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웹툰을 꼭꼭 챙겨보는데, 그렇게 챙겨보던 웹툰 중 하나인 '고시생툰'에서의 한 장면.

나도 똑같은 생각을 누군가에게 말했던 적이 있어서 깜짝 놀라며 일종의 데자뷰를 느꼈었다.

꽃이란 식물의 생식기관, 말하자면 남성과 여성의 생식기관을 날것으로 드러낸 셈이랄까.

요새 여기저기서 찍어둔 꽃 사진들이다. 꽃을 찍는다는 건, 꽃을 본다, 와 이쁘다 감탄한다,

카메라를 들이댄다, 찍는다, 찍는다, 또 찍는다..그냥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반사가 일어나는

과정과도 같다. 그렇지만 저 웹툰 덕(?)에 이전에 잠시 품었던 '꽃=생식기'라는 생각이 들고

나니까 찍힌 꽃들 하나하나가 마냥 이쁘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말하자면 굉장히 펑퍼짐하고 '육덕진' 그런 관능미랄까. 게다가 새빨갛게 달아올라 하늘거리는

꽃잎들과 대비되는 샛노랑 꽃술의 저 감각적인 모양새라니.

다섯개 다리를 가진 별모양처럼 피어난 꽃, 꽃잎과 살짝 비틀려 튀어나온 연두빛 꽃받침이나

사방으로 삐죽대며 폭죽처럼 터져나온 꽃술이 더욱 눈길을 붙잡았다. 굳이 또다시 꽃을

생식기에 비긴 비유를 원용하자면, 폭죽처럼 터져나온 별모양 생식기..인 건가.;

아무리 그렇게 삐뚤게 생각해보려 해도, 이쁜 건 이쁜 거다. 만져보지 않아도 저렇게 보드랍고

약해보이는 꽃잎을 잘도 피워올리는 꽃들의 대책없는 아름다움. 군대에 갔을 때 그 무디고

둔탁하고 강력한 군홧발 끝에서 뚝뚝 끊어지는 민들레 줄기라거나 짓밟혀서 흔적도 남지 않던

꽃들을 보며 조금 경악했던 적이 있었다. 난 그저 민들레 씨앗을 톡톡 띄워올리고 싶었을 뿐인데.

그래서, 꽃이 아무리 생물학적으로 '식물의 생식기'에 불과하다지만 받아들이기로는 그 이상이다.

어쩔 수 없이 그 빛깔과 질감과 향과 형체를 감각하고는 이내 감탄하여 카메라를 빼어든 채

꽃앞으로 대책없이 달려들 수 밖에 없는 거다. 꽃이 만발하는 여름이다.





입구부터 뭔가 화사하다. 잘 가꿔진 녹색식물들이 엉겨붙은 담벼락과 대문, 그리고 이쁜 꽃바구니가 그려진 채

무겁고 두툼해보이는 문짝하며. '타샤의 정원'이란 이름의 퓨전 한정식집.

정원이다 정말. 다소 정신없어 보일 정도로 잔뜩 늘어세운 화분들과 '풀떼기'들로 건물은 입구만 겨우 남고

전부 가리워지고 말았다.

약간의 산만함, 혹은 빼곡한 치장은 이 곳을 관통하는 키워드인 듯. 내부에 들어가도 진열되다 못해 바닥을 온통

잠식해 들어온 소품들과 장식품들이 은근한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비가 오리라던 기상청 예보 따위, 지들 운동회날 비나 맞으라지. 온통 번쩍번쩍 양광에 휘감겼던 날.

따스하게 햇볕에 바래가는 체크무늬 쿠션, 고소하고 살짝 시큼한 커피 향기, 그리고 저만치 떨어진 좌석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발랄한 목소리. 나른하고 느긋한 여름날 휴가의 모양새.

창밖에서 까페 내부를 들여다보던 네 명의 흑인 인형. 왠지 뉴올리언즈 쯤에서 막 재즈 공연을 마치고 상경한

포스가 느껴지는 그들.

심지어 건물 앞, 주차 안내원을 위한 공간조차 허투루 냅두지 않았다. 거대한 허브 화분 두개가 보초처럼 서있고,

문틀 위엔 수탉 두마리가 올라앉아 눈빛 겨루기 중.

