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팅 주기만으로 봤을 때는 울산바위에서 내려오는데 한 열흘 가까이 걸리는 거 같지만, 실제로 내려오는 길은 세시간 정도.

 

내설악과 외설악, 병풍처럼 늘어선 설악산 능선들이 시야를 첩첩이 가로막는다.

 

내려오는 길에 만난 끼인 바윗덩이 하나. 거대한 바위산인 설악산 울산바위 어귀 어드메쯤의 균열에 오도가도 못하고 딱 낑겼다.

 

 

그저 눈앞의 계단만 바라보며 올라갈 때는 몰랐는데, 내려갈 때 보니 살짝 아찔할 만큼의 경사였다.

 

죽어버린 고목 한 그루가 이파리고 줄기고 다 잃어버린 채 뒤틀리고 갈라진 기둥 하나만 남긴 채 가을처럼 서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내달려오던 구름이 어느순간 울산바위 위의 하늘을 꽉 채웠다 싶었는데, 또 저만치 내달리며 파란 하늘을 남겼다.

 

흔들바위까지는 그렇게 금세.

 

사진사 아저씨가 딱 자리잡은 곳에서는 흔들바위와 울산바위가 동시에 이렇게 담기는 것이었다. 살짝 눈치보며 찰칵.

 

내려오는 길에 막걸리 한병과 파전과 전날 사둔 '만석닭강정'으로 푸짐하게 배를 채우고.

 

 

사람들의 소망이 텅빈 나무등걸을 꽉 채우고 흘러넘치던 모퉁이를 돌아나오고.

 

 

제법 형체를 우람하게 갖춘 돌탑이 붉은 단풍을 배경으로 슬쩍 곡선을 그리며 섰는 모습도 눈여겨봐주고.

 

 

신흥사에서 올려다보이는 설악산 바윗덩이들의 우람한 육질도 감상하고.

 

 

손을 꼭 맞잡은 어느 커플이 돌다리를 건너가는 모습을 구경하며 부러워도 하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설악산 입구. 언제나 그렇다지만, 안 가본 길을 처음 갈 때는 무지 멀고 길어보이지만 되돌아오거나

 

다시 한번 밟을 때는 어라, 하면서 생각보다 짧고 쉽게 느껴지는 거다. 이렇게 올해 가을은 끝.

 

 

 

네팔어로 '파니'는 물, water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고레파니나 타다파니, 혹은 여기 히말파니까지의 지명에 '파니'가 들어가

 

있는 거라고. 특히나 이곳 히말파니는 히말라야의 물, 이란 의미로 온천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이곳 히말파니까지 오는 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한 데다가 욱신거리는 무릎을 뜨거운 물에서 좀 쉬게 하고 싶어, 점심도 먹을 겸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롯지는 이제 우기가 끝나고 몰아닥칠 트레커들을 위해 단장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점심으로 볶음면과 맥주를 주문하고는

 

내리막길로 걸어서 15분정도 걸린다는 온천에 다녀오기로 했다.

 

15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도 나올 생각은 없고, 앞서 가던 가이드가 물소들이 몸을 담근 저 늪을 두고 온천이라는 소리에 잠시

 

시껍했으나, 다행히도 저렇게 정비되지 않은 물구덩이를 두고 온천이라고 하진 않는 듯 했다. 궁금증은 커져만 가고.

 

사정없는 내리막길이라 무릎이 더욱 아파올 무렵, 근 40분 가까이 걸었다 싶던 참에 비로소 강물 옆으로 나타난 온천 건물.

 

건물이라기보다는 그냥 기둥 박아놓고 슬레이트 지붕 얹어놓은 정도지만 저 정도만 되어도 기대 이상이다.

 

너도나도 재빨리 옷을 벗고 최소한의 복장만 갖춘 채-함께 내려가던 일행 중에 여성도 있었기 때문에-콸콸 쏟아지는 온천수로.

 

강물이 이렇게 거칠게 흐르는 산골짜기 아래까지 내려와야 했으니 롯지에서 여기 온천까지 오는 길이 그리도 험했던 거다.

 

 

그 와중에 먼저 와서 실컷 즐기다가 다시 위로 올라가려는, 예수처럼 생긴 서양 아이 하나. 그러고 보니 그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벌렁 누워 가방에 꽂힌 우쿨렐레를 연습하던 그 녀석이다. 여성 앞에서도 거침없이 덜렁덜렁 지나가는,

 

그리고 여성 역시도 그다지 당황하지 않는, 서양인들의 그 쿨함과 자연스러움에 잠시 이질감을 느꼈던 순간이기도.

