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지키는 도시,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 Ljubljana라는 이름에서 보이듯 기묘하게 얽힌 채 이어지는 발음은 정말 쉽지 않다.

 

류블랴나. 오타가 아니다. 류블랴나. 그런 도시의 밤풍경은 도시의 이름과 닮아서 기묘하게 얽힌 골목들이 두 개의 혀처럼 얽힌다.

 

 

 류블랴나를 관통한 채 숱한 아름다운 다리를 남긴 강의 이름은 류블랴니차 강. 멀찍이 언덕 위의 류블랴나 성이 보인다.

 

 

류블랴나 구도심의 중심인 프레셰렌 광장으로 이어지는 다리. 대체 왜 이리도 발음들이 어려운지, 혀의 낯선 움직임만큼의 거리감이

 

아마 한국과 슬로베니아의 거리감일지도 모르겠다.

 

 물이 맑아서 저런 빛깔이 도는 건지, 아니면 특정한 광물이 녹아들은 물이라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유속이 되는 강이 시퍼렇다.

 

 

 그리고 밤이 되니 한층 더 흉악해진 눈빛과 포악스런 근육들을 꿈틀거리는

 

 

손님이 들어설 때마다 입구의 주인 아저씨가 피아노로 한곡조 멋지게 연주를 해주는, 따라라라딴딴딴. 그런 서점을 가진 거리.

 

류블랴나 성으로 향하는 길 어귀, 그래서 그런가 가게 앞 셔터를 내리는 대신 삐죽삐죽 못이 튀어나온 방어진을 설치해놨다.

 

 

오벨리스크가 서있는 조그마한 광장을 지나고.

 

류블랴나 시내의 미니어쳐-라고 해봐야 꽤나 커서 왠만한 중간방 사이즈만한-지도가 있는 프레셰렌 광장을 지나면 신시가가 나온다.

 

 

슬로베니아 스타일의 맥도날드 메뉴를 선전하는 광고판에 불이 들어와 있기도 하고,

 

대낮처럼 환하게 불을 밝힌 슈퍼와 온갖 샵들에 기대어 풍금을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가 보이기도 하고.

 

그 뒤로는 쇼핑하러 들어간 주인을 기다리며 문 앞에서 충직하게 경계중인 견공이 한 마리.

 

 

그리고 류블랴나의 음악홀..이었던가, 덩그마니 자리잡은 건물을 은은하게 감싸고 있는 조명이 참 이쁘더라는.

 

아무래도 이 용의 위풍당당하다 못해 무시무시한 모습은 서양과 동양의 '용'에 대한 이미지가 갈라지는 지점에 서 있지 싶다.

 

동양의 용에서는 위엄있고 우아하고 현명하다는 느낌이 먼저 다가온다면, 이 용님께옵서는 그저 무섭다. 가차없는 야수나 짐승의 느낌.

 

 

 

 

서울 중심, 경복궁을 축으로 동서남북으로 자리한 동네에는 아주 심플한 이름이 붙어 있다. 궁에서 동쪽에는 동촌, 서쪽에는 서촌,

 

그런 식인 거다. 어찌 생각해보면 그 퉁명스럽고 게으른 작명에는 일종의 특권의식, 우월감이 기저에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구중궁궐에 가장 근접한 동네, '일번지'를 누리는 셈일테니.

 

그래서 여기는 그 중 서촌, 경복궁의 서쪽에 붙어있는 동네다. 한가한 골목길에 깜빡깜빡 잊고 있었다는 듯 성기게

 

듬성듬성 기와지붕 한옥집을 꽂아둔 동네, 이렇게 볕이 좋은 날에 그 중 골목 하나를 골라잡아 자리를 깔고 앉았다.

 

참여연대 부설 아카데미인 '느티나무'에서 수강중인 '서울 드로잉' 수업 첫번째 날, 한옥집과 기와지붕을

 

그려보라는 게 세시간 남짓한 수업시간 중 한시간은 명도 실습, 삼십분은 구도 설명 등으로 날리고 남은 시간,

 

한시간정도를 채워야 하는 미션.

 

고경일 선생님이 몇군데 추천해준 포스트 중에는 '대오서점' 건물도 있었다. 이전에도 지나다가 굉장히

 

매력적인 건물이라 생각했었는데 미처 사진에 담아두지 못했던 곳, 청와대 근처라 온통 야트막한 건물들로

 

스카이라인이 내려앉은 이 곳에서도 특히 땅바닥에 달라붙은 기와지붕은 허물어져내리고 있었다.

