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인 것이다.

내나 아내나 제 거동에 로직을 붙일 필요는 없다. 변해할 필요도 없다.

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그저 끝없이 발을 절뚝거리면서 세상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이 발길이 아내에게로 돌아가야 옳은가 이것만은 분간하기가 좀 어려웠다.

가야하나? 그럼 어디로 가나?


이때 뚜우하고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일어나 한 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 날개(1936)

* 사회적 논의와 공감대 형성의 과정없이 툭 내던져진 '공정사회'의 기치처럼, 한미FTA도 그렇게 진행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퍼트남이 이야기했던 양면협상의 한 축인 국내협상을 완전히 뭉개버린 그 진척과정에서 쇠고기 검역문제가 터지고 촛불들이 등장했지만, 우리나라에 유리한 '승리한 협상'이라는 강변만 고집하며 은근슬쩍 발효되기만을 기다리겠다는 무대책의 아집만 지속되고 있는 형편.

과연 그게 승리한 협상이었을까. 개별 산업, 개별 계층에 대한 세부 손익이 어떻게 되는지, 그로부터 국내적인 이익 총합이 어떻게 되는지가 여전히 불명료한 거 같다. 피해를 보는 산업, 계층에 대한 지원 대책 같은 것도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 게다가 그 진행과정에서 국민을 몰아세우고 협박했던 노무현 정권이 보인 나이브하고 권위적인 태도도 이명박 못지 않았고, 근본적으로는 자유무역의 기치를 내건 FTA가 정말 모두에게 득이 되는지에 대한 심도있는 고민이 없었던 것 역시 김대중 이래 정권들의 공통점이었다.

해서, 한국과 미국의 국민 대표, 의원들이 10월 18일 공동으로 한미FTA전면재협상을 촉구했다니 그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이름을 기억해 둘 만 하다 싶다. 경제위기가 만성화된 시대, 자유무역만이 최선이라 여겨지던 패러다임이 균열이 쩍쩍 벌어지고 있는 시대에 반응할 새로운 움직임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앞으로의 추이는 지켜볼 일. 재협상은 사실상 시작된 거 같으니, 남은 건 이 정권이 국민의 공리를 위해 복무하는지 한줌 특권 계층의 특혜를 위해 복무하는지가 드러날 거다.

*                                                         *                                                         *




[대한민국 국회]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에게, 


우리는 양국 정상들이 한미 FTA와 관련된 몇 가지 미해결 현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함에 따라 이를 협정문에 대한 의미있는 수정을 가하는 기회로 삼기를 촉구합니다. 우리는 무역협정이 협정 당사국간의 공정하고 균형있는 경제적 교류를 촉진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또한 무역협정은 빈곤을 줄이고, 경제 정의를 지지하며, 건강한 공동체를 촉진하고, 인권을 신장하며, 환경을 보호하는 도구가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양국 정상들에게 이러한 이념이 반영되도록 한미 FTA 협정문을 수정할 것을 촉구하며, 진정한 의미의 21 세기형 자유무역협정을 만드는 최초의 기회를 가지기를 촉구합니다. 


공중보건과 환경을 보호하고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의 정책이 우리 양국 사이의 자유무역협정에 의해 위협받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보건, 노동 및 환경에 대한 높은 기준을 유지하려는 양국의 의도가 한미 FTA 협정문의 문안에 좀 더 분명하게 명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외국 기업들이 자신들의 사업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공공정책을 위협할 위험성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자유무역협정이 공중보건, 식품안전, 노동자와 농민의 권리, 환경 보호를 진전시키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을 것입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한미 FTA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2개의 조항은 투자자-국가 분쟁 제도와 제외품목 열거(negative list) 방식의 서비스 개방 조항입니다.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를 경험한 바 있는 우리들은 금융 위기 상황에 대처하고 금융 위기의 발생을 예방하기 위한 양국 정부의 권한을 유지해야만 합니다. 현재의 경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양국은 예외적인 조치들을 취했는데 이러한 조치가 없었다면 양국의 금융 제도는 붕괴했을지도 모르며 경기 침체는 더 악화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또 다른 금융 위기가 발생했을 때 투자와 금융시장을 규제할 수 있는 양국 정부의 권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미 FTA 협정문을 명확히 할 것을 양국 정상들에게 촉구합니다. 


