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관들이 모여있는 푸동지역, A10 섹션에 가면 북한관을 볼 수 있다. 커다란 중국관에서 한국관을 지나 다소

푸동지역 전시공간의 변두리쯤..이라고 하면 되려나. 그래도 무려 엑스포에 최초로 참가하는 거다.


다소 웃기는 사실은 북한관과 딱 붙어 이란관이 있다는 점. 이른바 '악의 축' 국가 두 개가 나란히 전시관을

마련한 곳이니 저쪽은 여차하면 한 큐에..;;

북한이 표방하는 국제무대에서의 공식명칭은 조선이다. 위의 지도에서도 보였듯, 그래서 여긴 '북한관'이 아닌

'조선관'이라 부르는 게 맞겠다. 한국관에 비해 육분지일 사이즈라던가, 아담한 건물 하나. 외형도 단순하고

디자인도 쫌 벌써부터 '촌티'가 풀풀 날리고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도 굉장히 심플하다. 어쩌면 다른 관들이 전부 첨단의 번쩍거리는 조명으로 치장한 화려한 입구에

신경쓰고 있을 때 이토록 심플하고 단순한, 그리고 다소 시골스러운 디자인을 고수하는 건 멋진 전략일지도.

(그게 정말 고민 끝에 나온 전략이라고는 물론 생각지 않지만.)

'중국 2010년 상해 세계박람회' 기념우표를 발행했다고 했다. 저 우표를 살 수 있다면 사가면 좋겠다, 좋은

기념품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따로 판매하고 있지는 않았다.

주체사상탑, 평양 시내 한복판의 랜드마크라는 저것이 고대로 옮겨져 있다. 근데 저..다홍빛의 횃불은 좀

어떻게 세련되게 안 되겠니, 싶도록 조악해 보였다. 좀더 그럴듯하게 만들었음 볼 만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번영하는 평양'이라던가. 그래서 더욱 평양 시내의 모습에 집중했나보다.


건물은 좀 높은 천장을 가진 일층짜리, 벽면에는 '조선'의 국기를 그려넣었고, 주체사상탑 뒤로는 평양시내

사진이 커다랗게 걸려있었다. 중국에 와서 북한에서 운영하는 음식점도 가보고, 개성공단도 들어가보고,

그랬었지만 이렇게 엑스포장 내에서 '조선관(북한관)'을 둘러보는 건 또 느낌이 다르다. 두근두근.

관리자인 듯한 분이 외신들과 인터뷰를 연이어 하고 있던 것도 신기했다. 아무래도 중국 언론은 엑스포에 처음

참가하는 북한에 대해 관심이 적지 않은 듯 하다. 더불어 다른 나라 언론들도 한번쯤은 둘러볼 듯 하고.

가슴팍에 달린 김일성배지를 찍고 싶었는데 예상치 못한 역광으로 사람 얼굴이 다 날아가버렸다. 다행인가.

전시관 내부는 간단한 편이다. 사실 그다지 내부가 넓지도 않은데다가 단층 건물이니, 그렇게 많은 내용을

담을 수도 없을 거다. 중앙쯤에 자리잡은 건 기둥이 매끈매끈 두툼하게 페인트칠된 듯한 작은 정자.

그래도 제법 붐비는 관람객 사이를 비집고 정자에 올랐다. 주체사상탑 뒤로 평양시내 전경도 보이지만, 그보다

저 왼쪽 벽에 그림이 눈에 확 꽂혔다. 헉. 선녀다. 선녀..다.

그리고 오른쪽, 롯데월드에서 두들겨본 듯한 속이 빈 바위동굴이 하나 있고, 앞에는 조그마한 분수 하나.

그리고 헉. Paradise for People이다. '조선(북한)'이 그토록 경계하고 적대하는 미제의 언어를 굳이 쓴 이유는

사실 한 가지 아닐까. 보는 눈 있는 사람은 봐라. 읽을 줄 알면 읽어라. 여기가 바로 지상낙원이란 걸 선전하고

싶은 거다. 무려 '파라다이스'랜다. 이런 대단한 자신감을 우얄꼬 싶어 우습기도 하지만, 그만큼 거대한 

농담은 실소(失笑)조차 잃게 만드는 거 같다.

파라다이스의 아이들은 빨간색 촌스런 옷을 입고 빙판 위에서 좋다고 놀고 있었다. 파라다이스의 어른들은

모두 무채색계열 잿빛 옷을 입은 채 열맞춰 '세팅'되어 있었다. 그리고 옆에선 파라다이스의 제일 손꼽히는

자랑거리 중 하나인 대규모 매스게임 장면이 쉼없이 돌고 있었다.

