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소파에 딩굴딩굴, 하면서 티비도 보고 술도 마시고.

역시 와인은 코와 입 외에도 눈으로 보며 즐기는 술이란 게 맞지 싶다. 찰랑찰랑, 흔들리는 붉은 빛.

그럴 때면 무슨 고민이 있었던가 싶기도 하고. 뭘 그리 아둥바둥 맘쓰며 사나 싶기도 하고.

이탈리아의 스파클링 와인, '아랄디카 브라께토 다뀌'. 빛깔은 로제 와인처럼 산뜻한 핑크빛에 가깝고,

탄산가스가 계속 뿜어올라서 와인잔에 달라붙었다. 제법 달달하지만 시원상큼한 맛이 입안을

개운하게 해주는 느낌. 원래 스파클링 와인은 저런 넓은 잔이 아니라 뾰족하고 긴 잔에 마셔야

기포가 송송 솟아오르는 걸 볼 수도 있고 맛도 오래 즐길 수도 있다지만, 뭐 아쉬운 대로.


그러고 보면 이런 식의 스파클링 와인을 통틀어 대충 '샴페인'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사실 샴페인은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 생산된 스파클링 와인만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랄까. 샴페인<스파클링와인,

이런 포함관계인 셈인데, 어쨌거나 샴페인이란 호칭도 좀 웃긴다.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졌으니
 
Champagne란 이름은 당연히 프랑스식으로, '샹파뉴'라고 읽혀야 할 텐데 영어식으로 '샴페인'이라

굳어져 버린 거다. 왜 그렇게 된 거지. 20세기초까지도 세계 외교, 파티의 중심이었던 파리일 텐데.


늘 스파클링 와인을 마시다 보면 샴페인, 샹파뉴에 생각이 미치고 늘 '샴페인'의 패권 장악과정이

궁금해지는 거다.


몇 달 전 마셨던 샴페인, 크룩 그랑 꾸베(Krug Grande Cuvee). 집에 들어온 건 그보다 훨씬 이전.

샴페인을 터뜨릴 만큼 축하할 일이란 그다지 많지 않은 까닭이다.

마실 때도 그다지 요란스럽게 흔들어 뻥, 하니 터뜨리고 싶지는 않았다. 흘러넘치는 술이 아깝기도 했고

함께 했던 대하와 조개구이 친구들이 무엇보다 '샴페인'과의 마리아주(Marriage)를 고대하고 있었다는.

그리고 숙취처럼 남은 것. 한번 빼낸 코르크 마개를 다시 닫기란 좀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샴페인 마개는

더더욱 그렇다. 고집스럽게 펼쳐진 콜크 마개의 아랫도리. (그리고 효용을 다한 채 하얗게 반짝이는 철사조임)

적당히 칠링된 샴페인은 굉장히 깔끔하고 상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혀끝에서 톡톡 터지던 그 자그마하고

부드럽던 반짝임들이 이제는 코르크 마개 위로 옮겨왔다. 미각에서 시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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