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편화된 채 무기력한 대중으로부터 '클립토나이트'를 빼내고 모두를 당당한 슈퍼맨으로 각성시키고 싶은 영화." ytzsche.

 

 

한국에서 이름 꽤나 알려진 배우들이 이런 류의 영화를 찍은 건 얼마나 될까. 황정민과 전지현의 러브라인은 전혀

 

기대할 수 없으니 로맨스나 멜로도 아니고, 계속해서 비유가 가닿는 지점들을 생각하게 만들고 해석하게 만드니

 

코미디도 아니고, 그렇다고 실화의 현실성에 기댄 채 눈물을 짜내는 '휴먼 다큐'식의 신파도 아니다. 액션이나

 

스릴러 같은 장르도 더더욱 아니고. 그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순간에 잡아채이곤 그의 삶을 들여다보다간

 

함께 걷는 이야기랄까. 한국의 주류 영화마켓에서 이런 잔잔하고 대중적이지 않을 영화에 황정민이나 전지현같은

 

대형배우가 출현하다니. 그들의 영화 선구안과 용기(?)에 조금은 감탄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영화는 일종의 우화로 다가온다. 스스로를 영웅이라 믿는 가슴따뜻한 바보들의 이야기는 많았다지만, 이 영화는

 

앞서 말했듯 신파나 로맨스나 휴먼다큐의 유혹을 피하면서 동시에 세상을 차근차근 동화속 세상으로 바꾸어나간다.

 

스스로를 슈퍼맨이라 믿는 황정민을 지천에 널린 또라이처럼 여기며 일회성 방송 소재로나 생각하던 전지현이

 

조금씩 마음을 열고 그의 친구가 되어 그와 같이 세상을 보게 되는 것처럼,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세상의 모습이,

 

상식이 낯설게 바뀌는 거다. 계속해서 번갈아 보여주는 황정민의 날고 뛰고 악당과 싸우는 머릿속 슈퍼맨 이미지와

 

옆에서 보이는 누추하고 엉성한 뜀박질과 허공에 휘두르는 주먹질, 어느 순간 어떤 게 진짜인지 알 수 없어졌다.

 

 

그렇게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조금씩 잠식하던 슈퍼맨의 저력은 마지막에 폭발한다. 아이를 구하려 3층에서

 

날아올라 무사히 땅에 착지한 건지, 아니면 무거운 쌀포대가 추락하듯 툭, 땅에 널부러지고 만 건지 잠시동안

 

혼란에 빠지는 거다. 물론 이어지는 후일담은 그가 결국 죽었다는 빼도박도 못하는 현실을 명시하고 있다곤 해도,

 

차근차근 그의 이야기에 스며들었던 그녀처럼 나 역시 황정민이 비로소 클립토나이트로부터 해방되어 날아올랐어도

 

이상할 게 없겠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래서 그가 '자기의 별로 돌아갔다'고 한 전지현 그녀의 대사처럼,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여전히 그는 정말로 대머리악당의 저주와 같은 클립토나이트로 초능력을 잃은 슈퍼맨 아니었을까 싶다.

 

 

게다가 끝내 80년 5월의 광주까지 가닿는 욕심많은 영화라니. 어쩌면 이 영화는 우화나 감동 드라마인 척하며 힘을

 

빼고는 있지만 굉장히 정치적인, 실천적인 영화로 읽히는 게 온당할지 모른다. 광주를 짓밟은 계엄군의 총탄이

 

슈퍼맨을 일반인,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지구인'으로 만든 클립토나이트랜다. 그를 그렇게 만든 악당은 대머리고.

 

위기의 사고 현장이나 어려운 사람 앞에서 모두가 못 본 척 외면하거나 발만 구르고 무기력하게 손놓고 있을 때

 

'슈퍼맨임을 잊지 않은', 슈퍼맨이었다는 그가 먼저 한발 앞으로 나서는 거고. 아래로부터의 민주화 물결이 봉쇄된

 

80년 광주의 상흔을 갖고 기억을 봉인한 한국사회가 무기력하고 무비판적으로 남아있음을 말하는 건 아닌지.

