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군부독재의 총칼과 맞선 광주, 전남 애국시도민들이 자유와

헌정수호의 결의로 굳게 뭉쳐 민주의 대**를 걸고 도청 탈환의 처절한 피의 항쟁을 전개한 곳이다.

더러는 찔리고 더러는 *고 무자비한 신군부의 탱크와 총칼에 희생된 채 수많은 사상자에 이르기까지

이 자리는 시산시해의 격전장을 이루었다. **하여 도청앞 광장 그날의 절규가 메아리치는 민주**의

투쟁현장으로서 마침내 역사를 넘어 죽음을 넘어 새로이 부활하는 한국민주주의의 제1번지

'5.18 민주광장'으로 명명되었다."

대리석 위에 새겨진 글자조차 훼손되고 마모되어서 보이지도 않는 추모탑, 그조차도 전남 구도청을

칭칭 휘감은 장벽 안 쪽에 격리된 채 잡풀만 무성해 있었다. 5.18 민주광장의 의의가 채 제대로

펼쳐지지도 않은 채 여전히 진상규명 책임자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벌써 저렇게 뒷방 어딘가로

밀려난 채 녹슬고 잊혀지고 지워지는 건 아닌가 싶어 마음이 착잡해졌다.

80년 광주, 대학교 때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책으로 본격적으로 접했던 그때의 그 사건,

그 처절했던 마지막 순간에 시민사수대가 지키던 옛 전남도청 청사. 최근 그 청사 건물이 너무 낡아

붕괴의 위험까지 있다고 하여 철거하자는 측과 보존해야 한다는 측의 의견이 맞서고 실력행사까지

있었다던가. 결국 보수, 보존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니 다행이지만 아직 문어대가리와 물태우가

살아있는 와중에 '인권', '민주주의'같은 가치에서 '문화'로 넘어가버리는 건 좀 걱정스럽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 10점
전남사회운동협의회 엮음, 황석영 기록/풀빛

 


전남도청에서 쭉 이어지는 금남로, 5월 21일의 계엄군 발포로 54명이 사망하고 500여명이 부상한 걸로

추정되는 피비린내 가득한 공간. 그렇게 시민들은 스스로 무장하기 시작했고, 시민 봉기가 무장항쟁으로

전환되어 광주는 22일부터 27일까지 짧지만 의미심장한 꼬뮌의 역사적 경험을 갖게 되었다. 27일 새벽,

최후의 시민군 14명이 희생되면서 도청을 빼앗기며 끝나버린 광주민주화항쟁. 그렇지만, 아무리 지금

보수공사 중이라곤 하지만, 7,8년전에 왔을 때도 그랬듯 참 남아있는 것들이 없다.

그래도 그때 왔을 때는 도청의 외벽에서 총탄의 흔적도 발견하고, 나름 비장한 의미를 가득 품고 있는

일종의 민주화 성지의 느낌이 가득했는데. 저 초현대적인 가림막이 치워지고 나서 다시 나타난 모습도

그런 아우라가 남아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컨테이너박스를 재활용해 만든 쿤스트할레 건물에

올라 바라본 도청, 근데 이거 도청의 이미지를 상당부분 가리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 여기가 도청 건물의 정문이었다. 가림막 안쪽으로, 그 바깥의 공사현장을 구획한 높다란 장벽 너머로

보이는 하얀 색깔의 정문. 여기 어디선가 총탄 자국을 찾았던 거 같은데 아무리 망원렌즈로 땡겨서 찾아봐도

잘 모르겠다. 어디였더라...못 찾겠다. 도청 위에 내걸린 태극기만 힘없이 나풀거리고 있었다. 그래, 80년만

해도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시위에 나섰었다.

