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 가면 꼭 하루쯤을 할애해서 잔뜩 걸어보는 거리, 캣스트리트. 대략 소호거리와 만모우 사원이 있는 일대랄까.

 

이런 식으로 거리에까지 넘쳐나오는 중국의 전통 예술작품들이나 현대예술작품들이 전시된 갤러리들도 많고,

 

샵 하나를 둘러보는데 반나절이 훌쩍 넘어버리는 홈 인테리어 아이템샵인 '홈리스'도 있고.

 

 

 그리고 골목골목 재미있는 벽화와 풍경들을 숨기고 있기도 하다.

 

 

 

완탕면이라거나 이탈리안 레스토랑같은 이런저런 맛집들도 골목마다 숨기고 있고.

 

 

 만모우 사원에서 풍겨나오는 짙은 향내에 이끌려 사원 안을 둘러보기도 하고.

 

 이렇게 나선형으로 배배 꼬인 채 늘어뜨려진 향을 따라 시선을 뱅뱅 돌리다보면 왠지 어지러워져서 나오게 되는.

 

 

 

 특색있는 건물들, 그리고 건물 벽면을 꾸민 벽화와 디자인들.

 

그 풍경 속에서는 이렇게 모냥빠지게 입구에 찌그려 앉아있는 아이들조차 멋져 보인다.

 

 

그리고 과거 중국의 골동품들이라거나 모택동 시절의 공산당 유품들을 잔뜩 내걸고 있는 골목통까지.

 

재작년에 왔을 때는 여기서 새빨간 색으로 된 마오쩌둥의 어록집을 샀었는데, 영어와 중국어가 병기되어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사방으로 이어지는 오르막과 내리막, 제법 가파른 경사길들.

 

 

 

어느 집앞에 있던 우편함은 이렇게 파스텔톤으로 불규칙하게 배열된 게 꽤나 센스있다.

 

 

캣스트리트의 어느 길가를 지나다 뭔가가 눈에 밟혀 다시 돌아와본 곳에는, 정색하고 있는 여자 얼굴이 그려진

 

오토바이 헤드라이트가 방긋거리고 있었다.

 

 

 

홍콩섬 썽완 역에서부터 이어지는 거리, 캣스트리트를 지나 뒷길로 넘어들면 조금은 더 넓은 길, 그래봐야 왕복 2차선이


빠듯한 길이긴 하지만 헐리우드로드와  만모사원(문무묘)이 나타난다. 저 사다리같은 ladder road를 걸어올라가면 짠.

 

올라가는 길에 잠시 찻집에 들러 연꽃이 피어나는 차도 구경하고, 아무래도 홍콩은 종종 대만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만큼 유사한 점이 많다. 애프터눈티도 그렇고, 거리의 풍경이나 분위기, 길거리음식들도 그렇고.

 

사다리 길의 끝무렵, 허름한 건물들과 커다란 간판들 사이로 기와지붕이 얹힌 붉은, 퇴락한 전통건물이 한 채 보인다.

 

 

만모사원, 문무묘라고 읽히는 간판을 내건 이곳은 홍콩이 영국에 편입된 즈음, 1800년대 중반에 세워진 곳이라고 한다.

 

 

열성궁, 대만을 포함해서 중국의 도교 사원들은 으레 이런 느낌이다. 향과 시주를 받고 복을 내려줄 준비를 하고 있는

 

각분야 최고의 신들이 학업, 연애, 사업, 건강 등 파트를 나눠맡고 있달까. 덕분에 그리 크지 않은 사원 내부에는

 

향내가 진동을 하는가 하면 금세라도 사방으로 옮겨붙을 듯한 촛불이 탐욕스레 붉은 혀를 낼름거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믿을 만하고 흔들림없는 의지처를 찾는 사람들의 모은 손은, 간절한 뒷모습은 늘 맘을 흔들었다.

 

만모사원, 문무묘에 모셔진 신들의 유래나 계보야 워낙 엉망진창인 거 같긴 하지만 삼국지의 영웅 관우가 모셔져있는 건

 

그래도 좀 납득할 만 하다. 이야기에 따르자면 그야말로 문과 무를 겸비한 문무쌍전의 호걸 아닌가. 사진에 담자니

 

그 덥수룩한 수염이 너무 싸구려티 팍팍 나는 나일론실로 엉성하게 붙여뒀다는 티가 나서 말았지만.