 

 

그렇게 읽는다면, 그런 맥락과 떨어뜨려 놓고도 그 자체로 아름다운 몇몇 영화속 대사들은 새로운 의미와

 

메시지를 담게 되는 것 같다. 예컨대 이런 것들.

 

 

"도와주지 않으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아예 잃어버려요. 그럼 내가 누군지 아예 까먹어버리죠. 악당들이

노리는 게 바로 그거에요. 그래서 난 계속 사람들을 도우려 해요."

 

 

"(전지현이 잡고 있는 줄을 잡아당겨 그녀를 끌어당기며)가 이 줄을 잡아당기지 않았으면 거기 있었겠지.

하지만 이렇게 가까이 와 있어. 미래가 바뀐 거지. 남을 돕는다는 건 바로 이런 거야. 누군가의 미래를 바꾸는 것."

 

 

"커다란 쇠문을 여는 것은 힘이 아니라 조그만 열쇠이다. 우리 모두 열쇠를 하나씩 갖고 있다. 다른 미래의

문을 열 수 있는."

 

 

영화가 굳이 전지현의 남자친구를 몽골로 떼밀어놓은 채 이야기를 전개해서 황-전의 로맨스 가능성을 사전에

 

봉쇄해 버리는 거나, '지구가 더워지고 북극이 녹고 있는' 상황에 대한 지구인들(한국인들)의 자그마한 목소리를

 

세세히 주목하는 거나, 황정민이 끝내 어릴 적 80년 광주에서의 자신에게로 돌아가 길잃은 흉탄을 막아내는 장면을

 

넣은 거나,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이쯤되면 또렷해진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단순히 어느 마음이 힘들고

 

조금은 모자란 사람의 '포레스트 검프' 류의 이야기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무기력하고 파편화된 무기력한 대중으로부터

 

'클립토나이트'를 빼내고 다시금 모두를 당당한 슈퍼맨으로 각성시키고 싶은 영화.

 

 

애초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게 새삼 아쉽다. 그리고, '엽기적인 그녀'와 삼성프린터

 

광고 속 이미지로 성공했지만 그로부터 벗어나는데 끝내 실패했다고만 여겼던-특히 헐리우드 진출작인 '블러드'를

 

시사회에서 보고 나서-전지현 그녀가 이런 영화도 찍었었다니, 하고 뒤늦게 감탄하고 말았다. 2008년작인 이 영화에서

 

그녀는 제법 연기자다운 결기를 보여준 거 같다. 하나도 꾸미거나 이뻐보이려 하지 않는 맨 얼굴의 모습들, 적당히

 

시크하면서도 삐뚤어진 성격을 잘 드러낸 연기, 그리고 너무 과하거나 모자라지 않은 감정의 표현이랄까. 다만

 

목소리의 톤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어쨌거나, 그녀의 결혼을 축하하는 '다시보기'로 좋은 영화 하나 건졌다.

 

 

 

p.s. 전지현씨, 결혼 축하해요~* 앞으로 더 좋은 연기, 좋은 영화에서 많이 보여주시길.

 

(혹시 이 리뷰를 언제고 읽게 된다면 실명으로 댓글이라도 하나 남겨서 의견주시면 좋을 텐데요.ㅎㅎ)

 

 

 

 

 

속이 메슥거릴 정도로 선혈이 낭자했다. 실감나게 토막나버린 팔다리는 말할 것도 없이, 동강난 머리통과

허리째 베여나가 무슨 햄덩어리같은 인체의 신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나중에는 그냥, 영화배우 '레인'이

칼을 휘두를 때마다 썰려나가는 적들의 몸뚱이를 보면서 정육점의 전동회전칼이 생각났다. 윙~ 소리나는

그것에 큼직한 고기를 갖다대면 살이고 뼈고 거침없이 썰려나가는. 아, 물론 약간의 김칫국물이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효과와 외마디 비명소리 정도는 추가되어야겠지만.


액션 영화의 스토리란 거야 뭐, 뻔하니까 딱히 기대하는 것도 없었지만 영화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건

딴 생각이었다. 이 영화에 비, 혹은 레인이 나오지 않았다면 이 영화에 대한 호기심이나 욕구가 생겼을까.

