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묵었던 호텔의 주인 아주머니에게 별 생각없이 "맛있는 칼국수 근처에 없나요", 라 물었더니 냉큼 알려주신 곳. '해궁'이란

 

곳의 푸짐한 해물칼국수. 아무래도 바닷가라 그런지 온갖 해산물이 그득그득.

 

아침을 든든히 먹은 후에,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경포호 주변에서 드문드문 목격되는 네발 자전거를 따라 대여장소로 뙇.

 

핸들이 심플하고 단단하니 이쁘게 생겼다. 게다가 스티어링 휠이 작아서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회전감.

 

경포호 옆의 공터에 여기저기서 자전거와 네발자전거..사륜마차를 주차해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분들이 보인다. 추위를 막을

 

비닐 차양이 씌워진 것도 있고 그냥 날로 벗겨진 것도 있고.

 

달리기 시작, 운전하는 재미도 생각보다 쏠쏠하지만, 경포호가 생각보다 큰 호수라는 걸 금방 깨닫게 된다.

 

호수 옆에 살짝 주차해 놓고 사륜마차 전신샷. 앞에만 비닐차양을 위로 걷어올리고 삼면을 두꺼운 비닐로 막았더니 그럭저럭.

 

그러고 허난설헌의 생가로 빠지는 샛길을 달려 버렸다. 원래 호수 둘레길은 다소 안정적인 평지였는데, 다리 하나를 넘어

 

경포호에서 백미터 정도만 떨어지면 바로 나타나는 게 허난설헌의 생가. 오르막내리막이 제법 힘들고 어렵지만 그래도,

 

보통 사륜마차는 절대 도달하지 않는 곳에 와 버렸다는 뿌듯함.

 

 

사륜차를 한쪽에 슬쩍 세워두고 설렁설렁 돌아보고. 이미 바람이 차갑고 입김이 하얗게 새어나오는 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몸이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고, 종아리는 살짝 기분좋을 만큼의 통증이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다시 허난설헌 생가 뒷켠의 해송림 사이 오솔길을 내달리는 길. 아까 경포호에서 이쪽으로 올 때는 내리막이라서

 

엄청난 속도로 오솔길을 육박해왔는데, 다시 돌아가는 길은 (당연하게도) 오르막. 꽤나 헥헥거리며 페달을 밟았다.

 

 

샛길에서 다시 호숫가 둘레길, 공식적인 사륜차의 코스로 복귀하기 직전.

 

찬 바람이 씽씽 불어도 굳이 이 사륜차를 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눈에 띄었다.

 

제 궤도에 올라 좀 편하게 달려볼까 하다가 문득 옆에서 눈에 띈 꼬불꼬불하고 좁다란, 한눈에 딱 보기에도 마구마구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는 흥미진진해보이는 길. 물 위에 다리처럼 놓였는데 이리저리 배배 꼬였는 것도 재밌어 보이고.

 

그래서 다짜고짜 진입. 그렇게 또다시 사륜차는 옆길로 새 버리고. 생각만큼 길은 좁아서 사륜차 한대가 꽉 끼는 듯 했다.

 

그 와중에 뭐 재미난 게 있나 싶어 뒤를 따라온 다른 사륜차 한 대. 더구나 저건 6인승이어서 휠베이스가 더 길었는데,

 

덕분에 일정 이상의 꼬불꼬불한 코너를 만나면 전부 내려서 자전차를 들어올려야 했다. 연세 지긋하신 할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오신 중년부부셨는데 어쩌자고 따라오셔서는.

 

그래도 중간에 차를 돌리고 이리저리 움직일만한 비교적 넓은 공간이 나와서, 슬쩍 주차해두고 요리조리 구경도 좀 하고.

 

호숫가 한 복판에 이런 나무데크의 다리가 고불고불 이어지는 데다가 그 길에 꽉 껴서 달리는 사륜차도 재미있었다.

 

다시 정상 경로로 복귀. 그러고 보니 길 중간중간에 조각상도 보이고, 허난설헌의 오라비인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의

 

장면들을 묘사한 조각들도 보인다.

