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롯데월드를 열심히 건축 중인,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채로 강행 중인 이 건물을

 

풀샷의 스윙으로 날려버리겠다는 듯한 포즈의 역동적인 해머 던지기 선수.

 

 

 

 

 

 

얼마전 드디어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억하기 위한 박물관, 단어가 좀 이상하지만 '박물관'이 생겼다는 기사는 봤었다.

 

독립공원 내에 지어지기로 했다가, 광복회 같은 단체에서 '격이 다르다'며 건립에 반대했다던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문제를

 

단순히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 vs '피해자 한국'의 구도로만 보는 한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생각했던 사건이었다.

 

 

어쩌면 좀더 깊숙하게는 '전쟁' 상황에서 '여성과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국가 폭력의 문제, 남성들이 가하는 폭력의 문제까지

 

볼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여성', '인권' vs '전쟁'시 증폭되는 남성성의 문제, 그게 본질인지도 모른다. 한일간의 국가간

 

문제가 아니라. 그런 의미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억하고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공간에 붙은 이름은 무척이나 명확했다.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가는 길은 참, 참담하도록 허술하고 허름했다. 제대로 된 표지판 하나 없어 종이로 전봇대에 붙여놓은 화살표가 전부.

 

쓰레기 무단투기 경고판이 그나마 화살표를 가리고 있어서 눈 크게 뜨고 돌아보지 않고는 찾기도 쉽지 않은.

 

일본에 대고 국가 배상을 해라 말아라, 한국 정부는 떠들지만 말고 이런 기억의 장소부터 제대로 챙길 일이다.

 

 

드디어 나타난 간판. 늦은 가을, 혹은 초겨울의 날씨에 붉은 단풍이 서렸다. 근데 아무래도 '박물관'이라는 단어가 좀.

 

박물관 건물 전경. 독립공원 내에 입주를 포기하고 찾은 곳이 홍대입구에서 멀지 않은 이 곳의 가정주택이었다고 한다.

 

 

*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39-13 (월드컵북로11길 20)

 

 - 개관시간 : 13-18시 (화-토, 수요일은 수요집회 후 15-18시)

 

 - 홈페이지 : www.womenandwar.net

 

 - 전화 : 02-365-4016

 

 

얼마전 트위터에서 '미디어몽구'님이 앞장서서 모금운동을 펼쳤던 걸로 기억하는데, 할머니들 수요집회 다니시거나

 

외부 활동 다니실 때 쓰시라고 기증된 차량도 볼 수 있었다. 모금한 분들의 이름이 하트 모양을 그리며 새겨져 있었던 핑크빛 차.

 

건물 귀퉁이에 조그맣게 있는 입구.

 

마침 수요일이어서, 수요시위를 마친 오후 세시부터 관람하러 들어갈 수 있었다. 보통은 오후시간만 개관.

 

입구를 들어서면 나비들이 날아오르는 동영상이 쉼없이 돌아가는 벽면의 설치물, 그리고 매표소.

 

카드 사용이 불가하며 일반인은 3,000원, 청소년은 2,000원, 어린이는 1,000원.

 

지하 1층, 1층, 2층으로 구성된 전시공간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과 슬픔을 생생하게 담고 있었고,

 

개별 전시공간은 유기적인 이야기로 잘 엮여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아쉽게도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입장료를 내면 티켓을 받는데, 매일 다른 할머니와의 인연을 맺게 된다고 한다.

 

11월 21일, 홍강림 할머니와의 연을 맺었지만, 이 분은 이미 스러져가신 다른 많은 할머니들처럼 세상을 뜨셨다.

 

"일본 정부는 증거가 없다고 하는데,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이 그대로 증거입니다!"라고 외치시던 분들.

 

유일하게 촬영이 허용된 곳은 2층의 소녀상. 비어있는 의자 옆에 두 주먹 꼭 쥔 소녀가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이 깜박이지도 않고 응시하고 있는 곳은, 수요집회의 영상. 할머니들이, 지지하러 온 사람들이 확성기의

 

웅웅거리는 소리를 머금고 일본 정부에 외치고 있는 영상이었다. 위안부의 존재조차 여전히 부정하는 그들을 향한.

 

슬픈 듯 분노하는 듯, 아니면 차라리 안타까워하는 듯한 그녀의 눈빛. 어깨에 앉은 새 한마리.

 

의자가 두 개, 앉은 사람은 하나. 저 소녀가 혼자 진창같은 삶을 살아오다 진실이 알려진 게 고작 1991년이다.

 

이십년이 넘어가지만, 저 옆자리에 앉아서 함께 해야 할 사람들의 수는 적기만 하다. 일본 정부나 한국 정부를 막론하고.

 

작년인가, 헌법재판소에서 그간 한국정부가 필요한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획기적인 판결을 내렸다던데, 바뀌려나.

 

2층에서, 금지되어 있음을 알면서도 한 장 굳이 찍고 말았다. 이게 뭐냐하면,

 

위안부를 상대하는 군인들에게 지급된 콘돔이다. '돌격'이라고 쓰여진 콘돔...돌격이랜다. 끔찍한 표현.

 

 

정신대, 처녀 공출 따위 여러 표현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따옴표까지 포함해 '위안부'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위안부'라는 표현 자체가 남성의 시각에서 쓰이는 표현이기 때문에 따옴표 안으로 넣었다고 하는데,

 

정확히는 "군대(국가 폭력)에 의한 집단적/조직적 강간"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2층 테라스의 추모관. 하나둘 세상을 뜨시는 할머니들이 벽돌 하나하나를 비석삼아 쉬고 계셨다.

 

나와 연이 맺어진 홍강림 할머니, 누군가 놓고 간 붉은 장미가 흐드러지게 벌어졌다.

 

그리고 박물관 앞뜰. 날이 좋으면 이곳에서 문화행사도 열고 담소도 나눌 수 있다고 하는데, 이날은 찬바람만 머물렀다.

 

돌아나오는 길. 굉장히 먹먹해진 무거운 마음으로 나오는데, 입구 겸 출구인 곳 앞에서 나비떼가 확 번져갔다.

 

그리고 들어갈 때 미처 보지 못했던 돌무더기 한 줌. 어찌 보면 장수를 기원하는 거북이같이 생기기도 했고,

 

그 위에 묵직하게 얹힌 돌멩이들 하나하나가 왠지 위안부 할머니들의 장수를 기원하는 거 아닐까 싶어서.

 

나도 돌 하나를 얹어놓았다.

 

찾아가는 길, 그리고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관련 정보 다시.

 

 

*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39-13 (월드컵북로11길 20)

 - 개관시간 : 13-18시 (화-토, 수요일은 수요집회 후 15-18시)

 - 홈페이지 : www.womenandwar.net

 - 전화 : 02-365-4016

 

이렇게 날 추운 계절에도 타임스퀘어에 나와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뉴욕 타임스퀘어에 다녀온 사람들은 모르는 이가 없을만큼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벌거벗은 카우보이', Naked cowboy. 남여를 불문하고 뭇 시선을 한눈에 받는 찰진 궁둥이.

 

 

기타를 설렁설렁 치며 노래를 부르다가도 사람들이 다가오면 포즈를 취해주고, 저렇게 같이 사진을 찍기도 하고.

 

 

 

요모조모 뜯어보면 다리도 제법 이쁜 편이고, 몸도 탄탄하니 좋다. 저러니까 벗고 다니지, 란 생각도 드는데.

 

 

어머니들이고 딸내미들이고 모두 활짝 웃으며 그와의 포즈에 동참.

 

그리고 한켠에선 웃통을 벗어제낀 아저씨의 온몸에다가 굵은 선으로 그림을 그려넣는 아저씨도 있었고.

 

 

스머프와 픽사 애니메이션 캐릭들이 실사화되어 난무하기도 했다.

 

 

뉴욕의 악명높은 경찰이 말을 타고 순시 중이기도 했고, 누군가는 프리허그 팻말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고.

 

아무래도 키티는 실사화하면 좀, 머리가 너무 커서 어색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들고.

 

정말 미국적인 캐릭터가 성조기를 꿰매어 만든 듯한 옷을 입고 있는 쥐시키.

 

스폰지밥은 그냥 진짜 스폰지밥같이 생겼는데,

 

아무래도 키티는 이상하다.

 

 

그리고 이 사람도 참 끈질기게 보이는 사람, 2001년엔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는 배터리파크에 이런 사람이 있었는데.

 

그런가 하면 인디언 추장같은 아저씨가 젖퉁을 드러낸 채 팅커벨이랑 이야기를 하고 계시기도 하고.

 

엘비스는 길을 무단횡단하는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꽥꽥 고함을 지르다가도 카메라 앞에선 급 방긋해주시는.

 

 

 

아이폰 3GS가 거의 수명을 다해가는 와중에,

 

대체 왜 아이폰5는 나오지 않는 건지 궁금해하면서

 

지난 여름 다녀온 뉴욕과 홍콩의 애플샵 비교 사진 업로드.

