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는 항구다, 깊은 밤 산책길에 만난 아크로바틱한 조기들.

에 이어지는, 새벽 이른 시간부터 목포수협 위판장을 찾아간 이야기다. 조기가 풍년이라는 요새 어선들이 쏟아내는

생선이 어떻게 모이고 분류되고 포장되는지를 봤으니 이젠, 그 생선들이 어떻게 경매에 붙여지고 팔려나가는지.

온통 새까맣기만 하더니, 어느덧 희뿌여니 바다 저편의 실루엣이 눈에 띈다. 밤새 뱅글거리며 밤바다에서 있을지

모르는 미연의 사태를 방지하던 소리없는 사이렌 불빛이 이제야 조금 졸음이 오는지 한풀 꺾였다.

구름이 많이 끼어서 또렷하게 해가 뜨는 건 구경하기 쉽지 않겠다 예감했지만, 그래도 제법 구름들에 붉은 물이

슬금슬금 배어오르는 게 시시각각 주위 풍경과 분위기를 바꿔놓고 있었다. 하나도 안보이던 먹장 커튼이 걷히고

점차 멀리까지 시야가 확보되기 시작했다.

5시부터 경매가 시작된다고 했는데 좀 늦었다 싶어서 재게 걸음을 놀리는 와중, 벌써 해안가에 나와서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싶어서 한참 바라보며 걸었는데 어느 순간 그네들이 살짝 떨어져 있는 배들을 낚시질하는

것처럼 보여서 깜짝 놀랬다. 배들이 묶여있는 두꺼운 밧줄이 마치 그들이 늘어뜨린 낚시줄 같이 보였다.

밤에 지나다가 '개 풀어놓았음, 물려도 책임안짐'이라는 살벌한 경고문구에 쫄아서 돌아갔던 곳에는 그새

불이 환히 밝혀진 채 일하는 소리가 요란했다. 알고 보니 생선들을 담는 나무상자를 제작하는 공장이랄까,

좁지 않은 마당 한가득 나무상자가 잔뜩 포개어 쌓여있었고, 새벽바다 냄새에 더해 싱그러운 나왕 나무

냄새가 온통 진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설핏 밝아오는 하늘 아래서 노랑색 낡은 간판 위를 빈틈없이 빼곡하게 채운 자그마한 화분들이 눈에 띄었다.

저 나즈막한 2층짜리 건물 2층에 있는 조그만 창문을 활짝 열면 바다가 멀리까지 보이려나. 눈앞의 화분들 때문에

시야가 약간은 가리거나 초록빛으로 일렁일지도 모르지만, 그 전망도 꽤나 매력적일 거 같다.

아직 경매가 시작되지 않은 창고를 지나서, 시끌벅적한 소리를 따라 그 옆의 창고로 향했더니 역시 사람들이 바글바글.

사람 한명이 겨우 걸어다닐 통로를 드문드문 남기고는 온통 바닥을 몇 겹으로 점령해버린 생선들, 그리고 그 통로에

비집고 서서는 경매인의 손가락들과 생선들로 시선을 옮기기 바쁜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식인 거다. 목포수협 마크가 박힌 빨간 모자를 쓴 경매인분들을 한번 쳐다보고, 그 밑에 지천으로 깔린

셀수없이 많은 생선들의 상태와 크기와 선도를 전문가의 안목으로 식별해내느라 번쩍거리는 눈빛. 금빛으로

번쩍이는 오동통한 조기들은 바다처럼 싱그러운 짠내를 풀풀 풍기고 있었고, 은빛의 긴 칼처럼 번뜩이는

갈치들은 비늘이 벗겨지거나 하는 상처 하나 없이 차곡차곡 포개어져 있었다.


경매에 참여한 사람들은 번호가 적힌 모자를 쓰고 매물에 대해서 제각기의 금액을 말하고, 빨간모자 아저씨는 그걸

다시 확인하며 창고가 울리도록 쩌렁쩌렁하고도 재빠른 목소리로 모두에게 확인하는, 그런 다이내믹한 풍경.