그리고 먼 옛날 한반도 북쪽을 거점으로 말타고 달리던 왕족의 고분벽화 한 점. 현무도다.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도 있고 고구려가 중화의 지방제후국 중 하나였다는 식의 해석으로 충돌을 빚고 있는데 북한이 어째

이런 걸 끄집어냈다 싶기도 하지만, 이해가 안 가는 바도 아니다. 슈퍼파워의 pivot으로 쓰임에 있어서야

남한이나 북한이나 비슷하지만 북한은 중국에 대해 적당한 '외교'를 하는 거다. 어디하곤 달리.


게다가, 고구려의 역사적 의미와 적통성을 북한이 쥠으로써 얻는 이득도 사실 적잖다. 김일성가의 세습을

왕조의 그것과 비슷하게 포장할 수도 있고, 당대의 헤게모니파워였던 중국에 대항했다는 고구려의 이미지를

북한에 덧씌울 수도 있는 거다.

어라. 선녀들만 하늘에 있던 게 아니었다. 무려 무지개도 있었던 거다, 정자 안에선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

이 각도가 딱이다. 무지개가 걸린 정자, 하늘 한켠에서 날개옷을 나풀대는 아리따운 선녀들. 

실은 고구려나 북한이나. 혹은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권력 쥔 인간들의 권세와 호강을 위해 사람들만 뼛골

빠진다. 만리장성 짓는다고 삽질한 중국이나 영토키운다고 전쟁을 거듭한 고구려/발해나. 북한이나 남한이나

사실 한줌의 사람들이 '국가'와 '애국심'을 팔아 배를 채운다. 무지개로 사람들의 눈을 홀리고, 선녀의 자태를

'즐감'하도록 종용한 채.

사실 이런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굳이 눈살 찌푸릴 일은 아닌지 모른다. 상해엑스포에서 외화벌이를 하려는

마인드는,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그것을 철저히 체득하고 있는 셈이다. '아름다운 평양처녀' 운운하며 조선요리를

홍보하는 광고판이나 남한땅 주차된 차마다 빼곡한 마사지 광고물이나.

북한의 외화벌이에 일조했다고 잡혀가진 않겠지 설마. 그저 난 이름있는 '료리사 접대윈'이니 '직접 봉사'니

따위의 북한식 표현과 그 와중의 오타와 잘못 들어간 스페이스 한 칸이 우스웠을 뿐이다.

조선료리의 진맛을 체험하고 싶은 사람은 한번 가보시던가. 아무래도 정통 북한음식일 테니까 말이다.

또다른 외화벌이의 공간. 대부분 중국관람객들이 붐볐던 개막 당일이어선지 온통 중국말만 들렸다. 아무래도

중국인들은 북한을 남한보다, 혹은 남한만큼 친근하게 생각할 테니-그들이 우리를 더 좋아해 주란 법은 없으니

말이다, 누구처럼 자기랑 악수하고 오일후에 다른 사람이랑 건배했다고 삐지는 쫌생이 짓은 말도록 하자-여기

이렇게 사람이 바글대는 것도 신기한 일은 아닐 거다.

조선 우표. 하나 사 갈까 싶기도 했지만 사실 국내에서도 북한 우표는 쉽게 구할 수 있다. 이미 해금된 지

오래라서, 사실 별로 신기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다른 몇가지의 기념품들. 북한의 인공기가 장식된 선반에 빼곡한 팜플렛들과 사진첩들은 대부분

주체사상탑을 보여주고 있었다. 저런 걸 누가 사려나..싶기도 하고. 막상 또 내가 한권 사보고 싶기도 하고.

'파라다이스' 밖에 나와 외부인과 접촉하는 사람들은 대단한 출신성분과 당에 대한 충성심을 보장받아야

가능하다고 들었다. 가슴에 펄럭이는 붉은 기 안에 투실투실 할아버지 사진.

조선식 민화라고 한다던가, 저 장구치는 아가씨 그림은 왠지 낯익다. 얇은 선으로 담백하게 그려진 게 왠지

아슬아슬해 보인다. 슬퍼보이기도 하고.


개막식 첫날 북한관에서 물이 샜다던가, 그랬다는 소식은 나중에 한국 돌아와서야 알았다. 내가 갔던

이 날이었다는 얘긴데 미처 몰랐었다. 지금도 여기저기 사고가 나서 휴관을 거듭하는 것 같던데, 아무리

'파라다이스'라고 억지스레 강변하고는 있어도 못내 안타깝다. 6개월여의 상해엑스포 기간 무사히 마치고

많은 사람 받아서 외화벌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물결모양으로 휘감아 올라가는 건물의 외관, 한국 전통의 역동적인 춤사위와 상모돌리기에서 영감을 얻어

구현한 디자인이라고 한다. 밤에는 LED조명이 물결을 따라 건물을 휘감았다.


엑스포 최초로 기업연합관 형태로 세워진 '한국기업연합관'. 총 12개의 국내 대기업이 공동으로 참여했다.