 

뉴욕 맨하탄 중심부에 있는 애플샵. 거대한 유리상자 안에 애플 로고가 뙇, 박혀 있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프레임을 거의 쓰지 않은 거대한 판유리들로만 이루어진 저 입구는 왠지 아이폰의 디자인 미학이 담겨있다 싶었는데

 

아닌게 아니라 잡스가 직접 디자인을 하고 신경써서 만들어낸 공간이라고 한다. (원래 그는 거대한 유리 한장으로

 

한면을 덮고 싶었다는데, 만드는 것도 힘들지만 그 금액이 어마어마해져서 저렇게 조금 현실화된 거라고 한다.)

 

입구를 들어가면 이렇게 투명한 계단과 엘레베이터 중에서 내키는 길을 골라 애플의 세계로 풍덩.

 

이것저것 맥북이니 아이패드니 구경하다가, 아무래도 맥북에어에 눈길이 자꾸 가는 걸 피할 길 없어 간단히 웹서핑.

 

파란 셔츠를 입은 스탭들이 옆에서 안내도 해주고 사용법도 설명해주고 있던 왁자지껄한 공간, 마치 파티장같던 그곳.

 

그리고 홍콩 도심 한복판에 있던 애플샵. 건물이 독특한 거겠지만 거리의 양쪽으로 커다랗게 두발 딛고 서서는

 

건물 아래편으로 차도가 씽씽 나서 차들이 요리조리 다니고 있었다. 건물이 먼저인지 애플이 먼저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러나저러나 애플스럽달까. 왠지 장난스럽고 이목을 끌어올 만한 포지션이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파란 셔츠를 입은 점원들이 샵 안에 온통 와글와글한 방문객들을 안내하고, 활용법을 알려주는 등

 

뉴욕이나 딱히 다를 거 없던 내부 풍경.

 

 

아이폰 5는 언제 나오려나.

 

 

 

 

 센트럴역에서 나와 조금 걷다보면 자칫 놓치기 쉬운 간판이 보인다. 홍콩의 지하철역이 으레 그렇듯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힐사이드 에스컬레이터가 출발. 참고로 이곳의 시꺼멓게 그을려 글씨도 알아보기 어려운 간판엔

 

'the Central Escalator Link Alley Shopping Arcade'라고 적혀 있다.

 

 다짜고짜 시작되는 에스컬레이터. 1994년 300억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해 2년반만에 완공했다는 800미터짜리 에스컬레이터다.

 

연간 2천만명이 이용하는 이 에스컬레이터는 산 윗동네 사람들의 출퇴근을 돕고 교통 정체를 완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애초 출퇴근용이니만치 오전엔 하행, 오후엔 상행으로 방향을 바꾼다고 한다.

 

 그런 내용이 적혀 있는 안내판, 에스컬레이터를 안전하게 타기 위한 온갖 지침이 총망라되어 있는 듯 하다.

 

 중간에는 이렇게 벽화가 그려져 있기도 하고.

 

 

건물 중턱에서 툭툭 튀어나와 사방으로 연결되는 아케이드를 따라 에스컬레이터로 합류하는 사람들하며.

 

 어느새 에스컬레이터가 오르는 길 아래로는 저만치 간판들이 늘어뜨려져 있을 만큼 높이 올라왔다.

 

 

 

 아래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정수리도 보이고.

 

 

 초록빛 화살표를 따라 멍하니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싣고 주변 풍경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 어느새 소호.

 

 소호의 조금은 음침하면서도 술렁이는 분위기를 간직한 골목통을 지나고.

 

 어느 그럴듯한 바에 앉아 맥주병을 홀짝거리는 하얀 머리의 멋진 할머니도 만나고.

 

 그새 이렇게나 많이 올라왔나 가끔은 뒤도 돌아보며 에스컬레이터가 직선으로 관통해온 궤적을 헤아려보고.

 

 위로 오를수록 점점 눈에 띄는 주택가의 올망졸망한 풍경들을 보며 그들의 일상이란 어떤 걸까 상상해보기도 하고.

 

 아무래도 소호를 넘어 위로 올라가면 주택가라 '볼 것이 없다'더니 관광객의 출입이 드문지 에스컬레이터까지 뚫고 들어온

 

왕성한 생명력의 파초 이파리가 불끈.

 

 그런 와중에 이어지는 주택들의 창문들. 에스컬레이터 양쪽 풍경을 온통 꽁꽁 닫힌 창문으로 막아버렸지만, 그래도

 

저렇게 리듬감있게 매달린 화분들이나 몇가지 소품들로 지나는 사람들을 배려했달까.

 

 

 끝까지 올라갔더니 정말, 당황스럽도록 아무것도 없는 휑한 주택가여서, 어쩔 수 없이 조금 걸어내려가야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를 땐 몰랐는데, 꽤나 가파르고 길다. 더구나 내려가는 길이나 무릎 도가니에 꽤나 부담이 가는 듯.

 

이 정도의 경사라면 조금 실감이 나려나. 마침 빨간 색이 화려한 홍콩의 택시들이 우르르 멈춰서서 신호를 기다리던 장면.

 

 

찜사쪼이의 스타페리 선착장, 빅토리아 항을 향해 활짝 열린 창문들 너머로 보이는 홍콩 찜사쪼이의 스카이 라인.

 

그리고 바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센트럴과 완짜이의 스카이라인. 스타페리를 타고 건너갈 예정이다.

 

한가로운 시골의 버스 터미널을 연상케 하는, 적당히 촌스럽고 한가로운 분위기의 선착장 내부.

 

스타페리, 라는 이름은 굉장히 럭셔리해 보이는데 실제로 빅토리아항을 오가는 스타페리들은 그렇게 럭셔리하진 않다.

 

다만 배 위에서 반짝거리는 별 모양 쇠장식이 눈에 가까스로 잡히는 정도.

 

 

 

 

찜사쪼이에서 센트럴, 찜사쪼이에서 완짜이, 다시 센트럴에서 찜사쪼이, 완짜이에서 찜사쪼이. 네가지 경로로 바삐 다니는 배들.

 

 

그 와중에 온갖 개인 선박이나 화물선들도 낑겨 다니느라 바다 위는 제법 바쁘다.

 

 

찜사쪼이의 명물 시계탑이 굽어보고 있는 선착장에서, 막 도착한 스타페리에서 우르르 쏟아져내린 사람들이 걸어나가는 참.

 

스타페리 옆에 새겨진 배의 정식 이름은 'Twinkling Star', 반짝이는 별이란다.

 

 

'트윙클링 스타'페리호를 타고 완짜이로 가는 길, 홍콩 컨벤션/엑시비션 센터를 지나고, 그 뒤로 센트럴 플라자가 보인다.

 

 

점점 가까워지는 홍콩 컨벤션 & 엑시비션 센터.

 

그리고 깜놀하게 생긴 옛 범선 모양의 배도 시야를 가르며 달려나가고.

 

뒤로 돌아보면 저만치 조그마한 미니어쳐처럼 보이는 시계탑과 찜사쪼이의 선착장.

 

 

이제 센트럴 선착장에 도착. 찜사쪼이에서 센트럴까지는 대충 6-7분 걸린 듯 하다.

 

스타페리에서 내리기 전, 방금까지 따끈하게 엉덩이로 덥혔던 의자를 슬쩍 살폈다. 좌석마다 온통 오각별이 반짝반짝.

 

 

 

 

 11월의 바다, 이런 추운 날씨에도 꽃마차는 경포 해수욕장 근처에 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닐 포장막 안과 밖으로 울긋불긋한 조화들이 샛노란 마차 색깔과는 잘 어울려 보인다.

 

확실히 바다 근처에서 거칠 것 없이 내달리는 바람 덕분에, 소라도 팔고 번데기도 파는 아저씨 뒤를 지키고 선

 

커다란 파라솔이 마치 격류에 휘말린 말미잘처럼 촉수들을 나부끼고 있는 중. 

 

모래사장까지 들어오지는 못한 마차 대신, 경포 해수욕장의 모래사장에는 말들만 들어와있다.

 

느긋하게 누워 손님을 기다리는 말, 그리고 무릎을 구부리는 것조차 귀찮은 듯 나른한 표정이 인상적인 말. 

 

 

 바닷바람 냄새를 잔뜩 품고서, 강릉의 커피골목으로 들어왔다. 골목 입구서부터 벽면에 그려진 그래피티가 예사롭지 않다.

 

 

 사층짜리 건물 한 채가 오롯이 까페였는데, 아쉽게도 옥상은 개방되어 있지 않았고 2층에만 올라가도 이렇게

 

한가롭고 포근한 분위기의 공간이 펼쳐졌다는.

 

 

 

그렇게 따뜻한 커피 한잔을 두 손으로 모아쥐고 홀짝거리다가 문득 창밖을 보니 코앞이 다시, 바다다.

 

 

 

용산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과 기획전시관 사이에 텅빈 공간은 그대로 서울의 밤풍경을 담아내는 화폭이 된다.

 

멀찍이 파랗게 빛나는 탑은 서울N타원, 주변에 별무리처럼 총총이 박힌 주홍불빛들이 따스해 보인다.

  

위로 올라가서 내려다본 서울 시내, 이른 시간부터 후둑후둑 내려앉은 어둠 사이로 집집의 불빛이 안온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폐장이 가까운 시간이 되니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거대한 구조물만 덩그마니 남았다.

