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묵었던 호텔의 주인 아주머니에게 별 생각없이 "맛있는 칼국수 근처에 없나요", 라 물었더니 냉큼 알려주신 곳. '해궁'이란

 

곳의 푸짐한 해물칼국수. 아무래도 바닷가라 그런지 온갖 해산물이 그득그득.

 

아침을 든든히 먹은 후에,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경포호 주변에서 드문드문 목격되는 네발 자전거를 따라 대여장소로 뙇.

 

핸들이 심플하고 단단하니 이쁘게 생겼다. 게다가 스티어링 휠이 작아서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회전감.

 

경포호 옆의 공터에 여기저기서 자전거와 네발자전거..사륜마차를 주차해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분들이 보인다. 추위를 막을

 

비닐 차양이 씌워진 것도 있고 그냥 날로 벗겨진 것도 있고.

 

달리기 시작, 운전하는 재미도 생각보다 쏠쏠하지만, 경포호가 생각보다 큰 호수라는 걸 금방 깨닫게 된다.

 

호수 옆에 살짝 주차해 놓고 사륜마차 전신샷. 앞에만 비닐차양을 위로 걷어올리고 삼면을 두꺼운 비닐로 막았더니 그럭저럭.

 

그러고 허난설헌의 생가로 빠지는 샛길을 달려 버렸다. 원래 호수 둘레길은 다소 안정적인 평지였는데, 다리 하나를 넘어

 

경포호에서 백미터 정도만 떨어지면 바로 나타나는 게 허난설헌의 생가. 오르막내리막이 제법 힘들고 어렵지만 그래도,

 

보통 사륜마차는 절대 도달하지 않는 곳에 와 버렸다는 뿌듯함.

 

 

사륜차를 한쪽에 슬쩍 세워두고 설렁설렁 돌아보고. 이미 바람이 차갑고 입김이 하얗게 새어나오는 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몸이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고, 종아리는 살짝 기분좋을 만큼의 통증이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다시 허난설헌 생가 뒷켠의 해송림 사이 오솔길을 내달리는 길. 아까 경포호에서 이쪽으로 올 때는 내리막이라서

 

엄청난 속도로 오솔길을 육박해왔는데, 다시 돌아가는 길은 (당연하게도) 오르막. 꽤나 헥헥거리며 페달을 밟았다.

 

 

샛길에서 다시 호숫가 둘레길, 공식적인 사륜차의 코스로 복귀하기 직전.

 

찬 바람이 씽씽 불어도 굳이 이 사륜차를 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눈에 띄었다.

 

제 궤도에 올라 좀 편하게 달려볼까 하다가 문득 옆에서 눈에 띈 꼬불꼬불하고 좁다란, 한눈에 딱 보기에도 마구마구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는 흥미진진해보이는 길. 물 위에 다리처럼 놓였는데 이리저리 배배 꼬였는 것도 재밌어 보이고.

 

그래서 다짜고짜 진입. 그렇게 또다시 사륜차는 옆길로 새 버리고. 생각만큼 길은 좁아서 사륜차 한대가 꽉 끼는 듯 했다.

 

그 와중에 뭐 재미난 게 있나 싶어 뒤를 따라온 다른 사륜차 한 대. 더구나 저건 6인승이어서 휠베이스가 더 길었는데,

 

덕분에 일정 이상의 꼬불꼬불한 코너를 만나면 전부 내려서 자전차를 들어올려야 했다. 연세 지긋하신 할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오신 중년부부셨는데 어쩌자고 따라오셔서는.

 

그래도 중간에 차를 돌리고 이리저리 움직일만한 비교적 넓은 공간이 나와서, 슬쩍 주차해두고 요리조리 구경도 좀 하고.

 

호숫가 한 복판에 이런 나무데크의 다리가 고불고불 이어지는 데다가 그 길에 꽉 껴서 달리는 사륜차도 재미있었다.

 

다시 정상 경로로 복귀. 그러고 보니 길 중간중간에 조각상도 보이고, 허난설헌의 오라비인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의

 

장면들을 묘사한 조각들도 보인다.

 

목 좀 축이고 가라며 만들어둔 음수대의 모양이 재미있다. 입을 쩍 벌리고 선 개구리 두 마리.

 

한바퀴를 도는데 한시간이면 느긋하고 유유자적하게, 더러는 딴 길로 새가면서 달릴 수 있는 듯 하다.

 

타기 전에는 뭐 특별한 게 있겠어, 싶다가도 생각보다 경포호 주변으로 샐 만한 곳도 있는데다가 기본적으로

 

두 발로 페달을 저으며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주는 쾌감이 진하다.

 

 

 

 

강릉에 가면 꼭 들르게 되는 커피 포레스트 바이 테라로사, 경포 해수욕장에서 순긋 해수욕장으로 가는 해송숲 옆에

 

슬쩍 숨어있는데, 그렇게 좁지 않은 건물 앞 주차장이 온통 차로 가득하다.

 

벽난롯불이 이글이글 열기를 내뿜는 1층의 공기가 2층짜리 높은 천장의 카페 건물을 지긋이 덥히고 있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다소 어둑한 와중에도 중간층에 걸려 있는 인형이 눈길을 잡는다.

 

 

까페 라떼랑 아포가토, 커피를 붓기 전에도 이미 초코시럽이 촉촉하게 쿠키랑 아이스크림에 젖어들었다.

 

 

바닷바람에 치이긴 했겠지만 아직 해송림의 푸른 빛이 살아있던 11월, 햇살이 문득 봄인양 하던 잠시지간.

 

시원하게 유리창으로 구분된 야외 테라스, 겨울 바람과 얄포름한 겨울 햇살이 자유로이 드나는 공간처럼 보인다.