처음 연합관이 구상될 때는 끼지 않겠다던 기업들이 개막 이후에는 후회하며 담당자들을 질책했다는 후문.

상해에 눈을 선물한다는 구상, 제대로 맞아떨어진 듯 한 그 아이디어를 최대한 이쁘게 비쥬얼화하면 저런

그림이 나오는 거다. (사실 저렇게 이쁜 눈송이가 내리지는 않는다.)

참고. 상해엑스포, 상해 어린이들에게 눈(雪)을 선물하다.

1층에 있는 전시물, 저 프레임을 통해 보면 수만개의 거울조각으로 이루어진 작품이 조금씩 움직이며 눈이

흩날리는 듯한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시선이 이동하면 이미지도 조금씩 변화하는 원리인 거 같은데, 저 거울

조각들은 캔이나 폐지 등의 색채를 빌려온 재활용품이라고 한다.

기업연합관 건물을 휘감은 합성수지 막재는 엑스포 기간이 끝난 후 이런 모양의 쇼핑백 등으로 재활용될

계획이라고 한다. 안 그래도 이런 엑스포가 아무리 '친환경/녹색'을 표방해봐야 행사 기간에만 쓰이는

건물과 부속 시설들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폐자재와 쓰레기가 나오는지. 좋은 아이디어다.
 
잘 보이진 않지만, 저렇게 발바닥이 붙은 위치쯤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커다란 액자가 보인다. 5만여개의

거울조각으로 구성된 액자가 서서히 움직이며 기업연합관에 참가한 기업 12개의 로고와 이미지들을

노출하는 거다.

잘 안 보이니 3층으로 직행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다시 뒤를 돌아보기로 했다.

이런 식의 그림, 계속해서 뭉실뭉실대며 그림들이 일렁이고 있었다.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있었거나 저 그림이

좀더 '녹색'과 친하다는 것을 어필할 수 있다면 의미가 더욱 실리지 않을까 싶다.

3층 Preshow 공간. 12개 참가기업의 로고가 소개되며 처음 관람객들과 만나는 공간이다.

기업연합관은 총 3층짜리 건물, 동선은 1층에서 3층, 2층 이렇게 짜여져 있다.

그래서 3층 입구에서부터 시작되는 본전시, 직전에는 무한도전 멤버들과 샤이니 등 한국 연예인들이 상해엑스포

기업연합관 개관을 축하하는 영상 메시지가 계속 돌아가고 있다. 마침 홀쭉해진 길이 방정맞게 인사중.

입구는 다소 어두컴컴한 느낌, 아무래도 안에 있는 장치들이 대개 LED 조명인데다 보여주려는 것도 LCD패널에

나타나는 동영상과 기술들인지라.

12개 기업들을 소개하는 영상을 지나치면 각 기업들의 로고를 터치하고 자세한 설명을 팝업해서 읽어볼 수 있는

커다란 스크린을 마주치게 된다.

"녹색성시 녹의생활". 녹색도시 녹색생활 쯤 되려나. 커다란 테이블 위에는 커다란 터치스크린들이 있어서

관람객들이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훑어보고, 그렇게 체험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벽면에 있는 것들도 전부

직접 사진도 찍고 조종해 볼 수 있는 것들, 최대한의 양방향성을 추구했다더니 정말 그렇다.

SF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요새야 광고에서도 많이 보이는 장면이지만 손으로 이리저리 작은 창들을 꺼내고

키우고 움직이는 게 이만큼이나 가깝게 구현됐다. 꽤나 재미있다는.

셀카를 찍으면 그 사진이 둥둥 떠다니다가 오른쪽 끝의 줄기에 가서 달라붙는다. 아무래도 셀카는 한국적인

뭔가라고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 우리처럼 셀카찍기를 즐기고 이렇게 전시관에 기본적으로 깔아두는 곳도

없지 싶은데.

그렇게 12개 기업의 대표 제품 및 서비스를 소개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벽들을 지나면 이제 3층에서 2층으로

내려가는 슬로프를 마주치게 된다.

세계 최대의 멀티미디어 타워랜다. 세계최대, 세계최고, 이런 식의 수식어를 붙이는 게 촌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LCD 모니터 192개로 만들어낸 타워라니 크긴 크더라. 아, 192개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이번 상해 엑스포에

참가한 국가수가 192개라는데, 이는 유엔에 등록된 국가수와 같다고 하니 말그대로 전세계가 모두 참여한 셈.

상영시간 6분여의 영상이 펼쳐지는데 꽤나 화려했다. 전면에 커다랗게 기업 로고를 때려박는 무식한 방식이

아니라, 조금은 세련된 방식으로 흘려흘려 보여주는 게 특히 맘에 들었다. 멋진 광고 한편을 본 느낌.