사진이 좀 애매하게 찍혀서, 마치 저 나무통 똥꾸멍 쯤에서부터 저 붉은 꽃화분이 뿅, 하고 튀어나온 느낌으로

찍혀버렸지만, 그런 건 아니다. 괜한 해명인 건가.;

조금 어둡게 나왔지만 그래서 더욱 선연하게 떠올라버린 다섯장 꽃잎을 가진 이름 모를 꽃. 확 도드라져 보이는

색감이 눈을 어질어질하게 한다. 아놔. 좀 더 잘 찍어볼 걸.






사무실에 카메라를 들고 가면 꼭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있다. 어느새부턴가 '오프라인으로 표시'로

쭉 가고 있는 이모티콘달력-사진찍고 나선 '졸려요'로 바꿨다-과 일렬로 쭉 늘어선 각종 커피전문점의 컵을

재활용한 수경화분. 벌써 열개 가까이 덩굴식물을 꺾어서는 화분을 만들어 사방에 분배해주었다.

책상에 앉아 모가지를 빼고 왼쪽을 보면 보이는 초록빛 덩굴식물, 완전 잘 자라서 자리 하나를 온통 초록색

잎들로 덮어버리고 있다. 그 앞에는 잡다한 서류들, 그리고 캄보디아 가서 찍었던 석양 사진을 출력한 액자.

파티션 위의 삼각뿔에는 내 이름과 담당업무가 적혀있다. 가까이 땡겨서 찍으니 그 굉장한 생명력이 더욱 잘

느껴지는 것 같다. 가뜩이나 건조하고 공기도 좋지 않으며 환기도 되지 않고 햇볕조차 들어오지 않고 백날

파리한 형광등 불빛만 먹고 살 텐데 어찌 이리도 선명한 초록색의 위용을 과시하는 것인지.


마디마디 뻗쳐있는 눈이 있는 줄기를 적당히 끊어서 물 속에 담가놓기만 하면 알아서 무성하게 뿌리를 뻗으며

자라나는 생명력. 장양강장의 상징이다.

사무실 자리 오른쪽, 얼마전 선물받은 벤자민 고무나무 화분과, 작년부터 잘 쓰고 있는 소형 가습기. 가습기

위에 꽂힌 물병은 10월 출장 때 들고 왔던 두바이의 생수병이다. 내 손목을 보호해주는 오리너구리하며,

왠지 올해 다이어리를 부실하게 써버린 이유라고 생각하고 있는 스타벅스 다이어리. 이쁘고 맘에 쏙 드는

다이어리를 사야 일년이 충실한 거 같다.

그리고 마법의 램프. 미친듯이 빌어봐야 때만 나온다.

전자파로부터 날 지켜주는 제주도 화산석으로 만들었다는 돼지 두 마리. 그리고 언젠가 인사동에서 백년천년

오래 살라고 선물받았던 조그마한 거북이. 난 소중하니까요.




 1. 삼형제의 탄생

  2006년 10월 2일 한 가족의 저녁식사를 위한 부식재료로 구매되어 냉장 보관되고 있던 고구마, 감자 그리고 무가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깔끔하게 손질되어 음식으로 재탄생할 것을 기대하던 이들은, 잠시 서로를 마주보며 할 말을 잃어야 했다. 아랫도리가 잘려나간 채 수반에 얹혀지고는, 햇볕이 따뜻한 테라스에 놓였다.

  3일 후, 그간 따뜻한 가을볕을 쬐었던 감자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감자의 옆구리에서는 하얀색의 눈이 터져나왔고, 한번 터져나오기 시작한 눈은 불쑥불쑥 그 크기가 날로 커지고 있었다. 무 역시, 줄기가 뻗어나오면서 연두빛의 잎사귀가 움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고구마는 외로 돌아누운 채 미동도 없다.(10.2-5)



2. 감자와 무의 기(氣) 싸움

  큰형 고구마가 좀처럼 움직여볼 생각도 없는 것처럼 보이자, 감자와 무 간에는 경쟁이 붙기 시작했다. 무는 연두빛의 여린 줄기가 두세개로 늘어나면서 쭉쭉 줄기생장하기 시작하더니, 잎사귀가 제법 풍성해졌다. 감자는 하얗고 약하게만 보이던 눈이 한두개가 아니라 이제 마치 덩어리처럼 잔뜩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덩어리는 보랏빛과 연두빛이 섞여들어 조금은 성숙해보이기도 한다.(10.6-10.8)



