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코네의 어느 료칸, 잠깐 들러서 온천욕만 즐기다 갈 수도 있고 혹은 아예 숙박을 하며

온천을 즐길 수도 있는 곳이라는데, 도쿄에서 꽤나 떨어진 하코네까지 와서 하루만에

돌아가거나 료칸 대신 일반 숙소에 머무는 건 좀 아닌 거다. 분명히 싼 가격은 아니지만

온천의 질이나 시설들, 그리고 숙박비용에 포함된 저녁식사와 아침식사가 워낙 훌륭하니

절대 강추. (훌륭한 저녁식사에 대해서는 하코네, 어느 료칸의 감동적인 저녁식사.)

료칸 입구 신발장에 정리되어 있던 색색의 게다들. 아무거나 본인이 원하는 걸 골라서 신고 다닐수

있었는데, 따그닥 따그닥 소리가 재미있어서 신고 나가선 가볍게 동네도 한바퀴 돌아봤다. 생각보다

굽이 높고 발 앞굽과 뒷굽사이 간격도 좁아서 뒤뚱뒤뚱, 여자들 킬힐 신음 이렇지 않을까 싶은

느낌으로 신발 위에 올라타서 걷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던.

삼층짜리 료칸 건물 옆에는 정기적으로 하코네 역과 료칸 사이를 오가며 손님들을 옮기는

고풍스런 수송차량이 한대 서 있었다. 버스라기에도 뭐하고, 승용차라기에도 뭐한 클래식한

느낌이 물씬한 차. 조금 일찍 시간을 맞췄으면 이 차를 타고 편하게 료칸에 도착했을 텐데,

돌아다니다가 늦어서 택시를 타고 손짓발짓으로 설명해서 들어왔댔다.

료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던 신사. 밤이라 많이 어둑어둑해지고 나니 왠지 조금

으스스한 느낌이 들어서 안으로 들어가보려다가 포기하고, 여기서 짧은 게다 산책은 끝.

복던져주는 고양이야 뭐, 한국에도 이미 워낙 많이 퍼진 일식 밥집과 술집들에서 익숙하지만

이렇게 천으로 만들어진 건 못봤던 거 같다. 도자기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과는 달리

좀더 따뜻한 느낌이 배어나오는 고양이다.

다다미가 깔려있는 나무바닥은 반질반질 윤이 나서 천장의 형광등 불빛을 고스란히 되비치고

있었고, 나무색이 가득한 안온한 일층 로비의 분위기는 이층, 삼층의 객실과 식당 같은 곳까지

전부 이어져 고급스럽고 편안한 기분을 주었다.

한쪽에는 이렇게 유카타를 진열해놓기도 하고, 회의나 기타 목적으로 쓸 수 있는 방도

마련해 두었다. 여럿이면 오면 저런데 둘러앉아 보드게임을 하는 것도 괜찮을 듯.ㅎ

남녀 욕탕으로 들어가는 앞에는 이런 100엔, 200엔짜리 뽑기 기계도 놓여있었다. 아마도

아이들의 마음을 자극하려는 용도 아닐까 싶지만 또 잘 살펴보면 하코네의 특색이 담긴

뭔가를 뽑을 수 있는 것 같다. 어른들도 기념품삼아 한번 돌려봄직 하겠네, 싶어졌다.

고양이 인형이니 클래식한 돌림식 전화기니 료칸 복도나 벽면을 꾸미고 있는 것들도 하나하나

눈길을 붙잡아 두는 것들이었다. 미처 사진은 못 찍었지만, 밤새도록 울어대는 귀뚜라미들

소리가 어디선가 녹음해둔 걸 무한 재생시키는 건가 했는데 알고 보니 귀뚜라미들을 잡아서

기르는 통 안에서 '쌩 레알'로 난 거라는 것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고양이 문양이 가득한 벽면도 있고. 유카타를 입은 내 모습도 비쳐보이고.

여기저기에 숨어있는 고양이 인형들, 어디서 요런 귀여운 것들만 모아뒀는지, 장식품들

하나하나가 다 허투루 만들어진 싸구려같진 않은데.

