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출장에서도 사진은 여지없이 찍었댔다. 두바이의 유명한 7성급호텔 버즈 알아랍,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아직 공사중인) 버즈 두바이 등등 두바이의 풍경들. 사우디 리야드의 밤거리, 드문드문 땡땡이치며

산책나갔던 시내 골목길에 쿠웨이트의 쇼핑몰까지. 왠지 사진을 올리려는 의욕이 안 생긴다. 물론 왠지 10월

내내 바빴고 바쁜 탓도 있겠지만.


작년에 이미 갔던 호텔에 고대로 묵는 사우디와 쿠웨이트는 사실 별 기대가 없었고, 이번 출장은 사실 오로지

이집트 카이로에 다시 간다는 것, 그리고 그곳에 (드디어) 디카를 들고 간다는 것, 5년만에 피라밋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내 짧은 삶에서 뭔가 갈치 토막치듯 분기점을 나눠보라면

2004년 그때의 여행은 두세번째 순서쯤 되지 않을까 싶다. '먹고 살 고민' 따위, '먹고 살 궁리' 따위 '굴하지

않던' 철부지에서 '먹고 살 고민'씩이나 하는 철부지로 변신한 게.


마침 이집트에서 카메라를 누군가에게 빼앗겨서만은 아니었다. 현지인들과 함께 부대끼고 암내맡으며, 하루에

2리터들이 물병을 두개씩 마시며 마주했던 카이로의 거리들, 그리고 피라밋과는 너무 달랐다. 반듯한 정장에

(무거워서 고리가 휘어버린) 노트북 가방을 척 걸치고, 45인승 고속버스 차창 밖에서 넘쳐들어온 햇볕 한 줌에

아 뜨거라 하며 큰길로만 다녔다. 군자는 대로행이라던가. 흥. 카이로는, 길거리는 그대로였다. 사천년을

멀쩡했던 피라밋도 고작 오년만에 달라졌을리 없다. 내가 달라졌다.


그다지 맘에 썩 들지는 않았다. 출장과 여행의 차이일 수도, '먹고 살 고민' 따위의 유무 차이일 수도, 그저

2004년 8월과 2009년 10월의 온도 차였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단순히 눈높이의 차이였을지 모른다. 피라밋을

굽어보게 만드는 45인승 고속버스라니. 왠지 순례하듯 그곳을 우러렀던 과거의 내게 모멸감을 안겼던 걸지도
 
모른다. 피라밋은, 카이로는, 사람 사는 곳은 그렇게 건방지게 내려보며 점점이 둘러보는 게 아닌데. 굽어보아

미안해. 내려보아 미안해요, 라고, 날 완전한 이방인으로 격리시켜 버린 양철캔 안에서 외치고 싶었다.


얄쌍하고 길쭉하며 튼튼해 보이는 고속버스들이 피라밋 앞 주차장을 쉼없이 들어갔다 나갔다 들어갔다 나갔다,

입구에서부터 한참을 걸으며 피라밋의 위용과 이질감에 숨막혀했던 바로 그 오르막길 역시, 버스의 탄탄한

모터는 잘도 부릉거리며 한숨에 정복해버렸다. 이건 강간이다. 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5분만에 피라밋

코앞까지 내달렸다가, 다시 5분만에 피라밋 세 기가 배경으로 쭈그러든 포스트로 내달려 사진을 남기고 휑하니

가버렸다. 왜이리 덥냐고, 왜이리 사람이 많냐고, 이집트 삐끼들 못살겠다고.


어떤 식의 여행이 되어야 한다, 는 건 아니다. 꼭 땀 삐질삐질 흘리고 빡세야 여행이란 것도 아니다. 그저 난,

내가 풍경과 풍경 사이에 이전에 밟았던 그 울퉁불퉁하고 냄새나고 미칠듯 덥던 길이 사라지고 순간이동하듯

뿅뽕 튀어나오는 풍경들만 남아버린 것이 안타까웠다. 전희도 없이 덜컥 달려나간 꼴. 그런 식의 폭력적인

풍경의 소환. 그건 서로에게 상처일 뿐이지 않을까. 이미 닳고 닳아버린 이미지라 해도 좀더 조심스럽게,

세심하게 접근하면 조금은 더 신선하고 깊이 느낄 수 있을 텐데. 


