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인근의 썬더볼드Thunder Bald, 강북을 지날 때에면 꼭 한번 들를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캐쥬얼 레스토랑이다.


파스텔톤의 색감과 편안한 인테리어가 맘에 드는 곳인데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들러보니, 자그마한 트리들도 여기저기


서있고, 다소 차갑다 싶던 철제 의자 위에도 폭신한 방석이 놓였다.



크리스마스, 연말연시를 앞두고 레스토랑 사장님의 센스가 묻어나는 구석구석의 디스플레이들.


 

저번에는 안 보이던 달콤한 스낵류들이 계산대 앞에서 트리와 함께 위용을 뽐내고 있다. 


이곳의 위치는 서울역 5번출구에서 길을 건너서..라고 이리저리 설명하는 것보다는, 최근의 화제작 '미생'에서 장그래가


양말을 팔았던 그 찜질방 '실로암 건강랜드' 바로 옆이라고 설명하는 게 빠르겠다. 구도심의 다소 낡은 풍경 속에서


제법 말끔한 분위기를 풍기는 썬더볼드의 외관. 오른쪽의 커다란 날개 그림도 포인트.


눈발이 제법 날리던 날, 레스토랑에 사람이 없을 시간인 오후 세네시 였지만 그래도 제법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이미 네이버나 검색포털에 '서울역 썬더볼드'로 검색하면 많은 리뷰를 볼 수 있으니만큼 제법 유명세가 생긴 듯.


참고로 주소는 '서울시 중구 만리동 1가 51-1 스카이1004빌딩 1층', 빌딩 이름부터 1004를 달고 있다 보니까


이런 날개 모양 장식도 생뚱맞은 게 아니라 굉장히 센스있게 느껴진다. 


연말연시 단체모임을 받는다는 안내가 내걸린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런 분위기의 실내가 나타난다. 제법 연세가 있어보이는 부부가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더라는.


 

계산대 앞 메뉴판은 여느 코지한 레스토랑과 비슷하게 늘어서 있고, 사장님이 자부심을 갖고 있는 생과일주스도 


눈에 잘 띄도록 포인트가 뙇.

 


그렇지만 이 집의 메뉴판은 꽤나 인상적이다. 황동색으로 된 금속 플레이트에 볼트와 너트로 조여놓은 메뉴판을 


한장씩 넘기며 보다보면 그 차갑고 단단한 금속의 느낌이 전해진다. 그리고 맛있어 보이는 메뉴들 사이의 귀여운 그림들


역시 오랜 시간 메뉴판을 탐독하게 만드는 주범 중 하나.



온통 한쪽 벽면이 바깥을 향해 환하게 틔여 있다 보니까 내부는 굉장히 밝고 훤한 느낌이다. 그렇게 넓지 않은 실내지만


전혀 답답하지 않은 느낌이 드는 이유일 거다. 그리고 샤방샤방한 빛깔의 날렵한 의자들도 맘에 들고.



썬더볼드Thunder Bald, 라는 조금 낯선 이름은 저 이미지를 보는 순간 바로 머리에 박히는 느낌이었다.


번개를 내리치는 대머리 아저씨, 뭔가 사장님의 외모하고 닮은 듯 하면서도 슬쩍 장난스러운 입매가 매력적이다.

 

리코타 치즈 샐러드로 유명한 카페마마스의 뺨을 때릴 수 있을 만큼 맛나던 그것, 썬더볼드의 리코타 치즈샐러드. 


그리고 처음 이곳에서 맛을 보고 홀딱 빠졌던 통오징어 덮밥. 칼집이 적당한 간격과 깊이로 들어간 오징어의 찰진


쫀득거림은 물론이고, 완벽한 반숙을 선보이던 계란의 노른자위는 정말 훌륭하다.


 

그리고 디저트메뉴로 맛봤던 프렌치 토스트. 계란을 입힌 토스트도 맛났지만 직접 만드셨다는 휘핑크림 역시 전혀


달거나 느끼하지 않고 진하고 깔끔한 우유맛이 듬뿍. 딸기조림 역시 화이트와인을 넣고 직접 졸이셨다니 강추! 

 

대박나세요, 사장님! 강북쪽에 놀러갈 때마다 꼭 생각나서 들르게 되는 그런 맛집 오래오래 유지해주시길 바라며.

 

이만 총총.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 그 중에서도 구시가 중심이랄 옐라치치 광장을 둘러싼 오육층은 가뿐히 넘어보이는 건물들 너머로

 

덧니처럼 뾰족하니 튀어나온 첨탑 두개의 주인공. 광장 오른켠에 자리한 카프톨 언덕 위의 성모승천 대성당이다.

