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 6점
월터 아이작슨 지음, 안진환 옮김/민음사

고등학교 때였던가, 문/이과의 커다란 갈래길 앞에서 문과를 택한 이후로 내게 컴퓨터라거나 공학이라거나 IT 같은 것들은

점점 낯선 영역이 되고 있었다. 2000년대 초에 닷컴열풍이 불었을 때라거나, 한국 내의 싸이월드니 아이러브스쿨이니 뭐니

싸이트를 개발한 사람들이 돈을 엄청나게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나 길을 잘못 들었던가, 하고 가볍게 생각했을 뿐.


사실 1999년, 대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컴퓨터를 사고 인터넷을 쓰기 시작한 이래로 그런 기기장치라거나 IT와 관련된

것들은 그저 '주어지는 것'들이었다. 어떤 기반으로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발전 양상이나 추세가 어떤지, 어떻게

더 편하고 그럴 듯한 기능을 추가할 수 있을지 따위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기술'보다는 '컨텐츠'가 중요하다 생각했다.


뭐랄까, 이과생에 대한 문과생의 다소 근거없는 우월감 같은 게 작용했던 거다. 한국의 '사농공상'의 뿌리깊은 이공계

천시는 아니라지만, '기술'의 발전은 당대의 사회적 필요와 철학에 의해 이끌어지며 그 기술을 활용할 알맹이가 있어야

비로소 유의미한 그릇 같은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사회와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생각했다.


지금도 일정 부분은 그렇게 생각한다. 트위터가 마치 세상을 바꿀 1인 미디어의 도래를 알리는 듯 요란을 떠는 사람들이

있었고 넷북이 제3세계의 교육환경을 혁신할 듯 기대했던 사람들도 있었으며, '아이폰'의 도래로 사람들의 생활이 엄청

스마트하게 변할 거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지만, 실제로 세상이 어디 그렇게 변했거나 변하고 있나. 아니다.


스티브 잡스, 그의 전기는 그렇게 '기술'에 대해 무지하고 관심도 없던 내게 제법 재미있게 컴퓨터의 발전 과정이라거나

웹브라우저 표준 경쟁, 기타 IT 디바이스들의 진화와 응용 과정을 보여주었다. 그가 천재라거나 대단한 위인이라고는

생각지 않았고, 지금도 그런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최소한 그의 삶을 따라가다보면 현재의 IT세상이 어느정도 보이는 거다.


저자는 제법 공정하게 스티브 잡스의 성격이라거나, 그의 리더십, 독특한 스타일 등을 묘사하고 있다. 묘사된 내용에

따르자면 스티브 잡스는 동양 철학, 혹은 선(禪)이나 뉴에이지에 영향을 짙게 받았으면서도 본인의 까칠하고 냉정한

성격이나 사회적이랄까 사교적이지 못한 대인 관계를 고수한, 결점 많은 보통 인간이다. 결함이 남들보다도 많아 보인다.


그렇다고 능력있는 CEO였거나 개발자였을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그를 다시 애플로 돌아오게 했던 건, MS와의

싸움에서 일체형, end to end의 폐쇄형 방식을 고수하다 패배했던 그의 고집스러움이었다.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패배하고 이후 여러 시도들이 무위로 돌아갔는데, 아이팟을 필두로 폐쇄형 방식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면서였다.


풍향이 바뀌었을 뿐 아닐까. 우연히, 혹은 자연히 풍향이 바뀌면서 폐쇄적이고 자기만족적인 애플의 잠재력이 부각되었고,

그에 더해 아이팟이니 아이폰이니 아이패드니, 몇가지 아이템을 떠올리면서 이런 대역전극이 벌어진 셈인 거 같다.

잡스가 위대해서라거나, 혁신적이라거나, 천재라거나, 조직을 잘 운영했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마케팅은 잘 했지만.


애플의 이미지가 갖는 '(독재자/빅브라더에 저항하는) 전사'의 이미지, '범속한 대중에 휩쓸리지 않는 섬세한 취향을

가진 생산자'의 이미지 같은 것들이 그런 거다. 그에 더해 그의 극적인 신상품 발표라거나, 특히나 한국의 경우

시대에 뒤처진 공룡 몇마리가 횡행하던 쥬라기공원같은 국내시장에 아이폰이 던진 충격으로 더할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카카오톡같은 어플 하나로 얼마를 벌었네, 페이스북이 기업공개해서 얼마를 벌었네, 하는 기사들, 정확히 말하자면

소위 '대박'꿈을 확대재생산하는 기사들이 쉼없이 쏟아지고 있다. 스티브 잡스의 평전, 그의 평전을 덮으며 얻었던 건

그의 인생을 따라 훑어볼 수 있었던 IT의 발전상, 그리고 (금전적) 성공이 한 사람의 선택과 인생을 어떻게 우상화하는지.