 

목 좀 축이고 가라며 만들어둔 음수대의 모양이 재미있다. 입을 쩍 벌리고 선 개구리 두 마리.

 

한바퀴를 도는데 한시간이면 느긋하고 유유자적하게, 더러는 딴 길로 새가면서 달릴 수 있는 듯 하다.

 

타기 전에는 뭐 특별한 게 있겠어, 싶다가도 생각보다 경포호 주변으로 샐 만한 곳도 있는데다가 기본적으로

 

두 발로 페달을 저으며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주는 쾌감이 진하다.

 

 

 

 

'맛있는 인생', 현실까지 넘쳐들어온 강릉의 로맨스.

 

영화 '맛있는 인생'을 보고선 겨울에 혼자 강릉으로 여행을 갔다던 사람이 있었다. 혼자 떠났던 여행은 슬펐다 했다.

 

그이에게서 영화를 추천받았고, 강릉을 추천받았으며, 어느날은 나 역시 혼자 영화를 좇아 강릉으로 떠나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번엔 다소 잿빛이었던 둘의 기억에 몇가지 빛깔을 더하는 여행. '맛있는 인생'을 따라잡는 여행이 되었다.

 

 

영화에서 그와 그녀가 처음 만나는 호텔, 경포대 현대호텔은 마침 이날이 영업 마지막날이었다. 아예 다 부수고

 

새롭게 다시 신축을 한다는 이 건물, 그래도 마지막으로 돌아볼 수 있어 참 다행이었다.

 

영화 속에서 남자는 문득, 서울에서의 번잡하고 불쾌하고 난처한 일들에서 탈출하듯 강릉으로 향했다. 그리고 도착한

 

강릉, 그가 묵었던 곳이 바로 현대호텔이었다.

 

그와 그녀가 처음 만났던 건 호텔의 까페 카리브. 밤이었던가 아침이었던가, 그는 메뉴에 나와있지도 않은 에스프레소를 찾으며

 

여점원을 괴롭혔고, 그녀는 귀찮은 손님의 난처한 질문에도 겸연쩍은 웃음을 지우지 않았었다.

 

그녀가 이 곳에 묵었을 때는 미처 까페까지는 못 둘러봤다 했었다. 여기서 앉아 차라도 한잔 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지만 이렇게 다시, 이번엔 함께 왔다는 걸로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기를.

 

 

어디였더라, 경포 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이는 창가였던 건 확실한데, 정확히 어디라고 딱 집어서 이야길 못하겠다.

 

사실 어디인들 뭔 상관인가. 호텔에서 내려다보이는 경포 앞바다가 이렇게 이쁘다는 거, 그리고 이 공간에서 그들이

 

영화를 만들며 이렇게 저렇게 동선을 짜고 구도를 잡았으리라는 상상 자체가 재미있는 거니깐.

 

호텔 앞 로비에 있던 푹신해보이는 쇼파들. 저기 어딘가에 앉아서 그는 그녀가 일이 마치길 기다리기도 했었고,

 

그녀는 일이 없는 날 강릉 구경을 함께 나가기로 한 아침, 그를 기다리기도 했던 거다.

 

어라, 그런데 현대호텔의 마지막밤을 아쉬워했던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던 걸까. 어느 프로축구팀 선수들도,

 

그리고 지방순회 공연중인 듯한 강부자 어르신도 체크아웃을 하곤 호텔을 떠나고 있었다.

 

호텔이야 부수거나 말거나, 옆에 있던 나무에서 쪼르르 내려와 고인 물을 할짝거리며 마시는 청설모 한마리와

 

딱 눈이 마주쳤다.

 

영화 속에서 그가 그녀를 좇아 스토킹하듯 뒤를 밟던 그 산책로, 그리고 언젠가는 그 혼자 술에 잔뜩 취해서

 

욕지거리를 우물거리며 호텔방으로 되돌아가기도 했었고, 언젠가는 둘이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기도 했던 길.

 

호텔에서 내려오는 길, 차들이 말줄임표처럼 띄엄띄엄 늘어선 아스팔트 찻길 너머로 노란 모래사장, 그너머 푸른 바다.