 

구시가의 낡고 오랜 건물들 사이를 흐르는 이차선 도로, 그 옆에서 여유롭게 걸음을 옮기는 나이든 크로아티아의 할아버지,

 

너머로 삐죽 고개를 치켜올린, 근 천년을 지켜온 성모승천 대성당의 보수중인 첨탑 하나.

 

 

카프톨 언덕을 휘적휘적 올라가면 마주치는 대성당 앞의 광장에는 금빛으로 번쩍거리는 성모마리아상이 우뚝 솟았다.

 

 우중충한 잿빛 하늘 아래서도 번뜩이는 금빛을 발하는 성모상과 아래의 천사들은 살짝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느낌을 풍긴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설수록 더욱 실감나는 성모상의 유별난 높이. 성모승천 대성당을 찾는 이뿐 아니라 자그레브, 아니 크로아티아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압도적인 높이다.

 

게다가 눈에 신경을 집중해서 그 진중하고도 살짝 근심어린 듯한 표정을 찬찬히 뜯어보노라면 진짜 하늘에서도 그럴 것만 같다.

 

 

성모승천 대성당의 섬세하고도 우아한 입구, 상아빛의 대리석과 조각상들이 차곡차곡 접혀들어가며 녹슨 청동문으로 집약되는

 

그 운동감이 너무 좋아서 한참동안 보고 있는 사이에 신부님도 수녀님도 신자분들도 조심스레 입구를 드나들었다.

 

문 위 벽공에 바쳐진 유달리 하얗고 거칠지만 에너지 넘쳐보이는 대리석 조각상도 가만히 눈여겨볼 만 하다.

 

 

정문의 좌우에 시립하고 선 (아마도) 카톨릭의 성인성녀들이려나. 화려하고 섬세한 대리석 조각 장식들은 가만히 뜯어보면

 

조금씩 모양새가 다르고 매무새도 다르다.

 

그리고 성모승천 대성당을 삥 에둘러 한바퀴 돌아보는 길, 성당 옆에 자리한 부속 건물들에서 느껴지는 연륜도 못지 않다.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에 반질반질 매끈해진 대리석 재질의 포석들이 밟히는 소리가 따각따각 경쾌하던 그 곳.

 

 

 

두 개의 종탑은 최근까지도 모두 보수중이다가 최근에야 하나가 산뜻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바싹 당겨서 본 그 모습은

 

디테일하고도 부드러운 매무새가 왠지 돌을 다루는 경지에서 경주의 다보탑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성당 옆구리에 나있던 이러저러한 나무문들, 어느 것 하나 심심하거나 허술하다는 느낌이 없을 정도로 공들여 치장된 흔적이 역력하다.

 

 

그리고 성당 외벽에 붙어있던 커다란 태엽시계, 그 아래에서 비둘기들에 빵을 뜯어주던 아저씨는 훌훌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참이다.

 

 

섬세하고 세밀한 조각들로 치장되어 있는 첨탑이라거나 정문과는 달리, 성당의 어느 외벽은 이렇게 지난 세월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나잇살 깨나 먹은 표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노란 반딧불이같은 꼬마전구가 노란불빛으로 터널을 만들었다. 그 너머로 보이는 색색의 휘황한 나무와 수풀들,

아침고요수목원에서 매년 12월부터 2월까지 열리는 '오색별빛정원전'의 풍경이다.

겨울해가 지는 걸 지켜보면 늘 마음이 조급해진다. 차라리 깜깜해지고 나면 맘이 놓이는 석양과의 경쟁. 가평 축령산

계곡이 스물스물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걸 보며 달려간 아침고요수목원, 입구부터 범상치 않던.

입구에 들어서니 사슴 두마리가 반긴다 싶더니, 한 녀석은 빨간코 루돌프인 듯 하고, 다른 한 녀석은 '원피스'의

쵸파처럼 목덜미에 커다란 리본을 매고 있다.

가녀린 미성으로 불렸던 '마법의 성' 가사가 떠오르던 빛무리들이다. 마법의 성을 지나 늪을 건너 어둠의 동굴속

멀리 그대가 보여..어둠의 장막에 빛으로 드리워진 터널엔, 크리스마스 트리에 매달릴 법한 색색의 반짝이는 구슬과

별모양, 눈꽃모양 장식들이 아낌없이 달렸다.


10만평에 이르는 아침고요수목원의 주요 정원, 고향집정원, 분재정원, 하경정원, 하늘길을 지나 달빛정원에 있는

수만그루의 잘 생긴 나무들과 그 나무 형체 그대로 빛으로 되살아난 풍경을 보려면 생각보다 많이 춥다. 다행히도

길목 곳곳에 땔나무를 피워올린 연통 꼽힌 난로가 있어 사람들이 열을 보충하곤 떠날 수 있었다.