그 야만스럽고 난폭한 고속버스의 행렬이 피라밋과 '관광지'로서의 카이로를 현지 사람들로부터 뺏어들고

희롱하는 것처럼 보여 수치스러웠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건, 낙타에 오른 이집션들의 눈높이가 차창에

바싹 붙어앉은 내 눈높이와 같았다는 사실. 이 녀석들, 마리당 몸값이 일억원이라더니 몸값 제대로 하는구나.

왠지 거대 고속버스들이 지분거리며 들고 나는 피라밋 앞 주차장에서 이집트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게 그

낙타들 같아서 안쓰럽고, 대견하고 그랬다.


다시 한번 가고 싶다. 45인승 삐까뻔쩍한 고속버스 말고, 소금기 얼룩진 티쪼가리 입고 시커멓게 그을린 채,

박박 기듯이 걸으며 걷고 뛰고, 그러고 싶다. 뭔가 거기서부터 나의 1984년과 1Q84년이 갈라져버렸다고 

느껴서인지도 모르겠다. 아님 그저 훼손되고 벗겨내어진 내 기억속 그 공간의 아우라를 다시 조심조심

덮어씌워주고 싶어서인지도. 어쩌면 그 모든 건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다는 욕구와 같을지

모른다.




피라밋을 본격적으로 들어가 본다는 설렘에 6시부터 설레발을 치고는, 7시에 출발. 어제와 같은 경로로 기자를 향하다간

갑자기 미니버스가 서버리는 바람에 당황하기도 하고, 일단 안개가 뿌옇게 서린 피라밋 단지 내로 입.장. 이럴 수가.

어제 밖에서 볼 때는 약간 생각보다 사이즈가 작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왠걸...어마어마하고 엄청난 박력이다. 그렇다고

인위적인 위압감이나 어떤 치장의 기색도 없이, 그냥 거기 서 있다. 하나, 둘, 그리고 좀 걸어가서야 보이는 세번째

피라밋.

쿠푸왕의 대피라밋이나 다른 것들이 모두 피라밋 내부에 입장할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되어 있다는 이야기에 개장 시간에
 
딱 맞춰 온 거였는데, 비슷하게 도착한 대형 고속관광버스들이 줄지어 늘어서있길래 은근히 긴장했다. 그래도 무난히

티켓을 끊고, 세 기중 가장 큰 쿠푸왕의 대피라밋으로. 카메라를 입구에서 압수당하고는 조그마한 구멍을 통해 피라밋

내부에 틈입, 잠시 길을 따라가보면 바로 오르막이 좁게 나있다.

방금까지 난 길은 좀 누군가 파낸 듯, 억지로 만들어진 길이라면, 여기서부턴 아니다. 애초부터 돌을 그렇게 짜맞춘 게

분명한, 정말 돌들이 별반 오차없이 매끈하게 놓인 게다. 중간에서 더 가파르게 오르막 길이 되더니 피라밋의 중심,

쿠푸왕의 묘실이다. 안방만한 크기에 돌하나를 파서 만들었다는 석관이 덩그라니 놓였는데, 그 방을 사각형형태로

딱 짜맞추었다는 게 정말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피라밋이 걍 종이로 접어 만든 속빈 구조물도 아니고, 바닥부터 그

커다란 돌들을 차근차근 채워나갔단 거 아닌가. 그러면서 오르막길도 내고 이런 커다란 방도 만들고. 게다가 산소 유입을

위한 배기구까지 감안했다니. 할 말이 없다. 그런데 또 있다. 돌들이 관광객들의 손에 닳고 닳아서 그리 맨들거리는 게

아니라, 애초부터 만들 때부터 그렇듯 반질거리게 가공된 상태였다는 거다. 그 몇만개 돌들이 모두 다 그렇게 세심하게,

정밀하게 세팅되어 안에 반듯한 방과 정교한 통로를 야무지게 확보한 큰 '산'을 이룬 거다. 정말 말로는 뭐라 더

표현하기도 힘들다. 이러니 외계인이 만든 거라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구나, 공감해버렸다.