 

 

 

까페에서 책도 보고 뒹굴대다 보니 어느새 짧은 겨울해가 까무룩하니 바닷속으로 잠겨버리고 까페 역시 어둠에 잠기다.

 

 

까페 입구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찻잔과 찻잔받침들이 반짝반짝 금빛을 번쩍이며 늘어서 있기도 했고.

 

 

도심의 이러저러한 까페들과는 달리 넉넉한 스탭들의 공간과 위아래로 즐비하게 늘어선 커피 원두나 찻잔들이 여유롭다.

 

(아마 이건 서울과 지방의 땅값 차이가 크게 작용했겠지만)

 

밤이 깊어지면서 더욱 활활 불타오르고 있는 벽난로의 화염이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사실 열기는 그다지.

 

떠나기 전 까페 건물 앞에서 노랑불빛이 일렁이는 유리창들을 한 장 담았다. 해송림 너머에서도 슬몃슬몃

 

드러나보이던, 보석을 담아둔 유리상자같이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모습의 까페.

 

 

 

 

 

 

 11월의 바다, 이런 추운 날씨에도 꽃마차는 경포 해수욕장 근처에 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닐 포장막 안과 밖으로 울긋불긋한 조화들이 샛노란 마차 색깔과는 잘 어울려 보인다.

 

확실히 바다 근처에서 거칠 것 없이 내달리는 바람 덕분에, 소라도 팔고 번데기도 파는 아저씨 뒤를 지키고 선

 

커다란 파라솔이 마치 격류에 휘말린 말미잘처럼 촉수들을 나부끼고 있는 중. 

 

모래사장까지 들어오지는 못한 마차 대신, 경포 해수욕장의 모래사장에는 말들만 들어와있다.

 

느긋하게 누워 손님을 기다리는 말, 그리고 무릎을 구부리는 것조차 귀찮은 듯 나른한 표정이 인상적인 말. 

 

 

 바닷바람 냄새를 잔뜩 품고서, 강릉의 커피골목으로 들어왔다. 골목 입구서부터 벽면에 그려진 그래피티가 예사롭지 않다.

 

 

 사층짜리 건물 한 채가 오롯이 까페였는데, 아쉽게도 옥상은 개방되어 있지 않았고 2층에만 올라가도 이렇게

 

한가롭고 포근한 분위기의 공간이 펼쳐졌다는.

 

 

 

그렇게 따뜻한 커피 한잔을 두 손으로 모아쥐고 홀짝거리다가 문득 창밖을 보니 코앞이 다시, 바다다.

 

 

 

 

'맛있는 인생', 현실까지 넘쳐들어온 강릉의 로맨스.

 

영화 '맛있는 인생'에선 차를 타고 슬쩍, 그야말로 옆동네 가는 기분으로 강릉에서 주문진으로 옮겼다는 느낌이었는데,

 

실제로도 강릉에서 주문진 건너가는 건 그런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던 거다. 경포 앞바다를 떠나 길을 잠시 달리다간

 

어느새 다시 나타난 바다는 좀더 본격적으로 항구도 두어개 끼고, 아저씨들은 그물을 정리하고.

 

 

 

방파제의 두 팔 안에 조심스레 안겨있는 주문진항에서 둥실둥실 여유로운 배들, 그리고 그물을 정리하는 분들.

 

그리고 항구 코앞에 바다를 바라보며 주차된 자전거와 자동차, 수면에 기댄 채 출렁이는 배까지. 탈거리 셋이 모였다.

 

주문진에서 출발하는 크루즈호의 선착장. 크루즈라곤 하지만 글쎄, 그다지 호화스러워 보이진 않던데.

 

 

주문진항 근처의 수산시장을 돌다가 만난,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가오리 떼들.

 

골목골목 누비다가 만난 '성인나이트'의 숨겨진 간판, 그렇지만 입구도 숨겨진 거 같구 지금도 하는지는 미지수.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단단한 선언조의 문구가 눈을 확 잡았던, 마치 무슨 공산당 테제같은 느낌의 광고.

 

 

골목을 한꺼풀만 열고 들어가도 재미난 풍경들이 숨어있었다. 슬레이트 지붕을 얼기설기 얹은 허름한 집 앞 자전거.

 

 

수산시장 골목마다 김을 펄펄 피워올리며 새빨갛게 익어가던 가뜩이나 빨간 대게들, 저 녀석들은 물구나무를 서있는 건가.

 

 

주문진항의 상징물 오징어는 왠지 울트라맨에서 자주 나오던 크라켄이던가, 거대괴물이랑 비슷하게 생긴 듯.

 

수산시장 입구에서 사방으로 돌아다니다가 아무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그들처럼 회는 먹고 가야겠다는 다짐만

 

갈수록 단단해지던 차에, 생선을 따로 사고 회를 따로 떠서 어디던 바다가 보이는 곳에 앉아 먹기로 결심.

 

광어랑, 청어였던가 제 이름으로 못 불리고 '잡어'로 통칭되는 생선들 몇 마리, 그리고 개불이랑 멍게까지.

 

그리고 주문진 앞바다. 드문드문 바닷가 깊숙하게 쳐들어간 바위 덩어리들은 이렇게 자그마한 금강산 코스프레중.

 

일만이천봉우리가 하나하나 살아나선 뾰족뾰족 하늘을 이었다.

 

 

바위들 위로 기어올라가 제법 뜨끈하게 달아오른 햇살 바라기 좀 해주고, 덥다 싶으면 아이스크림 하나 베어물고.

 

 

멀찍이 보이는 등대 아래춤에선 사람들이 낚싯대를 드리운 채 정지화면처럼 멈춰 있고. 움직이는 건 바람결에

 

살랑살랑 잔물결을 이어나가는 주문진 앞 바다뿐.