"전남도청 본관. 1930년 건립. 이 건물은 관공서 건물의 설계와 시공을 일본인들이 독차지하던 시기에

한국인 건축가 김순하가 설계와 시공 과정에 참여하여 완성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건립

이후 70년 이상 전라남도의 행정적 중심이 된 곳이며, 1980년에는 5.18민주화운동의 산 현장으로서

전남 지역 근현대사의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정면에 수직으로 나란히 3개의 창을 설치하고 창문

사이에는 코린트 양식을 단순화한 주두로 장식하였는데, 이는 당시 건축물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의장이다." 1930년에 건축되었는지는 몰랐다. 굉장히 오래된 근대 건축물인 셈이다. 


붉은 연꽃이 커다랗게 피어나 있는 도청 앞 분수대, 천천히 위아래로 일렁이는 꽃잎의 빛깔이 너무

선연하다. 뒤로 보이는 도청 건물이 언제 가림막을 벗고 새롭게 단장된 형태를 내보일지 모르겠지만

다시 와서 한번 확인해보고 싶다. 민주화의 성지로, 80년 광주의 잊지말아야 할 상흔을 그대로 후세에

전달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교육할 산 현장으로 제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그리고 이렇게 공사현장 곳곳에 섬처럼 격리되어 있는 조형물들, 광주의 사건과 그 정신을 기리고 있을

추모탑이니 조각이니 하는 것들을 어떻게 다시 사람들 앞에 풀어놓는지 꼭 확인해 보고 싶다.






일정을 고민하다가 몽마르뜨 언덕을 오르기로 했다. 비가 주룩대는 날씨에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볼 수는 없다

싶어서 애초 오랑주리 미술관을 갈라고 하다가 맘을 접었다. 좀 이유같지 않은 이유지만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은

왠지 햇살 눈부시고 풍경이 화사한 그런 날에 봐야 할 것 같았다.


일부러 살짝 돌아갔다. 메트로 12호선 아베스(Abbesses)역에서 내려서는 크게 에둘러서 사크레 쾨르 성당으로

오르기로 했다. 조금씩 가팔라지는 경사를 체감할 수 있던 그 길에는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진 주택들이 한채씩

나타났고, 특이한 상점도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아침 시간이라서였을까. 문을 닫고 있던 한 가게 안에는 온갖 종류의 고양이 소품들이 쇼윈도우 밖을 흘끔대며

구경하고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 꼭 들러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사크레 쾨르를 지나 몽마르뜨언덕 위의 골목길들을

이리저리 종횡하다가 깜빡 잊고 말았다.

조그마한 컴팩트카가 주차되어 있는 뒤에는 둥글둥글한 벽돌로 지어진 주택이 서 있다. 차도나 인도의 포석도 그런

벽돌로 깔려 있어서, 걸을 맛이 나는 골목이었다. 벽돌집 옆구리에 붙어있는 파란색 표지판은 거리 이름이 적힌

표지판인데, 저 건물의 정면과 측면의 거리가 뭐라는 것을 알려주어 길찾기가 정말 편하게 해 준다. 무슨 거리와

무슨 거리가 교차하는 곳에 놓인 건물, 이라고 하면 금방 찾는 이치다. 모든 건물에 저런 표지가 붙어 있어서

프랑스 현지인들도 거리이름이 빼곡히 적힌 지도 하나만 있음 어디든 잘 찾아다닌댄다.


창문 밖의 빨간 꽃들은 아마 제라듐일까, 비가 부슬거리는 날씨에 새빨간 꽃잎이 선연하다.

경사가 어느 정도 실감이 될 무렵, 나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언덕을 오르는 여행객들이 보인다. 아마 에둘러

크게 돌아 오르던 내가 다른 길에서 오르는 사람들과 합류하는 지점이지 싶기도 하다.

몽마르뜨가 애초 예술가들의 거리였다던가. 예술가들에 대한 고정관념이랄까, 왠지 담배를 즐기고 까페에서

에스프레소와 와인을 줄창 마셔댔으며, 돈이 떨어질 때면 화구를 들고 광기에 휩싸여 그림을 그리고는..

내다 판 돈으로 다시 술을 사 마시고 룸펜처럼 지냈을 거 같다. 글쟁이였대도 별반 다를 거 같지 않고.

