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레브의 구시가를 형성하는 두개의 언덕 중 하나, 그라데츠 언덕의 동문에 있는 스톤 게이트는 오히려 '기적의 성모'가

 

현현했다는 이야기로 더욱 유명하다. 1700년대에 일어났던 화재로 동문이 전부 타버렸지만 그 잿더미 속에서 한점 손상도 입지 않은

 

성모 마리아의 성화가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다. 이후 이곳은 성지순례의 장소가 되었고 이른바 '영험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더욱더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고 한다.

 

 

 스톤 게이트는 그런 이야기가 서린 동문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짧은 터널 같기도 한 그 곳의 위로 향하는 조그마한 문에

 

빗겨 내려쬐는 햇살이 더욱 운치를 더한다. 아마도 스톤 게이트 위의 성당으로 이어지는 문일까, 평소엔 닫혀있는 듯 하다.

 

 

사람들이 모두 자석을 만난 철가루처럼 정렬하고 선 저 너머, 꽃으로 장식된 저 창살 너머에 언뜻 보이는 그림이

 

바로 그 '기적의 성모' 성화라고 한다. 신의 뜻이라는 게 고작 잿더미 속에서 그림 한장 구해낸 걸로 드러나는진 모르겠지만,

 

많은 이들이 이 곳에 소원을 빌고 실제로 이루어졌다고 하니 딱히 딴지를 걸고 싶진 않고.

 

그보다 스톤 게이트 입구에 세워진 여인상이 더 재미있는 스토리를 감추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단단해보이는 나무상자와

 

하트가 그려진 열쇠를 들고 있는 여인은 아름답지만 단호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거부했다며

 

분노하고 질투에 눈먼 남자에게 독살당하는 어처구니없도록 단순하지만 강력한 비극의 주인공이라는데,

 

그럼에도 자신의 의지와 마음을 몇번이고 지켜내겠다는 결의인 걸까. 몸매 전체에서 결연한 의지가 엿보이는 거 같기도 하다.

 

 

스톤 게이트에서 동서로 이어지는 자그레브 구시가의 풍경. 따로 전봇대가 없이 길 위에 떠있는 가로등들이 특이하다.

 

 

이렇게 스톤게이트의 동쪽 문과 서쪽 문을 찍고 나서 보니 왠지 터널같이 생겼다는 느낌이 더 짙어진다.

 

문 위로 약간 시커먼 흔적은 터널에서 빠져나온 매연이나 연기가 그려낸 자국 같기도 하고.

 

스톤 게이트로 향하는 언덕길 위에서 커다란 뱀 혹은 용을 무찌른 채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성 조지의 기마상.

 

 

 스톤 게이트를 지나 자그레브의 구시가, 그라데츠 마을의 골목들을 하나씩 탐방하다가 만난 갤러리에서 발견한 크로아티아 고대문자.

 

영어 알파벳과도 같지 않고 마치 중국 고대 갑골문자 같이 생긴 이 도형들은 꽤나 자유분방해보이고 매력적이다.

 

 크로아티아의 중세 시대를 달궜을 온갖 무기들과 갑주, 방패들이 전시된 또다른 갤러리.

 

 

그러고 보면 길의 오르내리막이 뚜렷이 실감나는 게 자그레브 구시가의 특징인 거 같기도 하다.

 

두 개의 봉긋한 언덕을 오르내리다 보면 올망졸망 모여있는 크로아티아의 역사적인 장소와 건물들을 섭렵하게 되는 거다.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 바로 인접한 곳에 있는 절두산 순교성지. 사실 이곳은 드물지 않게 강변북로를 타거나

 

합정을 거쳐 강북이나 강남을 넘나들 때 꽤나 지나친 곳이기도 하다. 그저 지나치기만 했다는 게 함정이었달까.

 

 

좌회전이 불가하다는 속세의 붉은 사인 따위 코웃음치며 하늘 높은 곳과 사방을 고루 가리키는 녹슨 십자가.

 

 

 아마도 조선 말기 천주교를 받아들였던 어느 대감 양반이런가.

 

 성모의 얼굴이나 안고 있는 예수의 얼굴이 참 와닿는다. 딱 한국인 얼굴이다.

 

 

 

 고수부지로부터 자전거를 끌고 계단을 올라와 순교지에 올라온 사람도 보인다.

 

 

 많은 천주교 신자들의 '박해'와 '순교'를 기리기 위한 곳, 교회와 천주께 바쳐졌다는 그들의 충성은

 

더러 기존 질서와 관습에 대한 극단적인 거부와 천대로 이어지곤 했다는 것도 동시에 기억해둘 비극이다.

 

 

 

 천주교 신자들이 어떻게 박해를 받았는지 모형과 이야기들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해둔 체험관.

