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향하는 거침없는 오르막길, 그 문턱에 있는 시누와. 시누와까지만 당나귀나 물소가 다니고 그 위로는

 

사람만 등짐을 메고 다닐 뿐이라고 한다. 덕분에 거머리의 습격도 없고 당나귀 똥밭도 없긴 하지만, 또 그래서 시누와 위쪽으로는

 

미네랄 워터를 팔지도 않고 그저 끓여서 정제한 물만 판다는 단점도 있다. 위로 오를수록 물가가 올라간다는 점도 있고.

 

시누와를 지나 2,310미터 고지의 밤부Bamboo에 다다라 점심을 먹기로 했다. 대나무가 많이 나는 마을이라 밤부, 맞다고 한다.

 

 

 

지천으로 피어있는 게 꽃나무고 풀떼기들인데도, 이렇게 플라스틱 케이스를 재활용해서 롯지 곳곳을 식물로 꾸며놓았다.

 

롯지 앞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대나무숲, 사람들이 몇명 들어가서 대나무를 베고 죽순을 채취하고 있었다.

 

이미 슬쩍 소슬해질 만큼 낙차가 느껴지는 기후, 맨땅바닥에 그대로 앉으면 엉덩이가 차가워져서 꼭 저렇게 양털가죽을 깔고 앉으라

 

말해주는 세심한 가이드, 그 덕분에 푼힐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코스를 무사히 잘 다녀왔다.

 

그리고 점심. 달밧을 시켰는데 반찬이 색다르다. 역시, 대나무가 많이 나는 지역이라더니 밑반찬도 대나무 속대로 만든 요리. 맛있었다.

 

 

다시 배를 채우고 출발, 해발 2,920미터 고지의 히말라야 캠프까지 올라갈 생각이었는데 그러면 대충 500미터 어간을 올라야 하는 셈.

 

체코에서 오신 70대 노부부의 페이스에 맞춰서 살살 '천천히 천천히' 올라가기로 했다. 한국어와 영어를 굉장히 잘하는 가이드가

 

제일 먼저 배운 한국말은 역시나, '천천히 천천히'라고 했던가. 무작정 서두르고 다그치며 오르는 한국인들이 많은가보다.

 

한참 걸어가는데 옆에서 대나무 속대를 채취해서는 다듬고 있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등짐을 메고 이마로 끈을 버팅기며 저 무거운 가스통을 이고 지고 나르는 사람.

 

 

앞의 체코 노부부를 챙기는 가이드도 굉장히 살뜰하고 세심한 사람이었다. 다리를 건너거나 경사가 가파른 곳을 지날 때는

 

원, 투, 쓰리, 발 딛을 곳까지 하나하나 지정해줘가며 인도해주고, 어떨 때는 이렇게 힘껏 지탱해주는 든든한 버팀목도 되어주고.

 

아무리 봐도 네팔어는 참, 저 글자를 어떻게 쓰는 건지 신기하기만 하다. 쓴다기보다 그린다는 표현이 맞을 거 같다.

 

 

점점 안개인지 구름이 휘감고 있는 지역이 늘어나고, 경사도는 완만해질 줄 모르고 끝없이 오르막인데다가 짐은 무겁다.

 

 

그래도 주변의 풍경들, 급류를 이루고 흘러가는 개울과 온통 초록초록한 가운데 점점이 뿌려진 꽃송이들.

 

그런 풍경을 천천히 음미하며 오르다보니 금세 히말라야 캠프. 2,920미터의 이곳에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는 이제

 

세개 포스트 남았다. 데우랄리,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 그리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아무 목적지 없이 그냥 걷기..가 이번 여행을 하면서 괜히 별 이유도 없이 세웠던 고집이었는데

생각보다 그런 건 쉽지 않았던 거다. 가다 보면 문득 지금 방향에 대해 두려움이 생기고, 이쪽이

아니라 저쪽으로 가야 뭔가 중요하고 귀한 걸 놓치지 않을 것 같고, 무엇보다 목적지 없이

휘청대는 걸음 자체에 대한 불안함이 있었던 거 같다. 망망대해에서 무작정 항해하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었다.