그런 사람들이 저런 까페 안에서 뿌연 담배 연기를 자욱하게 내뿜으며 몇시간이고 죽치고 있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CAFE라 하면, 한국과는 달리 단순히 커피나 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저녁이 되면 술도

파는 주점의 개념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좁은 길이 얼기설기 얽혀 있어서, 이리저리 발걸음을 마구 갈지자로 흩어놓아도 어디선가 사크레 쾨르 성당의

하얀 돔을 마주치게 되었다. 아무리 여행이란 게 방향 감각을 내팽개치고 발길 닿는 대로 헤매면서 하는 거라지만

최소한 파리에서, 이렇게 길이 복잡하게 나 있고 미로 같은 곳은 처음 봤다. 올라갈 때야 사크레 쾨르 성당의

흰 빛을 따라 오르면 되었다지만, 기실 내려갈 때 영 헤매고 말았던 거다.

드디어 근접 촬영. 사크레 쾨르, 신선한, 아니 '신성한 심장'이라는 뜻이다. 어느 가이드북에서는 성심 교회..라던가,

그런 식으로 번역해 놓기도 했지만, 사크레 쾨르 성당이라고 하는 게 자연스럽지 싶다. '신성한 심장 성당'이라는

뭔가 영험할 듯한 이름을 갖고 있지만 그 역사나 착공 배경은 기실 그다지 신성하지는 않다.

빠리 꼬뮌의 비극이 있었던 1870년을 지나며, 아마도 비관적이고 삶에 대한 염세에 젖어 있었을, 그리고 프랑스

중앙 정부에 대한 거부감과 반감이 여전히 가슴 속에서 부글대고 있었을 파리 시민들을 종교적 차원에서 감싸안고

달래고자 했을 거다. 그걸 좀더 고상하게 얘기하건대, 불행한 시대를 거친 가톨릭 교도의 마음을 달래줄 목적으로

지어진 성당, 그게 바로 사크레 쾨르 성당이라는 얘기. 

정문을 마주보고 섰다. 알고 보니 내가 길을 어떻게 잡고 갔는지 사크레 쾨르 성당의 등덜미를 보고 왔던 게다.

사크레 쾨르 주위를 반 바퀴 돌아 정면에 섰더니, 내가 돌아온 길 말고, 정면을 보고 바로 올라온 여행객들이 이미

바글바글하다.

성당의 첨탑이나 하얀 빛의 벽 같은 부분들이 왠지 이슬람 사원을 연상케 했다. 성당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다소

전형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있지 않은가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저 둥글고 높은 돔이 터키에서 봤던 '아야 소피아

사원'이나 '블루 모스크'를 떠올리게 했다. 하기야 그런 터키의 건물들은 지배세력의 종교에 따라 그때그때

가톨릭 성당과 이슬람 모스크를 넘나들며 개축되고 변신했던 거니까 예외라고 쳐도, 사크레 쾨르는 왜 그럴까.

다소 고답적이고 추상적인 차원에서 굳이 답을 하자면, 문명간의 교류를 통한 건축 문화의 융합?


옆에서 어떤 귀여운 일본 아가씨가 혼자 낑낑대며 셀카를 찍고 있길래, 말을 섞어 보았다. 매우 짧은 영어로 그녀는

힘겹게 몇 마디를 했는데, 회사원이고, 파리에는 그저께 왔으며, 내일 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얘기만

좀더 잘 통했어도 같이 다니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같이 사진도 찍어주고 잘 돌아다녔을 텐데, 소통이 거의

불가한 지경이었어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는 여행 잘 하라며 안녕을 고했다.

사실 어줍잖은 영어 실력만 믿고 해외로 나서고, 다른 나라의 사람들을 만나겠다고 하는 건 다소 만용일지도

모르겠다. 여행자용의 짧은 영어구문들을 주고 받는 것을 넘어서, 속을 터놓고 이런저런 깊은 이야기를 하려면,

영어가 되었던 두 사람 중 하나의 모국어가 되었던 서로를 서로에게 최대한 손실없이 전달할 수단이 절실하다.