 

 

 한국의 초대 추기경이 타고 다니던 포니 2를 반짝반짝한 상태 그대로 보존하고 있던.

 

 

 그리고 엎어져 곤장을 매우 치던 형틀 역시 사실적인 (아마도) 1:1 실제 사이즈로 재현되어 있었고.

 

 발에 차는 차꼬와 얼굴에 씌우는 형벌기구들까지.

 

 

 

그리고 절두산 성당으로 올라가는 길.

 

 

 녹색의 그늘은 짙푸르고, 어디선가 불어오는 봄바람에는 성당의 성가대 노랫소리가 살짝 실렸다.

 

 

 절두산 성당은 순교자들에게 씌웠던 목칼, 조선시대 양반이 즐겨쓰던 갓, 그리고 순교자들에게 채워진

 

차꼬를 형상화한 쇠사슬의 세가지 포인트를 갖고 건축되었다고 한다.

 

 

 

 온통 해어진 채 구멍이 너덜너덜한 예수님. 아마 이 시대의 이 땅을 지켜보는 예수의 마음이 저럴 거다.

 

 

 활짝 열린 성당의 정문 안 쪽으로 당당하게 걷고 계신 수녀님.

 

 

 성당 앞에는 미니어쳐로 성경의 유명한 구절들을 재연해두고 있었다. 아마도 이 모습은,

 

글쎄, 묵을 곳을 구하지 못해 헛간에 잠시 몸을 뉘인 요셉과 마리아 아닐런지.

 

 

그리고 이 장면은 필시 예수가 최초로 기적을 행하는 장면일 거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

 

 

 성당 뒷켠에는 흥선대원군이 세웠을 척화비가 여전히 시대착오적으로 당당하다.

 

 

  

 저 분은 얼핏 듣기로 한국 최초의 신부님이셨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시라 했던가.

 

 

 

 절두산 성지 옆구리 쪽으로 돌아가면 이렇게 성모상을 모신, 붉은 장미꽃들이 화환처럼 에워싼 곳이 나타난다.

 

 

 

매번 지나치기만 하던  절두산 순교성지. 이쪽에서는 더욱 잘 보이는 갓 모양의 둥근 형상과

 

구멍이 뻥 뚫린 목칼의 형상. 그리고 건물을 빙 두르고 늘어뜨려진 차꼬를 형상화한 쇠사슬의 형상들.

 

 

 

짜오프라야 강을 남쪽으로 달리는 쾌속 유람선에 별 대책없이 올라탔다. 뭐 어디까지 가나

보자는 심정 반, 가다가 괜찮은데 있음 내키는대로 내리자는 심정 반. 의외로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불쑥불쑥 솟아있는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버티곤 선 오성급 호텔들이나

새로 지어지고 있는 고층빌딩들.

촌스럽다 싶을 정도의 원색을 세개나 써서 빨갛고 노랗고 초록빛나는 배가 통통거리며 지나고,

그 뒤로는 흰색으로 우아하게 뻗은 유람선, 그리고 턱없이 불끈 솟아오른 완강한 빌딩의 뼈대

사이엔 뭔가 적잖은 이질감이 느껴졌다. 너무 크고, 혹은 너무 작고.

뱃전에 선 아이들은 아주 신나셨다. 사방으로 손가락을 찔러대고, 격한 강바람을 온몸으로

즐기면서 속절없이 부어지는 햇볕 아래 펄쩍대고 있었으니까.

유람선이 짜오프라야강의 마지막 역인 '오리엔탈' 역에 멈춰섰다. 그 전역, 전전역, 전전전역에서

내릴까 말까 갈등하다가 강바람이 좋아서 그냥 끝까지 와버렸다. 배 위 이층탑 위에서 배를 조종하던

마도로스 아저씨의 선그라스가 반짝, 빛났고 나는 내려서 '유럽의 어느 길'을 옮겨놓은 듯 하다는

오리엔탈 역 근처를 걷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찾아도 '유럽길'을 옮겨놓은 듯 하다는 고풍스럽고 세련된 느낌의 거리는 간데없고

그냥, 여느 방콕의 거리랑 비슷한 거다. 관광지 쪽에만 집중된 밀도높은 사람들, 활기 같은 것들이

벗겨지고 난 고즈넉하고 한산한, 적당히 허름한 거리. 그리고 어디에나 뿌리깊이 박혀있는 불교.

그랬는데 문득 눈앞에 전 교황님인 요한 바오로2세의 동상이 나타났다. 이럴 수가. 역시 이쪽 동네는

'유럽'의 거리를 옮겨놨다더니 성당도 다 보이는구나 싶었다. 자세히 밑의 명판을 읽어보니 그가

태국 방콕에 한번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걸 기념해서 이렇게 동상을 만들어 놓은 거라고 하는데,

그의 발치에 놓인 조그마한 화환이 역시 태국이구나, 싶다.