3. 질풍노도(疾風怒濤) 시기의 무

  무가 뻗어올린 대궁이가 어느 순간부터 세기 쉽지 않아질 정도로 많아지더니, 잎사귀의 키가 10~15cm에 이르렀다. 가장 왕성한 발육을 보이고 있는 무가 계속 이렇게 자라게 되면 바싹 인접해 있는 감자와 고구마가 햇볕을 쬐기에 불편함이 예상되었다. 하루하루 체크할 때마다 키가 자라며 잎사귀의 색이 짙어지는 것이 실감날 정도로, 무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10.9-12)



4. 감자의 가출

  무의 잎사귀가 한껏 푸르러지고 사방으로 펼쳐지면서, 감자가 불평하기 시작했다. 감자의 눈이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고 방심한 사이, 녀석은 이미 흰 수염 세네 가닥을 길게 기르고 있었다. 감자는 어느 순간 가출을 결심했고, 하얀색의 단조롭고 답답한 수반을 떠나서 화려한 무늬를 가진 도자기 접시로 분가해 버렸다. 고구마, 감자, 무가 꽉 찼던 수반은 이제 많이 여유로워진 모습이었고, 감자 역시 자신만의 발육 공간을 찾아 기쁜 모습이다.

  하지만 큰형 고구마는 감자와 무 간의 형제다툼을 아는지 모르는지, 돌아누운 자세 그대로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고 있다.(10.13-17)



5. 조숙한 동생들

  가출해서 분가해버린 감자는 일주일도 안 지나서, 이만큼 무성한 뿌리를 만들어냈다. 수반에 넉넉히 차있는 물 때문인지 뿌리로만 너무 왕성하게 자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눈은 총 6개, 너무 많아서 영양분이 분산될 수도 있다는 조언을 듣고 조만간 눈이나 뿌리를 잘라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 중이다.

  무 역시 총 열세 개에 이르는 줄기를 뻗고 있는데, 줄기에 가득 달린 잎사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사방팔방으로 벌어져 있다. 이제 저렇게 풍성해진 잎새 사이로 꽃대궁이가 올라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역시 잎사귀가 너무 많아 영양분이 분산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소 염려스럽기도 하다. 조금더 지켜본 뒤에도 꽃대궁이가 안 올라오면 마음 아프지만 솎아내야 할지도 모르겠다.(10.18-25)



6. 지진아 고구마

  고구마의 완강한 침묵에 질린 채, 웃자란 감자와 무에 신경을 온통 쓰고 있었다. 자연스레 카메라에 담을 때도 고구마는 항상 사진의 구석에서 돌아누워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고구마가 하얀 뿌리를 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고구마의 가느다란 쪽 끝에서 하얀 색의 실뿌리가 어느새 2-3cm에 달할 정도로 자라 있었다. 그 외에도, 연두색의 아주 조그마한 싹 같은 것이 그 위에 사마귀처럼 달려 있다.

  큰형이 이제야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무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싱싱하고 튼튼해 보이던 잎사귀와 줄기가 시들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무게를 못이기고 축축 처진다. 감자는 별다른 변화없이 묵묵히 큰형의 뒤늦은 기지개를 바라보고 있다.(10.26-31)



7. 역주(力走)하기 시작한 고구마

  고구마는 일단 싹을 틔우기로 마음을 정하고 나자, 마치 예전의 무가 그러했던 것처럼 왕성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다. 가냘픈 연두색의 싹은 고구마의 몸체와 비슷한 자주색으로 변화하면서 쉽게 알아볼 만큼 자라났다.(약 1.3cm) 그리고 이틀이 지나자, 그 싹은 좀더 자라나 끝에 잎사귀가 말린 듯한 모양의 망울을 달게 되었다. 그저 밋밋한 하나의 줄기가 아니라, 첨단부에도, 그리고 옆 켠에서도 가지가 생겨나고 잎사귀가 펼쳐지고 있다.(11.1-4)

 


8. 생식에 실패한 무와 남일같지 않은 감자

  무는 이미 너무 많은 양분을 잎을 자라는데 써버려서 꽃을 피울 능력을 상실한 것 같다. 좀더 일찍 손을 썼어야 하는 거였다고 후회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안쪽의 줄기들을 전부 솎아 내었다.