그리고 아마도 이 토끼는 몸 속에서 양초나 향을 태우는 용도로 쓰이는 거 아닐까. 아랫배 쪽에

구멍이 뽕뽕 뚫려있는 걸 보면 저기서 뭔가 연기가 송송 나오던 불빛이 새어나오던.

이제 방 내부로. 간결한 수납공간과 거울이 붙어있고, 역시 하얀 벽지에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뼈대가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휴지 케이스도 '깔맞춤'해서 은은하고 차분한 갈빛으로

씌워두었고.

이런 디테일에 대한 세심함, 형광등 스위치까지도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

나무결 분위기가 묻어나는 걸로 챙겨서 설치하는 점에는 정말 감탄할 수 밖에.

검은색 흰색 두 가지 종류의 면봉과 솜까지도 넉넉히 구비해 두고,

반지나 귀걸이니, 액세서리들을 따로 챙겨둘 수 있는 이런 접시도 있어 빼두고 다시 찾기도

쉬웠다. 이런 소소한 것들이 모여서 료칸의 전체 분위기를 만들고 더할 나위없는 흡족한

기분을 느끼도록 해주는 거 같다.

그리고 희뿌옇게 동이 터오던 아침, 간단하게 온천욕을 마치고 전날 저녁식사를 맛있게 했던

그 식당으로 다시 내려갔다. 아침식사는 또 어떨지, 간소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기대할 만하지

않을까 싶어서 제법 설레는 마음으로.

확실히 저녁 메뉴와는 많이 달랐다. 일단 기본 세팅부터가, 젓가락도 그렇고.

우선 상큼한 냉국과 크리미한 계란찜으로 아직 깨어나지 못한 식욕을 좀 다독다독 일으켜세우고.

생선튀김이 한마리 나오고 끈적끈적한 마가 데코레이션처럼 살짜기 놓였다.

커다란 밥통에서 이런 이쁜 공기에 밥을 퍼서 조금씩 생선이랑 먹기 시작했더니 또 금세

식욕이 깨어났다. 온천을 하고 나니 아무래도 금방 배고파지는 거 같기도 하고, 식욕도

빨리 돌아오는 거 같고.

유부피에 쌓인 어묵이 오드득오드득, 찰지고 탱탱한 식감이다. 국물도 시원하니 좋았고.

일본식 미소국은 확실히 우리네 된장국이랑은 다르다. 좀더 맑고 간질간질한 느낌이랄까,

우리네 된장국이 좀 텁텁하고 맛이 진한 것에 비하면 그런 거 같다.

디저트, 오미자 한 알이 폭 박혀있는 푸딩이 나왔다. 이쯤되면 정말 제대로 나온 아침식사다.

아침부터 생선 한마리를 다 먹고, 큰 밥통의 밥을 또 거진 다 먹고, 이런저런 사이드디쉬의

음식들도 다 먹고 후식까지 먹었으니. 여행다니며 아침을 든든히 먹는 게 꽤나 중요한데

이 정도면 든든한 정도가 아니라 점심을 한참 늦게 먹어도 될 듯.

그러고 방으로 돌아가니 간식으로 들어왔던 검정깨 푸딩, 그리고 약간의 과일이 있어서

마저 또 다 먹고서 그야말로 정말 든든해져서, 1박 2일 하코네 료칸에서의 온천여행을

마치고 도쿄로 돌아갈 준비는 끝~*




아침 일찍 도쿄를 출발해서 전철, 산악열차, 유람선, 곤돌라 따위를 타며 하코네를 돌아보고

어둑어둑해질 무렵 도착한 어느 료칸, 예약자명을 대고 입실하고 나니 푸짐함 저녁식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갈한 분위기의 다다미식당엔 발이 내려뜨려져 있고 마치 명패를

붙여놓듯 각 좌석마다 료칸 투숙객들의 이름을 붙여두었고, 그쪽으로 인도해주던 아가씨는

영어가 조금 짧았지만 생글거리는 미소와 친절한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젓가락을 받치고 있는 토끼도 귀엽지만 젓가락을 묶어둔 일본전통종이 재질의 띠지도

고급스럽다. 사실 토끼 표정은 살짝 '자살토끼'가 떠오르기도 했지만 어쨌든.