그 중심에 놓인 쿠푸왕의 석관, 그 까맣고 커다란 관 안에 누워 잠시 쉬어볼 수 있었다. 한번 둘러보고 다시 나가려던

차에, 나가기 직전 아쉬워서 다시 한번 오르내리니까 안내인 아저씨가 선심을 썼다. 들어가 보라고, 괜찮다길래 좀..

개념없는 짓을 해버렸다. 그 안에 들어가서 누웠다. 무릎을 약간 접어야 했지만, 몸이 딱 자리를 잡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여기에 몇천년동안 누워있었을 쿠푸왕의 미이라..그는 어떠한 세계를 머릿속에 품고 있었을까. 이런 구조물을

자신의 사후를 위해 준비시킬 만큼의 권력자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검정색 돌의 서늘함인지, 아니면 그의 바짝 마른

몸에서 배어난 냉기인지 손발이 차가워질 정도로 한기가 느껴지길래, 한 5분 정도 있다가 관에서 벌떡 일어났다.

석실에서 내가 일어서길 기다렸던 안내인 아저씨는 맘씨 좋게 웃으며 박시시를 요구했고, 난 흔쾌히 '드렸다'.

피라밋을 등산하는 것도 꽤나 인기있는 익스트림 스포츠 중 하나였다고 했다. 플로베르였던가, 그가 이집트 여행을 할 때

피라밋 위에 올라 낙서를 남겼다는 수기를 본 적이 있다. 나도 그 이래로 꼭 한번 올라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더이상

가능할 법하지가 않다. 낙타타고 있는 경찰이 50미터마다 배치되어 있었다. 물어보니 대답이 두 개다. 누군가 떨어져

죽은 이후로 지키고 섰다는 이야기가 하나,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테러를 대비하기 위해 그렇단 이야기가 둘.

난 죽지 않고 잘 올라갈 수 있을 거 같은데.

내 생각엔 스핑크스는 덤이다. 사진으론 꽤나 큰 것처럼, 피라밋과 비슷한 사이즈인 양 찍히기 일쑤지만, 실제로

스핑크스는 생각보다 훨씬 작다. 단지 피라밋을 위한 수호상, 피라밋을 지키는 부록물 같은 거니까 그게 당연한지도.

피라미드...첨에는 맨들맨들 크리스탈같이 이뻤던 '건축물'이라 그러는데, 이젠 그 맨 모습이 거칠거칠 보이면서..

뭐랄까, 오천년쯤 지남 인공의 것도 어떤 경지에 이르는 거 같다. 자연..이랄 경지.ㅋ 피라밋이 눈에 잔뜩 찼다 싶을
 
때까지 보면서, 지치도록 걸어돌아다녔지만 암만봐도 이건 진짜다. 와우.


이래서, 피라밋을 보기전엔 이집트를 말하지 말라 했던가.

사카라의 피라밋단지는 시간도 시간이거니와, 팀을 짜서 택시를 안 빌리면 정말 힘들겠어서 그냥 포기했다. 그렇지만

그다지 큰 아쉬움이 남지 않는 게 기자의 이것들로 이미 필 충만해져버렸으니. 차마 안 떨어지는 걸음, 그래도 정오가

다가오면서 심상치 않아지는 더위와 허기, 게다가 물통도 비어버린 지 오래라 일단 호텔로 퇴각했다.

한국 사람들이 사진은 잘 찍는 거 같다. 낙타 위에 올라있다가 경찰 두 명이 내려오길래 같이 사진찍쟀더니, 이렇게

찍어놓았다. 자신의 동료는 완전히 프레임 밖으로 내몰고, 나만 혼자 한쪽 구석에 몰려 서있는. 이번 뿐만이 아니라

머리를 짤라버리기도, 영 다른 곳을 찍어버리기도 부지기수였다. 우야튼, in sha'Allah.