 

조금은 흐린 날씨탓에 하늘과 바다가 분간하지 어려워서 문득 망연해지는 시선을 붙잡아 주는 건, 문득문득

 

생각났다는 듯 날개를 펼치고 하늘과 바다를 가르며 날아가는 갈매기 한마리.

 

 

 

 

 

 

'맛있는 인생', 현실까지 넘쳐들어온 강릉의 로맨스.

 

영화 '맛있는 인생'을 보고선 겨울에 혼자 강릉으로 여행을 갔다던 사람이 있었다. 혼자 떠났던 여행은 슬펐다 했다.

 

그이에게서 영화를 추천받았고, 강릉을 추천받았으며, 어느날은 나 역시 혼자 영화를 좇아 강릉으로 떠나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번엔 다소 잿빛이었던 둘의 기억에 몇가지 빛깔을 더하는 여행. '맛있는 인생'을 따라잡는 여행이 되었다.

 

 

영화에서 그와 그녀가 처음 만나는 호텔, 경포대 현대호텔은 마침 이날이 영업 마지막날이었다. 아예 다 부수고

 

새롭게 다시 신축을 한다는 이 건물, 그래도 마지막으로 돌아볼 수 있어 참 다행이었다.

 

영화 속에서 남자는 문득, 서울에서의 번잡하고 불쾌하고 난처한 일들에서 탈출하듯 강릉으로 향했다. 그리고 도착한

 

강릉, 그가 묵었던 곳이 바로 현대호텔이었다.

 

그와 그녀가 처음 만났던 건 호텔의 까페 카리브. 밤이었던가 아침이었던가, 그는 메뉴에 나와있지도 않은 에스프레소를 찾으며

 

여점원을 괴롭혔고, 그녀는 귀찮은 손님의 난처한 질문에도 겸연쩍은 웃음을 지우지 않았었다.

 

그녀가 이 곳에 묵었을 때는 미처 까페까지는 못 둘러봤다 했었다. 여기서 앉아 차라도 한잔 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지만 이렇게 다시, 이번엔 함께 왔다는 걸로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기를.

 

 

어디였더라, 경포 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이는 창가였던 건 확실한데, 정확히 어디라고 딱 집어서 이야길 못하겠다.

 

사실 어디인들 뭔 상관인가. 호텔에서 내려다보이는 경포 앞바다가 이렇게 이쁘다는 거, 그리고 이 공간에서 그들이

 

영화를 만들며 이렇게 저렇게 동선을 짜고 구도를 잡았으리라는 상상 자체가 재미있는 거니깐.

 

호텔 앞 로비에 있던 푹신해보이는 쇼파들. 저기 어딘가에 앉아서 그는 그녀가 일이 마치길 기다리기도 했었고,

 

그녀는 일이 없는 날 강릉 구경을 함께 나가기로 한 아침, 그를 기다리기도 했던 거다.

 

어라, 그런데 현대호텔의 마지막밤을 아쉬워했던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던 걸까. 어느 프로축구팀 선수들도,

 

그리고 지방순회 공연중인 듯한 강부자 어르신도 체크아웃을 하곤 호텔을 떠나고 있었다.

 

호텔이야 부수거나 말거나, 옆에 있던 나무에서 쪼르르 내려와 고인 물을 할짝거리며 마시는 청설모 한마리와

 

딱 눈이 마주쳤다.

 

영화 속에서 그가 그녀를 좇아 스토킹하듯 뒤를 밟던 그 산책로, 그리고 언젠가는 그 혼자 술에 잔뜩 취해서

 

욕지거리를 우물거리며 호텔방으로 되돌아가기도 했었고, 언젠가는 둘이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기도 했던 길.

 

호텔에서 내려오는 길, 차들이 말줄임표처럼 띄엄띄엄 늘어선 아스팔트 찻길 너머로 노란 모래사장, 그너머 푸른 바다.

 

그와 그녀, 그리고 또다른 그녀는 이런 풍경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호텔 앞 입구. 제법 운치있고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맘에 드는데, 이제 없어진다니 왠지 더 아쉬워서 쉽게 못 뜨겠다.

 

경포 해수욕장을 거닐며, 하나둘 켜지는 가게 불빛들을 보고 있는데 문득 해풍에 잔뜩 움츠러든 해송 너머로 새하얗게

 

질린 거대한 불빛 하나가 저물고 있는 게 보였다.

 

 

그녀의 사진 속에서 보았던 모래사장 위 흔들의자가 저거였을까. 노랑 풀꽃이 점점이 피었다.

 

경포대를 따라 이어지는 길 위에서 불쑥 나타난 꽃마차. 세상에, 청계천변에도 꽃마차가 달리더니

 

경포해수욕장에도 이런 게 있었구나 싶다. 말을 보면 기분좋게 달그락거리는 그 말굽소리를 꼭 듣고 싶어지는데

 

아쉽게도 아직 꽃마차 장사엔 제철이 아닌지 말들은 모두 가만히 서서 자는 듯 쉬고 있었다.

 

 

 

 

 

 

 

 

 

경포호를 한 바퀴 돌아보려 나선 길, 첨에 강릉에 도착해서는 여기서부터 바다인가 시끌시끌하다가 택시기사

아저씨한테 타박을 맞았었다. 그럴 만큼 크고 넓은 호수, 햇살이 모래알처럼 흩뿌려진 그 수면위로 화살표처럼

손가락질하고 나선 전망대.

너울너울. 겨울치고는 부드러운 바람이 수면에 몸을 부비며 자욱을 남기곤, 그 물결을 헤치며 오리들이 나아간다.

오리 두 마리가 둥싯둥싯 떠있는 수면 너머, 멀찍이 경포호의 반대편 끝이 보이고 그 위로 보이는 직선상의 구름 두개.