그러니까 이 영화가 관객들, 최소한 국내 관객들에게 '소구'하는 요소는 레인이 주연으로 나온다는 점

이외에 뭐가 있었을까 싶었다. 적어도 난 그랬다. 딱히 액션을 다른 장르에 비해 즐기지도 않고, 새빨갛고

끈적한 느낌의 핏방울이 사방으로 튀기는 비쥬얼이기만 하면 족한 것도 아니었으니. 무슨 흡혈귀도 아니고.
 

영화만 놓고 보자면 그냥 그랬다. 그다지 여운이 크지 않았던 그야말로 살짝 얹힌 드라마, 뻔하고 간결한

스토리, 만화같은 액션, 과도하다 싶을만큼 잔인하게 선정적으로 묘사된 죽고 죽이는 장면들. 결국 그 비쥬얼에

집중해서 그걸로 승부를 보려한 영화였던 것 같지만, 킬빌에서 보였던 핏빛잔혹한, 그렇지만 우아하고 세련된

느낌마저 들었던 영상미보다는 많이 모자라 보였다. 훨씬 잔인하고 리얼하게 많이 죽어나갔지만 뭐랄까,

아무리 대량의 피가 사방에 흩뿌려져도 부담감과 속의 메슥거림 이상의 감정을 느끼기 힘들었다.


아름답지 않았다. 불편하기만 했다. 그래서일 거다. 숱한 고비를 넘기고 그야말로 혈겁의 전투를 계속해온

레인의 몸에 남은 상흔들이 처절해보이고 그래서 아름답고, 그런 종류의 미감을 끄집어내기보다는 그저

너덜너덜해진 '걸레'처럼 보였던 건. '핏빛 아름다움', 뭐 그런 류의 미감을 인정할 수 있다면, 그가 적들과 주고

받는 합들 사이로 번져나가는 붉은 피에서는 그다지 그런 미감이 건드려지지 않았다. 영화가 끝날 즈음 성한곳

하나없이 신체의 전면과 후면 모두 커다란 칼에 뜯긴 자국이 몇개씩 생겨난 레인이 우뚝 선 모습은 징그럽기만

했다.


레인의 연기가 문제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애초에 액션 영화에 액션 이외 연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애초 영화가 추구했던 '미감'의 문제 아닐까 싶다. 어쩌면 영화 자체가 그런 '핏빛 미학'을 추구한 게

아니었던 거다. 그저 난도질하고 죽이고 피가 사방에 적나라하게 튀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지도. 뭐,

그렇다면 기존 헐리우드 영화가 '동양적 소재'에 기대어 그려내려 했던 '핏빛 아름다움'의 정형과는 상당히

다른, 새로운 시도가 되는 셈인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은 그냥 좀 생각없이 만든 삐급영화였던 게지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다.


 
저번에 전지현이 일본식 교복입고 칼휘두르던 '블러드'를 보면서도 느꼈던 거지만, 배우 한 두명이 헐리우드

작품에 나간다고 해서 그들이 '한국' 배우로서의 대표성을 갖는 건지, 헐리우드에서 그들이 '한국' 배우로서

인정받는 건지는 대단히 회의적이다. 그들은 이를테면 '배우 올림픽'에 한국이라는 나라 국가대표로 나간 게

아니라, 그냥 헐리우드에서 필요한 동양적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한 일개 배우인 거다. 괜히 한국 배우의

헐리우드 진출, 이렇게 대서특필하고 주목하고 자랑스러워할 게 아닌 거 같은데. 오히려 헐리우드에서 계속

이런 식으로 소비하고 왜곡해 나가는 '동양', 혹은 '한국'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만 쓰이는 소모품이 되는 건

아닐까. (배우 본인들은 헐리우드 진출의 후광을 업고 돈도 벌고 명예도 얻겠지만.)