 

박물관 안에 있는 이쁜 까페에도 온통 테이블과 의자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창밖으로 드리운 두꺼운 어둠 덕분에 깊은 바다속에 들어와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창 밖, 그 심해 속에서 유영하고 있던 두 석상. 중앙박물관 앞에 꾸며진 석조산책로는 예상치 못했던 멋진 공간이었다.

 

 

 

 

 

 동국대 캠퍼스 너머 남산N타워가 올려다보이는 장충단공원에 다다른 짧은 가을 풍경.

 

돌로 만들어진 석교 위로 사뿐사뿐 떨궈지는 색색의 낙엽을 즈려밟고 가을이 줄달음질치는 중이다.

 

 공원 한쪽에는 가을빛을 머금은 맑고 차가운 개울이 흐르고, 그 위로 울긋불긋한 가을 풍경이 한겹 깔렸다.

 

새파란 하늘, 바삭바삭 익어가는 가을 낙엽들.

 

 

곳곳의 벤치에서 따끈한 가을볕에 몸을 덥히며 여유로운 시선으로 가을 풍경을 만끽하던 사람들,

 

장충단공원의 가을이다.

 

 

 

 

 

 

장충체육관을 끼고 신라호텔 뒷켠으로 올라가는 길, 옛 서울 사대문을 잇는 성곽을 따라가는 산책로 들머리에서

 

나른하게 몸을 옹송그리고 꾸벅거리고 있는 토실토실 얼룩고양이 한 마리.

 

반얀트리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길은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 동대입구에서부터 여하간 남산산책로로 이어지며

 

여차하면 남산N타워까지 기분좋게 걸어갈 수 있는 서울성곽길의 한쪽 코스다.

 

모든 구간에서 옛 성곽의 자취를 따라 걷는 건 아니고 중간중간 성곽이 완전히 망실된 곳도 있지만, 그래도 이 구간에서는

 

대략 옛 성곽을 끼고 주욱 걷게 되는 거 같다. 성곽의 커다란 돌뭉치를 꼬옥 쥐고 여름 한철을 지난 덩굴손 이파리가 노랗다.

 

그렇게 경사가 급하지도 않은데 어느새 서울 시내가 눈 아래로 굽어보인다. 성곽을 따라 올라선 집들의 지붕에 눈높이가 맞는.

 

 

 아직 풍성한 초록빛 단풍이파리 사이로 빛이 한줄기 내리쬐이니 줄기에 뚜렷이 새겨지는 잎의 형상.

 

 

 햇볕을 얼마나 받았는지에 따라 단풍이 드는 속도가 다르다더니, 이쪽 구간은 온통 시뻘겋게 불이 붙었다.

 

 나무에서 떨어져나와 사각사각 말려들어가는 이파리가 더욱 짙은 붉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날씨가 갑작스레 차가워져서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이 보이지 않아 더욱 좋았던 산책로.

 

 

 후둑후둑 떨어지는 노랑빛, 빨강빛 조명과 그 아래 회색빛 성곽을 얼룩덜룩 마구잡이로 칠해놓은 가을볕.

 

 성곽의 총구멍 안에까지 어떻게 들어갔는지 새빨갛게 달아오른 낙엽 한 장이 슬쩍 햇살을 등지고 웅크렸다.

 

 

 

 그리고 아직 시퍼런 생기가 푸르딩딩한 풀밭을 좌우로 거느린 나무계단을 따라 걸으며 이어지는 성곽길.

 

 

반얀트리가 눈앞에 보일 때쯤, 눈 아래로 굽어보이는 남산의 울긋불긋한 풍경, 그리고 남산로.

 

 

 남산 산책로로 어찌어찌 접어들어서 조금 더 걷던 길. 길도 이쁘고 날씨도 나쁘지 않아 언제까지고 걸을까 하다가.

 

설렁설렁 걷다가 조금 큰 원을 그리며 다시 동대입구쪽으로 돌아섰다는 짧은 가을소풍 이야기.

 

 

 

 

 

이쁘다 싶은 까페 안에서도 막상 손에 들린 카메라를 여기저기 향하며 사진에 담기란 쉽지 않은 거 같다.

 

그런 흔치 않은 기회는, 까페 안에 손님이 달랑 나 혼자라거나 각자의 뭔가에 열중한 사람들이 조금 있을 때 정도랄까.

 

 

 올림픽 공원 근처 우유빙수가 제법 맛있는 어느 까페에 갔을 때, 마침 시그마 18-250렌즈 신형을 시험하던 차에

 

잔뜩 찍어본 까페 안 풍경.

 

 

 

간결하고 매끈하면서도 뒤로 무난하게 잘 젖혀질 거 같은 의자들이 쿠션을 하나씩 품고 있기도 하고.

 

 

 벽면에 장식된 그림이나 자잘한 소품들에 눈길이 간다.

 

 의자 위에는 잡지가 자연스레 누워있기도 하고.

 

 

 고양이 인형이 발딱 서 있는데 저건 태엽시계인 거 같은데 움직이질 않으니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고.

 

 

 까페 공간보다 훨씬 크게 마련된 공간에는 와인을 팔고 있었는데, 거기에도 나름 독특한 소품들이 보였다.

 

 

 이런 와인 창고를 하나 개인적으로 갖고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어느 주류 매장에 가던 꼭 한 번 해보는 생각.

 

 

일어서기 전, 방금까지 내 옆에 비스듬히 고개를 숙인 채 따뜻한 빛을 떨궈주던 스탠드를 한번 슥 봐주고 바이바이.

 

 

 

 

 

 오대산 국립공원은 월정사로도 유명하지만, 산기슭을 따라 걷는 전나무숲 산책로가 참 좋다. 산책로 옆으로 따라 흐르는 개울.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던 8월의 한여름. 저만큼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던 나뭇잎들이 흙바닥에 점점이 박혔다. 레오파드 무늬.

 

 

어느결에 문득 추워질 계절을 예감하고는 더운 날씨에 도토리를 모으느라 여념이 없는 다람쥐들.

 

 

마른 흙길을 가운데 두고 하늘 높이 치솟은 전나무들, 어디선가 짙은 숲향이 번져나오는 산책로.

 

 

워낙 오래된 나무들이 많은데다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안에서부터 비어나가다 끝내 쓰러지고 만 거대한 나무둥치.

 

 

 

그리고  그 산책로 끝에 있던 멋진 기와를 얹은 대문. 여기까지 대충 한시간 유유자적 걸었으니 다시 한시간 돌아가면 된다.

 

 

월정사에 들어서는 길에. 저 회전하는 탑 같은 걸 잡고서 한바퀴 돌릴 때마다 공덕이 높아진다던가. 소원을 이뤄준다던가.

 

 

 

탑을 가운데 품고서 사방에 들쭉날쭉 늘어선 날아갈듯한 기와지붕들.

 

탑 꼭대기에 얹힌 장식을 바싹 당겨서 살펴보니 굉장히 섬세하다. 맨눈으로 보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디테일들.

 

 

 

화려한 단청과, 단청의 기본 오방색을 테두리에 두른 북은 어찌나 두들겨댔을지 저렇게 빈티지스러워졌다.

 

월정사로 건너오는 돌로 만들어진 구름계단. 이쪽이고 저쪽이고 온통 초록빛이 그득하던 오대산.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오대산국립공원'이라는 갈색 표지판을 보고 무작정 꺾어들어왔던 길, 등산할 생각은 없었지만

 

월정사랑 전나무숲 산책로를 걸었던 것 만으로도 무지 좋았던 기억.

 

 

 

 

 

썬크루즈호텔의 갑판부 위에 있는 풀장에서 바라본 정동진 해안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하던 시간대.

 

해수풀장이었으니 아마도 정동진 앞바다에서부터 퍼온 물이었을 텐데, 작은 파이프에서 쏟아지는 수압이 생각보다 세다.

 

  

 

저녁 7시가 넘어도 아직 사위가 흐적흐적 발가스름하던 때. 고작 두어달이 흘러 해넘이의 호흡은 무척이나 가빠졌다.

 

 

 

호텔 안 7, 8층쯤의 객실에서 내려다본 풍경.

 

 

양손을 살짝 벌려 치켜든 자세는, 살짝 어색하면서 변태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해를 잡으려는 손짓이라 치자.

 

'손각대'를 쓰다보니 좀 많이 흔들렸지만, 조리개를 바짝 조인 렌즈의 빛갈라짐이 제대로 잡혀서 그냥.

 

 

호텔 로비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있고, 천장에는 열두 별자리의 상징들이 원형을 이루며 박혀 있었다. 이건 물병자리.

 

 

선크루즈 호텔 앞으로 살살 걸어본 야밤의 산책 풍경.

 

 

 

 

유람선 한 척의 형태를 그대로 살려서 이 곳에 올려서는 호텔로 쓴다는 아이디어가 참신하고 재미있다.

 

그리고 저 아랫쪽으로는 조금은 작은 배 모양으로 만들어진 횟집. 옆에는 요트들이 줄줄이 주차중이다.

 

 

호텔에서 뻗어나가는 산책로는 정동진 시내를 굽어보는 전망대로 이어졌다. 작고 어슴푸레한 불빛무더기.