 

사원에서 돌아나와 걷기 시작한 헐리우드 로드. '헐리우드'라는 이름이 대번에 미국의 그곳을 떠올리게 만들며 모종의

 

관계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게 만들지만 그런 건 아니란다. 오히려 이 곳의 지명이 그곳보다 먼저 붙었다고 하니깐.

 

앤티크샵이나 갤러리가 주르륵 이어지는 가운데 이쁜 까페, 레스토랑이 점점이 박힌 거리 어디쯤에서 아예

 

길거리에 그림을 걸어놓고 오가는 여행객들과 흥정을 하는 아저씨. 비단에 먹으로 그린 듯 한데, 촉감이 보들보들.

 

거리의 하늘을 꽉 막아설 만큼 무성하게 자라난 나무 한 그루. 아니, 한 그루라고 하기에는 뿌리와 줄기가 워낙

 

복잡하게 엉켜있어서 실제로 몇 그루인지 헤아리기도 힘들다. 마치 옛 사원을 무너뜨리고 우뚝 선 앙코르왓의

 

나무들을 보는 것 같을 만큼, 자칫 밋밋하고 범상해 보일 수 있는 거리 풍경을 사뭇 다르게 만들어준다.

 

 

거리 곳곳에 있는 갤러리들에 자유롭게 들어가서 구경을 하고 나오기도 하고, 이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와중에 발견한 재미있는 샵. 알고 보니 1호점, 2호점, 3호점이랄까, 근방에 세개의 샵이 모두 '홈리스'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고 있었는데 아이디어가 반짝거리는 인테리어 소품들, 가구들이 가득했다. 한참을 둘러보며 예상치 못한

 

디자인의 아이템들이 가진 예상치 못한 기능에 깜짝 놀래주며 쇼핑의 재미를 만끽. 

 

 

 

 

몇가지 아이템들을 사고 나서, 계산대에서 카드를 꺼내들고 사인을 하는데 펜이 꽂혀있는 장식대도 재미있다.

 

 

헐리우드 로드를 걷다 보니 캣스트리트와는 조금 구별되는 분위기가 있지 싶다. 캣스트리트가 인사동같은 느낌의,

 

싸구려 골동품을 허름하게 파는 느낌이라고 한다면 헐리우드 로드쪽은 그걸 '앤티크'라는 식으로 포장해서 조금더

 

세련되게 전시했거나 현대미술 갤러리들이 샤방하게 꾸며둔 느낌. 그래도 전반적인 분위기는 이런 식.

 

되돌아 썽완 역쪽으로 가는 길,  온통 벽면을 도배하다시 붉은 글씨로 굵게 쓰여진 저 광고판들이지만, 의외로

 

심플하면서도 명시성도 높고, 한자의 특성상 나름 압축적으로 홍보 기능도 잘 수행하고 있는 거 같다.

 

 

 

썽완 역 근처에는 도장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게 골목골목을 점령하고 있었다. 같은 동양 문화권인 우리네야 별로

 

신기할 것도 없는 도장이지만 서양의 시각에서라면 나름 저런 것도 기념품이 될 수도 있겠네 싶다.

 

 

 

 

 

* 이 포스팅의 목적 중 하나, 홍콩 찜사쪼이 해변을 따라 조성된 '스타의 거리Avenue of Stars'의 홍콩 영화배우들 중

 

한국인들이 알만한 스타들, 유덕화, 임청하, 홍금보, 성룡, 오우삼, 서극, 주윤발, 장국영, 주성치, 장만옥, 장백지, 양가휘,

 

곽부성, 여명 등의 손도장을 직접 가서 확인하는 수고를 덜 수 있도록 하는 것.

 

 

스타의 거리가 시작되는 즈음, 영화 필름을 옷 대신 걸치고 선 여신의 자태가 당당하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건 홍콩섬 완짜이와 센트럴의 개성있고 거침없는 고층빌딩의 스카이라인.