이 영화만 해도 오리엔탈리즘에 경도된 동양의 이미지들이 덕지덕지 포장된 거다. 그건 영화가 어색한 이유 중

다른 하나일 수도 있겠다. 한국인 관객들에 익숙한 '동양'의 이미지와 컨텐츠가 왠지 익숙한 듯 낯선 모습으로

헐리우드에서 재구성되고 있으니, 도무지 몰입이 안 되는 거다. ('동양'에 대한 백지 이미지를 가진 미국이나

서구에서야 그냥 그런가부다 하고 흡수되는 이미지겠지만 말이다.) 주로 일본에서 연원하는 국적 불명의

동양적 이미지들, 상당히 강조되어 노출되는 레인의 '동양적 생김새', 가족을 중시한다 여겨지는 '동양적

가치관', 게다가 영화를 보면서 이건 일본관객들이 불쾌해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던 '동양적 복수'의

방식, 묶어놓은 사람에 복수를 한다고 칼질을 하는 것까지. 이제는 클리셰가 되어버린 세탁소의 한국인 주인은

차치하고라도, 마이크를 쥔 힘센 '서양' 헐리우드가 동네방네 '동양'은 이런 곳이야 떠벌리는 꼴이다.


물론 한 술밥에 배부르랴, 는 지적이 나오리란 거야 빤히 예상되는 바이지만, 요는 그거다. 한국배우 한두명의

진출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정말 한국의 국격이니 위상이 중요하다 생각한다면) 헐리우드에서 한국을, 동양을

다루고 소비하는 방식의 단무지스러움을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한국배우들의 헐리우드 진출이

늘어난다고 해서, 그리고 그게 이슈가 되어 해당 영화가 쉽게 홍보된다고 해서 이득보는 사람이 누굴까.

결국 레인이 나온다는 사실만 빼고나면 전혀 잘 만들었단 생각이 안 들었던, 딱히 인상적인 것도 없고 울림이

남는 장면도 없던 별볼일 없는 영화였다고 고백하는 셈이다.




#1.

어젯밤 꿈에 전지현이 나왔다. 그녀는 내 앞에서 해실해실 웃으며 몸을 비비 꼬고 있었다. 전화번호를 따내려고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찾았다. 없었다. 당황해서 가방을 뒤졌지만 역시 핸드폰은 나오지 않았다. 울고 싶은 마음이 되어 그녀에게
 
말했다. 명함 한 장 주세요.


#2.

저번주 목요일 밤부터 2박 3일, 제주도에 다녀왔다. 예기치 않은 일정, 생각지 않았던 장소였다. '올레길'이란 건 뭔가

심각한 고민이나 결정할 사항들을 싸짊어지고 걷는 게 제맛 아닐까 했는데, 가족들하고 도란도란 걷는 것도 좋았다.

덕분에 포스팅거리는 잔뜩 늘었다. 캄보디아도 갈 길이 먼데, 제주도부터 차근히 올려야겠다.


#3.

일요일밤에 만난 군대친구는 부산에서 올라왔다. 벌초하러 갔다 오는 길에 문득 서울행 버스를 탔다고 했다. 밤늦도록

술을 마시면서 또 물었다. "어떻게 살 건데?" 아마도 2002년께 군대에서부터 서로에 대해 계속되었던 질문, 작년에

부산국제영화제 보러 가서 밤새 술을 펐을 때의 대답과는 달랐나보다.


"어쩔 수 없지"라는 말은, 내게서 그가 기대했던 마지막 말이었다고 했다. "어쩔 수 없지"라는 말로 시작되는 구구한 말들,
 
"핑계인지도 모르겠지만"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핑계들. 내가 이미 그 녀석에게 '황소만한 개구리'라고 뻥을 얼마나 잘

쳐놨었는지는 몰라도, 아닌 게 아니라 요새 스스로에 불만이 많다. 자유란 건 단순히 물리적인 시공간에 대한 개념이

아니니까.


#4.

슬슬 바빠지고는 있다. 할 일은 늘어나고, 하고 싶은 건 많고. 당장 이번주 월요일에 있었던 '시사IN 강연회'는

가지도 못했다. 진중권이 강사로 나왔는데, 다음달 출장 준비다 뭐다 바빴다. 오늘도 노종면 YTN노조위원장의

강연이 있는데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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