 

 

 

밤마실을 마치고 새벽 해돋이를 보러 달려나가기 전, 잠시 희뿌연 분위기를 감상하며 호텔의 정원을 살폈다.

 

 

그리고 해돋이. 이 호텔과 정동진은 특히 새해 첫 해돋이를 하겠다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고 하는데, 사실 꼭 그런 날

 

해돋이를 보겠다고 남들 모두 줄서서 가는 곳에 덩달아 가는 건 조금 생각해볼 부분이 있는 거 같다.

 

 

이 곳에서 바라보는 해돋이가 꽤나 볼 만한 건 사실이니 굳이 새해 첫날 말고, 언제든 본인이 맘을 다잡고 싶은 때

 

오는 건 어떨까. 모든 사람들이 요이땅, 해서 새해 1월 1일부터 새사람이 되겠다며 다짐하는 건 좀 그로테스크하다.

 

정원에서 자라는 나무나 풀들을 보면 꽤나 이국적이다. 무성하지는 않지만 야자수도 자라고.

 

밤마실을 다녔던, 그땐 잘 알아채지 못했지만 꽤나 잘 다듬어진 정원.

 

호텔 출입구에 설치된 우표모양의 구조물. 오가는 투숙객들이 전부다 저 안에 들어가서 기념사진을 찍던.

 

 

 

밤에 봤던 야경이 조금은 어설프고 부족해 보였지만, 역시 바닷가 풍경이 뜨거운 여름 대낮에 봐야 진짜다. 파라솔들하며.

 

 

그리고 다른 쪽으로 이어지는 산책로에는 장승공원도 있었는데, 관리가 안 된 건지 아님 잡초들이 워낙 생명력이

 

강인한 건지 거의 버려졌다 싶은 느낌으로 황량하던, 두눈 부리부리한 험상궂은 표정의 장승들이 더욱 부각되던 곳.

 

 

 

 

 

 

정동진 앞바다, 7월말 햇살이 뜨겁던 그 때는 마냥 시원하게 보이던 풍경이었는데 어느새 살풋 냉기가 전해오는 패러세일링.

 

 정동진의 랜드마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썬크루즈호텔에서 바라본 정동진 앞 바다.

 

 

 한철의 한주일 그렇게 그악스럽게 울어대며 자손을 남기려 애쓰던 녀석들은 이제 모두 흙으로 돌아갔을 시간.

 

절대 만나지 못하는 두 개의 평행선, 이라 흔히들 말해지는 철도길이 이리저리 휘며 겹쳐지고 관통할 때.

 

 

 저런 요트를 타고 둥싯둥싯 푸른 동해바다 위를 떠다니며 노니는 것도 꽤나 재미있을 거 같다. 조금은 파도가 높아도 좋을 텐데.

 

 

 

정동진 앞바다, 시꺼먼 구름처럼 바닷가바위를 온통 뒤덮은 갯벌레나 따개비처럼 자글자글한 파라솔 너머 늠름한 요트. 

 

 정동진 해돋이 열차가 들어오는 건가, 알록달록 원색으로 칠해진 통유리창 열차가 시원시원하다.

 

그저 들어가 보려고만 해도 티켓을 끊고 들어가야 하는 정동진역사, 야트막한 천장에 모기향처럼 대롱거리던 피노키오.

 

 

 모래밭에 드문드문 꽂혀 있는 파라솔들이 옷깃을 잔뜩 그러쥐고 꽁꽁 여몄다.

 

 

 

이쁜 까페와 레스토랑으로 유명한 신사동 가로수길 옆길 이름은, 세로수길. 가로수에서 '가로'만 떼어서

 

그에 대응하는 '세로'수길이라 이름붙인 작명센스에는 감탄할 만 하다.

 

발 닿는대로 들어간 그 중의 한 레스토랑. 요새 브런치 메뉴가 없는 곳이 없다지만 여긴 그 중에서도 꽤나 만족스러웠다.

 

 

 음식도 괜찮았고, 새파랑 물병도 맘에 들었던 것이 왠지 새하얀 벽돌담을 가진 햇살 쨍쨍한 이국의 테라스를 떠올리는.

 

 

 하얀 회벽을 그대로 드러낸 인테리어야 요새 워낙 흔하게 보이는 스타일이라곤 하지만 저렇게 천장에까지 그림을 넣은 건 참신한 듯.

 

그리고 또다른 '세로수길'의 까페. 레스토랑을 나와 몇걸음 걷지 않아 나타난 까페였는데, 밖에서 봤을 때

 

그럴 듯 해보이기도 했고 밖에서 볼 때뿐 아니라 안에 들어가서도 제법 이쁘겠다는 판단이 섰더랬다.

 

 

2층에 위치한 까페의 창문은 온통 활짝 열려 창밖의 풍경을 눈앞 가까이 끌어당겼다.

 

 

벽면 한귀퉁이의 칠판에 쓰인 흐트러진 글씨체, 그리고 책장 한 칸을 넓게 차지한 화분과 열쇠 하나.

 

 

아포가토와 에스프레소. 귀여운 차받침과 예기치 않은 장식용 인형들의 출현에 깜짝 놀랬다.

 

그렇게, 가로수길 옆 세로수길에 있던 어느 까페와 레스토랑. 그다지 특별하지 않지만 이쁘고 한적한 공간이라 남겨둔다.

 

 

광주 망월동, 국립 5.18민주묘지(신묘역) 앞에 선 안내판에는 의미심장한 문구가 있다.

 

"손수레나 청소차에 실려와 5.18 구묘지에 묻혀야 했던 분들을 이곳에 모셔와 안장했다"는 문구다.

 

(광주 망월동 신묘역, 이 곳에 선 문재인과 안철수는 무엇을 보았을까.)

 

 

1980년 5월이 무려 17년이나 지난 1997년에야 비로소. 그리고 나서 구묘역은 잊혀지고 버려지다시피 했다.

 

정치인들도 찾지 않고, 아마 2004년이던가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찾았던 게 거의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전례다.

 

 

그렇지만 구묘역은 여전히 5.18의 기억들을 생생히 간직하고 있으며, 광주의 비극을 초래한 학살자 전두환과의

 

관계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가 있다는 점에서 지난 2012년 9월말의 다음 기사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문 후보는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 열사, 1980년 전남대 총학생회장이었던 박관현 열사 등 의 묘소를 찾아 참배했다. 문 후보는 또 정치인들이 잘 찾지 않는 옛 묘역을 찾아 87민주항쟁 때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열사의 묘역도 참배했다.

문 후보는 "이분들 덕분에 오늘의 민주주의가 있는데 자꾸 후퇴하니 볼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문 후보는 구 묘역 참배를 마치고 나오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민박기념비'가 이곳에 묻혀있다는 얘기를 듣고 되돌아와 이 비를 발로 밟고 지나가기도 했다. '민박기념비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2년 전남 담양군 마을을 방문한 뒤 세운 것으로 광주·전남 민주동지회가 1989년 이 비를 부순 뒤 구묘역 입구에 묻어 사람들이 밟고지나가도록 한 것이다...

 

 

* 오마이뉴스, 2012. 9. 28. 기사 발췌.

 

 

 

문재인이 이 곳을 굳이 찾았다는 것, 그리고 굳이 전두환 기념비를 밟고 나왔다는 건 어쨌든 유의미한 퍼포먼스다.

 

게다가 망월동 신묘역 안의 민주 열사들 영정 앞에서 저리도 해맑게 웃고 치우는 누군가와는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신묘역의 후문, 그러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열사들의 영정 앞에서 파안대소를 했던 곳을 지나 조금만 더 걸으면 나타나는

 

후문을 나와서 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구묘역이다. 전두환 정권의 회유책과 묘지 이장 책동에도 불구, 여전히 5.18 희생자가

 

119분이나 안장되어 있으며 이후의 민주화 투쟁 중 살해된 열사들이 함께 모셔져 있는 곳이다.

 

이 곳이다. 제대로 다져지지도 않은 땅, 틀도 잘 갖추지 못한 채 제각기 색다르고 형이 다른 비석을 명패삼아 모셔진 분들.

 

그리고, 올라서는 곳 들머리에는 아스팔트가 커다랗게 구멍이 난 채 뭔가를 물고 있었다.

 

대충 식별되는 글자는, 두환 대통령 각하 내외분 민박마을...

 

옆에 선 안내판의 내용을 (조금 길지만) 그대로 인용해 놓기로 한다.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의 현장.

 

민족의 반역자요 광주민중 학살과 자주 민주 통일의 원흉 전두환이 자기 죄를 은폐하고자 학살현장인 광주를

 

방문하지 못하고 1982년 3월 10일 담양군 고서면 성산마을에 잠입하여 민박 기념비를 세웠다.

 

이에 복받쳐 오르는 분노와 수치심을 참을 수가 없어 1989년 1월 13일 이 비를 부수어 이곳에 묻었나니

 

5월 영령의 원혼을 달래는 마음으로 이곳을 짓밟아 통일을 향한 큰길로 함께 나아갑시다.

 

영령들이여! 고이 잠드소서!

 

1989년 1월 13일

 

 

광주, 전남 민주동지회"

 

저런 허름하고 낡은 '흔적'들이 아니었다면, 이 곳은 그저 여느 동네 야산의 공동묘지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을 뻔 했다.