성당 내부는 꽤나 화려하다. 성당임에는 분명한데 금색 도료가 아낌없이 칠해진 걸 보면 역시

종교가 수입될 때도 나름의 문화적 맥락과 고유한 미감이 덧칠해져서 받아들여지는 거다.

그리고 얼핏 굉장히 이국적으로 보이는 천사상도, 태국스럽다고밖에 할 수 없다 싶은 건 역시

팔에 푸짐하게 둘려진 꽃다발. 노란빛깔이 강렬한 화환이 다소 가라앉은 색감의 천사상을 둥실

하늘로 띄워올리는 느낌이었다. 태국의 성당은 역시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저런 화환 만으로도.

그리고 한참을 방황하다가 발견한 건 그 '유럽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하다는 동아시아회사.

과거 제국주의 시절 유럽 열강이 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을 경영하면서 진출했던 기업의

건물인 듯 한데, 아쉽게도 입구는 막혀있었다. 그저 겉으로만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뭐 조금

1밀리그램쯤은 유럽의 느낌이 난다고 쳐줄 수도 있겠다.

저 위의 깃대에는 어느 나라의 깃발이 휘날렸을까. 안에 들어가면 뭐가 있을까. 이것저것 꼬리무는

물음표들이 떠오르긴 했지만, 그런 것만큼 더 확실하게 다가왔던 건 역시나, 어줍잖은 몇마디

감상평이나 가이드북 코멘트에 낚이는 건 위험하단 사실. 그래도 저 태국화된 성당의 느낌을

얻어내었으니 나름 뜻밖의 수확은 충분했다.

노틀담 성당을 지나다가 우연찮게 구경하게 된 미사 집전 장면, 아마 파리 추기경이 직접 와서 집전하는 것

같던데 제법 볼만한 광경이었다. 아름다운 성당과 더불어 멀리부터 순례해 오는 듯한 사제들과 수사들이 

파리 시내 가운데서 압도적인 경건함을 피워올린다.
 
양쪽으로 쭉 늘어선 관광객들과 구경꾼들을 헤치고 노틀담 성당으로 스며들듯 빨려드는 하얀 옷입은 신의

대리인들. 이미 미사를 보려는 교인들은 성당 안에 만석이었다.

왠지 가톨릭교와 관련된 오리지널 버전의 이미지랄까, 그런 걸 생각하면 아무래도 벽안의 백인 (남성)신부다.

최근까지만 해도 하느님-혹은 신-의 이미지 역시 서양 백인남성의 그런 이미지 일색이었다가, 얼마전부터

그런 성상이나 성가에 대해 '한국적' 시즈닝이 가해졌다고 알고 있다. 검은 머리 검은 눈의 예수님, 국악풍의

성가라는 건 바람직한 변화인 거 같긴 하다.

사실 '신성함'의 외피를 두르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은지도 모른다. 정숙하고 느릿한 발걸음, 신과 그 위엄을

상징하는 온갖 악세사리와 기호들, 그와 나의 공통 인식기반이 되는 문화적 컨텐츠들. 예컨대 천지창조니

부활이니 하는 신이 역사한 사건들에 대한 경외감.


그런 건 모두 거품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들의 외피가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 법정스님 선종 후 터져나온

봉은사 명진스님에 대한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외압설에 대해 '종교인이 정치색이 심하다'느니, '모든 걸 버리고

조용히 하라'느니, 따위의 조언을 주고 받는 사람들은 종교적 신성함과 종교적 의미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법정스님이 4대강 사업에 강한 반대 입장을 밝혔던 건 어떨까. 세상에 뒹굴며 세속에서 힘쓰는 게 곧

'더러워지고' '신성함을 해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워낙 관광객이 많은지라, 앞에는 미사를 방해받지 않고 볼 수 있도록 성당 가운데쯤 바를 쳐 두었다. 높은 천장,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정숙하게 걸러진 햇살, 십자가에 집중된 조명, 파이프오르간의 장중한 선율과 울림까지

미사 참여의 목적이 아닌 '구경'의 목적으로 들른 사람들조차 위압한다.


미사는, 프랑스어로 진행되어 뭔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글로리아, 아멘, 이정도? 근데

말을 못 알아들어도 하울링 심한 마이크를 통해 전달되는 신부님의 낮고 단정한 음색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혹은 신성한 느낌이었다고 표현해야 할지도.

그에 비하면 요새 나오는 더미 파이프오르간은 상당히 간소하면서도 정갈한 느낌이다. 애초 천장이 저리도

높고 공간이 넓은 성소를 짓기란 요새 세상에 불가능하니, 파이프 오르간의 성스러운 효과음 역시 시대에

맞게 바뀌어 연출되어야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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