경포호 가운데에 있는 조그마한..섬이랄까. 자그마한 정자가 하나 세워진 조그마한 그 곳에는 새들이 잔뜩 와서

쉬었다 간다고 했던 거 같다. 뱃놀이가 가능하면 저기까지 배타고 나아가서 들어가 놀아도 좋겠는데.


호수 곳곳에 둥둥 떠다니며 한량질 중인 물새들. 그렇지만 가만히 보고 있으면 똥꼬를 하늘높이 쳐들고는

쉼없이 자맥질하며 먹이를 찾는 게 나름의 먹고 사는 고민에 빠져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무슨 생선일까, 경포해수욕장 가는 길에 벚꽃나무가 쫙 이어지는 길이 유명하다던데, 그 벚꽃나무 사이에 드문드문

저렇게 인공불빛이 밤에 일렁일렁거릴 가짜 나무가 심어져 있던 거다. 그런 나무에 기대어 허공에 내걸린 생선들.


호수의 가장자리, 제법 두꺼운 얼음이 수면을 덮어버린 곳 위에서는 한 무리의 새들이 뒤뚱뒤뚱, 발맞춰 걷고 있었다.

경포대로 옮겨지던 발걸음이 살짝 벗어났던 건, 다소 뜬금없긴 하지만 호수 옆 밭두렁에 촘촘히 꽂힌 채

겨울바람에 떨며 문득 잊었다는 듯 파닥거리던 바람개비들 때문.


그러고 보면 이날 참 하늘이 쨍하니 맑았다. 경포대에 도착하니 모두들 쌍쌍, 게다가 문화유산 해설사까지

동반한 단체 여행객들이 우르르 있길래 똥마려운 강아지모냥 주변에서 뱅뱅 돌며 차례를 기다리다가 한 장.

경포대에 올라 바라본 경포호수. 좀더 걸으려 했는데, 예기치 못한, 갑작스런, 그리고 계속 기다리던 호출.

그래서. 경포호의 나머지 둘레길은 다음 기회에.





한 장의 사진을 기억하며 찾았던 강릉 경포해수욕장. 해풍을 막는 야트막한 솔숲 너머로 깔끔한 흔들의자가,

그리고 그 너머로 탈색되어버린 듯한 누런 빛의 모래사장과 퍼러딩딩한 바다가 있었다.

바다에 도달하면 더 나아갈 곳이 없다 멈추게 되지만, 사실 조금만 몸을 틀면 될 일이다. 바다와 함께, 파도소리와

함께 발맞춰 걸어갈 수 있는 길이 무한하게 뻗어가는 거다.

모래사장엔 경사에 기대어 꽁꽁 얼어있는 잔설들이 아직 남아있었다. 여름철 뜨겁게 달궈졌던 누런 모래사장이

색이 바랜듯 창백해져버린지라 시퍼렇게 차가운 얼음눈들은 자연스레 보호색을 맞춰입어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바다를 따라 앞서 걸어간 걸음걸이들. 발자욱들이 줄맞춰 정연히 늘어선 게 왠지 땅을 헤집어둔 공동묘지같다.

무언가 저 구덩이에 넣고 봉긋하게 흙을 쌓아올리면 파도가 와서 다 쓸어버릴 것 같은. 그런 세기말적 풍경.

바다를 따라 걷는 기분이 그랬다. 파티나 잔치가 끝난 뒤의 적막함이랄까, 50연발 폭죽이 숨쉴틈 없이 터지고 나서

텅 비어버린 채 모래사장에 나뒹구는 느낌. 겨울바다의 풍경들이 하얗게 재만 남아버린 가슴에 날아와 박혔댔다.

BGM은 서영은의 '겨울바다', 경포해수욕장에서 무작정 북쪽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뭐 뾰족한 일정이 있는 것도

가야 할 곳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으니, 그냥 저 위쪽 어딘가에 테라로사라는 까페가 있다는 이야기만 듣고

슬슬 걸어보기로 했던 참이었다. 바다를 따라 걷다가 불쑥 기습하는 파도에 발걸음이 뒤척거리기도 하고,

문득 뒤를 돌아보면 어느새 발걸음이 파도에 씻겨내리기도 하는 길.

그러다 문득 발에 채인 유리병 하나. 와인병에 코르크 마개로 단단히 막힌 게, 안에는 돌돌 말린 종이까지 제대로

갖춰져 있는 게 한눈에도 파도에 실려온 메시지를 담고 있어 보였다. 뭐지, 일본에서 왔나. 아님 미국..?

그 자리에서 코르크마개를 따고 안의 종이두루마리를 꺼내 보았다. 약간 습기가 차 있긴 했지만 까끌한 종이의

질감이 그대로 남아있고, 테이프로 허리춤이 둘둘 감겨 있어 슬쩍 들춰본 속지엔 한글이 써져 있는 듯. 일단은

들고 가다가 나중에 따뜻한 데 앉아서 읽어보기로 했다.

꽁꽁 언 민물길이 바다로 향하는 길, 얼음에 반사된 빛무리들이 시멘트 교각 바닥을 긁으며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삼면이 바다라는 한국의 해안가에 빼놓을 수 없는, 군부대와 군대 시설물들. 여긴 심지어 탱크가 한대

바닷바람에 녹슬어가고 있었다.

뭍에서 흘러내리는 민물이 모래사장 사이로 야트막한 개울을 만들었다. 찰박거리며 위태로이 바다로 향하는

물길을 시시각각 얼리며 덮쳐오는 얼음판, 그 위로 성글게 번지는 빛그림자.


더이상 물의 흐름이 읽히지 않는 빙판, 여러번 깨지고 얼고 깨지고 얼고의 과정을 반복한 듯 조각난 얼음판들이

조각보처럼 이리저리 얽혔다.