 

필름 롤의 형태로 된 금색 조형물이 길가에 세워져 있는가 하면,

 

큐사인을 위한 보드가 이 거리의 이름을 알려주고 있었다. 스타의 거리, Avenue of Stars.

 

바닥에 돈이라도 떨어뜨린 양 다들 바닥만 굽어보고 걸어가는 사람들, 그 틈에서 아예 철퍽 주저앉아 바닥을 짚은 사람도 많다.

 

어느 영화감독의 모습을 형상화한 듯, 메가폰을 쥐고 생생한 표정으로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눈빛에 힘이 실려있다.

 

 

아마도 청동으로 만들어진 듯한 카메라를 쥐고 있는 카메라감독의 손모양이나 표정도 생생한 편이고.

 

그리고 장백지. 그녀의 손은..작고 이쁘기도 하구나.

 

이소룡의 명판은 있지만, 아쉽게도 그의 손도장은 없다. 있을 리가 없나..어디라도 손도장 하나쯤 남아있을 법 한데.

 

성룡. 역시 그는 장난스럽게도 살짝 삐뚜름하게 양손을 짚었나보다.

 

게다가 이렇게 사인을 남겼는데, 마지막에 앙증맞은 하트 그림도 그렇지만 '성룡'이라는 한글도 눈에 들어온다.

 

아침나절이지만 뜨거운 햇살 때문에 사람들이 양산인지 우산인지를 전부 받쳐들고 걷고 있었다.

 

주윤발. 이 아저씨는 왜 손도장을 안 남겼을꼬.

 

유덕화. 꽤나 많은 여성팬들, 특히나 아주머니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서 쉽게 찾았다.

 

양조위. 그도 역시 양손을 살짝 어긋나게 짚고는 사인을 남겼다.

 

이소룡의 이미지하면 딱 떠오르는 그 포즈. 그대로 멈춰선 이소룡이 홍콩의 해안가를 지키는 중이다.

 

조명기사와 마이크 담당이 위치를 잡고서, 그 가운데쯤엔 의자가 하나 놓여있어서 꼬맹이들이 줄을 섰다.

 

오우삼. 배우가 아니라 감독이지만, 그의 이름은 헐리우드에서도 명성을 높인지 오래다.

 

곽부성. 다소 후줄근해 보이는 그의 입성은 도무지 왜 그가 인기있는지 알쏭달쏭하게 만들었지만 여하튼.

 

 

 

스테판 초우. Stephen Show. 누구인가 했다. 다름 아닌 주성치. 요조가 좋아하는 주성치, 아쉽게도 손도장이 없다.

 

Jet Li, 영어이름이 좀 만화 캐릭터 같은 게 이연걸의 이미지에도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진다. 그는 통배권을 시전하듯 손도장을 찍었을까.

 

그리고 여명. 아마도 내가 왔다갔다 스타의 거리를 왕복하는 동안 가장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갖고 기념사진을 찍어간 곳을

 

고르라면 여기가 아닐까. 특히나 아주머니 팬들이 꼭 한번씩은 이렇게 손이라도 맞대어 보고 자리를 뜨셨다.

 

그리고 장국영. 음..여전히 그가 자살한 곳에는 기일에 맞춰 하얀 국화가 소복하게 헌화된다고 한다.

 

그리고 서극. 한때 그의 무협영화를 빠짐없이 챙겨봤었는데.

 

그리고 놓칠 수 없는 배우, 임청하. 아아. 내 어렸을 적 그녀의 묘한 매력에 빠져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뷰잉 데크. 밤에 '심포니 오브 라이트'가 시작할 즈음인 8시경이면 발 디딜 틈조차 찾기 쉽지 않지만 지금은.

 

 

성룡과 홍금보의 손도장을 보고 환히 웃으며 기념촬영중인 사람들, 사실 저 손도장이 진짜 본인 거인지는 '신뢰'의 영역이다.

 

 

그리고 바닥에 박힌 채 하루하루 마모되어 가는 셀레브리티들의 손도장은 관심없이

 

그저 가족들과의 순간을 기록하고 기억하려는데 더욱 열심인 사람들. 사실 이 편이 훨씬 남는 게 많지 않을까.