참 이쁘다는 말 밖엔. 원체 나무가 이쁘고, 그 나무의 수형과 수세를 잘 살려서 전등을 감아놓은 덕분이다. 다만 하나,

저렇게 전등을 칭칭 감아두면 나무들의 동면과 성장에 방해가 된다고 들은 거 같은데 괜찮으려나 싶었다. 아무래도

수목원 측에서 알아서 잘 했겠지 싶긴 했는데, 나중에야 '오색별빛정원전' 팜플렛에서 관련내용을 찾았다. 옮겨보면,

"LED는 일반전구와 달리 전기에너지를 빛에너지로 전환하는 효율이 높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친환경 전구로,

일반 전구에 비해 점등시 발생하는 발열량도 적어 월동에 들어간 식물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소재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좀 걱정스럽긴 하다. LED 조명으로 '열'이 해결된다 하더라도, 식물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소 하나는

'빛'일 텐데. 이렇게 강한 불빛이 밤 늦게까지 나무에 작열하고 있다는 건. 아, 정원전의 점등시간은 대충 밤 9시까지.

토요일의 경우는 10시까지 점등하는데, 그 정도면 그래도 나무와 인간간의 '타협점'이랄 수 있으려나.

수목원의 핵심부에 있는 대표정원, 하경정원에 들어서는 입구. 사실 말보다 사진으로 전해야 하는 공간이다.

높고 낮은 키의 나무들이 온통 색색으로 물들어 세상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그 와중에 무슨 동양화에서 볼법한

기이한 형상의 소나무들이 둥실둥실 떠있기도 했고, 사람들은 몇 걸음 걷다말고 이내 사진찍기에 몰두하던.


특히 인상적이던 나무 한 그루. 시커먼 어둠 속에서 제 색깔을 잃어버린 나무에 빛으로 제 옷을 입혀주었다.

게다가 형광색의 소담한 열매들까지 주렁주렁.

하경정원의 전경들. 나중에는 살짝 눈이 어른어른해질 정도로 아낌없이 화려하고 호사스런 빛의 향연.


잠시 몸을 녹이기 위해 무작정 쳐들어간 초화온실. 빵빵한 온풍기가 맹렬하게 돌아가고 있어서 금세 몸이 녹고 나니

주변에 꽃과 풀들, 초화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태세를 정비하고 진입한 하늘길. 풍등이나 청사초롱처럼 만들어진 불빛이 굽이길을 따라 사람들을 인도했고,

잠시 후에는 불빛들이 모여 만들어진 신데렐라의 호박마차, 그리고 튼실해 보이는 말 한마리가 나타났다.

원래 봄부터 가을에 이르는 기간에는 이 곳 하늘길 좌우로는 튤립이나 계절별로 화려한 꽃들이 가득하다고 한다.

지금은 그런 생화들 대신 꼬마전구로 만들어진 서양란 같은 화려하고 커다란 꽃들이 피어났다.

그리고 하늘길의 끝에서 이어지는 달빛정원. 쭉쭉 곧게 뻗어올라간 나무들을 따라 담쟁이덩굴처럼 불빛들이 얽혔고,

신비로운 불빛을 타고 올라가던 기운이 뿅뿅, 터지듯 저 높은 가지 끝에서 열매로 맺혔다. 사방에서 새들이 날고

기린이니 코끼리니, 동물들이 열지어 선 가운데 천사가 지키고 있던 새하얀 작은 교회가 저만치 보인다.


교회를 지키고 선 천사들. 사방으로 새가 날고 별이 빛나는 풍경이 굉장히 몽환적이기도 하고 신비롭다.


돌아내려오는 길, 달빛정원 입구를 지키고 있던 노랑색 천사들을 지나는데, 사람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게 느껴진다.

어느새 토요일의 폐장 시간인 10시가 가까운 시간, 오히려 아까보다 바람도 덜 불고 덜 추운 거 같은데 아쉽..

돌아나오는 길. 크리스마스 즈음에 왔어도 정말 분위기 좋았겠다. 이런 수준의 조명이라면, 작년 연말의 심심했던

서울 도심의 루미나리에들 백개를 보는 것보다 훨씬 낫겠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

나오는 길목에서, 한참 눈길을 붙잡던 나무 한 그루. 당당하고 의연하며, 그러면서도 살짝 소슬해보이는.

아침고요수목원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돌아본 수목원의 앞모습. 요모조모 디테일까지 세심하게

꾸며진 불빛들이 눈을 감아도 계속 반짝반짝거리는 느낌.
 







우리 부부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인 것이다.

내나 아내나 제 거동에 로직을 붙일 필요는 없다. 변해할 필요도 없다.

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그저 끝없이 발을 절뚝거리면서 세상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이 발길이 아내에게로 돌아가야 옳은가 이것만은 분간하기가 좀 어려웠다.

가야하나? 그럼 어디로 가나?


이때 뚜우하고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일어나 한 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 날개(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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