그리고 어느 모래사장에 꽂힌 채 당당히 바다를 굽어보던 팽팽한 낚시대 하나. 가늘고 약해 보이는 낚시대가

바싹 성난 듯이 머리를 곧추세우고 있는 게 제법 긴장감을 머금고 있다.

몇 걸음 걷다가 문득 뒷주머니가 허전해졌다. 아까 그 와인병 안에서 꺼냈던 메시지를 뒷춤에 꼽아넣고 있었는데

여러번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카메라를 만지다 보니 어느 틈에 도망가 버린 것. 왠지, 그 종이쪼가리를 꼭 찾아야

한다는 조바심이 들었다. 발걸음을 되짚어 거꾸로 걷길 십여분. 이렇게 얌전히 구덩이에 놓여있는 걸 용케 다시 만났다.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모습은 언제 봐도 가슴이 시원해진다. 바다가 떠밀어 보내준 메시지도 다시 찾았고,

방파제를 때려부술 듯한 소리를 내며 들썩이는 파도를 보며 계속 걸었다. 


날카로운 칼날처럼 깨어졌을 유리조각조차 이렇게 부드럽고 둥그런 모습으로 바꿔버리는 파도의, 바다의 위력.

특히나 겨울바다가 주는 신산하고 허한 느낌이란 건, 어쩌면 이렇게 모든 것들을 쓸어버리고 잘게 부숴버리다가

종국에는 남는 것 하나 없이 지워버리는 그 압도적이고 거대한 힘에 대한 경외감이나 허무함일지도 모르겠다.

겨울이라 그런지, 바다 색깔이 한결 더 검푸르다. 잉크처럼 검푸른 바닷물이 수면으로 밀어올려져서는 점점

에메랄드빛으로 연해지다간 하얀 파도로 보글보글. 모래사장까지 끌려나온 파도는 뒤미쳐 온 파도에 익사해버린다.

이쯤이 좋겠다 싶어서, 메시지를 펼쳐 보았다. 누군가의 글씨가 하얀 종이 가득 적힌 채 인연을 칭하며 친구를

청하고 있었고, 언제나 행운이 가득하기를 바란다는 인사까지 적혀있었던 메시지. 이메일 주소도 적혀있었지만

알아볼 수가 없어 연락할 도리는 없고, 배를 접어 바다에 띄워보내는 게 최선이지 싶었다.

그렇게 뭍에서 흘러내리는 민물이 만들어낸 자그마한 개울에 띄워서 바다로 흘려보내며. 중간중간 모래톱에

걸쳐 멈추기도 하고, 빙글빙글 제자리에 맴을 돌기도 했지만 어쨌든 바다까지 나가는데 성공.

순긋해변이던가, 간소하게 만들어진 부두가 방파제의 품 속에 안겨 있었다. 시뻘겋게 녹슨 철제구조물 위로

앙상하게 덮인 나무판때기, 그리고 딱딱한 부두시설과 딱딱하고 약한 배 사이의 완충을 위한 고무타이어.


파도가 철썩철썩 방파제에 속절없이 부딪혀 깨지고 있었다. 자그마한 부두의 외곽을 단단히 감싼 방파제,

언뜻 보면 아무렇게나 팔다리를 쩍쩍 벌린 채 내팽개친 탕녀나 탕아 같기도 하다.

모래사장을 따라 계속 걷고 있는 참이었다. 경포대에서 사근진, 순긋, 순포해변까지 이름이 계속 바뀌고는

있었지만, 모래사장은 죽 이어진 한 길이었다. 물론 이렇게 중간중간 민물이 넘실거리며 모래사장을 가르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물이 마른 겨울철이라 잔뜩 녹슨 다리는 아무 쓰임도 없이 그저 거기 있을 뿐.


바다를 계속 끼고 걷자니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아까는 바다가 모든 걸 지워버리고 무화시켜 버리는 힘을

갖고 있어서 허무하다 했지만, 아니, 그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아무리 잘게 깨고 부수고 으깨어도 뭔가는


남는다. 그렇게 남은 것들이 조금씩 쌓여 모래사장을 이룬 걸 테니까. 말하자면 저건 수백년, 수만년 전의

감정과 희로애락이 그대로 담겨 있는 거대한 아카이브인지도 모른다.

사념(思念), 사념(沙念), 모래들의 사념들. 파도가 아무리 으깨고 바스라뜨릴 기세로 억겁년을 덤벼든다 해도

사념들은 고스란히 남는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게 변한다는 말이 진리처럼 통용되지만, 아닐지도 모른다.

조금씩 해가 기울어갔다. 쉬엄쉬엄 사진도 찍고 돌아보기도 하며 걸은 길인지라, 게다가 바닥이 단단하지 않아

걷기 쉽지 않은 모래사장으로만 따라 걸어온 길인지라 꽤나 시간을 들여 걷고 있었다.

저 너머 고래등처럼 수면 위로 불쑥 튀어나온 바위 위에는 갈매기들이 가득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녀석들이

싸질렀을 게 뻔한 배설물들이 성난 파도로도 쉽게 지워지지 않을 하얀 줄무늬가 얼룩덜룩.

순포해변을 지나 계속 올라가려는데 아무래도 분위기가 이상하다. 해안가를 따라 철망을 얹은 철책이 끝없이

이어져있고 중간중간 저렇게 침투 대비용 표찰까지 붙여놨다. 어렸을 때는 돌멩이를 철책에 꼽아놨었던 거 같은데.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모래사장, 녹슨 깡통만 굴러다니며 버려진 해변이나 마찬가지다.