이슬람 카이로에 가서 시타델을 보고선 기자 피라밋을 보러 갈 생각이었다. 으레 그렇듯 이슬람 카이로에 갔다가 길을

잃고 잔뜩 헤매다 보니, 어느 순간 무너져가는 건물들, 구정물이 흐르는 도로에 마구 폐차가 쌓여있는 할렘같은 도로변..

그런 풍경 속에 서있었다. 말하자면 카이로의 달동네랄까, 도시가 과잉팽창하면서 외곽에 생겼을 슬럼지역인 게다.

때가 꼬질한 아이들은 웽웽대는 파리떼를 몰고선 벌거벗고 내 주위를 맴돌았고, 어른들은 낯선 이방인을 경계하는

눈빛을 아끼지 않았다.


한참 당황해서 골목을 헤집다 보니 겨우 기자 피라밋으로 향하는 버스를 찾을 수 있었고, 시간상 레이저쇼를 보기에 딱

좋겠다 싶었다. 피라밋을 멀찌감치서 처음 보니 문득 가슴뛰는 것이 오늘 하루 뺑이치고 삽질하고 바가지쓰고 불쾌했던

것들이 싹 잊혀지는 느낌이다. 바로 옆 레스토랑 이층에 자리잡고 피라밋을 구경하자니, 왠지 사막하고 닮았단 느낌.

오천년 가까운 시간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이 커다란 '산'을 자연처럼 완성시켜놓았달까. 애초 매끈하게 표면을 덮었을 

라임색 마감석들이 모두 벗겨지고 밑엣돌들이 드러나되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무질서한 듯 무너져내려가는 듯

보이면서도 전체로 보면 아주아주 그럴듯한. 오천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인력으론 도저히 따라하기 힘들 그

어떤 경지, 그런 경지에 오른 느낌이다.


잔뜩 보고 있다가, 해가 지고 기다리던 레이져쇼를 할 시간이 되었다. 알고 보니 조명이 내가 자리잡은 곳 반대편인지라

다시 그쪽으로 향했다. 좀 피곤하긴 했지만, 피라밋은 왠지 사방의 여러 각도에서 여러 차례 바라보며 머릿속에 꾹꾹

눌러담아야 할 것 같아 피곤함과 지침을 무릅쓰고 반대편으로 걸었다. 다행히 중간에 착한 아저씨들이 차를 태워주어서

쉽게 도착, 비록 우락부락한 털복숭이 아저씨 셋만 타고 있던 차여서 조금 경계를 하긴 했지만.


반대편에서 본 피라밋과 스핑크스도 물론 조망은 좋았지만, 역시 안에 들어가서 보는 것만은 못하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애초 레이져쇼는 44EP를 내고 입장해서 구경하는 건데 내가 듣기론 굳이 입장하지 않고 밖에서 봐도 충분히 괜찮더란

얘기. 색색의 조명이 밝혀진 세 개의 피라밋과 스핑크스가 달하나 점처럼 박힌 검은 하늘을 배경으로 버티고 선 풍경.

생각했던 것처럼 레이져나 조명이 하늘에 선을 긋고 그러는 건 아니었지만, 담백한 조명아래 드러난 피라밋의 그

연륜있는 모습이 그 자체로 두드러졌던 것 같다.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전부 어둠에 먹혀서 아쉬울 뿐.



삼성동 트레이드타워 후문밖에는 자그마한 유리 피라밋이 있다. 이 유리 피라밋은 코엑스몰의 중심부 푸드코트의

채광창 역할을 하기도 하고, 도심공항터미널-그랜드인터콘티넨탈호텔-현대백화점-트레이드타워-코엑스 건물로

둘러싸인 자그마한 휴식공간의 볼거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말갛게 하늘과 구름이 비치는 날이 있는가 하면,

사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이 마치 예술작품같기도 하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실 이걸 본 누구라도 다음순간 떠올리게 되는 건, 루브르 박물관의 유명한 유리 피라밋일 게다. 파리땅을

밟아본 적이 있는지 없는지를 불문하고 영화속에서든, 티비 속에서든, 하다못해 다른 블로그 속에서든 이미

눈에 익을 대로 익어버린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밋.