 

그만큼 더욱 안타깝기도 하고, 무언가 이 나라의 현실이 잘못되었다는 신호를 강렬히 보내는, 그야말로 세계의 끝이다.

 

인혁당과 민혁당을 헷갈렸던, 프롬프터에 오타가 났던 박근혜의 진정성 없는 사과는 그들에게 상처만 더한 건 아닐까.

 

인혁당 유가족분들이 최근에 다녀가신 듯 싱싱하고 새하얀 화환 하나가 제대 위에 놓였다.

 

(그 옆에는 최근에 다녀간 문재인 대통령후보의 화환도 있었지만, 바람이 불었는지(?) 엎어진 채 꽃이 모두 시들어있었다.)

 

'진보적 정권교체'의 붉은 머리띠를 질끈 동여맨 열사들, 이름이 있고 없고간에, 이 땅의 정신적 영토와 면면한 흐름을

 

지켜내온 그들은 총칼로 나라를 지켜낸 사람들만큼은 최소한 존중받고 기억되고 기려져야 하는 거 아닐지.

 

그렇기는커녕 거꾸로 흐르는 세월 탓에 저들은 무덤에 누워서까지 붉은 머리띠를 동여맸다.

 

구묘역 바로 앞에 있는 조그마한 꽃집. 색색깔의 꽃다발과 여러겹 펼쳐진 파라솔의 색감이 꽤나 화려하고 이뻤지만

 

왼쪽으로 시야에 걸린 '광주'라는 두 글자가, 그리고 묘역의 스산하고 비극적인 분위기가 모두 잠식해버리고 말았다.

 

떠나기 전. 여전히 떵떵거리며 호의호식중인 문어 대가리의 얼굴을 떠올리며 기꺼이 즈려밟고 침을 뱉어주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그, 피해자 중 한명이었던 정치인으로부터 사면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나머지로부터는 아니다.

 

게다가 스스로 뉘우침이 없이 29만원이 전재산이라며 불법 축재물에 대한 추징조차 피하고 있는 그런 괴물은 사람도 아니다.

 

 

 

 

 

 

정태춘, 5.18.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거리에도 산비탈에도 너희 집 마당가에도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엔 아직도
칸나보다 봉숭아보다 더욱 붉은 저 꽃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그 꽃들 베어진 날에 아 빛나던 별들
송정리 기지촌 너머 스러지던 햇살에
떠오르는 헬리콥터 날개 노을도 찢고, 붉게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깃발 없는 진압군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탱크들의 행진 소릴 들었소

아, 우리들의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날 장군들의 금빛 훈장은 하나도 회수되지 않았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소년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옥상 위의 저격수들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난사하는 기관총 소릴 들었소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여기 망월도 언덕배기의 노여움으로 말하네
잊지마라, 잊지마, 꽃잎 같은 주검과 훈장
누이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태극기 아래 시신들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절규하는 통곡 소릴 들었소

잊지마라, 잊지마, 꽃잎 같은 주검과 훈장
소년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근 10년만이었다. 구묘역과 신묘역으로 기억하고 있던 광주 5.18묘역은 그사이 많이 깔끔해져 있었다. 그때에도 이미

 

신묘역의 말끔함은 억지스런 분칠로만 느껴져서 왠지 모를 거부감과 암담함을 느끼게 했었지만.

 

평일 오전시간. 신묘역, 그러니까 무려 '국립 5.18민주묘지'는 한산하다 못해 스산했다. 관리하시는 분들이나 몇몇 보이지 않는

 

참배객들의 몸가짐에서는 죽음 앞에 선 인간의 조심스러움과 함께 역사의 무게를 감각하는 이들의 비극성이 묻어나는 듯 했다.

 

그런 역사를 이렇듯 '성지'화하는 건 아무래도 너무 일렀거나 부주의했다. 여전히 전두환이 건재하고, 5.18을 딛고 선 신군부와의

 

딜을 통해 은밀한 권세를 유지한 유신 잔당들은 다시금 명실상부한 권좌에 앉겠다며 국민들의 지지를 업고 있는 상황이다.

 

어느새 빛이 바랜 (아마도) 2002년의 안내판. 이미 5.18은 오래되다 못해 이제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할 과거가 되어 버린 걸까.

 

묘역 안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구슬프지만 우아하고 절제된 선율은 사람을 슬프게 만들 뿐, 분노하게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유튜브에서 이전에 찾았던 정태춘의 노래들이라거나 5.18관련 영상들을 다시 찾는데, 이상하게도 많이들 짤렸다.

 

뭔가 오기가 생겨서, 이것저것 괜찮은 자료들을 다시금 퍼올려두기로 한다.

 

 

 

 

'민주의 문'을 지나 묘역 안으로 들어서는 길.

 

 

 

 

문재인이, 안철수가, 그 이전에는 이명박과 노무현과 김대중이 섰던 그 곳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실 내게 광주, 그리고 5.18의 이미지는 무엇보다 이 동영상의 첫머리, 5.18의 '모란꽃'이라 불렸다는

 

전옥주의 가두방송으로부터 시작한다. "시민 여러분, 계엄군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

 

지금 적들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계엄군들이 탱크를 앞세우고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 동생 형제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역사의 판단'은 이미 내려졌다. 그렇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이 뒤집어지고 엎어지는 세상임에도, 5.18민주항쟁은 지금의

 

한국사회에 거대한 그림자와 의미를 던지는 주춧돌이나 다름없다. 여전히 그 주역들이 살아있을 뿐 아니라 그 역사적 사건의

 

결과와 후폭풍으로 인해서 많은 역사적 변곡선들이 생겨났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유신 잔당의 청산 문제, 지역 감정 문제,

 

한국 사회 민주화의 지체 문제들이 그런 것들이다.

 

어쩌면 당시 광주는 한반도 최초의 근대적 '시민'들이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생각하며 일어선 사람들.

 

아마 전옥주는 이런 식으로 언론이 봉쇄되고 언로가 막힌 광주시민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방송을 했을 거다.

 

"당신들은 어떻게 편안하게 집에서 잠을 잘 수가 있습니까, 우리 동생 형제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버린 광주여..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아침 저녁으로 살아남아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돌아가신 날짜대로 열을 지어 누워 계신 분들. 1980년 5월 18일부터 드문드문 나타난 비석에는 어느 순간

 

1980년 5월 20일자의 죽음들이 셀 수 없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날,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어미의 마음으로 새겼을, '싸우리라." 비석의 뒤에는 남겨진 이들의, 혹은 떠난 이들의 독백이 단단히 새겨졌다.

 

열다섯의 누군가는 부상자들을 돕기 위해 헌혈하고 나오는 길에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숨지고, 서른여덟의 누군가는

 

진압하려드는 공수부대원들을 향해 트럭을 몰고 항거하다 숨졌다. 누군가의 아비는, 어미는, 먼저 간 자녀들의 넋과

 

뜻을 기리며 피눈물을 새겼고, 누군가의 형수는 그저 평안하길 바랬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자들, 그나마 '상식'이 있고 그나마 '일반 국민'을 대변한다고 말해지는 자들,

 

그들에게 광주는 어떤 의미일까. 광주 민주항쟁은 어떤 빛깔로, 어떤 목소리로 기억될까.

 

 

어쩌면 그건 그들의 '상식'이라는 게 얼마나 올바르고 균형감이 잡혀 있는지를 고백하는 바로미터와 같을지 모른다.

 

 

강풀 원작의 영화 '26년'이 여전히 제작조차 쉽지 않은 나라, 학살자가 공권력의 비호를 받는 나라,

 

그런 나라에서 광주 5.18의 흔적을 보며 그저 슬픔을 느낄 뿐인지 분노를 느끼는지의 차이 말이다.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서 벌써 십여년째-아마도 올해가 십년째라던가-이어지고 있는 세계불꽃축제.

 

오후 7시가 조금 넘어서부터 이탈리아, 중국, 미국, 그리고 한국의 순서로 진행된 쉼없는 불꽃들은 아홉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잦아들었다. 그야말로 아낌없는 불꽃들의 향연. 개인적으로는 처음 이십분을 책임진 이탈리아의 불꽃이 가장 이뻤던 듯.

 

늘 그렇듯 삼각대는 꼭 필요할 때면 들고 가지 않는 징크스가 이번에도 발동하여, 무적의 손각대를 출동시켰으나..

 

불꽃이 워낙 느닷없이 피어올라가 뻥뻥 터지는 바람에 타이밍이고 뭐고 되는 대로 눌러버렸단 게 맞겠다.

 

촬영장소는 한강대교 중간에 조그맣게 걸쳐있는 노들섬, 미리 두시간쯤 전부터 맥주와 저녁거리를 사들고 자리를 잡았지만

 

이미 대부분의 정상적인 자리는 만석이었다는 거. 덕분에 풀밭으로 기어올라가 없는 자리를 만들어내야 했다.

 

천지가 진동하는 폭죽 소리, 그리고 하늘 가득 휘황하게 번쩍거리던 불꽃의 대향연. 정말이지 모처럼,

 

터지는 걸 보고 나서도 씁쓸하거나 허무하지 않은 불꽃들을 잔뜩 볼 수 있는 자리였지 싶다.

