물어본 보람이 있어 이건 이름만 'monkey balm'일뿐

실제 재료는 온갖 허브들이고 원숭이같은 동물성재료는 전혀 들어있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캄보디아#3. 앙코르왓 3일 코스짜기.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외곽지역의 유적들을 둘러볼 작정이라, 아예

하루종일 뚝뚝을 대절했다. 씨엠립 시내에서 분쪽으로 약 40킬로미터를 달려야 나오는 '반띠아이 쓰레이'라는

곳 주변과 씨엠립 남동쪽으로 약 15킬로미터를 달려야 나오는 '롤루오스 유적군'까지 가기로 하고,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25달러에 흥정을 마쳤다. 원래 씨엠립 시내 근처에서 종일 뱅뱅 돌아도 15달러 정도 한다고 하니

나쁘지 않은 가격이다. 여행자의 안전을 위해, 그리고 아마도 유적을 돌아보고 나와서 바로 찾기 쉽도록

뚝뚝 운전사마다 저렇게 등록번호가 적혀있는 조끼를 입고 있다.

씨엠립에 흔치않은 보행 신호등. 여긴 아직 교통법규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나라다. 

씨엠립 시내에서 종종 마주칠 수 있는 한국어 광고판. 시원한 소주가 있다고 하지만, 글쎄...캄보디아에 왔으니

캄보디아의 술을 마셔주는 게 인지상정.ㅋ

오토바이를 개조해 삼륜차로 만든 뚝뚝이 부앙~ 오토바이 엔진의 얇고 경망스런 소음과 함께 달려나가는데

전날 자전거를 타고 헥헥대며 달리던 거리가 금세 뒤로 멀어진다. 이렇게 길가에서 다그닥거리며 달리던

마차도 순식간에 뒤로 물러나버리는 정도의 속도. 뜨거운 햇살은 차양이 가려주고 시원한 바람이 맹렬하게

들이치니 한량놀음이 따로 없다.

앙코르 왓 우쭉에 쁘라삿 크라반, 그 위의 반띠아이 끄데이, 쓰라쓰랑을 거쳐 북쪽으로 내달리기로 했다.

쁘라삿 크라반은 씨엠립 북쪽 앙코르 유적지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앙코르톰/앙코르왓에 가까이 붙어있는

힌두교 사원이다. 정갈한 인상의 담홍색 벽돌탑이 다른 잿빛 돌덩이로 이루어진 사원들과 다른 산뜻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연꽃 형태를 형상화한 모양의 건물이야 비슷하다고는 해도 색감과 따스한 벽돌의 질감때문인지

영 다른 느낌이다.

가운데 있는 중앙 성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와서 향을 피우고 꽃을 봉헌하고 소원을 비는 곳으로 쓰임이

있었다. 이런 건 '문화유산'에 대한 훼손인 걸까 아니면 문화유산 이전의 '삶의 공간'으로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고 해야 하는 걸까.

벽돌탑 안에는 네 개의 팔에 각각 원반과 연꽃, 법라패와 곤봉을 쥐고 있는 비슈누가 있었다. 원반은 비슈누의

가장 중요한 무기이자 상징으로, 실제 고대에는 전투 무기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곤봉 역시 오랜 연원을 가진

무기임에는 틀림없으며, 연꽃은 해가 뜨면 피고 지면 봉오리를 닫는 속성을 따서 '세계' 그자체를 상징한다고.

법라패란 건 뭔지 모르겠는데 무슨 악기인가 보다. 법라패를 불면 신들은 힘이 생기고 악마는 두려움에 떨게

된다는 설명이었다.

어라, 근데 무수한 팔을 가진 비슈누들이 조각된 벽면을 따라 눈길을 훑어 올리다 보니, 천장이 뚫려 있었다.

간결한 형태의 피라밋처럼 조금씩 주둥이를 오무려가는 벽면 위쪽으로부터 쏟아지는 하얀 햇살.

캄보디아어인가, 아니면 이전에 쓰였던 문자인가, 사원의 문틀에 빼곡히 조각되어 있던 기기묘묘한 글자들.

글자라기보다는 무슨 함축적인 그림이나 아름다운 기호 같다.

아침 일찍부터 나선 덕분에 사람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둘러볼 수 있었다. 대략 삼십분, 휘적휘적 걸으며

아직은 기분좋게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구경하고 나니 조금씩 여행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 소리는 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왓 사원군의 꽃인 '반띠아이 쓰레이'로 향하는 뚝뚝을 운전하는 '청'이

부르는 콧노래입니다, 라는 식으로 소개하고 싶었는데. 온통 바람소리 뿐이다.


앙코르왓 중심부에서 한 40킬로미터를 달려야 나오는 그곳, 마침 정오에 가까운 시각이라 지글거리며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아스팔트 위에는 우리 밖에 없었더랬다. 청이 뒤집어쓴 헬멧이 고작 한뼘도

안되는 그림자만 짙게 드리우는 중천의 태양, 오토바이가 거스르며 달리는 바람조차 뜨거웠던 그 때.


뼈에 추위가 저며드는 때가 아니라 해도 무시로 떠오르는 행복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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