기본적으로 남의 인생, 우연으로 점철되어 굴곡진 인생을 따라 읽으며 배울 점이란 게 있을까. 그의 철학이나 신념이

전면에 드러나는 인생이라고 해도 그럴진대, 마케팅에 능했던 한 기업가의 인생이란 걸 보면서. 매번 이런 류의

평전을 보면서 부딪히는 회의의 벽을 넘지 못했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은 잘 쓰고 있지만, 그의 삶엔 관심없단 결론.



 #1. 시사IN이 어떤 생각으로 특별판을 내는데 합의했을까.

시사IN이 단순히 자신의 명의로 '추석 특별판'을 무려 15만부나 찍는다는 사실에 들떠서, 인지도가 올라가서 앞으로 많이 팔아먹을 수 있겠다고 덥썩 합의하진 않았을 거라 믿는다. 그렇다고, 시사IN이 집회나 거리선전전에서 뿌려짐직한 '(피/아의 식별이) 뚜렷하고 (문제의 해법이) 단도직입적으로 선명한' 그런 본래적 의미에서의 '찌라시'용 글투나 주장에 강하다고 자신했으리라 생각지도 않는다. 설마.

시사IN이 시사저널 때부터 이어온 고유한 특징으로, 또 척박한 한국 언론계에서의 나름 존재의 의미로 자각하고 있었던 것은 건조하고 객관적인 글투, 좌/우 진영논리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차분함과 냉정함 아니었나. 그것이 시사 주간지로서의 본령이자 언론의 기본이라고 믿는 언론사, 언론'기업'이라고 생각했다. 정확한 속사정은 모르겠으되 일단은 어느 모로 보나 추석맞이 특별판, 더구나 선명한 정견을 가진 시민단체의 의뢰를 받아 특별판을 제작하고 배포한다는 아이디어가 너무...뭐랄까, 허를 찌른 나름의 '역발상'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편집권의 소재 문제라느니, 용산참사/4대강 사업 등에 대한 논조 조율의 문제라느니,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대강 그렇다. 애초 왜 시사IN이 그런 특별판을 자신의 제호로 내는데 합의했을까. 특별판의 내용으로만 추측컨대 마치 어정쩡한 상업성 추구와 '먹물'의 '곤조'가 죽도밥도 아닌 것을 만들어내 버린 꼴이다.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순진하게 '광고입네~', '광고 끌어온 기사네~'하고 드러내는 최근의-그리고 그 수는 점점 늘어나는 느낌의-몇몇 기사들과 비슷한 느낌이다. 15만부의 매력, 추석의 대목시장을 놓칠 수 없다는 마음 vs 그래도 나름의 건조하고 분석적인 기사체를 고수하겠다는 마음. 그리고 그 결과는 어정쩡한 '추석 특별판'과 모두의 불만으로 돌아온 듯 하다. 


#2. 시사IN의 정체성은 무엇이라고 내/외적으로 규정짓고 있을까.

그렇다고 시사IN 추석 특별판이 이명박의 거짓 친서민행보를 까고, 4대강과 용산참사에 대한 핏대세운 기사를 담았다면 해결이 되는 그런 간단한 문제도 아니다. 최근 시사IN 기사를 보면 나름 감정이 생생한 '대담'의 방식도 활용하고 조금씩 기사의 열기를 더해가려는 시도가 보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시사IN은 언론 시장에서 상당히 딱딱하고 건조한, 심심하고 지루한 매체로 인식되는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작년 촛불사태 때 시사IN이 거리편집국을 꾸리고 나오면서 시작된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점차 모두에게 유치하도록 선명한 '피/아'의 식별을 강요하는 시대의 문제라는 게 더 맞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시사IN은 뜨거워질 텐가, 아니면 여태껏 견지해왔던 차갑고 냉정한 표정을 고수할 텐가. 이미 시사IN을 아낀다 자처하는 '열혈'독자가 생겨났고, '촛불'들은 시사IN에 대한 이성 이전의 호감을 굳힌 상태다. 그런 단어들, 사실 시사IN의 딱딱하고 무미한 글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시사IN의 롤모델은, 사견이지만 손석희 정도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손석희 정도의 강력한 카리스마는 '추석 특별판 15만부'로 희석되고 휘발되는 무딘 정체성과 감성, 고민에서 나오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3. 시사IN은 인터넷 소통을 포기할 참일까.