 

이 각도로 그림을 그려볼까 잠시 망설이던 사이 같이 수업을 듣는 분들이 우르르 자리를 잡으셨다.

 

구도가 같다고 같은 그림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왠지 다른 걸 찾아보는 게 낫겠다 싶어서 미련을 버리고.

 

그래도 아쉬우니 앞뒤로 좌우로 둘러보며 이 정감가는 건물을 뜯어보았다. 저 기묘한 폰트의 '대오서점' 간판은

 

언뜻 어설프고 어색하면서도 묘하게 마음을 끌어당기는 인간미가 있는 거 같다. 적당히 허물어져가고 바래가는

 

기와지붕이니 건물의 외벽도 마찬가지.

 

또다른 추천 장소, 그냥 여느 동네의 골목길과 같았는데 문득 말끔한 기와지붕과 단정한 돌담문양 벽면이 서있었다.

 

하다못해 전선들조차 직선으로 쭉쭉 뻗어나가는 '근대화'된 골목길에 능청스레 살풋 처마끝을 쥐어올린 기와지붕.

 

그런 은근한 까불거림, 혹은 여유가 느껴지는 전통적인 기와지붕이란 건 눈으로 보거나 사진으로 찍을 땐 참 좋은데,

 

그걸 그림으로 담아낸다는 건 굉장히 머리가 아파지는 거다. 좀처럼 평면에 담아내기 쉽지 않은 그 입체감.

 

 

@ 상하이.

경제발전만을 향해 치닫던 중국의 상해도 이제 미적 감각을 거리에 도입하기 시작한 거다,

비록 내용물은 전부 살색그림 충만한 찌라시들일지언정.




그곳을 찾아 나섰다. 추억과 사랑의 힘으로, 모든 걸 탈색시키고 휘발시키는 시간의 절대적인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던 공간.


노틀담성당이 서있는 시테섬의 남쪽 강변 건너편에는 영화 '비포 선셋'에서 9년만에 남녀가 재회하는 공간,

"Shakespeare and Company"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파리 여행을 떠나기 전

파리의 풍광과 그에 얽힌 이미지들을 머릿속에 꼬깃꼬깃 가져가겠다며 한번 다시 봤던 영화 중의 하나가

'비포 선셋'이었다.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후끈 달아오른 눈빛과 뉘앙스들을 서로에게 아낌없이 쏴보내던

그때와는 달리, 다소 주름살이 보이고 삶에 찌들어 보이던 그들의 모습에 살짝 실망하기도 했었다. 그치만

서로의 존재로 인해, 또 서로의 기억을 맞춰나가면서 점증하는 가슴속 진동으로 인해 조금씩 표정이 펴지고

젊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파워 오브 러브랄까.


생각보다 찾기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시테섬과 마주한 세느강 남안에는 아기자기한 골목길들이 이리저리 돌아

보고 싶지 않느냐고 유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행이란 헤매는 과정이라고, 아무리 지도를 들고 나침반을 들어도

살짝 옆길로 새보기도 하고 크~게 돌아가 보기도 하는 게 여행이라면 어쨌거나 헤맬 수 밖에 없는 거라는 식으로,

내 빈약한 방향감각을 애써 옹호하고 있던 터였다.


내게 팔랑팔랑 손짓하던 매혹적인 골목길 중 하나. 저 좁다란 골목길은 어디로 이어질까.


어느 순간 덜컥 시야에 잡힌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낯익은 노란 간판. 큰길로부터 한발짝 물러선 채 놓인 건물,

그 앞에 놓인 수수한 화단. 그렇지만 그 성기게 피어난 작은 꽃들과 별 관리를 받고 있지 않은 듯한 화단이 왠지

모르게 서점의 운치를 더하는 것 같다.


책방 앞으로 한 걸음 내딛고 보니, 입구가 두개다. 왼쪽은 그냥 조그맣게 1층만 쓰는 곳이었고, 오른쪽 입구가

2층까지 이어져 있었다. 저 주홍빛 백열등이 오래된 장서들의 갱지색 종이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고 있다.


변장한 천사일지 모르니 낯선이에게 친절하라..라는 글이 적혀 있는 2층 계단끄트머리.

