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 아쉬하바드를 돌아다니며 눈에 띄었던 건 버스 정류장이 곳곳마다 참 다르게 생겼더란

사실, 그리고 그 모양들이 어떤 건 굉장히 공들여서 만들어졌는가 하면 다른 건 그냥 쇠파이프로 얼기설기

엮어놓은 듯 만들어진 것처럼 천태만상이더라는. 게다가 그런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투르크인들의

옷차림이나 행색 역시 꽤나 인상깊었다. 그런 서로 다른 버스정류장과 그 풍경 만을 찍은 것만도 수십여장에

이르는 사진들 퍼레이드.

버스정류장에 멈춰서는 버스들 역시 대개는 저런 신품의 쌔끈한 버스들이곤 했지만, 가끔은 앞 유리창이 온통

먼지낀 채 거미줄같이 사방으로 금이 가있는 그런 버스도 다니곤 했다.

약간명이 앉을 수 있는 벤치가 마련되어 있다는 점과 (아마도) 태양을 가리기 위한 지붕이 얹혀 있다는 점만

같은 특징으로 공유하고 다른 것들은 제각각인 버스 정류장들.

사람 하나 없이 텅빈 정류장이 있는가 하면, 아저씨 하나가 쓸쓸히 벤치를 지키는 정류장도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빨간 투르크 전통의상을 입은 아가씨들이 우르르 버스를 기다리고 있기도 했고. 여긴 무슬림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오랜 공산주의 정권 치하에서 젊은 사람들은 대개 무신론자로 바뀌었다고 한다. 덕분에 히잡을 쓰고

있는 모습도 거의 볼 수 없었다.

투르크메니스탄의 버스정류장에서 볼 수 없는 또 하나의 풍경, 담배를 피고 있는 사람들이다. 여기 투르크에선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물론 외국인이 상대적으로 많이 모이는 호텔 로비나

정문 밖에서는 다들 삼삼오오 모여서 피우긴 했지만, 내국인들에게는 나름 철저히 지켜지는 룰인 듯. 그렇게

법적으로 아예 금연을 시켜야 할지는 좀 생각할 문제지만, 적어도 담배연기가 제멋대로 날아들지 않는 버스

정류장은 생각만 해도 꽤나 쾌적하다.

밤이 되었다고 버스 정류장이 어둠에 먹혀버리는 건 아니다. 전기 아까운 줄 모르고 펑펑 써대는 이 곳에서는,

아마도 아쉬하바드의 이 동네는 일종의 대외용 '쇼윈도우'일 테니 더 심하겠지만, 버스 정류장 역시 화려하다.

실제로 밤에도 버스가 다니는지, 이용할 사람들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달리는 차 안에서 찍은 몇 장 더, 아무래도 동네마다 특징을 잡고 그 모양대로 버스 정류장을 만드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님 그 정류장의 특징에 맞춰서, 예컨대 커다란 재래시장 앞의 정류장은 좀 커다란 간판처럼, 관청들

앞의 정류장은 좀 화려하고 럭셔리하게 만드는 거 같다는 이야기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모든 게

획일화되어 있고 몰개성화되어 있으리라 막연히 생각하던 '중앙아시아의 북한' 투르크에서 이렇게 다채로운

버스 정류장들을 헤아려 볼 수 있었던 건 꽤나 흥미롭던 일이었다.




알제리 쉐라톤 호텔은 호텔 투숙객을 위한 전용 비치를 갖고 있다. 초록색 잔디 정원이 넓게 펼쳐진 뒤로 보이는

남푸른 지중해 바다. 3박을 묵으면서 늘 창밖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틈만 나면 창가에 붙어

바다를 바라봤다.

어디를 가던 외국 단체 방문단에겐 경찰 호위가 붙어야 하는 나라지만, 의외로 호텔에 들어오는 절차는 간단했다.

물론 따로 우리 방문단을 챙기는 시큐리티팀이 가동되었다고는 해도, 저 금속탐지기와 엑스레이검색대, 그리고

검색하겠다는 의지의 수위가 다른 아랍국가에 비하자면 매우 낮은 편이었달까. 최대한 우리 측의 편의를 봐준 탓도

있겠지만, 이거 너무 허술한 거 아닌가 하는 희미한 불안감이 들 정도였다.

호텔 로비를 딱 들어서면 보이는 계단. 이틀동안 회의다 오찬이다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면서도 막상 저 계단을

밟아본 건 삼일째쯤 되는 날이었다.

금연 표시는 어디에나 붙어있었다. 화장실, 엘레베이터, 복도..그렇지만 그건 거꾸로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담배연기가

피워올려짐을 의미했다. 심지어는 회의장 내부, 호텔 복도..모든 곳에서.

내가 있던 곳은 주로 호텔 로비에 있는 푹신한 긴의자. Amir를 만나 아랍어나 불어 통역을 부탁할 때, 혹은 환전을

부탁할 때, 그리고 Farid에게 급작스레 변경된 배차계획을 알려주고 차량 이동을 부탁할 때. 금연공간이라지만

아랍인들이 모두들 장소불문 담배를 피워올렸고, 금세 한국인들도 장소불문 담배를 꼬나물었다.