이곳에 종종 글올리는 걸 즐기는 1人으로, 이번 '추석 특별판' 문제가 불거지고 벌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조마조마했는데 역시나다. 느리다. 느리고, 무뚝뚝하다. 느리고, 무뚝뚝하고, 고압적이다.

문제가 제기되고 많이 지나서 '시사IN 기자' 한분이 댓글을 달았다. 더 궁금하면 편집국에 전화하란다. 이건 아니다. 시사IN 홈페이지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가. 시사IN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없고 관심도 없는 사람이 여기까지 와서 글쓰고 댓글달고, 그러지 않는다. 최소한 부정기적인 가판대 독자거나 정기 구독자, 못해도 (광범한 의미에서의) 심정적 지지자다.

편집국장의 편지에서 자랑스럽게 '온라인팀'의 신설을 알렸다. 온라인의 특장은 신속성과 양방향성이다. 아직 가동되지 못했으니 조금만 더 참아달라고 말하기는 민망할 거다. 댓글 단 기자님께는 그나마 '전화하라'는 댓글이라도 달아주어서 감사할 지경이다. 인터넷 공간, 인터넷 공간에서의 소통에 대해 이 정도로 무심하고 시크해서야. 그래도 내 페이퍼 독자에겐 따뜻하겠지, 라고 위로할 수는 없지 않은가. 기사를 차갑고 무겁게 쓰는 건 (개인적으로) 환영이지만, 소통에 있어서까지 그래서야 곤란하다. 지겨운 단어, '소통'이다.

아직까지 시사IN이 왜 '추석 특별판'을 내게 된 건지, 사실 확인 자체도 할 방법이 없다. 인터넷을 활용해 '소통'해라, 정도의 팁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이런 정도로 일이 퍼지고 커지기 전에 무언가 공식적인 입장 표명과 사실 확인이 있었어야 하는 거 아닐까. 문제가 처음 제기된 이곳은 '시사IN 놀이터'지 '버려진 놀이터'는 아니지 않은가.


*                                                           *                                                           *

원래는 블로그에 쓴 글을 시사인 홈페이지(http://www.sisain.co.kr/)의 '자유게시판'에 옮겨 올리는데,

이번엔 순서가 바뀌었다. 검색엔진에서 '시사인', '추석', '특별판' 따위 검색어로 찾아보면 대체 무슨

사건인지 알 수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시사인이란 주간지가 추석 때 특별판을 언소주 등 시민단체의 의뢰로

15만부 찍어냈는데, 애초 의뢰자들의 의도와는 달리 매우 불분명한 논조의, 주제도 합의된 대로 나오지 않았다

한다. 사실 관계는 아직 모르겠지만, 가장 압도적인 상념은 그거다.


시대가 하 유치하여 그야말로 선명한 '피아 식별'을 요청하고 있다. 빨간 색과 파란 색 가득한 촌스러운

태극무늬 단면 위에서 뛰노는 게 아니라, 한뼘쯤 떨어져서 주변의 사괘도 구경하고 하얀 바탕도 감상할 만한

여유, 그런 메타적인 시각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단순히 시민단체의 요구가 그랬다는 거 때문이

아니라, 시사인이 그런 '찌라시'로서의 역할을 자처한 것 때문이다. 그게 시대적 위기의식의 발로였던,

아니면 상업적 위기의식의 발로였던간에.)