 

 

 

 

구리한강시민공원의 2012년 구리 코스모스 축제, 매년 가을이면 지천 가득 피어나는 울긋불긋한 코스모스들에 눈이 얼얼하다.

 

하늘거리는 꽃대궁이나 그 끄트머리에서 활짝 날개를 펼친 예닐곱닢의 꽃잎들이 딱, 가을이다

 

 

 

코스모스 꽃잎 빛깔도 조금씩 다 다르다. 흰색에서부터 분홍색, 자주색으로 대별되는 거 같으면서도 다 같은

 

분홍색이 아니라 조금씩 빛깔이 다르고 결이 다르다. 잔뜩 뭉쳐놓은 화면에서는 그래서 더욱 다채롭고 풍요로운 빛깔이 배어난다.

 

 

그 와중에 피어나고, 만개하고, 꽃잎이 떨어져 시드는 코스모스들이 한 화면에 담겼다.

 

그렇게 피고 지고 다시 피어나는 꽃들이 구리 한강시민공원의 가을을 은은하게 달구고 있었다.

 

 

 

 

 

서울숲, 어디고 슬쩍 돗자리를 벌여놓고 철푸덕 앉아 있노라면 산들산들 부는 바람이 제법 서늘하다.

 

두텁한 공기 가득한 차 속에 낑겨오느라 톡톡 돋았던 땀방울이 어느결에 싹 사라져버린 어느 가을날.

 

 

하늘도 파랗고, 사방으로 구비구비 굽은 나무들도 짙푸르다 못해 끄트머리부터 조금씩 누래지기 시작한다.

 

 

 

방금까지 아이를 한 팔에 안고 유모차를 다른 한 손으로 밀던 부모들이 우르르 다녀간 놀이터.

 

김밥 한 줄 싸들고 떠나는 '소풍'이란 단어가 가장  어울리는 계절은 아무래도 가을만한 계절이 없다.

 

 

 

 

 

 

강화도 외포선착장에서 카페리를 타고, 게으른 갈매기들이 부리에 물리는 새우깡만 씹는 모습을 보며 들어선 석모도.

 

눈썹바위 아래 부처조각과 소위 '기돗발'이 잘 받는 3대 관음도량으로 유명한 보문사를 오랜만에 찾았다.

 

보문사로 올라서는 제법 가파른 산길에서도 꿋꿋이 하늘과 땅 사이에 수직으로 버티고 선 나무에 하트 무늬가 새겨져있다.

 

한여름내 햇볕을 그득 받고 시퍼렇게 멍들어버린 덩굴손들이 커다란 바위를 꽁꽁 움켜쥐고 있는 듯.

 

수능이 머지 않았다. 3대 관음도량인데다 영험하다는 소문이 퍼진 절이다보니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다.

 

 탑을 중심으로 둥글게 모여선 부처들, 혹은 부처의 뒤를 이어 깨달음을 얻은 보살(보디사트바)들의 색색깔 뒤통수.

 

 

눈썹바위로 가는 길에 수백개 돌계단을 오르고, 역시 수백개의 연등 옆을 지났던 거 같다.

 

그리고 눈썹바위 전망대에서의 석모도 그리고 그 너머의 전경. 바다 위로 불쑥불쑥 솟은 송전탑들.

 

 

보문사를 등지고 내려와 허기를 달래려 복분자 막걸리 한 동이와 함께 감자전을 주문했다.

 

 

 

 

이태원 올댓재즈, 대로쪽에 연해 있다는 정보들과는 달리 조금 골목 안으로 들어가야 찾을 수 있는 계단을 올라야 한다.

 

아직 해가 까무룩히 잠들지는 않은, 마법의 시간대. 짙은 청빛이 도도한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천장.

 

이 곳에서는 재즈 공연을 보고 듣는 것도 좋지만 음식들도 꽤나 괜찮다고 하더니, 피자와 샐러드 시킨 것 모두 만족.

 

 

콘트라베이스의 둔중한 울림이 스피커로 빠져나와 하늘로 피어오르는 시간.

 

그리 크지 않은 무대와 무대와 바싹 붙어선 그리 많지 않은 좌석들. 반층 위 객석을 감싼 유리창이 번들번들 붉은 벽돌담이 되었다.

 

 

 

 

 

 

이태원역보다는 녹사평, 9호선 사평역이 아닌 6호선 녹사평역에서 훨씬 가까운 까페. 조금은 사람들의 눈길에서 빗겨난 곳.

 

뭐랄까, 이태원역에서부터 막막한 걸음으로 어디가 좋을까, 사람도 조금은 적고 아늑한 까페라면 좋을 텐데, 하는 마음으로

 

커다란 레스토랑들을 지나고 자잘한 악세서리점들과 노점을 지나다보면 어느 순간 까꿍, 눈앞에 나타나는 까페다.

 

 

저번에 갔을 때와는 테이블 배치가 좀 달라졌지만, 손바닥만한 공간, 고작해야 조그마한 테이블 세네개가 고작인 곳이니

 

아무리 달라져봐야 분위기는 그대로다. 구석춤에 파묻혀 책이라도 한 권 읽고 가기 딱 좋은 까페. 

 

 

 

 

뉴욕의 오번가, 외부에 오픈된 숙소는 아니고, 멤버쉽 형태로 운영된다는 University Club.

 

호텔로서의 기능이 주라기보다는 라운지, 시가바, 도서관, 피트니스센터 등 일종의 연회나 모임 공간으로 쓰이는 곳이라

 

넥타이까지 제대로 갖춘 정장이라야 정문으로 드나들 수 있는 곳이다.

 

뉴욕 출장 중에 머물 곳을 찾다가 조금 비싼 것을 감수하더라도 맨하탄 쪽에 머물러야겠다고 결심하고선,

 

알음알음 멤버십을 가진 분과 연결이 되어 머물 수 있게 되었던 곳. 정장을 제대로 안 갖춰간 탓에 정문 대신

 

옆문으로 슬금슬금 나다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맨하탄 중심에 위치한 최적의 입지조건 덕분에 대만족.

 

내부의 규율이 얼마나 엄격한지, 로비에서는 심지어 핸드폰 통화도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힐러리 클린턴이 이 곳에서

 

휴대폰 통화를 하다가 쫓겨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해주던 로비의 직원, 뭐랄까, 살짝 그들만의 리그 냄새가.

 

 

룸 자체는 그렇게 호화롭지는 않았지만, 뉴욕 맨하탄에서 이 정도 숙소를 이 정도 저렴한 가격에, 그것도 아무에게나

 

오픈되지 않는 공간을 쓸 수 있다는 건 꽤나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실내 인테리어도 꽤나 고풍스럽고 세련됐다.

 

참고로 1박에 265달러. (www.universityclubny.org)

 

 

맨하탄의 오랜 건물들은 대개 엘레베이터가 굉장히 후졌는데, 여기 역시 엘레베이터는 나무판자로 벽을 세워둔 채

 

다소 조잡해보이는 플라스틱으로 버튼을 만들어 꼽아놨다.

 

이 곳에 머물고 있으면서도 정문으로 나다니지 못하고, 밤 12시면 닫혀버리는 옆문으로 나다니는 길에 보이는 풍경.

 

언제든 나중에라도 기회가 닿으면 뉴욕 맨하탄에서 다시 머물 때 가능한 다시 찾고 싶은 곳. 가격과 위치 면에서.

 

배고픈 시간대를 대비해 홍콩에서 먹었던 자잘한 것들 모음. 유명한 주스점에서 몇 번을 사먹었던 망고주스.

 

스타페리를 타고 홍콩섬으로 넘어가기 전 잠시 선착장 창밖으로 바라보며 한 장.

 

타이청 베이커리, 홍콩의 에그타르트를 검색하면 무조건 일순위로 나오는, 온갖 포스팅이 즐비한 곳.

 

그런만큼 사람들도 줄을 서서 에그타르트를 사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위치가 바로 찾기 쉽지는 않았던.

 

그래도 그 노릇노릇한 색깔과 입천장을 벗겨내도록 뜨겁던 에그타르트는 정말 맛있었다. 홍콩 총독들이 반할만 하더라는.

 

팍앤샵이니 리앤펑이니 하는 홍콩의 리테일샵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계 각국의 맥주들. 더구나 홍콩은 주류에 세금이 붙지않아

 

한국에서 홍콩으로 들여온 맥주들이 한국에서 살 때보다도 쌀 정도라고 한다. 밤마다 영국, 덴마크, 러시아 등지의 처음 보는

 

맥주들을 마시는 재미가 쏠쏠하던 홍콩의 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홍콩공항에서 떠나기 전 공항 내에 있던 제이드 가든에서 먹었던 샤오롱바오.

 

그리고 무를 갈아 버섯과 고기를 섞어 만들었다는 요상한 모양의 딤섬.

 

플라잉 구스, '날아다니는 거위'로 유명하다는 가게가 뭔가 했더니, 홍콩을 들르거나 살았던 외국인들이

 

귀국할 때면 전부 이 곳의 거위 요리를 사들고 비행기를 탔기 때문이라나.