 

 창고 끝에 쌓인 생선들부터 거래가 이루어져서는 점점 옮겨오는 경매인, 그리고 그를 따라 모세혈관같은 샛길을

밟고 신속하고 헤쳐 모이는 사람들. 거래가 끝난 생선들은 리어카나 트럭에 바삐 실리고 있었다. 어느새 점점

부옇게 밝아오는 바다와 하늘.

거래에 나온 건 대풍이라는 조기만이 아니었다. 갈치도 있었고, 복어도 있었고, 고등어니 삼치도 있었고, 심지어

익숙하게 생긴 상어와 이상하게 생긴 상어도 있었다. 거의 '시장에 가면~'으로 시작해 줄줄이 이어지는 무한

돌림노래를 듣고 있는 기분이랄까. 그나저나 마지막 사진의 이상하게 생긴 놈도 상어라니, 신기하다.


그리고 저 녀석. 저 발갛게 달아오른 부분을 보고 '홍어X'이라고 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지나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까 이것도 모르는 딱한 도시사람을 봤다는 투로 '아귀'라고 알려주셨다. 콩나물넣고 찜으로 쪄먹는

아귀 혹은 아구찜 모르냐고 부연설명이 들어가기도 전에, 그럼 저건 '홍어X'이 아니라 '아귀X'이구나 하고

머릿속 정리를 끝내고 가만히 눈에 담아두었다.

아침식사 시간에 맞추려면 이제 슬슬 떠야겠다 싶어서, 마지막으로 외판장 전경을 담고는 자리를 떴다. 수협외판장

앞면에 내려진 철제 셔터막에는 귀여운 거북이들이 곰실곰실.

이제 저렇게 경매를 거쳐 팔려나온 조기와 갈치 같은 생선들이 위판장 근처 생선가게에서부터 깔리기 시작했나보다.

깔끔하게 포장된 조기 상자하며, 진열대 아래로 추욱추욱 꼬리를 늘어뜨린 갈치들. 갈치 꼬리들이 무슨 고드름처럼

진열대에 매달렸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 이미 해가 바싹 떠올랐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오르는 중이었나보다. 시멘트 바닥 위에

올라와있는 배 위로도, 걸쭉한 물결이 이는 불투명한 수면 위로도, 조금씩 저 너머 바다끝에서부터 천천히

그렇지만 거침없이 햇살이 번져오기 시작했다.

갈매기도 날고, 날다가 지친 새들은 햇살을 받으며 바다에 내려앉아 쉬기도 하고. 구름이 좀만 더 옅었어도

햇빛이 좀더 구름의 장막을 뚫고 넓게 배어나오지 않았을까 아쉽기도 하다.


같은 듯 하면서도 조금씩 느낌도 다르고, 수면 위에 이는 고요한 물결 무늬가 불러일으키는 느낌도 달라서

좀체 해돋이 사진이나 바다 사진은 골라내질 못하겠다. 하여, 그냥 핑계김에 전부 올려버리는 게으름을.


그러다가 역시, 제버릇 개 못준다고 또다시 옆길로 새어서는 꽃도 보고, 어느 낡은 건물 벽면에 기대어선 닻도

구경하고. 산동네처럼 언덕을 따라 층층이 올라가는 건물들을 보며 저 사잇길로 돌아다니면 예기치 못한

재미난 풍경들을 구경할 수 있지 않을까 잠시 고민하기도 하고. 결국은 가보지 못한 길을 남겨두었지만.

이런 운치있는 계단을 밟아 올라 열게 될 저런 낡은 대문도 맘에 들었다. 해풍을 맞고 소금기에 절어 눅진눅진

삭아가고 있을 대문 위로 세워져있는 짧막한 창살들도 방범용이라기엔 시늉만 남은, 경비할아버지같은 느낌.





*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에너지체험 블로그기자단'의 일원으로 떠난 출사 여행이었습니다.

목포의 유달산 일출을 찍기로 한 출사 여행이었던지라 저녁 일정은 일찍 마쳤다. 술도 깰 겸 하여 습관처럼

카메라를 둘러메고 훌쩍 혼자서 나온 건 이미 늦은 밤, 그래도 밤 공기도 선선한데다가 바로 옆에 바다를

끼고 걷는 길이 너무 좋아 내처 걸어보기로 했더랬다. 알고 보니 숙소가 위치한 유달산쪽은 옛 목포항이 있던

곳이라나, 몇걸음 걷기도 전에 물결치는 필체로 쓰인 '예향목포'란 돌덩이부터 만났다.