약사

근대 약사

○ 1517년 오스만 터키 지배

○ 1869년 수에즈 운하 개통

○ 1922년 영국의 보호 통치기 종료, 이집트 왕국으로 독립

○ 1948년 이스라엘과의 제 1차 중동전쟁에서 중동 아랍국가 패배

○ 1952년 자유장교단 혁명을 통한 네기브(Neguib) 정권 수립

○ 1953년 군사 쿠테타 이후 공화정 수립

○ 1954년 나세르(Nasser) 쿠테타를 통해 집권

○ 1956년 제2차 중동전쟁 발발

○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발발

○ 1970년 나세르 대통령 사망 후 부통령 사다트(Sadat) 대통령직 승계

○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발발

○ 1981년 사다트 대통령 암살 후 부통령 무바라크(Mubarak) 대통령직 승계

○ 1982년 이스라엘의 시나이 반도 반환

○ 1987년 무바라크 대통령 재임

○ 1989년 이집트 아랍연맹 복귀

○ 1993년 무바라크 대통령 3선 당선

정치 개황

이집트의 정치 동향

○ 정치적 안정성

- 1981년 집권에 성공한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 대통령 은 2005년 9월 역사상 처음으로 실시한 직선제에서도 승리함으로 써 2010년까지 임기를 보장 받았고 군부의 지지도 받고 있으며, 의회에서는 집권 국민민주당(NDP)이 2005년 11월 총선에서 원내의석 70%(311석)을 확보하면서 여당에 권력이 집중된 상태임.

- 여당은 2007년 3월 헌법 211개 조항 중 34개 조항에 대한 개헌 안을 통과시키면서 야당인 무슬림형제단의 정치진출을 억제하고, 무바라크 대통령의 차남 가말 무바라크(Gamal Mubarak)에게 정권을 이양하는 노력을 강화하고 있음.

○ 무바라크 대통령이 장기집권하고 있고, 헌법개정을 통해 선거감독에 대한 서법권 소멸, 정당소속의 의무화, 종교 세력 지지기반 정당의 불법화 등을 선언하는 등 반민주적 조치가 취해지자 민주화 및 정치 개혁에 대한 열망이 더욱 커져가고 있는 상황임.

○ 2008년 연평균 물가상승률이 18.3%에 달했고 2009년에도 물가상 승률이 10%대를 유지하고 있어 서민층의 정부에 대한 불만이 팽 배해 있고 관련 시위도 간헐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나 정권을 위협 하는 수준으로는 발전하고 있지 않음.

- 사법부 및 반대 세력에 대한 이집트 정부의 통제가 효율적으로 작 용하고 있고, 무슬림 형제단을 비롯한 반대세력의 경우 계파 별로 분열되어 있어 당분간 현 정권의 실질적인 대항세력으로 부상할 가능성은 낮은 상황임

- 차기 대통령 선거(2011년 9월)까지 큰 정치적 혼란은 없을 것으 로 전망되며, 현 정부도 차기 대선을 위한 권력 이양 작업에 치중 할 것으로 보임.

외교

대외정책의 기조

○ 대외적으로는 온건 친 서방 비동맹 외교노선을 지속적으로 견지하 며 중동지역 민주주의 실현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자생적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고 이란의 역내 세력 확대 가능성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갖고 있음.

- 이집트는 지정학적으로 중동 이슬람 문화권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 이고 석유의 보고 페르시아만과 인접해 있으며, 아랍-이스라엘간 의 평화 회담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

- 또한 아랍과 무슬림 세계의 지도적 국가로서 국경을 넘어 중동 여 러 인접국가에 정치와 종교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끼쳐 왔음.

이집트-미국 관계

○ 미국과는 전통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으로 부터 매년 대규모 경제, 군사 원조를 받고 있음.

- 미국은 이집트를 미국의 아랍지역 정책 수행의 보완 및 동반자로 활용하는 대신 이집트는 미국으로부터 매년 20억 달러 가량의 재정 지원을 받고 있어 양국 간 관계는 당분간 큰 변동이 없을 전망임.

- 무바라크 대통령 후계자 역시 미국과의 관계를 크게 흔들지 않을 것으로 보이나, 차남 가말이 집권하면 이집트에 정치적 자유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되면서 미국과의 관계의 변수로 작용 할 전망임.

이집트와 그 외 국가들의 관계

○ EU와는 지리적으로 근접하여 경제적으로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 지하고 있으며, 이집트의 탈 서방 정책의 일환으로 러시아와 중국 과의 관계가 진전되고 있는 상황임.

○ 2008년 3월25일 이집트 무바라크 대통령은 러시아를 방문하고 러 시아 푸틴 대통령과 푸틴의 후임자로 러시아 대통령에 당선된 드 미트리 메드베데프와 중동 평화 문제를 포함한 각 종 국제 사회 문제를 논의하며 양국의 동맹을 더욱 강화하기로 합의하였고, 이 집트와 러시아 간 핵에너지 협력 협정을 도출하였음.