내가 여태 봐왔던 수많은 물수건 중에서 가히 최고라 할 만한 걸 여기서 만났다고나 할까.

검은 바탕에 알록달록 큼직한 꽃문양이 그려져 있는 수건이었는데, 면이 헤지지 않아

털도 두툼하니 포실포실한 느낌이 들었고 따뜻하면서 깔끔한 느낌이 좋았다. 이후로

나오게 될 음식들의 질과 맛을 기대하게 만들던 그럴듯한 '에피타이저'랄까.

이내 내온 음식들, 그러고 보니 작년 가을에 갔던 이 료칸에서 은근히 토끼 장식들을

많이 보았던 것 같다. 씨알굵은 밤이니 참치니 생선알이니 따위가 금빛 접시에 담겨나왔고,

그 위에는 하얀 무로 깎여진 눈빨간 토끼 한마리가 폴짝 뛰어올랐다.

금빛 접시에 올라있던 시원한 음료랄까, 냉국이랄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탱글탱글한

알맹이가 알맹이가 자작한 국물에 가득 담겨 있었다.

보기만 해도 탱글탱글한 느낌이 잔뜩 전해지는 노란색 묵, 위에 살짝 얹힌 와사비와

초록색 별모양이 더욱 식욕을 자극했다. 단순히 미각적인 기대뿐만이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날 먹어'라고 맹렬하게 유혹하는 음식들.

이제 주메뉴, 하코네 멧돼지고기 샤브샤브. 커다란 접시에 야채도 제법 풍성하게 나왔고,

깔끔하게 썰린 돼지고기들이 부채처럼 펼쳐져 있었다.

전기온열기 위에 등나무로 만들어진 소쿠리를 올리고 기름종이를 받치고는 육수를 부었다.

그렇게 한겹의 얇은 종이 위에서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는 돼지고기와 야채들, 불이 거의

손실없이 그대로 전달되어선지 순식간이었다. 야채들은 거의 데친다는 느낌으로 끓는 물에

넣었다가 바로 꺼내어 먹기 시작했고, 돼지고기는 조금은 더 익혀서.

샤브샤브를 먹는 새 반찬들이 나왔다. 반찬이랄까, 사이드디쉬랄까. 반찬이라기엔 하나하나

단품으로도 너무 훌륭한 것들이어서, 또 딱히 밥이랑 먹는 것들도 아니어서.

밥이 그리 작지 않은 통에 담겨나왔고,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것도 잠시, 어느새

바닥을 보인 채 나뒹굴고 만 밥통. 하루종일 하코네 산간을 돌아다니느라 적잖이 지치고

배고팠던 상황이라곤 해도, 굉장히 맛있게 많이 먹었던 저녁식사였다.

그렇게 야채 한 점 남기지 않고 완전히 싹 비어버린 샤브샤브 접시도 나뒹굴고. 남은 건

애초 서빙될 때 꽂혀 왔던 '하코네멧돼지'가 꿀꿀거리는 화살표 하나.

그리고 디저트, 소복하니 상큼한 과일샤벳과 촉촉한 치즈케잌, 그리고 말차 냄새가 진하게 나는

모찌 두조각에 커피가 나왔다. 정말 디저트까지 한치의 허술함이 없는 훌륭한 만찬이구나, 싶은

느낌이 팍팍 들게 만들던 것들. 새삼 사진을 정리하며 다시 보아도 참...언제고 다시 한번

료칸의 굉장했던 온천욕 시설을 만끽하고 나서 저 만찬을 맛보고 싶은 맘이 무럭무럭.

소소한 디테일도 정겹기 그지없던 료칸의 식당 액세서리들. 젓가락을 받쳐주던 토끼들도

그렇지만, 이쑤시개를 담아두고 있던 저 쇼핑백 모양의 통도 참. 정말 종이쇼핑백을

펼쳐놓은 채인 양 옆에 라인도 들어가있을만큼 디테일하던.