이번 전시 컨셉은 역시나 '녹색시티'. 2층에서 이어지는 5개의 테마관에서 미래도시의 이미지, 재생 에너지 등의

내용을 담아 관객과의 체험을 기다리고 있다.

각 테마관 모두 서포터즈 언냐들이 있어서 어떻게 하는 건지를 알려주고, 직접 시연해 보여주기도 하고.

전시장의 마지막쯤..전시관이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안에는 꽉 차있다는 느낌이다. 한국관이나 북한관, 심지어

중국관이랑 비교해도 왠만한 체험 프로그램이나 재미있을법한 꺼리들은 다 갖추고 있는 듯.

전시장을 빠져나가기 전에는 2012 여수엑스포를 홍보하는 영상이 뜨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눈길을

끌었던 건 바로 그 앞에 꾸며져있던 대여섯송이의 꽃, 그리고 그 그림자 이미지.

상해엑스포 한국기업연합관, 엑스포 참가사상 연합관 참가는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번 상해엑스포에

최초로 연합관이 들어선 셈인데, 외국기업연합관은 이곳과 일본산업관 단 두 곳 뿐. 많은 사람들이 돌아보고

그만큼의 성과까지 얻을 수 있다면 오년 후, 밀라노엑스포에서도 우리 기업들의 연합관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동방명주, 동방의 빛나는 구슬이란 뜻의 이 건물은, 처음 봤을 때는 굉장히 촌스럽고 기괴하다고 생각했는데

보다 보니 대충 익숙해져서인지 이젠 살짝 이쁘단 생각까지 든다. 밤10시가 대충 지나가면서 동방명주에는

불이 꺼졌고, 다만 주변 건물의 화려한 조명이 반사되어 은은하게 그 실루엣을 드러낸다.


그리고 저 붉은 선으로 그려진 중국땅덩이. 계속 바뀌는 건물 외벽 조명들 틈에서 용케 잡아냈다.

그리고 계속해서 바뀌는 네온사인. 흔히 '자본주의의 전시장'이라 불리는 게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조명인 걸

생각하면, 이곳 상해가 온통 네온사인으로 도배한 채 심지어는 고가도로 밑바닥에까지 깔았단 사실은 아이러니.

이런 식이다. 상해 시내에 뱅글뱅글 감긴 고가도로들이 온통 시퍼런 네온조명을 따라 달린다.

愛上世博. 상하이 세계박람회, 엑스포를 기념하는 조명이 화려하다. 사실 이 뷰포인트에서 보이는 건물들은

조명 비용때문에 적자를 보는 경우도 왕왕 있다고 한다. 특히 최근 세계 경기가 침체되면서 적잖은 부담이

되어 왔다고.

강 반대편 말고, 이편을 돌아보면 아마도 조계지 시절에 지어졌을 법한 고풍스럽고 장중한 건물들도 역시

마찬가지 화려한 조명을 흩뿌리고 있었다.

커다란 시계탑, 그리고 건물 위의 둥그스름한 돔까지. 저렇게 건물 전체를 돋보이게 하는 조명기술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들었다. 빛이 한곳만 강하게 뿌려지지 않도록 잘 조정해야 하는 데다가, 전반적인 건물의 외관과

조화를 이루도록 불빛의 방향과 세기를 결정해야 한다던가. 멋진 조명이다.






@ 상해.
이렇게 높은 고가도로는 본 적이 없다. 대체 왜이리 번쩍번쩍 도로를 하늘높이 들어올렸을까 싶도록, 쭉쭉

뻗어올린 기둥 위에 두툼한 도로가 얹혀 있다.

아무리 상해가 커다란 도시라 해도 이 거대한 대륙에서 땅이 모자를 일은 없을 거 같은데, 은근히 상해에는

고가도로가 많이 보인다. 그리고 예외없이 이렇게 높이높이. 왜일까.

너무 높고 너무 커다래서 황당한 느낌마저 살짝 출렁거리는 상해의 고가도로들. 그것이 던지는 위압감이란 게

천안문이나 자금성 앞에 섰을 때의 그것과 비슷하다.

굉장히 황량해 보이기도 한다. 고가도로를 몸통이라 치면 저 기둥들은 다리인 셈인데, 적당해 보이는

비율을 넘어선 그 자체가 황량하기도 하고. 하늘을 온통 막아선 잿빛 콘크리트 구조물이 차갑고 냉막해

보이기도 하고.
왠 장난감 같은 차들이 꾸물꾸물 기어가고 있었다. 상해엑스포에서 벌어지는 카퍼레이드 예행연습 장면과

조우했다. 미래지향적이고 다소 실험적이랄까, 그런 엑스포의 분위기에 맞게 모두들 살짝 SF스러운 외관이다.

고리 달린 행성이 목성이던가..그거 닮았다.