○ 중국의 경우 2006년 6월 원자바오 총리가 이집트를 방문하여 상 호 경제 협력 협정을 체결하였고, 외국인 투자 유치 확대, 탈 유럽 을 통한 아시아 국가와의 관계 증진을 위한 이집트의 노력과 에너 지 자원 확보에 총력을 다하고 있는 중국의 이해관계가 상호 일치하고 있음.


이집트 체류 정보

치안 및 유의사항

이집트는 비교적 치안이 안정적인 편이며 외국인에 대해서도 호의적임. 다만 외국인을 상대로 한 바가지 씌우기, 소매치기 등에 주의 요망.

- 일단 분실된 소지품은 찾기가 어려우니 사전에 분실되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이 최선임.

○ 최근 이라크 등 중동정세 관련, 한국, 미국 등 이라크 파병국 국민에 대한 반감이 있는 바, 이집트 국민을 자극할 수 있는 발언 (특히 정치, 종교)은 삼가야 함.

○ 이집트는 별도의 신호등이나 횡단보도가 없으며 현지인들의 운전습관이 난폭하여 길거리 무단횡단시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함.

-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으므로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임.

○ 거리나 대중음식점에서 판매하는 음식이나 음료수를 함부로 섭취해서는 안 됨. 특히 음료수는 탄산음료나 정화된 물 이외에는 가능한 마시지 않는 것이 좋고 식당에서도 국물이 포함된 식사메뉴는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음.

기후

봄철은 3~4월 중 짧게 나타나고 거의 겨울에서 여름으로 바로 바뀌는 기후변화를 보이며 4월말경이면 우리나라의 6월 상순에 해당하는 더위가 시작됨.

5~9월말이 여름철로 한낮의 기온이 30도를 넘으며 6~9월의 혹서기에는 38-45도 사이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날씨가 지속됨.

1년중 국지적인 특성으로는 매년 3~5월 사이에 ‘까마신’이라는 사막의 열풍 및 모래바람이 부는데 엄청난 먼지를 수반함.

환전

사용화폐

- 통화단위 : 1 파운드(Pound) = 100 피아스타(Piasta)

- 지폐 : 200, 100, 50, 20, 10, 5, 1파운드, 50, 25 피아스타

- 동전 : 25, 20, 10, 5 피아스타

○ 환전 : 시중은행 및 환전소, 호텔에서 환전가능

- 환율 : 1.00 USD = 5.51800 EGP (2009년 9월 현재)

- 사설환전소의 경우도 은행 환율과 거의 비슷함

- 역환전 : 출국시 이집트화를 달러로 재환전할 경우, 처음 환전시 증빙서 필요(이 경우 하루 30불 이상 지출했다는 것이 입증되어야 함)

국제 전화

일반전화 이용시

- 00(국제전화) + 82(한국 국가코드) + 2(서울 지역코드) + 번호

- 호텔에서 이용시에는 외부전화 9번을 누른 후 전화번호 입력

수신자 부담 데이콤 전화 이용시

- 365-5641를 누르면 안내방송이 나옴.

- 안내방송에 따라 교환원과 연결 후 원하는 전화 번호 통보

국내 또는 국제통화는 룸이나 호텔 1층 로비에 문의, 사용 가능하나, 비용이 매우 비쌈.

공중전화 사용이 가능하나 설치 지역이 드물어 이용이 매우 불편함.

시차 및 서머타임

이집트의 시차는 GMT+2

리나라와 시차는 KST-7시간으로 한국이 24:00시일 때 이집트는 같은 날 17:00시임.

현재 서머타임이 해제되어 한국과의 시차는 7시간임.(서머타임 중에는 한국이 24:00시일 때 이집트는 같은 날 18:00시가 됨)

전력 및 인터넷 환경

○ 인터넷 환경 : 일부 ADSL이 사용되나 주로 모뎀을 사용함.

○ 전력사용 현황 : 220V/50Hz 사용

- 콘센트 타입은 한국과 같으나, 모터를 사용하거나 강한 열을 내는 전자제품의 사용은 멀티플러스 사용 요망

주요언론

○ T V : 이집트국영방송(채널 1,2,3)

- 유료위성방송을 통해 여러 나라 방송(BBC, CNN 등)을 시청할 수 있으며 한국의 KBS월드, 아리랑 TV 시청 가능함.