한국과 미국은 자유무역협정 없이도 지난 10년간 매년 700억 달러에 달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교역을 해 왔습니다. 한미 FTA는 이러한 경제적 관계를 토대로 해야 하며, 이를 더 강고히 하고 양국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체결되어야 합니다. 자유무역협정이 이러한 상호 이익에 기여하면서도 공중보건, 노동, 환경 기준을 기업들의 공격 대상으로부터 보호한다면, 우리를 그러한 자유무역협정을 강력하게 지지합니다. 따라서 한미 FTA 협정의 주요 내용들을 개정하여 공공영역에 대한 기업들의 공격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함으로써 양국 간의 경제 교류와 성장 촉진을 이룩한다는 자유무역협정의 기본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업들의 이해를 유권자의 이해보다 더 중시하는 자유무역협정은 양국의 이상에 따른 합의가 아니라 야합에 불과하며, 우리는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앞으로 공동 노력을 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양국 정상들이 이번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여 한미 FTA를 개선하고 자유무역협정에 관한 새로운 범세계적 기준으로 만들기를 촉구합니다.



[Congress of the United States]



Dear President Obama and President Lee:


As you begin negotiations on several outstanding issues related to the Korea-U.S. Free Trade Agreement (KORUS FTA), we ask that you take this opportunity to make meaningful changes to the underlying text. We believe that trade agreements should foster balanced and fair economic exchange between two countries. Moreover, they should be tools for alleviating poverty, advocating economic justice, promoting healthy communities, advancing human rights, and protecting the environment. We urge you to modify the agreement to reflect these ideals and craft the first, true 21st Century Free Trade Agreement. 


An FTA between our two countries should not jeopardize our governments’ policies to protect public health, the environment, and public service. We ask that the language in this agreement state more explicitly our countries’ intention to maintain our high health, labor, and environmental standards. Doing so will minimize the risk of foreign corporations challenging these policies as burdensome on their businesses. In addition, it will underscore the notion that FTAs can help to advance public health, food safety, workers’ and farmers’ rights, and environmental preservation. In this regard, two particularly troubling provisions are the 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mechanism and the negative list system of services. 


In the aftermath of this worldwide recession, we must preserve our governments’ right to prevent and respond to financial crises. Both of our countries took extraordinary measures to react to the current economic downturn, without which our financial systems could have collapsed and the recession made worse. We urge you to clarify explicitly that this agreement protects our governments’ ability to regulate investment or the financial markets in the event of another financial crisis. 


Even without a free trade agreement, Korea and the U.S. have exchanged on average nearly $70 billion worth of goods and services each year of the last decade. Our FTA should build on this existing economic relationship and strive to make it stronger and more beneficial for both countries. We strongly support an FTA that harnesses these benefits without exposing our health, labor, and environmental standards to potential corporate challenges. Making substantive changes to the KORUS text to safeguard against these challenges will preserve the fundamental objective of the FTA – to promote economic exchange and growth in our two countries. 


An FTA that prioritizes corporate interests over those of our constituents is not an agreement but a compromise of our countries’ ideals, and it is one we foresee working to defeat. We urge you to take advantage of this opportunity to improve the FTA and make KORUS the new global standard in trade agreements.


Sincerely,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는 국민적 화합을 위해 민주주의의 큰 틀을 지켜나가야 한다

우리 국민은 누구나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 앞에서 큰 아픔을 겪고 있다. 그러나 전국 각지에 길게 늘어선 조문 행렬은 단지 애도와 추모의 물결만은 아니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착잡하기 이를 길 없는 심경으로 나라의 앞날을 가슴속 깊이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넘어서서 각계각층의 온 국민이 하나 되어 전직 대통령의 국민장을 치러낸 것을 계기로 우리 모두는 새로운 길을 열고 있으며 또 열어야만 한다.

지난 수십 년간 온갖 희생을 치러가며 이루어낸 민주주의가 어려움에 빠진 현 시국에 대해 우리들은 깊이 염려하고 있다. 작년 '촛불집회'에 참여한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소환장이 남발되었고 온라인상의 활발한 의견교환과 여론수렴이 가로막혔으며, 이미 개정이 예고된 집회 관련 법안들의 독소조항도 시민사회의 강한 비판에 부딪히고 있다.