역시 항구도시인지라 길가에 이렇게 닻을 겹겹이 쌓아둔 채 셔터를 내린 상점들도 보이고, 스크류니 프로펠러니

선박에 관련된 장비들을 취급하는 간판들이 즐비하다. 지나는 사람은 고사하고 차들도 흔치 않아 조금 헛헛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혼자 무작정 발길 닿는 대로 밤길을 걷는 건 굉장히 유쾌한 일이다.

나름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선 한밤 중에 단풍놀이도 즐기고. 짭조름한 바닷바람에 절여졌을 텐데도 노랗게 잘도

익은 나뭇잎들이 이쁘다. 그런데 그 밑에 줄줄이 주차해 있는 저 리어카들은 왜 저렇게 바닥이 길게 덧대어져

있는 걸까. 한 두대도 아니고 우르르 세워진 리어카들이 전부 저 모양이니 더욱 궁금증이 이는 거다. 나중에

목포 수협 위판장까지 걷고 나서야 풀린 의문.

목적지를 정해두고 걷는 길이 아니었으니, 골목이 나오면 괜히 한번 꺽어들어가 보기도 하고, 뭔가 호기심을 잡아끄는

게 있겠다 싶으면 옆길로 새보기도 하고, 아니면 굳이 뒤로 되돌아와 확인해보기도 하고. 그렇게 떠도는 중에 지나친

골목 중 하나. 작고 여윈 이층짜리 건물에 문짝은 왜 그리도 많이 달렸는지, 문짝 하나 창문 하나로 이루어진 상점들이

세네개는 들어서 있는 거 같았다. 가로등 불빛을 양분삼아 하얀 스티로폼 상자 속에서 쑥쑥 자라던 상추들도 있었고.

 

정말이지 아무 것도 모르고 문득 다다른 곳이었다. 목포수협 위판장. 불이 환하게 밝혀진 곳이 멀찌감치에서 보이는

거 같아서 그것을 향해 걸었을 뿐이었는데 무슨 마을 잔치라도 벌어진 듯이 웅성대는 분위기에 온동네 사람들이

전부 나온 듯 바글바글한 인구밀도까지. 뭔지 몰라도 바싹 구미가 당겨서 풍경 틈새에 비집고 들었다.


그 결과, 조기가 풍년이라는 요새, 어떻게 어선들이 잡은 생선이 모이고 분류되고 포장되는지 그 과정을 전부

구경할 수 있었다. 더불어 다음날 새벽 5시부터 경매가 진행된다는 정보도 입수해서, 경매가 어떻게 진행되고

어떻게 생선들이 팔려나가는지까지 알 수 있었던 뜻밖의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우선은 경매를 준비하기까지,

생선들이 집하되고 분류되고 포장되는 과정을 시간순으로. 사진은 어쩌다보니 역순으로 찍혔더라는.

어선들이 항구에 배를 가까이 대고 나면, 크레인차가 배 곁으로 바싹 붙어선 단단히 위치를 잡는다. 온통 칠흑같이

어두운 밤바다에서 불쑥 튀어나온 배와 그 우악스런 불빛으로도 충분히 정신이 혼란스러워지는데, 게다가 어디선가

솔솔 풍기는 기름 냄새와 둔중한 기계의 울음까지.

배의 갑판 위에서 잡은 고기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선원 아저씨들. 예비군 모자가 유난히 반짝거리는 젊은이도 있고,

그야말로 뱃사람 느낌이 물씬 풍기는 아저씨도 있고. 옷에 가려 보이진 않아도 그네들의 팔뚝은 두꺼운 근육들로 감겨

사방으로 갈라지지 않을까 싶다. 크레인이 늘여뜨려진 배의 한복판에서 잰 손놀림으로 뚝딱 짐 하나를 꾸린 사람들.


그렇게 잘 여며진 생선 상자들이 크레인의 움직임에 따라 번쩍 들려서는 안전하게 항구 위 단단한 바닥에 옮겨졌다.

