쑨원을 기념하는 국부기념관은 몇 걸음 안 떨어져 타이베이101 빌딩과 함께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슬쩍 치켜

올라간 기와가 위풍당당해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거대한 시멘트 덩어리의 느낌이 더욱 짙은 지라 그렇게

인상적인 건물은 아니었다. 조금 거뭇거뭇해진 시멘트 외장이 남루해 보이기도 했고, 벌써부터 약간 퇴락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쑨원, 열 번에 가까운 혁명을 시도하고 결국 성공시켜 낸, 철학과 실천력을 겸비했던 사람이다. 1911년 신해혁명의

결과 중국 대륙의 '앙시앙레짐'이 무너지고 비로소 근대적인 정치형태가 실험되기에 이르렀지만, 자력으로는

도저히 혁명을 완수할 수 없었던 그는 위안스카이와 같은 군벌의 힘을 업고 말아 이후의 혼란을 자초하기도.


어쨌든 대만, 타이완의 건국 시점은 신해혁명으로부터 기산한다. 올해는 그래서 중화민국(中華民國) 99년.

2010년이란 서력보다 민국99년이란 표기가 더욱 흔하게 눈에 띄었다.

그렇지만 쑨원의 자그마한 동상들보다 더욱 눈길을 끌었던 것은 그 뒤의 반짝거리는 검정 대리석 앞에서 뭔가

뒤를 돌아선 채 연습하고 있던 아이들.

쑨원의 필적이나 그를 기리는 다른 사람들의 필적을 새겨둔 것 같은 검정대리석들이 쭉 이어져 있었고,

아이들은 거울처럼 말갛고 반짝거리는 그 대리석 앞에서 춤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 이 '국부기념관이 외국인

혹은 관광객에게야 눈도장찍는 장소겠지만, 이들에게는 그저 동네 공원, 춤연습하기 좋은 장소인 게다.

국부기념관 앞의 잘 꾸며진 정원 너머로 보이는 타이페이101.

국부기념관의 정문,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듯한 처마가 슬쩍 쳐들려진 정문.

꺼뭇꺼뭇한 뭔가가 하늘에서 걸리적댄다 싶더니, 박쥐처럼 생긴 연이었다.

높은 좌대 위에 거대한 의자 위에 앉아있는 쑨원, 뭔가 명문이 금빛 글씨로 새겨져 있었는데 저렇게 거리를

멀쩍이 떨어뜨려두고 어떻게 읽으란 이야기인지. 그냥 데코레이션이겠거니 했다.

쑨원의 산민주의를 소개하고 있던 국부기념관 내부의 홀. 민족(자유), 민권(평등), 민생(박애). 그가 이런 기치를

들고 신해혁명에 성공한지 99년이 지났지만, 얼마나 성취했는지 답하기란 참 어려운 것들이다. 뭔가 수치화될

수 있는 것들도 아니고, 상대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개념도 아니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얼마만큼 진척되었다고
해서 아 이제 됐어, 충분해,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가치들도 아니니까.

국부기념관  처마 아래에서도 아이들의 댄스 열정은 뜨겁게 타올랐다. 시멘트 벽면과 두툼한 기둥에서 내뿜는

냉기와 머리 위 지붕 덕택에 시원한 공간에서 꿈틀대는 뜨거운 열정들.

국부기념관 정문 앞 바닥에 그려진 방위표. 중샤오동루(충효동로), 이름 참. 이런 식의 유교적 가치들이 여전히

길이름 위에, 지하철 역이름 위에 유령처럼 서성이고 있으면 쑨원이 말했던 삼민의 가치가 오히려 훼손되는

건 아닐까. 국가에 대한 충성, 가족(가부장)에 대한 효심, 그런 식으로 조직과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소속감을

강조하는 것, 가뜩이나 개인이 제대로 서지 못한 동양적 풍토에서 조금은 절연해 두어야 할 가치들 아닐지 싶은데.

어느 순간 시원하게 내뻗기 시작한 분수. 그너머 타이페이101, 국부기념관 정문 돌계단에 걸터앉아 바라보이는

타이페이 시내의 풍경.





각국의 발렌타인데이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건 알았지만, 타이완의 발렌타인 데이는 8월 16일이라고 했다.

타이페이101의 1층이나 지하에는 쇼핑몰과 레스토랑들이 있는데 온통 발렌타이데이, 그리고 아버지의 날을

맞는 판촉 행사 중이었다. 아버지의 날..은 언제일까 근데.