 

그와 그녀, 그리고 또다른 그녀는 이런 풍경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호텔 앞 입구. 제법 운치있고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맘에 드는데, 이제 없어진다니 왠지 더 아쉬워서 쉽게 못 뜨겠다.

 

경포 해수욕장을 거닐며, 하나둘 켜지는 가게 불빛들을 보고 있는데 문득 해풍에 잔뜩 움츠러든 해송 너머로 새하얗게

 

질린 거대한 불빛 하나가 저물고 있는 게 보였다.

 

 

그녀의 사진 속에서 보았던 모래사장 위 흔들의자가 저거였을까. 노랑 풀꽃이 점점이 피었다.

 

경포대를 따라 이어지는 길 위에서 불쑥 나타난 꽃마차. 세상에, 청계천변에도 꽃마차가 달리더니

 

경포해수욕장에도 이런 게 있었구나 싶다. 말을 보면 기분좋게 달그락거리는 그 말굽소리를 꼭 듣고 싶어지는데

 

아쉽게도 아직 꽃마차 장사엔 제철이 아닌지 말들은 모두 가만히 서서 자는 듯 쉬고 있었다.

 

 

 

 

 

 

 

 

 

경포호를 한 바퀴 돌아보려 나선 길, 첨에 강릉에 도착해서는 여기서부터 바다인가 시끌시끌하다가 택시기사

아저씨한테 타박을 맞았었다. 그럴 만큼 크고 넓은 호수, 햇살이 모래알처럼 흩뿌려진 그 수면위로 화살표처럼

손가락질하고 나선 전망대.

너울너울. 겨울치고는 부드러운 바람이 수면에 몸을 부비며 자욱을 남기곤, 그 물결을 헤치며 오리들이 나아간다.

오리 두 마리가 둥싯둥싯 떠있는 수면 너머, 멀찍이 경포호의 반대편 끝이 보이고 그 위로 보이는 직선상의 구름 두개.

경포호 가운데에 있는 조그마한..섬이랄까. 자그마한 정자가 하나 세워진 조그마한 그 곳에는 새들이 잔뜩 와서

쉬었다 간다고 했던 거 같다. 뱃놀이가 가능하면 저기까지 배타고 나아가서 들어가 놀아도 좋겠는데.


호수 곳곳에 둥둥 떠다니며 한량질 중인 물새들. 그렇지만 가만히 보고 있으면 똥꼬를 하늘높이 쳐들고는

쉼없이 자맥질하며 먹이를 찾는 게 나름의 먹고 사는 고민에 빠져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무슨 생선일까, 경포해수욕장 가는 길에 벚꽃나무가 쫙 이어지는 길이 유명하다던데, 그 벚꽃나무 사이에 드문드문

저렇게 인공불빛이 밤에 일렁일렁거릴 가짜 나무가 심어져 있던 거다. 그런 나무에 기대어 허공에 내걸린 생선들.


호수의 가장자리, 제법 두꺼운 얼음이 수면을 덮어버린 곳 위에서는 한 무리의 새들이 뒤뚱뒤뚱, 발맞춰 걷고 있었다.

경포대로 옮겨지던 발걸음이 살짝 벗어났던 건, 다소 뜬금없긴 하지만 호수 옆 밭두렁에 촘촘히 꽂힌 채

겨울바람에 떨며 문득 잊었다는 듯 파닥거리던 바람개비들 때문.


그러고 보면 이날 참 하늘이 쨍하니 맑았다. 경포대에 도착하니 모두들 쌍쌍, 게다가 문화유산 해설사까지

동반한 단체 여행객들이 우르르 있길래 똥마려운 강아지모냥 주변에서 뱅뱅 돌며 차례를 기다리다가 한 장.

경포대에 올라 바라본 경포호수. 좀더 걸으려 했는데, 예기치 못한, 갑작스런, 그리고 계속 기다리던 호출.

그래서. 경포호의 나머지 둘레길은 다음 기회에.