춥고 비 오는 밤

파리에 온다면

세익스피어 서점을 찾아요

반가운 곳이죠

 

그 서점 모토는

다정하고 따뜻하죠

변장한 천사일지 모르니

낯선 이에게 친절하라


이게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공식 노래라는 사실은 방금 다른 블로그들을 뒤적대다가 알게 된 사실.
 
(참조 : http://www.cyworld.com/eyebrowsmoon/367152)

공식 노래도 있는 서점이라니, 서울에 있는 인문사회과학 서점들도 자체의 노래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싶다.

신림동에 있는 '그날이 오면' 서점의 공식 노래, '그날이 온댄다' 정도 어떨지.


2층에 있는 자그마한 서재. 창밖으로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오고, 사방에서 풍기는 책내음은 내 장활동을

활발하게 자극했다. 왠지 모르게, 학교 도서관이나 어쨌든 책냄새가 풀풀 나는 공간에만 들어서면 나는 모종의

욕구가 고개를 불쑥 치켜들곤 했다. 나만 그런가...ㅡㅡㆀ


나중에 내 집이 생기면, 저런 식의 서재를 꼭 하나 갖고 싶다. 정 안된다면 티비를 빼고 그자리에 서재를 마련하는

것도 꽤나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물론 그렇게 반강제로 티비를 몰수하고 책을 보도록 하는 것보다는, 어른들이

먼저 모범만 보여도 애들은 잘 따라할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찾고 있던 책이 있었다. Nelson Mandela의 'long walk to freedom'을 얼마전부터 읽고 싶었어서 여기저기

가격을 알아보다가 온 여행이었어서, 이왕이면 이곳에서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도장이 떡하니 찍힌 책으로

사들고 오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머릿속에서 순간 '롱워크 투 프리덤'을 샹젤리제 거리의 어느 이뿐 까페에서

펼치고 보는 그림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도 했다는 걸 고백해야겠다.


알파벳 순으로 대략...정말 대략 정리되어 있는 2층을 한바퀴 돌면서 찾았지만 못 찾고 카운터에 가서 물어보려고

계단을 내려서려는 내눈에 다닥다닥한 쪽지들이 들어찼다. 마치 '그날이 오면' 서점 앞에 빼곡하게 붙어있던

온갖 세미나, 뒷풀이, 술자리, 동문회 약속장소와 시간을 적어놓은 메모처럼. 이건 뭘까.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남긴 메모였다. 어느 나라에서 온 누군데, 이곳에서 이러저러한 느낌을 받았다며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에게 글을 남기고 있었다. 말그대로 '포스팅'. 더러는 자신의 사진도 남겨 놓았고, 한글도

꽤나 많이 눈에 띄었다.. 대부분 날짜가 꽤나 따끈따끈한 걸로 보아하니 서점측에서 관리를 하기도 꽤나 일이겠다

싶었다.



1층에 내려와서 카운터를 지키는 누님에게 책이 있는지 물었다. 컴퓨터를 사용해 책을 검색하는 것에 살짝 놀랐다.

마치 도서관처럼 퀘퀘하면서도 정겨운 오래된 책냄새가 가득한 이공간이라면, 왠지 컴퓨터와는 거리가 멀 거라고

은근히 생각했었던 것 같다. 내가 책의 소재 여부를 물은지 1초만에, 그녀는 부정적인 답을 내놨고, 난 조금 실망한

채 서점을 나왔다.


나오기 전 내 눈을 잡아끌던 조그마한 모금함..이랄까. 커피 한잔 마실 값을 모아서 젊은 작가들이 책을 쓸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취지의 글이 이 모금함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누구도 쉽게 잊지 못하는 내가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어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좋아했어도 헤어지면 쉽게 잊어

  물건을 바꾸듯 딴 사람을 만나지

  하지만 난 누구도 잊을 수 없어

  누구나 각자의 특징이 뚜렷하거든

  한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대체 할 순 없잖아

  그래서 더 소중해지게 돼

 즐기기만 하는 상대라도 그럴꺼야

 그 사람의 작은 특징들이 생각나서 마음을 어지렵히거든

 사람들 하고도 그래

 저마다의 작은 특징을 발견해서 감동하고 언제까지나 그리워하지

  그래서 누구도 다른 사람이 대신 할 순 없어

 자기도 그랬어

  수엽에 붉은빛이 돌잖아 

 떠나던 날 아침에 햇빛을 받아 붉게 빛나던 모습

 

그 모습을 기억하고 그리워 했어

                                     - 줄리델피의 대사中 -(참조 : http://cafe.naver.com/firenze.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374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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