두껍고 까만 크레인 낚시바늘이 생선 비늘처럼 반짝거렸지만, 그런 건 일하는 사람이 아닌 놀고 있는 사람 눈에나

보이는 법인가 보다.

한짐을 꽁꽁 안전하게 묶고 있던 두꺼운 밧줄을 헤집어서는 번쩍, 하나씩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옮겨진

생선들은 노란 플라스틱 박스에 부어져서 아주머니들이 분류해주기를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 어찌나 생선들이

많은지, 당연하지만 한마리 한마리 긁히거나 찌그러지지 않게 챙길 여유는 없는 듯 했다. 마치 우유가 담긴

그릇에 씨리얼을 붓듯이 가차없이 부어버리는 그 냉정한 손속이라니.

일렬로 늘어선 아주머니들과 노랑 박스를 무질서하게 가득 채운 조기들과의 기싸움이 시작되고. 아주머니들의

군더더기라곤 없는 정연한 몸놀림과 생각보다 현란한 패션센스에 뒤지지 않는 생선들의 아크로바틱한 자세는

요지부동이었다. 모두 하나같이 입을 쩍쩍 벌린 채.
 

아주머니들은 인어공주처럼 온통 반짝거리는 비늘로 뒤덮인 하반신을 하고 있었다. 창백한 색감의 형광등 아래에서

미끌거리며 반짝거리는 비닐 앞치마 자체의 광택도 눈이 부셨지만. 생선의 사이즈에 따라 각기 다른 상자에 옮겨담는

과정이라고 했는데, 생선들을 분류하는 손놀림에서 일말의 망설임이나 잡생각도 읽어낼 수 없었다. 무슨 '생활의 달인'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달까. 사방으로 날아다니는 생선들은 아직도 숨이 붙어 펄떡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아주머니들이 제각기의 패션센스와 칼라를 과시하며 일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은 왠지 슬며시 웃음이

나오게 되는 그런 따뜻한 풍경이기도 했다. 열두시가 넘은 오밤중에 나와서 쉼없이 저렇게 일하시는 게 그렇게

마냥 재미있는 일은 절대 아니겠지만, 그래도 노랑 박스에 포위당하다시피 한 상태로 끊임없이 새로 부어지는

생선들의 산을 의연하게 해치우시는 모습은, 뭐랄까, 약간 영웅적인 분위기마져 풍겼던 거다.


그리고 그렇게 사이즈별로 분류된 생선을 받아서는 저렇게 가지런히 정리하는 아주머니들이 있었다. 사이즈가

비슷하다고는 하지만 약간씩 자세도 다르고 모양도 다른데, 무슨 테트리스 조각맞추듯이 이렇게 저렇게 짜맞춰선

틀림없이 저런 봉긋한 언덕 모양의 생선박스를 만들어내시는 거다. 그 손놀림 역시 신묘하기가 달인의 경지더라는.

완성된 생선꾸러미엔 저렇게 물을 한바가지 끼얹어서는 창고 맨 뒤쪽부터 차근차근 놓이게 되는 거다.

그 전에 생선의 선도 유지를 위해 빠질 수 없는 얼음 한 삽. 큰 칼 옆에 차고 자세를 잡으신 충무공은 아니라지만

눈삽을 옆에 차고 깔맞춤된 '구루마'에 턱하니 기대선 모습이 어찌나 멋지시던지. 마침 약간 빛살도 새어들어와

머리 위로 내려떨어졌으니 더할나위없는 영웅의 풍모.

이렇게 안에서부터 바싹 붙어선 차곡차곡 채워지는 생선들은 이제 새벽에 있을 경매를 기다리며 네다섯시간을

얼음찜질하는 거다. 물론 이 곳으로 목포 근방의 어선들이 모두 집결하니까 생선량이 어마어마할 수 밖에 없겠지만

얼핏 보기에도 조기가 정말 풍년이긴 한 것 같다. 드넓은 위판장 바닥이 온통 저렇게 빈틈없이 빽빽하게 갈무리된

조기 꾸러미로 깔려 버렸다.