강릉에 있는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 원래는 요새 강릉 지자체에서 꾸며놨다는 바우길을 따라 걸으려

했었다지만, 어쩌다보니 바우길 코스에서 벗어나 발길 닿는대로 걷는 일정이 되어 버렸다. 그건 아마도

뭔가 이렇게 흥미로워보이는 게 눈에 띄면 쪼르르 달라붙어 고개를 묻고 있던 일행들 덕분이기도 할 거고,

빗발이 변덕스럽게 쏟아붓던 지랄같은 날씨 탓이기도. 여하간, 코스에 대한 강박관념 따위는 버리는 게 좋다.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 조선시대 최고의 여류 문장가였던 허난설헌이 남매

사이라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는데, 헷갈렸던 건 그 중 누가 손위였냐 하는 문제. 허균이 오빠?

아니면 허난설헌이 누나? 왠지 허균이 늘 앞서 이야기되기도 했던 데다가 여기 이름도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인지라 허균이 손위 오빠일 거라는 추측에 무게가 실렸다. 진실은 기념공원 안에서 확인하기로.

공원 안에는 허난설헌 생가터가 있었다. 허난설헌이 태어났고 허균도 아마 태어난 곳 아닐까, 이미 한무리

방문객들에게 열심히 설명해주고 계시던 봉사자분의 말씀을 귀동냥해보니, 여기는 토담과 주변솔밭이

조화를 이루어 마치 연꽃이 물에 뜬 것과 같은 '연화부수(蓮花浮水)'형의 명당터라고 한다. 지금도 이렇게

소나무숲 한가운데 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는데 과거엔 더욱 그럴듯한 풍광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었을 듯.


처마 끝에 서려 있던 이슬로 빚어진 그물망 하나. 조선시대 이런 변방에서 태어났던 양반가 자제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저렇게 그물망 하나 풀어놓고 세월을 낚는, 권력의 중심으로 굳이 애써서

나서려 하지 않고 안분지족의 삶을 즐기는 '폐포파립'의 선비였으려나. 아니면 언제고 중앙정치의

무대로 되돌아갈 생각으로 이를 갈며 쓸개를 핥던 야심가들이었을까.



아무래도 신분제에 예리한 비판의식을 갖고 있던 허균이나, 사람 대접도 못 받던 여성이었던 허난설헌

모두 전자에 가깝지 않았을까. 나라를 뒤엎겠다는 거대한 혁명의 꿈까지 꾸진 않았다고 하면, 에라 그냥

산좋고 물좋은 강릉에서 시나 읊고 글이나 쓰고, 음풍농월로 한세월 보내자는 생각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면 그들 남매는 '양반-상놈', '남존여비'의 당대 관념에 얼마나 시니컬했을까. 뭐 그렇지만 그들의

문학가로서의 명성이 중국에까지 뻗쳤다는 게 함정. 힘들게 피보며 나라를 엎느니 그게 남는 장사일지도.

기념공원 앞에 있던 홍길동 기념관. 조그마한 오두막이 2층으로 지어져 있었다. 올라가면 뭐가 있으려나

싶어서 걍 외관만 구경하고 말았는데, 기념관 안에는 온갖 버전의 홍길동전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마

허균은 본인의 숨겨둔 욕망, 못 가본 길에 대한 갈증을 홍길동으로 하여금 대리충족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초가지붕이 단정하게 얹혀있는 황토빛 화장실. 궁서체로 써진 '화장실'이란 글자가 나름 운치있다.

사용후기 : 사람이 그렇게 많이 방문하는 곳이 아니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깔끔하게 관리되더라는.

허난설헌 생가와 기념관 옆에 서있던 오문장비. 이 곳에 살던 허씨 5문장을 기념한 비석들로 아버지 허엽,

장남 허성, 허봉, 허난설헌, 그리고 허균 이렇게 다섯 명을 허씨 5문장이라고 한단다.

그 중에서도 특히 글재주가 돋보였다며 후대에도 칭송이 자자했던 사람은 바로 허난설헌, 알고 보니

허균이 막내아들이었고 그 손위 누이가 허난설헌. 무려 6살이나 많았던 난설헌의 본명은 초희라고 한다.

허균의 생몰년도는 1569-1618, 허난설헌의 생몰년도는 1563-1589.