한쪽엔 바다를, 한쪽엔 부대를 끼고서 아예 쭉 주파해버릴 생각으로 열심히 걷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서 난리가

났다. 호루라기를 불고 손을 흔들고. 더이상 접근하지 말라길래 은근 부아가 나서 걍 지나간다는데 왜 난리냐고

한마디 했다가, 그냥 왔던 걸음 되짚어 돌아가기로. 불쌍한 군바리들, 까라면 까는 그들이 무슨 잘못인가.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 트리 위에 얹었던 탈지면 솜뭉치를 닮은 얼어붙은 눈 한조각. 밟으면 아작아작 소리가 나는게

좋아서 한참 밟고 돌아다니다가 조그마한 이 녀석은 차마 밟지 못하고 사진 한장.

이 녀석은 얼마나 묵은 걸까. 모래를 잔뜩 묵은 이 녀석은. 페인트가 벗겨지고 단단한 알루미늄 캔이 호일처럼

얊고 약해질만큼의 시간이 흘렀고, 이제 조금씩 몸이 헐어가며 모래알로 변해갈 거다.

돌아나와선 부대 뒷켠의 차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앙상한 싸리비를 거꾸로 꽂아놓은 듯한 겨울 나무, 그 위로

싸리비에 이리저리 쓸리고 번져버린 듯한 겨울 하늘. 슬몃 노을이 번지기 시작했다.


애초 목적지도 없이 그저 걷던 참이었지만, 문득 생각해보니 이 근방에 테라로사라는 까페가 있다고 했었다.

겨울바다라봐야, 도착하면 금세 추워져서 이내 돌아올 걸 알고 있었으니까. 저런 까페에 앉아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거짓말처럼 눈 앞에 번쩍 나타났다.

그렇게 근 세시간, 경포대에서부터 북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모래사장을 밟아 걷던 길이 끝나고, 테라로사에 앉아

다시 또 네다섯시간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고 글도 끼적이고.


잔뜩 걸었지만, 쉼없이 뭔가를 생각했던 것 같지만. 막상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니 다 사라져버린 것 같아서

따뜻한 까페 안에서 이상한 죄책감과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했던. 그렇지만 그건 또 다른 이야기.




밤을 꼬박 샌 참이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였지만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머릿속은 온통 한가지 생각뿐이었다.

그랬는데 어느 순간 곧 동터올 시간이 되었음을 의식했고, 굳이 커다란 가방에 쑤셔넣어온 삼각대가 머릿속 귀퉁이부터

스물스물 다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목도리까지 꽁꽁 싸매고 내키지 않는 몇걸음 나서니 바로 경포 해수욕장의 모래변.

싱겁게 벌겋던 하늘, 날이 흐려 해뜨는 게 안 보이나 했다. 어느 순간 파도가 미친 듯이 펄쩍거렸고, 귀가 얼얼한

파도소리에 덩달아 흥분하기라도 한 듯 붉은 해가 솟았다. 잿빛의 짙은 안개같은 구름을 찢고 그야말로 불쑥, 솟았다.

그 순간만큼은 머릿속을 꽉 채운 채 미동조차 없던 그 한가지 생각도 잠시 사라진 듯 했다. 다행이었달까.

환상이었다. 그 생각은 잠시 밀려났던 성난 파도처럼 내 머릿속을 온통 휩쓸고 다시금 흠뻑 잠식해버렸다. 그렇지만,

태양이 솟고 파도가 철썩이던 그 순간의 압도적이고 삼엄하던 분위기는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온몸에 직접 와 부딪히는

것처럼 격하게 헐떡거리며 절정을 향해 내달리던 파도소리, 그리고 그 거대하고도 무거운 구체의 몸뚱이를 우아하고도

가볍게 하늘의 길을 따라 쳐올리던 태양의 부지런한 궤적.


 


 

@ 강릉, 경포 해수욕장.

강릉에 있는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 원래는 요새 강릉 지자체에서 꾸며놨다는 바우길을 따라 걸으려

했었다지만, 어쩌다보니 바우길 코스에서 벗어나 발길 닿는대로 걷는 일정이 되어 버렸다. 그건 아마도

뭔가 이렇게 흥미로워보이는 게 눈에 띄면 쪼르르 달라붙어 고개를 묻고 있던 일행들 덕분이기도 할 거고,

빗발이 변덕스럽게 쏟아붓던 지랄같은 날씨 탓이기도. 여하간, 코스에 대한 강박관념 따위는 버리는 게 좋다.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 조선시대 최고의 여류 문장가였던 허난설헌이 남매

사이라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는데, 헷갈렸던 건 그 중 누가 손위였냐 하는 문제. 허균이 오빠?

아니면 허난설헌이 누나? 왠지 허균이 늘 앞서 이야기되기도 했던 데다가 여기 이름도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인지라 허균이 손위 오빠일 거라는 추측에 무게가 실렸다. 진실은 기념공원 안에서 확인하기로.

공원 안에는 허난설헌 생가터가 있었다. 허난설헌이 태어났고 허균도 아마 태어난 곳 아닐까, 이미 한무리

방문객들에게 열심히 설명해주고 계시던 봉사자분의 말씀을 귀동냥해보니, 여기는 토담과 주변솔밭이

조화를 이루어 마치 연꽃이 물에 뜬 것과 같은 '연화부수(蓮花浮水)'형의 명당터라고 한다. 지금도 이렇게

소나무숲 한가운데 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는데 과거엔 더욱 그럴듯한 풍광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었을 듯.


처마 끝에 서려 있던 이슬로 빚어진 그물망 하나. 조선시대 이런 변방에서 태어났던 양반가 자제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저렇게 그물망 하나 풀어놓고 세월을 낚는, 권력의 중심으로 굳이 애써서

나서려 하지 않고 안분지족의 삶을 즐기는 '폐포파립'의 선비였으려나. 아니면 언제고 중앙정치의

무대로 되돌아갈 생각으로 이를 갈며 쓸개를 핥던 야심가들이었을까.