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 또한 훼손되었다. 주요 방송사가 바람직하지 못한 갈등을 겪는가 하면, 국회에서 폭력사태까지 초래한 미디어 관련 법안들은 원만한 민주적 논의절차를 거쳤다고 말하기 어렵다. 여야의 동의로 지난 3월 미디어발전 국민위원회가 국민적 합의 도출을 위해 출범했지만, 여당 측 위원들이 회의 공개나 국민여론 수렴을 반대함으로써 위원회는 표류하고 있다. 국민 다수가 언론법 처리 강행 방침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이런 흐름은 민주주의의 기반인 언론의 자유를 허물어뜨리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뿐 아니다. 현직 대법관의 '촛불집회' 재판 개입 사건에서 보듯이, 현 정권은 사법부의 권위와 독립성에 대한 국민적 신뢰에 상처를 입혔으며, 그에 따라 재판의 독립을 수호하려는 전국 법관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민여론에 따라 일단 포기했던 '한반도 대운하'는 '4대강 살리기'로 탈바꿈하여 되살아나고 있으며, 지난 십여 년 동안 대북정책이 거둔 성과도 큰 위험에 처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가 목숨을 끊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기본권 보장을 요구할 때 집회의 강제 해산과 노동자 대량연행과 구속으로 맞서는 일 또한 구시대적 대처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정치노선의 차이나 이념의 대립이 아니라 기본적인 인권 존중과 민주적 원칙의 실천이다. 모든 국민의 삶을 넉넉히 포용하는 열린 정치를 구현하는 정부의 노력이 참으로 절실한 시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직 대통령 관련 검찰 수사 과정 또한 이전 정권에 대한 정치보복의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검찰은 국가원수를 지낸 이를 소환조사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3주가 지나도록 사건 처리 방침을 명확히 밝히지 못하고 추가 비리 의혹을 언론에 흘림으로써 전직 대통령과 가족에게 견디기 힘든 인격적 모독을 집요하게 가했다. 이는 엄정한 공직자 비리 수사라고 하기 곤란하며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되돌아보면 지난 1월 용산 철거민 농성에 대한 무모한 진압으로 빚어진 참사는 올해 벌어질 갖가지 퇴행적 사건을 예고했다. 용산 참사의 희생자들은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으며, 검찰이 수사기록 중 핵심적인 대목의 공개를 거부함으로써 재판도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월 22일 서울 서부지법 민사12부가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이 "세입자의 재산권, 주거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한다"며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사실에 주목하면서 현 정부의 근본적인 자기 성찰을 기대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가 전직 대통령에 대한 범국민적 애도 속에 주어진 국민적 화해의 소중한 기회를 잘 살리고 국민의 뜻에 부응하기를 우리는 간절히 희망하며, 다음의 구체적 요구사항을 제시한다.

1.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다. 이 대통령이 스스로 나서서 국민 각계각층과 소통하고 연대하는 정치를 선언해야 한다. 더불어 현 정부와 집권 여당은 다른 정당과 시민사회단체를 진심으로 국정의 동반자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1. 현 정부는 민주사회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1. 현 정부는 전직 대통령 관련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사죄해야 하며, 정적이나 사회적 약자에게만 엄격한 검찰 수사에 대한 근본적 반성과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1. 현 정부는 용산 참사의 피해자에 대해 국민적 화합에 걸맞은 해결책을 제시하고, 경제 위기 하에서 더 큰 어려움에 처한 비정규직 노동자 등 소외계층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현 집권층이 우리 국민 모두의 가슴에서 타오르고 있는 민주적 요구에 대해 진지하고 성의있게 대응함으로써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국민적 화합과 연대를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의 큰 길로 나아가는 전환점으로 삼을 것을 간곡히 바란다.

2009. 6. 3.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는 서울대학교 교수 일동

서명자 명단 (2009년 6월 3일)

강우성 강진호 계승혁 고철환 구명철 구인회 권태억 김길중 김도균 김빛내리 김상종 김세균 김영민 김용익 김월회 김유용 김인걸 김장주 김재범 김종욱 김종일 김진수 김춘수 김현균 김혜란 김효명 남동신 류재명 모경환 문중양 민은경 박경숙 박동열 박명규 박배균 박태균 박현섭 박흥식 박희병 방민호 배은경 배철현 백도명 변현태 봉준수 성노현 손영주 송석윤 신광현 신종호 심봉섭 안광석 안삼환 양동휴 양현아 오명석 오석배 오순희 오용록 우희종 유용태 윤순진 윤여창 윤여탁 윤제용 이강재 이건수 이경우 이병민 이성중 이성헌 이애주 이인호 이일하 이창숙 이철범 이현숙 이형목 임호준 임홍배 장덕진 장승일 전종익 전태원 정근식 정용욱 정원규 정향진 조국 조영남 조현설 조형택 조흥식 최갑수 최권행 최무영 최영찬 최윤영 한상진 한숭희 한영혜 한인섭 한정숙 허원기 홍기선 홍성욱 홍승권 홍재성 홍진호 황상익

김명환(인문대) 김민수(미대) 김정욱(환경대학원) 김현진(인문대) 이건우(인문대) 이근(국제대학원) 이동수(환경대학원) 이상훈(사회대) 이용환(농생대) 이준호(자연대) 장진성(인문대) 전경수(사회대) 최병선(사회대) 최진영(사회대) 이상 124명





#. 이에 대한 청와대 관계자의 반응.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서울대 교수가 전부 몇 분인 줄 아느냐"고 반문하면서 "1700명 쯤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 교수들의 '소수의견'일 뿐이라는 '무시'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090603161708&section=01)

#. 맞는 말이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사태 때 이후 근 5년만에 있는 서울대 교수들의 시국선언이며, 그 때보다도 더 많은 인원이 모였다는 사실을 무시해서는 안 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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