 

(특정 스타의 열광적인 팬이 아니라면 말이다. 팬이라고 해도 온기조차 사그라든 손도장이 뭐...별 건가 싶기도 하고.)

 

 

 

그리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때 성화를 진짜 봉송하는데 쓰였던 것일까, 아님 그저 기념 조형물일까.

 

건너편 고층빌딩들을 압도하는 높이와 존재감으로 우뚝 섰다.

 

스타의 거리 끝까지 갔다가 다시 설렁설렁 돌아나오는 길, 시시각각 뜨거워지는 햇살에 익어간다는 느낌이 들 무렵

 

다행히도 스타의 거리 끄트머리에 있는 뷰잉 데크, 그리고 시계탑이 나타났다. 버블버블 게임에서 본 듯한 저 투명하고

 

동그란 유리막 안에 들어간 건 야간에 '심포니 오브 라이트'를 위한 조명 도구들.

 

 

스타의 거리 초입, '심포니 오브 라이트'의 뷰잉 데크, 시계탑, 그리고 스타 페리 선착장은 그냥 한 곳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 하다.

 

이제 스타 페리를 타고 홍콩섬으로 넘어가보려는 참인데, 글쎄, 홍콩 영화배우들에 굉장히 홀릭되어 있다거나 손도장을 꼭

 

맨눈으로 봐야겠다 하는 사람 아니라면 얼추 위의 사진들로 대리만족이 가능하지 않을까. 일정이 바쁘다면 이렇게 스킵하시길.

 

 

 

 

 뉴욕 출장에 이어 홍콩 출장을 다녀온 스스로에게, 아직 여름휴가도 가지 못하고 있는 스스로를 위해 마련한 조그만 선물.

 

썽완의 캣스트리트와 헐리우드스트리트를 돌아다니다가 찾아낸 볼거리로 가득한 샵, 홈리스Homeless에서

 

발견한 커프스버튼. 디자인 표준 컬러를 만들어내는 팬톤에서 커프스버튼도 만들 줄이야.

 

고른 색깔은 미모사색, 팬톤 컬러넘버로는 14-0848, 미모사색이다. 알고 보니 2009년 올해의 컬러로 선정되기도 했던

 

옐로우 계열의 미모사는 따뜻함과 안정감을 전해주는 색이라고. 열심히 하고 다녀야겠다.

 

 

그리고 이번엔 새빨강색의 책 한 권. 중국 본토로부터 홍콩으로 반출되어 싸구려 관광상품으로 팔려나가는

 

중국 공산당 관련 책자니 배지니 훈장 따위가 많다더니 정말이었다. 무려 후광이 빛나는 마오쩌둥 주석의 어록이다.

 

음..시대가 하 수상하니, 그냥 이렇게 중국어와 영어가 병기된 책을 통해 언어 공부를 하려 샀다고 해두자.

 

그리고 출장의 뒷끝을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건, 블러디 메리. 고작 한 시간의 시차밖에 없는 한국과 홍콩이었지만

 

출장을 다녀오고 나서 왠지 날카로워진 신경을 다독거려주는 데에는 역시 알콜 만한 것이 없다.

 

블러디 메리 믹스 5.5 vs 보드카 1 의 비율을 그대로 지키진 않았지만 입에 맞는 수준으로만 희석시키면 되는 거니깐.

 

약간의 후추를 더해도 맛있다고 하는데 그건 미처 생각지 못하고 한 잔을 금세 비워버렸다.

 

 

영화는 어떤 기술적 진보에 대한 '아티스트'의 반감과 편견이 끝내 녹아내리고 새롭게 진보한 '그릇'에 어울리는 형태의

 

'아트'를 다시 재개하는 것으로 끝난다. 소리가 지워진 영화세트장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표정과 몸짓으로 연기하던 그가

 

먼 길을 돌아 다시금 모두들 소리를 죽인 영화세트장으로 돌아가는 것, 그렇게 그가 발굴하고 영감을 건넸던 젊은

 

여배우와 경쾌하게 탭댄스를 추는 장면에서 구둣발을 어찌나 감각적으로 타닥탁탁 거리던지. 타닥탁탁. 그는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구둣발이 내는 소리를 살려내면서 유성영화의 가능성을 더욱 넓혀내는데 일조한 셈이다.