아무래도 신분제에 예리한 비판의식을 갖고 있던 허균이나, 사람 대접도 못 받던 여성이었던 허난설헌

모두 전자에 가깝지 않았을까. 나라를 뒤엎겠다는 거대한 혁명의 꿈까지 꾸진 않았다고 하면, 에라 그냥

산좋고 물좋은 강릉에서 시나 읊고 글이나 쓰고, 음풍농월로 한세월 보내자는 생각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면 그들 남매는 '양반-상놈', '남존여비'의 당대 관념에 얼마나 시니컬했을까. 뭐 그렇지만 그들의

문학가로서의 명성이 중국에까지 뻗쳤다는 게 함정. 힘들게 피보며 나라를 엎느니 그게 남는 장사일지도.

기념공원 앞에 있던 홍길동 기념관. 조그마한 오두막이 2층으로 지어져 있었다. 올라가면 뭐가 있으려나

싶어서 걍 외관만 구경하고 말았는데, 기념관 안에는 온갖 버전의 홍길동전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마

허균은 본인의 숨겨둔 욕망, 못 가본 길에 대한 갈증을 홍길동으로 하여금 대리충족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초가지붕이 단정하게 얹혀있는 황토빛 화장실. 궁서체로 써진 '화장실'이란 글자가 나름 운치있다.

사용후기 : 사람이 그렇게 많이 방문하는 곳이 아니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깔끔하게 관리되더라는.

허난설헌 생가와 기념관 옆에 서있던 오문장비. 이 곳에 살던 허씨 5문장을 기념한 비석들로 아버지 허엽,

장남 허성, 허봉, 허난설헌, 그리고 허균 이렇게 다섯 명을 허씨 5문장이라고 한단다.

그 중에서도 특히 글재주가 돋보였다며 후대에도 칭송이 자자했던 사람은 바로 허난설헌, 알고 보니

허균이 막내아들이었고 그 손위 누이가 허난설헌. 무려 6살이나 많았던 난설헌의 본명은 초희라고 한다.

허균의 생몰년도는 1569-1618, 허난설헌의 생몰년도는 1563-1589.


그녀의 글재주는 8살때 신선세계의 궁궐 상량식에 자신이 초대받았다고 상상하고 썼다는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에서부터 조선땅과 중국땅의 인증을 받고 일본에까지 그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그녀의 시는

현재까지 약 210여수가 전한다고 하는데, 그나마 그녀의 유언으로 전부 태우고 남은 게 그만큼이란다.


허초희. 이름이 참 이쁘다. 이름을 알고 나면 얼굴이 궁금해지는 건 인지상정. 그녀의 초상화를 바탕으로

빚어낸 그녀의 황동빛 조상이 기념공원 한가운데 단아하게 앉아있었다. 27살에 죽었다니 정말 이른 나이에

돌아갔구나, 역시 천재들은 일찍 요절하는 법인가 싶어 살짝 씁쓸해지던 차에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었을

사실들이 몇개 나열되어 있는 게 눈에 띄었다. 풍류를 즐기던 남편, 빡빡한 시어머니, 무엇보다 자녀들의

죽음과 태중의 아이까지 상실한 아픔. 생각보다 참, 힘들고 신산스러운 삶이었겠다.


그녀가 두 자녀를 잃고서 썼다는 시를 보면 허초희 그녀의 심정이 얼마나 아팠을지가 절절하다.

제목은 '아들딸 여의고서'.

 

"지난 해 귀여운 딸애 여의고 올해도 사랑스런 아들 잃다니

서러워라 서러워라 광릉 땅이여 두 무덤 나란히 앞에 있구나

사시나무 가지엔 쓸쓸한 바람 도깨비불 무덤에 어리바치네

소지올려 너희들 넋을 부르며 무덤에 냉수를 부어 놓으니

아무렴 알고말고 너희 넋이야 밤마다 서로서로 얼려 놀테지

아무리 아해를 가졌다한들 이 또한 잘 자라길 바라겠는가

부질없이 황대사 읊조리면서 애끓는 피눈물에 목에 메인다."
 


기념관을 한 바퀴 돌아보며 허난설헌과 허균의 삶과 사상, 문학세계를 돌이켜보고 나니 왠지 기분이

스산해졌다. 물론 그들이 당대의 문명을 널리 중국과 일본에까지 떨치고 죽어선 지금까지도 이렇게

기념하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당장 그들의 삶이 어땠을지 계속 맘에 걸린다. 엄마로서 아이들을 앞세우고

아내로서 남편과 시댁의 박대를 받고, 그렇다고 해서 조선 문단의 일원으로 제대로 평가되지도 못했을거고.

그게 허초희의 질곡이었다면 허균 역시, 본인이 꿈꾸던 세상과 사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가는 세상에 대한

욕구불만과 갑갑증은 오죽했을까.

기념공원을 빠져나가 경포호로 이어지는 길을 찾았다. 삐쭉삐쭉 가늘고 길다란 소나무들이 이쑤시개처럼

땅바닥에 꽂혀있는 솔밭 사이 오솔길을 걸었다.

조선시대나 그 이전의 수묵화를 보면 소나무를 저렇게 앙상하게, 그저 쭉쭉 기둥만 그려놓고 위에

한웅큼 다복솔을 뿌려놓곤 해서 상상해서 그린 거 아닐까 했는데, 아니었다. 수묵화 속의 소나무들이

그대로 실사로 표현된 공간. 


