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라기엔 너무 짧게 끝나버린 10월의 어느 볕좋던 날, 까뭇까뭇 어둠이 내린 올림픽공원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기는

 

생각보다 꽤나 고역이었지만. (그리고 아무 데나 '힐링'을 갖다 붙이는 저 더러운 작명센스는 맘에 무척 안 들었지만.)

 

 

그래도 폴포츠와 이루마가 각각 토요일 밤과 일요일 밤에 등장한다고 하여 이틀 연속으로 올림픽공원을 찾았다.

 

 

뭐, 이루마의 외모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가 'River flows in you'를 칠 때의 그 손가락 움직임이라거나

 

중간중간 취하는 제스처, 가끔 활처럼 휘어지는 허리까지, 참 그럴듯하게 피아노를 치는구나 싶었다.

 

공연 실황을 녹화해 보려고 시도했으나, 이루마도 말했던 것처럼 날이 너무 추워 피아노도 잘 못치겠는 판에

 

카메라를 계속 쥐고 버티고 있을 자신도 없어서 포기. 레퍼토리 중 떠오르는 곡들을 퍼담아두기로 한다.

 

 

 

 

 

 

 

 

 

 

이쁘다 싶은 까페 안에서도 막상 손에 들린 카메라를 여기저기 향하며 사진에 담기란 쉽지 않은 거 같다.

 

그런 흔치 않은 기회는, 까페 안에 손님이 달랑 나 혼자라거나 각자의 뭔가에 열중한 사람들이 조금 있을 때 정도랄까.

 

 

 올림픽 공원 근처 우유빙수가 제법 맛있는 어느 까페에 갔을 때, 마침 시그마 18-250렌즈 신형을 시험하던 차에

 

잔뜩 찍어본 까페 안 풍경.

 

 

 

간결하고 매끈하면서도 뒤로 무난하게 잘 젖혀질 거 같은 의자들이 쿠션을 하나씩 품고 있기도 하고.

 

 

 벽면에 장식된 그림이나 자잘한 소품들에 눈길이 간다.

 

 의자 위에는 잡지가 자연스레 누워있기도 하고.

 

 

 고양이 인형이 발딱 서 있는데 저건 태엽시계인 거 같은데 움직이질 않으니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고.

 

 

 까페 공간보다 훨씬 크게 마련된 공간에는 와인을 팔고 있었는데, 거기에도 나름 독특한 소품들이 보였다.

 

 

 이런 와인 창고를 하나 개인적으로 갖고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어느 주류 매장에 가던 꼭 한 번 해보는 생각.

 

 

일어서기 전, 방금까지 내 옆에 비스듬히 고개를 숙인 채 따뜻한 빛을 떨궈주던 스탠드를 한번 슥 봐주고 바이바이.

 

 

 

 

 

센트럴 파크, 59번가에서 110번가까지 이어지는 이 거대한 공원의 면적은 대략 서울 올림픽공원의 3.5배가 된다고 한다.

 

그 동남쪽 호숫가에 접해있는 보트하우스에서 먹은 아침식사 이야기.

 

 

아침 7시반, 무척 이른 시간이지만 자전거를 타거나 조깅하러 나온 사람들이 워낙 많았고 개를 데리고 산책나온 사람도

 

엄청 많이 보였다. 그리고 이 곳에서 아침을 먹고 가려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드문드문.

 

 

 

참새들이 포르르 날아올라와 주인없는 테이블 위에서 빵조각을 찾아 부리로 콕콕 지르는 중이다.

 

복장을 제대로 차려입으신 이 아저씨는 자전거를 얌전히 주차시키고는 폰카메라로 사진을 찍느라 바쁘시고.

 

 

혹시 이곳에 대해 어디선가 본 듯 하다는 기시감을 느꼈다면, 그리고 '섹스 앤 더 시티'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맞다.

 

캐리 브래드쇼가 미스터 빅하고 만나서 밥을 먹다가 호수에 빠지는 장면, 그게 바로 이 곳이다.

 

 

이렇게 보면 뭔가 기억이 더 생생하게 나려나, 저기 호숫가 저쯤에서 캐리가 빅하고 같이 허우적대던 장면이 떠올라야 하는데.

 

 

말 그대로 보트하우스, 보트를 빌려서 센트럴 파크 안에 누운 너른 호수를 돌아볼 수 있는 곳이다. 마침 한 커플이 운항 중.

 

 

 

아침부터 이름모를 꽃의 붉은 빛이 확 달아올랐다. 더운 하루가 될 것 같은 예감.

 

 

어느새 멀찌감치 밀어보내진 보트, 그리고 호수 주변으로 에둘러 모로 누운 빽빽한 보트들. 처음엔 뭔지도 못 알아봤다.

 

 

 


@ 올림픽공원.


때로는 말보다 그저 사진 몇 장으로 그치는 게 낫겠다 싶다. 어제의 하늘, 어제의 구름이 그랬다.




8시에 시작한다던 Stevie Wonder의 슈퍼콘서트, 제4호 태풍 뎬무가 기세등등하게 북상하던 타이밍, 슬슬 발동이

걸린 듯 쏟아붓기 시작하는 폭우와 교통체증 때문인지 8시 반이 되도록 사람들이 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강렬하게 조명이 내려꽂히는 무대, 그리고 시야를 하얗게 휘발시켜 버리는 조명이 빙빙 도는 천장 아래

잔뜩 설레고 흥분된 사람들의 웅성거림. 원더의 공연이 시작되기 전, 폭풍전야의 흥분.

