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드 호수를 천년동안 내려다보고 선 블레드 성은 무려 100미터 높이의 절벽 위에 자리한 옛성이다. 올라가는 길은 이리도 험하다.

 

 

 

이런 휘장, 중세 시대 성벽에 나부낀다거나 기병대 간의 전투가 벌어질 때 뿔피리 소리가 들리면 하늘로 올라가는 그런 깃발이다.

 

 

조금 가빠진 숨을 가누며 성 안에 들어서면 블레드 호수와 그 주변을 둘러싼 호텔이니 레스토랑이니 까페들이 한눈에 내려보인다.

 

 

그리고 옛날에 쓰였을 우물이니 초소니 건물들이 생각보다 훨씬 촘촘하게 성 안에 자리잡고 있다. 나름 굉장히 집약적인 공간활용.

 

 

그리고 성벽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블레드 호수의 한쪽 둔덕. 잔뜩 찌푸린 하늘 아래에서 되려 촉촉한 느낌의 풍경이다.

 

 

 

그리고 호수 한 가운데 있는, 아무래도 롯데월드의 매직아일랜드는 이걸 참조한 게 틀림없다고 확신하게 만드는 블레드 섬.

 

블레드 호수 주변에 있는 높고 낮은 구릉들은 관광객들이 즐기는 트레킹 코스 여러곳을 품고 있다고 한다.

 

단 이렇게 흐리거나 비가 왔거나, 최근에 눈이 많이 와서 길이 중간중간 끊겨있는 경우에는 입산 통제.

 

 

이때만 해도 아직 비가 오지 않아서, 저렇게 꼬물꼬물 조그마한 배가 블레드 섬에 오가는 걸 보며 나도 저걸 타면 되겠구나, 했는데.

 

 

 

 

동전을 넣으면 기념주화로 바꿔준다는 조그마한 프레스기. 궁금하긴 했는데 나 이외엔 여행자도 안 보여서 걍 포기.

 

 

덩굴손이 건물 외벽을 꼼꼼히도 감싸버린 운치있는 옛 건물은 빨간 지붕조차 적당한 느낌으로 퇴락했다.

 

성 내에 있는 '대장간' 공간에서 여전히 쇠를 만지며 이러저런 기념품들을 만들어내고 있나 보다. 역시나 용의 형상이 지천이다.

 

성 안에 있는 역사관이나 유물관 같은 데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옛 시절의 용 이미지들.

 

 

이렇게 생긴 사람들이 블레드 성과 호수 주위에서 수렵을 하고 농경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던 때에도 역시 드래곤이 짱.

 

 

성의 창문 밖으로 보이는 조그마한 블레드 섬. 그리고 그 너머 더욱 꾸물거리는 하늘.

 

 

대장간 내부에 들어왔더니 망치와 모루, 그리고 온갖 공예품들과 장식품들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요녀석이 땡겨서 슬쩍 만져보기도 하고 가격도 물어보고 디스카운트를 시도하다가 실패. 깨끗하게 포기. (너무 비쌌다)

 

 

그리고 성 안에 있는 성당. 제단 위에 있는 미니멀하고 현대적인 느낌의 성모상이 너무 맘에 들어서 슬쩍 사진을 찍었다.

 

비가 오기 시작했고, 나는 망루 같은 곳에 잠시 기대어 비가 금방 그치지는 않을지 가늠해봤지만, 갈수록 굵어지는 빗발.

 

그 와중에 눈에 들어온 망루 주위를 두른 울타리랄까, 비둘기와 하트 문양이 번갈아 교직하는 그런 하얀 울타리.

 

 

블레드 성의 입장료는 8유로, 그런데 티켓에 1.5유로 짜리 쿠폰이 붙어있어서 레스토랑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음식을 사먹을 때

 

할인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제일 쌌던 커피가 3.5유로였던가 하여 결국 돈을 더 쓰게 만드는 마법의 쿠폰.

