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위에서 화장실이 급할 만큼 긴 시간 배를 탄 적이...부산에서 후쿠오카 건너갔던 때 말고는 없었던 거

같다. 그 쾌속선이야 워낙 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으니 딱히 화장실이 눈에 띌 만큼 특징적이지도 않았지만,

남해의 소매물도니 외도를 돌아보는 이 유람선에 이렇게 설치되어 있는 화장실은 신기했던 거다.


뭐,이런 화장실에 눈이 갈 만큼 긴 시간 배를 탔던 것도 이유겠고, '소변만 가능'하다는 저 협소하고 불편해

보이는 조그마한 공간이 불쑥 혹처럼 튀어나온 게 눈에 잘 띄기도 했고. 살짝 문을 열어보고는 그 강렬한

냄새와 위생상태에 질겁을 하며 문을 닫아버렸다는.

사실 파도만 좀 잔잔해서 바다가 거울같이 반반하고 실크처럼 매끈하다면, 그래서 배가 전혀 요동이 없고

흔들거리지 않았다면 화장실이 그렇게까지 되어버리진 않았을 거라 짐작해 본다. 배 위에서 일을 본다는 건

일종의 거대한 천재지변과 정면으로 마주하겠다는 의지, 그 의지로 자폭해버리거나 뒷사람에 민폐를

끼치는 걸 막기 위해 아마도 '소변만' 가능하다고 읍소한 거였나 보다.





2월말, 조금 흐려진 하늘이 걱정스러웠지만 소매물도를 위시한 남해바다의 숱한 섬들 사이를

요리조리 헤치고 나가는 유람선을 타고 바라본 바다는 기세등등하게 검푸른 빛깔이었다.

갈매기가 몇 마리 따르고, 어느 지점에서 배가 달리던 간에 가깝고 먼 섬들이 사방을 온통

둘러쳐주는 모습이란. 게다가 그 섬들의 기기묘묘한 풍경까지.



소매물도 십자동굴을 보러가던 차였다. 온몸에서 통통거리는 유람선을 타고서 제법 높은 파도를

뚫으며 달리던 길에 빼어든 새우깡에 갈매기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입이 찢어져라 벌리며 공중에서 과자를 낚아채는 녀석, 그리고 애절하게 손을 내뻗으며

나도 한입..이라고 외치는 듯한 다른 녀석들의 눈짓과 날갯짓이란.

굉장히 시크하게 생긴 녀석들이 새우깡 한두조각에 미친듯이 갸르릉거리며 덤벼드는 걸 보자니

왠지 배신감도 느껴지고 그랬다. 그나마 석모도 가는 길의 그 탐욕스럽고 무시무시한 괭이갈매기

녀석들보다는 훨씬 낫긴 하다만.

슬쩍 보이는 배의 꼭대기 위에서부터 퍼져나가듯 날아가는 갈매기들.

니놈들 중에 조나단은 없는 거냐.






@ 외도, 소매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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