조금 타협하기로 했다. 걷다가 여기가 어디쯤인지 지도만 슬쩍 보고 확인하기. 지도를 보고

그곳의 몇몇 이름난 명소를 향해 졸졸 따라가는 길을 인도받으려는 게 아니라, 그냥 정말로

지금 내가 어디에 와있는지만 확인하면 족한 걸로. 누군가 일러주는 대로 길을 가는 건 이미

한국에서 내비게이션의 지령을 따라 운전하는 걸로 질릴만큼 질려버렸으니까.

그러고 나니 조금은 수월하게 걸을 수 있었다. 한참 걸으며 대충 머릿속으로 여기가 어디쯤일지를

상상하다가, 내키는 곳에서 오렌지주스나 망고를 먹으며 쉬기도 하고, 아님 아예 그럴 듯한

까페에 눌러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슬쩍 지도를 곁눈질하며 어디쯤인지를 확인하는 건 나름의

밀고 당기는 리듬감이 느껴져서 좋았다.

길을 가다보면 문득 차들이 쌩쌩 다니는 고가 도로 위를 걷기도 하고, 맨발의 소년이 낚시찌를

던지는 냄새나는 강둑을 지나기도 했다. 누군가가 굳이 담벼락 위에 CCTV처럼 걸어둔 노랑색

물총을 보며 궁금해 하기도 하고, 차도 옆까지 온통 꽃밭으로 가꿔둔 태국인들의 꽃 사랑에

감탄하기도 하고. 더러 황량한 골목으로 부러 꺽어지며 어떤 풍경과 사람들이 숨어있나 슬쩍

기웃거려 보기도 하고. 그러다 문득 동서남북의 방향감, 얼만큼 걸었는지의 거리감이 상실되면

적당한 표지판 앞에서 지도를 펼치는 거다. 여기가 어디지, 하며.

어쩔 수 없이, 랄까 가다 보면 뭔가가 가까워지고 그럼 자연스레 발길이 그리로 향하기도 했다.

뭔가 커다랗고 특이하고 사람과 가게들이 몰려있는 곳들, 몇 대의 대형버스가 관광객들을 토해내고

거두어가는 그런 곳. 인적없는 곳을 한참 떠다니다가 그런 부산한 지점이 가까워진다 싶으면

마치 철가루가 자석의 자장에 이끌리듯 내 궤적 역시 몇 개 지점으로 수렴하고 마는 거다.

그래도, 그렇게 덥썩 일로직진하여 그곳으로 돌입하고 싶진 않았다. 쿡쿡 찔러보고 슬슬

에둘러가며 멀찍이서 감각하다가 우연처럼 이쁜 까페를 발견해서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선그라스를 벗고 시원한 망고&라임 쉐이크를 쭉 빨아서 땀을 식히려다가 차가운 두통에

조금 인상도 써주고. 쿠션을 껴안고 늘어지게 앉아서는 다시 책을 꺼내들어 조금 읽기도 하고.

그렇게 설렁설렁, 이날의 반환점은 왓 아룬이었다.

마음 같아선 그저 걷다가 쉬고 또 걷고, 그렇게 어디로든 거침없이 뻗어나가는 선이 되고 싶었다.

그렇지만 또다시 어쩔 수 없이, 나의 걷기 자체도 해와 달에 귀속되고 마는 거였으니 해가 저물고

어둠이 나리면 슬슬 돌아갈 염려를 할 수 밖에 없는 거다. 그러다 보면 언제나 커다란 원의

궤적을 염두에 두어야 하고, 해가 정점을 찍고 낙하할 무렵 방향을 홱 틀어야 하는 거다.

러시아 민담이었던가, 하루종일 걸어서 원위치로 돌아온 땅이 전부 자기 것이 된다는. 그런

이야기에 빗대자면 나는 하루치 걸어서 무얼 갖게 된 걸까. 어느 광장에 따끈한 대리석 위에서

엉덩이만 비비가 뭐해서 아예 가방을 베고 에라, 누운 채 해가 떨어지고 퍼렇게 멍들다가

까뭇해지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제 돌아가야 할 때. 여행을 떠나도 돌아갈 곳은 남는다.

여행을 떠나도 돌아갈 곳은 남는다. 원하던 원치 않던. 닭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다.