그리고 최근 유인우주선을 쏘아올린 나라의 자부심으로, 이런 식의 유인우주선을 꾸며놓다니. 우주선 동체 내

녹색식물들과 로봇들을 보니 살짝 월-E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건...흡사 타워즈의 한 장면? 양쪽에 캐터필러가 달린 장갑차나 탱크 따위 군사무기를 연상케 하는 퍼레이드차.

그 앞에 경찰차와 나란히 선 저것은...돌고래가 뛰노는 모습을 보니 바다를 그대로 차에 옮겨담았다고 우길 기세.

신발같이 생겼다, 신발. 안에는 군복을 입은 분이 제대로 각잡고 앉아있었는지라 더이상의 근접촬영은 차마

시도할 수 없었다. 저 분은 정말 군인이었는지 모르겠다.

맨 앞에선 커다란 깃발을 휘두르며 일사불란한 동작을 맞추려 애쓰던 깃돌이들. 엑스포 마스코트인 하이바오도
파란색으로 쓰더니 이 깃발들도 파란색이다. 이거이거, 오성홍기가 붉게 빛나는 중국에서 이렇게 파란색을

격하게 아끼다니 한국에서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 많겠다.

출입문 나갈 때는 쉽다. 그냥 한쪽의 문으로 나오면 된다. 아무 제재도 없고, 누구 하나 신경쓰지 않는다.

출입문 밖에는 웬 소림사 무림승같은 분들이 우르르, 출입을 기다리고 계신 건가. 짚신도 아닌 것이 말랑말랑

화장실 슬리퍼 재질로 만든 듯 편해보이는 신발들.

전철 4호선은 이쪽으로 가서 타란다. 엑스포 기간 중에 안내를 위해 만든 거라고 하기엔 좀 조잡하지 않나.

더구나 중국어를 모르는 외국인들은 대체 어쩌라고 외국어 병기는 하나도 안 해둔건지. 만국공통으로 알아볼

만한 건 그나마 숫자 4와 화살표 하나. 대충 알아보긴 하려나.

엑스포장을 빙 둘러 세워진 하얀 담벼락, 그 위에는 잘 보이진 않지만 고압전류가 흐르는 전기선이 설치되어

있었다. 정말이지 꽤나 테러방지에 신경을 쓴 티가 역력하다. 


그리고 근처 버스 정류장 인근 잔디밭에서 마치 공원인 양 편한 자세로 볕을 쬐고 있는 중국인들. 공원이 아니라

그냥 '조경시설'인 건데, 신발까지 벗고 앉아있는 자태들이 너무 자연스럽다. 사진만 보고는 공원으로 알겠다.

버스 정류장 표시는 이렇게 생겼다. 정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광고스티커나 낙서로 전혀 지저분해지거나

훼손되지 않았다. 명목상 여전히 공산주의국가인 중국이니 광고스티커 따위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여긴 상해니까

왠지 광고가 금세 덕지덕지 붙어버릴 꺼 같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눈에 띈 풍경들. 작은 '구루마' 두대를 끌고 어디론가 가는 아저씨들. 차도를 건너는데

거침이 없다. 엑스포 기간 중에 동원되었을 상해 '시민봉사대'분들이 교통통제도 하고 신호등 안내도 하고

쓰레기도 치우고, 특히 무단횡단을 민감하게 단속하고 있었지만 이분들은 꿈쩍도 안 했다.

상해엑스포 1번 출입구를 알리는 표지판.

중국에서 한국 연예인들의 '짭퉁'이 계속 생겨난다고 말들이 많은 거 같던데, 저 아시아스타 음악페스티발..

이랄까, 저기에 나온 아이들은 다들 한 실력하는 애들이려나. 아시아 스타라니 한국 가수들도 오려나.

평소엔 거의 관심없던 연예계에 새삼 관심이 생겼다.

청소부 아저씨들, 교통순경들, '(아마도) (비)자발적으로' 나와서 신호등 안내를 해주는 분들까지. 모두 옷들이

다 새것들이다. 문득 88년 서울이 이렇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중국의 '공안'들이 열맞춰 걷는 이곳, 상해 엑스포 출입문 앞이다.

딱히 각이 칼처럼 잡혔다고 말하긴 힘들어도, 최소한 저 파란 신호등 불빛 속에서 걷고 있는 녀석만큼의 절도는

있어 보인달까. 이리저리 각자의 구역 내에서 왔다갔다, 돌고 있는 공안들.

아직 엑스포 공식 개관 전이어서 스탭들만 들어갈 수 있도록 한 출입구는 꽤나 엄중했다. 오죽하면 공항보다

더욱 철저하게 몸수색도 구석구석 한다고 다들 혀를 내두를까. 허벅지부터 발목까지 더듬더듬, 감정이 하나도

실리지 않은 스킨십을 감내해야 했다.