그녀의 글재주는 8살때 신선세계의 궁궐 상량식에 자신이 초대받았다고 상상하고 썼다는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에서부터 조선땅과 중국땅의 인증을 받고 일본에까지 그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그녀의 시는

현재까지 약 210여수가 전한다고 하는데, 그나마 그녀의 유언으로 전부 태우고 남은 게 그만큼이란다.


허초희. 이름이 참 이쁘다. 이름을 알고 나면 얼굴이 궁금해지는 건 인지상정. 그녀의 초상화를 바탕으로

빚어낸 그녀의 황동빛 조상이 기념공원 한가운데 단아하게 앉아있었다. 27살에 죽었다니 정말 이른 나이에

돌아갔구나, 역시 천재들은 일찍 요절하는 법인가 싶어 살짝 씁쓸해지던 차에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었을

사실들이 몇개 나열되어 있는 게 눈에 띄었다. 풍류를 즐기던 남편, 빡빡한 시어머니, 무엇보다 자녀들의

죽음과 태중의 아이까지 상실한 아픔. 생각보다 참, 힘들고 신산스러운 삶이었겠다.


그녀가 두 자녀를 잃고서 썼다는 시를 보면 허초희 그녀의 심정이 얼마나 아팠을지가 절절하다.

제목은 '아들딸 여의고서'.

 

"지난 해 귀여운 딸애 여의고 올해도 사랑스런 아들 잃다니

서러워라 서러워라 광릉 땅이여 두 무덤 나란히 앞에 있구나

사시나무 가지엔 쓸쓸한 바람 도깨비불 무덤에 어리바치네

소지올려 너희들 넋을 부르며 무덤에 냉수를 부어 놓으니

아무렴 알고말고 너희 넋이야 밤마다 서로서로 얼려 놀테지

아무리 아해를 가졌다한들 이 또한 잘 자라길 바라겠는가

부질없이 황대사 읊조리면서 애끓는 피눈물에 목에 메인다."
 


기념관을 한 바퀴 돌아보며 허난설헌과 허균의 삶과 사상, 문학세계를 돌이켜보고 나니 왠지 기분이

스산해졌다. 물론 그들이 당대의 문명을 널리 중국과 일본에까지 떨치고 죽어선 지금까지도 이렇게

기념하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당장 그들의 삶이 어땠을지 계속 맘에 걸린다. 엄마로서 아이들을 앞세우고

아내로서 남편과 시댁의 박대를 받고, 그렇다고 해서 조선 문단의 일원으로 제대로 평가되지도 못했을거고.

그게 허초희의 질곡이었다면 허균 역시, 본인이 꿈꾸던 세상과 사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가는 세상에 대한

욕구불만과 갑갑증은 오죽했을까.

기념공원을 빠져나가 경포호로 이어지는 길을 찾았다. 삐쭉삐쭉 가늘고 길다란 소나무들이 이쑤시개처럼

땅바닥에 꽂혀있는 솔밭 사이 오솔길을 걸었다.

조선시대나 그 이전의 수묵화를 보면 소나무를 저렇게 앙상하게, 그저 쭉쭉 기둥만 그려놓고 위에

한웅큼 다복솔을 뿌려놓곤 해서 상상해서 그린 거 아닐까 했는데, 아니었다. 수묵화 속의 소나무들이

그대로 실사로 표현된 공간. 


경포호로 가는 길은 홍길동의 분신들이 촘촘히도 지키고 섰다. 다리 양쪽에 선 울타리에도, 교각 위에도,

뭔가 솔방울 수류탄을 던지는 포즈의 홍길동이 거북이 등 위에 단단하고 버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여긴 다시 바우길 위. 올레길이 파란색 조랑말표식이나 화살표로 코스를 안내해 주었다면

강릉 바우길은 저렇게 파랑색 솟대 그림으로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경포호 옆길로 바싹 다가서자 저너머 경포대가 보인다. 경포호가 이렇게 컸구나, 싶은 실감을 하고 있던

차라서 정반대에 있는 경포대까지 가보는 건 일단 가볍게 포기.

경포호를 따라 걷다보니 홍길동전의 스토리를 따라 조성된 조각들이 보인다. 홍길동의 어린 시절이라는

이 세 아이들의 조각 중에 누가 홍길동일까,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가운데의 제일 개구진 녀석이 아닐까

싶다. 어렸을 때 유별나게 개구장이였던 녀석이라야 나중에 크게 된다는 말...이 있었던 거 같은데.