신주쿠에서 약 한시간 반 오다큐선 급행열차를 타고 도착한 하코네, 질좋은 온천과 일본식 전통 료칸으로 이름을

떨치는 곳이지만 등산열차, 케이블카, 로프웨이, 유람선 등등을 타며 한바퀴 돌아볼 수 있는 그 짙푸른 녹색의

자연이 품고 있는 미술관이나 아기자기한 사원들도 무지하게 매력적인, 어찌됐건 절대 놓칠 수 없는 곳이다.

그 곳 중에서도 '족탕'을 품고 있는 야외 정원으로 기억에 남는 '조각의 숲 미술관'.

등산열차로 '초코쿠노모리'역에 하차하고 백걸음도 채 안 걸어 매표소 입구에 도착했다. 일반 1600엔, 그렇게

싸다고는 할 수 없는 입장료인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굳이 하코네에 와서 여길 돌아보고 싶었던 이유는 딱 두개.

피카소 작품이 많이 소장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족탕'이 있어 지친 발을 잠시 쉬어갈 수 있겠다는 나름의 안배.

입장권을 끊고 들어서는 길은 에스컬레이터로 조금 내려가는 길, 하코네 자체가 산에 기대어 경사가 급격한

동네이기도 하니까 미술관도 너른 부지를 마련하려면 좀 아랫턱으로 내려가야 하나보다.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와 굴다리를 지나면, 시꺼먼 그늘과 새하얀 햇살이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는 풍경. 너무

갑작스레 공기가 바뀌고 밝기가 바뀌니까 약간 어리버리해진다. 이상한 나라에 끌려들어온 앨리스의 느낌이랄까.

사실 '이상한 나라'라고 번역해 놓은 건 어폐가 있다. 'Wonderland', 놀라운 나라라면 모를까, 이상하다는 표현은

정상적인 것은 이런 거라는 전제가 숨어있는 셈이다. 사람 열명쯤 덮고 잘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계란 후라이들이

공원 곳곳에 이렇게 철푸덕 떨어져있다면, 이상한 나라일까 놀라운 나라일까.

커다란 머리가 분수대에 뉘어져 있기도 했다, 온통 싱그러운 초록색의 가짜 잎사귀 화환을 한 채.

조금 올라서는 계단길, 뱀이 몸을 구불거리며 나아가듯 유연하고 정연하게 구불대는 계단 손잡이가 재밌다.

그리고 빨주노초파남보의 프레임들이 네모난 무지개를 만들고 있기도 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어서

보는 각도에 따라 완전히 중첩되기도, 혹은 약간씩 서로의 몸을 잡아먹으면서.

네모난 무지개 옆으로는 커다란 몸집의 소가 커다랗게 불어난 젖통을 드러낸 채 띠굴띠굴.

어른 대표선수의 목을 두 발로 힘껏 조르고 있는 아이 대표선수. 불끈 튀어나온 어른 선수의 두 눈이 극렬한

고통을 맛보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는 듯.
꽤나 커다란 '조각의 숲', 색색깔의 목마도 품고 있고, 너트처럼 생긴 조형물들도 여기저기 흐트러진 듯

설치되어 있고. 그렇게 애기들이나 아이들이 만지고 타고 기어들어가며 놀이터처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어느 사거리길 한가운데, 커다랗고 반짝거리는 금속공이 매달려있었다. 내가 지나온 뒷길을 계속 비쳐주던

금속공이었지만 그 아랫춤까지 바싹 다가가서 올려다보니 사거리길 사방을 모두 펼쳐내어 준다.

조각의 숲 미술관에서 중심부에 해당하는 건 바로 이 별 모양의 정원, 미술관 입구에는 챙긴 지도의 그림으로

봤을 때는 그냥 별 모양으로 다듬어놓은 정원이겠거니 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저렇게 깊숙이 차라리 통로라고

해야할 만큼 미로처럼 길을 내놓았다.