담배연기로 자욱한 그 로비 귀퉁이 긴의자에서 바라보는 화려한 계단. 저 정도의 계단이면 뭔가 무도회를 열기에도

안성맞춤이겠는걸. 하얀 미소가 아름다운 그녀가 하얗고 나풀거리는 드레스를 살짝살짝 발등으로 쳐내리며 계단을

우아하게 내려오는 모습을 상상했다.

지중해 비치를 소유하고 있는데다가, 이런 벨리댄스 쇼까지 호텔에서 볼 수 있는 이곳은 휴양지로 정말

더할나위없이 좋은 곳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국제행사를 하기에는 영...

일단 불어의 문제. 화장실도 이렇게 '옴므'와 '팜므'로 표시되어 있을 정도. 영어는 기본적으로 이들 알제리인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언어인 게다.

화장실 앞에서 만난 신기한 기계. 뭐냐면, 무료로 구두를 닦을 수 있는 구두닦이 기계였다. 왼쪽에서부터 구두약을

찍찍 눌러서 구두위에 짜내고, 두번째 부드러운 솔로 한번 구두약을 문질러 주며, 부드러운 세번째, 거친 네번째 솔
 
중 취향에 맞는 것으로 광내기작업 마무리. 새벽부터 저녁까지 벗지도 못하고 발발댄 탓에 막 물기짜낸 걸레처럼

찐득거리는 구두에 호사 좀 부려볼랬더니, 구두약부터 안 나온다. 걍 솔질 몇번 하며 킬킬대주고 치웠다.

오찬 행사장을 미리 점검하러 들어갔더니 의자들에 하얀 시트를 씌우고 있었다. 무질서하게 배열된 그 의자들이

마치 자체의 의지를 가지고 창밖을 내다보거나, 혹은 자신들끼리 담소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를 그 위에

앉히고야 소명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몸짓일까.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바다, 초록빛 잔디. 나처럼 의자들도 저런 풍경에 매혹되고 말았나보다.

한편에는 풀장도 있다. 이 풀장 이야기를 듣고 혹시나 수영복을 가져갔는데, 고이 접어 가져간 그대로 고이 접힌 채

집까지 들고 왔다. 수영은 무슨.

종종 보기에는 이쁜데 실제 가서 앉고 싶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 의자가 있다. 사람도 그렇다. 매력적이고, 딱히

나쁜 점을 꼽아낼 수 없으며 외려 내게 과분할 수도 있는 사람인데, 뭔가 주저하게 된다. 내게 그런 의자들은

왠지 호텔에서 자주 마주치게 된다.



온통 공사중 표지판으로 도로가 성치 않은 도하의 중심가에는 '시티 센터'라는 쇼핑센터가 있었다. 3-4층쯤 되는

건물은 얼핏 보기엔 한국의 쇼핑몰과 비슷해 보였지만, 가만..비슷한 게 오히려 이상한 거 아닌가 싶다.

반짝이는 두 눈만 가린 채 온몸을 까만 천으로 둘둘 감은 여자들이 대체 언제 어디서 저런 야시시한 옷들을 입는단

얘길까.

듣자 하니, 어려서부터 알고 지내던 친족간의 결혼이 심심치 않은 카타르에서는, 결혼식 날의 몸치장을 위해 정말

돈을 아끼지 않고 값비싼 명품들을 몸에 휘감는다고 했다. 향수, 란제리, 악세사리, 옷까지. 그렇다면 이 발랄하고

깜찍한 옷들의 수요가 어느정도 설명이...될 리 없단 말이다.

대체 누가, 언제 입는 걸까. 혹시 까만 두루마리 옷 아래엔 저런 밝고 화려한 옷차림을 숨기고 있는 건 아닐까. 차마

찍지는 못했지만 란제리류도 정말 화려한 것들이 잔뜩 디스플레이되어 있었는데..어쩜 생각보다 카타르나 아랍권

국가들의 여성들은 히잡과 긴 검정장옷으로 외부의 시선을 가리고는 '은밀한 사생활'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런 도발적인 표정을 한 여성의 포스터가 여기저기서 보인다. 이것도 서양이나 우리나라, 그니까 비 아랍권세계와

비슷한 거 같으면서도 살짝 다르다. 뭐냐면, 저 두드러지게 강조된 눈화장. 아무리 살짝살짝 드러나는 손과 팔목에

타투를 한다거나 해도 역시 상대의 이목을 끄는 데는 반짝이는 보석같은 눈만한 게 없는 게다. 다들 어찌나 눈이

이뿌던지.

스타벅스는 사우디, 카타르, 그리고 쿠웨이트에서 흔히 볼 수 있었지만, 그래서 빅맥지수 대신에 스타벅스지수같은

거 발표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었지만, 커피빈은 여기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봤던 거 같다. 저 꼬불꼬불한 글자가

머, 대충 커피빈이란 뜻이겠거니.