 

그리고 블레드 성에 가게 되면 꼭 들르라고 강추하고 싶은 와인 저장고! 중세 수도사처럼 생긴 수염 북실북실한 아저씨가 직접

 

오크통에서 와인을 병에 옮겨담아서 저렇게 마개를 하고 라벨을 붙여서 마지막엔 봉인까지 해준다.

 

그런 특별한 와인 말고도 슬로베니아에서 나는 온갖 와인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는데 인근 지역에서 '블레드'의 이름을 내걸고

 

만든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들도 꽤나 많이 보였다. 가격대도 다양하고, 아저씨도 굉장히 친절하고 수다스럽게 와인도 소개해주고

 

북한의 핵실험과 일본/중국의 단체여행객이라거나 싸이에 대해 이야기도 많이 해주고.

 

최근엔 일본의 단체여행객들이 깃발을 하나 들고 우르르 왔다갔다 하는데 시즌이고 뭐고 없이 엄청 많이 온다고 하길래,

 

이제 이삼년 후면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올 거라고 지금부터 한국어 한두마디는 연습해두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해줬다.

 

그렇게 아저씨랑 실컷 떠들며 한잔 따라주신 와인을 홀짝대다가, 결국 와인 한병을 사들고 뚜껑을 따달라고 부탁해선

 

더욱 거세진 빗발 속으로 나왔다. 아무래도 비는 그칠 기미가 없고, 와인을 한 병 들었으니 뭐 딱히 걱정할 것도 없고 하여.

 

 

 

 

 

국립중앙박물관의 기획전시, '천하제일 비색청자'展.

 

중국에서 천하제일(The Best under Heaven)을 꼽으며 그 중 하나로 고려청자의 비색을 들었다는 인용구가 아니더라도,

 

청자의 빛깔(色), 형태(形), 그리고 상감된 그림들은 하나하나 눈여겨보며 곱씹을 만한 것들이다.

 

 

이 정도의 국보급 청자들이 한자리 모인 기회를 찾아보기 쉽지 않은 건, 대부분의 문화재급 청자들이

 

해외-대체로 일본-에 반출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시는 10. 16~ 12. 16까지.

 

 

총 4부로 이루어진 전시장을 들어서는 순간, 청자의 쪽빛으로 펼쳐진 풍경들. 아마 청자에 그려진 문양들을 따온 듯 낯익다.

 

 꽃을 따르는 나비의 화려한 자태.

 

 

 다기의 한 종류인 완에 새겨진 기사, 라는 연호. 은은한 비색이 우아하다.

 

 예전에도 한번 봤었지만, 청자로 기와를 얹었다는 건 대체 얼마나 사치스럽고 화려한 분위기를 자아냈을까.

 

 

 기와 말고도 이렇게 담장 등에 장식이 되었다는 물방울 모양의 장식품도 얹혔었다고 한다.

 

 

 과하게 쓰이지 않은 금칠, 그리고 분방하게 만들어진 듯 자연스럽지만 세련된 뚜껑까지.

 

'콜라병 몸매'란 표현보다는 '고려청자 몸매'란 표현은 어떨까 싶을 정도로 곡선이 아름다운 병.

 

 

 학이 한마리, 구불구불한 꽃나무와 구름 사이를 날아가고 있다.

 

 

 이런 형태는 대체 어떻게 고안해내고, 어떻게 빚어냈을까. 색깔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눈에 익은 참외모양 청자. 주둥이의 저 물결치듯 리듬감넘치는 모양새라거나, 굽쪽까지 내려가는 봉긋한 곡선.

 

 

 1부, 2부에서는 청자의 역사라거나 여러 대표적인 제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그중엔 청자 베개도 있었다.

 

 이런 청자 베개를 베고 자면 특히 한여름에는 머리가 시원하니 건강에도 좋을 거 같고, 만족감도 높을 거 같다.