심지어는,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면 한번 찍어보라고 시킨다. 카메라를 가장한 뭔가가 아닐까 싶어서 그렇단다.

그래서 찍힌 한 장의 사진. 물이나 음식류의 경우엔 한번 마셔보고 먹어보라고까지 시킨다고 했다.

임시 출입증의 앞면과 뒷면. 스티커는 중국 공안이 인증했다는 비표 역할을 할 거다. 뒷면에 찍힌 붉은 별

도장이 멋지다.

상해시 역사관, 왼켠엔 일본산업관. 푸서지역의 1번 출입구쪽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두 개의 전시관.

일본산업관은 한국기업연합관과 더불어 엑스포 사상 최초로 '연합관'의 형태로 들어간 전시관이라고 한다.

여러모로 일본과 한국은 서로를 의식하고 경쟁하게 되는 듯. 2002 월드컵 때도 그랬지만 대개의 경우 후발주자,

혹은 역사적 피해자로서의 복수심이랄까 오기랄까. 그런 게 작용하는 면이 없지 않아 보이긴 한다.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 한국기업연합관. 엷은 하늘빛을 띄고 있는 외관이, 꼭 어렸을 때 좋아라 먹던 그 뭐더라,

아이스크림 색깔이 떠올랐다. 왜 우윳맛 진하게 나던 하얀색 알맹이 겉에 딱 저런 색깔을 한 샤벳같은 게

코팅되어 있던 아이스크림. 캔디바던가. 뭐였지...;

여기도 열지어 대기중인 중국 공안들. 고생들 많으십니다 그려.

산뜻해 보이기도 하고, 가벼워 보이기도 하고, 뭔가 바람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근처의 하수구 뚜껑들은 이미 검침을 완료하고는 봉인되어 있었다. 누군가의 손을 타선 혹시 모를 불상사를

미연에 예방하기 위한 철저한 조치들이다.

아직 개관 전인지라, 동선 중간중간을 폴리스라인이 끊어두고 있었다. 왠지 여기저기 쑤시며 사진찍다가는

카메라째 뺏겨버릴 듯한 살벌한 분위기. 지들 기분 거스르면 언제든 출입증 좀 보자고 들이대는 녀석들인지라.

아, 엑스포장 내에서는 금연이라며 담배나 라이터를 가진 사람은 전부 압수당한다고 했다. 쓰레기도 이렇게

몇 가지 종류로 나누어 버리도록 해두었고. 아무래도 주제가 친환경 쪽이니까 그렇겠지만 글쎄. 원론적으로

따지자면 고작 180여일 쓰자고 각 국가들이 거창하게 지어둔 건물들이 내어놓는 건축 폐자재니 쓰레기부터

어떻게 줄이려고 노력해야 하는 건 아닐지.




인천에서 상해 푸동공항까지는 대략 한시간 반, 만석에 좁디좁은 이코노미석 한중간에 끼인지라 매우 몹시

불편했지만 고작 한시간 반이니까. 비행은 한 여덟아홉시간이 한계인 듯 하다. 그 이상 타면 온몸이 뒤틀리고

오장육부가 경련하는 느낌.


푸동 공항에 도착하니 검정개 한 마리가 짐가방 냄새를 맡고 있었다. 엑스포 기간 중에 불미스런 사태를

막으려고 단속이 더욱 엄중해졌다고 들었다. '중국'으로 묶이지 않겠다는 소수민족의 테러가 걱정스러운 거다.

하긴 자기들이 티벳이나 위구르 쪽에 한 짓들이 있으니.

상해엑스포의 마스코트, 하이바오(海寶). 바다의 보물이란 뜻이다. 사람 인을 형상화했다곤 하지만, 그냥 모 사실

람 형태로 의인화된 형상들은 모두 사람 인人자와 닮을 수 밖에 없는 거다.

상해는 원래 꽤나 더운 지방이다. 4월만 되어도 반팔을 입고 다니고, 바다가 가까워 바람도 세차게 분다고 하던데

기상이변이 한국에만 나타나는 건 아니어서 이 동네도 날씨가 이상했다. 햇살도 살짝 창백하고, 바람은 차가운

냉기를 잔뜩 머금었고. 4월말인데 겨울바람이 불고 있었다.

숙소에 들러 짐을 풀고 엑스포장에 가려 했는데, 바로 가게 됐다. 푸동 공항에서 상해 엑스포장까지 달리는 길.

엑스포 개최를 알리는 광고판들이 즐비하다. 6층짜리로 다른 국가관들보다 두 배나 높이 지어진 중국관의

위용은 항상 빠지지 않는다. 애국심과 중화주의를 고양하기 위한 발판으로 잘 써먹어보려는 심산. 가뜩이나

이미 중화제일주의가 발호하고 있는 판인데 더욱 제국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어이쿠.