 

 

어쩌면 영화는, 2011년에 만들어진 무성영화인 이 영화는, 영화에 꼭 '소리'가 필요한지에 대해 새삼스레 확인해 보고,

 

영화 속 세계에 당연하게 포함된다고 생각했던 '소리'를 어떻게 해야 인상적으로, 인습적이지 않게 재발견할 수 있을지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거의 대부분의 장면에서 소리의 힘을 빌지 않고 표정과 몸짓과 최소한의 대사 텍스트로

 

스토리를 진행해 가다가 문득, 남자를 괴롭히거나 희롱하다가 결국엔 화해하는 '소리'가 드문드문 들릴 때마다 사운드가

 

지닌 나름의 강력한 표현력에 감탄하게 되는 거다. (그보다 무성영화의 섬세한 아름다움에 더욱 감탄했지만.)

 

 

영화에선 크게 두개의 갈등이 노정되고 있는 듯 하다. 새로운 기술적 발전과 그 결과물에 대한 시선의 문제에 더해,

 

'세단 지나간다니 똥차 빼주자'는 세대간의 문제랄까. 기술 혁신과 그로 인한 변화의 가능성이란 건, 반기는 사람에겐

 

세상이 확 바뀌고 나아지리라는 열광을, 시큰둥한 사람에겐 조잡하고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생겼다는 기피감과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곤 한다. 사진기술이 개발되거나 영화가 발명되거나, 영화에 소리가 들어가거나 혹은 3D기술이

 

생기거나, 아니면 스마트폰이 생기거나 따위에 대한 찬반. 그건 대체로 '구세대'와 '신세대'의 경계와 겹치곤 한다.

 

 

그렇지만 그건 '아티스트'에서 보여주듯, 어쩌면 '아티스트'라는 타이틀에서부터 웅변하듯, 그러한 기술을 활용하는

 

'사람이라는 요소'에 비기면 차라리 부차적인 문제인 거다. 기술 발전이 어떠한 방향으로 얼마나 혁신적인 가능성을

 

확장시킬지라도, 혹은 그것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식의 디그레이드가 될 여지가 크다 할지라도, 그걸 활용하고

 

가능성을 구현하고 제 몸에 맞는 옷으로 적응시키는 건 결국 인간. 그런 작업에 요하는 창의성과 창조성을 감안한다면

 

일종의 예술이라 해도 무방할 테니 결국 쉼없는 기술혁신기에 처한 인간은 모두 아티스트인지 모른다. 마치 그가

 

그녀와 함께 유성영화 속에서 구둣발을 타닥탁탁 하며, 목소리 대신 새로운 사운드를 들려주듯이.

 

 

그러거나 저러거나, 오랜만에 보는 무성영화-최근에 봤던 무성영화는 어느 따뜻한 나라로 떠나던 외국의 비행기 안에서

 

보았던 찰리채플린의 클래식이었다-는 역시나 물기를 함뿍 머금은 듯 부드럽고 촉촉한 화면의 느낌이라거나, 동작 하나

 

표정 하나 사려깊게 배치된 섬세한 세공이라거나, 그리고 무엇보다 자칫 자극적이고 번다하기 쉬운 소리의 쓰임없이도

 

보는 사람을 흡인하고 이야기의 끝까지 함께 달려가게 만드는 그 힘 같은 것들에 다시금 매혹되고 말았다. 그것만으로도

 

2011년에 만들어진 새삼스러운 무성영화, '아티스트'를 찾아볼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 참 쉽게 만들었구나 싶은 게 첫 소감.


요새 3D가 트렌드라니까 한번 오토바이 경주씬이나 괴물이 육박하는, 쪼끔 맛보여줄만한 장면 좀 넣어주고,

여름 휴가 혹은 방학을 맞이한 관객들 많을 테니 일단 안전하게 '액션 블록버스터' 간판 내걸어주고,

한국에서 좀체 안 된다던 SF 크리쳐 영화장르를 '괴물'이 깼으니 비슷한 수준에서 괴물 하나 빚어내고,

그리고 빵빵한 투자사와 배급사 확보해서 온동네 영화관 다 확보해냈으니 훨씬 유리한 출발선에 선 데다가,

마지막으로 개봉 일자나 개봉 과정에서의 막판 작업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노이즈마케팅까지.

