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쿠의 빌딩숲 사이를 걷다가 문득 발견한 거대한 글자탑. L.O.V.E. 글자가 이렇게 차곡차곡 쌓여있는 모습도

모습이지만, 그 글자의 크기가 뭔가 낯설만큼 커서-저렇게 큰 글자로 씌여진 책장 한 페이지의 사이즈는 또

얼마나 클까-주변의 풍경을 살짝 일그러뜨리는 듯 했다. 붉게 달아오른 러브.

신주쿠의 도쿄도청 뒤쪽, 오거리던가 사거리를 건너려다 저 너머에 있는 빨간 글자조각을 발견한 거였다. 사실

그보다 먼저 눈에 띄었던 건, 사거리를 삥 둘러 세워진 신호등과 가로등을 고리처럼 이어주던 환.

그 글자가 거기 놓였다는 게 보이지도 않는 듯 완전 무심하게 지나는 사람들은 도쿄의 현지인들, 이렇게 요리조리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은 여행자들..이라지만, 사실 이런 글자가 서울의 테헤란로 어디메쯤 덜컥 떨어뜨려놓은

듯 놓여있으면 지나칠 때마다 기분이 묘해질 거 같다. 너무너무 익숙하고 뻔해서 진부해진 공간이 문득 새로워지고

재미있어지는. 발바닥을 간질간질하는 느낌. 혹시, 이 글자 외지인에게만 보이는 건가.

이번엔 측면 사진. 정면에서 2D로 볼 때와 또 다른 3D의 위엄. 그리고 두툼한 깊이가 느껴지는 만큼이나 더욱

커다란 존재감을 가지고 주변공간을 휘어버리는 그 간질간질함.

사실 이 오리지널 'LOVE'의 또다른 버전은 파주 헤이리에서 본 적이 있다. 그 때도 그걸 보고 꺄아~ 하면서

마냥 신기해했던, 포스팅까지 했던(Alice in 헤이리.) 기억. 그 때 보았던 건 그치만 한글 자모로 만들어놓은 것,

게다가 훨씬 작고 귀여운 사이즈에 얄포름한 두께를 가진 것이어서 이만큼의 임팩트는 느껴지지 않았었다.

같은 모양새여도 그 크기에 따라 느낌이 이렇게나 달라질 수 있단 건, 아무리 본질이 이러니저러니 잘난 척 해도

생각보다 사람이란 동물이 단순하고 곧이곧대로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걸까.

내킨 김에 신주쿠의 야경 한 장. 신기하게 생긴 건물들이 쭉쭉 시원하게 뻗어오른 그곳.





온통 녹색식물에 잡아먹힌 듯한 건물, 시멘트의 날빛깔이 그대로 드러난 벽면에서는 녹슨 쇳물이 눈물자국을

남겼고 무시무시하게 자라난 덩굴식물과 잡초들은 건물을 안팎에서 온통 포위했다.


그 와중에도 허름한 창문으로 빗겨내는 풍경은 용케도 푸르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

비단 그 한 구획만이 아니다. 건물 전체가 온통 위아래에서 진격해 들어오는 초록빛 전사들에 포위되고, 포획되고

포승줄을 이고지고 말았다. 그야말로 폐허.

저 정도면 엔간한 사람은 저 뭄을 삐걱, 여는 동작 하나에도 적잖은 부담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무섭도록

싱싱한 저 초록빛 대궁과 줄가리들을 갈갈이 찢어놓아야 비로소 열릴 법한 저 초록빛 매듭으로 꽁꽁 옹쳐매진

듯한 문 앞에서. 에라, 짓기는 인간의 손을 빌어 지어졌으되 이제 니네꺼 해라. 이러면서.

그런 폐허였다. 저렇게 유리창 안쪽에 소담하고 복스러운 꽃덩이를 뭉클뭉클 품고 있던 곳은 그런 폐허였다.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저건 인간의 손으로 섣불리 되어질 것이 아니라, 그냥 인간이 눈감고 있던 공간에도

엄연히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무언가 움트고 자라고 피고 지는 그런 생동감이 가득 차 있음을 항변하는 듯한

그런 포스를 내뿜고 있는 무엇이었다.

꽉 찬 공간을 밑에서 차곡차곡 채워나가는 듯 했다. 초록빛 잎사귀들은 도도하게 건물 내 공간을 잠식하고

온통 차지한 채 창밖으로 그 부피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언젠가 저 문을 열면 사방으로 튀어나가는 얌체공들처럼

덩굴손들이 사방으로 뻗쳐나갈지도. 혹은 자신의 힘을 이기지 못해 어느 순간 문짝을 온몸으로 밀며 바깥세상을

채워나가기 위해 후퇴없는 전진을 계속할지도. 겨울이 오기 전까지.





@ 헤이리.
이선균이 부러웠다. 여복(女福)이구나. 그는 첫사랑인 두살 연상의 운동권 누나와, 파주에 내려와 만난

착하고 발랄한 아내와, 그리고 어리지만 강렬한 매력의 아가씨, 아내의 여동생까지 만수산드렁칡처럼

이리저리 얽힌 거다. (게다가 그녀는 근래 내가 기대감을 품고 영화를 찾아보게 만드는 '서우'란 말이다.)


그가 첨엔 멋져보여서, 나중엔 받은 게 많아서 계속한다던 철거민대책위원회 등 사회 운동, 그건 첫번째

첫사랑과의 접점이자 그녀를 기리는 그만의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이상 계속하는 이유를 못

찾으면서도 추억을 되새기듯, 그녀에게 인정받겠다는 듯 철거촌에서 화염병을 던진다. 아내 역시 그의 삶에

늘 존재한다. 파주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로, 첫사랑과의 관계에 대한 죄씻음의 고백으로.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다,는 고백은 아내를 여전히 놓지 못하는 그의 마음을 거꾸로 보여주기도 한다. 계속 허점을 내보이고

유인해내다가 끝내 입술을 덮치고 단추를 끌러내린 서우에 대한 맘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가 누구를 사랑하는 걸까, 어느 순간 헷갈리기 시작했다. 여복이라기보다 여난(女亂)이란 단어가 가깝겠다

싶어지기도 했다. 어느 마음 하나 스쳐가거나 가짜였던 것은 아닌 거 같은데. 어느 것 하나 놓지 않은 거라면,

어느 순간부터 두 번째, 세 번째 사랑이 시작된 걸까, 그건 아예 구분조차 못하겠다. 아무리 사랑이란 감정이

칼로 잘리듯 툭 끊기고 툭 시작되는 감정이 아니라지만, 어쩌면 그는 영화가 끝나도록, 그가 삶을 다하도록 

세 명 모두를 가슴에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서우 역시 혼란스럽긴 매한가지. 그녀는 언니를 위한다며 형부를 미워하고, 사랑하고, 떠나고 돌아온다.

그녀가 놓인 세속의 문제들-보험금 문제라거나 사고 원인이라거나-따위가 그녀 내면의 모순과 뒤숭숭함을

더욱 강화하는 거다. 그녀는 언니에 대한 사랑과 형부에 대한 사랑 사이에 끼인 채, 언니와 형부의 사생활을

불편함과 호기심이 복합된 눈초리로 바라보고, 언니를 위한 가출에 형부 사진을 잘라 품고 간다.


파주는, 계속해서 안개 속이다. 파주로부터 나가는 길, 들어가는 길 모두 몽환적이게도 짙고 무겁게 떠도는

안개 속에 잠겨 있다. 뭐 하나 뚜렷하지도 칼처럼 구분되지도 않는 그런 안개속, 이선균과 서우는 파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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