그나저나 저런 아크로바틱한 자세라니 보통 인간은 가능하지도 않을 자세인데, 역시 홍길동의 타고난

신이함을 드러내는 조각이라고 마음대로 정리.

그리고 돌을 네 조각으로 두부처럼 썰어버리는 어마어마한 칼솜씨, 홍길동이 수련중인 장면이다.

그리고 탐관오리들의 행패..였던가. 아니면 탐관오리들을 징벌하는 활빈단..이었던가. 형틀에 묶인 채

맞고 있는 게 선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에 따라 홍길동전의 전개상 기승전결 중 '승'에 해당할지 '전'에

해당할지 바뀌겠지만, 여하간 맞고 있는 사람의 표정이 무척이나 괴로워보인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게다가 저 펑퍼짐하게 까뒤집어진 채 맷자국이 도랑처럼 남은 엉덩이, 참 아파 보인다.

홍길동이 율도국을 세우기 전, 그 섬에 있던 요괴들을 처치해야 하는 퀘스트가 남았다. 아마 이 요괴들을

없애고 나서야 아리따운 여인을 얻어 혼인, 해피엔딩에 이르렀던 거 같은데. 요괴들이 짜리몽땅하고 왠지

익살맞게 생긴 게 그렘린같기도 하고, 골룸같기도 하고.

언제나 영웅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나름의 갈고 닦은 영웅포즈로 마무리되기 마련이다. 홍길동이 갈고 닦은

포즈는 바로 이것, 주춤 서서는 한 손으로 칼을 쥐고 다른 손으로 거리를 잡는. 이 조각상은 특히 인상에

남았던 이유가, 홍길동의 눈이 새겨져 있지 않아서였다. 눈을 새겨넣으면 밤에 홍길동 조각이 살아나서

당장 이 나라의 탐관오리와 부패한 '조정'을 뒤집을 것이 겁났던 걸까.

이렇게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을 둘러보고 경포호를 따라 걷다간, 경포대해수욕장까지 가서 주변 횟집에서

회 한접시 먹는 것도 꽤나 그럴 듯한 코스였다. 허균은 익히 알고 있었다지만 그저 여류 문인의 한명으로만

알고 있었던 허난설헌, 허초희 그녀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거칠게나마 알게 된 것도 적잖은 소득이었고.





경포해수욕장, 사람들이 적지도 않은 모래사장 한가운데 잔뜩 녹슬은 채 방치되어 있던 중장비.

언제부터 세워져있었던 건지 온통 녹슬다 못해 캐터필러 사이에 뿌리를 내린 잡초들이 싱싱하게

줄기를 뻗어올렸다. 뒤로 보이는 샛노랑빛의 탱탱한 튜브와 대비되는 흐물흐물한 노란색 껍데기가

굉장히 지저분하고 인공적으로 보이는 건 약간의 편견이 작용한 결과. 사실 탱탱하고 반짝거리지만

머리아픈 고무 냄새가 자욱할 튜브나, 시꺼멓고 끈적한 기름이 뚝뚝 새고 있을 폐차나 오십보백보.







강릉 경포해수욕장, 굵고 단단해 뵈는 파이프가 하나 모래사장 위에 굳건하게 박혀있었다. 사람들이 뛰어내릴

수 있고 안전하게 버틸 수 있으면 되는 게 번지점프대라면 딱 그 기능에 필요충분한 파이프. 고개를 무리하게

꺽어야 그 꼭대기와 그 위에 선 사람들이 보이는 각도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뛰려던 건 아니었다. 저런 건 돈을 받고나 뛰어내릴까, 그저 남들이 뛰어내리는 걸 보고 싶었던 건데,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어느 여자분이 소리도 없이 뛰어내렸던 순간. 한없이 늘어날 듯한 줄이 어느 순간

출렁, 동시에 왈칵 뒤로 튕겨진 그녀의 목청이 비로소 터졌다. 꺄아악!


어우, 난 저런 건 돈 받고서도 못하겠다. 많이 주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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