규모면에서 따져도 루브르의 그것이 서울의 그것보다 훨씬 크다. 솔직히 코엑스몰의 유리 피라밋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도 않은 귀여운 소품에 불과한 거다. 그리고 구조물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조명시설 같은 백업 면에서

루브르의 유리 피라밋은 그야말로 서울의 남대문 같은-어쩌면 그 이상의-랜드 마크아닌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사실은, 이 역시도 오리지널은 아니었다.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를 따서 워싱턴 모뉴먼트가 만들어졌듯,

이집트의 피라밋을 따서 프랑스의 유리 피라밋이 만들어진 거다. 2004년 이집트에 갔을 때..

"쿠푸왕의 대피라미드에 들어가서 좁은 통로를 기어올라가 맞았던 그 사각형의 반듯한 무덤실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 한가운데 있던 크다란 석관에 들어가 누워보는 특혜를 얻은 것도 정말 색다른 체험이었고. 수십만개의

돌덩이로 짜낸 속이 꽉 차있으면서 정교한 터널과 네모반듯한 방이 있는 그 기묘함. 그 한가운데에 놓인 석실에

누워 잠들만한 사람은, 어떠한 세계를 머리속에 품고 있었을까. 피라미드를 '등산'하는 것도 꽤나 인기있는

익스트림스포츠였다고 해서 나도 꼭 해볼라 그랬는데, 더이상 가능할 법하지가 않다. 낙타타고 있는 경찰이

50미터마다 배치되어 있어서...누군가 떨어져죽은 이후로 그랬다더군. 난 안 죽고 올라갈 수 있는데.ㅋㅋ"

내게 피라미드 내 석관에 눕도록 종용하곤 박시쉬를 요구했던 안내인 아저씨에겐 두고두고 감사할 일이다.

물경 오천년전쯤 지어졌단 그 피라미드, 내 생각엔 스핑크스는 덤이다. 첨에는 맨들맨들 크리스탈같이 이뻤던

연분홍빛 '건축물'이었던 피라미드였다지만, 이젠 그 맨 모습이 거칠거칠 보이면서..뭐랄까, 오천년쯤 지나면

인공의 것도 어떤 경지에 이르는 거 같다. 자연..이랄 경지.ㅋ 피라밋이 눈에 잔뜩 찼다 싶을 때까지 보면서,

지치도록 걸어돌아다녔지만 암만봐도 이건 진짜다.

이래서, 피라밋을 보기전엔 이집트를 말하지 말라 했던 게다.


어쨌든, 파리 여행을 앞두고 여행준비에 여러모로 들떠있다.


#1. 갈피를 잃다.

취직하기 전엔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그 다음에 한숨돌리고 다음 길을 찾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하루하루 그저 녹아내리는 느낌이다. '온세상 호랑이가 모두 녹아내려 버터가 되어버릴만큼.' 얼굴에 '장학퀴즈

출전자나 그럴법한 적당한 영리함과 발랄함'을 잔뜩 둘러친채 오전부터 오후까지 내내 대면해야 하는 사람들.

그것도 모자라 한기수 위 선배들이네 두기수 위 선배들이네, 게다가 노조네 어쩌구까지 이어지는 술자리들.

패턴인양, 저녁식사와 술 그리고 노래방과 3차 술집. '사람', '인간'관계가 중요한 고즈넉하고 고루한 협회라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사람'이 아니라 '동기'란 걸로 묶여버려서, 노래방에선 우르르 앞에 몰려나와 방방 뛰며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템버린을 흔들어대고-혹은 목에 걸고 온몸을 흔들어대고-선배님들 앞에서 재롱잔치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웃는 척, 즐거운 척 하고 있다.(적어도 난 그렇단 거다. 동기들은 어떻다..라고 묶어서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2. 술이 싫다.