2시간 20분여..쉼없이 달리던 그의 공연. 노래 하나가 끝나는가 싶으면, 그의 손가락 끝에서부터 또다른 멜로디가

마법처럼 너울대며 퍼져나왔다. 시작부터 목에 건 키보드를 격하게 치다가는 옆구리에 끼고 치고, 뒤로 돌려

치고 급기야 자리에 벌렁 누워서 치는 황홀한 퍼포먼스를 보였던 원더. 그의 꿈틀대는 동작 하나하나, 마치

음악에 흠뻑 취해서 경련하는 듯한 극도의 쾌감이 느껴졌다.

1950년생, 올해 육십이지만 좀처럼 나이를 모르겠는 그 열정. 아마 대머리여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그는 머리를

민 걸까 아님 앞에서부터 까진 걸까. 문득 궁금했지만 이내 그의 압도적인 음악 앞에 지워져 버렸다.


Isn't she lovely의 한 대목. 아이폰으로 동영상을 찍으려면 가로로 눕혀 찍어야 한단 걸 몰랐다. 아놔..;

그의 공연을 보러 간다고 자랑했더니 누군가 곧 애아버지될 분이 하던 말, 뱃속에 있는 딸에게 이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는. 정말 이 노래는 남녀의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딸에 대한 사랑을 노래했다는 걸 알고 들으면

더욱 아름다운 거 같다, 더구나 평생 얼굴 한번 못 보는 딸이 태어나자마자 처음 그가 했던 말이라니.

그만큼의 어둠을 품고서 노래하는 아름다운 빛, 스티비 원더. 가난과 피부색과 장애를 승화시킨, 아님 오롯이

'사리'처럼 품고있는 그의 노래나 퍼포먼스는 정말 감동이었다. 마치 트럼펫같던 그의 음색은 오히려 앨범으로

녹음된 것들보다 실제로 듣는 게 더욱 압도적이고 파워풀하면서도 감미로웠다는 느낌.


또다른 공연 실황. 어줍잖은 아이폰의 동영상이라 화질도 별로고, 내 위치도 다소 코너에 몰렸는지라 볼 것도

없지만, 그의 목소리와 노래, 그리고 사방에서 터져나오는 아우성같은 환호소리가 레알.

워낙 쉼없이 달린 공연이라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하나하나 손꼽기도 쉽지 않다. 대충 알 만한 노래는 전부

섭렵한 거 같고, 몇몇 그의 최근 노래들도 불렀던 거 같고. Overjoyed. you are the sunshine of my heart,

isn't she lovely,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for once in my life, for your love, free, happy birthday,

lately, if you really love me, part time lover, superstition, uptight, yester me yester you yesterday...

대체 그의 명곡들은 왜 이리도 많은 건지.

11시가 거의 다 되어 밖으로 나왔다. 멀고 낯설지만 따뜻한 곳에 잠시 다녀온 느낌..여기가 어딘지, 지금이 몇시인지

그런 것들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꿈처럼 스티비 원더와 한 공간에서 미친듯이 소리지르고 노래를

따라불렀다는 기억만 남아 버렸었다.

그래서 두 글자로 그의 공연 소감을 정리하자면, '엉엉'. 날 가져요 스티비 원더. (그날 이래 변치않는 내 네톤

대화명이기도 하다. 그에 대한 나의 최대한의 경의를 담아.)


그리고, 담번에는 그의 노래들 가사를 전부 외워야겠다는. 15년 후쯤 다시 돌아올 그를 기다리며.












어느날의 올림픽공원,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집 바로 옆에 있었어도 한번을 제발로 갔던 적이 없던 곳인데,

막상 멀어지고 나니까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평화의 문...


사실 올림픽공원도 내가 변해온 만큼이나 계속 변해왔다. 몽촌토성의 자취를 따라 그럴듯한 산책로가 차례로

정비되었고, 변변한 구멍가게 하나 찾기 쉽지 않던 곳에 디초콜렛이니 스타벅스니 많이 생겼다. 이런 곳 근처에

살고 있는 건 정말 꽤나 멋진 장점을 안고 있는 셈인데, 사실 지금도 선릉공원이 멀지 않은 곳이면서도 거의

본체만체 중이니 할 말이 없다. 

회사 동기들과 갔던 길이었다. 두툼한 것들이 시야를 가리고, 어둠이 내려앉은 밤하늘을 배경으로 선명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무슨 그림자극같기도 하다.

우아하게 커피를 꼬나쥔 녀석, 그리고 다소 소심한 듯 조용한 몸짓으로 고요를 지키고 있는 녀석, 길이와 굵기로

다른 사람들을 압도하는 녀석, 그리고 긴머리 여자사람 하나까지. 이제 뒷모습만 보아도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쌓이고 있다.

뭔가 부조화스러우면서도 그럭저럭 뒷태가 괜찮은 건, 이들이 남자사람 둘과 여자사람 하나로 묶여서가 아니라

그냥 친구들이어서다. 워낙 개(성)스럽고 확실한 성깔들을 가진 분들이라 쉽진 않지만, 그래도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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