경포호로 가는 길은 홍길동의 분신들이 촘촘히도 지키고 섰다. 다리 양쪽에 선 울타리에도, 교각 위에도,

뭔가 솔방울 수류탄을 던지는 포즈의 홍길동이 거북이 등 위에 단단하고 버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여긴 다시 바우길 위. 올레길이 파란색 조랑말표식이나 화살표로 코스를 안내해 주었다면

강릉 바우길은 저렇게 파랑색 솟대 그림으로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경포호 옆길로 바싹 다가서자 저너머 경포대가 보인다. 경포호가 이렇게 컸구나, 싶은 실감을 하고 있던

차라서 정반대에 있는 경포대까지 가보는 건 일단 가볍게 포기.

경포호를 따라 걷다보니 홍길동전의 스토리를 따라 조성된 조각들이 보인다. 홍길동의 어린 시절이라는

이 세 아이들의 조각 중에 누가 홍길동일까,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가운데의 제일 개구진 녀석이 아닐까

싶다. 어렸을 때 유별나게 개구장이였던 녀석이라야 나중에 크게 된다는 말...이 있었던 거 같은데.

그나저나 저런 아크로바틱한 자세라니 보통 인간은 가능하지도 않을 자세인데, 역시 홍길동의 타고난

신이함을 드러내는 조각이라고 마음대로 정리.

그리고 돌을 네 조각으로 두부처럼 썰어버리는 어마어마한 칼솜씨, 홍길동이 수련중인 장면이다.

그리고 탐관오리들의 행패..였던가. 아니면 탐관오리들을 징벌하는 활빈단..이었던가. 형틀에 묶인 채

맞고 있는 게 선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에 따라 홍길동전의 전개상 기승전결 중 '승'에 해당할지 '전'에

해당할지 바뀌겠지만, 여하간 맞고 있는 사람의 표정이 무척이나 괴로워보인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게다가 저 펑퍼짐하게 까뒤집어진 채 맷자국이 도랑처럼 남은 엉덩이, 참 아파 보인다.

홍길동이 율도국을 세우기 전, 그 섬에 있던 요괴들을 처치해야 하는 퀘스트가 남았다. 아마 이 요괴들을

없애고 나서야 아리따운 여인을 얻어 혼인, 해피엔딩에 이르렀던 거 같은데. 요괴들이 짜리몽땅하고 왠지

익살맞게 생긴 게 그렘린같기도 하고, 골룸같기도 하고.

언제나 영웅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나름의 갈고 닦은 영웅포즈로 마무리되기 마련이다. 홍길동이 갈고 닦은

포즈는 바로 이것, 주춤 서서는 한 손으로 칼을 쥐고 다른 손으로 거리를 잡는. 이 조각상은 특히 인상에

남았던 이유가, 홍길동의 눈이 새겨져 있지 않아서였다. 눈을 새겨넣으면 밤에 홍길동 조각이 살아나서

당장 이 나라의 탐관오리와 부패한 '조정'을 뒤집을 것이 겁났던 걸까.

이렇게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을 둘러보고 경포호를 따라 걷다간, 경포대해수욕장까지 가서 주변 횟집에서

회 한접시 먹는 것도 꽤나 그럴 듯한 코스였다. 허균은 익히 알고 있었다지만 그저 여류 문인의 한명으로만

알고 있었던 허난설헌, 허초희 그녀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거칠게나마 알게 된 것도 적잖은 소득이었고.





경포해수욕장, 사람들이 적지도 않은 모래사장 한가운데 잔뜩 녹슬은 채 방치되어 있던 중장비.

언제부터 세워져있었던 건지 온통 녹슬다 못해 캐터필러 사이에 뿌리를 내린 잡초들이 싱싱하게

줄기를 뻗어올렸다. 뒤로 보이는 샛노랑빛의 탱탱한 튜브와 대비되는 흐물흐물한 노란색 껍데기가

굉장히 지저분하고 인공적으로 보이는 건 약간의 편견이 작용한 결과. 사실 탱탱하고 반짝거리지만

머리아픈 고무 냄새가 자욱할 튜브나, 시꺼멓고 끈적한 기름이 뚝뚝 새고 있을 폐차나 오십보백보.







경포호 근처 '바우길'을 걷다가 발견한 보도블록 위의 잔혹한 그림, 무려 몸통이 잘려나갔다. 싹둑.


아마 어른 한사람과 뒤를 따르는 아이 한사람이 열심히 걷고 있는 그림이었던 거 같은데, 애초

인도의 보도블록 위에 저런 그림을 굳이 왜 그려놓았어야 했는지가 한가지 의문.


그리고 대체 우리나라는 보도블록을 왜 그리도 시도때도 없이 바꿔대는지가 두번째 의문, 멀쩡한

블록을 세금 소진하려고 바꾼다는 비난이 이어지니깐 요샌 아예 블록 자체를 불량으로 사는 거 같달까.


그리고 여하간 블록을 일부만 교체해서 저렇게 험한 결과물이 남았다면 왜 마저 그려넣지

않은 걸까, 세번째 질문. 담당자가 달랐으려나, 나머지도 마저 철거하려나, 뭘까.








강릉 경포해수욕장, 굵고 단단해 뵈는 파이프가 하나 모래사장 위에 굳건하게 박혀있었다. 사람들이 뛰어내릴

수 있고 안전하게 버틸 수 있으면 되는 게 번지점프대라면 딱 그 기능에 필요충분한 파이프. 고개를 무리하게

꺽어야 그 꼭대기와 그 위에 선 사람들이 보이는 각도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뛰려던 건 아니었다. 저런 건 돈을 받고나 뛰어내릴까, 그저 남들이 뛰어내리는 걸 보고 싶었던 건데,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어느 여자분이 소리도 없이 뛰어내렸던 순간. 한없이 늘어날 듯한 줄이 어느 순간

출렁, 동시에 왈칵 뒤로 튕겨진 그녀의 목청이 비로소 터졌다. 꺄아악!


어우, 난 저런 건 돈 받고서도 못하겠다. 많이 주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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