조그만 골목에 기대어 테이블을 세우고 음식을 팔았을 허름한 길거리식당, 어디에서나 마주치는

태국 국왕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둥실 떠올랐다.





#1. 아놔, 카메라가 갑자기 두동강 나서 바닥에 철푸덕. 이제 막 길을 나서서 해장국골목서

한그릇먹고 일어나려다가, 엉덩이가 그대로 붙어버렸다.


#2. 황남빵 한박스 사들고 가끔 꺼내먹으며, 비닐봉다리에 담긴 카메라 두조각 달랑거리며

걷고 있다. 대릉원, 첨성대, 계림, 월성과 안압지를 지나 황룡사지에서 잠시 휴식중.

#3. 걷는 것만큼 확실하고 단단하게 이동하는 방법은 없지 싶다. 내가 감내할 만한 속도로

주위사물들을 하나씩 만지듯 분별하며 뒤로 흘려보내고, 주위 분위기에 흠뻑 젖을만큼

스스로와 풍경을 동화시켜준달까.

#4. 경주 시내를 빠져나와 오릉, 박혁거세니 유리왕이니 소설속 인물같은 이들의 소설같은

무덤을 둘러봤다. 저 언덕들은 참 곱게도 잔디를 입혀놨단 생각만 들 뿐, 죽은 이들이 쉬는

공간에서 느껴져야 할 답답함이나 무거운 공기가 없다. 이천년 가까운 시간이 죽음의

무겁고 퀘퀘한 냄새조차 날려버렸다. (그나저나 안내판엔 온통 한자뿐. 그것도 손글씨.)


#5. 박혁거세의 탄생설화가 서린 우물이라 신라의 우물, 나정인가. 예수보다 육십년쯤 먼저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가 발견된 우물이 아직 남아있단 게 더 신기. 우물이니 알이니

동정녀니, 섹스(혹은 불륜)를 숨기거나 신성화하려는 전략이란 점에서 예수나 혁거세나

베들레헴이나 경주 나정이나 오십보 백보.


#5. 나정에서 포석정을 지나 삼릉골로 가는 길이다. 포석정 뒷길로 남산을 오를까 하다가

매표소 아줌마에게 추천을 청했더니 역시 삼릉골로 오르는 게 볼 것도 많고 길도 재밌다고.

남산은 당시 신라인들이 부처가 머물고 있다 생각했던 곳이라 했던가. 골짜기마다 잔뜩

조성된 석탑과 석불 따위 불교 유적들이 대단하다. 아마도 사람들은 산에 기대듯 부처에

기댔던 거다. 아니면 부처에 기대듯 산에 기댔는지도.

#6. 삼릉골이란 이름은 골짜기 입구에 세 개의 커다란 릉이 있어서라고 하지만, 막상

언덕만한 왕들의 무덤이래봐야 남산에 의탁하고 나니 그다지 위신이 안 선다. 왕이

자연에 귀의한 느낌이랄까, 산자락에 오체투지의 자세로 늘어붙은 것 같은 젖꼭지 세개.

#7. 워낙 삼릉골을 따라 조성된 탑이니 부처가 많은지라 이름모를 조각들도 뒹굴고 있었다.

그 중 문득 시선을 사로잡던 저 미묘하게 불룩한 위치와 모호한 손놀림.

#8. 선각육존불, 커다란 바위에 선으로 여섯 부처를 그려놓았던 곳이다. 그렇지만 바위

자체의 무늬와 오랜세월 깍이고 다듬어진 자취 때문에 선을 하나하나 식별하기가 이젠

쉽지 않아진 그림판. 군데군데 청동처럼 녹도 슬었다.

#9. 저 바위의 효용은, 그보다는 저 위로 좀더 올라가서 자리를 잡고 해바라기했을 때다.

왕릉같이 부드럽지만 위엄있는 선을 그려내는 경주의 산들이 바라보였다.

#10. 돌아나오는 길에 어느 새로 짓는 듯한 전통음식점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한옥지붕위로

어벙벙하게 웃고 있는 저 표정, 조그만 눈과 헤벌쭉한 입이 그렇지만 굉장히 다정다감했다.

2010년에 다시 그린 경주인, 신라인의 얼굴일지도.


* 경주남산 가이드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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