당장 내가 영어 말고 일어를 좀 배워왔어도 훨씬 많은 이야기의 기회가 있었을 텐데, 아쉽다.

성당 안에 들어가 둘러 보았는데, 역시 성당은 쉬기에 적당치 않은 장소였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신성함에 다들

스스로 압도당하거나 혹은 순응해 버린 채, 숨소리도 조심스런 그 갑갑한 분위기. 하물며 아침으로 먹겠다고 사온

빵을 꺼내 베어물기란 불가능한 공간이었다. 후딱 한바퀴 돌아보았지만, 사실 성당 내부는 거기가 거기다.

2유로짜리 초를 봉헌하라는 한 구석의 촛불잔치, 정면의 십자가상과 벽면에 늘어붙은 '십자가의 길'용 그림들,

세속의 햇살을 정제해서 들이려는 듯한 딱딱한 표정의 스태인드글라스까지.


성당 밖으로 나와 벤치에 앉아 빵을 먹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잠시 구경했다. 여기도 옥상 돔에 올라가 전망을

바라보는 코스가 있나보다. 사람들이 줄서서 티켓을 사고 있었지만, 어제 판테온도 가보고 그곳의 돔에 올라

전망도 보았던 나는 그냥 스킵, 차라리 몽마르뜨 언덕 주변을 헤매는 게 낫겠다 싶었다.


이번에는 정면에 난 길로 내려가기로 했다. 생각했던 길은 정면에 난 길로 쭉 내려가며 주변길을 더듬어 보다가,

가까이 있는 2호선 앙베르(Anvers)역으로 갈 생각이었다. 내려가면서 만난 한국인 여행객, 요 며칠 마주치지 못한

흔치 않은 한국인이라 어쩔까 생각하다가 그냥 조용히 모르는 척 지나치려고 했다. 그런데 어찌 알았는지 내게

한국인이시죠, 하며 말을 거는 아저씨. 가족 사진 한 장 찍어드리고 나도 사진 한 장 부탁드렸다.

어떻게 알았을까. 궁금한 마음에 계속 뒤를 돌아보며 다른 여행객들을 분별해 보게 된다. 그치만 아무리 돌아봐도

잘 모르겠고, 오히려 자꾸 눈에 들어오는 건 사크레 쾨르의 세 봉우리. 뫼산 山자의 오리지널이 여기 있었구나,

싶기도 하고...고작 해발 130미터라는 이 몽마르트 언덕의 정점에 선 이 성당이 파리 코뮌을 속죄한다는 게 대체

어떤 의미일까 자꾸 반감이 들기도 하고. 뭘까, 파리 코뮌을 세웠던 시민들의 반기독교적, 반종교적 '행태'에 대한

죄사함을 대신 빌어주겠다는 건가.


그게 좀 불분명해 보인다. 파리 코뮌을 프랑스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프랑스의 거울에

비춰보는 한국. 한국은, 멀리 갈 것도 없이 80년 광주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 걸까. 대학교 1학년 때 친구녀석과

숨이 턱까지 닿도록 내달려 들어섰던 저녁무렵 광주 구 묘역의 황량하고 신산한 분위기가 떠올랐다.

하얀 빛을 머금은 사크레 쾨르 성당과 새초록의 잔디. 그리고 빗발이 오락가락하는 우중충한 하늘.

어쩌면 사크레 쾨르의 정면을 보면서 걸어 들어왔으면 더 멋졌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지나다가 어느 순간 나뭇가지에 살풋 가리워진 하얀 건물을 마주치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는 불쑥 다짜고짜

흰 몸뚱이를 내팽개치듯 완전히 내보이기도 하고, 그렇게 사크레 쾨르 성당과 희롱하며 다가설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내가 온 길은 뒷통수를 갈기러 살금살금 까치발로 숨어들어온 뒷길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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