그러고 보니 상해는 삼년 전에 북경이랑 부산이랑 묶어서 짧게나마 왔었다. 2박3일이었던가, 3박4일이었던가.

그때도 느꼈던 거지만 중국이라고 묶이기엔 북경이나 상해의 분위기는 참 다르다. 조계지의 기운이 남아서인지

오랜 건물들도 조금 서구적이고, 그에 더해 워낙 현대화/상업화된 지역이란 느낌.

쉬지도 않고 나타나는 광고판들. 온통 상해엑스포 표지 뿐이다.

차도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 여기는 중국. 우리나라도 요새 녹색이다 뭐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게

하려는 거 같더만 보여주기식 자전거 주차대는 텅텅 비어있고 자전거전용도로는 툭툭 끊겨있고.

씨알굵은 건물들이 듬성듬성 서 있는 데서 아마 넓은 '대륙'의 풍모가 느껴지는 걸까. 그 건물들이 전부 하나씩

상해엑스포 홍보 옷을 해입었다.

이미 상해에는 10호선까지 지하철이 뚫렸다. 아마 몇 호선 더 만들고 있다는 거 같던데, 지하철을 한번 타 보고

싶었지만 못 타보고, 외관만으로는 꽤나 훌륭해보인다. '마데인차이나'가 저급품, 짭퉁으로만 여겨지는 건

한국인들이 그런 상품만 중국에서 바라기 때문이라던데, 얘들 맘먹음 제대로 만드는 거다.

세계박람회, 줄여서 세박(世博), 중국어 발음으로는 시부~. 굉장히 넓찍한 주차장이 엑스포장 주변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쓰기읽기에만 치중했던 천박한 중국어 실력을 쥐어짜내어 발휘하리라곤 이때까지만 해도 미처

생각지 못했다.

한때 유행하던 대륙 시리즈처럼, 여기저기서 '달인'들이 많이 보였다. 산더미같은 짐을 이고지고안고 가는

대단한 능력자들. 이 자전거는 그 중에서도 좀 귀여운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역시 만만치는 않아 보인다.

온통 난마처럼 얽혀있는 전기줄들. 저거 지 무게 못 이기고 어느 순간 투툭, 전부 바닥에 떨어져선 이리저리

나뒹굴며 전기를 쏴대는 건 아닐까.

엑스포장에 가까워질수록 티가 팡팡 난다. 조경으로 꾸며진 하이바오하며, 곳곳에 세워진 '자원'봉사자들.

엑스포장 반경 1킬로 이내에는 차의 출입을 아예 통제하고 있어서 조금 걸어야 했다.

15분쯤 걸었을까. 드디어 엑스포장 입구에 도착했다. 총 관람객 예상수를 칠천만명으로 예상한다니 거의 남북한

합쳐서 우리나라 인구가 전부 한번씩 보는 셈이다. 물론 그중 중국인이 6500만, 외국인이 500만 정도의 비율이

될 걸로 생각된다고는 하지만, 여의도 삼분지이 정도의 땅에 그 인원이 바글바글댈 거라니 대단한 행사긴 하다.








4월말만 되어도 반팔을 입고 다녀야 한다는 상하이, 눈이 내리는 일이 좀체 없는 지역이다.

그런 곳에서 저렇게 펄펄 눈이 내리는 장면을 연출해낸 아이디어에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만하지 않을까.

좋아라고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고만 있어도 어찌나 흐뭇해지던지. 사방으로 뛰어다니고, 손발을

나풀거리며 그야말로 온몸으로 눈내리는 순간을 만끽하는 녀석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자연스레 모두에게서 박수가 터져나오고 말았었다. 2010 상해엑스포가 시작된 상하이,

한국기업연합관에서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중국의 아이들(과 강아지들)에게 눈을 선물하고 있었다.


분분한 낙화. 사실은 인체에 무해한 계면활성제로 만들었다나 뭐라나. 어제 기업관 개관식날 보고를 듣던

MB 내외의 시선도 붙박아두었던 풍경이니만치 상해와 중국 사람들에게도 꽤나 그럴듯한 기억으로 남기를.







출장을 떠날 때 마지막 하는 일은, 다시는 안 돌아올 것처럼 사무실 책상 위를 말끔히 정리해두는 거다.

꼭히 출장만이 아니라 잠시라도 이곳을 떠난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그 어떤 계기도 마찬가지다.

책들을 가지런히 열지어세우고, 뒹굴고 다니던 펜들을 필통에 꼽아두며, 웬만하면 거슬리는 게 없도록.

다녀와서 새로운 기분으로 마치 새로운 공간의 새로운 인간이 된 양.


꽤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매일같은 야근에 주말에도 나와서 일하던 패턴.