 

옆에서는 두번째 탕을 한창 공사중이었다. 이곳에서 상주하는 것 같은 대머리 할아버지랑 그의 아들인 것 같은 두 명이서

 

언제 다 지어질까 싶은 네모난 탕을 만들려는 듯. 물은 뜨겁진 않고 따뜻한 정도, 그치만 몸을 푹 담그니 피로가 확 풀린다.

 

굳이 하나 더 짓지 않고 하나 갖고 복작복작하는 게 왠지 더 이곳의 분위기에는 어울릴 거 같은데.

 

점심으로 나온 볶음면. 다시 올라오는데 걸린 시간은 역시 30분이 넘었던 듯 하고, 올라오느라 어느새 온몸은 땀범벅이 되고

 

조금 나아진 듯 했던 무릎도 다시 아팠지만, 그래도 한번 꼭 들러보길 강력히 추천하고픈 히말파니의 온천.

 

 

한결 개운해진 몸과 가벼워진 무릎으로 한참을 걸어 가던 참에, 이날따라 유난히 햇살이 뜨거워 쉬엄쉬엄. 나오는 마을이나

 

롯지마다 한번씩은 앉아서 땀도 식히고 선크림도 다시 바르고 했던 것 같다. 챙겨간 볼펜을 줘도 좀체 웃지 않던 요 꼬맹이.

 

색색의 빨래들이 얹힌 은빛 슬레이트 지붕, 그리고 마당에 편히 자리잡고 앉아 옥수수를 말리는 아주머니의 다부진 머릿수건.

 

 

와중에 굉장히 이쁘게 꾸며졌다 싶던 어느 마을, 간드룩 지방에 있는 어느 조그마한 마을이었는데 지천에 사루비아가 넘실넘실.

 

길은 거의 헷갈리거나 잘못 들 염려가 없는 한길이었지만 그래도 중간중간 샛길도 나있고, 그럴 때마다 이렇게 친절한 표지판 등장.

 

게다가, 어느 마을에서부터 졸졸 쫓아오더니 아예 앞장서서 인도해주는 길앞잡이 개까지 친절하다.

 

비록 중간에 물소가 길을 막고 있으면 겁먹고선 꼼짝도 못하는 순둥이에다가, 가파른 내리막 앞에선 주춤거리다가 절룩거리는

 

내 다리 사이로 진로방해를 하는 녀석이긴 헀지만, 그래도 잠시 쉬어가려 배낭을 내려놓으면 다시 돌아와서 같이 쉬어주는 센스쟁이.

 

그렇게 도착한 큐미. 간드룩 지방의 여러 마을 중에 하나라고 하는데, 이 다음 마을인 시욜리 바자르Syauli Bazar에서부터는

 

포카라로 가는 교통편을 탈 수가 있다고 한다. 트레킹을 처음 시작한 나야풀까지 가는 마을버스를 타고, 거기에서 다시 택시를 타는

 

코스라고 하는데, 그러고 보니 7일동안 바퀴달린 거나 엔진같은 동력기관을 본 적이 없다. 왠지 그 세계로 다시 들어가는 걸 최대한

 

미루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큐미에서 하룻밤 자고 내일 들어갈까 아니면 시욜리 바자르까지 예정했던 대로 갈까 고민 시작.

 

꽃나무도 많고, 롯지 한쪽에서는 이렇게 재봉틀이 발랄하게 돌아가는 소리를 내고 있는 말끔한 마을이어서 꽤나 맘이 동했지만

 

그래도 온천빨이 아직 남아있으니 좀더 걸어두기로 했다. 시욜리 바자르까지 가서 저녁 먹고 자는 걸로 결정.

 

 

큐미에서 잠시 앉아서 쉬었다 가려는데 난데없이 들이닥친, 끝도 없이 이어지는 당나귀떼들. 마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들에서

 

출현했던 듯한 수많은 당나귀들이 ctrl+c, ctrl+v로 찍어낸 느낌으로 불어나있었다.

 

그 와중에 앞엣놈 엉덩이 냄새를 맡는 놈도 있고, 괜히 대열을 벗어나 사람들에 흥미를 보이는 녀석도 있고.

 

그러고 보면 무릎이 아프기 시작한 게 하산길 초입이니 이틀째 아픔이 지속되고 있는데, 걷고 있는 시간은 좀체 줄지 않았다.

 

아침 일곱시반쯤부터 오후 대여섯시까지, 점심먹는 시간이나 쉬는 시간들을 빼더라도 대략 열시간 내외 걷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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