 

 그리고 청자로 빚은 의자. 평상시에도 앉을 수는 있겠지만 주로 바둑 같은 걸 즐길 때 앉는 의자였다고.

 

 그리고 청자로 빚은 주사위까지. 유약 덕분에 적당히 동글해져서, 부르마블같은 거 할 때 저 주사위를 쓰면 좋겠다.

 

 게다가. 사치의 정점이랄까. 청자로 빚은 변기. 12세기에 만들어진 이 청자변기에는 심지어 연꽃무늬까지 그려져 있다.

 

길게 뻗은 고무신같은 느낌이기도 하지만, 적당히 오므려져 일을 볼 때 사방에 튀는 걸 방지하는 실용성까지 겸비한 듯.

 

은실이 입사된 청동경대의 동그런 거울판이 반질반질, 진짜 유리거울처럼 말갛게 반사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화장품들을 담는 통들도 청자로 만들어졌는지는 상상도 못했다. 자그마한 통들에 분이나 액을 담아 썼을 듯.

 

그리고 약사발. 초등학교 때 과학시간에 쓰던, 그리고 약국에서 쓰이는 그거랑 거의 비슷한 형태지만 '고려청자'라는 거.

 

 

 고려시대에는 불상이나 동자상들도 청자로 빚기도 했다는 설명과 함께, 조금은 생소한 분위기의 인간상들도 전시되어있었다.

 

 

 

 그리고 정병. 불교에서 쓰이던 제기의 일종이라고 해야 하나. 여느 청자들보다 맑고 연한 빛깔이 순하다.

 

대범하고 세련되게 그려진 국화꽃과 이파리들의 문양이 자기면을 온통 휘감았다.

 

 

 가느다란 목과 위아래로 봉긋하게 부풀은 모양, 우아하게 굽은 주둥이가 아름답다.

 

 청자 시대였다고는 해도 이렇게 거칠고 투박한, 게다가 색감도 독특한 자기가 생산되기도 했나보다.

 

 

 

 곱게 발린 유약이 자잘한 균열을 자기 위에 살짝 끼얹어주어서 더 운치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나 감탄했던 뚜껑 중 하나. 저렇게 섬세한 표현에 독특한 장식이라니.

 

 

 

 청동 은입사 포류무늬정병. 이건 예전에 고려 불교문화 관련 전시때 봤던 거 같은데. 참 우아하다.

 

 

소나무 그늘 아래 앉아 쉬고 있는 학과 사람을 그려놓았는데, 저 소나무의 대범한 구불거림이 참 인상적이다.

 

 

 

무령왕의 영면을 지키는 청룡, 왕이 뉘어진 동쪽벽에 그려져 있다.

무령왕릉, 백제를 중흥시킨 몇몇의 왕중에서도 손꼽히는 왕인 무령왕이 묻힌 곳이다. 그가 실제로 어떻게

생겼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저 유추해보건대 저렇게 생겼으리라는 게 박물관측의 조심스런 추측.

백제 무령왕릉의 특징은 중국 남조로부터 전래되었다던가, 일정한 사이즈의 벽돌을 촘촘이 쌓아올린 과학적이고

탄탄한 벽돌무덤이었다고 얼핏 국사 시간에 배웠던 거 같다. 무덤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은 언제나 살짝

으스스하다, 그게 실제 무덤이건 모형이건 간에.

그리 넓지 않은 벽돌무덤 공간의 사방에 서서 나머지 삼면을 찍어보겠다고 기를 쓰고 벽 틈새로 몸을

부비적댔지만 쉽지 않다. 서늘하고 교교한 램프의 불빛이 벽돌 틈새로 걸쭉하게 흘러내리는 거 같았다.

