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마음자리 곁에서 멀리 떠나있는 가족, 밥벌이용 밥통 이외엔 공유하지 않는 직장 동료들만 있다면 더더욱.


한규(송강호)가 그렇다.

그에게는 '빨갱이 사냥'하는 국정원 대공부서 일이나 '동남아 신부 사냥'하는 흥신소 일이나 별반 '밥통' 이외의

의미는 담기지 않았다. '국민들을 발뻗고 자게 한다느니' 따위의 말이야, '가정의 행복을 되찾아준다'는 명분과

똑같이 속편한 자기암시거나 위무일 뿐 그저 그는 딸내미 집 한 채 사줄 돈만 모을 수 있으면 족하다.


그런 한규라지만, 울리지도 않은 전화에 대고 살갑게 딸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거다. 그는 결국, 외롭다.


지원(강동원) 역시 마찬가지다.

국정원에서 정리해고당한 한규처럼, 지원 역시 작전 실패로 배신의 낙인을 찍힌 채 '조국'으로부터 내쳐진다.

사실 '장군님'에 대한 그의 사상과 정조가 얼마나 투철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를 움직이던 힘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국에 돌아가겠다는 일념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내와 딸이 있는 곳, 조국.


멀리 떨어진 가족,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해 6년여 시간을 기다렸지만 참 쉽지 않다.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이란 때론, 의심스럽고 위험해보이기만 하는 낯선 남자보다 못해 보일 때도 있는 거다.


그래서 그들은 기대어 선다. 사람 둘이 서로 기대어 선 사람人의 형상에 걸맞도록, 그렇게 외로움을 삭인다.

가족으로부터, 조직으로부터, 남과 북 두 강력한 국가로부터 내쳐졌거나 강제적으로 떨어져나간 채

외롭던 그들이다. (국가 자체가 거대한 병영인 북한에서 떨어져 나간 지원은 말할 것도 없고, 국정원이라는

국가 핵심조직에서 튕겨나간 한규가 서울이 아닌 지방을 전전하며 '외국인'신부들을 잡는다는 건 의미심장한

대목이 아닐까.)


쉽지 않았다. 한 명은 명색이 전직 국정원 직원-게다가 '간첩신고'의 의무와 상금 수령의 권리를 가진 대한민국

국민-인 데다가, 다른 한 명은 최고도의 살상기술을 익혔을 남파 간첩이다. 각자의 마음속에 내면화되어 있을

반공회로와 반자본주의 적개심과 공포심은 어찌 다독거린다 하더라도, 상황과 조직이 내버려두지 않는다.

남한은 북한의 핵을 부르고, 북한은 핵으로 으름장을 놓고, 폐쇄 회로 속에서 꼬리를 무는 남북, 북남 두 국가의

대치 상황과 함께 '맥'장군님과 '김'장군님을 추앙하는 사람들의 득달같은 기세는 언제든 파국을 부를 수 있다.

그들의 '의리'는 통일보다 어렵다.


그렇지만 외로움이 해냈다. 인간이 외롭단 건, 때로 큰 일을 해낼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하나보다. 빨갱이를 잡고

외국인신부에 수갑채우던 그가 '인간적으로' 바뀌었고, 웃음조차 사치인 양 냉막하고 까칠하던 그가 어느새

뜨거워졌다. 그런 그들의 관계가 굉장히 멋진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마침 두 사람 다 외롭지 않았다면 시작조차

되지 못했을 그런 드라마, 영화가 마치고 나니 가슴이 따뜻해졌다. 



p.s. 굉장한 스포일러 하나, 이 영화는 해피 엔딩이다. 이 척박한 세상에 그들 둘만이라도 해피해질 수 있다니,

가슴이 더 훈훈해졌던 이유 중 하나. 둘 중 하나라도 죽었으면 시니컬함이 더욱 심해졌을지도.


p.s.2. 그런 의미의 애국심이면 그래도 참아주고 인정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설핏 들었다. 지원이 그의 나라,

북한에 쏟는 헌신과 애정이 그렇듯,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게 각별한 사람들이 있는 땅이어서 사랑하고 아끼는

거라면 좋겠다는 생각. 그건 다른 곳과의 경쟁심이나 우월감을 수반하지 않는 '나라 사랑'을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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