 

 

웨이터가 건네주는 메뉴가 무려 세가지. 하나는 일반 메뉴랄까, 기본적인 요리들이 나와있고 다른 하나는 이곳

 

융께이 레스토랑의 수상 경력이라거나 수상 요리에 대한 소개, 마지막 빨간 표지는 완전 특별한,

 

각종 요리대회 수상 요리들로 채워진 코스 메뉴.

 

베이징 카오야랑 조금 비슷하게 바삭하고 단단한 껍질 속에 숨어있는 부드럽고 담백한 거위 살이 맛있었다.

 

혼자 가서 2-3인분이라는 레귤러를 시켰는데, 사실 3-4인분이라고 표기된 반마리나 한마리를 시켰어도

 

완전완전 만족스럽게 다 먹었을 듯.

 

저 거위 껍질에 잘잘 흐르는 윤기하며, 부드러운 고기 위에 살짝 얹힌 채 바삭바삭함이 살아있다.

 

 

두번째 메뉴에 있던 온갖 수상경력들. 홍콩에서 유일하게 포춘지에 선정된 세계최고 레스토랑 15선 중 하나라던가.

 

 

그렇게 거위 요리를 맛봤지만 조금 모자라다 싶어서, 로제와인에 재워만들었다는 족발요리도 하나 더 시켰다.

 

음. 이건 뭔가 반찬도 같이 주문했어야 했거나 다른 채소 요리랑 같이 먹었어야 했을 듯.

 

 

레스토랑 입구에 걸려있는 잘 조리된 거위들. 저 노릇노릇한 껍질하며, 반질반질한 윤기하며.

 

나중에 가면 세번째 메뉴에 있었던 그 특별 메뉴들이 즐비한 코스 요리를 먹어보고 싶은데, 가격은 굉장히 비싸단 느낌.

 

그렇지만 요리의 천국 홍콩에서 이런 거 한번 먹어보는 호사를 누리는 건 분명 꽤나 기억에 남을, 행복할 경험일 거다.

 

 

 

 

홍콩섬 썽완 역에서부터 이어지는 거리, 캣스트리트를 지나 뒷길로 넘어들면 조금은 더 넓은 길, 그래봐야 왕복 2차선이


빠듯한 길이긴 하지만 헐리우드로드와  만모사원(문무묘)이 나타난다. 저 사다리같은 ladder road를 걸어올라가면 짠.

 

올라가는 길에 잠시 찻집에 들러 연꽃이 피어나는 차도 구경하고, 아무래도 홍콩은 종종 대만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만큼 유사한 점이 많다. 애프터눈티도 그렇고, 거리의 풍경이나 분위기, 길거리음식들도 그렇고.

 

사다리 길의 끝무렵, 허름한 건물들과 커다란 간판들 사이로 기와지붕이 얹힌 붉은, 퇴락한 전통건물이 한 채 보인다.

 

 

만모사원, 문무묘라고 읽히는 간판을 내건 이곳은 홍콩이 영국에 편입된 즈음, 1800년대 중반에 세워진 곳이라고 한다.

 

 

열성궁, 대만을 포함해서 중국의 도교 사원들은 으레 이런 느낌이다. 향과 시주를 받고 복을 내려줄 준비를 하고 있는

 

각분야 최고의 신들이 학업, 연애, 사업, 건강 등 파트를 나눠맡고 있달까. 덕분에 그리 크지 않은 사원 내부에는

 

향내가 진동을 하는가 하면 금세라도 사방으로 옮겨붙을 듯한 촛불이 탐욕스레 붉은 혀를 낼름거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믿을 만하고 흔들림없는 의지처를 찾는 사람들의 모은 손은, 간절한 뒷모습은 늘 맘을 흔들었다.

 

만모사원, 문무묘에 모셔진 신들의 유래나 계보야 워낙 엉망진창인 거 같긴 하지만 삼국지의 영웅 관우가 모셔져있는 건

 

그래도 좀 납득할 만 하다. 이야기에 따르자면 그야말로 문과 무를 겸비한 문무쌍전의 호걸 아닌가. 사진에 담자니

 

그 덥수룩한 수염이 너무 싸구려티 팍팍 나는 나일론실로 엉성하게 붙여뒀다는 티가 나서 말았지만.

 

사원에서 돌아나와 걷기 시작한 헐리우드 로드. '헐리우드'라는 이름이 대번에 미국의 그곳을 떠올리게 만들며 모종의

 

관계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게 만들지만 그런 건 아니란다. 오히려 이 곳의 지명이 그곳보다 먼저 붙었다고 하니깐.

 

앤티크샵이나 갤러리가 주르륵 이어지는 가운데 이쁜 까페, 레스토랑이 점점이 박힌 거리 어디쯤에서 아예

 

길거리에 그림을 걸어놓고 오가는 여행객들과 흥정을 하는 아저씨. 비단에 먹으로 그린 듯 한데, 촉감이 보들보들.

 

거리의 하늘을 꽉 막아설 만큼 무성하게 자라난 나무 한 그루. 아니, 한 그루라고 하기에는 뿌리와 줄기가 워낙

 

복잡하게 엉켜있어서 실제로 몇 그루인지 헤아리기도 힘들다. 마치 옛 사원을 무너뜨리고 우뚝 선 앙코르왓의

 

나무들을 보는 것 같을 만큼, 자칫 밋밋하고 범상해 보일 수 있는 거리 풍경을 사뭇 다르게 만들어준다.

 

 

거리 곳곳에 있는 갤러리들에 자유롭게 들어가서 구경을 하고 나오기도 하고, 이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와중에 발견한 재미있는 샵. 알고 보니 1호점, 2호점, 3호점이랄까, 근방에 세개의 샵이 모두 '홈리스'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고 있었는데 아이디어가 반짝거리는 인테리어 소품들, 가구들이 가득했다. 한참을 둘러보며 예상치 못한

 

디자인의 아이템들이 가진 예상치 못한 기능에 깜짝 놀래주며 쇼핑의 재미를 만끽. 

 

 

 

 

몇가지 아이템들을 사고 나서, 계산대에서 카드를 꺼내들고 사인을 하는데 펜이 꽂혀있는 장식대도 재미있다.

 

 

헐리우드 로드를 걷다 보니 캣스트리트와는 조금 구별되는 분위기가 있지 싶다. 캣스트리트가 인사동같은 느낌의,

 

싸구려 골동품을 허름하게 파는 느낌이라고 한다면 헐리우드 로드쪽은 그걸 '앤티크'라는 식으로 포장해서 조금더

 

세련되게 전시했거나 현대미술 갤러리들이 샤방하게 꾸며둔 느낌. 그래도 전반적인 분위기는 이런 식.

 

되돌아 썽완 역쪽으로 가는 길,  온통 벽면을 도배하다시 붉은 글씨로 굵게 쓰여진 저 광고판들이지만, 의외로

 

심플하면서도 명시성도 높고, 한자의 특성상 나름 압축적으로 홍보 기능도 잘 수행하고 있는 거 같다.

 

 

 

썽완 역 근처에는 도장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게 골목골목을 점령하고 있었다. 같은 동양 문화권인 우리네야 별로

 

신기할 것도 없는 도장이지만 서양의 시각에서라면 나름 저런 것도 기념품이 될 수도 있겠네 싶다.

 

 

 

 

대만여행 갔을 때 만났던 레스토랑 糖水, 알고 보니 홍콩에 본점을 둔 홍콩 브랜드의 레스토랑이었다.

 

대만과 일본에도 해외지점을 두었을 정도로 잘 나가는 레스토랑이라는데 전반적인 음식들도 괜찮지만

 

레스토랑 이름 그대로 달달한 디저트류가 특징적인 듯. 특히나 하트 모양 망고 푸딩이 탱글거리는 모습이란.

 

Noodles with Wontons in Soup. (45HK$)

 

Wontons with Spring Onions (66HK$)

 

Fried Flat Noodles with Beef in Satay Sauce (75HK$)

 

 

Steamed Egg Custard Buns (25HK$)

 

Steamed Prawns and Pork Dumplings (35HK$)

 

Chilled Mango Pudding (25HK$)

 

 

 

 

 

 

 

홍콩섬 썽완의 캣스트리트, 도둑을 쥐에, 장물아비를 고양이에 비기던 홍콩의 언어관습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장물아비들이 이곳에 모여 장물을 취급하는 거리를 형성하게 되었다나, 요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캣스트리트 이전, 웨스턴 마켓에서 열심히 걸어 올라가는 참에 골목 하나를 슬쩍 들여다봤다.

 

Ladder Street. 거리 이름이 왜 그런가 했더니 아무래도 이 촘촘한 계단을 두고 지은 이름인 거 같다.

 

두둥, 캣스트리트의 첫인상. 고층건물들이 앞뒤좌우로 잔뜩 어깨를 치켜세운 채 내려다보는 좁다란 골목이랄까.

 

 

 

옥으로 만든 제품들이나 다기류, 전통장식품들, 싸구려 관광기념품들이 무질서하게 전시되어 있는 가운데 눈에 띈

 

얼굴조각들. 제법 색감도 그럴 듯 하고 모양새도 대충 만든 거 같지는 않은데, 디피되어 있는 테이블이 영.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중국에서 마오쩌둥 관련 배지니 어록이니, 온갖 공산주의 색채 물씬한 물건들이 들어와서

 

기념품처럼 팔린다더니, 이제는 심지어 적극적으로 마오쩌둥과 공산당을 내세워 판매를 목적으로 만든 것들도 보인다.