전망대에 올라가는 티켓을 사려면 5층, 매표소로 가야한다. 거기에서 바로 89층까지 올라가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야 하는 것. 5층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 화려하게 꾸며진 101빌딩의

외관을 담은 포스터가 그럴 듯 하다.

곳곳에 붙어있는 전망대 입구를 가리키는 화살표를 따라 가다보면 금세 도착했다. 높다란 몰 천장이 시원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공간이 넓어 보이게 했었는데, 코엑스몰이나 그런 곳도 천장이 좀만 더 높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천장이 높으면 왠지 좀더 쾌적해 보이고, 여유로와 보인다.

도착한 전망대 매표소. 왠지 매표소 입구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친 사람들끼리 알 수 없는 경쟁심에 휘말려서

거의 뛰다시피 줄을 섰던 순간. 중국에서 온 단체 관광객도 많이 보였고 드문드문 한국어도 들렸지만 나는

아무것도 안 들리는 척 모른 척.

그리고 드디어 전망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줄에 합류, 옆에는 왠 전구처럼 똥그란 녀석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길래 이게 뭐하자는 플레인가 싶어 요모조모 뜯어봤더니, 아하. 숫자 101을 저렇게 형상화한 것.

그렇게 귀여운지는 모르겠는데, 그래도 101의 숫자를 갖고 참 솔직하게 이미지화했구나 하는 느낌은 강렬했다.

89층, 통유리로 된 사면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타이페이 시내의 전경, 당장 방금 다녀왔던 국부기념관의 모습이

조그맣게 보인다.

이제 막 어두워지려는 찰나, 점점이 이어지는 불들이 한순간 팟, 하고 일제히 빛나기 시작했다.

타이페이101 빌딩의 외관에 달려있던 경첩 같은 장식물들, 여기서 자세히 보니까 이렇게 생긴 거였다.

순식간에 어둑해지는 하늘 아래, 불룩 돋아난 실핏줄처럼 점점 도드라져 보이는 불빛들과 더불어 떠올라

보이는 타이페이의 야경, 창문에 거의 코를 박다시피 구경하고 있었는데 문득 눈에 들어온 경고 표지문.

101빌딩은 외관이 매끈하다기보다는 뭔가 울룩불룩, 재미난 모양새여서 그런지, 외벽 유리창에 반사되어

빛나는 주홍불빛들을 전망대에서 볼 수 있었다. 아직 완전 거뭇거뭇해지기 전, 어슴푸레하고 어설픈 분위기의

타이페이 시내를 보자니 마음이 싱숭생숭.

죽순의 모양을 형상화해 타이페이101을 지었다느니, 세계에서 가장 큰 무게중심추라느니, 건물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와 이야기들을 소개해둔 자료들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직접 그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무게중심추를 볼 수 있었는데, 88층과 89층에 걸쳐 건물 중심에 설치된

거대한 구가 노출되어 있는 것이었다. 101의 마스코트인 듯한 그 귀엽지 않은 녀석들, 잔뜩 놀라기만 한 녀석들

옆을 지나 허벅지만한 두께의 쇠줄이 팽팽히 내려뜨려진 공간에 들어섰다.

벽면에 적힌 수치들에 따르자면 이 무게중심추의 무게는 660톤, 직경은 5.5미터, 무식하도록 거대하고 무지하게

무거운 물건이다. 이 무게중심추 덕분에 500여미터에 이르는 건물이 외풍이나 외부 충격으로 흔들릴 때의

움직임을 40%까지 감소시킬 수 있다고 하니 대단하긴 하다.

그런 정보들이 적혀 있던 우글쭈글한 벽면, 좀체 한 큐에 찍히지 않는데다가 글자가 깨져보여서 이거 참 난감.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엘리베이터, 일분에 1010미터를 오르내리는 속도라니. 왠지 찰리와 초콜렛공장의

비밀에서 나오는 그 설탕 연료 엘리베이터처럼 사방으로 윙윙대며 날아다니다 끝내 하늘까지 펄펄 날아오를 듯.

89층에는 이 타이페이101 빌딩이 준공되고 완공되기까지의 사건들, 그리고 작년 12월 31일 밤 카운트다운을

헤아리던 그 때 이 건물에서부터 사방으로 터져나간 폭죽들의 화려한 영상을 보여주는 상영관이 조그맣게

있어서, 돌아다니다 지친 걸음을 잠시 쉬어갈 수 있게 해주었다.