술이 싫다. 정확히 말하자면, 술에 기대어 친한 척 환각에 빠지기도 싫고, 술에 기대어 인간적인 척 충고하고받고

그러는 것도 싫다. 바라건대 두 명, 최대한 네 명 이하의 술자리에서만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같아, 상대와

눈맞추며 열심히 얘기를 섞어보고 싶었다. 내 잘못도 있는지 모른다. 조용히 중간에 묻어있으려던 나는 어느새

'주량이 가장 세고' '말도 많고' '술도 좋아하는' 같은 라벨들이 덕지덕지 붙어버려서, 뺑끼조차 쉽지 않아졌다.


요약하자면, 요새 내가 느끼는 건. 선배들과 그런식으로 소모적인 술자리를 갖고 그다지 원치 않는 알콜을

반강제로 섭취하며, 일말의 죄책감을 가지고 한시간반이나 걸려 막차타고 집에 와야 하는 상황에 지쳐간다는

거다. 응. 신체적으로 힘들면 심리적으로 힘들어지는 법이다. 게다가 내가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 내가 걸어갈

길의 막다른 끄트머리쯤에 몰린 건 아닌지 싶은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책임져야 하는 나이에, 책임질 수

있는 자리를 챙겨들었으니, 엉덩이만 비벼 주저앉는다면 마냥 늘어져 잠들지도 모르겠다.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한없이 무거워지는 발을 질질 게을리 끌면서 어느새 몽롱하고 탁해진 눈빛으로 재테크를 말하고, 부동산을

말하고. 그런 게 싫다는 게 아니라, 눈빛이 탁해지고 흐려진다고 스스로 느끼게 되는 상황이 싫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지, 무엇 혹은 어디를 향하고 싶은지, 지금은 그래서 무얼 하고

있는지. 할 말이 없다.



#3. 고양강아지.

어느날 문득 세상 사람들이 개와 고양이 중 하나로 변신한다면, 난 틀림없이 고양이로 변신할 거라고 생각해왔다.

자존심강하고, 자신 고유의 영역을 고집스럽게 지키며, 누군가에 매이는 걸 아주 싫어하는 그런 사람. 내가

중심이 되어야한다는 자존심은 때로 영악한 이기심으로, 때로 소아적인 소심증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모든 걸

다해줄 듯 배려하는 척하는 립서비스의 이면에는 정작 나 자신의 영역과 자존심을 털끝도 다치지 않으려는

완강한 '거부'의 몸짓이 깃들어 있기도 했던 것 같다. 이는 미리 다칠 걸 두려워한다는 그럴듯한 핑계 이외에도,

감정을 판돈삼아 벌이는 '연애게임'에서 누구에게도 약점을 잡히고 싶지 않다는 다분히 실리적인 계산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런 거..게임이었을 때나 가능한 거였다. 상대의 반응을 예민하게 잡아내며 밀고 당기고를

유희처럼 즐기는 것은. 상대의 자존심을 무장해제하고 숨김없이 감정을 표현하도록 하면 이기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얼마나 유치하고 치졸한 생각이었는지.


이제는 그렇다. 그녀의 자존심이 다치지 않게 감싸주고 싶고, 그녀가 표현하기 전에 내가 먼저 표현해주고 싶고.

나 자신이 그녀에게 열려 있는 만큼 그녀가 훌쩍 다가와서 날 읽어주기를. 내 영역이라 할 것들을 풀어헤쳐 함께

공유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그녀가 나를 확실히 길들여 우리의 소통을 방해하는 세상의 온갖 노이즈를

조금이라도 극복할 수 있기를.


욕심이 큰 걸까, 때론 우리가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완전한 남..이었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너와 내가 우리라는

단어로 미끈하게 묶이기 위해서는, 피라밋이 바위산으로 변해버린 만큼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터무니없는 낙관이 좋을 때도 있다.


그러고 보면, 요새 나는 그녀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내가 책임져야 할 것들이란 게 손에 와닿지 않는

이러저러한 것들이 아니라, 그녀 한사람이면 차고 또 넘칠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