덕분에 머릿속에 켜켜이 쌓였던 나태함과 비루함, 자멸감 따위의 찌끼미들이 홀라당 타버린 거 같은데, 실은

그저 며칠동안 내가 안 놀아주니까 심심해서 잠시 외출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다녀와봐야 알 일, 그리고 다녀와봐야 새삼스레 별다를 것도 없을 거란 것도 알지만 매번 속는다.


말이 길었지만 여튼, 오늘부터 일요일까지. 샹하이에 다녀오겠습니다~*

이 글이 발행될 때쯤이면 이미 상해에 도착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사진은 며칠 전, 날밝은 오후 날 물끄러미 째려보던 청천(靑天)의 백월(白月). 속이 다 시원하도록 하얗던 달.

시퍼러딩딩한 일상에 서늘하도록 하얀 점 하나, 떠남.



再見!


2010년 5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상해 황포강 인근에서 개최되는 2010 상해엑스포는 개도국에서 개최되는

최초의 엑스포이자 사상 최대 규모의 행사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여의도 2/3 규모의 부지에 192개 국가, 50개

국제기구, 18개 기업관, 50개의 도시관이 참가하며 연인원 7000만명의 관람객을 기대하고 있다고.

엑스포장은 국가관과 국제기구관이 있는 푸동지역의 A, B, C존, 그리고 기업관과 도시관이 있는 푸서지역의

D, E존으로 나뉜다.

푸서지역 주요 전시관 위치. 한국기업연합관은 12개 국내기업이 연합관을 구성하여 참가한 형태로, 엑스포

참가사상 연합관 참가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번 엑스포에서 외국기업연합관은 한국기업연합관과 일본산업관

두 곳 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푸동지역 주요 전시관 위치. 한국관 가까이에 북한관이 인접해 있다고 한다. 북한은 상해엑스포에

사상 최초로 참가하여 '강성대국'을 홍보할 예정이라고.





어느 날, 퇴근 후 송년회를 빡시게 가졌던 다음날 내 방 책상 위에서 발견된 중국산 와인. 때이른 산타클로스

놀이는 혈관 속에서 맥놀이하는 알콜 성분과 저질 체력 덕에 가능했으리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겠지만, 왠지

나는 이 와인병이 무슨 별똥별처럼 우주에서부터 내 방 책상위로 내려앉았다고 상상해 보고 싶은 거다.

중국에서도 와인을 만들었단 말인가, 새삼 중국 대륙의 힘을 느끼면서 거의 새 것과 다름없이 코르크만 한번

열렸다 닫힌 듯한 와인 맛을 음미해보기로 했다. 중국과 프랑스의 조인트 벤처 와이너리에서 만들었다는

무려 '다이너스티' 와인인 거다. 라벨지 색깔도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붉은 계열이고.

라벨 뒤, '다이너스티DYNASTY'의 중국어 표현, '왕조'. 중국 톈진지구에서 만들어졌다는데 거기가 포도 재배

그리고 와인 숙성에 적합한 지역이었는지는 미처 몰랐다. 왠지 자꾸 의심병이 도지는 이유는, 공항 면세점에서

파는 마오타이주조차 메틸알콜로 만들곤 한다는 그네들에 대한 불신과 일종의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와인은 포도로 만든 건 확실하겠지? 유통기한이 지났다거나 상한 포도로 만들었다거나 제조 과정이 지극히

비위생적이라거나 따위 온건하고 상상가능한 거 말고, 예컨대 포도가 아닌 붉은 색 돼지간으로 만들었다거나,

(그저 상상일 뿐) 알고 보니 헌혈의 집에서 폐기된 붉은 피를 재활용했다거나(워워워)...


중국에 대한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다. 고량의 냄새를 좋아하고 고량주를 좋아하며 중국제품도 사실 굉장히

품질이 높고 좋은 제품이 많다는 건 이미 알고 있지만, 그냥 상상해 보면 그렇다는 거다. 중국에서 나온 와인,

한국에서 복분자니 뭐니 이러저러한 것들로 와인을 빚어놓은 것도 꽤나 의심스러울 때가 많은데 더더욱

요모조모 생각해 보고 조심하게 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사실 맛만 좋으면 된다. 그치만 코르크 마개를 따고 확 풍기는 냄새는 살짝 매콤한 냄새, 어릴적 우뢰매를 보러

자주 갔던 어린이대공원 근처에서 곧잘 맡았던 최루탄을 백분지일 정도로 희석시킨 냄새랄까. 잔에 따라서

비춰본 와인의 색깔도 그닥...살짝 갈색이 도는 붉은 빛, 게다가 공기와 닿아 향이 좀더 숙성되면서 매캐한

냄새는 좀더 강해져 버렸다. 맛 역시, 라벨에 소개된 것처럼 light하고 fruity하다기보다는 그냥 가볍게 맵다.


좀 많이 실망해서, 담부터는 술에 취해도 제대로 먹을 수 있는 걸 챙겨오자고 대오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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