  감자는 눈이 비대하게 자라났으면서도 더 이상 그로부터 무언가 생겨날 기미가 안 나타난다. 무와 같은 길을 걷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손속에 잔정을 남기지 않고 하나의 눈만 남긴 채 모두 제거해 버렸다. 이렇게 했으니 감자는 생식에 실패한 채 그냥 죽어버릴지도 모르는 무와는 다른 길을 걸어야 할 텐데.

  고구마는 싱싱한 자주색의 줄기를 쭉쭉 뻗어올리더니 아주 정결하고도 예쁜 초록색 잎을 기어코 펼치는데 성공했다. 뿌리도 점차 굵어지면서 보랏빛이 물들기 시작하더니, 촘촘하게 실뿌리가 자라나고 있다. 잔뜩 시들어버린 채 줄기만 앙상하게 뻗은 무가 보기 싫어서 다시 한번 솎아내버리고 아직 덜 자란 줄기 세네 가지만 남겨놓았다.(11.5-11.10)



9. 무의 죽음

  무는 결국 아무런 자손도 퍼뜨리지 못하고, 최소한 생식을 위한 기관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그대로 시들어버렸다. 젊었을 때 ‘위풍당당한 시래기’를 만들기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 버린 탓인 것 같다. 무를 만져보니 처음의 느낌과 조금 달랐다. 약간 푸석푸석해진 듯하면서 말랑말랑해진 것 같았다. 무가 다시 대지로 돌아가면 어딘가의 무엇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 믿으며, 무를 수반에서 치웠다.

  고구마는 이제 상당히 볼만한 잎사귀를 다섯 장이나 가지고 있었다. 가장 큰 잎은 가로 5cm, 세로 4cm에 이를 만큼 자라났으며, 뿌리는 이미 잔뜩 자라나있어서, 무가 떠난 빈 자리를 가득 채웠다.

  감자는 막내 무가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는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하나만 남긴 채 모두 솎아버린 눈 끝에서 조그마한 싹이 돋는 것 같기도 하지만, 아직 무엇인지 알 수 없다.(11.11-17)



10. 대기만성(大器晩成) 고구마

  고구마는 그동안 무 때문에 자신이 자라지 못했던 것이라고 시위라도 하는 것처럼, 떠나간 무의 빈자리를 순식간에 가득 자란 뿌리로 메꾸고는, 싱싱하고도 튼튼한 줄기를 힘차게 뻗어올렸다. 총 연장 23cm에 이르는 줄기에는 8장 정도의 잎이 달려있으며, 보라색 줄기에 짙은 초록색의 잎사귀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뿌듯하게 한다. 가장 큰 잎은 이미 가로 10cm, 세로 9.5cm 정도로 손바닥만하다는 비유가 알맞을 정도이다.

  감자는 눈의 첨단부위에 몽글몽글하게 털이 난 조그마한 망울이 생겨났다. 일주일을 매일같이 지켜보아도 별다른 변화가 없어서 혹시 겨울눈은 아닐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지만, 조금 더 지켜보면 무언가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한다.(11.18-25)



11. 현재 상황(2006.11.26)

  2006년 11월 26일 현재 고구마는 12장의 건강한 잎사귀를 활짝 피운 채, 두툼하고 싱싱한 줄기를 뻗치고 있다. 조금 더 자라나면 꽃이 맺히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한편 감자는 그 끝의 망울이 점차 커지면서 이제 육안으로 쉽게 식별이 가능한 정도이다. 솜털이 보송보송 나있으며, 그것이 계속 자라면 무엇으로 변하게 될지 궁금하다.

  앞으로도 계속 관찰을 지속할 예정이며, 고구마의 경우는 감자와 무의 선례를 통해 얻은 경험을 통해 싱싱한 초록색을 더욱 싱싱하게 피워올릴 수 있도록 주의깊게 돌볼 생각이다.



@ 2006. 2학기 '생활원예' 수업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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