아, 게다가 뻔뻔스럽게도 마지막에 슬쩍 우겨넣은 뜬금없는 7광구에 대한 '민족주의 마케팅'..역겹더라.


뭐 다 좋다. 이야기의 개연성이고 흡인력있는 전개고 나발이고 간에, 아마도 이 영화가 따르고 싶었던 듯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간지나는 껍데기만 따르고 싶었다 치더라도, 재미는 있어야 할 거 아니냐 말이다.

아니면 하다못해 봉준호의 '괴물' 때보다 발전한 CG기술이라도 현란하게 과시하던가, 뭐라도 스케일크게

뻥뻥 터뜨리던가. 처음부터 끝까지 하지원이 인상쓰고 뛰어다니는 것 밖에 보이지 않는데, 어렸을 적 봤던

'에일리언1'의 시고니 위버가 보여줬던 연기나 그 영화 자체의 아우라와는 전혀 비교조차 불가한 수준이다.


그래서, 아무래도 이 영화에 대해 뭐라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실수하는 것 같단 생각이 들면서도 뭔가

괘씸하다는 생각을 지울 길 없어 굳이 영화평을 적는 것. 비슷하게 생긴 괴물딱지가 나오는 것 빼고는

봉준호의 '괴물'이 도달했던 해석의 다양성이나 세상에 대한 은유 같은 깊이보다는 그저 이런 괴물 한번

만들어내서 뛰어다니게 할 수 있어, 를 과시하는데 그치는 '디워', 혹은 '용가리' 쪽에 가까운 얼개와 스토리다.

애초 그런 수준의 영화라고 딱 깨고 이야기를 했으면 괘씸하지나 않지, 무섭지도 긴장감 돋지도 독특하지도

않은 괴물이 뛰어다니는 걸 보며 뭔가 크게 낚였다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그나마 3D로 보지 않은 게 다행.


이런 영화, '피할 수 없는 놈과의 사투'가 시작된 게 아니니까 엔간하면 피해가는 게 좋겠다.






러닝타임이 무려 162분이던가, 두시간 사십여분짜리 영화란 걸 알고 대번에 툴툴거리고 말았다.

대체 요즘 영화들은 왜 이렇게 길게만 만드는 거야, 좀처럼 덜어낼 줄도 모르는 욕심쟁이들 같으니라구.

아무리 제임스 카메론이 감독의 전작들, 에이리언이니 타이타닉(195분)이니 전작들이 모두 러닝타임이 대체로 

길었다고는 해도, 또 그의 검증된 '능력'을 신뢰한다 해도 부담스러운 길이의 영화임에는 틀림없었다.


엊그제 영화를 보고 나서 뭔가 바로 리뷰를 쓰고 싶었다. 워낙 요새 개봉한 영화 가운데서 압도적이고 독보적인

위상을 점하고 있는데다가, 대체로 영화에 대한 상찬 일색이었던 판이어서 나도 뭔가 말을 보태 그 '아바타

신드롬(?)'이라 할 만한 것에 묻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달까. 그런데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무엇을 딱히 짚어서 이야기할 만한 건더기를 결국 못 찾고 말았다. (사실은 이 영화에 대해

새로운 영화적 가능성을 발견하니 어쩌니 말은 많지만, 결국은 '현질'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굉장히 잘 만들어진 영화다. 카메론 감독이 공들여 묘사해낸 외계 행성의 비쥬얼은 디테일한 부분까지 황홀할

정도로 환상적이었고 전투신 등은 박진감 넘쳤으며, 스토리 역시 길고 긴 러닝타임이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세련되고 탄탄했지만, 무엇보다 무척이나 재미있는 영화였다는 점은 틀림이 없다. 비쥬얼과 스토리 모두

빠짐없이 구비한 데다가 명감독의 능력까지 더해 아주 재미있는 영화가 된 셈이다.