다시 내려가는 길, 끝내 아쉬움을 못 버린 사람들의 시선은 창밖에 고정된 채 떨어질 줄을 모른다. (88층을 지나

내려가기 위한 엘리베이터를 찾아가는 길에는 구불구불, 최대한 동선을 늘여놓은 듯한 길을 따라 온갖 매장이

잔뜩 호객행위 중이었다. 중국인의 상술이란 역시 경탄할 만하다, 고 생각하기에 충분할 만큼.)

37초만에 5층에서 89층까지 도착했던 엘리베이터, 이번에 내려갈 때도 그만큼 속도를 내려나, 어쩜 더 빠르려나

싶어서 유심히 바라보고 있던 엘리베이터 내 설치된 그래픽.

5층에 내려서서 아까 올라갈 때 미처 찍지 못했던 기네스재단의 공인서부터 찾아 카메라를 들이댔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승객용 엘리베이터임을 인증하는 내용.

다시 1층으로 내려서서 새삼 올려다본 타이페이101의 천장. 쭉쭉 곧게 뻗은 기둥들도 시원하지만, 저 천장 너머

500여미터 상공까지 올라 101층을 차곡차곡 쌓아올렸을 타이페이101를 휘감고 윙윙거리는 거센 바람의 압력과

소음을 떠올리고는 까짓 것, 하고 말았다. 고개를 한껏 젖혀야 겨우 꼭대기에 시선을 안착시킬 수 있으려나.





그 높이가 무려 508미터. 버즈 칼리파(버즈 두바이)가 완공되기 전까지 세계 최고 높이의 빌딩으로 인증받던

타이페이101인지라 시내 곳곳에서 그 모습이 보인다. 하늘을 찌를 듯 하구나, 왠만한 빌딩은 아무리 바싹

눈앞에 땡겨놓고 원근법의 힘을 빌린다 하여도 딱히 상대가 안 된다.

길가를 다니는 타이완 현지인들이야 쏟아져내리는 햇살을 막느라 양산을 쓰고 다니느라 다른 곳에 시야를

두진 않겠지만, 마냥 모든 게 신기해서 두리번두리번대는 여행자의 마음으로는 뭔가 계속 낯설고 새롭고

재미난 것들을 찾아내려 눈이 벌개져 있는 거다.

오토바이가 유난히도 많은 타이페이 시내, 어디서든 신호만 걸리면 마치 모래와 자갈이 분별깔대기에서

분리되듯 오토바이가 맨 앞으로 몰려나온다. 그 뒤론 커다란 차들이 꼬리를 물고 서 있고. 멀리 하얀 햇살에

투명하게 탈색되어 버린 타이페이101의 윤곽.

어디쯤이던가, 도심을 걷다가 어느 순간 불쑥 눈앞에 나타나버린 101에 깜짝 놀랬었다.

다른 건물들이 그렇게 낮지도 않다. 우리나라 서울이랑 비슷하게 적당히 오래된 저층 건물들도 많고 새롭게

올라간 높고 두꺼운 건물들도 적당히 섞여 있지만, 단연 눈에 띄는 높이와 외관이다. 죽순의 형태를 형상화했단

말을 듣기 전에도 슬쩍 예감할 수 있었다.

단수이에 가는 길이었던가, 어딘가의 고가 위를 달리는 차에서도 멀찌감치 타이페이101의 우뚝 솟은 실루엣이

보였다. 다소 도도해 보이기도 하고, 조금은 외로워보이기도 하고.

타이페이101의 91층 전망대에서 야경을 보겠다며 나선 길, 조금씩 빌딩 앞으로 다가설수록 고개를 젖히는

각도가 가팔라졌다. 호오...서울의 트레이드타워나 63빌딩보다는 확실히, 월등히 높구나.

모양새도 꽤나 정묘하게 만들어진거 같다. 미끈하고 유려하게 뻗은 라인과 금빛 번쩍이는 외관을 자랑하는

63빌딩이나, 상승을 거듭하는 그래프 모양처럼 생긴 트레이드타워와는 또 다른 느낌이 있다. 우선 외관 자체에

돌출된 부분이나 장식물처럼 매달린 부분들이 있어서 그런 거 같고, 왠지 손으로 만질만질하면 그 오돌토돌한

골격의 촉감이 고스란히 전해질 거 같아서 그렇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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