제각기 독특한 문양이 새겨진 벽돌이 정교한 가로세로 비례에 따라 아귀를 맞춰서 배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두 장의 벽돌을 합쳐서 저렇게 연꽃무늬가 떠오르는 식의 벽돌이란 건, 실제로 어떻게 쓰일지

어느 방향으로 배치될지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준비가 있었단 얘기 아닐까. 우아하고 세련된 느낌에

더해서 섬세하고 정교하기까지.

고분들이 그려내는 저 안온하고도 푸근한 선은 볼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인공적으로 쌓아올린 흙둔덕이면서도

저렇게 자연스럽고 부드러우며 유려한 곡선이라니. 그런 고분 옆구리에 저렇게 잔뜩 녹슨 청동문짝이 숨어서

백제의 옛 왕들로 향하는 길을 내고 있단 걸 생각하면, 저 곡선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무령왕의 무덤에서 발굴된 그의 왕관. 실제로 쓰였던 건지 아니면 무덤 부장품으로 만들어진 건지는

불명확하다고 하나, 수천년을 지나고서도 저렇게 모양이 건사되어 있는 황금관의 온전함에도 감탄, 또

그 형태를 토대로 반짝반짝하게 만들어낸 재연품의 화려함에도 감탄.

무령왕의 무덤자리를 땅의 신으로부터 샀다는 것을 증명하는 매지권에 새겨졌다는 문구. 토지는 모두

지신으로부터 빌린 거라는 관념은, 얼핏 원시적이고 야만스러워보이지만, 어쩌면 그 땅 위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와 같았을지 모른다. 모두가 왕의 땅, 이라거나 돈있는

사람의 땅, 이라는 식으로 권력과 금력을 좇아 땅의 소유가 이전되었다면, 그 결과는 사실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이 대변하고 있지 않은가.

그의 무덤 앞을 지키고 있었다는 상서로운 석물. 등짝에는 호랑이처럼 굵은 줄무늬가 가로로 죽죽 그어져있고,

네 다리에는 불꽃이 일렁이는 것 같다. 게다가 그 다부지고 단단해 보이는 위압감은, 비교적 작은 사이즈임에도

불구하고 뿜어내는 포스가 대단하다.

무령왕릉에서 발굴되었다는 귀중한 유산 중에서도 가장 맘을 끌었던 것, 은으로 만들어진 찻잔과 잔받침.

뚜껑 손잡이는 연꽃모양으로 정교하게 세공된 채 금으로 꽃받침장식을 만들어 손잡이와 뚜껑을 이었다.

게다가 찻잔의 실루엣에서 느껴지는 저 완만하면서도 부드러운 곡선미란.




신라시대의 안압지는 조선시대로 따지자면 경회루랄까, 국가적인 행사나 연회가 베풀어지던

공간인 셈이니까 그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 하다. 사실 조선 시대 이전의 건물이나 사적들이

거개가 사라져버린 상황에서,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유물과 문화재란 대부분 조선시대의

것들이란 점에서 때로는 조선시대의 무엇무엇과 닮은 점과 다른 점을 찾아내 식별하는 게

조선시대 이전 문화재들의 기능과 위상을 알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인 듯.

입장권 뒷면에서 발견한 (여전히 한자가 난무하는 딱딱한 말투의) 설명은 왜 그리도

안 읽히는지, 조금은 더 독자 입장에서 읽기 쉽고 재미있게 풀어 쓸 수도 있지 않았을까.

여하간 이 '안압지'는 12봉우리를 가진 3개의 인공섬을 꾸며놓은 신라의 대표적 인공정원.

그 연못 주변에서 여러 연회용 건물이 지어졌던 것도 확인이 되었지만, 무엇보다 연못 안에서

이러저러한 유물들이 발굴된 것이 더 흥미로웠다. 이 낯선 주사위는 신라 사람들이 술자리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 놀았던 놀이기구의 하나로, 총 14면이나 된다고 한다. 육각형이 8면, 정사각형이

6면이나 되는 형태도 신기하지만 그 각 면에 씌여진 내용들이 더 신기하다.