 

 

공산당이 중국 전역에 붙였을 포스터 같은 것들도 무한 카피해서 팔고 있었는가 하면, 마오쩌둥 어록 역시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버전까지 전세계 외국인들에게 어필하려는 건지 마오 사상을 전파하려는 건지.

 

한 때는 누군가의 굉장한 자부심이었을 중국공산당의 배지나 훈장들은 플라스틱 팔찌나 구부러진 자물쇠 따위와 함께.

 

눈여겨 보던 것 중 하나는, 슈퍼모델이나 게이샤 카드 서유기를 컨셉으로 한 카드랑 마오쩌둥의 포스터가 가득한 카드였는데,

 

사실 카드를 갖고 놀 일이 없으니 사봐야 구석에 박히겠다 싶어서 말았다.

 

그리고 '마지막황제'에서 푸이가 귀뚜라미를 담고 놀던 상자랑 비슷해 보이는, 귀뚜라미집.

 

허드렛 조각상들과 자기류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는 아톰. 대체 넌 왜 여기있는 거니. 뒤에 일본산 복고양이도 숨었다.

 

청의 건륭제였던가, 그림 속의 저 늙고 꼬장꼬장한 영감탱이는. 밑에 청제국 황제들의 도기 인형도 보인다.

 

청제국의 황제들 옆에는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의 조각상들이 인해전술을 펴고 있었다.

 

근데 이 아저씨들은, 러시아에 있어야 할 레닌과 스탈린 아저씨가 왜 여기에..

 

그래도 제법 전체적인 분위기는 인사동보다 차분하고 적적한 분위기, 어디선가 '방망이 깍는 노인'이 있을 법한 그런.

 

고층빌딩들 틈새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지 않은 골목이지만, 한걸음한걸음 쉬이 떼어지지 않아 시간이 잘도 흐른다.

 

길 중간에 이런 영국 식민지 시절의 유물인 망원경을 세워놓고 사람들의 관심을 순식간에 집중시키기도 하며.

 

오래된 카메라들이 층층이 벽돌처럼 쌓여있는 앤티크 상점.

 

어디선가 나타난 시커먼 팩맨이 벽보를 뜯어먹고 있기도 한 그런 공간, 캣스트리트는 흘러다니기 좋은 공간이다.

 

 

그리고 그 골목 어딘가쯤에서 발견한 엉성한 그래피티. 그림 자체보다는 왠지 어렸을 적 빠졌었던 '3X3 EYES'를

 

떠올리게 하는 메시지가 와 닿기도 했고, 그러고 보니 그 만화의 배경이 홍콩 아니었던가 하는 새삼스런 깨달음때문이기도.

 

 

 

 

* 이 포스팅의 목적 중 하나, 홍콩 찜사쪼이 해변을 따라 조성된 '스타의 거리Avenue of Stars'의 홍콩 영화배우들 중

 

한국인들이 알만한 스타들, 유덕화, 임청하, 홍금보, 성룡, 오우삼, 서극, 주윤발, 장국영, 주성치, 장만옥, 장백지, 양가휘,

 

곽부성, 여명 등의 손도장을 직접 가서 확인하는 수고를 덜 수 있도록 하는 것.

 

 

스타의 거리가 시작되는 즈음, 영화 필름을 옷 대신 걸치고 선 여신의 자태가 당당하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건 홍콩섬 완짜이와 센트럴의 개성있고 거침없는 고층빌딩의 스카이라인.

 

필름 롤의 형태로 된 금색 조형물이 길가에 세워져 있는가 하면,

 

큐사인을 위한 보드가 이 거리의 이름을 알려주고 있었다. 스타의 거리, Avenue of Stars.

 

바닥에 돈이라도 떨어뜨린 양 다들 바닥만 굽어보고 걸어가는 사람들, 그 틈에서 아예 철퍽 주저앉아 바닥을 짚은 사람도 많다.

 

어느 영화감독의 모습을 형상화한 듯, 메가폰을 쥐고 생생한 표정으로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눈빛에 힘이 실려있다.

 

 

아마도 청동으로 만들어진 듯한 카메라를 쥐고 있는 카메라감독의 손모양이나 표정도 생생한 편이고.

 

그리고 장백지. 그녀의 손은..작고 이쁘기도 하구나.

 

이소룡의 명판은 있지만, 아쉽게도 그의 손도장은 없다. 있을 리가 없나..어디라도 손도장 하나쯤 남아있을 법 한데.

 

성룡. 역시 그는 장난스럽게도 살짝 삐뚜름하게 양손을 짚었나보다.

 

게다가 이렇게 사인을 남겼는데, 마지막에 앙증맞은 하트 그림도 그렇지만 '성룡'이라는 한글도 눈에 들어온다.

 

아침나절이지만 뜨거운 햇살 때문에 사람들이 양산인지 우산인지를 전부 받쳐들고 걷고 있었다.

 

주윤발. 이 아저씨는 왜 손도장을 안 남겼을꼬.

 

유덕화. 꽤나 많은 여성팬들, 특히나 아주머니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서 쉽게 찾았다.

 

양조위. 그도 역시 양손을 살짝 어긋나게 짚고는 사인을 남겼다.

 

이소룡의 이미지하면 딱 떠오르는 그 포즈. 그대로 멈춰선 이소룡이 홍콩의 해안가를 지키는 중이다.

 

조명기사와 마이크 담당이 위치를 잡고서, 그 가운데쯤엔 의자가 하나 놓여있어서 꼬맹이들이 줄을 섰다.

 

오우삼. 배우가 아니라 감독이지만, 그의 이름은 헐리우드에서도 명성을 높인지 오래다.

 

곽부성. 다소 후줄근해 보이는 그의 입성은 도무지 왜 그가 인기있는지 알쏭달쏭하게 만들었지만 여하튼.

 

 

 

스테판 초우. Stephen Show. 누구인가 했다. 다름 아닌 주성치. 요조가 좋아하는 주성치, 아쉽게도 손도장이 없다.

 

Jet Li, 영어이름이 좀 만화 캐릭터 같은 게 이연걸의 이미지에도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진다. 그는 통배권을 시전하듯 손도장을 찍었을까.

 

그리고 여명. 아마도 내가 왔다갔다 스타의 거리를 왕복하는 동안 가장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갖고 기념사진을 찍어간 곳을

 

고르라면 여기가 아닐까. 특히나 아주머니 팬들이 꼭 한번씩은 이렇게 손이라도 맞대어 보고 자리를 뜨셨다.

 

그리고 장국영. 음..여전히 그가 자살한 곳에는 기일에 맞춰 하얀 국화가 소복하게 헌화된다고 한다.

 

그리고 서극. 한때 그의 무협영화를 빠짐없이 챙겨봤었는데.

 

그리고 놓칠 수 없는 배우, 임청하. 아아. 내 어렸을 적 그녀의 묘한 매력에 빠져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뷰잉 데크. 밤에 '심포니 오브 라이트'가 시작할 즈음인 8시경이면 발 디딜 틈조차 찾기 쉽지 않지만 지금은.

 

 

성룡과 홍금보의 손도장을 보고 환히 웃으며 기념촬영중인 사람들, 사실 저 손도장이 진짜 본인 거인지는 '신뢰'의 영역이다.

 

 

그리고 바닥에 박힌 채 하루하루 마모되어 가는 셀레브리티들의 손도장은 관심없이

 

그저 가족들과의 순간을 기록하고 기억하려는데 더욱 열심인 사람들. 사실 이 편이 훨씬 남는 게 많지 않을까.

 

(특정 스타의 열광적인 팬이 아니라면 말이다. 팬이라고 해도 온기조차 사그라든 손도장이 뭐...별 건가 싶기도 하고.)

 

 

 

그리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때 성화를 진짜 봉송하는데 쓰였던 것일까, 아님 그저 기념 조형물일까.

 

건너편 고층빌딩들을 압도하는 높이와 존재감으로 우뚝 섰다.

 

스타의 거리 끝까지 갔다가 다시 설렁설렁 돌아나오는 길, 시시각각 뜨거워지는 햇살에 익어간다는 느낌이 들 무렵

 

다행히도 스타의 거리 끄트머리에 있는 뷰잉 데크, 그리고 시계탑이 나타났다. 버블버블 게임에서 본 듯한 저 투명하고

 

동그란 유리막 안에 들어간 건 야간에 '심포니 오브 라이트'를 위한 조명 도구들.

 

 

스타의 거리 초입, '심포니 오브 라이트'의 뷰잉 데크, 시계탑, 그리고 스타 페리 선착장은 그냥 한 곳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 하다.

 

이제 스타 페리를 타고 홍콩섬으로 넘어가보려는 참인데, 글쎄, 홍콩 영화배우들에 굉장히 홀릭되어 있다거나 손도장을 꼭

 

맨눈으로 봐야겠다 하는 사람 아니라면 얼추 위의 사진들로 대리만족이 가능하지 않을까. 일정이 바쁘다면 이렇게 스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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