그래도 그 옆에서 수협 위판장 바닥에 대한 나름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던 녀석들은 새우젓 드럼통들. 꽁꽁 묶인

주둥이 사이로 용케도 삐져나온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찔렀다.

보고 나서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던 위판장 벽면의 무슨 전기스위치상자. 손대지 맛시요. 위염. '맛시요'란 말은

전라도의 특징적인 억양을 그대로 살려서 적은 거 같은데 왠지 발음하며 읽어볼수록 맛깔스러운 거 같다.

손대지 맛시요. 알았시요, 라고 얼른 대답해 주고 싶은.

조금이라도 자고 몇 시간 후에 있을 경매 모습을 구경하려면 얼른 돌아가야겠다 싶어서, 이제 목적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숙소. 덕분에 돌아가는 길은 무척이나 짧았고, 생각보다 금방 돌아올 수 있었다.

그래도 돌아오는 길에 그토록 길게 덧대어진 리어카들의 쓰임을 알아냈으니, 생선을 담는 나무상자를 가능한

많이 싣고 옮기기 위한 방책이었던 것. 저런 식으로 '대륙'의 느낌 가득하게 나무상자를 바리바리 싣고는

위판장에서 필요할 때 옮겨와서 쓰는 거 같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이미 자정이 지난 늦은 밤이었지만 시꺼먼 바다를 가르며 불빛들이 나타나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생선을 실은 배인지 아니면 막 내려놓은 배인지 모르겠지만 불빛 세 개가 발톱처럼 수면을

긁으며 앞으로 기어나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는 배가 지나가고 나면 길 옆으론 온통 까만 어둠이다. 빵꾸난 구멍으로 새어나올 법한

불빛 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는 먹지같은 까만 벽이 하나 바닥에서 하늘 꼭대기까지 세워진 느낌. '바다'라는 곳에서

느끼는 막막함과 망연함이란 건 사실 저런 형태 아닐까 싶었다. 제 손가락도 제대로 식별할 수 없는,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도 말할 수 없는 그런 무저갱의 어둠 속. 아마도 밤바다가 웅크리고 있을 그 무시무시한 공간을 옆으로 두고는

열심히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에너지체험 블로그기자단'의 일원으로 떠난 출사 여행이었습니다.
상해엑스포장 내의 한국관, 멀찍이서부터 뽕뽕 구멍뚫린 듯 표기된 글자가 한국관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무래도 포서 지역보다 포동 지역에 중국관을 비롯한 국가관이 모두 모여있는지라 관람객들이 훨씬 많이

바글대고 있었고, 비단 한국관만이 아니라 일본관, 중국관 모두 사람들이 잔뜩 줄을 선 채 입장을 기다려야 했다.

최근에 중국 칭하이에서 큰 지진이 나고 또다시 많은 사람이 죽었을 때, 각 국가관에서 모두 조기를 게양해

비극을 애도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관은 조기를 게양하지 않아 중국 내 반한감정을 건드리는 불씨가 되었단

이야기를 들었다, 믿거나 말거나. 여튼 아이티 지진이 났을 때와는 너무 달랐던 국내의 분위기는 내 생각에도

좀 의아스러울 정도였다. 똑같이 사람 목숨이 날아간 비극이었는데.

벽면 가득 색색의 한글이 차 있었다. 무슨 200자 원고지에 빼곡히 글자를 적어 건물 벽면에 둘둘 바른 느낌.

근데 심지어 그 글자들이 이어져 문장이 된다.

"그림을그릴때눈을반쯤감고그려야좋은그림이나온다가장좋은냄새는학교앞문방구에서방금산책받침냄새다서울서인천까지걸을만하다파송송잘끓인라면을당할음식이없다감싸고보듬으면살아난다남자들은대체로피부가맑은여자를좋아한다 서울은잠을자지않는다흐린날밤산속에서는손바닥도안보인다라면은양은냄비에끓여야한다전기통닭은무맛이다지하철에서나와방향을모를때는맞다고생각하는쪽의반대로가면된다얼짱사진각도는사십오도가아니라사십팔도라고한다 양손을가슴에얹고자면꼭가위에눌린다붐비는식당이맛있다코가닮은사람끼리친하다 계란을좀더오래삶으면껍질이저절로까진다토끼는토끼굴에여우는여우굴에서산다"

1층은 한국기업연합관과 마찬가지로 파시드, 벽면이 없이 기둥만 세워져서 트인 공간을 만들어 두었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5월의 뜨거운 상하이 햇살을 피해 줄을 선 사람들. "닌더펑요따한민구어", 당신의 친구 대한민국.