칼 같은 걸로 새겨진 글씨에 따르면, '스스로 노래 부르고 스스로 마시기' (오늘날의 어휘로

바꾸자면 혼자 노래부르고 자작해서 원샷하기 정도일까), '술 석잔 한번에 마시기' (삼배주...;; ),

'여러 사람이 코때리기' (이건..다구리?;;;; ), '소리없이 춤추기' 등등 재미있는 벌칙들이 있는 셈.


당시 신라 왕실과 귀족들이 연회 중에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문득 주사위를 꺼내어서는

차례로 주사위를 굴리며 벌칙을 수행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비어져나왔다. 벌칙이란 것도

원샷에 삼배주에 다구리, 노래시키고 춤시키고, 오늘날의 음주 문화가 새삼 지탄받을 일은

아니구나, 싶기도 하고 한국인 DNA에 이때부터 각인된 건가 싶기도 하고.


근데 저 벌칙은 뭘까. '더러운 것을 버리지 않기'. 똥이나 오줌을 참으라는 걸까, 그니까 화장실을

가지 말라는 거거나, 혹은 잔뜩 사발주를 들이키곤 토하지 못하게 하는 건지도. 뭐가 됐건 간에

참 신라 왕족들 평소 술자리가 무료했나보다.

그래, 우리 조상들이 (개인적으로는 그저 '10세기즈음 한반도 주민들은'이라고 좀 멀찍이

표현하고 싶지만) 마냥 음주가무에만 몰입했던 건 아닌 거다. 이 그럴듯한 외양의 가위는

그 생김새도 훌륭하지만, 가위날에 붙어있는 동그란 받침이 독특해서 눈여겨봤다. 뭔고

하니 촛불의 심지를 자를 때, 뜨거운 촛농이 묻어있는 그 심지가 아무데나 떨어지지 않도록

받치기 위한 받침대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감탄했다.

사실 중학교 때부터 단군 중의 한 명이라는 '치우천황'의 이름을 알았던 사람으로,

붉은악마들이 치우천황의 얼굴이 묘사되었다는 귀면와의 도안이 그려진 깃발을

흔들고 옷에도 그려넣고 하는 걸 보면서 조금 기분이 묘했다. 저들이 치우천황을

전면에 내세우는 건 자칫 굉장히 배타적인 민족사관과 더불어 한민족과 한국을

떠받드는 국가주의를 조장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싶기도 하고, 80년대 제대로

학자 대접도 못받던 재야사학자들의 이야기가 이런 식으로 반향을 받나 싶기도 하고.

민족사관의 시각에서 다소 아이러니할 수 있는 점은, '치우천황'의 이미지가 이어진 것은

다름아닌 신라의 기왓장들을 통해서였다는 사실. 민족사학이나 민족사관을 가진 학자들은

으레 고조선과 고구려의 기상과 패기를 강조하며 대륙을 정벌하고 지배했음을 강조하는

동시에 외국 당나라를 끌어들여 조국 통일의 대업을 망치고 겨우 한반도 남단에 그치고 만

만고의 역적 신라라는 공리를 갖고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전쟁의 신'이라는 치우천황의

이미지가 신라에서 널리 받아들여진 덕분에 오늘날까지 이어졌다는 건 좀 웃기는 일이다.


어쨌거나 그 무시무시하면서도 정겨운 표정이 그대로 살아있는 기와가 이 안압지 연못

바닥에서 많이 출토되었다고 했다. 오늘날의 미적 감각으로 보아도 천년이나 지난 디자인이라

홀대하기엔 너무 귀중한 것 같다. 부리부리한 눈이나, 수염을 길게 빼문, 으르렁대는 듯한 입,

그리고 양미간 사이에 잡힌 굵은 주름까지. 무서운 와중에 유머러스함이 솟아나오는 부분이

바로 그 양미간 사이의 주름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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