그런데 사실 하나하나 되짚어 보면, 비쥬얼이나 이야기 모두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기시감을 불러 일으킨다.

비쥬얼만 따져보자면 공중에 떠있는 '할렐루야 산'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천공의 성 라퓨타'나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몇 점을 그대로 영화화해 놓은 듯한 느낌이었고, 공중 전투신은 스타워즈에서 보았던 그것과

비슷한 느낌을 자아냈다. 외계 행성에 있던 '생명수'의 이미지라거나 그들의 '자연친화'적인 삶의 이미지 역시

어디에선가 여러번 반복되어 나타났던 그런 전형적인 '헐리우드식 친생태 유토피아'의 모습인 거다. 딱 잘라

말하자면 적잖이 진부한 비쥬얼이란 거다. 딱히 새롭게 상상력을 자극한다거나 전혀 참신하고 새로운 모습을

창조하지는 않았다고 생각된다.


스토리 역시 마찬가지다. '아바타'라는 존재를 통해 지구인과 외계인의 존재를 매개한다는, 그리고 결국 어떤

육체에 실려있을 때가 자신인지에 대한 혼란스러움은 일견 참신해 보인다. 그렇지만 매트릭스 이후, (사실은

'13층'이란 영화 이후) 모든 SF가 다루고 있는 건 일종의 탈근대적인 자아 정체성 찾기의 문제다.

"나는 누구인가", "나를 나로서 규정짓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마주한 시공간이 현실/진실일까" 따위의 철학적

문제, 동양적으로는 일종의 '호접몽'을 제기하는 건 이미 답도 없고 진부하기만 한 관념적 유희가 되어버렸을

정도다. 거기서 더 나아가려는 영화적 시도들이 있고, 실제 그런 영화들이 개봉되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이제와

또다시 '이 몸이 정말 나인가 저 몸이 정말 나인가' 같은 류의 화두를 꺼내다니 조금 아쉽다. 물론, 영리하게도

감독은 이런 난해하고 오래묵은 문제를 파고들지도, 치열하게 대면하지도 않는다. 단지 영화를 맛깔나게 하는

하나의 씨즈닝처럼 살짝 얹어놓을 뿐.


결국 영화는 종을 넘어선 사랑이야기다. 생태에 대한 이야기, 인류의 탐욕에 대한 이야기, 인간적 신뢰와

휴머니즘의 이야기, 혹은 지구적 차원에 빗대어 선진국 대 제3세계 간의 갈등이야기 등은 하나의 양념이나

데코레이션처럼 영화를 풍성하게 하는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카메론

감독이 정말 '나비'족의 생태철학과 생명존중문화를 중요한 주제로 여겼다고 생각한다면 몇 가지 꼭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적장의 가슴에 화살을 두 발씩이나 박아넣던 여자가, 처음 등장할 때엔 어쩔 수 없이 생명을 해치는 것에 대한

괴로움과 죄책감을 고스란히 간직했던 그 여자라는 걸 기억하는지. 생명을 최대한 불필요한 괴로움없이

사그라뜨리려던 건 '나비'족의 어른이 되기 위한 요건이기도 했다. 이제 그녀는 '증오'와 '분노'를 배운 셈이다.

또, 마지막 장면에 '나비'족이 포로들을 지구로 돌려보내던 장면에서 지구인들의 무기로 무장한 장면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제 그들은 지구인의 대량살상무기로 무장한 채, 지구인들의 또다른 침공을 대비하거나 혹은

자신들끼리 전쟁을 벌이게 될 거다. 그들이 지구인들에 비해 '야만'이었던 혹은 전혀 다른 종류의 '인류'였던,

이제 그들도 오염되기 시작하는 건 아닐까.


뭐, 심각하게 따지고 보자면 그런 거고, 역시 이 영화는 잘 만들어진 오락영화로 보아야 할 거 같다. 그다지

새롭거나 실험적인 내용은 하나도 없지만, 이미 오락성이 검증된 몇 가지 이야기와 소재들을 잘 버무려서

만들어낸 전형적인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랄까. 어쨌건 그 스펙터클함은 영화관에서 봐야 제 맛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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