○ 신문과 잡지

- 신문과 잡지는 이집트 공용어인 아랍어 외에도 영어, 불어로도 발간되기도 하며 외국의 유명 신문 및 잡지(New York Times, Herald Tribune, Newsweek 등)도 시내 곳곳에서 쉽게 구입 가능

- 주요일간지 : Al Ahram, Al Akhbar, Al Gomhuriaw, Al Wafd 등

팁 문화 및 교통편

팁 (박시시)

- 팁이 생활화 되어있으며 대체적으로 5파운드 정도가 적절함

- 호텔과 레스토랑 등에서는 이미 계산서에 서비스 요금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팁을 지불할 필요는 없으나 포터나 웨이터들에게는 1파운드 정도를 주는 것이 좋음.

교통편 안내

- 시내 교통편으로는 일반적으로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함.

- 사전에 요금 협상하여 승차하는 것이 좋음.

- 요금은 근거리 5파운드, 15~20분 거리는 10~15파운드 정도임.

교통수단

○ 항공

- 국제선․국내선 모두가 연발착이 잦은 편이므로 72시간 이상 이집트에 체류할 시 반드시 예약 확인이 필요하며, 출발 시에는 최소한 2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하여 출국을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

철도

- 철도는 이집트 철도청에서 관장하며 총 연장 약 5천 Km로 주요 도시와 연결되어 있으나 카이로-알렉산드리아 구간 등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권장할 만한 교통수단이 되지 못하며, 특히 남부 지역은 치안이 안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철도 및 자동차를 이용한 여행은 삼갈 것.

○ 버스

- 버스는 미니버스, 시내버스, 장거리 버스 등으로 구분. 시내버스는 요금(0.5 이집트 파운드(약 0.2불))은 싸지만 매우 혼잡함.

- 미니버스는 일정 지역 구간을 운행하나 정해진 목적지가 없으며 구간에 따라 요금이 차등 적용됨. 장거리 운행 버스는 카이로 시내 TAHRIR 광장 및 람세스역에서 출발, 알렉산드리아, 포트사이드 등 주요도시와 시나이 반도, 후르가다 등 주요 도시 연결함.

○ 지하철(Metro)

- 1-3호선이 있으며, 역명이 영문 알파벳으로 표기 되어있어 초행자의 경우에도 이용이 비교적 편리함. 열차의 첫 번째 및 두 번째 칸은 여성 전용임.

○ 택시

- 택시는 호텔 앞에서 관광객 상대로 운행하는 리무진과 '우그라' 라는 일반 택시가 있으며 미터기가 부착되어 있으나 거의 사용되지 않 고 있음(이집트인의 경우에도 동일). 특히 외국인의 경우에는 별도 요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탑승 전 미리 흥정이 필요함.

종교활동

○ 이집트는 이슬람 국가이나 외국인들의 종교 활동에 특별한 제한 을 두고 있지 않음.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자말렉, 헬리오 폴리스, 마아디 등)에는 성당, 개신교회 등이 있어 종교 활동(예 배)에 큰 불편이 없음.

- 카이로에는 2개의 한국인 교회와 성당이 있어 비교적 자유롭게 종 교 생활을 영위하고 있음.

○ 그러나 선교사활동은 일체 인정하지 않으며, 엄격히 제한함. 특히 무슬림의 샤리아에 의해 무슬림에 대한 선교활동은 역시 엄격히 제한되고 있음.

대인관계 문화

○ 이집트인들은 인사할 때 주로 악수나 양 볼에 입 맞추는 정도이나 아주 친밀한 사이일 경우에는 껴안기도 함.

○ 대부분의 이집트 국민들은 이슬람 율법에 따른 종교생활(1일 5회 예배 등)을 하므로 이들의 종교생활을 해치는 행위는 삼가 해야 하며, 너무 짧고 노출이 심한 옷은 피하는 것이 바람직함.

○ 종교에 따른 금식기간인 라마단은 이슬람력으로 아홉 번째 달에 시행되며 태음력에 기초하므로 해마다 시기가 약 11일씩 앞당겨지 는데, 2009년의 경우 라마단은 8월 21일~9월 19일이었음.

- 라마단 기간에는 일출에서 일몰시까지 금식하는데, 이곳 사람들이 철저히 지키는 종교행사이므로 현지인 앞에서 음식을 먹거나 음주, 흡연 등은 삼갈 것.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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