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퇴근 후 송년회를 빡시게 가졌던 다음날 내 방 책상 위에서 발견된 중국산 와인. 때이른 산타클로스

놀이는 혈관 속에서 맥놀이하는 알콜 성분과 저질 체력 덕에 가능했으리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겠지만, 왠지

나는 이 와인병이 무슨 별똥별처럼 우주에서부터 내 방 책상위로 내려앉았다고 상상해 보고 싶은 거다.

중국에서도 와인을 만들었단 말인가, 새삼 중국 대륙의 힘을 느끼면서 거의 새 것과 다름없이 코르크만 한번

열렸다 닫힌 듯한 와인 맛을 음미해보기로 했다. 중국과 프랑스의 조인트 벤처 와이너리에서 만들었다는

무려 '다이너스티' 와인인 거다. 라벨지 색깔도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붉은 계열이고.

라벨 뒤, '다이너스티DYNASTY'의 중국어 표현, '왕조'. 중국 톈진지구에서 만들어졌다는데 거기가 포도 재배

그리고 와인 숙성에 적합한 지역이었는지는 미처 몰랐다. 왠지 자꾸 의심병이 도지는 이유는, 공항 면세점에서

파는 마오타이주조차 메틸알콜로 만들곤 한다는 그네들에 대한 불신과 일종의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와인은 포도로 만든 건 확실하겠지? 유통기한이 지났다거나 상한 포도로 만들었다거나 제조 과정이 지극히

비위생적이라거나 따위 온건하고 상상가능한 거 말고, 예컨대 포도가 아닌 붉은 색 돼지간으로 만들었다거나,

(그저 상상일 뿐) 알고 보니 헌혈의 집에서 폐기된 붉은 피를 재활용했다거나(워워워)...


중국에 대한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다. 고량의 냄새를 좋아하고 고량주를 좋아하며 중국제품도 사실 굉장히

품질이 높고 좋은 제품이 많다는 건 이미 알고 있지만, 그냥 상상해 보면 그렇다는 거다. 중국에서 나온 와인,

한국에서 복분자니 뭐니 이러저러한 것들로 와인을 빚어놓은 것도 꽤나 의심스러울 때가 많은데 더더욱

요모조모 생각해 보고 조심하게 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사실 맛만 좋으면 된다. 그치만 코르크 마개를 따고 확 풍기는 냄새는 살짝 매콤한 냄새, 어릴적 우뢰매를 보러

자주 갔던 어린이대공원 근처에서 곧잘 맡았던 최루탄을 백분지일 정도로 희석시킨 냄새랄까. 잔에 따라서

비춰본 와인의 색깔도 그닥...살짝 갈색이 도는 붉은 빛, 게다가 공기와 닿아 향이 좀더 숙성되면서 매캐한

냄새는 좀더 강해져 버렸다. 맛 역시, 라벨에 소개된 것처럼 light하고 fruity하다기보다는 그냥 가볍게 맵다.


좀 많이 실망해서, 담부터는 술에 취해도 제대로 먹을 수 있는 걸 챙겨오자고 대오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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