한국관 벽면은 참, 한글을 가지고 이쁘게 만들어냈지 싶다. 평면으로 글자와 음가들을 배치하기만 한 게 아니라

툭툭 모음과 자음이 튀어나와 있다. 벽면에 빼곡히 들어차다 못해 밖으로 튕겨나오는 듯한 단어들.

한국관 관람은 커다란 대형 패널을 사용한 티비 사이를 걸으면서 시작된다. 한국의 태권도, 영화, 제품, 그리고

미술이니 전통문화 등을 소개하는 영상들, 그리고 연예인들의 축하 노래까지.

녹색 성장을 모토로 잡고 있는지라 역시 녹색 차양이 잔뜩 드리워져있고, 이것저것 뭔가 자연친화적인 냄새를

풍기도록 기획된 것 같다. 기업관에 비하자면 부지가 두배가 넘어서 그런지 공간이 아주 널찍하다.

나무의 느낌을 살린 다른 한켠의 전시공간. 시간이 많지 않아 휘 둘러보고 나오고 말았지만, 따뜻한 느낌의

백열등 조명과 은은한 나무결이 괜춘하다.

한국관 내부의 이동통로에 매달린 등의 갓. 한국어, 영어, 혹은 그림과 기하학적 무늬까지. 한 개만 있으면 꽤나

썰렁하고 어색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여러 개 있으니까 제법 그럴 듯 하다.

한국관의 하이라이트,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엔 이거다. 2012 여수 엑스포를 홍보하는 공간, "자신만의 물고기를

만들어보아요" 던가. 화면을 터치해서 물고기 종류를 고르고, 물고기 등에 업히거나 채울 수 있는 기계 종류를

고르고, 그렇게 물고기를 "만들어서" 바다로 내보내면 위쪽의 커다란 모니터에 본인이 만든 물고기가 유유히

돌아다니는 걸 볼 수 있다는 거다.


뭔가, 익숙한 그림 아닐까. 4대강에 풀어놓겠다는 그 물고기들. 수온 측정하고 오염도 측정하고 하수 방류

감시하는 그 물고기 발언에 이어지는 과학과 조직의 공명이다. 하아. 끔찍해라.

한국관 마지막 전시물은 이 나무다. 설명에 따르자면 한국과 중국을 상징하는 나무 두개가 칭칭 얽혀 올라가는

듯한 모양이라는데(마치 연리지처럼), 글쎄 잘 모르겠다. 그냥 자세히 보면 엽전을 이어붙여서 나무둥치를

만들었구나 정도, 주렁주렁 매달린 종들이 땡그랑대는 것도 그렇고 엽전으로 만든 둥치도 그렇고, 돈 좋아하는

중국인들 굉장히 즐거워하는구나 라는 인상.

그리고 정말 마지막, 요새 트렌드가 워낙 3D 티비 이런거다 보니까 부랴부랴 세팅되었다는 쌈쏭의 3D TV.

아무리 3D면 뭐하나, 콘텐츠가 별로 재미가 없어서, 게다가 안경을 쓰고 멈춰서서 여유있게 관람하기엔 동선도

전혀 배려가 되어있지 않아서 걍 나와버렸다.

크게 중국어로, 그리고 작게 한국어로, 한국관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잘 가라며 다시 만나자며 인사를 건넨다.

안에서 가장 임팩트있었던 것은 그 뭔가를 연상케 하는 불쾌한 물고기 만드는 체험프로그램, 그리고 밖에서

가장 임팩트있었던 것은 이 건물의 외관. 한글의 아름다움을 잘 살리는데 성공한 거 같다.

그리고 한 100여미터도 채 못 가면, A-10 지역. 조선관(북한관)이 기다리고 있다.

엑스포 사상 첫 참가한 'Paradise for people' 조선관(북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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