약간 한국의 커피빈과 메뉴판이 달랐다. 굵직한 초코칩이 씹히는 자바칩 프라푸치노를 시켰는데, 휘핑크림맛이

뭐랄까, 좀더 느끼하면서 뭉글거린다. 음식류가 세계화되려면 무엇보다 어느 곳에서나 균일한 맛을 낼 수 있어야

함이 기본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지 음식에 자신이 없는 미국인들이 맥도널드로 쉽게 발걸음을 옮긴다는

얘기인데, 적어도 그런 균질한 맛을 낸다는 측면에서는 커피빈이나 스타벅스나..좀 모자른 감이 없지않다. 물론

아랍쪽 사람들이 이런 휘핑크림이나 커피맛을 즐기기 때문에 다소 현지화된 거겠지만.

마치 롯데월드처럼 둥그런 아이스링크장을 쇼핑몰 한쪽에 품고 있었다. 쇼핑몰 안은 에어콘이 빵빵해서 더위를

실제로 느끼긴 쉽지 않았지만, 둥그런 유리천장으로 내리쬐는 햇볕만으로도 스케이트 타고 싶은 맘이 불쑥 동해

버렸다. 그야말로 태양이 발광, 작렬하고 있었다.

내리쬐는 태양을 거슬러 고개를 들어보니 유리 돔 너머 건설중인 고층 빌딩 두 채가 나란히 보인다. 쌍둥이 빌딩

같은 건가, 둘이 비슷한 게 마주보고 있는 느낌.

그리고 유리돔 한켠에서 중심부를 향해 쏘아진 화살촉 모양의 저 깃발들...뭘까.

2008년 한국에서 사는 사람에게 노출된 두가지 비상식. 쇼핑몰 곳곳에서 눈에 띄는 저런 금연 경고판. 국민들의

건강한 삶을 '어여삐 여기사 흡연으로 서로 건강을 해치지 않게 할새', 정부 공보물인 건지 금연 홍보물인지, 아님

협박을 하겠다는 건지 잘 포인트가 안 잡힌다. 또 하나의 비상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내에서 거리낌없이

흡연을 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것. 남자, 여자를 불문하고 어디서든, 곧게 편 두 손가락 끄트머리쯤에 담배

밑둥아리를 조여놓고 살짝 내민 입술에 꼽아놓고는, 라이터불을 들이대며 가볍게 빨아올린다. 치이익. 뻐끔.

맵을 보면 코엑스몰이나 다른 한국의 쇼핑몰에 비해 그렇게 커보이지는 않는데 실제론 어떤지 모르겠다. 다만

내가 갔을 때에는 이미 세계적으로 'R'의 공포가 닥쳐들고 있었을 때였는데도 그다지 나빠 보이지 않았다. 쇼핑을

나온 사람들도 많았고, 뭔가 북적북적한 느낌이었던 게다. 뭐..현찰을 그득 쥐고 있는 오일머니라는 이미지가 

일종의 선입견으로 작용해서 무조건 좋게 해석해 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바틸..이라고 읽어야 할까. 아랍권에서 아주아주 유명한 대추야자 전문샵이라고 한다. 그저 길가 대추야자나무에서

농익은 채 뚝뚝 떨어지던 대추야자를 가지고, 마치 고급 초콜렛들을 치장하는 듯한 방식으로 한단계 가공을 더

한 셈이다. 내가 대추야자를 처음 접한 건 이집트 시와 오아시스마을에서 길가 대추야자를 마음껏 따먹은 때였고,

룩소 등지에서도 그냥 따먹고 다녔던 거 같다. 그 이후에는 돈주고 사먹는다는 게 영 어색했었지만 결국 얼마전

파리에 갔을 때는 술안주 삼아 사먹고 말았었는데, 이제 자연의 선물인 달고단 대추야자를 그냥 따먹던 단계에서

돈주고 사먹는 단계로, 그리고 보다 고급화된 치장을 거친 차별화된 상품을 접하는 단계까지 올라섰다.

내가 산 건 아니고, 현지에서 선물로 받은 거다. 잘 익은 대추야자는 정말 혀가 아리도록 달다. 뭐 대추야자를 절반

쪼개서 안에 뭔가를 집어넣기도 하고, 뭔가를 발라놓기도 하고, 그 질리도록 단 맛에 뭔가를 계속 변주해내고

있었지만, 난 그냥 잘 익은 대추야자를 천천히 녹여먹는 게 제일 맛있었던 것 같다. 근데 저렇게 꾸며놓으니 이뿌긴

꽤 이뿐 거 같은 데다가, 꽤나 고급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이런 포장 박스까지. 바틸..바텔..? 바띨..? 모르겠다.

또다시 화장실 씬. 아랍권 모스크에선 어디나 볼 수 있는 것들인데, 발을 씻으라고 마련된 수도꼭지들이다. 화장실

한 켠에 이렇게 몇개 발씻기 전용 수도꼭지를 마련해 놓았는데, 쓰는 사람이 있나 싶어 기다려본 몇 분동안 아무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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