입구도 있어서 정원 안으로 들어가 거닐어 볼 수도 있었는데, 이건 정원의 꽃들을 굽어보며 맘편히 산책하는

느낌이 아니라, 어딘가에 숨어있는 치즈를 찾아 헤매며 '내 치즈는 누가 옮겼을까' 정도를 중얼거릴 법한

그런 미로에서 헤메이는 느낌이다.

별 모양의 정원 옆에는 또, 통나무들을 얼기설기 이어만든 커다란 둥지 같은 것이 있었다. 저건 뭐지, 뭔가

얼음덩어리를 쌓아서 만든 이글루를 흉내낸 통나무 버전 이글루같기도 하고, 새들이 지푸라기를 물고 와서

짓는 둥지를 인간 사이즈에 맞춰서 지어놓은 것 같기도 하고.

아이들이 완전 좋아라 하던, 내부는 마치 에일리언이 잔뜩 알을 까놓은 오염된 우주선의 느낌. 여기저기

축축 늘어진 에일리언 알같은 놀이공들을 향해 원투 잽을 날리는 여자아이의 스텝이며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제법 짙은 그늘을 드리운 이 곳에서 어른들은 조금 쉬고, 아이들은 권투를 익히고 있었다.

그야말로 얼기설기, 이런 거 설계하기도 쉽지 않았겠다 싶다. 뭔가 나름의 규칙이 있었을 테고 그것만 알면

지어나가기는 생각보다 수월할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통나무를 이런 식으로 쌓아올려서 뭔가를 커다랗게

지어서 사람들을 들여보내 놀게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예전에 다방에서 하릴없이 쌓아올렸다는 육각성냥갑 속

성냥들의 탑쌓기와는 차원이 다른 거다.

그리고 피카소. 이 곳에서 피카소 관은 마치 가장 소중한 것을 깊숙이 숨겨놓듯 미술관 맨 안쪽에 위치해 있다.

피카소의 드로잉, 조각, 도예 같은 작품들 300여점이 소장되어 있는 이 곳에 가까이 다가가니 뭐랄까, 명당의

느낌. 사방을 산들이 삐쭉삐쭉 호위하며 에워싸고 있고, 미술관 전체 부지를 출렁이던 구릉도 피카소 관 앞에서

잘 다려진 와이셔츠처럼 판판하게 펼쳐졌다.

들어가는 길, 이미 나는 무지개가 뜬 아래 귀여운 우산이 장식되어 있는 우산꽂이에서부터 감탄하고 말았다.

내부는 사진촬영금지, 그래도 2층 전시관으로 올라가는 길에 푸르스름하게 정돈된 햇살을 내어놓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너무 이뻐서 한 장 찍고 말았다.

피카소 관에서 나오니 바로 앞에 있는 건 '심포니 조각'. 저 커다란 탑 하나가 고스란히 작품인데 내부로

들어가면 타워를 에워싼 스테인드글라스 조각으로부터 번져들어오는 빛깔의 향연에 감탄하고 만다.

그리고 바로 그 탑을 바라보며 쉴 수 있는 위치, 그곳이 바로 그토록 궁금해 마지 않던 '족탕'이 있는 곳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맨발벗은 두 발을 탕에 담근 채 앉아서 쉬고 있었지만, 그래도 드문드문 빈 자리가 많아

쉽게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양말을 벗고 발을 살짝 물에 담궜더니, 너무 뜨겁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은 그런 온도다. 따스하게 물이 발을

보듬어주는 정도의 온도. 뒷목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발끝에서부터 찌릿찌릿 전해졌다. 십여분 앉아서 앞의

미술품들도 하나하나 눈으로 좇아보고 주위 여행자들도 구경하다 보니 금세 땀도 식어버리고 완전 기운을

회복해서 벌떡 일어날 수 있었다. 정말 강추. 야외 족탕을, 이런 야외 미술관을 거닐다가 중간쯤 잠시 쉬며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건 흔치 않은 데다가 굉장히 절실하기도 한 경험.

어떻게 보자면 서울에 있는 올림픽공원이랑 비슷하기도 하다. 자유로이 들어갈 수 있는 잔디밭에 심심치 않게

세워져 있는 온갖 예술품들, 어렸을 적 올림픽 공원에 소풍을 가고 사생대회를 가고 백일장을 가고 또 소풍을

가고 했을 때에는 '출입금지' 표지판이 있거나 말거나 잔디밭 깊숙이 들어가서 조형물들을 막 타고 놀고

그랬었는데. 이제는 저런 벤치에 앉아 조금은 차분하게 쉬고 싶은 맘이 더 커져버렸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풀밭에 뒹굴고 있는 조각 사람을 보면 괜히 나도 같이 옆에 가서 똑같은 자세로 엎드리고

싶고, 그게 안된다면 이렇게 똥침이라도 놔주고 싶고. 아직은 그런 맘이 욱씬욱씬.

앗. 이 녀석은 현대미술관에서도 봤었는데, 그때 설명해주던 도슨트가 굉장히 비싼 작품이라며 무지무지 뿌듯해

하던 게 기억에 남아있다. 거대한 신체, 어딘지 일그러진 채 뮐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떠올리게 만들던 그것.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뮐렌도르프의 비너스가 현대 사회에 살면서 힐을 신고 핸드백을 든 느낌.

숲 가장자리에 슬어있는 벌레들 알뭉치 같기도 하고, 칭칭 감긴 거미줄 같기도 한 이것, 완전 아이들이 좋아죽는

또다른 놀이 공간이다. 어렸을 적 꿈꿔보던 그런 스릴넘치고 아드레날린 쭉쭉 분비되는, 좁은 통로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며 불쑥불쑥 예기치 않은 곳에서 고개를 내미는 그런 반투명한 공간.

어느새 잔뜩 커져버린 내 몸뚱이에는 가혹하게 작은 구멍과 통로 공간을 원망하다가, 사실은 어느새 저런 곳에

들어가 와와 소리지르며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기엔 '쪽팔림'을 알아버린 스스로를 원망하다가, 옆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우리, 제로나 할까.

그렇지만 난 군대도 현역으로 제대한 신체건강하고 정신멀쩡한 이땅의 성인남성. 얼굴 따위 붙어있지도 않은

두 팔모가지가 권해오는 제로 게임보다는 이런 남녀 신체의 향연이 훨씬 좋단 말이다. 와우.

삼각대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다가, 문득 삼각대 다리 한쪽에 꽃대궁이가 낑겨 있는 걸 발견하고 깜짝 놀랬다.

어디서부터 따라나섰는지 모르겠지만 새하얀 꽃잎의 부드러운 색감도 그렇고 나풀거리는 모양새도 그렇고

너무 청초해 보인다.

돌아나오는 길, 그래, 아까는 오른쪽의 좀더 각진 문으로 이 '조각의 숲 미술관'에 들어왔댔다. 이번에 나가는

문은 좀더 둥그렇고 좁은 문. 들어오는 문과 나오는 문이 같을 필요도, 그 모양이 같아야 한다는 법도 없는데

이런 식으로 입구와 출구가 다른 것도, 모양새가 다른 것도 신선하기만 하다.

독일의 캐릭터던가, 왜 그 엑스자 모양의 입을 가진 과묵한 토끼인형 미피(Miffy)전도 특별전의 형식으로

하고 있었다.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옆에서 방문자들을 배웅해주던 스탠드로 변신한 미피. 참 뭐랄까, 끝까지

재미있게 해주는구나 싶었다.

* '조각의 숲 미술관' 지도.




@ 도쿄, 편의점

@ 도쿄, 하라주쿠
@ 도쿄, 신주쿠

@ 도쿄, 미타카역 인근
@ 도쿄, 하라주쿠
@ 도쿄, 편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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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미타카역에서 사서

@ 도쿄, 에도도쿄건축공원에서 먹다.

@ 도쿄, 지하철 자판기

@ 도쿄, 편의점
@ 도쿄, 에비스 맥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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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코네, 자판기

@ 하코네, 유황온천 달걀과 아이스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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